성 프랜시스의 영성과 설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성자 예수님의 12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인 누가는 사도행전 1장에서 성자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 말세에 재림하싷 것을 말씀하신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8-11).
“복음”의 중심과 내용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지옥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시기 위해서 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 하시고 그리고 말세에 재림하셔서 우리 죄인들의 시체들까지 구원하셔서 하늘 집으로 데려가게 하시려는 구원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을 핍박하던 그리고 성자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을 잡아죽이던 사울은 성자 예수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부르심을 받아 회개하고 성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리고 복음 전파에 전력을 다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복음전파의 사역을 계속해서 전력을 다해서 수행하게 되었는데 핍박과 고난을 당해도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고 빌립보서에서 고백하고 또 고백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7,18).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4-7). 복음 전파의 삶은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죄와 허물 밖에 없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소식에 대한 즉 “복음”에 대한 설교를 제가 100여번 이상 했는데 그런 설교들 중의 하나가 2005년 5월 30일 양수리 수양관에서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의 영성” 이라는 제목으로 한 설교였습니다. 오늘 그 때 한 설교를 거의 그대로 조금 수정 보완해서 하려 합니다.
기독교 복음의 영성 1. 약함
첫째로 기독교 복음의 영성은 “약함” 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복음의 영성은 역설적입니다. 약할 때 강하고 어리석을 때 지혜롭게 되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영성입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인 존 스토트 박사는 2000년 7월 영국 케직 사경회에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의 하나는 약함과 어리석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자체가 약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때 헬라의 지혜로 포장하지 않고 로마의 웅변술로 각색하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말의 지혜와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설교를 너무 지혜롭고 유창하고 멋지게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말입니다.
참된 복음 전도자의 특성도 자신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깊이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고 또 고백하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을 묘사했습니다. “바울은 무슨 물건이며 아볼로는 무슨 물건이냐?” “나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나는 만물의 찌끼” 즉 시궁창에 내버리는 음식물의 찌꺼기 같은 존재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에서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나는 나에 대해서 약한 것들과 부족한 것들을 자랑하노라 그 이유는 내가 약할 때에만 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약할 때에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존 스토트 박사는 오늘날 세계 곳곳을 다녀보아도 사도 바울처럼 자기 약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진정한 기독교의 지도자들을 찾아보기가 너무 어렵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음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자격도 “약함”과 어리석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6,27).
초기 한국교회는 참으로 약했고 가난했고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겸손히 땅에 엎드려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만 의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너무 커지고 강해지고 지혜로워졌습니다. 너무 크고 강하고 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사회로부터 실망과 불신을 받기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교회는 사도 바울처럼 약해져야 하고 어리석어 져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성자 예수님께서는 약해 지셨고 가난해 지셨고 비천해 지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약함과 어리석음을 통해 역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를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기독교 복음과 영성의 첫째 특성은 약함 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영성 2. 착함
둘째로 기독교 복음의 영성은 “착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본래는 하나님이시고 말씀이셨지만 우리들을 위해 “착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신 성자 예수님께서 “착한” 사람으로 탄생하신 것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더라”(요 1:14).
사도 베드로는 성자 예수님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 “착한” 사람이 되셔서 우리 죄인들과 함께 사시게 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제자들더러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은 “착한” 행실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삶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사도행전은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예루살렘에 복음이 전파된 것을 기록하지만 사실 그 길을 미리 예비한 것은 이름없는 사람들의 “착한” 삶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도르가의 “착한” 행실을 통해 복음 전파의 준비가 욥바에 마련되었고, 고넬료의 “착한” 행실을 통해 복음 전파의 준비가 가이사랴에 마련되었습니다. 도르가의 “착한” 행실과 고넬료의 “착한” 행실이 하나님 앞에 상달된 제사가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기 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착함”은 전도자와 목회자의 귀중한 자질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후에 디모데를 칭찬하면서 디모데만큼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깊이 생각할 인정과 사랑이 많은 “착한”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빌 2:20).
사도 바울은 마지막 편지 마지막 장에서 “착하고” 선하고 인정과 사랑이 많은 디모데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 4:9).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속히 오라”(딤후 4:21).
