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class='wiki-image' src='//w.namu.la/s/f592d394f9a5d9657c5eda53d3f935c500409ef3cdb9e986efb860d2d2c3b9fb806ab8fe504653f3401f36968d06aa77f8d03abbec73761118cfdbd305d43560c204c141983070dbabda559d8c89afb28fffe131aaf1e4aee280dab90135c502' alt='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Martin_Heidegger.jpg'>
Martin Heidegger. 1889년 9월 26일 ~ 1976년 5월 26일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 M. 하이데거
1. 소개[편집]
하이데거는 실존주의의 대부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정작 본인은 실존주의자로 불리기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을 존재론자로서 규정했다. 애초에 실존주의라는 사조부터가 명확한 규정이 합의되어 있지를 않다. 존재자에 대한 탐구에만 머물던 종래의 철학에서 탈피해, '존재(Sein)' 곧 존재 자체(Sein selbst)에 주목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를 평가하여 후대의 미국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하이데거를 기존의 체계 철학과 대비하여 '교화 철학자'로 설명하기도 했다.
사상적 측면 외에도 나치 참여로 인한 논쟁[3]이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벌어지는 등 명실상부 철학계의 뜨거운 감자다.
2. 인생[편집]
2.1. 초기[편집]
2.2. 중기[편집]
1923년 마르부르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2년 후에 정교수로 임용되었고,[5] 1928년 후설의 후임으로 지명받아,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돌아오게 되는데,[6] 이때 교수 자격을 받기 위해 제출한 것이 세기의 명저로 꼽히는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이다. 1933년 정권을 장악한 나치당이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인 묄렌도르프를 해임시키자,[7] 묄렌도르프는 하이데거를 후임 총장으로 지명했고, 하이데거가 이를 수락하여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에 취임했으나, 1년도 못 되어 총장직을 사임한다. 하지만 이 시기를 전후로 나치와 접촉하면서 결국 그의 생애 최대의 오점을 남기게 되는데...
2.2.1. 나치[편집]
한동안 하이데거의 나치즘 문제는 잊히는 듯 싶었으나 2014년 초에 출간된 이른바 '검은 노트(Schwarze Hefte)'에 담긴 내용이 자못 충격적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세계유태주의라는 음모론마저 진지하게 다루며 노골적으로 반유태주의적 성향을 보인 것이다. 특히나 이 노트 자체가 하이데거가 공식 출판을 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담은 일종의 일기인데 나치즘, 반유대주의, 심지어 대량학살을 암시하는 표현마저 드러나서 유럽 철학계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 독일에서는 이 여파로 인해 심지어 독일 하이데거 학회의 학회장이 "더 이상 이런 자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을 수 없다"며 사임하는 사태마저 일어났다. # 아직 검은 노트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연구가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조만간 이 항목 자체가 대대적으로 개편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어차피 하이데거의 나치즘 논란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검은 노트는 거기에 실사적 증거 하나가 보태졌을 뿐이란 시각도 있다. 또 이를 나치즘의 영향을 깊게 받았을 때의 일시적인 성향으로 치부하거나, 하이데거를 대표하는 저서 존재와 시간을 비롯한 저술들에는 나치즘의 영향이 아직 없었다고 간주한 뒤 저술 그 자체를 탐구하는 식으로 돌려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2.3. 후기[편집]
2.4. 사후[편집]
3. 철학[편집]
3.1. 전기 사상[편집]
『존재와 시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존재와 시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존재'는 철학이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다루어졌던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이 모든 학문 중에 유일하게 '존재를 존재로서 다루는 학문'이며, 그런 점에서 모든 학문 이전에 가장 먼저 탐구되어야 할 것이 '존재'라고 생각했다.[10] 이렇게 전혀 새롭지 않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하이데거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제기되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의 첫 장에서 책이 의도하고 있는 바가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구체적으로 정리작업하는 일 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존재(있다, Be(영어), Sein(독일어))'라는 말을 가장 흔하게 쓰면서도 정작 그 의미를 아무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철학의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존재에 대한 물음이 오래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하이데거가 보기에 그러한 존재물음과 답은 모두 방향을 잃고 갈피를 잡지 못한 엉터리 물음과 대답들이다. 플라톤 이래 그리스철학, 중세철학, 근대철학은 존재를 항구적인 것으로 환원하였다. 그리스철학은 이데아를, 중세철학은 신을, 근대철학은 자연법칙 또는 정언명령을 존재의 항구적인 성질로 불러왔던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존재를 고정시켜 이해하는 이러한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대신 존재를 매 순간 물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존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존재라는 말이 포함되는 개념을 100개 이상 새로 만들었기 때문에 독해하려는 철학도 및 일반인들은 그의 저서를 읽다 보면 빡칠 수밖에 없다.
3.1.1. 존재와 시간[편집]
1927년 『철학 및 현상학 탐구 연보』 제8집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명실상부한 하이데거의 대표작.
『존재와 시간』은 사실 2부로 구성되어있었으나, 1부 2편의 '현존재와 시간성'까지 만을 다루고 중단된 작품이다. 1부 3편에 해당하는 '시간과 존재'는 하이데거의 다른 작품인 『현상학의 근본 문제』에서, 아예 들어가지도 못한 2부 역시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와 같은 저작들에서 수행되고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미완성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먼저 서론인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의 설명'에서 존재 물음의 필연성과 우위, 탐구 방법 등에 대해 다룬다.
