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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기원

by 이덕휴-dhleepaul 2018.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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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종교학 제 4장 발표 <종교의 기원 >| ♠발표 자료집(2007년)
재활용 | 조회 181 |추천 0 | 2007.10.08. 21:25
 

제4장  종교의 기원              200710037.  정 춘식 .   2007.  9.  28


1.기원연구의 목적

  종교의 기원연구는 종교에 관한 사적연구의 한 부분으로서 그것을 통하여 종교의 본질 이해에 이르고자 하는데 이것을 발생학적 방법(genetic method)이라고 한다.1) 

이 방법의 확실한 목표는 연구대상의 기원을 살펴 발생적 형태를 규정하여 놓고 그 형태야말로 그 대상의 본질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도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불충분하다. 예를 들어 두 가지 접근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사람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의 상태를 관찰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인류가 세상에 최초로 나타났을 때를 연구하는 방법이다. 후자는 연구방법상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갓난아이를 관찰해서 내린 결론으로 ‘인간은 기어다는 동물’ 이라고 정의 한다면 이것은 올바른 정의가 되지 못한다.

종교의 기원연구도 이런식으로 본질에 관한 제각기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론을 내어놓았다.

예를들면 막스뮬러는 [동방의 성전]이라는 저서를 통해 종교의 기원의 실마리를 인도유럽의 제 종교에서 신봉하는 여러 신들에 대하여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는데서 찾았다고 하였다. ‘하늘’ 땅, 달, 해, 불, 천둥과 말의 언어학적 어근(linguistic root)이 모든 종교에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종교의 신관에서 진화과정이란 자연세력으로부터 추상적인 신으로 변천해왔다고 주장하고 학설을 세웠다. 진화철학의 감화아래 종교의 기원을 순전히 자연적인 현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역사적, 심리학적, 교육학적, 심지어 현대과학도 여기에 동조하였다.


 ? 1966년 5월 미국에서 생물학자 177명이 뮬러의 주도로 진화론에 서명을 하고 절대주의에 대항하였다.2) 뮬러의 주장대로 종교가 진화 발전해왔다는 것에 대해서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비록 종교의 형태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원시적 유치하고 단순한 형태로부터 시작해서 복잡한 형태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역사에는 수많은 외부적 조건과 영향에 따라서 내부적으로는 끊임없는 혁신과 돌발적 변화가 있을 수 있으므로  두 종교에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 두 종교가 동일한 보조를 취해왔을 것이라는 비교종교학적 가설은 인정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종교의 발생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유추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하나님에게 이르는 또 하나의 길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비교종교학의 목적은 자연적인 현상이나, 심미적 현상이나 윤리, 도덕적으로나 인간역사의 유추와 타종교의 비교로 보편성과, 인간 이성에 의한 합리성과 필연성에 근거하여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존 케어드는 “그러므로 우리는 반복하노니 계시종교와 판이한 자연종교 혹 이성종교란 것은 없다.”  맥펄슨은 “그러므로 종교의 관념과 사실에 있어서 하나님의 공작으로서의 계시는 사람의 영적동작으로서의 신앙의 필연적 상관물이다.”3)  인간이 하나님을 알려고 할 때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셔야만 우리가 알 수 있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불가지론자들은 말장난을 많이 하여왔다. 그들은 지금도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4)고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다.

교의신학의 중요성

  인간에게 종교는 필수 불가한 것이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부터 하나님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은 여러 가지 길을 제시했고 다양한 종교적 표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칼빈은 이를 기독교강요 1권 3장 1절에서 밝히기를 인간에게는 신지식, 종교의 씨앗,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종교심의 발로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는 “어떤 의미로도 종교심이 없는 사람이란 어느 곳에도, 어느 시대에도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고 밝히고 있다.  종교의 시작을 두고 여러 가지 학설을 주장하나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시작부터 되었고 각 지역마다 흩어져 매우 다양한 종교가 출현하였다. 개혁주의 입장에서 종교의 기원뿐만 아니라 보다 넓게 교의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생기게 된 것이다. 기독교 교의신학에서는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죄론, 삼위일체, 성령론등 종교의 기원과 진술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인간역사의 근본을 명확하게 성경은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의신학이 발전한 것은 주전2세기에 이교도들에 대한 비교변론에서 시작되었다.5)  이것이 오늘날 변증신학이다.

