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죽음은 인간이 경험하는 고난 중에서 가장 극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고난을 단번에 이겨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입니다.
본문의 고린도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도리어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말이든 부정적인 것은 교회 내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안 믿고 부인하는 자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국제적인 항구도시 고린도에는 혼합종교적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있었습니다.
플라톤철학의 영향을 받은 자들은 “죽음을 통해 영혼이 몸에서 분리된다”고 믿었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 추종자들은 “죽음을 통해 인간의 존재는 완전히 끝난다”고 믿었습니다.
또, 신비적인 종교를 믿는 자들은 “신과 연합하여 이 세상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고, 죽은 후에는 영혼을 통해 계속적으로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헬라인들은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용도 폐기되고, 영혼만 계속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헬라인들은 “육신이란 더러운 장막에서 해방된 영혼이 육신 속으로 재수감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고린도에 있는 교회 성도들이 육체와 영혼이 다시 결합하는 부활을 믿겠습니까?
그들이 믿는 이원론 사상 때문에 죽은 자의 몸이 부활하여 영생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부활의 타당함을 주장합니다. 부활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스’ 아닙니까?
이 단어의 뜻은 ‘죽음으로부터 살아난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하여 예수님이 육체의 죽음으로부터 살아난 것임을 논증합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며 부활의 사실을 들어 질책합니다.
고린도전서 15:3-8절 말씀을 통해서는 예수님이 몸소 부활을 증거 하신 사실을 밝힙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성경대로 분명히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여기서 ‘성경대로’라는 것은 시편 16:10-11절 말씀을 가리킵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또한, 이사야 53:10절 말씀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 성경말씀대로 예수님은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시고 다시 살아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생존해 있던 게바와 열 두 제자와 오백여 형제와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과 사도바울에게도 보이셨습니다.
또, 막달라 마리아 등 그 외의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은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몸소 보여 주시며 증거 하셨습니다.
무려 열한 번이나 보여 주시며 증거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보다 더 확실한 부활의 증거가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특히 사도바울은 과거 자신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예수님을 핍박했던 자였기 때문에 더욱 확신 있게 자신을 변화시켜 주셨던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그가 증거 한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 지낸 바 되심과 부활하심 아닙니까? 그렇죠?
그 말씀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요 진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진실로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습니까?
안타깝게도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악한 영들이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고요.
또, 성도들이 부활신앙으로 살지 못하도록 자꾸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성도이면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여러 가지입니다.
성도이지만 부활을 불교의 윤회설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즉,“좋은 일 하다가 죽으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죄 짓다 죽으면 지옥에서 벌 받고 가축이나 여러 생물로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런 이론과는 근본적으로 판이한 사건입니다.
아니면 식물학자들처럼 부활을 회생과 같은 것으로 믿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겨울 동안은 죽은 것 같지만, 겨울이 지나면 굳은 땅을 뚫고 올라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그런 회생과도 판이한 사건입니다.
또, 부활을“영혼만이 영원히 살아 있다”는 영혼불멸설과 같은 것으로 믿는 자들도 있습니다. 부활은 결단코 그런 시시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활을“진리는 영원히 산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는 철학자들의 허구와 같은 것으로 믿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것 또한 부활과 아주 동떨어진 이론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사건임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부활을 믿는 자들의 생명을 회복시키는 사건임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된 성도들은 이전의 생각과 방식들을 접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수준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아울러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즉각 반응하도록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느 것이든 강요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따라 우리가 살도록 배려하십니다.
설령 나쁜 마음을 갖고 나쁜 길을 향해 감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내버려 두십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깨닫지 못한 채 헤매면 주셨던 자유의지를 잠시 구속하십니다.
매를 드시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즉각 순종하도록 이끄십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도록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으면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게 되고요.
이전의 삶과는 달리 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강한 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부활이 없거나 부활이 있어도 부활을 부인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본문 14b-19절 말씀처럼 사도바울이 전파하는 복음도 헛것이 되고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 한 자들이 다 거짓 증인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도 영영 죽은 것이 됩니다.
성도들의 믿음도 헛된 것이 됩니다. 성도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과 예수님 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아무 소망 없이 살게 되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너무 감사하고 영광스럽게도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역사적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근본적인 이유가 됐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과 교회에 강력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의 최고소망이 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성도는 죽었다고 하나 잠을 자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1-52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보십시오. 성도들은 죽었지만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난다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의 죽음을 깊은 잠에 빠진 것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긴 잠을 자는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천군천사의 나팔소리에 다시 살아날 난다”고 말씀합니다.
죽은 자들이라 표현하나 영원한 죽음이 아니기 때문에 깊은 잠입니다.
시편 116:15절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죽음을 귀중한 것으로 보십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의 육체가 썩는다 하더라도 죽음은 영원한 사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죽음이 영원히 썩어 없어지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죽음을 귀중하게 보실 리 만무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이 세상에서의 모든 고통과 수고를 끝낸 안식으로 여기십니다. 나아가 곧 부활의 영광이 있을 것으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도들의 죽음을 한 사람 한 사람이 잠든 것으로 보고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5:28-29절에서는 부활 때 일어날 일들을 말씀합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부활에 대한 소망의 말씀이 있음에도 악한 일을 행한 자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부활의 소망과 축복이 있는데 어찌하여 악한 자가 생길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악을 저지르고 사는 것입니다.
반면에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어떻게 해서 그리 됩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활도 믿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진실로 진실로 믿습니까?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성도건 불신자건 모든 사람들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에스겔 37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주 사실적으로 부활하게 하실 것입니다.
죽고 썩어 창조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흙들이 먼저 뼈를 이루겠죠?
뼈와 뼈들이 들어맞아 서로 연결이 될 것입니다.
뼈와 뼈가 연결된 곳에 힘줄이 생기고 그 힘줄 위에 살을 입혀질 것입니다.
모든 살을 가죽으로 덮을 것입니다.
완벽하게 다시 살아난 육체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넣어 주셨듯이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주심으로 완전한 육신과 영혼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유기적인 부활이라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로 죽은 자들이 유기적인 부활이 아닌, 한 번에 부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부활하게 하실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사람들의 부활이 엄연히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사실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부활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요한복음 11:25-26절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 주님이 부활절 아침 이 시간에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참소망교회를 향해 물으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가 영원히 죽지 않음을 믿는냐”고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믿습니까?
또 우리도 장차 부활할 것임을 믿습니까? 영원히 죽지 않음도 믿습니까?
믿는다면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데 만약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만에 하나라도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부활을 부인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다.
나아가 예수님을 죽음으로부터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요한복음 21:18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요구하신 순교자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것은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과 조반을 드신 후 하신 말씀입니다. 이어서 우리 주님은 18절 말씀의 주석이 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게 19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보십시오. 우리 주님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위해 순교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를 향해서도 요구하십니다.
“베드로처럼 순교하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주신 사명 잘 감당하라”고 말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남는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아야 합니다.
부활의 이 아침에 그런 자아로부터 완전히 변화되고 회복된 성도와 목회자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출처] 만약 부활이 없다면?(120408)|작성자 시골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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