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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법철학

법철학 강요

by 이덕휴-dhleepaul 2018. 6. 30.

                        법철학 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국가 철학의 논리 전개를 자유의 개념에서 출발한 『법철학 강요』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모색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문제의 소재와 그 해결 방법을 시사해 주며, 아울러 사고의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제시해 주고 있다.

법과 국가의 본질을 ‘자유’에서 추구

『법철학 강요』에서 헤겔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는 것은 법과 국가에 관한 고찰이 ‘학문(Wissenschaft)’으로 확립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헤겔에 의하면 ‘학문’이란 사물을 객관적 필연성(법칙)에 의거해 파악하는 것이며, 아울러 사물을 그 본질의 자기 전개로서 서술하는 것이다. “이성적인 것이야말로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이야말로 이성적이다”라는 유명한 말은, 현실의 존재 속에는 이성, 곧 법칙이 관철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 본질적인 것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적으로 사물을 참되게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헤겔의 기본적 입장을 요약한 말이다. 『법철학 강요』에서 이 같은 본질에 해당하는 것은 ‘자유로운 의지’이다. 이러한 이유로 『법철학 강요』 전체는 ‘자유 실현의 단계적 순서’라는 형태로 서술되어 있다. 이는 법학을 일종의 사회 법칙에 관한 과학으로 확립시키고자 한 연구의 선구적 업적이며 동시에 법과 국가의 본질을 ‘자유’에서 추구했다는 점에서 헤겔 사상이 근대 시민혁명(특히 프랑스혁명)의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을 명백히 밝혀 주고 있다(다른 한편에서 헤겔이 프랑스혁명을 비판한 점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이러한 헤겔의 ‘자유로운 의지각주1) ’가 최초로 취하는 형태는 자연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이다. 이는 제1부의 ‘추상적인 권리(법)’에서 논해지고 있다. 여기에서 헤겔은 먼저 근대 시민법의 기본적 세 가지 요소인 인격(법적 관계의 주체)과 소유(주체와 자연 대상과의 관계), 계약(대상을 매개로 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원리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근대 시민법을 이 같은 세 가지 요소를 통해 파악하는 것은 오늘날의 법학에서도 인정되고 있다(더욱이 헤겔은 ‘불법’ 부분에서 민사상 및 형사상의 불법을 논하고 있다).

이어서 헤겔은 제2부에서 ‘자유로운 의지’가 그 내면을 향해 반성적이 될 때 나타나는 ‘도덕’을 논하고 있다. 이 부분은 칸트의 도덕론을 전제로 한 것으로, 헤겔은 칸트가 인간의 내면적 자율성을 이론화한 공적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헤겔은, 칸트의 도덕론은 ‘도덕 법칙’이 ‘의무를 위한 의무’에 지나지 않는 ‘공허한 형식주의’라는 점을 지적하며, 도덕론도 구체적인 ‘내용’을 전제로 하며 무엇이 선인가를 현실적으로 제시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개인의 자유와 관련지어 실제 사회의 선한 질서를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며 이어서 제3부 ‘윤리(인륜)’로 옮겨 가고 있다.

가족은 국가에서 ‘제1의 토대’

헤겔이 ‘윤리’ 부분에서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것은 가족이다. 헤겔의 가족론의 특징은, 가족을 자립한 모든 개인의 ‘애정’에 기초한 관계로 본 데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헤겔은 봉건적 ‘집안’ 제도를 비판하며 부권과 친권의 제한을 주장하고 또 나폴레옹의 민법전에 근거한 균분상속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헤겔의 가족관을 보면, 그것은 근대적인 단혼의 소가족적인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헤겔의 사상이 봉건적 제도가 아닌 근대적 자유에 기초한 제도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헤겔은 ‘사랑과 신뢰와 순종’을 기초로 한 가족 구성원의 연대를 중시하면서 그 같은 마음이야말로 국가 생활에서 연대성을 이루는 하나의 기반이 된다고 하며, 가족은 ‘국가에서 제1의 토대’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닌 가족이란, 다른 한편에서는 근대 시민 사회의 경제 법칙에 의해 가족이 해체의 위기에 놓여 있는 점을 꿰뚫어 보며 그 근대적 가족의 운명을 냉정한 눈으로 지켜본 것이기도 하다.

‘가족’에 이어 헤겔은 ‘시민 사회’를 논하고 있다. ‘시민 사회’란, 사회 관계 가운데 주로 경제 활동을 중심으로 한 측면을 말하는 것으로, 헤겔은 이를 정치를 중심으로 한 측면인 ‘국가’와 구별하고 있다. ‘시민 사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현상은, 신분 관계를 통해 경제 활동과 정치가 일체화되어 있던 전근대 사회와 달리 근대 사회에 있는 특유한 것이었다. 이 같은 현상을 최초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파악해 낸 것이 헤겔의 『법철학 강요』이다.

