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철학
동의어 구스타프 라드브루흐 다른 표기 언어 Rechtsphilosophie
저작자 |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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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법의 이념은 정의와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에 있다고 하며, 신칸트주의의 입장에서 법 가치론을 체계화했다.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문화주의라는 세 가지 요소에 바탕을 두며 법철학 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공적을 크게 인정받고 있다.
법철학을 가치 철학으로 파악
19세기 말부터 새로 주목받기 시작한 신칸트학파의 여러 철학적 방법을 법철학의 영역에 적용해 집대성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 가치상대주의에 관한 저술로 높이 평가받았다. 이 책이 출판된 시기는 실로 나치가 대두해 정권을 손에 넣기 직전의 해였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마르 데모크라시에 대한 정신적 결정판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이 책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나치에 대한 저항 서적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세계에 대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자연과학적 물음을 가능하게 하는 가치 맹목적 태도와,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사회과학적 물음을 임무로 삼는 가치 관계적 태도, ‘이것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가치 철학적 물음를 중심으로 한 평가적 태도 그리고 주어진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함으로써 종교를 가능하게 하는 가치 초극적 태도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법은 문화 현상, 곧 가치에 관련된 사실이므로 법학은 가치 관계적 태도에 속한다. 법 이념은 법 현실을 위한 구성 원리와 가치 기준을 말하므로 이에 대한 고찰을 과제로 삼는 법철학은 평가적 태도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라드브루흐가 법철학을 평가 철학으로 규정짓고 있다는 점에 그 특색이 있다.
더욱이 이원론은 라드브루흐의 법철학을 특징짓는 내용으로 꼽을 수 있다. 라드브루흐의 이원론은, 칸트의 이원론에 기초해 존재로부터 당위(가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을 추론해 내는 실증주의나 존재했던 것으로부터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을 추론해 내는 역사주의 그리고 생성 중인 것으로부터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을 추론하는 진화론 등의 주장을 부정했다.
그의 이원적 방법론에 따르면, ‘당위 명제와 가치 판단, 평가’라는 것은 존재의 확정을 기초로 한 귀납적 방법이 아닌, 동종의 다른 여러 가지 명제를 기초로 한 연역적 방법을 통해서만 근거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이다. 또 가치 고찰과 존재 고찰이란, 독립적으로 항상 그 자신으로 완결되어 있는 원으로서 병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원적 방법론으로는 현실 속에서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없는데, 그것은 이론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지 인과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따라서 “가치 판단은 존재 사실을 원인으로 하여 생겨날 수 없다”고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가치 판단은 존재 사실로 인해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궁극적 당위의 명제는 입증할 수 없는 공리적인 것으로 이는 인식이 불가능하며, 다만 확신할 뿐이다. 이 점에서 궁극적 당위 명제에 관해 상호 대립하고 있는 가치관이 존재할 경우에는 이들 사이의 투쟁을 과학적인 하나의 의미만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법철학의 임무는 서로 나누어져 있고 서로 대립되어 있는 각각의 가치관과 세계관, 가치 체계를 가능한 한 분석하여 제시함으로써 각 법의 가치 체계를 가능한 한 고찰해 세계관의 차이가 서로 다른 가치 평가 위에 성립되어 있다는 점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법적 가치의 상호 모순
이와 같은 견해에 근거해 라드브루흐가 분석하고 제시한 궁극적 가치의 기본 체계는 ‘인간적 개별 인격, 인간적 전체 인격, 인간적 작품’이라는 세 종류뿐으로, 각각 이를 기점으로 자유를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개인주의적 세계관과 국민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단체주의적 세계관, 문화를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초인격주의적 세계관이 존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세 종류의 세계관 가운데 어느 하나에 관련됨으로써 법적 가치의 서열이 달라진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라드브루흐는 법적 가치를 더 이상 분석이 불가능한 궁극의 가치로 간주하며 정의와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 등의 세 가지 요소로 구분해 파악하고 있다. 이 같은 가치 이념은 “서로 보합할 필요가 있으며, 서로가 그를 요구하지만 동시에 상호 모순되는 긴장 관계”로 나타난다고 했다.
이 세 가지 법적 가치 가운데 정의와 법적 안정성은 세계관의 대립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합목적성의 경우는 세계관의 입장이 문제가 된다.