지금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필요한 것은 유창한 설교보다 정통 신학강의보다 뜨거운 체험보다 상처 입은 자들을 품을 수 있는 따뜻함과 선함과 사랑을 지닌 “착함”의 목회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님 닮은 “착함”의 삶을 나타내 보여준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의 삶을 더듬어 살피면서 성 프랜시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길선주, 이기풍, 최권능, 조만식, 이승훈, 유관순, 주기철, 손양원, 장기려, 한경직, 등이 모두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얼마나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기독교 복음의 영성은 “착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복음의 영성 3. 주변성
셋째로 기독교 복음의 영성은 “주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복음의 영성은 자기 중심 또는 자기 집중적이 아니란 말입니다. 구약의 복음은 “주변 지향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축복하실 때 그의 관심을 자기 본토나 아비 집에 두지 않고 “땅의 모든 족속”(창 12:3)에게 두도록 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 12:3).
이사야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그의 사명을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는 이스라엘 회복에 머물지 않고 “이방의 빛을 삼아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사 49:6) 하는데 두도록 했습니다.
요나를 부르실 때 하나님은 그의 관심이 이스라엘이 아닌 앗수르의 구원에 있음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네가 망하기를 원하는 니느웨를]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 4:11). 니느웨는 그 당시 “악의 축”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악의 축”이었던 애굽과도 이스라엘이 교류하고 함께 세상의 복이 되는 날이 온다고 예언했습니다(사 19:23-25).
신약의 복음도 분명히 “주변 지향적”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 지역적으로는 갈릴리 사마리아 욥바 가이사랴 안디옥을 통해 소 아시아와 마게도냐 등 주변과 이방으로 퍼져 나가게 하셨고, 사회적으로는 중심에서 소외된 버림받은 죄인들과 병자들과 이방인들에게 전파하셨습니다. 산에서 내려와서 제일 먼저 복음을 전하신 사람은 저주받았던 병자들과 이방인들이었습니다(마 8:3, 10, 16).
성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분부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으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결국 사도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주변으로 세계로 향해 달려간 이방의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기독교의 복음 선교도 “주변 지향적이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 선교는 십자군적 정복의 죄악을 저지른 때도 없지 않았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패트릭의 아이랜드 선교, 보니페이스의 독일 선교, 성 프랜시스의 이방인 선교, 브레이너드의 인디언 선교, 벨츠와 진젠도르프의 남미선교, 토마스와 아펜셀라와 언더우드와 마펫 등의 한국 선교는 모두 “주변 지향적”이고 봉사적 사랑의 선교였습니다.
벨츠의 이방인 선교를 비난하는 독일 보수주의 신학자들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무디 이성봉 목사는 민족 복음화를 강조하는 신현균 목사에게 민족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충고하곤 했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복음의 영성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영성은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 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복음적인 삶을 가장 모범적으로 산 사람들 중의 대표적인 사람이 성 프랜시스와 한경직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이라고 생각합니다.
1. 성 프랜시스(프란치스코)의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
성 프랜시스의 복음적인 삶의 면모를 아주 간단하게 줄여서 소개하려 합니다. 첫째로 성 프랜시스는 버림과 청빈과 “약함”의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버릴 때 사람은 약해집니다. 둘째로 성 프랜시스는 모두를 사랑하는 사랑과 “착함”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가난하고 병들고 불행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동정하고 품고 사랑하는 ”주변성”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가난과 고통까지도 사랑하는 “주변성”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우주와 모든 것을 사랑했는데 고통과 죽음까지도 사랑했습니다. 프랜시스는 재산도 평안한 삶도 세상의 향락도 아버지로부터의 상속권도 모두 버린 채 한 평생 가난과 청빈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두 벌 옷을 가지지 않고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걸어 다니며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자기는 가난이라는 이름의 여인과 결혼했다고 선언하며 절대 청빈과 완전 무소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심지어 지식과 학문도 버렸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평화의 도구로 사는 삶은 버림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둘째로 성 프랜시스는 모두를 사랑하는 “착함”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가난하고 병들고 불행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동정하고 품고 사랑하며 “착하게” 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마땅히 섬겨야 할 주인이었고 특히 문둥병자나 버림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는 문둥병자 수용소를 찾아가 그들의 손에 일일이 입을 맞추며 그들을 품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산적 같은 흉악한 자들에게도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이단들에게도 미쳤고 사나운 이리에게도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에게도 아니 해와 달과 별들에게도 미쳤습니다.