종교기원학설

  먼저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사람의 눈으로 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스스로 자존자이신 하나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종교를 지식으로, 지성으로, 감정으로 종교의 자리를 두고 찾기를 원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학설이 나오게 되었고  또한 형상적인 것이 나오게 되었다. 종교의 기원은  인간의 마음에서부터 인간의 모든 생활, 사상, 감정, 그리고 의지의 모든 문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6) 이 문제에 대해 가장 활발하게 다루어 왔던 계몽주의 이후 종교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불안심리

  종교의 기원은 공포와 불안 심리에 두는 것은 원시인들의 생활을 연구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원시인들은 바람, 폭우, 천둥, 번개, 지진, 등 자연 앞에 불안과 공포심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에 떨었고 공포심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두려움의 대상을 잘 대접하고 빌어서 그의 진노를 완화시키는 유화책을 쓴든지 아니면 그 두려움의 대상보다 더 강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대상에게 빌어서 그 능력을 가져와서 현재의 두려움의 대상을 물리치는 강경책을 쓰는 등 두 가지 방법을 행하였다.

 그래서 헬라의 철학자 ‘에피큐러스(Epicurous, BC342-270)와 바르길리우스(Virgilus, BC 70-19)는 “인간의 두려움이 신을 낳았다”고 하였다.

독일의 심리학자 분트(W.Wundt)와 프랑스의 심리학자 리보(T.A. Ribot, 1839-1917)는 원시인들의 심리연구의 결론으로 “인간의 공포심리가 종교의식을 만들어 내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흄도 “종교는 인간 무지의 소산”이라고 하면서 종교 기원에 있어서 불안 심리설을 지지 하였다.

 ? 그러나 이 주장도 인간의 두려움이 종교적 여러 감정들 가운데 한 가지 요소는 될 수 있으나 두려움의 대상이 모두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이 두려워한다는 상태가 저절로 두려움의 극복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다. 심리학에서는 두려움은 더 큰 두려움을 낳을 뿐 종교라는 창조적 옥동자는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두려움은 종교심의 원인 가운데 일부는 될 수 있으나 두려움 자체가 종교를 만들어내었다는 것은 온전한 타당성을 가질 수는 없다.


 2.소원성취설

  인간은 자기의 소원성취를 바라고 있으나 항상 무언가에 의해서 방해를 받고 있다.  모든 환경여건들 가운데 신체적조건, 사회적 관습 등의 불합리한 조건들로 소원성취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심리적 세계를 통한 가상에서 이 우주에는 자기를 도울 힘이 항상 존재한다고 믿게된 것이 종교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자유주의 신학자 사바티어(A.Sabatier,1839-1901)는 그가 쓴 [종교철학개론]에서  “인간은 자기를 위협하는 곤란에서 구원받기를 소원해서 자기 이상의 초자연적, 초인간적 존재에게 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두려움에 희망을 더하여 기도와 서원을 하게되는데 여기서 종교가 발생하였다”고 하였다.


  포이에르바흐는 창1:26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자기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였다’는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사람이 자기마음의 소원을 성취시켜줄 하나님을 사람의 형상대로 창조하였다’고 하는 인간의 소원성취의 투영이 종교를 낳았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종교의 본질을 부정하려는데 있다.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자기들의 소원을 성취시켜줄 종교적 대상으로써의 신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이 가상적으로 신을 만들어내어 심리적으로 성취내지 만족시키고자 하는 동기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그는 종교의 정의를 ‘신은 인간의 마음속에 바라고 소원하고 동경하는 이상을 자기 밖에 투사하여 그것이 실재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포이에르바흐의 유물론사상을 발전시킨 칼막스는 “종교는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아편”이라고 공산주의 이론을 내 세웠다. 그는 종교는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나, 영원한 행복의 약속을 하므로 일시적 고통을 잊게 하는 진통제와 같은 것이다. 고 주장하였다.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종교의 기원은 ‘외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로 설명하였다.

?인간은 내면의 갈망이  소원성취에 있다면 어 그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있고 그렇게 해서 종교가 생겼다면 신은 인간과 별로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3.승려계급 조작설

   승려계급이 자기네의 지위와 세력을 보존하고 확장하기 위한 궤계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승려조작설 또는 궤계설이다. 17세기 토마스 홉스는 종교는 “권세욕에 미친 승려들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문제는 예수, 석가, 조르아스터는 승려계급이 아니었다. 그리고 영국교회는 수장이 승려가 아니고 국왕이었다.  홉스는 윤리학적 성악설, 심리학적으로 이기설, 사회적으로 계약설과 정치적 군권설을 교묘하게 연결시켜서 당시 영국의 교회가 국교로 설립되는데 공헌하였다. 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성품이 악하기 때문에 모두 다 자기 이익추구에만 급급하여 사회생활을 하려니 서로 충돌을 피할 수가 없다. 충돌을 하였으나 서로 이익이 없다는 것을 알고 타협하여 경계선을 긋고 국가와 통치자를 세우고 사회계약설을 주장하였다.