'존재란 무엇인가?(Was ist Sein?)'라는 물음은 여러 가지 수많은 물음들 중에서도 독특한 물음이다. 왜냐하면 이미 물음 자체(Was ist ~ ?)가 물음의 대상(Sein)을 포함[11]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음은 어떤 것에 대한 물음으로서 자신에게서 "물어지고 있는것"을 가지고 있다. 모든 어떤 것에 대한 물음은 어떤 방식으로건 어떤 것에 물음을 거는 것이다. 물음에는 물어지고 있는 것 외에 "물음이 걸려 있는 것"이 속한다. 탐구하는, 다시 말해서 이론적인 물음에서는 물어지고 있는 것이 규정되고 개념화되어야 한다. 이 경우, 물어지고 있는 것에는 본래 의도되고 있는 것으로서 물음이 꾀하고 있는 것이 놓여 있다. 물음은 여기에서 목표에 이르게 된다. [13]
예를 들어, 이번에 나온 신작이 대단하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에게 품번을 물어볼 경우, "물어지고 있는 것", 즉 물음의 대상이 되는 것(das Gefragte)는 "품번"이며, "물음이 걸려 있는 것"(das Befragte)는 "그 물음을 받은 친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음이 꾀하고 있는 것", 다시 말해, 궁극적으로 물음이 밝히고자 하는 것(das Erfragte)은 "그 작품이 과연 대단한지"의 대한 여부이다.
마찬가지로, 존재 물음에 있어, "물어지고 있는 것(das Gefragte)"은 "존재"(언제나 어떤 존재자의 존재로서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규정하는 것)이며, "물음이 걸려 있는 것(das Befragte)"은 그 물음이 걸려 있는 존재자 자신이자, 다른 어떤 존재자보다 우위를 지니고 있는 존재자, 바로 "현존재(Dasein)"를 뜻한다. "현존재"라는 말은 하이데거가 만든 단어로, '거기에'라는 뜻의 'Da'와 '존재'라는 뜻의 'Sein'을 붙인 것이다. 현존재는 쉽게 말해서 우리 인간을 가리킨다. 현존재는 물음이 걸려있는 존재자이기에 존재 물음에 있어 지나칠 수 없는 존재자이며, 한편으로는 물음의 특권적 위치를 지니고 있는 존재자이기도 하다. 존재물음에서 특권적 위치를 가진 존재자가 현존재, 즉 인간인 이유는 인간만이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질 뿐만 아니라, 나아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고뇌하는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마지막으로, "궁극적으로 물음이 밝히고자 하는 것(das Erfragte)"은 "존재의 의미"이다. 그런데 존재는 존재자와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 물음에 있어서 역시, 존재는 존재자가 밝혀지는 방식하고는 다른 방식으로만 밝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유의해야 존재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탐구할 수 있다. 이렇게 '현존재'라는 '존재자'를 매개로 하여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15]
매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현존재(Dasein)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 세계 속에 존재하는 존재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은 진공상태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적인 배경 속에서 그 속에 있는 것들과의 관계맺음을 통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독특한 존재론은 데카르트식의 균일하고 진공적인 세계관과 달리 인간과 그 인간이 공간과 맺는 관계를 통해 세계를 설명함으로써 건축학(개별 인간의 거주지로서의 건축(후기 하이데거 저작 참고)), 지리학(장소의 개념 및 공간-장소 논쟁) 등의 학문 분야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3.1.2. 실존주의와의 관계?[편집]
3.2. 후기 사상[편집]
3.2.1. 언어관[편집]
3.2.2. 기술관[편집]
3.3. 동양철학과의 관계[편집]
4. 다른 철학자들과의 관계[편집]
4.1. 에드문트 후설[편집]
보통 하이데거의 철학이 후설의 철학을 심화하고 발전시킨걸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후설의 미발간 원고를 연구하다 보면, 후설은 하이데거의 철학이라고 알려진 것들을 이미 완성한 것으로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후설과 하이데거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이론의 여지가 있다. 두 철학자 모두 어마어마한 양의 저서를 남긴데다 심지어 후설은 아직 그의 유고가 완전히 정리되지않아 출판되지도 않은 상태이다. 즉 현상학의 창시자격인 후설에 대해서도 아직 미발간원고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에 대한 관계파악은 당연하게도 아직 정론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4.2. 한나 아렌트[편집]
4.3. 카를 야스퍼스[편집]
4.4. 장 폴 사르트르[편집]
4.5. 자크 라캉[편집]
5. 기타[편집]
칸트만큼은 아니지만, 마르부르크 시절을 제외하면 거의 평생을 프라이부르크 주변에 머물렀다. 외국에 나가본경험도 주로 프랑스, 스위스 등 인접국들뿐이고, 가장 멀리 가본 여행지도 1962년과 1967년에 방문한 그리스 아테네였다.
6. 대표적 저술 서적[편집]
- 사유란 무엇인가
- 시간개념
-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 존재와 시간
- 숲길
- 사유의 사태로
-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
- 형이상학 입문
- 시, 언어, 사유
6.1. 국어 번역본[편집]
- 존재와 시간[18]
- 횔덜린 시의 해명
- 시간의 개념
- 사유란 무엇인가
- 사유의 사태로
- 사유의 경험으로부터
- 근본개념들
- 시간개념
- 이정표1 2
- 니체 1 2
- 동일성의 차이
- 숲길
- 회상
- 철학에의 기여
-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 종교적 삶의 현상학
-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
- 진리의 본질에 대하여
-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
-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 현상학의 근본문제들
- 철학입문
- 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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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재영 /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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