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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마르틴 하이데거 - 존재의 의미

by 이덕휴-dhleepaul 2019. 11. 14.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

― M. 하이데거

1. 소개2. 인생
2.1. 초기2.2. 중기2.3. 후기2.4. 사후
3. 철학
3.1. 전기 사상
3.1.1. 존재와 시간3.1.2. 실존주의와의 관계?
3.2. 후기 사상
3.2.1. 언어관3.2.2. 기술관
3.3. 동양철학과의 관계
4. 다른 철학자들과의 관계5. 기타6. 대표적 저술 서적
6.1. 국어 번역본
7. 대중가요 속의 하이데거

1. 소개[편집]

독일 출신의 사상가, 철학자. 20세기 초반 현상학실존주의, 해석학을 혁신한 인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세간에서 일컬어지는 후대 대륙철학 조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2]

하이데거는 실존주의의 대부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정작 본인은 실존주의자로 불리기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을 존재론자로서 규정했다. 애초에 실존주의라는 사조부터가 명확한 규정이 합의되어 있지를 않다. 존재자에 대한 탐구에만 머물던 종래의 철학에서 탈피해, '존재(Sein)' 곧 존재 자체(Sein selbst)에 주목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를 평가하여 후대의 미국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하이데거를 기존의 체계 철학과 대비하여 '교화 철학자'로 설명하기도 했다.

사상적 측면 외에도 나치 참여로 인한 논쟁[3]이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벌어지는 등 명실상부 철학계의 뜨거운 감자다.

2. 인생[편집]

2.1. 초기[편집]

마르틴 하이데거는 1889년 9월 26일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州 메스키르히市에서 성당지기[4] 프리드리히 하이데거와 그 아내 요한나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마르틴의 고향 메스키르히는 독일 최남단에 자리한 시골로, 마을이 온통 로마교회풍의 보수성을 띠고 있어서, 그 성장과정에서 일어난 영향은 훗날 하이데거의 사상 전반에서 기독교적 색채가 짙게 깔리게 된 바탕이라 혹자들은 논평한다.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 탓으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할 뻔 했으나, 마르틴의 재능을 높이 산 메스키르히 본당의 주임신부 콘라트 그뢰버의 주선으로 김나지움에 진학할 수 있었다. 1909년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성직자 수업을 받기 위해 예수회에 입회했으나, 엄격한 수도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14일 만에 그만두고,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입학하여 신학 공부를 하다, 2년 후 철학으로 전공을 바꿔 1913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2.2. 중기[편집]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에 징집되었다가, 훈련소에서 귀가 판정을 받았고, 이후 후방에서 서신 검열 업무에 종사하면서 대학에서 야간 강의를 맡았는데, 이때에 수강생 중 한 명인 엘프리데 페트리와 만나 사귀게 되고, 1917년 결혼에 이른다. 1917년 다시 군에 징집된 하이데거는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다가, 1918년 독일이 패전한 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 돌아와 에드문트 후설의 조교로 활동하게 된다.

1923년 마르부르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2년 후에 정교수로 임용되었고,[5] 1928년 후설의 후임으로 지명받아,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돌아오게 되는데,[6] 이때 교수 자격을 받기 위해 제출한 것이 세기의 명저로 꼽히는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이다. 1933년 정권을 장악한 나치당이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인 묄렌도르프를 해임시키자,[7] 묄렌도르프는 하이데거를 후임 총장으로 지명했고, 하이데거가 이를 수락하여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에 취임했으나, 1년도 못 되어 총장직을 사임한다. 하지만 이 시기를 전후로 나치와 접촉하면서 결국 그의 생애 최대의 오점을 남기게 되는데...

2.2.1. 나치[편집]

나치에 참여한 것으로 하이데거 철학 전체가 부정되게끔 만들기도 한 흑역사. 가장 논란이 되는 나치행적에 대해 하이데거는 어떤 자부심도, 어떤 회한도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는 히틀러 정권 하에서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직을 수락하며 그 취임연설에서 '하일 히틀러!'라는 구호로 연설을 마쳤을 만큼 히틀러에게 경도되었지만, 1년 만에 총통의 행적에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 총장직에서 물러난다. 그 이후에는 나치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것을 두고 그를 옹호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의 스승인 후설(유태인)이 대학에서 쫓겨나는 일을 방관했을 뿐더러, 나아가 부채질했다는 설마저 있으며, 자신의 유대인 제자가 교수직에 후보로서 거론되자 유대인이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절친이었던 카를 야스퍼스(아내가 유태인)가 나치에 대해 취했던 태도와 비교했을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나는 그 태도는 하이데거를 쉽게 옹호할 수 없게 만든다.