굽비오라는 마을에 사람과 가축을 해치는 사나운 늑대 한 마리가 밤 마다 내려와서 사람들을 두려움에 쌓이게 하곤 했습니다. 성 프랜시스가 이 늑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맨 먼저 느낀 것은 그 늑대에 대한 동정심이었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무릇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가운데 선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을 해치고 있는 그 늑대가 그처럼 무섭게 되었다면 거기에는 필경 어떤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무서워하고 있는 저 늑대를 통하여 사랑은 어떤 악이나 두려움도 없애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여러분들 눈 앞에서 실제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늑대가 있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늑대가 살고 있는 바위틈 가까이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게 하고 성 프랜시스는 마을 청년 한 사람과 함께 늑대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바로 그때 눈에 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는 늑대 한 마리가 이빨을 벌리고 당장 덤벼들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죽은 꼴이 되어서 뒤로 자빠졌습니다. 그러나 성 프랜시스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며 늑대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늑대는 성 프랜시스의 행동이 의외라는 듯 약간 주춤했지만 계속해서 으르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성 프랜시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형제 늑대여!” 너무나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늑대의 으르렁 소리가 그쳤습니다. “형제 늑대여, 나는 우리의 형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이처럼 찾아온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네가 마을로 내려와서 다정하게 살았으면 하고 있다. 자, 네 생각은 어떠냐? 나하고 약속하지 않겠니?”
그런 다음 늑대를 향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늑대는 저쪽 마을 사람들을 한 번 건너다본 후 천천히 다가와 성 프랜시스가 내민 손에 자기 앞발 하나를 들어 올렸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눈길과 늑대의 눈길이 마주쳤고 성 프랜시스와 늑대는 서로 무슨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주고받은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드디어 성 프랜시스는 몸을 구푸리고 늑대의 목을 껴안았습니다. 그러자 늑대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성 프랜시스의 깊고 넓은 영성과 사랑에 감복하여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늑대는 곧 성 프랜시스를 따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굽비오 마을로 내려와서 2년 동안이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친하게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성 프랜시스의 사랑은 모든 사람들은 물론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미쳤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짐승들과 새들을 향해 형제 자매라고 불렀고 해와 달과 별들까지도 형제와 자매라고 부르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설교했습니다.
성 프랜시스가 사람들은 물론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며 친밀한 교제를 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나친 신비주의가 아니었고 사실은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 것뿐이었습니다.
시편 148편은 우주의 모든 피조물을 향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찌어다.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광풍이며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이여 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시 148:3-13). 성 프랜시스는 사람과 피조물 모두를 사랑하는 동정과 사랑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가난과 고통 자체가 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우주와 모든 것을 사랑했는데 고통과 죽음까지도 사랑했습니다. “나는 가난이란 이름의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비애는 나의 자매이고 고통과 죽음도 나의 자매입니다.”
그는 가난과 고통을 사랑하는데 그치지 않았고 가난과 고통 자체가 되었습니다. 가난하게 살았고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주님을 너무 사랑했고 주님의 삶을 문자 그대로 닮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난을 옷으로 삼고 고난을 양식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물론 그가 고행 자체를 예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궁극적인 동기와 목적이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은 고행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성 프랜시스가 가난과 고통을 사랑한 근본적인 이유는 주님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삶은 주님 사랑에 깊이 빠진 삶이었고 주님과의 깊은 기도에 빠진 삶이었습니다. 그의 말년은 주님과의 깊은 기도와 교제에 빠진 삶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2년 전 라베르나 산에 들어가 깊은 기도에 빠졌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도대체 당신은 누구시오며 작은 벌레 같은 저는 무엇입니까? 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제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허락해 주소서. 한 가지는 할 수 있다면 당신께서 수난에서 당하셨던 그 고통을 제 영혼과 육체도 체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또 한 가지는 그 어떤 고통도 사랑으로 감내할 수 있는 극치의 사랑을 제게도 넘치게 주옵소서.”