‘시민사회론’에서 나타난 헤겔의 특징은 평등한 각 개인의 경제적 자유(‘특수성’의 계약)가 옹호되어야 할 필연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헤겔은 이 같은 전제에 입각해 애덤 스미스 등의 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연구를 참고로 근대 시민 사회의 ‘욕망의 체계’의 법칙을 밝히고 있다. 헤겔은 ‘시민 사회’는 이기적인 각 개인의 상호 관계로 맺어져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필연적으로 ‘방탕한 향락과 비참한 빈곤’으로 이행하게 된다고 봄으로써 자본주의의 사회 문제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겔은 ‘시민 사회’의 이 같은 황폐화 작용으로부터 사회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국가’를 그다음 번 과제로 문제 삼고 있다.

신분이나 직업 단체는 국가의 ‘제2의 토대’

『법철학 강요』은 ‘추상적 권리(법)’와 ‘가족’, ‘시민 사회’ 부분에서는 진보적인 날카로운 분석을 보였지만, 그에 비해 ‘국가’ 부분은 현상을 긍정하며 보수적이어서 그 정체를 잃었다고 종종 비판되고 있다. 분명히 여기에서는 예를 들어 ‘절대 부동의 자기 목적’이라고 절대화되어 있는 국가나 (입헌)군주제가 최고의 제도로 국가에서 본질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등의 편견이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점만 가지고 헤겔을 일방적으로 국가주의자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헤겔은 앞에서의 두 가지 사항에서 전자에 관해서는 ‘오늘날에는 개인의 주체적인 자유가 고려되어야만 한다’는 점, 후자에 관해서는 봉건적 또는 절대주의적 군주제와 달리, ‘오늘날의 군주제의 존재는 명목적인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법률이 보다 중요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오히려 ‘국가’ 부분에서 헤겔이 실로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개인의 자유가 더욱 확대되는 동시에 ‘시민 사회’의 이기심으로 가득 차게 되는 자유와 프랑스혁명에서 자코뱅적인 폭도들이 보인 무정부적 자유를 어떻게 하면 극복하고 선한 사회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를 위해서 헤겔은 개인과 국가가 ‘유기적’으로 매개각주2)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군주와 국민밖에 없는 전제 국가에서 국민이 행동할 때란 단지 조직에 대한 파괴적 대중으로 행동할 때뿐이다. 그러나 군중 역시 유기적으로 일어날 경우에는 스스로의 이익을 법과 질서에 적합한 방식으로 실천한다.”

‘유기적’ 매개란 이미 가족론 속에서 가족을 ‘국가에서의 제1의 토대’라고 상정한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헤겔은 더욱이 ‘시민 사회’에서도 이기적 개인이 선한 사회의 전제인 공공적(公共的) 마음을 갖게 되는 제1조건으로 ‘교양의 수련’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신분이나 직업 단체를 국가의 ‘제2의 토대’로 간주해 동일한 신분을 지닌 사람들의 공동 협업적 관계가 공공적 마음을 함양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치고 있다.

이와 같은 바람은 ‘국가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헤겔은 국가에서의 일방적 중앙 집권화가 아니라, 중앙 집권화와 함께 다른 한편에서 직업 단체나 지방 자치 단체에 의한 자치가 확보되어야 하며, 그 같은 자치를 통해 함양되는 단체 정신이야말로 ‘유기적인’ 국가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겔이 신분 제도에 의한 의회를 구성하고자 주장한 것 역시 이 같은 바람을 나타낸 것이다(이상과 같은 제도를 통해 수립되며, 『법철학 강요』의 출발점을 이루는 ‘즉자적 그리고 대자적 자유’란 공공적 마음이 깃들어 있는 자유를 뜻한다).

이상은 헤겔이 프랑스혁명의 자유나 근대 자연법 이론각주3) 적 자유의 입장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고전 정치학적의 입장인 신분제적이며 다원적인 국가의 입장을 결합시키고자 하는 바람을 나타낸 것으로, 『법철학 강요』의 부제로 ‘자연법과 국가학 강요’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실로 이러한 두 가지 입장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법철학 강요』는 그 같은 종합적 입장에서 ‘진실한 자유의 바람직한 모습’을 추구한 저술이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헤겔(1770~1831)은 1770년 독일 남부의 슈투트가르트에서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선조 대대로 프로테스탄트 신자였다. 1788년 튀빙겐신학교에 입학해 횔덜린(Friedrich Holderlin, 1770~1843), 셸링(Friedrich Wilhelm Schelling, 1775~1854) 등과 친교를 맺으며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1801년부터 7년에 걸쳐 예나대학교의 임시 강사와 원외 교수가 되었으며, 그동안 칸트와 피히테의 입장에서 셸링으로 사상을 전환했고, 마침내 독자적 입장에서 셸링을 비판하기에 이른 『정신현상학』(1807)을 간행했다. 이해 나폴레옹군에 의해 예나대학교가 폐쇄되어 실직하게 된 헤겔은 베를린에서 신문 편집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1808년부터 뉘른베르크 김나지움의 교장이 되고, 이곳에 재직하면서 『철학입문』과 『논리학』을 출판했다.

1816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철학 교수가 되었으며, 『철학강요』를 출판했다. 1818년 피히테의 후임으로 베를린대학교에 초빙되었으며, 1821년에 『법철학 강요』을 출판하고, 1829년에는 대학 총장에 취임했다.

그동안 철학사와 미학, 종교철학, 역사철학, 법철학 등을 강의하면서 독일 학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헤겔학파를 형성하게 했다. 1831년 콜레라에 걸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