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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법철학

[EBS 다큐프라임] 법철학 탐구 대기획 '법과 정의' 3부작

by 이덕휴-dhleepaul 2018. 10. 28.




관심있는 분야라서 그런지 더 재밌게 봤다. 

1부 법은 누구의 편인가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하면 사람들은 법에게 기대를 한다. 나를 구제해줄거라고. 법이 언제나 정의롭다는 믿음 때문이다. 과연 법으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걸까? 
법으로 정의를 실현할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아마도 법은 정의를 실현할 수는 없을거다. 인간이 만든 법은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인 정의를 실현할 수는 없겠지만, 가까워질 수는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법은 정의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믿고싶다. '믿고싶다'아아아아 힝......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의 '정의'에 대한 토론이다. 1부에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다만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를 엿먹일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다는게 좀 슬펐을 뿐.ㅋㅋㅋ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트라시마코스의 비유... 이게 진짜 아니꼬운데 할 말 없다. 


홉스는 인간이 자기보존을 위해 사회계약을 맺는다고 말한다. 이 사회계약을 유지하기 위하여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국가이다. 

거대한 국가(혹은 군주)의 몸이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분명히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왕권신수설'을 깨고 국가 권력이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홉스의 주장은 당시엔 센세이션이었겠징. 그 다음에 장자크루소의 '사회계약론'이 나온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금서였기 때문에 숨어서 돌려봤다고 한다.




정의의 여신의 모습은 국가마다 다르고 또 시대마다 달라져왔다. 눈을 가리고 있기도 하고, 눈을 뜨고 있기도 하고. 저울과 칼을 들고 있기도 하고, 저울과 책을 들고 있기도 하고 어떤건 저울만 들고있기도 하고 등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래의 그림은 정의의 여신 풍자화이다. 광대가 정의의 여신의 눈을 가리고 있다. 법이 현실의 부정에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을 풍자한 그림이다. 그 아래에 있는 그림에는 정의의 여신이 한 쪽 눈만 가리고 있다.


이건 내가 항상 기억하고 싶은 말이라서 캡쳐! '법은 언제나 불완전한 정의입니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정부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는 구성원들의 육체적 안전을 보살피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내가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내가 운이 좋아서 '살아 남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현재 전쟁이 진행 중인 국가들보다는 안전할지는 모르겠다. (모르겠다.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어.ㅋ) 하지만 수백명의 생명이 바다 아래로 가라 앉을 동안 정부는 존재의 이유를 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을 내세우고 있는건 국민이 아니라 국가다.  

버지니아주는 캐리벅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고, 그 사건을 기억할 수 있도록 표지판을 만들었다. 


알고 투표하자!!!!!


2부 정의의 오랜 문제, 어떻게 나눌까

1부는 캡쳐 많이 했는데, 2부랑 3부는 별로 하지 않았다. 이게 별로 감흥이 없어서 그런게 아니라, 마음에 드는건 많았는데 좀 귀찮아서ㅠㅠ 컨디션이 안좋아서 누워서 봤더니ㅎㅎ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두 친구가 신발을 함께 만들어 팔기로 했다. 한 친구는 부지런히 만들어 7켤레를 만들었고, 다른 친구는 같은 시간 동안 3켤레 밖에 만들지 못했다. 어찌되었든 총 10켤레를 팔았다. 제자가 '그래도 함께 만들어 팔기로 했으니, 5대5로 나누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7대3'이 정의로운 분배라고 말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배의 정의는 명확하고 단순해보인다. 하지만, '만약 3켤레를 만든 친구가 신발을 만들 가죽을 가지고 왔다면?', '게으름을 피운게 아니라 신체적 장애가 있어 최선을 다해 만들었는데도 3켤레 밖에 만들지 못한거라면?' 등 분배의 문제는 한 조건만 달라져도 달라지게 된다. 분배는 그만큼 복잡한 문제이다.




벤담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명제가 나온다.'도덕과 입법의 원리서설' 아 이거랑 존롤즈 무지의베일 실험을 캡쳐하지 않은건 지금 후회중이다. 다시 켜서 캡쳐하자니 귀찮아서ㅋㅋ 아까 그냥 손가락 한번 누르는 수고를 하는건데ㅠㅠ

벤담의 공리주의를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살펴보는 사례가 나온다. 어린이 다섯명이 있고, 피자 다섯조각이 있다. 그런데 이 어린이들 각각 피자 한조각을 먹었을 때의 쾌락이 다르다. 어떤 아이는 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아이는 피자 한조각을 먹었을 때 쾌락이 4이다. 피자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는 첫 번째 조각을 먹었을 때 쾌락이 9, 두 번째 조각을 먹었을 때 쾌락이 6이다. (표 참고, 숫자는 다를 수 있음)
1. 한조각씩 나눠준다. 11+9+4+7+10= 41
2. 쾌락이 높은 순으로 나눠준다. 11+10+9+7+6=43
벤담식으로 나눠주면 분명히 쾌락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C는 피자를 아예 먹지 못한다. 이게 공리주의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하는가?

