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4 02:43 근대 철학/헤겔
찰스 테일러, 『헤겔』, 번역 정대성, 그린비, 2014를 요약, 정리한 글임
헤겔은 1770년에 태어났다. 이때는 독일의 문화가 질풍노도Strum und Drang의 시기로 알려진 시기이며, 헤겔은 느슨하게나마 소위 Romantik라 일컬어지는 이 세대에 속해있다. 스스로를 낭만주의자로 간주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세대의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은 특정한 생각에 붙잡혀 있었다.
당시는 혁명의 시대였다. 혁명이란 우리에게 하나의 진부한 문구가 되었다. 그러나 1790년대의 프랑스 혁명의 충격은 지금과는 훨씬 다른, 유럽을 휩쓴 폭풍이었다. 독일 지성인들은 당혹스런 공포와 열광을 동시에 드러냈다. 헤겔과 당대 지식인들의 많은 작품은 고통스럽고 소용돌이치는, 그리고 갈등을 내재한 프랑스 혁명의 도덕적 경험의 정당화 욕구로 이해해볼 수 있다.
당대 사상가들의 근본 문제는 인간 주체의 본성 문제, 인간 주체가 세계와 맺는 관계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외견상 불가피해 보이는 인간에 대한 두 이미지를 통합하는 문제였다. 이 두 이미지는 어떤 수준에서는 서로 유사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것으로 등장했다.1)
이 두 견해는 17세기와 18세기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발전했던 급진적 계몽 사상의 주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으며, 따라서 부분적으로 그런 계몽 사상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급진적 계몽 운동이란 부분적으로는 17세기의 과학혁명에 영감을, 부분적으로는 그 혁명의 수혜자인 인식론적 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사유의 노선을 의미한다.
급진적 계몽 사상은 베이컨, 홉스, 데카르트, 로크 등의 다양한 사상가들이 발전시켰다. 그리고 갈릴레이와 뉴턴의 과학에서 영향을 받은 이 사유노선은 인식 이론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 이론에서도 18세기에 강력하게 유지되었다. 이 사유 노선을 좀 더 급진적으로 주장한 사람들은 철저한 원자론과 기계론으로 발전했으며, 혹은 유물론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 노선은 윤리학에서 급진적 공리주의로 나아갔다. 엘베시우스, 흄, 벤담 등은 이 사유 노선 위에서 나타난 상이한 조류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상들의 운동을 독해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방금 언급한 것이다. 즉 우리는 이 운동이 일차적으로 인간학적 결과로 이어지는 인식론적 혁명이라 생각할 수 있다. 17세기의 근대인들은 인식록적 혁신자들로서 아리스토텔레스적 과학에 대한 조롱과 비판, 그리고 이 과학과 복잡하게 얽힌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사유의 우주론에 대한 조롱과 비판에 방향을 맞추었다. 목적인final cause에 기초한 세계상, 그리고 우주를 질적으로 상이한 수준의 의미있는 질서meaningful로 보는 상은 처음에(브루노, 케플러, 갈릴레이처럼) 수학적 질서라른 플라톤적-피타고라스적 상으로 대체되며, 마지막으로는 결국 경험적 관찰에 의해 확인될 수 있는, 궁극적으로 우연적인 상호 관계라는 근대적 세계관으로 대체된다.
근대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이전의 세계상들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인간을 심히 유약하게 만들며, 발견하고 싶은 형식들, 완전하고 평안하다고 느끼는 형식들을 아무렇게나 사물들에 투사하는 방종을 범한다. 과학적 진리와 발견을 위해서는 베이컨이 "인간 정신의 우상"이라고 부른 것에 맞선 단호하고 용기있는 투쟁이 필요했다.
의인적 가설로서의 추론에는 의미있는 질서라는 상이 놓여 있다. 그것은 의미 있는 질서라고 불릴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생각은 피조 세계의 서로 다른 요소들이 특정한 이념들의 질서를 표현하거나 구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의미있는 질서라는 이념은 목적인과 불가분의 관계에 묶여 있다. 왜냐하면 우주는 이 이념에 따라 배치되어 있으며, 이러한 생각들을 구체화하기 위해 이 이념이 행하는 대로 발전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질서이다.
