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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므두셀라

by 이덕휴-dhleepaul 2019. 11. 4.

 

창세기 5장에서 셋의 후예들의 가계를 볼 때에969세를 향수한 인류 역사상 최고 장수한 므두셀라를 봅니다. 저는 성경에서 므두셀라를 대할 때마다 969 년 동안 무엇을 하면서 살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I. 그렇다면 므두셀라는 어떤 인물입니까?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두 단어로 구성되었습니다. 무트는 심판, 죽음을 의미하며, 살라트는 보낸다라는 뜻입니다. 므두셀라 라는 이름의 뜻은 므두셀라를 보내면 이 세상에 심판이 있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 단어의 뜻을 찾으면 명사는 ‘창을 던지는 사람’, ‘던지는 무기’, 투창, 동사로서 기본어근으로 보내 버리다(이것은 수많은 경우에 적용된다함), 도중에 가져가다, (멀리, 밖으로) 인도하다, 되버리라, 주다 (포기하다), 남겨두다, 떼어 놓다, 가게하다, 보내다, 내던지다 등 여러가지 많은 뜻이 있습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 중  ‘창을 던지는 자’란 의미를 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기능적인 이름입니다. 옛날의 전쟁은 먼저 적군과 아군이 마주서서 항오를 벌리고 두편에서 대표자를 내보내어 서로 싸우게 하는데 자기들의 대표가 이기면 사기가 충천해저서 그 날의 전쟁은 대표자가  이기는 쪽 군대가 그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었습 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을 때 이스라엘 군대가 불레셋 군대를 이겼던 것처럼 말입니다. 창을 던지는 자는 대표자로서 이 자가 이기면 자신의 군대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창 던지는 자가 죽으면 세상이 끝난다는 말입니다. 므두셀라가 죽으면 세상도 끝난다는 말입니다.

 

또한 ‘보내버리다’라는 뜻에서 무엇을 보내 버린다는 말입니까? 에녹이 하나님께로 부터 홍수심판의 계시를 받았을 때에 그의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지었을 때, 이 세상이 이 아들을 떠나 보내면 세상에 큰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로 지은 것입니다. ‘이 사람을 떠나 보내면 이 세상에 큰 물이 임할 것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므두셀라라고 이름을 지었다면,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부르고 듣는 것만으로 종말에 관한 멧세지를 듣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이 세상을 보내버린다는 말입니다. 이 세대를 보내고 새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머튜 헨리의 창세기 주석 번역본 상권 P192).
 
에녹과 그의 부인이나 동생이나 이웃 친구들이 ‘므두셀라'라고 이름을 불렀다면 이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에 큰 비가 와서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뜻으로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므두셀라의 삶은 예언적 삶이요, 969년 동안 긴 삶을 살게된 것도 심판을 예고하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시대의 큰 홍수 심판은 노아시대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증조 할아버지 에녹시대 때부터 계산하면 1000년 이상 동안 하나님께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물심판을 예고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평균연령이 900세 임으로 그들 당대에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969년이라는 므두셀라의 길고 먼 생애는 예언적 삶이었으며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었습니다. 그의 길고 먼 삶은 보람된 삶이었으며 꼭 오래동안 살아야만 했던 삶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책이나 문자가 없었으므로 입으로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므두셀라가 사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물심판에서 구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가 사는 것은 한 사람에게라도 더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살아 있는 동안은 이 세상에 물심판이 없습니다. 므두셀라가 살아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을 유지하는 원인입니다. 므두셀라의 삶은 이 세상의 존재 이유입니다. 성도가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이 세상은 멸망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산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라도 더 구원의 멧세지를 전한다는 의미인 것입 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사는 의미는 세상 사람들에게 심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서 예수믿어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II.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에 이르는 물심판의 예고


므두셀라는 자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사명이 무엇이었나를 분명히 깨닫고 그 사명수행에 충실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 라멕이 아들을 낳아 노아라고 이름을 지었는데서 알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은 아버지의 사명과 그의 증거를 철저히 믿고 바라며 행하던 사람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므두셀라가 아버지 에녹에 게 받은 예언에 따른 그의 생애의 목적과 사명에 충실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그의 사명적 삶이 아들에게 전수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 라는 이름을 되새겨 봅시다. 창세기 5:29에,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고 했습니다

 

라멕 역시 예언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멕은 예언적인 삶을 살았던 것 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은 것을 보면 아들 노아에게서 어떤 운명 적인 요소를 보았던 것입니다.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한다는 말은 이 세상의 삶의 고통에서 구원한다는 의미인데 아마도 라멕은 노아에게서 구세주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 에녹이 그렇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아담에게 들려주셨던, 온 인류의 소망이신 창세기 3:15의 하나님의 언약의 여인의 후손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에녹이 먼훗날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강림, 성도의 부활, 휴거, 지상재림에 대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증거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라 이름 지었지만 노아가 창세기 3:15이 의미 하는 메시야는 아니었지만 메시야적인 사명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물심판으로 인한 멸망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구원의 방주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시대의 물심판에 대한 예고가 단지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계시하셔서 방주를 짓게 하시고 노아가 방주 짓던 120년 기간 동안만이 노아시대 의 물심판에 대한 경고기간인 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에녹에서부터 노아에 이르는 1000년의 기간 동안 물심판을 예고하셨다 는 사실입니다.

