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 Elmer Gantry (1960) 영화감상
(福音主義, 독일어: evangelikalismus, 영어: evangelicalism)는 개신교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핵심 사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현재도 모든 개신교 교단은 복음주의를 지향한다.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도 기독교의 핵심용어이다. 그러나 서방교회의 개혁을 주장한 16세기 종교개혁의 찬성파인 전통적인 종교개혁 세력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활용되어, 16세기 종교개혁 운동가들과 참여 교회들은 이 용어를 수용하였다. 개신교는 복음주의 교회로, 개신교 신자는 복음주의자로 종교개혁 시기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복음주의는 초기 종교개혁 시절부터 현재까지 개신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개신교 내부의 진보, 중도, 보수 및 극좌 극우 성향 교단 모두 복음주의를 주장하므로 그 의미 폭이 넓은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보편교회를 따르는 기독교 교단은 모두 복음, 복음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므로 복음을 표현한다고 해서 반드시 개신교회만 의미하지 않는다. 동방정교회도 천주교회도 스스로 복음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용어
복음주의는 16세기부터 개신교회의 사상으로 정의되었고, 복음주의는 서방기독교의 새로운 전통으로 형성되어 개신교 신학의 뿌리가 되는 사상이다. 따라서 개신교회 교파는 모두 복음, 복음주의를 강조하는 교파들이다. 그러나 현재는 사용하는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되었으며 사용과 의미 확인에 주의해야 하는 단어가 되었다.
18세기 들어서면서, 개신교 내부에서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 근대 신학이 등장하였다. 개신교 신학의 주류 신학적 흐름으로 근대 신학과 이를 대적한 반동적 보수 신학 계열에서는 자신들만이 복음주의 신학이라고 주장하며, 신학 계열의 구분을 위해 18세기 이전과 다른 용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세기부터 '광의적(廣義的) 복음주의'(전통적 복음주의, 근대 신학과 현대 신학 계열을 포함)와 '협의적(狹義的) 복음주의'(반동적 복음주의로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로 구분됨, 근대 신학에 반동적인 보수신학 계열)가 구분되었다. 16세기 등장한 '전통적 복음주의'는 광의적 복음주의 의미로 모든 개신교 전체의 신학사상을 지칭한다. 19세기 이후 영미 지역에서 흔히 사용되는 반동적 '복음주의'는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의 협의적 복음주의 로 영어권의 보수적 신학사상을 지칭한다.
보수적 신학 계열에서 자신을 '복음주의'로 칭하고, 전통적 복음주의인 진보 및 온건 신학 계열을 '자유주의'[1]로 칭하는 과정에서 보수적 신학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이러한 보수적 신학을 흔히 '근본주의'나 '신복음주의'라고 부르며 포괄하는 용어로는 반동적 복음주의라고 한다.
21세기 현재, '복음주의' 단어는 광의적 의미인지 협의적 의미인지 구분해야 하는 용어가 되었다. 이러한 신학 흐름은 20세기 들어서면서 전통적 복음주의인 광의적 복음주의를 따르는 에큐메니칼 지지자들과 개신교 보수주의인 협의적 복음주의(신복음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를 따르는 로잔 언약 지지자들로 구분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개요
종교개혁
16세기, 서유럽의 유일한 교회였던 서방교회에서 10세기 교회내 창부정치부터 메디치 가문과 타가문의 교회 치리권 쟁탈, 이탈리아 통일 관련된 정치 야합, 민족별 차별적인 종교세금, 교권 보호 장치로서 교리 주장 등 누적된 교회내 적폐를 개혁하고자, 종교개혁, 즉 서방교회 개혁 운동이 발생하였다. 이 문제들 중 서방교회의 권력 제도가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서방교회의 종교적 개혁의 '찬성파'가 성경을 바탕으로 하는 '복음중심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이었고, 종교개혁 '반대파'는 '교황중심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이었다.
결국 서방교회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민족적 배경으로 인해 개혁 찬성파인 '개신교회'와 개혁 반대파인 '천주교회'로 나뉘게 되었다.[2] 서방교회의 종교개혁 찬성파는 자신들을 표현하는 단어로 '복음주의자'를 더 선호했고, 이 용어는 개신교 전체의 사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이런 의미는 아직도 영국과 미국을 제외한 유럽과 그 문화권에서는 강하게 사용된다. 독일 개신교 연합의 명칭은 독일 복음주의 교회(독일어: Evangelische Kirche in Deutchland 에방겔리셰 키르헤 인 도이칠란트[*], EKD)이다. 프랑스에서도 복음주의 교회(프랑스어: Églises évangéliques 에글리즈 에방젤리크[*])는 개신교를 일컫는다. 전통적으로 개신교회를 정의하는 용어로 복음주의를 사용하며, 개신교 내부의 모든 교단은 '복음주의'임을 밝힌다.