한동안 하이데거의 나치즘 문제는 잊히는 듯 싶었으나 2014년 초에 출간된 이른바 '검은 노트(Schwarze Hefte)'에 담긴 내용이 자못 충격적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세계유태주의라는 음모론마저 진지하게 다루며 노골적으로 반유태주의적 성향을 보인 것이다. 특히나 이 노트 자체가 하이데거가 공식 출판을 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담은 일종의 일기인데 나치즘, 반유대주의, 심지어 대량학살을 암시하는 표현마저 드러나서 유럽 철학계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 독일에서는 이 여파로 인해 심지어 독일 하이데거 학회의 학회장이 "더 이상 이런 자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을 수 없다"며 사임하는 사태마저 일어났다. # 아직 검은 노트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연구가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조만간 이 항목 자체가 대대적으로 개편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어차피 하이데거의 나치즘 논란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검은 노트는 거기에 실사적 증거 하나가 보태졌을 뿐이란 시각도 있다. 또 이를 나치즘의 영향을 깊게 받았을 때의 일시적인 성향으로 치부하거나, 하이데거를 대표하는 저서 존재와 시간을 비롯한 저술들에는 나치즘의 영향이 아직 없었다고 간주한 뒤 저술 그 자체를 탐구하는 식으로 돌려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2.3. 후기[편집]

1945년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후, 프라이부르크로 진주한 프랑스군 사령부는 하이데거에게 나치 협력의 죄를 물어 공식적인 활동을 일체 금지시켰다. 그러다가 1951년 활동금지 조치가 해제되면서 다시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강단으로 돌아왔으나, 불과 한 학기 만에 교수직을 사임하고 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1976년 5월 26일 타계할 때까지 프라이부르크의 자택과 토트나우베르크에 지은 오두막집을 오가면서 연구와 저술 활동에 몰두하였다.

2.4. 사후[편집]

3. 철학[편집]

3.1. 전기 사상[편집]

일반적으로 하이데거의 사상은 1930년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전기 사상을 대표하는 저서는 물론 『존재와 시간』이다. 일순간 하이데거를 20세기 철학의 거장 반열에 올려놓은 이 작품은 근대 이후 철학에서 주변부로 물러난 존재론[8]을 다시 논의의 중심으로 불러들이는 강력한 영향을 발휘했다. 그의 제자 연인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가 몰고 온 사유의 폭풍을 플라톤과 비견할 정도였다. 『존재와 시간』은 그 영향력만큼 난해하기로도 악명이 높아서 독일인들 사이에서 『존재와 시간』 독일어판은 언제 출간되냐는 농담이 있을 정도. 『존재와 시간』의 난해성은 단순히 하이데거가 글을 명료하게 쓰지 못했기 때문이라거나 독일어 특유의 문체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9] 그것은 『존재와 시간』이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가 난해하기 때문이다.

『존재와 시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존재와 시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존재'는 철학이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다루어졌던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이 모든 학문 중에 유일하게 '존재를 존재로서 다루는 학문'이며, 그런 점에서 모든 학문 이전에 가장 먼저 탐구되어야 할 것이 '존재'라고 생각했다.[10] 이렇게 전혀 새롭지 않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하이데거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제기되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의 첫 장에서 책이 의도하고 있는 바가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구체적으로 정리작업하는 일 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존재(있다, Be(영어), Sein(독일어))'라는 말을 가장 흔하게 쓰면서도 정작 그 의미를 아무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철학의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존재에 대한 물음이 오래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하이데거가 보기에 그러한 존재물음과 답은 모두 방향을 잃고 갈피를 잡지 못한 엉터리 물음과 대답들이다. 플라톤 이래 그리스철학, 중세철학, 근대철학은 존재를 항구적인 것으로 환원하였다. 그리스철학은 이데아를, 중세철학은 신을, 근대철학은 자연법칙 또는 정언명령을 존재의 항구적인 성질로 불러왔던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존재를 고정시켜 이해하는 이러한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대신 존재를 매 순간 물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존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존재라는 말이 포함되는 개념을 100개 이상 새로 만들었기 때문에 독해하려는 철학도 및 일반인들은 그의 저서를 읽다 보면 빡칠 수밖에 없다.