세계를 의미의 범주들로 이해하는 것, 즉 세계를 이념들의 질서나 원형들의 질서를 구현하고 표현하기 위해 실존하는 것으로, 혹은 신적 삶의 리듬이나 신들의 정초 행위, 하나님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세계를 텍스트로, 혹은 우주를 책으로(갈릴레이도 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보는 것 등 이러한 유의 해석적 사물관은 근대 이전의 많은 사회에서 여러 형태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우리는 이것을 세계에 대한 의인적 투사라는 패러다임으로 알고 있으며,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세대에게나 어울리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이것이 지성사와 문화사에서 일어난 이러한 이행을 바라보는 우리의 유일한 해석이라면, 우리는 기계론에 반대하는 18세기 후반의 혁명들, 예컨대 괴테의 비전, 낭만주의적 상상력, 셸링과 헤겔의 자연철학 등을 신경과민에 의한 단순한 실패로, 향수에 젖어 이전의 안락한 환상의 시대로 회귀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철학의 역사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 이해는 기계론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18세기 후반 혁명들의 요점을 놓치고 있다. 만약 우리가 갈릴레이와 파두아의 철학자들 사이에서, 근대 과학과 중세 형이상학 사이에서 제기된 문제를 자아 안에서의 두 경향, 즉 환상을 편안하게 인정하는 경향과 척박한 실재만을 보는 경향 사이의 투쟁으로 보지 않을 경우, 이 문제를 자아 이해의 근본 범주에서의 혁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 문제가 그 시대에 그런 방식으로 이해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의 문제 구성이 18세기 후반의 운동을 아주 잘 이해될 수 있음을 말한다.
근대인은 자기 선조들과 적대자들이 스스로 짠 환상의 거미줄에 붙잡혀 있으며, 마음 속에서 고안된 의미들을 자기 멋대로 사실들에 투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독해 방식은 자아는 방종과 단호함 사이의 이런 투쟁을 위한 처소인데, 바로 이 근대의 자아 개념은, 비록 에피쿠로스의 견해에 그 전조가 있기는 했지만, 17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그 본질적 차이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과거의 견해에 의하면 주체는 우주적 질서와의 연관 속에서 규정되는데 반해, 근대의 주체는 자기 규정적이다. 인간 주체에 대한 어떤 설명도 경험의 보편적인 어떤 측면과 조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우리 자신과, 그리고 우리의 중심 관심사와 감응할 수 있는 시기에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는 반면, 그렇지 않은 다른 시기에 우리는 혼란스러움과 불명료함에 빠지거나 산만해지거나 비본질적인 것에 붙들리거나 아주 태만해진다.
조화 대 갈등, 심오함 대 피상적임, 자기 소유 대 자기 상시, 자아 중심 대 발산 등이 그것이다. 물론 각자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경쟁이 될 수 있는 해석을 제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것도 중립적이지 않다. 상이한 주체 개념들은 매우 다른 해석들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자기현존Beisichsein이라는 개념을 혼란이나 발산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생각해 보자. 고대의 지배적 주체관은 인간이 우주적 질서와 감응할 때, 그것도 이념의 질서로서의 그 질서에 가장 적합하게 감응할 때, 즉 이성에 순응할 때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머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분명히 플라톤의 유산이다. 인간의 영혼의 질서는 합리적 존재 질서라는 상과 불가분리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러한 질서를 숙고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 활동이다.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중세 사유의 기초로 작용하게 된 신플라톤주의적 상에도 이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생각이 내재해 있다. 1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주적 질서가 부재한 상태에서, 혹은 우주적 질서에 무지하거나 그 질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현존과 명료함에 도달한 주체 개념은 전혀 의미가 없다. 꿈이나 혼돈, 그리고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로 사물의 질서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자아 개념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리고 내가 거하는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그리고 내가 거하는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참고하지 않고서나 자신을 위해 규정할 수 있는 동일성 개념이 여기에는 없다. 이러한 견지에서 나는 본질적으로 질서의 상 아니면 환상의 상이다.
