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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언어의 속성과 성경

by 이덕휴-dhleepaul 2018. 1. 16.

언어의 속성과 성경

제 1 장 성경을 해석하는 기본적인 패러다임 5

영성치유 제29권 <제목차례>

제 1 장 성경을 해석하는 기본적인 패러다임 9

제 1 절 진리의 속성과 실체13

1. 생명의 공명 현상25

2. 생명의 공명과 오염현상 27

3. 오염된 심령 상태 41

4. 영의 진동과 파장의 원리49

5. 진리에 속한 심령의 공명 현상58

6. 율법의 속성과 복음의 속성 61

7. 복음과 천국 복음과의 차이 65

6. 성경 해석학적 영성 77

7. 해석학적 영성은 예수님의 생명80

8. 이 땅의 속성에서 벗어난 하늘에 속한 속성110

제 2 절 진리의 모양과 규모111

1. 모양이나 규모는 진리의 실체가 아니다 112

2. 마귀가 역사하는 속사람의 상태 122

3. 스스로 속게 되는 영적 원리와 궤휼의 속성124

4. 신령한 진리 속에 있는 위험한 속성140

5. 진리의 심판적인 결과146

6. 성경 영해는 진리의 영으로 영맥을 꿰어가는 것이다 152

7. 성경 속에 묵시적인 비밀들 167

8. 무의식 속에 있는 적그리스도적인 속성171

9. 두 번 째 나타나시는 예수님173

10. 영생의 진리는 영생이 아니면 영벌의 속성178

11. 진리에 대한 직관적인 반응과 저항의식의 발동181

제 3 절 영분별과 진리의 분별 188

제 1 장 성경을 해석하는 기본적인 패러다임

성경은 아무나 읽고 해석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며 가르침을 받아드릴 수 있는 내용도 아니다.

진리에 속한 자만이 받아드리고 이 가르침과 교훈을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영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눅8:18]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눅10: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마11:15]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13:16]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마13:43]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막8:18]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행28:27]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롬11:8]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딤후4: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4:4]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계2: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성경은 이러한 특성이 있는 책이며 내용임으로 성경을 어떻게 읽고 듣고 해석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과연 말씀을 받아드리고 신앙의 열정이 있다고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쉽게 아니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여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

성경에 관한 많은 연구를 하였다고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이 과연 진리에 속하여 성경의 말귀를 알아듣고 해석할 수 있는 영적 상태가 된 것이라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인가?

성경은 성경자체에서 성경해석법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오늘날 누가 해석하고 주장하는 것이 올바른 진리인가? 진리가 이렇게 혼동한 시대에는 과연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도 찾아내야한다.

신학을 연구하고 그토록 많은 연구들과 주장들이 왜 그렇게 난제가 많고 무기력하고 신학이나 교리들로 서로 비방하고 싸우고 분쟁을 하고 있는가?

[요18:37]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요일3:19]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문제는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 인간 편에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며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기준과 틀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사람의 주장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주장을 들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무엇을 말하고자하는 의도를 알아들을 수 있는 귀와 눈을 갖지 않으면 성경의 저자인 하나님의 말귀를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임으로 영으로 기록된 문자를 다시 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이 영은 진리에 속한 영으로서만이 가능한 것이며 진리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영생의 진리에 속한 진리라야 성경의 말귀를 알아듣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은 하나님의 백성은 읽고 이해하여 받아드릴 수 있으나 더구나 신약의 복음은 십자가의 도를 받아드리고 진리에 속한 자만이 진리의 영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영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는 이율배반적인 말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말은 이 세상적인 논리로 이해되는 말이 아니라 신령한 영적 이론으로라야 이해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수 영성을 필요로 하며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패러다임은 육신의 생각이나 지식에서 나오는 영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진리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영성이라야 한다.

진리의 영이 아닌 영은 세상의 영이나 거짓의 영이나 육신의 소욕에서 나오는 영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에 육신의 생각을 벗어나 진리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기름부음이 있는 상태에서 성경을 해석해야 하는 기준과 틀이 새롭게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가진 자가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고후3:6]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요일2:27]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제 1 절 진리의 속성과 실체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와 세상에서 말하는 진리는 그 속성이 다르다. 세상의 진리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사람에 따라 변하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진리이며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여 적용되는 진리이며 남녀 구별 없이 적용되는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이며 금세와 내세에도 영원히 변치 않는 영생의 진리뿐이다.

영생의 진리란 예수님 생명으로 주시는 진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세를 통하여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는 진리의 속성을 가진 영이 인도하는 진리이다.