3.1.1. 존재와 시간[편집]

『Sein Und Zeit』

1927년 『철학 및 현상학 탐구 연보』 제8집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명실상부한 하이데거의 대표작.

『존재와 시간』은 사실 2부로 구성되어있었으나, 1부 2편의 '현존재와 시간성'까지 만을 다루고 중단된 작품이다. 1부 3편에 해당하는 '시간과 존재'는 하이데거의 다른 작품인 『현상학의 근본 문제』에서, 아예 들어가지도 못한 2부 역시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와 같은 저작들에서 수행되고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미완성작이라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엄청나게 방대하고 어렵다

하이데거는 먼저 서론인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의 설명'에서 존재 물음의 필연성과 우위, 탐구 방법 등에 대해 다룬다.

'존재란 무엇인가?(Was ist Sein?)'라는 물음은 여러 가지 수많은 물음들 중에서도 독특한 물음이다. 왜냐하면 이미 물음 자체(Was ist ~ ?)가 물음의 대상(Sein)을 포함[11]하고 있기 때문이다.자기지시적문장[12] 이렇게 독특한 물음인 '존재물음'은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는데, ① 물음의 주제인 '존재'와 ② 직접적인 물음의 대상인 '존재자', ③ 물음의 목표인 '존재의 의미'가 그것이다.
물음은 어떤 것에 대한 물음으로서 자신에게서 "물어지고 있는것"을 가지고 있다. 모든 어떤 것에 대한 물음은 어떤 방식으로건 어떤 것에 물음을 거는 것이다. 물음에는 물어지고 있는 것 외에 "물음이 걸려 있는 것"이 속한다. 탐구하는, 다시 말해서 이론적인 물음에서는 물어지고 있는 것이 규정되고 개념화되어야 한다. 이 경우, 물어지고 있는 것에는 본래 의도되고 있는 것으로서 물음이 꾀하고 있는 것이 놓여 있다. 물음은 여기에서 목표에 이르게 된다. [13]

예를 들어, 이번에 나온 신작이 대단하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에게 품번을 물어볼 경우, "물어지고 있는 것", 즉 물음의 대상이 되는 것(das Gefragte)는 "품번"이며, "물음이 걸려 있는 것"(das Befragte)는 "그 물음을 받은 친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음이 꾀하고 있는 것", 다시 말해, 궁극적으로 물음이 밝히고자 하는 것(das Erfragte)은 "그 작품이 과연 대단한지"의 대한 여부이다.예시가 뭔가 이상하지만 넘어가자

마찬가지로, 존재 물음에 있어, "물어지고 있는 것(das Gefragte)"은 "존재"(언제나 어떤 존재자의 존재로서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규정하는 것)이며, "물음이 걸려 있는 것(das Befragte)"은 그 물음이 걸려 있는 존재자 자신이자, 다른 어떤 존재자보다 우위를 지니고 있는 존재자, 바로 "현존재(Dasein)"를 뜻한다. "현존재"라는 말은 하이데거가 만든 단어로, '거기에'라는 뜻의 'Da'와 '존재'라는 뜻의 'Sein'을 붙인 것이다. 현존재는 쉽게 말해서 우리 인간을 가리킨다. 현존재는 물음이 걸려있는 존재자이기에 존재 물음에 있어 지나칠 수 없는 존재자이며, 한편으로는 물음의 특권적 위치를 지니고 있는 존재자이기도 하다. 존재물음에서 특권적 위치를 가진 존재자가 현존재, 즉 인간인 이유는 인간만이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질 뿐만 아니라, 나아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고뇌하는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나 같은 잉여는 왜 살까 라는 실존적 고민을 하는 것은 인간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이데거 철학에서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대충 말해서, 존재자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들이다. 가령, 책상이나 고양이, 사람 등등. 반면에 존재는 존재자들이 있는 그 상태, 존재자들이 존재자라고 불릴 수 있게 만드는 근거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존재는 언제나 어떤 존재자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이데거는 그러나 이전까지의 철학들은 이 같은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존재 탐구에 있어서 허우적 댔다고 보았다. 또한 존재와 존재자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 같은 것이 있는데 이를 하이데거는 '존재론적 차이'라고 부른다. "현존재"의 "현"은 '거기에'뿐만 아니라, "존재가 드러나 있다."는 의미도 가지는데, 이것은 현존재인 인간이 존재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있는 존재자라는 것을 의미한다.[14]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의 존재이해는 막연하고 피상적이기 때문에, 올바른 존재물음이 제기되기 위해서는 존재론적 차이를 주시하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궁극적으로 물음이 밝히고자 하는 것(das Erfragte)"은 "존재의 의미"이다. 그런데 존재는 존재자와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 물음에 있어서 역시, 존재는 존재자가 밝혀지는 방식하고는 다른 방식으로만 밝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유의해야 존재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탐구할 수 있다. 이렇게 '현존재'라는 '존재자'를 매개로 하여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15]

