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1-3)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언론들은 지난 1천년 동안 인류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발명품으로‘책’을 선정 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구텐베르크(Johann Gutenberg, 1397-1468)의 “금속활자”를 선정했습니다. 즉 인쇄술(印刷術)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선정된 것입니다.
구텐베르크와 인쇄술이 이처럼 큰 의미를 갖게 된 것은 그가 만든 인쇄기로 가장 먼저 성경을 출판했고, 출판된 성경은 잠자고 있던 중세기 유럽을 깨웠기 때문입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 사람이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손으로 쓰는 방법뿐이었는데, 필사를(筆寫)하려면 3년이 넘는 세월이 걸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 권의 성경을 제작하려면 200마리의 양을 잡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책의 가치도 수억원이나 될 정도로 비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랬동안 읽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기는 3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180부나 되는 성경을 찍어냈습니다. 당시 사정을 감안할 때 실로 엄청난 분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텐베르크 성서가 출판된 이후 두드러진 현상은 각 나라말로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입니다. 1525년, 윌리엄 틴데일이 로마 카톨릭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약성경을 영어(英語)로 번역하였고, 1534년에는 루터가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獨逸語)로, 1611년은 지금도 유명한 킹 제임스 성경이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루터의 “95개조 논제”는 구텐베르크가 만든 인쇄기로 말미암아 불과 2주 만에 전 독일로 퍼져 나갔고, 두 달 만에 전 유럽에 배포되었습니다. 이런 위력을 눈으로 목격한 루터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印刷術)을 가리켜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이 내리신 최대의 선물이다.”라고 극찬했습니다.
인쇄술(印刷術)은 잠자고 있던 백성들의 눈을 뜨게 했고, 착취당한 농민들을 횃불을 들게 했습니다. 그 횃불이 바로 종교개혁과 문예부흥, 나아가 시민전쟁으로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고, 유럽사회를 확 뒤집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했던 것입니다.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서 성경(聖經)은 오늘의 유럽과 청교도 정신을 낳게 했고, 그 정신은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지금 청교도 정신이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취임할 때는 반드시 성경에 손을 얹고 엄숙히 서약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그 정신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대한성서공회>에서만 한 해에 국내에는 약 150만부를 인쇄하여 보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에 보급하는 ‘성경’은 156개 언어로 4,706,884부의 성서를 제작하여 111개국에 수출하는 실적을 거두었습니다. 세계성서공회연합회(UBS)에 의하면 2008년 12월 말 기준으로 전 세계 6500여개 언어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최소한 단편(쪽복음) 이라도 번역된 언어의 수는 2,479개입니다. 성경전서가 번역된 수는 451개 언어이고 신약전서는 1,185개 언어입니다. 지난 1년 동안 25개 언어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너무 많은 것 같지만,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6,500여 개로 추정될 때, 단편이라도 번역된 언어는 아직 전 세계의 언어의 1/3에 불과한 것입니다.(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거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4,100여개의 언어로 더 번역되어 40억 이상의 백성들에게 전해져야만 합니다. ‘성경’을 발간하여 보급하는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복 있는 나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입니다. 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며(딤후3:16) 성경은 하나님의 인격이십니다.(요1:1), 그 하나님의 인격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했습니다.(요1:14)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인격을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지 않으면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가 있겠습니까? ‘성경’이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지만, 또한 가장 잘 안 읽혀지는 책 중의 하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많은 성경책이 발간되어 보급되고 있다할지라도 읽혀지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공부하라, 책을 가까이 해라. 책속에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정말 책속에 길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좋은 책들이 있습니다. 시, 수필, 소설, 잡지, 신문 아니면 성경, 이런 책들 중에 어떤 책에 가장 영향을 받으십니까? 정답은 우리가 읽는 책입니다. 읽지도 않는 책의 영향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 두고는 있지만 정작 그 성경을 매일 읽지는 않는다면... 성경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왕정시대가 되고, 나라와 백성의 번영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할 것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17:14-20)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서 그 땅을 얻어 거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열국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우리라는 뜻이 나거든....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한 마디로, 왕은 하나님 말씀을 등사(謄寫)하여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하나님 섬기기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왕권이 자손대대로 보존되며 장구하게 되고 나라 백성은 번영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또한 백성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11:18-25)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의 장구함 같으리라.”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마음과 뜻에 두고, 즉 하나님 말씀에 전념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전 가족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솨난’인데 이는 ‘찌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스스로를 그리고 자녀들의 마음과 영혼을 예리하게 찌르듯 감동시키고 교훈하라는 뜻입니다.(히4:12-13)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어느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르다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들였습니다. 그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예수님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예수님께 접대할 여러 가지 일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마음이 바빴습니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주님, 내 동생이 모든 일을 나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데도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나를 좀 도와주라고 하십시오.’ 하자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으니 아무에게도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눅10:38-42)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을 듣는 것이 좋은 편을 택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집에 오신 예수님을 정성스럽게 대접을 하기위해 수고하는 것 보다 더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위해 무엇이든지 봉사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더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읽는 성도, 하나님 말씀을 읽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2)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읽어주는 사람입니다.
