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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쾌락의 쳇바퀴

by 이덕휴-dhleepaul 2019. 7. 15.

쾌락의 쳇바퀴  - 왜 행복은 소득순이 아닌가?


행복한 일이 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 또 다른 것을 욕망하게 되는 현상. 소득 수준이 높은 국가들이 오히려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이 낮은 이유를 알려준다. 생활수준이 높아져도 행복한 감정은 오래가지 않기 때문에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쳇바퀴를 돌리듯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역설을 의미한다.


2012년 6월 영국 민간 싱크탱크 신경제재단(NEF)에 따르면 최근 전 세계 151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와 기대 수명, 환경오염 지표 등을 평가해 국가별 행복지수(HPI)를 산출한 결과 코스타리카가 총 64점으로 2009년에 이어 연속 1위에 올랐다. 이어 베트남이 60.4점으로 종전 조사보다 3단계 올라선 2위에 랭크되었으며, 다음으로 콜롬비아(59.8), 벨리즈(59.3), 엘살바도르(58.9) 등의 순으로 각각 파악되었다.

HPI 상위 10위국이 모두 경제력이 취약한 베트남과 중남미 국가들로 채워졌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베트남에 이어 방글라데시 11위(56.3), 인도네시아 14위(55.5), 태국 20위(53.5), 필리핀 24위(52.4), 인도 32위(50.9), 일본 45위(47.5) 등의 순이었으며, 한국은 43.8점으로 63위에 머물렀다. 또 최근 고도성장으로 세계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중국은 종전 20위에서 무려 40계단이나 추락한 60위로 밀려났다. HPI 최하위 3위는 카타르(25.2점), 차드(24.7점), 보츠와나(22.6)로 조사되었으며, 북한은 아예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조사는 무엇에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만, 여러 조사의 일관된 흐름은 행복은 소득순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화된 여러 나라에서 지난 50년 동안 부(富)의 수준은 2~3배 높아졌음에도 사람들의 행복 수준과 삶의 만족 수준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우울증만 더 흔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선 이미 1974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교수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 1926~)이 「경제성장이 인간의 운명을 개선시키는가?(Does Economic Growth Improve the Human Lot?)」란 논문에서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로 설명한 바 있다. 방글라데시, 부탄 같은 빈곤국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높은 반면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은 행복도가 낮다는 연구 결과에 근거해 소득이 일정 수준에 올라 국민의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 증가가 더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 내용이다.

이 연구 결과에 대해선 소득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기대치도 따라서 높아지기 때문이라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신의 위치를 평가하는 경향이 심할수록 소비가 증가해도 그다지 큰 행복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행복지수가 정체되는 시점은 보통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어선 때부터라고 한다. 영국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Richard Layard, 1934~)는 『행복, 새로운 과학에서 얻는 교훈(Happiness: Lessons from a New Science)』(2005)에서 평균 연간 개인 수입이 2만 달러가 넘는 나라에서 그 이상의 수입은 행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이른바 '레이어드 가설'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의 물질적 욕망엔 이른바 '만족 점(satiation point)'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활수준은 알코올이나 마약과 비슷한 면이 있다. 새로운 행복을 경험하게 되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일종의 쳇바퀴를 타는 셈이다. '쾌락'이란 쳇바퀴를. 행복을 유지하려면 계속 쳇바퀴를 굴려야 한다."


쾌락의 쳇바퀴

ⓒ gualtiero boffi/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는 심리학자 필립 브릭먼(Philip Brickman)과 도널드 캠벨(Donald Campbell)이 1971년에 발표한 「쾌락 상대주의와 좋은 사회 설계(Hedonic Relativism and Planning the Good Society)」라는 논문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1990년대 후반 영국 심리학자 마이클 아이센크(Michael Eysenck, 1944~)가 이 개념을 '쾌락의 쳇바퀴 이론(hedonic treadmill theory)'으로 발전시켰다.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은 1999년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족의 쳇바퀴(satisfaction treadmill)'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하버드대학 심리학 교수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 1957~)는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을 연구했는데, 로또가 주는 행복의 효과가 평균 3개월이 지나면 사그라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출세의 꿈을 이룬 사람도 평균 3개월이 지나면 예전과 똑같은 크기만큼 행복하거나 불행해지며,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평균 3개월이 지나면 다시 웃을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게 바로 '쾌락의 쳇바퀴'다.