바로 그때였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몸에는 마치 불덩어리를 댄 것 같은 고통이 일어나 그는 그만 까무러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두 시간 이상 정신을 잃고 쓸어져 있다가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두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일어났습니다. 상처가 생겼고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그리스도와 꼭 같은 상처를 그의 손발과 옆구리에 가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이후 죽기까지 극심한 몸과 영혼의 고통을 지니며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었습니다. 그의 눈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몸과 영혼의 고통은 극심해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무한한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는 1226년 10월 3일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주님 품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주님이 벌거벗은 몸으로 죽으셨던 것처럼 자기도 벌거벗은 몸으로 죽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형제들이 그에게서 옷들을 모두 벗겨내고 그를 맨 땅 위에 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애원합니다. 당신은 나의 피난처, 나의 모든 것, 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소서. 나에게 입혀주신 당신의 성총으로 이 몸이 의인들에게 둘러 싸이리이다.”
그리고 둘러 서 있는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 서 있는 형제들과 여기 없는 형제들의 죄들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하고서 눈을 감았습니다. “오, 나의 자매 죽음이여.”
그러면 이제 성 프랜시스의 영향을 깊이 받아서 누리면서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을 몸에 지니고 성자 예수님 닮은 귀중하고 보배로운 삶을 사신 분들 중에서 대표적인 분들이 한경직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한경직 목사님의 삶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 한경직 목사님의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
첫째로 한경직 목사님은 “약함”의 사람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젊은 시절부터 한 평생 수 많은 고난과 아픔과 슬픔을 겪으면서 인간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절감한 분이었고 또 자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체험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워하고 절망했으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약함이 오히려 그를 진정한 목회자로 만든 비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17세 되던 1919년 평양 영성소학교 교사로 봉직하고 있던 때 일본 고등계 형사들의 혹독한 고문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문당한 후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무력함을 비관하기도 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27세 되던 1929년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 폐결핵 3기라는 진단을 받고 그는 또 한번 인간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절감했습니다.
진학은 물론 인생 자체를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도 건강도 아무 것도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는 절망감을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사형 선고나 다이 없었지요. 이렇게 몸이 약해지니 공부할 의욕도 사라지고 말았어요. 처음엔 낙심 천만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신의주 제이교회와 서울 영락교회의 목회 시절에도 약함을 드러냈고 6.25 전쟁 중에도 약함을 드러냈고 군사독재 시절에도 약함을 드러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2년 동안 노환으로 많은 고난과 아픔과 슬픔과 약함을 체험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어느 대담에서 괴로운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일생을 연약한 몸으로 살아온 것이 제일 괴로움이었지요.” 라고 대답한 일이 있습니다.
마지막 2년 동안 두 다리를 수술하는 고통도 겪었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당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6개월 동안은 가래가 너무 끓어서 목에 구멍을 뚫고 지내는 극심한 괴로움도 겪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저의 손을 붙잡고 “늙는 것이 재미없어!”라고 그의 노약의 서글픈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69년 8월 3일에 행한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는 능력”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수 많은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약함을 통해서 주어지는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한 평생 자기 자신의 약함과 민족의 약함을 절감한 사람인 동시에 그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하고 간증한 사람이었습니다.
1972년 4월 23일에 행한 “약할 때에 강하니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첫째. 인간이 약할 때는 흔히 겸손하여집니다. 건강하던 이가 중병에 걸려 약해지면 겸손하여 집니다. 교만은 만죄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둘째, 인간이 약하여 질 때에 그 생각이 깊어집니다. 인생의 깊은 문제를 탐구하게 됩니다. 셋째, 우리가 약할 때에 기도를 더하게 됩니다. 벌써 오래 전에 내가 미국 뉴멕시코주 알바컬키라는 도시에 있던 요양원에 입원하여 있을 때, 제가 폐가 약하여 약 2년간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에 병석에 고요히 누워서 ‘약할 때에 강하니라’는 성구를 묵상하는 가운데 기도를 많이 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둘째로 한경직 목사님은 “착함”의 사람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말이나 지식으로 설교하고 목회하신 분이 아니라 착한 삶으로 설교하고 목회하신 분이셨습니다.
조향록 목사는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말이 설교하는 설교가 아니고 겸손과 기도의 인격이 설교하는 설교이기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분석했습니다.