매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현존재(Dasein)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 세계 속에 존재하는 존재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은 진공상태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적인 배경 속에서 그 속에 있는 것들과의 관계맺음을 통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독특한 존재론은 데카르트식의 균일하고 진공적인 세계관과 달리 인간과 그 인간이 공간과 맺는 관계를 통해 세계를 설명함으로써 건축학(개별 인간의 거주지로서의 건축(후기 하이데거 저작 참고)), 지리학(장소의 개념 및 공간-장소 논쟁) 등의 학문 분야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3.1.2. 실존주의와의 관계?[편집]

쉽게 요약하자면 "초월적 존재"로 알려진 것들은 "존재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기존 존재론에 대한 하이데거의 입장이다. 이 비판 때문에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실존철학과 엮는 실수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은 이 '실존철학으로 분류된 하이데거의 사상'을 달달 외운다. 다수의 교과서에서는 하이데거를 실존주의자로 분류한다. 이것을 '실존론적 존재론' 이라고 하는데 실존주의와는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둘은 핵심적인 차이점이 있다. 실존주의는 실존과 자아를 중시하며 '존재자의 본질을 부정' 했지만, 실존론적 존재론에서는 존재의 의미를 알기 위하여 실존을 문제삼는 현존재 인간 스스로의 분석을 통하여, 존재자의 '본질을 연구'하여 존재라는 개념 자체를 분석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실존주의는 본질을 부정하지만, 하이데거의 철학은 본질을 인정한다. 이 둘은 결코 같은 주장일 수가 없다.

3.2. 후기 사상[편집]

하이데거는 철학을 시대정신에 대한 인간의 이해 시도라고 보았다. 하이데거는 현대의 시대정신이 '고향 상실 (Heimatlosigkeit)'이라고 보았다. 맹목적인 기술과 유물론적인 이데올로기에 절망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가 편안하게 거주할 터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후기의 하이데거는 인간이 진정으로 거주할 수 있는 터는 자연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연은 소박하고 순환하는 속에 모든 약동하는 생명을 품는다. 그 정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흐름에 주목할 때 인간은 '존재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 존재자들이 자신을 열어 밝히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며 한없는 존재의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인간이 충만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한다.

3.2.1. 언어관[편집]

3.2.2. 기술관[편집]

3.3. 동양철학과의 관계[편집]

4. 다른 철학자들과의 관계[편집]

4.1. 에드문트 후설[편집]

현상학의 아버지인 후설조교를 맡으며 현상학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사실상 후설의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1927년 에 출간된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은 후설의 현상학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미 존재와 시간 출간 이전 강의록들에서도 하이데거와 후설 현상학의 결별은 뚜렷하다. [16] 후설은 하이데거를 자신의 제자 중 가장 탁월한 제자로 생각하였고, 실제로 1928년 자신의 프라이부르크 정교수 자리를 물려준다. 훗날 독일 나치하의 1941년 발간된 "존재와 시간" 신판에서 출판사는 앞 표지에 있는 후설에 대한 헌사를 삭제하였다. 하이데거는 앞 표지 헌사를 삭제한 것은 묵인하였으나, 모든 주석에서 후설의 이름은 남겨놓았다.

