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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

바벨론

by 이덕휴-dhleepaul 2023. 9. 5.
 

바벨론

바벨론Babylon 고대 도시 바벨론 전경행정구역고대 바빌로니아의 수도위치메소포타미아바그다드 남쪽 약 89㎞ 지점 유프라테스강 변특징서아시아 문명의 중심지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짓 교회의

churchofgod.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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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디스코 그룹 Boney M.의 히트곡 중 Rivers of Babylon이라는 노래가 있다. 바빌론 유수를 주제로 한 노래.
  • 바빌론이라는 도시는 내가 1988년애 아라크에서 보았던 유적이다. 이때 쪼그만 바벨론 박물관에 있던 하무라비 법전 -타블로이드 판 을 얻었으며, 사자상에 조각된 사자의 밑에 깔린 조각은 여자였다.
  • 바벨론을 관통하는 강은 유프라테스 강의 하류로서 황토물이었으며, 매우 차가웠다. 이는 북부에서부트 흘러온 설산의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리기 떄문이라고 한다. 한국인 몇명이 더워서 물에 들어갔다가 익사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TVMfFSeztaI
  • https://www.youtube.com/watch?v=ZQArzRRPunM
  • -dhleepaul

사담 후세인의 여름별장

  • 바빌론은 영어식 표현이고, 고바빌론 당시에는 밥-일리라 불렸다. 이는 아카드어로 '신이 거쳐가는 곳'이란 뜻인데, 아랍어를 할 줄 안다면 쉽게 이해가 된다(باب 밥 = 문 + إله 일랗 = 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카드어와 아랍어 모두 셈계 언어이기 때문이다.
  • 2012년, EBS에서 직접 현지 답사를 통해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있다.
  • 실제 바빌론 유적은 대부분 땅속에 묻혀 있으나, 사담 후세인이 고대 도시 바빌론을 복원하고 싶어하여 추진한 결과 유적 위에 현대 기술로 복원되어 있다. 바빌론 유적 인근에 여름용 별장까지 지었으며 이 별장은 그가 처형된 후 시민들에 의해 훼손되었다고 한다.
  • 유적 자체가 일부만 발굴된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신바빌로니아 이전의 바빌론 유물은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외세의 침입으로 파괴된 이유도 있지만 지하수 수면이 수 세기에 걸쳐 크게 상승했기 때문에 옛 시대일수록 발견이 어렵다. 게다가 신바빌로니아 때는 도시에서 중요한 재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초창기 바빌론의 기록을 많이 파괴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바빌로니아 이전의 유물은 현재의 일반적인 고고학적 방법으로는 발굴할 수가 없다. 기원전 18세기 고바빌로니아 시기의 유물인 함무라비 법전은 후대에 엘람에 의해 약탈되었을 때부터 바빌론이 아닌 수사에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고고학 팀에 의해 발견될 수 있었다.
  •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유적들을 훼손해서 고고학계의 비판을 받았다.[8]
  •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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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복원도. 한가운데에는 푸른 빛의 이슈타르의 문이, 옆에는 바벨탑으로 알려진 마르두크의 대신전이 보인다.
 
바빌론 유적의 모습. 이슈타르 문을 지나 이어지는 성벽 거리이다.
 
유적 주요부인 네부카드네자르 궁전과 왼쪽 상단의 이슈타르 문 일대.
 