근대 개신교 신학과 반동
19세기에 오면서 유럽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 개신교 신학이 근대주의를 지향하며 발전하였고, 유럽 신학을 수용해야 했던 영국, 미국의 신학계에서 유럽 근대주의와 다른 보수적 신학 운동이 나타났다. 개신교 신학에서 20세기 초 신학적 대립이 나타났다. 유럽의 진보적, 온건적 신학계열 사상과 이를 수용한 영미의 온건적 기독교 개신교 사상의 신학 계열과 이를 거부한 영미의 보수적 개신교 신학 계열이 대두되었다. 이 둘은 개신교회의 정체성인 복음주의를 강조하였으나, 영미의 보수적 성서문자주의적 기독교 개신교 개열이 진보 온건 신학적 사상에 대립하며 복음주의를 강조하며 자칭하였다. 이는 영미 보수주의 신학 자신만이 정통 개신교 신학이며, 다른 온건적 입장이나 진보적 입장은 기독교 개신교가 아니라는 의미를 반영하였다. 이 보수적 신학 계열의 복음주의 용어를 '전통 복음주의'와 구별하여 '반동적 복음주의'라고 구분한다.
전통적 복음주의는 여전히 개신교 전체의 신학사상을 의미하나, 19세기와 20세기 초 영어권의 보수적 신학인 '반동적 복음주의'의 등장으로 복음주의 용어는 다중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전통적 복음주의는 "광의적 복음주의"로 여전히 유럽과 동남아시아, 인도, 아프리카, 미주 지역에서 기독교 개신교회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영어권 지역에서는 "협의적 복음주의", 즉 보수적 복음주의를 의미한다. 영미의 반동적 복음주의자들은 20세기 들어 점차 분화하여 보수와 극보수적 신학 견지가 나타났고, 보수 사상을 '신복음주의'와 극보수적 사상을 '근본주의'로 지칭하여 사용된다. 사회와 진보, 온건적 교단과의 교류를 지향하는 보수적인 이들은 21세기 현재 '신복음주의자'로 칭하며, 사회와 다른 교단과의 단절을 지향하는 극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자'라고 칭한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진보나 온건이나, 보수나 극보수 개신교회나 자신들을 단순히 '복음주의'자라고 자칭하므로, 그 의미가 영어권에서 구분하기 어려워졌고, 영어권에서는 기독교계의 특정한 사상 경향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 정확한 정의에 대해서는 신학계에서도 논문마다 정의를 달리하여 중론을 찾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원인으로는 복음주의의 영어 단어에 해당하는 'evangelical' 또는 비슷한 라틴어 파생 단어들이 서구에서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로 쓰였고(아래 용어 사용 참조), 복음이라는 용어가 사상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어 복음주의의 의미도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18세기 이후 인간의 감성과 이성을 강조하는 유럽의 복음주의 교회 즉 개신교 내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개신교 뿐만 아니라 전체 기독교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개신교의 자유주의 신학을 복음적이지 않으므로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반동 세력들이 등장하면서 '안티 복음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이 반동세력이 자신을 진정한 개신교회 정신인 복음주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였고, 자신들은 복음주의자라고 자칭하였다. 이들을 초기에는 '근본주의자'들로 구분하였다.
개신교회의 정통 복음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반동적 복음주의자들을 현재는 근본주의자와 신복음주의자라고 학술적으로 구별한다. 자유주의 신학 반대 세력인 반동적 복음주의자들 중에서 급진주의자는 자유주의 신학 영항하의 교회들과 분리를 주장하였고, 이러한 '분리적 보수주의자'의 등장 이후 분리를 반대하는 '온건적 보수주의자'들과 나뉘었다. 반동적 복음주의에서 분리적 보수주의자인 '급진적 복음주의자'(급진적 보수주의 신학 계열)들은 흔히 근본주의자로 불리며, 온건적 보수주의자 쪽을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라고 구별하여 부르곤 했다. 현재는 보수적인 반동적 복음주의에서 급진적인 분리적 보수주의 영향에 있는 쪽을 '근본주의', 그리고 온건적 보수주의 영향에 있는 쪽을 '신복음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아직도, 특히 영어권 미주 지역과 그 영향을 받은 한국 기독교 매체에서,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를 구분하지 않고 복음주의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어서 용어 사용 및 의미 파악에 주의를 요한다.