보통 하이데거의 철학이 후설의 철학을 심화하고 발전시킨걸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후설의 미발간 원고를 연구하다 보면, 후설은 하이데거의 철학이라고 알려진 것들을 이미 완성한 것으로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후설과 하이데거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이론의 여지가 있다. 두 철학자 모두 어마어마한 양의 저서를 남긴데다 심지어 후설은 아직 그의 유고가 완전히 정리되지않아 출판되지도 않은 상태이다. 즉 현상학의 창시자격인 후설에 대해서도 아직 미발간원고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에 대한 관계파악은 당연하게도 아직 정론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4.2. 한나 아렌트[편집]

젊은 시절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천재 철학강사로 명성이 높았던 유부남 하이데거는 당시 학생이었던 한나 아렌트와 불륜을 저질렀다. 보통 밀회 장소는 밤늦은 시간, 대학 강단이나 하이데거의 교수실, 하이데거 집 뒤편의 야산 등등이었다. 하이데거는 한나 아렌트 말고도 애인이 여럿 있었는데, 나중에 모종의 이유로 일방적으로 관계를 정리했다. (아무래도 유대인이었던 그녀와, 자신이 나치로서 승진에 대한 욕구, 불륜이 발각될까봐 하는 점 혹은 다른 더 예쁜 애인이 생겼다는 점등이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헤어진 뒤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나치행적에 실망하지만, 2차대전 이후 나치전범에 대한 재판으로 하이데거가 구속의 위기 앞에서 전애인과 동료들에게 간청하자 그를 용서하고 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준다. 이후 그의 지적인 유산을 인정하며 죽을때까지 서신을 왕래하며 지적인 동료 관계를 유지한다.

4.3. 카를 야스퍼스[편집]

4.4. 장 폴 사르트르[편집]

프랑스 실존주의의 대표인 사르트르의 유명 저작인 "존재와 무"에 대해서 "이건 내 철학을 잘못 읽은 것"이라며 비판했다. 드라이퍼스는 의식철학적 경향을 가지고 있던 사르트르를 의식철학에 강하게 반대하였던 하이데거와 대비하며 사르트르를 비판한다.

4.5. 자크 라캉[편집]

라캉 역시 하이데거 철학에 적잖은 관심을 가졌는데 라캉이 세미나(Le séminaire)제 1권[프로이트의 분석 기술에 관한 글들(Les écrits techniques de Freud)에서 자주 언급하는 존재의 문제는 하이데거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라캉과 하이데거는 몇 차례 직접 만나기도 했다. 라캉은 레지스탕스 출신 철학자 보프레와 프라이부르크를 직접 방문하여 하이데거와 대화를 나누었다. 방문 이후 라캉은 하이데거의 동의를 얻어 그의 [로고스]를 번역하여 발표하였다. 이후로도 두 차례의 만남이 더 있었고 나중에 라캉은 자신의 저서 에크리를 하이데거에게 보내기도 했지만 하이데거는 라캉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라캉이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캉은 후에 자신의 주체이론을 심화시키며 하이데가의 존재론과 결별하고 데카르트적 주체 개념을 더 강조한다.[17]

5. 기타[편집]

성격이 상당히 내성적인 데다 낯가림이 심해서 그와 어지간히 오랫동안 깊이 사귄 사람이 아니면 그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하이데거와 면담을 한번 하려면 먼저 그의 조교에게 신청하여 면담 약속을 받아야 했고, 설령 약속을 받는데 성공한다 해도 하이데거 개인 사정에 의해 면담이 무산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일례로 서울대학교 박종홍 교수가 60년대에 서독을 방문했을 때, 하이데거에게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결국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칸트만큼은 아니지만, 마르부르크 시절을 제외하면 거의 평생을 프라이부르크 주변에 머물렀다. 외국에 나가본경험도 주로 프랑스, 스위스 등 인접국들뿐이고, 가장 멀리 가본 여행지도 1962년과 1967년에 방문한 그리스 아테네였다.