이스털린은 1978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상품이 적혀 있는 목록에서 '갖고 싶은 것'과 '현재 가진 것'을 선택하라고 했다. 16년 후 같은 참가자에게 같은 목록을 주며 다시 선택하게 했다. 그러자 참가자 거의 전원이 과거에 갖고 싶은 것으로 선택했던 물건을 현재 보유했으며, 첫 설문에서 '갖고 있는 것'으로 선택한 물건을 현재 갖고 싶은 것으로 표시했다. 현대인의 일상이 '쾌락의 쳇바퀴'에 갇혀 있다는 걸 말해주는 연구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미국 저널리스트 그레그 이스터브룩(Gregg Easterbrook, 1953~)은 『진보의 역설(The Progress Paradox: How Life Gets Better While People Feel Worse)』(2004)에서 "우리는 왜 더 잘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를 '진보의 역설(progress paradox)'이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2008년 미국 미시간대학 경제학과 교수 저스틴 울퍼스(Justin Wolfers, 1972~)와 베시 스티븐슨(Betsey Stevenson, 1971~)은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감은 커진다"고 반론을 폈다. 세계 150여 개 나라 데이터를 계량경제학 기법을 동원해 엄격하게 조사한 결과, 한 나라 안에서 소득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들보다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삶에 대한 만족감이 소득에 비례해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한 해 가구 소득이 25만 달러를 넘는 사람은 90퍼센트가 매우 행복하다고 응답한 반면 연소득 3만 달러 미만인 사람은 42퍼센트만이 만족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퍼스는 "레이어드 교수가 제시한 1만 5,000달러나 2만 달러 이상의 소득에서도 삶의 만족감이 소득에 비례해서 늘어났다"며 '만족 점'은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와 관련된 『중앙일보』(2013년 10월 5일)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자.

─ '돈이 더 많아져야 행복해진다'는 말인가.

"조금은 말장난으로 들릴 수 있지만, 우리는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주장하고 있다. 인과관계가 아니란 말이다."

─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행복의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다만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주관적인 만족감이 커지는 패턴을 확인했다는 얘기다."

─ 좀더 쉽게 설명해줬으면 한다.

"예를 들면 소득이 늘어나면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다. 낮은 소득에선 돈 많은 직업을 최우선시해야 한다. 반면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가족과 같이 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 돈이 여러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말인가.

"비슷한 얘기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의 원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높은 소득이다. 소득이 많아지면 일을 줄여 더 건강해질 수 있고 스트레스에서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좀더 건강해지고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진 게 행복의 요인이다. 돈은 그 요인들을 얼마나 갖출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일 뿐이다."

이 논쟁을 계속한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재테크 상담 전문가인 수지 오먼(Suze Orman, 1951~)의 다음과 같은 말에 답이 있는 건 아닐까? "저는 결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없구요. 그렇지만 저는 돈이 없으면 삶이 비참해진다고는 자신 있게 말하고 싶어요."

'쾌락의 쳇바퀴'는 허망하지만, 아예 그 쳇바퀴에 들어갈 수도 없는 사람들에겐 그나마 그림의 떡은 아닐까? 그럼에도 '쾌락의 쳇바퀴' 개념이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안이나마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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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국가별 행복지수 1위는 코스타리카…한국은?」, 『동아일보』, 2012년 6월 18일.
  • ・ 조너선 헤이트(Jonathan Haidt), 권오열 옮김, 『명품을 코에 감은 코끼리, 행복을 찾아나서다』(물푸레, 2006/2010), 165쪽.
  • ・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에드워드 스키델스키(Edward Skidelsky), 김병화 옮김,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부키, 2012/2013), 175~180쪽; 이효영, 「행복의 기술」, 『서울경제』, 2012년 7월 13일.
  • ・ 줄리엣 쇼어(Juliet B. Schor), 구계원 옮김, 『제3의 경제학: 세상을 바꾸는 착한 경제생활』(위즈덤하우스, 2010/2011), 250쪽.
  • ・ 리처드 레이어드(Richard Layard), 정은아 옮김, 『행복의 함정: 가질수록 행복은 왜 줄어드는가』(북하이브, 2005/2011), 63~67쪽.
  • ・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이경남 옮김, 『공감의 시대(The Emphatic Civilization)』(민음사, 2010), 621쪽, 6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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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롤프 도벨리(Rolf Dobelli), 두행숙 옮김, 『스마트한 생각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52가지 심리 법칙』(걷는나무, 2011/2012), 126~130쪽.
  • ・ 이윤미, 「車스티커에 붙은 인간의 심리를 읽다」, 『헤럴드경제』, 2012년 12월 7일.
  • ・ 그레그 이스터브룩(Gregg Easterbrook), 박정숙 옮김, 『우리는 왜 더 잘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 진보의 역설』(에코리브르, 2004/2007).
  • ・ 이인식, 『이인식의 멋진 과학 2』(고즈윈, 2011), 283~284쪽.
  • ・ 강남규, 「"소득 늘어난 만큼 행복해진다"…메르켈 독트린 뿌리째 흔들어」, 『중앙일보』, 2013년 10월 5일; 매트 리들리(Matt Ridley), 조현욱 옮김, 『이성적 낙관주의자: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김영사, 2010), 50~53쪽.
  • ・ 「Orman, Suze」, 『Current Biography』, 64:5(May 2003), p.62.

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출처

생각의문법
생각의문법 | 저자강준만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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