라드브루흐는 이 세 가지 서열은 하나로 확정지을 수 없는데, 법적 가치의 서열은 세계관에 제약을 받으며 동시에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제약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곧, 경찰국가각주1) 의 시대에는 합목적성의 원리가 중시되고, 자연법 시대에는 정의의 형식적 원리가 중시되며, 법실증주의의 시대에는 법의 실정성과 안정성, 곧 법의 안정성이 중시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혼란기에는 법적 안정성이 가장 먼저 요청되고, 변혁기에는 합목적성 그리고 안정기에는 정의가 가장 먼저 요청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법적 가치 사이에 놓여 있는 이와 같은 모순 관계에 대해 모순이 존재하는 것만 보여 주며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으나 그 자신은 이를 자신의 철학 체계의 결함이라고 인정하지는 않았다. 곧, 철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결론의 직전 단계에 멈춰 서는 것이며, 또 인생을 용이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로서 바라보게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철학 체계란 그 얼개를 이루는 각 소재가 서로 반발하면서 동시에 서로 지탱해 주고 있는 고딕 돔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으며, “세계는 이성적인 목적 창조물이 아니다. 만일 하나의 원리로 세계를 모순이 없이 모두 설명해 낼 수 있는 철학 체계가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괴상한 것이 될 것이다. 만일 세계가 궁극적으로 모순되지 않고 인생에 결단 내릴 일이 없었다면 산다는 일 그 자체는 전적으로 무용한 것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라드브루흐는 “당파를 초월한다는 불손한 주장은 자기 자신이 초월적 계시를 받은 자임을 자부하는 것이 된다. 그런 일은 자신의 반지만 진짜 반지라고 믿는 자에게서만 가능한 일이다”라고 했다. 또 사람들이 내리는 가치 판단의 정당성은 “최고의 가치 판단과의 관계에서만, 곧 일정한 가치관 및 세계관의 범위 안에서만 확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가치 판단의 문제에 대해 합리적 인식의 한계가 있는 점을 인정하고, “궁극적 입장에 대한 학문적 기초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을 단념한 채, 각 개인이 각자의 입장을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빠짐없이 제시하는 것만을 자신의 임무로 한정짓고, 각 개인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하는 문제는 각 개인의 인격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양심의 결단에 맡겨야 한다”는 라드브루흐의 방법이야말로 상대주의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상대주의는, ‘전부이든 또는 각각이든 모든 가치 판단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배타적이고 의무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동등한 권리를 지닌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주의는 ‘보편적 관용’을 취하는 입장으로, 모든 정치적 확신의 자유로운 등장을 인정하는 민주주의와 저절로 동일한 것이 된다.
따라서 상대주의, 곧 민주주의는 하나의 세계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의 모든 대립적 세계관을 조정하는 데 가치를 발휘하는 하나의 절차라고 볼 수 있다.
라드브루흐의 이 같은 법철학 방법론이 전개되는 전제로, 다양한 법철학의 가능성을 간결하게 고찰해 놓은 ‘법철학의 여러 경향’이 있다. 여기에서는 여러 법철학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해 설명하고 있으나, 금욕적일 정도로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가담하고자 하는 관심은 전혀 표명되어 있지 않다.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
“그는 정교하고 천재적인 분석을 통해 법철학의 여러 문제에 담긴 수많은 복잡성을 명료한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문제를 간명하게 제기하고 그 의미를 증명하는 일은 문제의 해결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다(조르주 귀르비치).”
“인식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하며 마지막에는 절망적 입장에 처했지만, 그래도 의혹과 절망에서 빠져나와 재삼 하나의 과학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마르크스 에른스트 마이어).”
이와 같은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 『법철학』(1932)의 입장은 시종일관 이성에 기초하고 있다.
이 책에 전개되고 있는 라드브루흐(1878~1949)의 법철학 방법론은 놀랄 만큼 막스 베버의 사회과학 방법론과 닮아 있다. 특히 사회과학에 대한 베버의 ‘가치의 자유성’이라는 개념과 라드브루흐의 ‘법의 목적’, ‘법 이념의 상호 모순’에 대한 주장을 대조해 보면 이는 더욱 명백해진다.
이 책이 특히 주목을 받으며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은 전체에 걸쳐 적절한 문학 작품이 풍부히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 장은 그 장에서 논하려고 하는 주제를 잠언이나 시구 등을 통해 간결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또한 본문 속에서는 논리 구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거기에 적합한 소설의 한 대목이 인용되고 있다. 그 결과 무미건조하기 쉬운 ‘과학론’ 저술이 ‘법철학과 문학을 융합시킨 문화적인 저술’로 탈바꿈해 독자들의 흥미를 부추기고 있다.
경험과학적 입장에 입각해 가치론의 비판을 시도한 라드브루흐는 이 책을 서술하면서 분석 과정이나 검증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단번에 결론적 내용을 끌어내고 있는 점에서 다소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한 ‘개인주의, 초개인주의, 초인격주의’라는 삼위일체식 구성 등은 오늘날의 법철학의 발전 단계에서 보면 과거의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이 책이 20세기 법철학을 대표하는 저술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의문을 던질 여지가 없다.
저자 라드브루흐는 1878년 독일 북부의 뤼베크에서 태어나 뮌헨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 베를린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1902년 ‘상당인과관계론’으로 학위를 받았다. 다음 해인 1903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강사가 되었다. 이 시기에 게오르크 옐리네크1) , 막스 베버, 에밀 라스크 등과 친밀하게 교류하며 자신의 법철학의 기초를 쌓아 올렸다.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고 복귀한 뒤로는 사회민주당 당원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1921년부터 1923년까지 두 차례나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1926년에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정교수가 되었으나 나치가 정권을 잡자 교직 추방 제1호로 대학에서 쫓겨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직해 전후의 대학 행정의 발전에도 많은 공적을 남겼는데, 나치의 경험으로 인해 전후 그의 사상 체계가 조금 수정되기도 했다. 1949년 폐렴으로 죽었다.
- 1) 게오르크 옐리네크(Georg Jellinek, 1851~1911): 독일의 공법학자로, 19세기 독일 국가학을 집대성해 현대 공법학의 기초를 쌓아 올렸다. 신칸트주의의 방법인 이원론에 입각해 국가의 사회학과 국법학으로 나눈 체계를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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