6. 대표적 저술 서적[편집]

  • 사유란 무엇인가
  • 시간개념
  •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 존재와 시간
  • 숲길
  • 사유의 사태로
  •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
  • 형이상학 입문
  • 시, 언어, 사유

6.1. 국어 번역본[편집]

  • 존재와 시간[18]
  • 횔덜린 시의 해명
  • 시간의 개념
  • 사유란 무엇인가
  • 사유의 사태로
  • 사유의 경험으로부터
  • 근본개념들
  • 시간개념
  • 이정표1 2
  • 니체 1 2
  • 동일성의 차이
  • 숲길
  • 회상
  • 철학에의 기여
  •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 종교적 삶의 현상학
  •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
  • 진리의 본질에 대하여
  •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
  •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 현상학의 근본문제들
  • 철학입문
  • 셸링





마르틴 하이데거 -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다

작성일 작성자 하늘나리


“자네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가? 내가 젊었을 때, 나는 ‘있지 않은 것’을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아주 당혹스러워 하고 있지 않은가” (플라톤, [소피스테스])

 

‘있다’는 뜻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안다. ‘존재한다’는 좀 딱딱한 말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다. 아기도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구분한다. 그래서 엄마가 있으면 웃고, 엄마가 없으면 운다. 일상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존재한다’는 뜻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최초로 간파한 이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었다. 플라톤은 그가 쓴 대화 편 [소피스테스]에서 ‘존재’ 문제가 깊은 층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섬세하게 벗겨낸다. 도대체 아기도 구분하는 이 문제에서 무엇이 당혹스럽다는 것인가?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그리스로 떠나는 철학 여행의 짐을 싸야 하는가?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문제를 현대 철학의 중심 과제로 삼은 철학자가 있기 때문이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2500년 전에 플라톤이 물었던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그가 쓴 대표작 [존재와 시간]은 바로 위에 적힌 플라톤의 구절을 인용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오늘날 우리는 ‘존재한다’는 말이 본래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가?’ 그는 답한다.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존재라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해 당혹스러움에 빠져 본 적이라도 있는가? 그는 다시 답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를 설명한다.

 

 

 

 


하이데거의 책을 읽기는 쉽지 않다. 그 어려움은 일차적으로 그가 쓰는 생경한 용어에서 온다. 하이데거는 끊임없이 말을 비틀어서 새로운 말을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철학 용어가 은어로 다가온다. 번역어로 접하는 우리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는 왜 이렇게 말을 비비 꼬았을까? 대체로 언어를 변형시키는 것은 시인의 몫이지 철학자의 몫은 아니다. 때로 시인은 자신이 원하는 말을 찾지 못하면 말을 비튼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시어에는 일상적 언어와는 다른 어떤 울림이 있다. 하이데거는 철학이 시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철학적 사유는 익숙하고 명료하며 질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낯설고 모호하며 당혹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들]에서 철학이 명료한 체계를 우선하는 과학보다는, 모호하지만 울림을 주는 예술에 보다 가깝다고 말한다. 그는 시작(詩作)을 ‘철학의 누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또한 그는 독일의 낭만파 시인 노발리스(Novalis, 1772-1801)의 시구를 빌어서 “철학은 향수이며, 어디에서나 고향을 만들고자 하는 하나의 충동”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이데거는 철학이 근원적 사유라는 점을 여러 방식으로 강조한다. 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은 이 점을 망각하고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철학에 ‘관해서’ 이야기했을 뿐, ‘철학에서부터’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세계는 단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다. 과학적 탐구만으로 세계는 온전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간파한 것처럼 세계는 숨기를 좋아한다. 더욱이 과학적 탐구 방식으로는 결코 해명되지 않는 존재 양식을 가진 존재도 있다. 바로 인간이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플라톤은 세계를 온전하게 파악하는 방식을 둘러싼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격돌을 ‘존재를 둘러싼 거인 족의 싸움(gigantomachia peri tes ousias)’이라고 불렀다. 그 싸움은 우리가 1년 전 쯤 ‘철학의 숲’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끊임 없이 변화하고 생성하는 존재와 변화와 생성을 뛰어넘는 존재의 문제를 둘러싼 충돌이며, 또한 우리가 그러한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인식의 문제와 관련된 격돌이기도 했다.