이제 17세기의 혁명과 더불어 발생한 변화는 무엇보다 근대적인 자아 개념으로 변화이다. 데카르트의 cogito에는 이러한 종류의 생각이 깔려 있다. 여기에서는 외부 사물의 실존과 심지어 신도 의심의 대상이 되는 반면 자아의 실존은 증명된다고 한다. 이와 유사하게 이미로부터의 해방에도 이러한 생각이 깔려 있다. 만약 사람들이 이념의 질서라는 상 안에서만 자기 현존에 도달한다면, 그리고 의식의 최고 양태로서의 과학이 자기 현존을 전제한다면, 과학은 의미 있는 질서라는 상 위에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갈릴레이의 적대자들의 논증에서 잘 드러난다. 의미있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면, 이 질서와 일치하는 것들이 있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의 출발점은 세계의 합리적 파악의 조건으로서의 질서,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른 소여된 합리적 질서, 그것도 합리성=이러한 질서상이라는 가정에 근거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하나의 논증으로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제시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일 것이다. 왜냐하면 칸트 이후의 사람인 우리는 과학의 사살로부터 그러한 이해를 선험적 논증으로 처리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논증을 사유의 불명확한 한계로 생각하는 것은 어느정도 일리있고 또 정당하다.
그러나 명백히 그 반대의 관계 역시 유지된다. 그리고 의미있는 질서라는 개념을 없애는 것은 자아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완벽한 자기소유란 이미 주어져 있는 의미를 사물에 투사하는 것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켰음을 전제하며, 우리가 세계로부터 되돌아와 순수하게 사물에 대한 관찰과 사유의 과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음을 전제한다. 과거의 모델은 이제 자아-발산의 꿈처럼 보인다. 자기 현존은 이제 우리의 본질을 아는 것, 우리가 관찰하고 판단하는 세상과 상관없이 우리가 행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 인식론의 자기 규정적 주체는 자연스럽게 동일한 운동에서 성장한 심리학과 정치학의 원자적 주체이다. 주체라는 바로 그 개념은, 수많은 동시대의 사상가들이 지적하듯 근대의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근대적 자아 개념의 전례가 없지는 않았다. 고대에는 에피쿠로스주의자들과 회의주의자들이 어떤 질서와도 상관없이 정의되는 자아관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의 이런 소수 전통이 근대적 혁명에 연료를 제공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리고 계몽의 많은 인물들이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를 모범으로 여겼다는 것도 놀랄일이 아니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과 회의주의자들은 세계에서 물러남으로써 자기규정이라는 개념에 도달했다. 그들은 우주적 질서에 대해서 의심했고, 신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기 규정하는 주체로의 근대적 이행은 세계에 대한 통제라는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처음에는 지적인 통제로, 그 다음에는 기술적 통지로 나타난다. 즉 세계가 텍스트나 의미의 구현체로 간주될 수 없다는 근대적 확신은 세계가 이해할 수 없는 난공불락과 같은 것이라는 의미에 근거해 있지 않다. 반대로 그 확신은 투명한 수학적 추론에 의지하여 사물들 안에 있는 규칙성을 정밀하게 도식화하고 또 그에 상응하여 조작적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성장했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를 궁극적으로 중립적, 우연적 상호 연관의 장소로 보는 상이 확립되었음을 의미한다. 고대의 회의주의자들은 사물의 본성을 알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부정했지만,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직접적으로 중요한 상황 파악 능력은 가진다고 주장했다. 근대인은 사물에 대한 직접적 인식이 목적인에 기초한 고대의 인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위신을 갖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물에 대한 그런 직접적 인식이 그들에게 인식의 패러다임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통제는 과학혁명과 근대적 세계관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주된 동기로 간주된다. 베이컨의 슬로건 "아는 것이 힘이다."는 이러한 인상을 우리에게 쉽게 제공한다. 그러나 베이컨의 경우에도, 그가 철학은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고 인간에게 이익을 주는 경향이 있는 단 하나의 실험도 수행하지 못한다."고 비판할 때, 여기에는 통제가 그 자체로 가치있기보다, 사물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확증하는 데서 가치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세계를 의미의 장소가 아니라 우연의 장소로, 즉 사실적 상호관계의 장소로 여기는 관점이다.