영어권에서의 용어 -> 영화 Elmer Gantry
영어로는 복음주의를 '에반젤리컬리즘'(evangelicalism)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가 서구에서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의미로 쓰여 왔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역사적 구별 없이 무분별하게 '복음주의'로 번역되어 평신도나 소위 복음주의 학원선교단체라고 주장하는 대학생 선교단체 사이에서는 복음주의라는 말이 모호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뿐만 아니라 영미권 평신도 사이에서도 '복음주의(evangelical)'라는 말이 대부분 사도신조, 니케아 신조, 칼케돈 신조 등의 신조(Creed, 신앙고백)들을 통해 고백되고 복음을 중심으로 하는 개신교의 전통적인 노선을 따르는 '정통주의'(Orthodoxy) 개신교회 정도의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내세우는 데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그 의미 파악에 주의를 요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신앙적 색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도 복음주의자이며 과거 유명한 사람들 또한 복음주의자였다는 식의 이름 붙이기가 진행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유럽 대륙에서는 여전히 광의적인 복음주의 의미로 사용된다. 16세기 서방교회를 개혁하려는 신학운동인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자들을, 특히 루터교회 신자들을 복음주의적 신자들, 독일어로는 에방겔리셰(독일어: Evangelische)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여, 오늘날엔 개신교회 전체를 두루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3][4]
- 미국에서는 18세기 대각성 운동 이후 그 명맥을 이어오는 보수주의적 기독교 운동을 "evangelicalism"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자유주의 신학과 대립한 소위 기독교 온건 보수파 내지 기독교 근본주의를 일컫기도 한다. 전통적인 복음주의와 구별하기 위해서 신복음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지금도 이상과 같은 역사적 영향으로 인해 영어권에서는 복음주의라는 말은 모호하게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복음주의 정통교회(Evangelical Orthodox Church) 교파는 자신들이 18세기 미국 개신교 부흥운동인 대각성 운동의 정신을 이었다는 뜻으로 'Evangelical'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러나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의 복음주의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신앙전통에 따라, 단순히 개신교회라는 의미로 쓴다. 그러므로 서구에서 쓰이는 복음주의(evangelical)이라는 말을 무조건 복음주의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정확한 의미 사용을 위해 종교개혁 전통은 복음주의로, 그 외의 기독교 운동에 사용되었을 때는 근본주의나 신복음주의 등으로 구분하여 번역해야 한다. 개신교의 복음주의 정확한 범주에 대해서는 논란중이며, 종파에 따라 신학적 입장이 각기 달라 전통적 복음주의 기준을 명확화하기 위한 과정중에 있다고 하겠다.
근대의 복음주의 운동
전통적 복음주의 부흥 운동과 신학운동의 뿌리는 18세기 미국에서의 대각성 운동과 영국에서의 감리교 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등을 강조했다는 특징이 있다.
존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
18세기 영국에서는 감리교 창시자이자 잉글랜드 성공회 사제인 존 웨슬리[5](Reverend John Wesley)가 민중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는 감리교 운동을 하였는데, 감리교 운동(Methodist Movement)은 영국에 큰 사회적 영향을 미쳤다. 당시 영국사회에서는 자본가들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아동노동, 노예제도등의 많은 사회구조악이 있었는데, 존 웨슬리는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를 강조함으로써 영국사회와 교회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도 신앙을 사회적으로 이해한 존 웨슬리의 신학은 공교회(보편교회) 전통에 따른 예배와 기도, 성서묵상, 성만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독교의 정통적 복음주의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었으며, 공교회적 사상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렇듯 근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예배와 성례전에 기반을 둔 영성과 신학을 근거로 하여 활발한 사회참여를 함으로써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나, 사회복음주의 등의 활동을 배경으로 하는 신학적 입장도 함께 지녔다.