 4.상추설

  영국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가설 상상설과 다른 학자들의 추리설을 합해서 상추설이라고 한다. 그는 본래 불가지론자요, 또 진화론적 쾌락설의 창도자이다. 그는 종교가 “인간의 심리가운데 상상작용에서 나왔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세계와 인간을 이원적으로 보았다. 인간은 육체적 자아와 정신적 자아의 합성체로보고 세계도 외부적과 내부적 세계의 합성체로 본 것이다. 외부적 물질세계는 인식할 수도 있지만 내부적 정신세계는 인식할 수도 없고 연구 관찰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불가지론에 빠지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처럼 자기가 지식적, 이성적 이해되어지지 않는 부분은 배제를 했기 때문에 역시 그의 주장은 무한에 대한 자기모순을 스스로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5.신감지설

  이태리의 그롯체는 “인간이 자기가 유한자라는 생각이드는 것은 절대적 무한자가 있음을 전제로 일어나는 생각” 이라고 하였다. 막스뮬러와 띨레(Tiele)의 주장도 “유한감의 경험은 무한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고 하여 무한감설, 또는 신 감지설을 주장하였다. 인간은 자기 속에 무한성이 있음을 느끼는데 이 느낌은 지각과 감정을 만족케해 준다는 것이다. 이 느낌을 신에 대한 깊이 앙모하는 마음으로 전환시킨 것이 정신활동 가운데서 종교의식으로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헤겔의 종교관도 이와 비슷하게 “종교란 궁극적인 것의 추구로서 유한한 인간정신이 무한한 절대정신 속에서 자기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 한다” 고 하였다.


 6.양심설

  이 주장은 칸트의 주장으로 인간에게 두 종류의 이성이 있다.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이다. 인간에게 양심이 있어 그 양심의 소리에 따라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도덕의식이다. 이 도덕의식에 관여하는 이성은 실천이성이다. 칸트는 도덕과 종교를 같은 차원에서 보고 이 양자는 모두 인간의 실천이성의 발현이라고 하였다. 칸트는 ‘밤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내 마음속에서는 양심의 별이 반짝인다“ 라고 하였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의 소리에 따라 자율적 의지의 활동이 나오고 이것이 최고의 선을 향해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러나 이 최고의 선에 이르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요청의 신이다. 내세에서의 도덕적 완전한 성취를 위해서 신이 요청된다. 이러한 도덕적 요청에 의해서 신은 존재하며  양심의 소리가 들리는 것은 곧 신이 있다는 증거이며 신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종교이다.   칸트의 주의, 주의는 종교의 기원을 인간의 도덕에 둔다.

?칸트는 종교를 도덕의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7.감정 의존설

  슐라이막허는 주정 주의적 종교기원학설을 내세운 최초의 신학자이다. 그는 감정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의식의 주체라고 보았다. 그는 유한자인 인간이 무한자인 신에게 절대귀의 의 감정으로 향할 때 비로소 종교 신앙이 성립한다고 보았다. 그는 종교의 본질은 이성적 지식도, 의지적 도덕도 아니요, 다만 직관과 감정이라고 하였다. 직관은 인간의 이성작용에 의한 개념화 이전의 것이고 감정은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무엇을 원하고 선택하고 결심하고 행동하기 전의 것이다. 그러므로 직관과 감정은 인간 의식의 가장 기본적이며 원초적인 것이다.

무한자의 존재를 발견하는 최고능력과 직관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능력과 직관에 대한 감정의존이 종교라고 하였다.

  ?칼빈은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올바른 지식과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자세와 바르게 살고자 하는 결단 곧 하나님에게 대한 지. 정. 의의 전 인격적 반응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직관에 대한 감정의존이라면 개도 종교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8.사회현상설

  종교는 사회의 자연스런 현상의 산물이라고 보는 주장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껭은 인간은 ‘종교적 동물’이라고 하였다. 그는 종교는 개인의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사회적 산물 곧 사회를 신성한 존재에 결합시키는 신앙과 행동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사회학자 꽁트는 종교는 원시인들의 사회적 특성으로 보고 사회의 발전과정을 3단계로 나누었다.종교적사회, 형이상학적 사회, 실증주의적 과학적 사회로 보고 종교의 기원론에서 종교는 사회적 산물로 보았다.