세계의 조작 가능성은 새로운 자기 규정적 동일성이 있어야 함을 보여 준다. 인간이 의미 있는 질서와 맺는 적절한 관계는 인간이 이 질서에 맞추는 것이다. 그에 반해 세계를 통제의 대상으로 성공적으로 다루는 것보다 이러한 상을 거부하는 징표는 없다. 조작은 막스 베버의 표현으로 탈마법화된 사물이라는 상을 증명하고 장려한다.
기술적 진보는 우리의 삶을 변형시키고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많이 산출했으나, 17세기에 실로 이러한 성공은 매우 적었다. 17세기의 사람들에게 통제는 증명 이상으로 중요했다. 베이컨은 "왜냐하면 열매와 업적은 철학들의 진리를 위한 보증자이기 때문이다.", "업적들 그 자체는 삶의 안락에 기여하는 것보다 진리를 약속하는 것으로서 더 위대하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베이컨이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지 명백하게 보여준다.
베이컨은 이후에 "발명의 모든 열매보다 그 자체로 더 가치 있다."고 한 이런 목표를 "미신이나 사기, 실수나 혼돈이 전혀 없는 사물 자체에 대한 숙고"로 정의한다. 이런 독특한 비전은 탈마법화된 세계는 자기 규정적 주체와의 연관 속에 있다는 것, 자기규정적 동일성의 획득은 유쾌함과 활력을 부여했다는 것, 그리고 주체는 더 이상 자신의 완벽함이나 악, 자신의 평정심이나 부조화 등을 외부 질서와의 관계 속에서 정의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 등을 매력으로 가졌다. 근대의 이런 주체를 형성하는 가운데 새로운 자유개념이 생겨났고, 이 주체에게는 자유에 기여하는, 결정적이고 확고부동한 새로운 중심 역할이 부여되었다.
근대의 주체 개념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대부분의 비철학자에게 존재는 보다 큰 질서와의 관계에서 정의된다고 느껴졌는데, 이런 느낌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대부분의 시기에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 종교적 의식, 성스러움의 의식에 의해 수행되었다. 바로 이것은 어떤 선택된 장소, 시간, 행동 속에 신적인 것이 임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톨릭은 자신들 뿐 아니라 기독교식으로 변형된 이방의 축제들에도 이런 신성한 것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티즘과 특히 칼뱅주의는 그것을 우상으로 분류하고 그것과 전쟁에 돌입했다. 칼뱅과 그의 후계자들은 신에게만 헌신한다는 명목하에 세계의 탈신성화를 위한 무한 투쟁을 수행했다.
이 투쟁은 피조계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규정할 때, 항상 참고해야 하는 바로 그 의미의 장소라는 이전의 생각을 철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물론 칼뱅의 후예들이 그 행위를 한 목적은 자기 규정적 주체를 주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는 신에게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증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의 경건함이 약화돠면서 탈신성화된 세계는 인간 주체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주체는 이제 원래 창조자를 위해 뿌려졌던 열매를 거두어들였다.
어쨌든 철학 혁명과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우리는 이 나라들에서 근대 주체 개념의 발전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근대 주체를 자기규정적인 것으로 특징지었고, 이와 연관하여 사물들을 내적 의미를 결합한 것으로, 세계를 관찰에 의해 확인되고 어떤 선천적 패턴에도 순응하지 않는 그런 우연한 상호 관계의 장소로 특징지었다. 이러한 탈마법화, 탈신성화 세계관은 객체화라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용어는 근대적 관점에서, 의미와 목적의 범주들은 오로지 주체들의 사유와 행동에만 적용될 뿐이며, 이 주체들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또 그것 위에서 행동하는 바로 그 세계에서는 어떤 가치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의미나 목적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여 사물들을 설명한다는 것은 주관적 범주들을 투사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 범주들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객체화이다.
