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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

[스크랩]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직접 민주주의의 부활 1/2[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는 민주주의의 발원지]

by 이덕휴-dhleepaul 2018. 9. 11.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직접 민주주의의 부활

 

고대 페르시아는 인류 역사상 사실상 최초의 제국이라고 역사학자들이 칭할 정도로 그 강역과 문화의 성숙도가 당시로서는 최고였다.

그 면적이 5백만 제곱 킬로미터가 넘었고

인구 또한 천만 이상 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그 무렵 중국은 춘추 전국시대 였기 때문에 통합된 국가라 볼 수 없다.

 

중국의 최초의 제국은 BC 2~3C경 전국 7웅 중의 하나였던

진의 왕 이었던 정이 중국 대륙의 여러 봉건 제후국을 통합하여 최초의 황제가 되면서 부터이다.

 

페르시아는 훨씬 전인

BC 6C경 다리우스 1세 때에 영토가 동쪽으로는 지금의 아프카니스칸, 인도에 서쪽에 이르렀고 서쪽으로는 이집트를

정복하였고 유럽 대륙의 그리스 지방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300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의 발단은 페르시아제국의 영향력이 서쪽으로 확대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지방)의 그리스인들의 식민지였던 서부해안 도시국가들과 페르시아 세력의 충돌과정에서 일어나게 된다.

 

당시에 터키 서부 해안지역에는 그리스계 이오니아인들이 도시국가를 이루고 있었는데,

페르시아의 점령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300 영화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으로 일어난 두 차례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데

첫번째 전쟁은 마라톤 전쟁으로 유명하다.

 

 

 

                         [마라톤 전투]: 출처 위키피디아                                       [마라톤 전투]: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두 번째 전쟁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가 죽고 그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일어나는데,

전작 "300"은 육상전투를 배경으로 했고

후속편인 "300:제국의 부활"은 해상전투인 세계3대 해전이라고 불리는 살라미스해전을 모티브로 한다.

 

 

 

 

전쟁의 결과는 육전은 스타르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동맹도시의 패전,

해상전투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 해상 도시국가의 일방적 승리로 마감하는데,

그 후 보급로에 문제가 발생한 페르시아의 철군으로 사실상 그리스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그 결과 육상문명의 중심이었던 스파르타는 패전 후 그리스에서 점점 세력이 약해져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해군 위주의 도시국가가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페르시아는 개그콘서트에서 양상국이 '나는 관대하다'로

영화 300을 패러디해서 인기를 끈 다리우스의 피정복민에 대한 포용, 융화 정치로 오리엔트 문명을

하나로 통합한 최초의 세계제국 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와의 전쟁 이후 (크세르크세스의 암살 후) 제국은 여러 왕들을 거쳐면서 급속하게 분열되었고

그리스의 마케도니아에서 일어난 알렉산더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그리스는 누구나 알다시피 도시국가들의 연합이었다.

제국과는 전혀 동떨어진 국가였고 개념 또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제국은 말 그래도 전제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강력한 통치기반을 바탕으로 군대와 문화의 힘으로 주변세력들을 통합하고

하나의 시스템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임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300:제국의 부활"은 사실 세계사적으로 최초의 문명의 충돌은 아니었는지..

(동양과 서양문명의 충돌, 전제주의 제국과 민주적인 도시국가의 충돌, 관대함과 엄격함의 충돌, 중동지역과 지중해 연안 유럽의 충돌)

 

 

 

그후 오랜세월 동안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싸고 그리고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문명간의충돌의 시작이 바로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전제주의 대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민주주의를 실현한 곳은 그리스 도시국가 들이다.

물론 제한적 이었기는 하였지만(예를 들어, 투표권 행사에 있어서 여자와 노예들은 대상이 아니었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행사하였다) 그 역사적인 의미는 상당한 것이 있다.

 

당시로서는 그리스의 지형상 산악이 많고 해안가에 드문 드문 도시국가를 건설하였고,

그리고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서 발전을 하지 못한 측면에서 보면,

페르시아의 정치체제인 전제주의가 더 효율적이고 선진적인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사람들이 그리스 지역의 민주주의가 더 옳고 선진적 이었다고 보는 것은 넌센스일 것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민주주의 발원지임에는 틀림없고

현대의 국가와 그 국민들은 그 체제와 가치를 수호하는 것을 가장 큰 의미로 여긴다.

 

당시에 페르시아의 승리로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몰락하였다면,

과연 현대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고도로 성숙되고 꽃 피울 수 있었을까 하는데

많은 궁금증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주의 라는 것은 인간 역사 발전 단계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발현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물음에 그렇다라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당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가가 몰락하였다면,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정치체제는 그 운명이 끝나고 역사속으로만 남아 있게 되었을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역사에게 가정이 무슨 소용인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가 최초의 세계대전에서 승리했고

서구의 민주주의는 그리스에서 비롯됐다는 것 만으로 충분한 것이지

그걸 따져서 무엇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자 후대에 물려줄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론적으로만 쉽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 동안 민주주의를 획득하기 위한

수많은 희생과 노력을 너무 갑싸게 취급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처 : 팜스퀘어[cgv불광,nc백화점불광점]해피클럽
글쓴이 : 팜스해피클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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