영락교회의 집사인 이우근 부장판사도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는 삶으로 설교하는 설교라고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사자후 같은 명 설교도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감동적인 웅변도 할 줄 모르던 그는 그저 바보처럼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손과 발로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설교하고 선포했을 뿐입니다.”
그는 바보처럼 좋은 옷 대신에 소매가 닳아 빠진 옷을 입었고 멋진 차 대신에 버스를 타거나 남의 차를 빌려 타곤 했습니다. 가장 안락한 아파트에 살 수 있었는데도, 바보같이 그것을 마다하고, 산꼭대기 20평짜리 교회 사택에 들어갔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빌리 그레함 목사를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은 그의 말이나 지식이나 체험이 아니었고 그의 착한 삶이었습니다. 시인 고훈 목사는 한경직 목사님을 기리며 “가난한 목자, 사랑의 목자, 작은 예수”라고 목이 메어 불렀습니다.
김준곤 목사는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분에게서 발견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따사로운 햇볕 같은 온화하고 인자한 인간성입니다.” 신현균 목사는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의 마음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는 "한경직 목사님은 신학적인 이해와 폭이 대단히 넓으셨고 사랑과 포용력이 탁월하신 분이셨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손봉호 교수는 “한경직 목사처럼 청렴하고 철저하게 절제하는 성화된 삶을 산 사람은 전 세계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 이라고 평했습니다.
셋째로 한경직 목사님은 “주변성”의 사람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처음부터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시는 주변성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32년 귀국 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북한의 신의주를 첫 목회지로 선택했고 1933년 신의주 제2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교회의 3대 목표를 전도, 교육, 봉사로 정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는 1936년경 “고아원”을 설립하여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1939년에는 고아들과 노인들이 함께 기거할 수 있는 “보린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영락교회에서 목회하시면서는 가난하고 병든 수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돕는 온갖 종류의 자선기관을 만들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관심과 사랑은 민족과 나라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과 북한과 아프리카를 포함한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미쳤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평생 한국 나라와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봉사한 분이셨지만 동시에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세계를 품고 모두를 사랑하며 봉사한 포용적인 분이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57년 3월 3일에 행한 “성서적 애국심”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성서적 애국심이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우선적으로 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 가지 우리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성서적 애국심은 혹 우리 사회에서 가끔 듣는 민족지상주의나 국가지상주의는 절대로 아닙니다. 성서가 가르치는 애국심은 민족을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국가가 귀중하지마는 국가를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민족과 국가가 아무리 귀중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상입니다. 애국심이 잘못되어서 변태적으로 발전되면 독재주의가 생기는 것이고 배타주의가 생기는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58년 4월 27일에 행한 “우주 시대와 신앙생활”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우주시대의 신앙생활은 민족이나 국가를 초월한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설교를 했습니다.
“첫째로, 우주 시대의 종교는 먼저 민족이나 국경을 초월한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이와 같은 종교는 전 인류를 포섭할 수 있는 사랑의 종교,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의 종교이어야 될 것입니다. 셋째로, 이와 같은 종교는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속죄, 구령의 종교이어야 될 것입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못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너무 높은 수준의 복음적인 삶을 살았고 너무 높은 수준의 복음적인 영성을 지녔는데 우리는 너무 낮은 수준의 세속적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너무나 주님 닮은 삶을 살았는데 우리는 너무나 주님 닮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경직 목사님의 삶을 살피고 나서 처절한 고뇌와 절망적인 부끄러움을 느꼈고, 성 프랜시스의 글을 읽고 나서 무한한 충격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마하트라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백년마다 한 번씩만 성 프랜시스와 같은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난다면 인류의 구원은 보장되고도 남을 것이다.”
만약 제가 어거스틴을 공부한 만큼 성 프랜시스를 공부하고 그의 글을 오래 전에 읽었다면 저의 삶의 모습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지금도 너무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해 봅니다.
저도 성 프랜시스처럼 한경직 목사님처럼 주님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며 “약해” 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도 주님 사랑 때문에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며 “착해” 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도 주님 사랑 때문에 가난과 고통을 짊어지고 가난과 고통이 되면서 “주변성”을 지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성 프랜시스에게 임했던 그리고 한경직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의 백분의 일이라도 임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간절히 소원하며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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