새로운 객체성 개념은 목적인을 거부하며, 작용인에만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기계적이다. 근대의 객체성은 또한 원자적인데, 그것은 구성 요소들 사이의 작용적인 관계에 의해서만 설명하기 때문이다. 근대의 객체성은 동질성을 향해 가는 경향이 있는데, 왜냐하면 외관상 질적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동일한 근본 요소들이나 원리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구성된 것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근대 과학은 기계적이고 원자적이고 동질화하는 학문이며, 당연히 사물들의 모양을 우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근대 객체성 개념은 외부 자연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간은 인식의 주체일 뿐 아니라 자연 안의 객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새로운 과학은 인간에 대해 기계적, 원자적, 동질적 모형에 따라 이해하도록 장려했고, 인간이 우연에 기초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흄은 우리에게 처음에 그 관찰의 매체가 내성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유의 인간관의 탁월한 예를 보여준다. 동일한 개념들이 나중에 인간학에서 행동주의적 시도의 초석이 된다. 엘베시우스, 돌바크, 콩도르세, 벤담 등과 같은 급진적 계몽주의자들이 제시한 그러한 과학적 시도들은 이러한 객체성 개념에 근거해 있었으며, 계몽의 시대는 비록 완전히 일관적이지는 않지만 두 견해를 혼합한 인간학을 발전시켰다.
즉 새로운 객체성과 상관 관계에 있는 자기 규정적 주체성 개념과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다라서 이러한 객체성에 철저히 종손된 것으로 보는 견해의 혼합. 이 둘은 각각 원자론을 지지했다. 원자론적 자연과학은 자연상태의 개인에서 출발하는 정치 이론과 입론을 같이한다. 그러나 예컨대 결정론과 같은 문제에서 이들은 서로 갈등한다. 결정론에서 주체로서의 인간의 자유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세우는 엄격한 인과적 필연성에 의해 제약된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이 실천이성과 맺는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개념들 속에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칸트에게서 자연의 자극들은 자유의 요청과 대립되어 있다. 반면 계몽의 주류들에서 자연은 전체가 서로 맞물려 있는 객관적 실재의 체계로, 이 체계 안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다른 모든 것과 같이 자연적 실존 양식을 가진다. 바로 이 자연은 욕망하는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위한 모델로 제시되며, 행복과 선에 이르기 위한 이성의 계획을 규정한다.
그러나 양자 간의 이러한 긴장에도 불구하고 자기 규정하는 주체와 새로운 객체의 연합은 유지된다. 물론 양자는 부분적으로 결합되고 또 부분적으로는 갈등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이 두 요소는 인간의 정신적 본성과 운명을 강조한 온건한 이신론에서 아주 급진적인 유물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계몽을 위한 인간의 일반적 능력을 의심하는 극도의 염세주의에서 과학에 의해 재건된 세계라는 극단적인 유토피아적 희망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견해를 발생시킬만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것들이 우리가 계몽으로 알고 있는 시대의 견해들이다.
1) Beisichsein은 Bei sich sein의 합성어이다. Er ist bei sich는 "그는 자기 자신에게 머문다"로 직역되는데, 이는 "그는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다."를 의미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표현은 "그는 자유롭다.", "그는 평화롭다."로 의미가 확대되기도 한다. 헤겔은 이 개념을 자유 개념과 연관시킨다. 한 사람이 자유로운 것은 그가 타자에 의해 규제되는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규정을 세우고 그 규정에 따르기 때문이다. 즉 자기규정Selbstbestimmung은 주체가 자기 자신에게 머물 때 발생한다. 그래서 헤겔은 정신이 자기 자신에게 머물 때, 이를 자유라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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