𒆍𒀭𒊏𒆠(Bābilim, Bābili)
𒆍𒀭𒊏𒆠(ká.dig̃ir.raki)
ܒܒܠ‎‎(Bāḇel)
בָּבֶל‎(Bável)
𐎲𐎠𐎲𐎡𐎽𐎢𐏁(Bābiruš)
Βαβυλών(Babylṓn)
Babylon/Babylonia
بَابِلُ‎‎(bābilu)
Babylon
1. 개요2. 역사3. 특징4. 성경의 묘사5. 여담6. 매체에서 7. 사진

1. 개요[편집]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사이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두 강이 가까워지는 곳에 위치한 이라크의 고대 유적. 현대의 지리로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남쪽의 엘힐라 부근에 자리한다. 고-중-신 바빌로니아의 수도로, 기원전 18세기~기원전 4세기까지 약 1500년간 세계 최대의 도시로 번영하였다. 인류 문명 초창기에 관개 농업을 시행한 도시들 중의 하나이고, 현대의 시계에도 사용되는 60분 체계를 확립했으며, 잉여 자원을 통해 교역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도시였다. 제국의 수도일 때는 물론, 수도가 아닐 때에도 메소포타미아 최대의 도시였고, 로마에 앞선 최초의 국제 도시였다.

2. 역사[편집]

 
1876년에 발굴된 바빌론의 사자

기원전 2000년대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의 여러 도시들이 한창 이전투구를 벌이던 시절, 셈족의 일파인 아모리인은 기원전 1894년경 바빌론을 세우고(바빌론 제1왕조) 이윽고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시켰다. 이후 도시국가 바빌론이 확장된 영토 국가 바빌로니아 제1제국이 되어 활발한 정복 활동을 하여, 마침내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석권하는 대국이 되었다. 이후 함무라비 대왕 등 명군들에 의해 번영이 계속되면서 바빌론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의 수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다 기원전 1595년 히타이트의 침략으로 고바빌로니아, 즉 바빌론 제1왕조가 멸망한 뒤 바빌론은 약탈되었으나, 아시리아 등 여러 제국들의 패권이 이어진 뒤에도 여전히 주요 대도시로서 건재했다. 카시트인, 엘람인 등 여러 민족이 차지를 반복하다가 기원전 8세기에 아시리아에 병합된다. 그 뒤 바빌론에서 지속적으로 반란이 일어나자 센나케립 왕은 바빌론 파괴를 결정하여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에사르하돈 왕의 치세부터 재건하기 시작했다. 바빌론을 비롯한 인근 국가들의 연합에 의해 신아시리아 제국이 멸망한 후 칼데아인들이 신바빌로니아(바빌론 제10왕조)를 건설하자 바빌론은 다시금 '세계의 수도'로 재등장했다. 그 전성기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치세로 당시 인구만 약 15만 명으로 추산될 정도였다. 하지만 재건한 지 몇 세기 만에 다시 키루스 2세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멸망당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에 정복되고 나서도 중요성을 인정받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 수사, 페르세폴리스, 엑바타나와 함께 4대 대도시 중 하나로 번영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를 정복한 아르가이 왕조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3세는 바빌론을 수도로 삼았고 바빌론에서 죽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 바빌론을 차지한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는 바빌론 옆에 셀레우키아라는 새로운 대도시를 조영하여 바빌론의 영향력은 축소되었다.[3] 또한 전쟁 중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바빌론까지 밀어붙이는 기염을 토했다.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한 후에는 셀레우키아 옆에 새로운 도시 크테시폰을 만들었고, 이 크테시폰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도 수도가 되면서 바빌론은 완전히 쇠락했으며 바빌로니아인들은 파르티아/페르시아인에게 동화되었다. 이후에는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로마 제국 트라야누스 대제가 파르티아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할 때 수도인 크테시폰을 털어버린 후 이곳에 성지순례를 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바빌론은 사라졌어도 풍요로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계속 오리엔트 세계 중심지의 지위를 누렸다. 바빌론의 위상을 대체한 크테시폰이 이슬람교 발흥 이후 사산 왕조에 쳐들어온 아랍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근처에 또다시 아바스 왕조의 새로운 수도 바그다드가 세워져 수백 년 동안 번영하고 현재까지도 이라크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4]

3. 특징[편집]