 9.종교신수설

  정치학이나 사회학, 역사학에서 자주 언급하는 왕권신수설이라는 것이 있다. 왕의 권력은 신이 내려주신 것이라고 믿고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왕이다.  이러한 사고가 종교의 기원을 연구하는데도 적용된 것이 종교 신수설이다.


 10.계시 의존설

   이 주장은 종교가 인간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계시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한다. 이 계시 의존설에 입각해서 종교를 다시 연구해볼 때 종교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해야 옳다. 하나님께서는 옛 족장들과 선지자들, 예언자들에게 직접계시로 찾아오셨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귀한 계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에 계시다가 이 땅에 성육신(incarnation)하신 것이 계시의 절정이요, 완성이다. 이 계시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성경 66권이며 이것을 특별계시라고 한다. 이 성경은 성령의 영감(inspiration)을 받은 사람이 성령의 감동에 따라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특별계시인 성경말씀을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의존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다.


 ?많은 학설과 이론과 정의가 있지만 모두가 유한한 인간의 한계성을 보여준다. 근본적으로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주장들과 신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 속에 철학자들의 종교의 기원역사 추론은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무지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참 절대자 곧 영원 자존자께서 계시로 나타내 보여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쫓겨난 에덴을 향하여 헤매는 인간의 몸부림은 아담 이후에 계속된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 주위에 아주 가깝게 서성이는 타종교에 대한 3가지 입장을 알아보자. 종교다원주의 신학자인 폴니터는 타종교의 입장의 차이를 보수적 복음주의의 진영의 ‘배타주의’. 진보적 에큐메니칼 진영의 ”포용주의’. 종교 다원론적 신 중심주의의 ‘다원주의’로 구분하였다. 

  .배타주의에서는 성경의 권위와 계시를 인정하며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구원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지며 예수그리스도는 인류의 유일무이한 중보자이다. 따라서 개종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복음선포 외에 타종교와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에 반대한다.7)


 .포용주의는 타종교들을 하나님의 일반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보기 때문에 계시적 경험에 기초한 종교적 영성과 도덕적 윤리성, 문화적 심미성의 가치를 인정한다. 따라서 그들은 타종교와의 대화는 상호 유익하지만 동시에 타종교는 은폐와 왜곡 모호성과 우상화의 위험 앞에 직면해있다고 본다. 포용주의자들은 타종교의 체험과 구원의 진리는 이제 예수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복음을 통해서 완전한 모습으로 계시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타종교와 기독교와의 관계는 준비자와 완성자, 그림자와 실체, 모호성과 투명성, 불완전한 길과 완전한 길로 비유된다고 한다.


 .다원주의는 철저히 문화적 상대주의에 입각해 있다. 포용주의자들도 여전히 문화적 우월주의에 입각해 있다고 비난 한다. 집단이나 개인도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하는 배타적 절대주의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삶의 규범이나 생활양식, 종교적, 문화적, 상징체계이 있어서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모든 종교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성찰과 토론을 통해서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를 문화적 역사적 주관에 의해서 구성된 하나의 현상으로 상대화시킨다. 이것은 결국 산은 하나이며 정상에 올라가는 길은 여러 가지라는 논리와 같다. 이 다양한 길은 곧 문화적 역사적 맥락과 상황의 차이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은 동등하며 기독교만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는 하나의 진리로 통한다 라고 말하며 뉴에이지 운동의 논리적 기초이기도 한 것이다.8)



 종합적으로 우리가 비교종교학을 공부해야 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 올바르게 알지 못하면 상대적이며 자기의 경험과 인간의 이성으로 유추하여 반론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관적인 성향에서 무원칙에서 맹목적인 비판을 할 수 밖에 없다. 실재로 우리 주위에는 많은 길들을 만들어 놓고 각자의 목적에 의한 질술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의 기원 역시 에덴동산을 쫓겨난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고자하는 몸부림 속에 나타난 자연스런 반응이라고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 속에는 종교심이 자리하고 있기에 인간은 종교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비교종교학을 통해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의 본질이라고 확신하는 것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하심과 주권에 대한 감사가 더 새롭고 확신에 차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종교의 기원은 공통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형상적인 것 들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 이 길을 그냥 받아들이기보다 지극히 과학적이고 인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에 어려운 것이다.

“인간이 경험되어지고 지식적으로 이성적으로 완전히 이해되어지는 것은 더 이상 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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