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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빌론이라는 도시는 내가 1988년애 아라크에서 보았던 유적이다. 이때 쪼그만 바벨론 박물관에 있던 하무라비 법전 -타블로이드 판 을 얻었으며, 사자상에 조각된 사자의 밑에 깔린 조각은 여자였다.
- 바벨론을 관통하는 강은 유프라테스 강의 하류로서 황토물이었으며, 매우 차가웠다. 이는 북부에서부트 흘러온 설산의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리기 떄문이라고 한다. 한국인 몇명이 더워서 물에 들어갔다가 익사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TVMfFSeztaI
- https://www.youtube.com/watch?v=ZQArzRRPunM
- -dhlee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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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자체가 일부만 발굴된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신바빌로니아 이전의 바빌론 유물은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외세의 침입으로 파괴된 이유도 있지만 지하수 수면이 수 세기에 걸쳐 크게 상승했기 때문에 옛 시대일수록 발견이 어렵다. 게다가 신바빌로니아 때는 도시에서 중요한 재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초창기 바빌론의 기록을 많이 파괴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바빌로니아 이전의 유물은 현재의 일반적인 고고학적 방법으로는 발굴할 수가 없다. 기원전 18세기 고바빌로니아 시기의 유물인 함무라비 법전은 후대에 엘람에 의해 약탈되었을 때부터 바빌론이 아닌 수사에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고고학 팀에 의해 발견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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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유적의 모습. 이슈타르 문을 지나 이어지는 성벽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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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주요부인 네부카드네자르 궁전과 왼쪽 상단의 이슈타르 문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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𒆍𒀭𒊏𒆠(Bābilim, Bāb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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𒆍𒀭𒊏𒆠(ká.dig̃ir.r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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ܒܒܠ(Bāḇ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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בָּבֶל(Bá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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𐎲𐎠𐎲𐎡𐎽𐎢𐏁(Bābiru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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Βαβυλών(Babylṓ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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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lon/Babylo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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بَابِلُ(bābi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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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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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두 강이 가까워지는 곳에 위치한 이라크의 고대 유적. 현대의 지리로는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 남쪽의 엘힐라 부근에 자리한다. 고-중-신 바빌로니아의 수도로, 기원전 18세기~기원전 4세기까지 약 1500년간 세계 최대의 도시로 번영하였다. 인류 문명 초창기에 관개 농업을 시행한 도시들 중의 하나이고, 현대의 시계에도 사용되는 60분 체계를 확립했으며, 잉여 자원을 통해 교역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도시였다. 제국의 수도일 때는 물론, 수도가 아닐 때에도 메소포타미아 최대의 도시였고, 로마에 앞선 최초의 국제 도시였다.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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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에 발굴된 바빌론의 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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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00년대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의 여러 도시들이 한창 이전투구를 벌이던 시절, 셈족의 일파인 아모리인은 기원전 1894년경 바빌론을 세우고(바빌론 제1왕조) 이윽고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시켰다. 이후 도시국가 바빌론이 확장된 영토 국가 바빌로니아 제1제국이 되어 활발한 정복 활동을 하여, 마침내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석권하는 대국이 되었다. 이후 함무라비 대왕 등 명군들에 의해 번영이 계속되면서 바빌론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의 수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다 기원전 1595년 히타이트의 침략으로 고바빌로니아, 즉 바빌론 제1왕조가 멸망한 뒤 바빌론은 약탈되었으나, 아시리아 등 여러 제국들의 패권이 이어진 뒤에도 여전히 주요 대도시로서 건재했다. 카시트인, 엘람인 등 여러 민족이 차지를 반복하다가 기원전 8세기에 아시리아에 병합된다. 그 뒤 바빌론에서 지속적으로 반란이 일어나자 센나케립 왕은 바빌론 파괴를 결정하여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에사르하돈 왕의 치세부터 재건하기 시작했다. 바빌론을 비롯한 인근 국가들의 연합에 의해 신아시리아 제국이 멸망한 후 칼데아인들이 신바빌로니아(바빌론 제10왕조)를 건설하자 바빌론은 다시금 '세계의 수도'로 재등장했다. 그 전성기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치세로 당시 인구만 약 15만 명으로 추산될 정도였다. 하지만 재건한 지 몇 세기 만에 다시 키루스 2세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멸망당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에 정복되고 나서도 중요성을 인정받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 수사, 페르세폴리스, 엑바타나와 함께 4대 대도시 중 하나로 번영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를 정복한 아르가이 왕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는 바빌론을 수도로 삼았고 바빌론에서 죽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 바빌론을 차지한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는 바빌론 옆에 셀레우키아라는 새로운 대도시를 조영하여 바빌론의 영향력은 축소되었다.