예수님의 신령한 생명이 역사하여 심령 밑바닥에 깔려 있는 무의식적인 인간의 타락한 속성을 들추어내어 밝히는 피 묻은 속성을 가진 영생의 말씀이라야 죄와 사망의 세력을 심령에서 몰아내어 심령을 자유케하는 진리가 영생의 진리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힘입어 무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는 육성을 통하여 역사하는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 있는 영생의 말씀이나 진리가 아니면 속사람 밑바탕에 깔려 있는 들보를 제거하지 못하고 개가 먹은 것을 토하였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습관을 반복함으로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 될 수가 없다.

[벧후2:22]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엡5:5]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고전15:50]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그러므로 속사람을 치유하는 각 사람에게 비치는 참 빛이 아니면 속사람의 심령까지 온전하게 치유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영생의 진리가 되지 못한다.

이 영생의 진리가 아닌 것은 누구나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아도 말귀를 알아들을 수가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말씀을 따르는 제자 즉 진리에 속한자 이세상과 육성의 속성을 벗어나 신령한 자가 아니면 영생의 진리는 알아들을 수 있고 영과 육을 갈라 쪼개고 분별 할 수 있도록 역사하게 되어 있는 것이 생명과 성령의 법이다.

[눅8:10]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마11:27]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지혜와 계시의 영이 아니면 성경을 열지 못하고 성경을 통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영원한 생명의 실체 즉 영생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의 기록된 내용을 열어서 영생의 진리를 보여주는 말씀이 아닌 것은 생명의 실체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실체의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은 이 영생의 진리로서 풀어갈 때만이 성경이 열려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신학이 목적하는 교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정확무오한 진리와 길과 생명의 말씀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영생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고 성령이 역사하게 되어 있는 것이 천국복음이며 성령의 법이다.

신학적인 사상이나 신학적으로 짜깁기한 생각이나 비판적이고 율법적인 이론이나 육신에 속한 상태로서는 인간의 육신적인 생각이 주도하기 때문에 가끔 레마로 열리기는 하지만 적극적인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 어렵다.

성경의 저자와 같은 영적 맥락을 따라서 생각하고 그 의도가 무엇인가를 해석하려고 할 때 그 의도를 알아내어 말귀를 알아듣게 된다. 그러므로 영생의 진리를 구하려고 예수님께 가려는 자 즉 영생의 진리로 자신이 모르고 있는 죄와 사망의 세력을 벗어나 하나님의 뜻 안에 있고자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만이 성경 저자인 진리의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듣게 된다.

성경을 읽고 듣고 해석하는 목적이 설교를 잘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고 하거나 유명해지려고 하거나 자신이 죽지 않고 가진 것을 내려 놓지 않고 영생을 구하려고 하는 자는 자존심과 교만이 죽지 않은 상태로서 육성이나 육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며 세상적이며 율법적인 마인드나 혹은 진리가 없는 신비적인 상태에 있는 것이다.

성경은 영생을 알게 하는 책임으로 성경해석의 패러다임이 영생의 진리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를 흐르고 있는 영생의 진리가 아니면 해석의 통일성과 기준이 없게 되며 성경의 맥이 꿰어지지 않거나 해석하는 법칙이나 질서가 흐트러지거나 진리에 오류를 일으키게 된다.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더라도 하늘의 진리와는 일치하지 않는 땅의 진리만을 알게 되거나 말하게 되어 심령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고 의문이 되어 버리거나 단편적인 지식이 되어 생명력이 죽게 되고 율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율법적인 마인드가 되면 정죄하는 속성이 생기고 비판하는 속성이 생기며 교만해지고 하나님의 속성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율법적이거나 문자적인 지식이나 성경 내용만을 해석하는 영해만으로서는 영생의 진리를 잘 깨닫거나 전달이 잘되지 않는다.

또한 영생의 생명적 진리는 어디까지나 율법이나 초등학문적이나 세상적인 속성을 가진 마음을 비워야 받아드리고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기도하는 것이나 통독하거나 암송하거나 성경 내용을 연구하는 것으로는 성경이 열리지 않는다. 먼저 성경을 읽고 듣고 전하고 지키려고 하는 사람의 심령 상태가 진실한 마음으로 읽느냐 아니면 신령으로 읽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경을 읽고 듣고 하는 사람의 심령 상태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나 은혜가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가진 지식이나 세상적인 진리 즉 교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 지식 속에 있는 인간적인 속성과 세상적인 속성 때문에 눈이 가려지고 귀가 가려져서 영생의 진리는 잘 들리지 않고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반대로 영생의 진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경은 더 풍성하게 열려가고 깊이 열려간다. 이러한 영적 원리가 속사람과 겉사람의 속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영으로 열지 않으면 평생을 연구해도 부분적으로 열려지게 되어 있으나 겉 사람과 속사람이 일치된 생명 안에는 들어와서 해석하기 어렵다. 즉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 된 상태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온전한 심령 상태가 아님으로 오류가 일어나는 것이다.