당시 바빌론의 거대함과 아름다움은 여러 문헌에서 많이 거론되며, 특히 가장 거대한 바벨탑의 원형 에테멘앙키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유명했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성경 속에서나 나오는 전설 중 하나로 치부되었으나 독일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Robert Koldewey, 1855~1925)[5]가 찾아내면서 실존했던 도시임이 드러났다. 전설적인 고대 이슈타르의 문도 이 도시에서 발굴되었다.[6]

도시의 규모는 당대 최고의 크기였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도시 건축에 사용된 기술들은 현대에 와서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기원전의 도시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대도시이자 당대 최신 기술의 산물인 곳이었다.
  • 도시의 여러 건물과 문들에 구워서 만들어낸 흙 벽돌 아치 기술이 사용되었다.
  • 성벽 높이는 14m, 짧은 쪽 성벽의 길이는 18km, 긴 쪽은 72km에 달하며, 3중 성벽 중 제일 안쪽의 성벽의 경우 말 8마리가 동시에 달려도 넉넉할 만큼 너비가 넓었다고 한다. 성벽 바로 밖은 강과 연결된 거대한 해자에 둘러싸여 있었고, 해자를 넘어 도시로 통하는 여덟 성문과, 그와 연결된 튼튼한 석조 다리들이 있었다.
  • 각각의 성문에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적들이 혐오하는 문이라는 뜻인 우라쉬(Urash), 침입자들이 싫어하는 문이라는 뜻인 자바바(Zababa), 군인들을 지켜주는 문이라는 뜻인 아다드(Adad), 전쟁의 신 이슈타르가 지키는 문이자 정문인 이슈타르의 문 등.
  • 유프라테스강을 활용해 해자의 물이 도시 내부의 토관과 연결되어 생활 용수로 사용되었다.
  •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하수도를 건설해 운영하였다.
  • 역청, 즉 아스팔트를 깔아 포장한 벽과 도로가 존재했고, 하수도 등에도 아스팔트를 이용해 물이 새는 것을 막았다.

4. 성경의 묘사[편집]

주로 성경에서 자국을 멸망시키고 자신들을 노예로 끌고 갔던 신바빌로니아를 원수로 여긴 유대인들에 의해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찬 악의 도시, 복마전 등과 같은 이미지로 서구 세계에 많이 알려졌다. 성서에서 이 정도로 싫어하는 국가는 마카베오 전쟁으로 원수가 된 셀레우코스 왕조뿐이다.

대표적으로 시편 137편에 따르면 화자가 바빌론에 노예로 끌려가서 예루살렘 시온을 그리며 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중 8절과 9절은 바빌론이 멸망하기를 바라는 노골적인 저주로 구성되었다.[7]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요한 묵시록 17장과 18장에서도 바빌론을 '큰 음녀',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칭하며 바빌론의 온갖 영화와 권세와 악행을 나열하고 심판의 날에 죄 많은 바빌론이 신의 진노를 받아 비참하고 철저하게 멸망당할 것이라는 온갖 끔찍한 저주를 퍼붓고 있다.

기독교 외경 제2경전 에녹서(에녹 1서)도 심판의 날의 정경을 적고 있는데 '탕녀' 바빌론의 심판을 다루고 있다.

한국에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오만한 인간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서 높은 탑인 바벨탑을 쌓다가 천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있는데, 바벨탑의 실제 모델이 신바빌로니아 시기 세워진 바빌론의 '에테멘앙키 신전'이라는 설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 세속적이고 탈기독교적 분위기가 형성된 뒤에는 재평가되어, 초창기 인류 문명의 요람과도 같은 도시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아시아 문명의 중심지로서 장기간 큰 영화를 누린 덕에, 화려한 대도시와 위대한 제국의 수도 같은 이미지로 많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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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바빌론
Babylon
بابل
Babylone
국가·위치
이라크 바빌주
 
등재유형
등재연도
등재기준
(iii)[1], (vi)[2]
지정번호

출처전거: https://namu.wiki/w/%EB%B0%94%EB%B9%8C%EB%A1%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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