[3] 또한 전쟁 중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바빌론까지 밀어붙이는 기염을 토했다.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한 후에는 셀레우키아 옆에 새로운 도시 크테시폰을 만들었고, 이 크테시폰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도 수도가 되면서 바빌론은 완전히 쇠락했으며 바빌로니아인들은 파르티아/페르시아인에게 동화되었다. 이후에는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로마 제국의 트라야누스 대제가 파르티아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할 때 수도인 크테시폰을 털어버린 후 이곳에 성지순례를 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바빌론은 사라졌어도 풍요로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계속 오리엔트 세계 중심지의 지위를 누렸다. 바빌론의 위상을 대체한 크테시폰이 이슬람교 발흥 이후 사산 왕조에 쳐들어온 아랍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근처에 또다시 아바스 왕조의 새로운 수도 바그다드가 세워져 수백 년 동안 번영하고 현재까지도 이라크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4]
3. 특징[편집]
당시 바빌론의 거대함과 아름다움은 여러 문헌에서 많이 거론되며, 특히 가장 거대한 바벨탑의 원형 에테멘앙키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유명했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성경 속에서나 나오는 전설 중 하나로 치부되었으나 독일의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Robert Koldewey, 1855~1925)[5]가 찾아내면서 실존했던 도시임이 드러났다. 전설적인 고대 이슈타르의 문도 이 도시에서 발굴되었다.[6]
도시의 규모는 당대 최고의 크기였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도시 건축에 사용된 기술들은 현대에 와서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기원전의 도시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대도시이자 당대 최신 기술의 산물인 곳이었다.
도시의 규모는 당대 최고의 크기였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도시 건축에 사용된 기술들은 현대에 와서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기원전의 도시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대도시이자 당대 최신 기술의 산물인 곳이었다.
4. 성경의 묘사[편집]
주로 성경에서 자국을 멸망시키고 자신들을 노예로 끌고 갔던 신바빌로니아를 원수로 여긴 유대인들에 의해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찬 악의 도시, 복마전 등과 같은 이미지로 서구 세계에 많이 알려졌다. 성서에서 이 정도로 싫어하는 국가는 마카베오 전쟁으로 원수가 된 셀레우코스 왕조뿐이다.
대표적으로 시편 137편에 따르면 화자가 바빌론에 노예로 끌려가서 예루살렘과 시온을 그리며 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중 8절과 9절은 바빌론이 멸망하기를 바라는 노골적인 저주로 구성되었다.[7]
대표적으로 시편 137편에 따르면 화자가 바빌론에 노예로 끌려가서 예루살렘과 시온을 그리며 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중 8절과 9절은 바빌론이 멸망하기를 바라는 노골적인 저주로 구성되었다.[7]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요한 묵시록 17장과 18장에서도 바빌론을 '큰 음녀',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칭하며 바빌론의 온갖 영화와 권세와 악행을 나열하고 심판의 날에 죄 많은 바빌론이 신의 진노를 받아 비참하고 철저하게 멸망당할 것이라는 온갖 끔찍한 저주를 퍼붓고 있다.
기독교의 외경 제2경전인 에녹서(에녹 1서)도 심판의 날의 정경을 적고 있는데 '탕녀' 바빌론의 심판을 다루고 있다.
한국에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오만한 인간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서 높은 탑인 바벨탑을 쌓다가 천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있는데, 바벨탑의 실제 모델이 신바빌로니아 시기 세워진 바빌론의 '에테멘앙키 신전'이라는 설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 세속적이고 탈기독교적 분위기가 형성된 뒤에는 재평가되어, 초창기 인류 문명의 요람과도 같은 도시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아시아 문명의 중심지로서 장기간 큰 영화를 누린 덕에, 화려한 대도시와 위대한 제국의 수도 같은 이미지로 많이 등장한다.
기독교의 외경 제2경전인 에녹서(에녹 1서)도 심판의 날의 정경을 적고 있는데 '탕녀' 바빌론의 심판을 다루고 있다.
한국에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오만한 인간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서 높은 탑인 바벨탑을 쌓다가 천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있는데, 바벨탑의 실제 모델이 신바빌로니아 시기 세워진 바빌론의 '에테멘앙키 신전'이라는 설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 세속적이고 탈기독교적 분위기가 형성된 뒤에는 재평가되어, 초창기 인류 문명의 요람과도 같은 도시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아시아 문명의 중심지로서 장기간 큰 영화를 누린 덕에, 화려한 대도시와 위대한 제국의 수도 같은 이미지로 많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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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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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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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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باب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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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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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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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바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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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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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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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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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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