근대 성공회 복음주의 운동[원본 편집]
사회개혁[원본 편집]
존 벤 신부(Rev.John Venn), 국회의원이자 노예해방운동을 지도한 윌리엄 윌버포스, 노동자 자녀들을 위해서 주일학교를 설립한 로버트 레이크스, 개신교에도 순회설교자이며 감리교 운동의 지도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조지 휘트필드 신부 등의 성공회 신자들과 사제들은 활발한 사회참여를 하였다. 이 중에서 윌리엄 윌버포스와 로버트 레이크스는 존 벤 신부의 영향을 받았다.[6] 이들은 노예해방운동, 동물을 오락에 사용하는(예를 들면 황소를 사냥개가 괴롭혀서 죽이는 오락)동물학대, 주일학교 설립을 통한 노동자 계급 어린이들의 인권운동, 교도소 환경개선을 통한 재소자 인권향상등의 사회개혁을 하여 성인들의 당(영어: Party of Saints)이라고 불릴만큼 영국 사회의 윤리를 새롭게 하였다.[7] 이러한 성공회 신자들의 사회참여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믿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으로 근대 성공회 교인들은 사회개혁운동으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올 그 날에 대비하고자 하였다.[8] 하지만 근대 복음주의적 성공회 신자들의 사회참여에 대해 사회의 구조적 개혁이 아닌 부분적 개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즉, 보수적인 사회개혁이었다는 비판도 있다. 이를테면 노예해방운동으로 유명한 성공회 복음주의자(Anglican-Evangelicals)인 윌리엄 윌버포스와 그의 동료들중 하나였던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민중들이 프랑스 혁명의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에 관심을 갖는 것을 걱정하였다. 윌버포스와 버크는 민중들을 어리석고 천박한 그래서 영도자의 지도로 계몽되어야 할 자들로 여기는 보수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기에, 민중들이 평등사상에 근거하여 참정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를 위험하게 여겼던 것이다.[9]
노동자 연대[원본 편집]
성공회 주교인 존 찰스 라일 주교는 노동자들과 연대를 하였는데, 리버풀 교구에서 주교로서 인생의 마지막 목회를 할 때에 노동자를 가난한 이웃을 뜻하는 말로 이해하여 존중했으며, 노동자들과 같이 감사성찬례를 집전하였다. 라일 주교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고전학을 전공한 지식인이었지만, 설교를 할 때에 쓴 문장을 알아듣기 쉬운 말로 했기 때문에(실제 복있는 사람에서 펴낸 《J.C 라일》의 부록1에 수록된 설교문은 읽기가 매우 쉽게 서술을 한 문장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노동자가 "주교님이 하시는 말씀을 알아듣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1881년 성 너새니얼 교회) 그래서 노동자들도 라일 주교를 존중하여, 전도구에서 가까운 탄광에서 라일 주교가 감사성찬례를 집전하러 오신 날에 환대를 하였다. 라일 주교는 노동자들의 복지에도 관심이 많아서, 웨슬리 감리교 협회에서 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숙소를 운영할 때에 협조를 했다.[10]
대각성 운동[원본 편집]
미국의 대각성 운동에는 감리교 감독목사인 프란시스 애즈버리와 장로교 목사인 조나단 에드워즈가 주요 인물로 활동했다.
구세군 운동,사회복음주의[원본 편집]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와 그의 아내 캐서린 부스는 구세군을 창시하여 개인과 사회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사회봉사로 실천하였다. 그리스도 신앙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가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기독교인의 사회참여)을 모두 강조하는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윤리성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실천을 주장[11]하는 사회복음주의(Social Gospel)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사회복음주의자이자 미국의 조합교회 목사인 찰스 셸던은 레이몬드라는 미국 철도도시를 배경으로 한 기독교 소설인《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에서 미국 기독교인들의 이기적인 신앙을 비판하였다.
현대 반동적 복음주의의 정립[원본 편집]
근대적 개신교 신학의 발전과 주장에 대한 반동적 반응으로 등장한 개신교 신학적 흐름이다. 전통적 개신교 신학 흐름에 계몽주의 사상을 수용한 것에 대해 반발하였다. 특히 계몽주의를 중요시한 18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을 적대시까지 하였고, 계몽주의를 수용한 다른 신학적 사상도 자유주의라고 폄훼하였다[12].
근대 서구교회에서 18세기에 계몽주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 내에서 신학적 흐름의 일부로 등장하자, 이에 대한 반동 세력이 뚜렷이 정립되기 시작했고, 비로소 '반동적 복음주의'(협의적 복음주의)라는 조류가 정립되었다. 근대의 복음주의는 위에서 서술한 18세기 대각성 운동 내지 감리교 운동의 정신을 다시 살리고 지키려는 경향을 보이는 부흥 운동이였던 반면, 영어권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거부한 나온 세력들은 소위 '반동적 복음주의', 즉 기독교 근본주의로 등장하였다. 기존 개신교와 분리는 지나친 것이라 생각하며 근본주의의 폐쇄성과 주관적인 잣대와 판단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신복음주의자들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신복음주의'는 신복음주의자들이 근본주의자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생긴 용어로 주로 학술적으로 사용하고 일상적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반동적 복음주의 구분[원본 편집]
반동적 복음주의는 크게 급진적이고 분리주의인 기독교 '근본주의'와 온건적인 '신복음주의'로 나뉜다.