 

불심판에 대한 예고를 받은 세대는 평균 연령이 60-70세이므로 자신의 시대에 불심판을 받지 못하겠지만 에녹과 노아에 이르는 물심판의 예고를 받던 세대는 평균 연령이 900세이므로 에녹시대에서 노아에 이르는 세대는 홍수심판이 반드시 당대에 이르게 될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그 심판이 임박한 세대에 살던 사람들은 심판에 대한 예고를 들으므로 노아의 방주(교회)에 들어와 구원을 받게 함인 것입니다.

 

III.  므두셀라의 죽음과 노아 홍수와의 관계


노아 출생시의 노아의 할아버지인 므두셀라의 연세는 369세 였습니다 (187+182). 므두셀라가 손자인 노아의 출생을 보면서 하나님의 물심판 사건이 극히 가까웠음을 예지하였을 것입니다. 아버지 라멕이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하고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고 했을 때에 할아버지 므두셀라도 그 옆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 500세에  므두셀라 869세 (369+500) 였습니다. 노아가 500세에 큰 아들 셈이 출생했고 창세기 6:3에 의하면 노아가 하나님께로부터 홍수에 대한 계시를 받은 때가 480세 였습니다.(600-120)  그리고 창세기 7:6에 노아의600세에 이 땅에 홍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아담이 죽은 지 126년 후에 출생했습니다. 아담은 노아 홍수가 나기 726년 ( 600+126) 전에 별세했습니다. 아담은 라멕 나이 56세 때에 아담의 나이 930세로써 별세하였고, 므두셀라의 할아버지 야렛(에녹의 아버지)은 962세를 향수했는데 홍수 심판이 있기 7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아 600세에  아버지 라멕은 782세 (600+182)가 되는셈인데 이 말은 라멕은 노아 홍수가 있기 5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라멕은 777세에 별세 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5장에 등장하는 인물 열명 중에 노아 외에는 홍수가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다 데려 갔습니다.

이사야 57:1,2에, '의인이 죽을찌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찌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는도다.'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노아의 나이 600세에 할아버지 므두셀라의 나이가 969세 였습니다. 그러면 창세기 7:6 절에 노아 600세에 홍수가 있었다고 했는데 창세기 7:4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부터 7 일이면 내가 사십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7:10에서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7:4에 7일 후라고 한 그 날은  노아 600세 되던 해의 2월 17일 이며, 7일  후에 비가 내리리라는 계시를 받은 날은 2월 10일입니다. 노아의 600세 되는 생일은 1월 1일(창 8:13)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므두셀라의 생일과 노아의 생일이 비슷한 날짜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므두셀라의 생일이 1월 1일에서 2월 10일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창세기 7:10에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의 2월 17 일에 비가 오기 시작했고 노아식구들이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렇다면 므두셀라는 언제 세상을 떠났겠습니까? 아마도 창7:4에서 앞으로 '7일 후'라고 해서 홍수가 시작 되는 날에 대한 힌트를 주신 것은 므두셀라가 이날에  므두셀라의 시체를 장사 지내는 날이 아니었나  추측해 봅니다.

 

 비가 오기 일 주일 전에 므두셀라가 세상을 떠남으로 노아와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아니 므두셀라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만이라도 홍수가 시작될 시기가  7일로 임박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므두셀라의 장례식은 므두셀라 생애 969년 동안의 홍수 예고를 상기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에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람들 중에 노아 가족 외에는 한 사람도 듣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노아시대의 물심판을 에녹에서부터 시작해 1000 년 동안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예고했을 뿐만아니라 노아 600세 되던 해, 므두셀라가 죽은 2월 10일의 므두셀라의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은 노아의 식구 8명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복음 18:8 에,  ‘….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시니라.’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3:23,24 에,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제자들의 질문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구원받을 자가 적습니까 하고 물은 것입니다. 제자들이 구원받을 자가 많습니까라고 왜 묻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제자들이 이 질문을 했을 때의 분위기가 구원받을 자들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는 대화의 분위기였을 것이 라 추적해 봅니다.

 

 이 때에 주님께서도 제자들의 질문에 분명하게 ‘그렇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빙둘러서 표현하시기는 했지만 말씀의 핵심은 구원받을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고 싶은 사람들은 많으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바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신앙 삶이 현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원하기는 하지만 좁은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든지 혹은 들어가기를 포기해 버리는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세 현상에 대해 누가복음 17:26-27에서,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에서 주님 말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 온 정신을 쏟았던 것을 봅니다. 그러니 므두셀라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만 신경을 곤두세움으로 홍수심판과 같은 예고의 말씀이 귀에 들릴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세대 사람들이여, 요한계시록의 경고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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