성도여러분, 실제로 성경은 먼저 가정에서부터 읽혀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만 아니라 가정적으로 성경을 열심히 읽어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적으로 하나님 말씀이 잘 읽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정예배를 충실하게 드려야 합니다. 가정예배는 자녀들의 신앙 뿐만 아니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딤후3:16)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대인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전세계인구의 1%가 될까요? 유대인들의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0.3%인 1400만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벨상을 받은 유대인들이 경제학 분야에 65%, 의학 분야에서는 23%나 됩니다. 미국 하버드 법대 교수 중 50%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지도자가 가장 많은 민족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의 결과에는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왜 0.3%밖에 안 되는 유대인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생각의 차이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가정을 하나님의 성소(聖所)로 여깁니다. 가정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처소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집’이라는 용어가 히브리어로 ‘바이트’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집이 교회고 교회가 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또 부모는 가정에서 ‘선생’이요, 랍비와 ‘제사장’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나라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자녀교육을 위해 부모가 모든 것을 투자하는 나라이지만 ‘가정’에 대한 생각은 유대인과는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정은 ‘쉬는 곳’이요 ‘먹는 곳’입니다. 가정, 집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 앉아 밥 먹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행복한 가정이라고 여깁니다. 이렇게 생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인 교육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가장 최우선하는 교육의 장소는 학교가 아니라 가정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어디일까요? 공부방이 아니라 식탁(食卓)입니다. 식탁은 기도와 말씀이 있는 예배 장소인 동시에, 즐거운 식사와 다정한 대화가 꽃피는 활기찬 교실과 같은 곳으로 여기는 곳이 식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같이 밥을 먹는 것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한 상에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화목한 가정의 상징처럼 됩니다. 또 밥을 먹을 때는 조용히 밥만 먹어야 합니다. 밥 먹을 때 말하면 복 나간다고 말도 못하고 오직 밥만을 빨리 먹습니다. 그리고 교육은 학교에서 하는 것이지.. 가정은 교육의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근본적으로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식탁에는 가장 먼저 기도와 말씀이 있고 그 후에는 반드시 후식과 꼭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던킨 도너츠’(윌리엄 로젠버그), ‘하겐다즈 아이스크림’(매터스 루우벤), ‘허쉬 초콜릿’(밀턴 허쉬), ‘베스킨라빈스 31 아이스크림’(베스킨과 어빙 라빈스)…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들은 모두 세계적 식품 브랜드의 창업자이자 어려서부터 식탁 예배 훈련과 인생 교육을 받았던 유대인들입니다. 식사 후에는 반드시 후식을 먹으면서 가족간에 대화를 나누는 유대인들의 가정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좀 더 나은 후식이 없을까?’를 고민한 덕에 이런 식품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와 세계적 위인을 배출한 유대인의 자녀교육 비밀은 바로 식탁(食卓)에 있었던 것입니다. 조용한 가운데 빨리 밥만 먹는 식탁이 아니라 대화가 있는 식탁입니다. 다행한 것은 우리들의 식탁도 이런 모습으로 변하여 가고 있습니다. 더 많이 부모와 자녀가 식탁에서 대화를 하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더 말할 것은 ‘유대인 엄마(Jewish Mother)’의 교육 입니다. 유대인 자녀들은 5세 때부터 성경을 배우며, 7살이 되면 율법들을 공부해야만 하는데.. 유치원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유대 어머니의 하루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바로 어린이의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입니다. 이른바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는 유대의 어머니’가 가정교육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읽어주는 성경 이야기를 듣는 것은 교육이면서, 너무나 행복한 추억입니다. 또한 지적인 성장의 큰 지름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베드 사이드 스토리’(bed side story), 침대곁에서 읽어주는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유대 어머니의 의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우리들도 실천하면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저도 애들이 잠들 때 이불 머리에서 짧은 축복기도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3) 끝으로 ‘복 있는 사람’은 읽고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입니다. 8복으로 시작되는 산상수훈의 마지막 결론은 마태복음 7:24-27입니다.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8복을 비롯하여 인생을 가장 복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알고 읽고 들었다 해도 그 말씀대로 지키지 아니하면 모래 위에 지어진 집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처럼 무너지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말씀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이름과 말씀, 그리고 성전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살았던 다윗 왕이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30,000명의 특수 부대를 조직하여 언약궤를 옮길 만반의 준비를 다했습니다. 이들이 언약궤를 새 수레에 얹어 산간 지대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가져나왔는데 아비나답의 아들인 웃사와 아효가 그 수레를 몰았습니다. 아효는 궤 앞에서 걸어가고 다윗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뒤따라가며 잣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어 즐겁게 춤추고 수금, 비파, 소고, 양금, 제금과 같은 각종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들이 날뛰자 웃사가 언약궤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붙들었습니다.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 웃사의 불경한 행동에 노하셔서 그를 치시자 언약궤 곁에서 즉사했습니다. 다윗 왕은 언약궤를 옮기는 중 즉사를 당한 이유를 뒤늦게 깨닫고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에 따라서 언약궤를 옮기도록 한 것입니다. 민수기 4:15을 보겠습니다. (민4:15)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고핫 자손은 레위 지파로 성소에서 가장 거룩한 기구들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옮길 때는 이러한 레위 자손이 메어서 옮기는 것이지 그것이 새 수레라고 할 지라도 수레에 실어 옮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그저 옮기고자 했을 때 불상사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뜻을 이루고자 할지라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아니하면 이처럼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뒤늦게 깨달은 다윗 왕이 이렇게 합니다.
(대상15:1-15) “다윗이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하고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족장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케 하고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을 때 아무 일이 발생하지 않았고 다윗은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음껏 백성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짓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 축복이 너무 좋은 축복입니다.
첫째는 어디를 가든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이름을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게 만들어 주리라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대적을 멸하여 평안하게 하리라는 것이고,
셋째는 가정과 가문의 후손, 그리고 왕권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고 보존케 하리라는 것입니다.(삼하7:1-16) 이 축복이 저와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이 축복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13:13에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어디를 가든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이름을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게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모든 대적을 멸하여 평안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가정과 가문의 후손, 그리고 왕권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고 보존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 말씀대로 섬기며,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아니하고 존중히 여겨 두려운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여 복을 주십니다.
(말3:16-18)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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