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 >
김태형의 심리학에서 다시 마주하는 마르크스의 세계관이 반갑습니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서 철학자나 경제학자가 발견하지 못하는 요소를 찾아내는 당시의 심리학자들이 있었네요.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은 사람이 본질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견해에 기초하고 있다. 즉 마르크스주의에서 사회적 존재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해당사회에 속한 사람의 심리나 특성이 사회적 관계에 의해 규정됨을 의미한다. 이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명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는 마르크스가 창시한 사적 유물론의 제1명제이다. 여기에서 ‘사회적 존재’란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과 경제적 관계를 말하며, ‘사회적 의식’이란 그것을 반영하고 있는 정치, 법률, 철학, 도덕적 견해들과 과학, 종교 등을 말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적 존재는 사회적 의식의 원천이고 기초이며, 사회적 의식은 사회적 존재의 반영이며 산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스크는 사회적 존재는 일차적이고 사회적 의식은 이차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단순화시키면, 마르크스의 주장이란 결국 해당 사회가 인간 심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에리히 프롬은 ‘경제제도의 특성에 의해 한 개인에게 정해진 삶의 양식이 그의 전체적인 심리를 결정하는 제1차적인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자기 보존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그에게 주어진 삶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고 마르크스의 주장에 동의했다.”
“사람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황량한 벌판 위에서 태어나 살아가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특정한 사회,역사적 상황에서 태어나며, 거기서 살아간다. 고대 노예제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대부분 노예로 살아가고, 중세 봉건제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농노로,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리고 이에 따라 노예와 농노, 노동자의 심리가 각각 달라진다.
마르스크스이 주장은 사실 오늘의 시점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마르크스가 사적 유물론을 창시했던 시대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마르크스의 견해는 올바른 주장이었을 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아주 혁신적인 주장이어서 여러 분야의 뛰어난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심리학 분야에서 가장 급진적인 이론가였던 프로이트는 사적 유물론을 일정하게 비판하면서도,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다음과 같이 지지했다.
‘마르크스주의의 강점은 역사에 대한 입장이나 이에 근원을 둔 미래에 대한 예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제적인 관계가 그들의 지적이고 윤리적이고 예술적인 견해에 미치는 경정적인 영향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에 있다. 이제까지 거의 완전히 무시된 채로 있었던 일련의 상관관계와 의존성이 그와 더불어 발견되었다.’”
“프롬은 프로이트처럼 단지 지지를 표명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존재(구체적으로는 경제적 하부구조)가 어떻게 사회적 의식(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상부구조)을 규정하는지를 심리학적으로 명확히 밝히기를 원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경제적 기초가 어떻게 해서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변환하는지를 밝히지는 않았다. 내 생각으로는, 정신분석의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마르크스의 학설에 있는 이 간극을 메울 수 있고, 경제적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를 결부시키는 메카니즘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리비도설(성욕설)을 인정하던 초기에는 ‘경제적 기초 -> 리비도적 구조 -> 정치적 상부구조’로, 그리고 리비도설과 결별한 후기에는 ‘경제적 기초 -> 사회적 성격 -> 정치적 상부구조(이념과 사상)’라는 일련의 흐름을 제시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p.33~36)
: 김태형 저 <싸우는 심리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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