 

 1조각

 2조각

A

 11

 2

 B

 9

 6

 C

 4

 1

 D

 7

 3

 E

 10

 4



이어서 존롤즈가 나온다. 존롤즈는 2차대전을 참전하여 전쟁을 경험하고 1950년대와 60년대 미국의 인권운동을 경험하면서 정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962년부터 하버드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2002년 사망했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름 동시대를 산(?) 분이라니!! 완전 영광이다. 아무튼 존롤즈의 '정의론'은 발간 당시 'green monster'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정의론이 초록색 표지였는데, 그 안에 내용이 어마어마해서 저렇게 불린거라는. 이 안에는 '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완전 매력 쩌는 개념인데, 이거 어떻게 현대과학으로 실현안되나ㅋㅋㅋ 국회로 들어가는 게이트에 시큐리티 체크하는 그거 지나가는 것처럼 그런거 지나가면 '원초적 입장'이 되는 그런 기계 같은건..... 개발안되나*.*?? 

여기에 또 실험하나가 나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지인에게 빌린 6000만원을 갚아다오'라는 말씀을 남기신다. 4남매가 둘러앉아서 어떻게 이걸 나눌까 고민한다. 기억나는대로 대충 써보면 이렇다.

 장녀

 독신/직업:의사/연봉:1억원

 똑같이 1500씩 갚자. 나도 돈 다 묶여있어서 현금은 없다.

 장남

 자녀있음/직업:중소기업차장/연봉:4천

 1500은 부담스럽다. (차남에게)맞벌이도 하는데 네가 좀 더 내라.

 차남

 맞벌이,자녀있음/직업:공무원/연봉:8천(부인연봉포함)

 공무원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자녀가 곧 미국으로 유학간다.

 차녀

 실직중인남편,자녀있음/직업:계약직외판원(?)/연봉:2천

 내 사정에 어떻게 내냐. 난 한 푼도 못낸다.


4명으로 구성된 5개의 그룹이 나온다. 4명은 각각 4남매 중 한명을 뽑는데, 본인이 누굴 뽑았는지 모르는 채로 6000만원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토의한다. 결론적으로는 금액에 차이는 있지만 모두 장녀에게 조금 더 많은 부담을 주었고, 차녀에게는 가장 적은 부담을 주는 방향으로 결정을 했다. 결정을 한 후 자신이 누구를 뽑았는지를 알게 된다. 다들 '만약 내가 누굴 뽑았는지 알았다면 다르게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고 인터뷰를 한다. 하지만 본인들의 결정에 대하여 '(그럼에도) 잘 한 결정'이라고 말한다. 

토마스포기/토마스스캔론/제임스휘트먼


3부 죄와 벌, 인간을 처벌하는 어려움에 관하여

안그래도 이번 달에 '체사레 벡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을 읽으려고 했다. 덕분에 접근이 조금 수월해졌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 지금 생각하면 '오마이갓 너무 잔인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함무라비 법전은 형벌의 집행을 국가가 함으로써 지은 죄 이상의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제한을 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거다. 예를 들어 눈을 뽑았는데, 죽여버린다든지 뭐... 그런걸 막아주는거..! 물론 '신분'에 따라 같은 죄가 다르게 처벌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사형제'에 대한 논의에 불을 부친 사건이 있었다. '장 칼라스'사건이다. 칼라스의 아들이 시체로 발견되었고, 칼라스는 용의자로 지목된다. 개종을 하지 않은 아들을 죽인거 아니냐며 몰아부쳤다. 칼라스는 '아들을 죽이는 아버지가 어디있냐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부인하지만 결국 사형당한다. 3년뒤, 볼테르의 노력으로 칼라스의 무죄가 밝혀진다. 그러나 이미 사형은 집행된지 오래이고, 되돌릴 수 없다.

체사레 벡카리아는 고문과 사형에 반대했다. 아 근데 






칸트와 벡카리아의 가상대화이다. 칸트는 사형제를 지지했고, 벡카리아는 반대했다. 이 가상대화는 몇 해 전 노르웨이 우토야섬에서 77명을 살해한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을 놓고 하는 대화이다. 그는 노르웨이 법정최고형인 21년형을 선고받았다. 노르웨이는 사형폐지국이다.


칸트와 벡카리아가 살던 시대의 '형벌'에 대해 살펴보면, 한마디로 '법 위에 군주가 있었다.' 형별이 강력하긴 했지만, 군주는 '사면'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부과된 형벌이 집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다. 칸트와 벡카리아는 둘 다 이걸 거부하는데, 거부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칸트는 범죄자체에 초점을 맞췄고, 벡카리아는 처벌의 목적에 초점을 맞췄다. 

이 교수님(존 가드너..?)은 칸트가 브레이빅에 대해서는 분명히 사형을 주장했을거라고 한다. 칸트가 '어떤 섬나라가 있는데 그 섬이 곧 가라앉을거라면 그 섬을 떠나기 전에 국가가 해야할 일은 감옥에 있는 살인자를 처형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점을 볼 때, 칸트는 77명이 아니라 1명을 죽였어도 사형을 해야한다고 했을거라는.

벤담의 판옵티콘


형벌이 '형식적평등'이라는 말이 나온다. 누구든 간에 같은 죄를 저지르면 같은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나오는 내용. '형벌의 평등은 실질적으로 동등한 효과를 갖는 형벌의 평등을 뜻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가는거죠.'


Posted by 돼지은 돼지은




출처: http://giannachung.tistory.com/166 [Gianna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