 

하이데거는 철학적 사유의 근원을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그는 철학으로부터 시작하는 물음은 항상 형이상학적 물음이라고 강조한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형이상학적 물음은 가장 궁극적이고 포괄적이다. 철학은 오로지 철학함으로서만 존재하며, 그 점에서 철학은 결코 형이상학적 물음과의 대면을 회피할 수 없다.


 

 

 

 


세계를 온전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하이데거는 현상학을 동원한다. 현상학은 하이데거에게 프라이부르크 대학 철학과 정교수 자리를 물려준 하이데거의 스승,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이 개척한 방법이다. 하이데거는 현상을 “자기 자신에 즉해서 자기 자신을 현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현상학을 “자기 자신을 현시하는 그것을, 그것이 자기 자신의 편에서 자기 자신을 현시하는 그대로 그것의 편에서부터 보이도록 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도대체 무슨 뜻인가? 네이버 캐스트에 실린 한 편의 시를 통해서 풀어보자.

 

지루한 장마 끝/된장 속에 들끓는 구더기 떼를 어쩌지 못해/전전긍긍하던 아내는/강 건너 사는 노파에게 들었다며/담장에 올린/푸른 강낭콩 잎을 따다/장독 속에 가지런히 깔아 덮었다(고진하, ‘푸른 콩잎)


 


하이데거가 철학과 정교수로 있었던 프라이부르크 대학(1960년 대 모습). <출처: Bundesarchiv, B 145 Bild-F010462-0003 / Wegmann, Ludwig / CC-BY-SA at en.wikipedia.org>


이 시가 전하는 사연은 간단하다. 된장 독에 들끓는 구더기 때문에 고민하는 시인의 아내가 콩 잎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장독, 된장, 강낭콩 잎, 구더기 등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물들이다. 물리학적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사물은 분자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생물학의 눈으로 볼 때, 강낭콩 잎과 구더기는 DNA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시인의 경험에서 원자나 DNA는 자신을 현시하지 않았다. 아마도 물리학자는 시인의 경험이 물체의 표면에서 반사되어 튀어나온 빛의 파동에 불과하다고 시인을 설득할 지도 모른다. 이 때 물리학자의 논증은 현상학적인 것이 아니다. 물리학자는 시인이 현실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그 경험을 물리학적 용어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시인의 경험은 물리학자의 물질 작용의 인과적 설명으로 모두 환원되지 않는다. 하이데거가 세계를 단순한 물리적 대상의 총합으로 환원하는 데 반대하는 이유다.


 


하이데거는 세계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첫째, 존재자의 총체로서의 세계다. 둘째는 특정한 존재자의 영역을 의미하는 세계다. 예를 들어 물질의 세계, 생물의 세계, 수학의 세계 등과 같이 영역이 구별되는 세계다. 세 번째는 인간이라는 존재자에게 적용되는 세계로 하이데거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였고, 또 하이데거 철학의 가장 큰 특징으로 거론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세계는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장으로서의 세계를 가리킨다. 이 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좀 과감하게 말하면, 인간이 없으면 세계도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지구에서 어느 날 사라지면 지구도 함께 사라진다는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이 없어도 지구는 그대로 존재한다. 이 말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다시 앞의 시를 살펴보자.

 

우리가 먹는 된장에 구더기가 끓는다. 시인의 아내는 된장을 살리기 위해 콩 잎을 덮었다. 이것은 된장을 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또는 된장을 화학적으로 분석해서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구체적 삶의 세계를 고려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제 아무리 훌륭하게 된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더라도 시인의 아내가 왜 된장에 콩 잎을 덮었는가를 이해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이 맥락에서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장으로서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삶의 장으로서 세계를 이루고 있는 구조적 계기와 요소들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관심을 기울인다.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세계를 직접 만나볼 것을 권한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는 힘을 키우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현상학적 방법으로 세계와 직접 대면하라는 뜻이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우리가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만나는 세계를 분석 대상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버마스(Habermas)는 하이데거 철학의 공헌을 과학에 의해 식민지화되어 가고 있는 생활 세계의 위기를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찾는다.


