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라 옳다 그르다를 평할 수 없다. 단지 참고로 읽어보자
복음주의/개혁주의 신앙전통에 속한 성경독자는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서 신앙과 삶의 유일한 척도라고 믿는다.
문제는 이러한 믿음이 성경을 바르게 읽는 것을 자동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명 이것이 원리상으로 그렇고 실제적으로도 그런데도, 목회자를 포함한 신학을 전공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법을 별도로 배우려하지 않고 신학을 공부하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무책임한 경우는 믿음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성경의 영적인 의미가 발견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성경은 영적 문헌이기에 인간 이성을 통해서는 이해할 수 없고 오직믿음 혹은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만 성경의 영적인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정작 성경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는 일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한다. 즉 이러한 생각은 여전히 일종의 직통계시를 듣기 원하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이 특정한 역사적 정황과 특정한 문학적관행을 수용하셔서 자신과 자신의 뜻 곧 신학적 의미를 계시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성경의 근본적 성격을 철저히 외면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하는 것은 매우 자명한 일이다.
성경의 본래적인 성격에 따라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만 성경을 바르게 읽고 해석할 수 있다.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믿음과 성령의 조명은 성경 독자와 성경해석자가 갖추어야 할태도요 바른 덕목으로서의 전제이지 이것들이 성경을 읽는 방법에 관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 독자나 해석자가 성경을 펼쳐놓고 가만히 그냥 앉아 있는데, 믿음이 작동되고 성령이 역사해서 본문의 의미를 밝혀주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특정한 역사적 정황 하에서 특정한 문학적 관행들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의사소통하기 위한 방식으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글로 쓰인 문헌(literary text)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 읽기와 성경 해석은 인간의 이성적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이 역사비평가들의 주장이다. 동시에 성경은 영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생하지 못한 이성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중생한 이성,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통해서 인간-주도적인 자율로부터 구속되어 하나님-의존적인 이성을 가진 자로서 믿음과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사는 자만이 성경의 본래적 성격과 목적에 따라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성경의 고유한 본래적 성격에 따라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단순히 중생한 이성을 통한 해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주도적인 이성의 자율과 상상력에 따라서 역사적 실체를 밝힐 수 있고 이에 따라 진리를 객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인식하에서 성경 문헌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려는 추론적인 성격의 역사-비평적 방법(통시적 해석 전통)을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사용하되 보다 바람직하게는 우리 앞에 있는 최종적인 현재 형태의 본문을 존중하여 숲을 보듯 본문을 유기적으로 통합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일(공시적 해석 전통)에 천착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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