근본주의[원본 편집]'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영어권 지역에 1850년대 유럽에서 들어오기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에 반발하여 기독교의 보수적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운동이 특히 미국 개신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근대적 성서 신학에서는 전통적 종교개혁 사상에 따라 성서의 많은 부분 특히 창조와 기적에 관한 기록을 기록 당시 기록자와 독자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역사적 성경해석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반하여 근본주의 신학에서는 성서는 그 글자까지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기록되었다는 극단적 알레고리 성경해석과 극단적 성경무오설인 축자영감설을 주장하였다. 즉, 성서는 종교적 가치를 넘어 과학이나 공학에 적용하도록 정확하고 오류가 없으며, 역사와 과학적 사실을 담고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 실례로 한국교회에는 구약성서의 창조이야기를 과학적 사실로 해석하여, 진화와 같은 과학적 사실들을 부정하고 의사과학을 주장하는 창조과학회라는 의사과학 단체가 있기도 하다. 근대적 성경신학에서 예수의 가르침과 부활을 인류가 따를 구원이며, 동시에 도덕적인 기준으로 접근하였으나, 근본주의자들은 예수는 하나님이며, 인류를 위해 희생하고, 육체적으로 부활을 초자연적 구원으로 강조하였다. 근본주의자들은 축자영감설에 뿌리를 둔 성서 이해에 따라,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자신들을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bible believing Christian)이라고 표현한다. 근본주의라는 말은 1915년 근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신앙변증서인 '근본'을 출판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13]
신복음주의[원본 편집]'신복음주의'는 신복음주의는 현재 복음주의 운동으로 불리는 기독교내 개신교 보수주의 신학운동이며,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는 기독교 근본주의를 논박[14]한 복음주의 신학자 칼 헨리의 저서 《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1947년 작)의 영향으로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5] 신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새로운 복음주의(신복음주의,Neo-Evangelical)이라고 불렀으며, 1942년 NAE(Neo-Evangelical Association,전미 복음주의자 협의회)를 결성하여 단결하였다. 즉, 신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을 근본주의자들과 구별짓기 위해 한시적으로 "신복음주의자"라고 했으나, 1970년대 후반부터 이들을 편의상 '복음주의자'라 자칭한다. 신복음주의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기독교 정신에 사회 참여를 강조하고[16][17]
- 믿음으로 인한 구원과 성서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강조하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라는 신념 아래[18]
- 선교를 위해서 성서의 가르침이 다양한 모습을 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 또한 다른 종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온건한 종교신학을 취하며,[19] 믿음을 통한 구원을 인정한다면 복음주의자가 로마 가톨릭이나 소위 진보적인 그리스도인과도 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신복음주의의 중요한 사건으로는 전미 복음주의자 협의회(NAE)설립(1942년)과 1974년로잔 회의개최가 꼽힌다. 로잔회의는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1차 세계 복음화 대회로, 대회 당시 성공회 신부인 존 스토트신부가 초고 위원장으로 참여한 로잔 언약이 작성되었다. 로잔 언약은 복음주의자들의 고백 또는 선언으로써 받아들여지는 문서로서, 성서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 빈곤퇴치등의 사회참여, 복음화 운동을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1950년대 미국 기독교계에서는 신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대학생선교회(CCC)등의 학원선교단체 설립과 문서선교가 시작되었다.
복음주의의 사회적 정의
영국의 사학자 데이빗 베빙턴(David Bebbington)이 제안한 복음주의의 네 가지 특색은 다음과 같다. 이는 '베빙턴의 사각형'[20]이라고 알려져 있다.
- 회심주의(conversionism) - 성령에 의한 회심 ("중생", "거듭남", "새로남" 또는 "구원") 경험을 강조한다.
- 성서주의(biblicism) - 성경 또는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유일한(only) 또는 일차적(primary) 권위로 본다.
- 행동주의(activism) - 문서선교나 해외선교등의 선교 활동을 강조한다.
- 십자가주의(crucicentrism) -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을 구원의 유일한 근거로 본다.
영국의 복음주의 선교학자 패트릭 존스턴도 복음주의에 대해서 비슷한 정의를 하고 있다.
-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 성령에 의한 개인적인 믿음과 회심으로 거듭난다.
- 믿음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이다.
- 성서적인 설교와 전도에 헌신하여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의 믿음으로 이끈다.[21]
영국 잉글랜드 성공회 사제인 존 스토트(Rev. John Stott)의 설교를 보면 복음주의의 특징이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22]
- 복음주의 교회는 폭력, 독재, 가난 등 세계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을 잇는 유일한 중재자이시다.(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부정)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대속적인 죽음이다.
- 일부 복음주의 교회들은 학문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반(反)지성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영국 잉글랜드 성공회 사제인 <a style="c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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