성경에서 보이는 내용은 문자로 기록된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생명은 영으로 감추어져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영이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 말의 의미는 기록된 내용은 율법이나 교훈으로 기록된 진리의 잣대와 척도로 표현된 것이지만 그 내면에 있는 생명이 죄와 사망의 세력을 몰아내어 심령을 거룩하게 하는 속성을 가진 신령한 생명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생명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며 생명이란 영을 말하고 있음으로 이것을 영으로 해석한다고 하는 것이다.

성경은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며 이것은 성경을 영원히 변치 않는 시공간을 초월한 영생의 진리로 해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생의 진리는 생명나무에 이르게 하는 길이며 이 길은 인간의 타락한 육성으로는 접근하지 못하게 지키는 화염검과 그룹들로 가려 놓은 신령한 진리의 말씀이다.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는 진리의 문이며 양들이 안심하고 들어가며 나오며 평화롭게 꼴을 먹을 수 있도록 드나드는 문이다.

영생의 진리가 열리지 않으면 결국은 성경이 열리지 않으니 내가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내가 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시는 것이며 열려지는 것이다.

이 문지기가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면 성경이 열리지 않은 상태이며 문지기가 누구인가를 잘못 알면 울타리를 넘어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요10: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영생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는 영과 혼과 몸이 다 번제로 드려진 상태가 아니며 신령한 하나님과의 통로가 열리지 않은 상태이다.

심령 속에 임마누엘의 예수님이란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린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신령한 실체로 계실 때 죄와 사망의 세력을 벗어나게 하시는 생명과 성령의 법칙을 따라 역사하시는 진리의 영을 통하여 마귀가 가린 수건을 벗겨 눈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내 심령 속에 예수님이 있겠거니 하는 막연한 믿음의 상태나 모양이나 이론적이나 관념적이나 역사적인 예수님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신 영원한 영생의 진리로 살아계신 예수님이다.

영생의 진리는 교리나 신학이나 신비나 진리의 지식을 연구하고 공부하여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이나 규모나 기도로 나타나는 신비적인 능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지식보다 그리고 능력보다 진리와 능력이 하나 된 실체의 형상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예수님이 사는 실질적으로 역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며 말씀이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며 내가 예수님이 하자는 대로 하는 종이 된 전인적인 영적 상태를 말하며 의의 종이 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마11:27]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히5: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아비 본토의 집(타고난 인간 속성)을 떠나지 아니한 심령 상태에서는 육성이라는 들보를 뽑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육성과 세상의 속성들에서 나오는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사람의 교훈과 이론이나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심령상태는 중심이 세상 쪽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하늘의 신령한 속성과는 그 질과 생명력이 다르다.

세상적인 사고나 마인드를 가진 심령은 육신의 속성 속에서 역사하는 마귀가 뿌린 가라지나 발람의 교훈이나 생각이나 선입관으로 젖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눈에 가려진 수건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에 세속적인 안목으로 문자적이거나 율법적인 마인드로 읽게 되는 것이다.

육신적인 사고나 마음이나 의지는 자신의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으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영성이며 율법적인 영성이다. 이러한 영성으로서는 하나님의 신령한 속성을 지각하고 영과 육을 분리하는데 둔하여 문자적인 의미와 생명을 분별하여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신령한 영생의 진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타고난 속성이나 세석적인 속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피 묻은 속성의 말씀이나 사단의 정체와 실체를 밝히는 말씀 외에는 죄와 사망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하는 권세가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의 말씀이 아니며 영생의 진리가 아니다.

구약을 해석할 때에 십자가의 도를 적용해야 한다는 말이 이러한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심령 밑바닥에 깔려 있는 더러운 속성들로서 간사한 속성들,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속성들, 잘난체하는 속성들, 명예를 탐하는 속성들, 남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자기만을 주장하는 고집들,,,,,,.등을 지각하게 하는 빛을 통해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영생을 깨닫게 하는 진리와 영생의 가치가 얼마나 귀중하고 큰 축복인가를 깨닫게 하는 진리만이 각 속사람을 치유하고 영성을 치유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이나 지식을 갖고 있어도 진리의 성령이 깨우쳐주지 않으면 이러한 속성들이 삶에서 실제로 나타나고 말하거나 행동할 때 스스로 발견하고 깨닫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한 것들이 삶에서 나타날 때는 항상 일정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자신의 생각은 이런 지식을 갖고 있음으로 자신이 그렇디 않다고 생각하고 있음으로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마음이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스스로 자신에게 속고 있기 때문이다..