 

 

 

 


하이데거가 지향했던 철학의 궁극적 과제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면 “존재의 물음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숨을 죽이며 연구한 것”이었지만, 그 후로는 긴 침묵에 빠져버렸다. 그러한 존재 물음은 결코 제기하지 말아야 할 것, 또는 너무나 자명한 것, 또는 내용이 텅 비어서 정의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서양 철학은 잘못된 길로 빠지고 말았다. 그 결정적 계기는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에 있다.


 


존재란 무엇인가? 하이데거의 설명은 이렇다 “존재는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규정하는 것, 존재자가 각기 이미 그것으로 이해되어 있는 것이다. 존재자의 존재는 또 하나의 존재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존재자(das Seiende)란 무엇인가?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아주 다양한 의미로 ‘존재한다’고 명명하고 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우리가 의미하고 있는 것, 그것과 우리가 이렇게 또는 저렇게 관계 맺고 있는 것 등 그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 자신이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하는 것도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정의한 존재와 존재자에 대한 구분이 선명하게 파악되는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결코 실망할 필요가 없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신조어는 대부분이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하이데거는 이 차이를 ‘존재론적 차이’라고 명명했다)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용감하게 말한다면, 하이데거가 저술한 1백 권에 가까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도 존재와 존재자의 문제에 대한 2500년 동안의 서양 철학의 오류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적 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존재자 구분법에 따르면, 존재자는 눈에 보이지만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아기도 쉽게 구분하지만, 존재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존재는 존재자를 규정하고 이해하는 지평이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를 자명한 것처럼 여기기도 하고, 존재의 문제를 철학적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존재론은 바로 그렇게 태어났다.


하이데거의 대표작 [존재와 시간]. <출처: Wikipedia>


 


하이데거는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한 존재 문제를 둘러싼 거인 족 간의 논쟁의 불씨를 되살린다. 여기서 그의 주장을 추적하기에는 지면이 너무 좁다. 그러나 최소한 존재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그의 기본 전략만큼은 언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이데거는 존재 문제를 푸는 실마리로 인간의 존재 양식에 주목한다. 인간은 다른 존재자와는 달리 존재 물음을 던지는 유일한 존재자이다. 그의 설명을 그대로 가지고 오면, “현존재는 그의 존재에서 이해하면서 이 존재와 스스로 관계하는 존재자이다”. 그는 이러한 현존재의 존재 방식을 ‘실존’이라고 말한다. 그가 실존주의 철학자로도 분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굳이 그를 분류한다면 서양 2500년 존재의 역사를 새로운 사유의 틀로 선보인 형이상학자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한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의 구체적 삶과 떼어놓고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로는 사상과 삶을 엄격하게 떼어놓고 보기 힘든 때도 있다. 하이데거와 같은 경우는 더 그렇다. 그는 평생 강의와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은 모범적인 학자의 전형이다. 그에게는 세속적 취미 생활이 거의 없었다. 신문도 거의 읽지 않았으며, 집에는 텔레비전 수상기도 없었다. 그는 글을 읽고 쓰고, 철학적 사유를 하는데 모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그의 길지 않은 총장 재임 시절의 오점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오점이란 하이데거가 나치에 부역한 사실을 말한다.

 

하이데거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공식적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 가장 포괄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은 1966년 9월23일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다. 하이데거의 희망에 따라 사후에 발표된 이 인터뷰에서도 하이데거의 입장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오류를 인정한다.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오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한다. 그러나 그는 나치에 참여했을 당시에 가졌던 정치적 견해와 철학적 입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주장을 펼친다. [슈피겔]이 집요하게 질문을 계속했지만, 하이데거 역시 자신의 철학적 주장을 되풀이해서 말할 뿐이다.

 

그래서 과연 하이데거가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가 범했던 정치적 오류와 똑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또 무엇보다 개인적 인물로서의 하이데거가 아니라 사상으로서의 하이데거 철학이 과연 파시즘과 무관한가 하는 질문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다. 그래서 하이데거가 끝내 석명하지 않은 것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그 이유가 유달리 강한 그의 자존심 때문이었지, 변함없는 정치철학적 소신 때문이었는지도 여전히 모호하다.


   

정재영 / 철학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2,30대에 언론사 기자를 지냈다. 나이 40에 늦깎이 유학생으로 영국에 건너가 워릭대에서 사회 존재와 인간의 이해에 대한 리얼리즘 접근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 양평에 있는 대부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철학 저술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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