[요16:8]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막3:25]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눅8:18]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요5:19]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롬1: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롬2:20]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롬11:25]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롬12:16]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갈6: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를 이기는 철창권세의 말씀이라야 천사가 수종들거나 피 묻은 말씀이라야 백말 탄 하늘의 군대들이 따르면서 마귀들의 세력들을 공격할 수가 있다.

이 말은 심령을 거룩하게 하는 진리의 영이 속사람의 심령에 접촉되어 심령 속에 있는 진리 아닌 거짓 영들이나 어두움의 세력과 영들에 눌려 있거나 잡혀 있는 의식에서 벗어나거나 자신의 심령이 세상이나 육성에서 벗어나게 하여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함으로 자신이 스스로 자신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어리섞음을 면하고 지혜롭게 되어 간다는 말이다.

자신을 속이는 이 세력들이 마귀나 공중권세 잡은 자의 세력이나 세상의 영들이다. 성경을 읽을 때 이 말이 이런 뜻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뜻이 아니었구나! 라고 새삼스럽게 깨닫는다든지 모든 것이 자신의 허물과 미련함이었다고 깨닫는다든지 혹은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는 것,,,,,,,,.등을 깨달으면서 심령이 밝아지고 생수가 솟아나는 것을 때때로 느끼게 되면서 성경이 열려 갈 수록 이러한 빈도가 잦아지고 눈이 열려간다.

홀연히 자신이 성경을 보는 눈이나 사람을 보는 눈이나 만물을 보는 눈이나 귀가 넓고 높아지고 풍성해지며 신령해 지는 것을 조금씩 지각하다가 성경을 열러 갈수록 가속도가 붙어간다는 것을 지각하고 어두움의 세력이나 이 세상의 영들이나 공중권세 잡은 자들의 세력의 정체가 점점 뚜렷해진다.

어두움에서 벗어날수록 반대로 말씀이신 예수님의 모습이 수건을 벗은 듯 뚜렷하게 보게 되어 인간의 영이나. 신비의 영이 거룩한 속성과 신령성을 더하고 영성이 진리의 속성을 더하여 성경이나 사람들이나 마귀의 속성들이나 만물이 돌아가는 이치나 만물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즉 하나님의 영이나 말씀을 보다 더 분명하게 보게 된다.

이렇게 심령이 육신적인 속성이나 세상적인 속성에서 벗어나 성경을 보는 눈이나 읽고 듣는 눈이 달라지면서 성경이 열려게 됨으로써 하나님을 알아가는 심령의 공명상태가 더 뚜렷해지게 된다. 심령이 이렇게 하나님과 말씀이 나와 접목되어 하나 되어 신령한 속성이 나타남으로써 포도나무 줄기에 자신이 붙어 있음을 뚜렷이 알게 되고 영생의 기능이 점점 활성화 되는 것을 자신이 지각하면서 눈이 열려 간다.

이것을 영안이 열리는 것을 환상이나 환시 보는 것을 영안이 열린 것이라 하는 것은 영생의 진리가 아니라 세상의 영들이 말하는 영안이 열린 상태로서 이러한 영안이 열리는 다는 말은 그 차원이 여러 가지 형태와 차원이 있으며 1층천 3층천의 차원이 있다. 심지어는 무당들도 영안이 열렸다는 지하세계에서 일어나는 영안이 열린 것도 있다

그러나 영생의 진리만이 두 세 사람 사이와 세상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눈이 진리로 열려감으로써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삶에서 느끼고 지각하게 되면서 진리 안에서 살게 되고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진리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영생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 또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는 삶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행함으로 온전해지는 믿음의 삶이며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 받을 수가 있게 된다.

[고전15:50]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엡6: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 생명의 공명 현상

간단히 말해서 물체가 물의 분자나 속성에 젖어들고 녹아 나듯이 육체가 말씀에 젖어들어 하나의 공명 상대를 이루는 현상이다. 먼저 심령이 진리와 거짓을 갈라 쪼개거나 분별하는 심령에 접촉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진리가 영생의 논리를 가진 생명임으로 이 영생의 진리와 공명을 이루는 진리에 속한 심령이 되기 위해서는 영과 생명의 공명현상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육신에 속한 상태에서 신령한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과 접붙임 받는 것을 나무와 같이 비유하니 그 접붙임 받은 상태가 실제로 어떤 개념을 가진 상태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포도나무에 접붙임 받는 상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생명적인 각도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예수님과 접붙임 받는다는 것은 말씀으로 연결되어지는 통로가 있어서 생명수가 끊임없이 솟아나며 연결되는 상태를 말한다.

말씀이 내안에 있고 내가 말씀 안에 있는 상태로서 옥토에 심어진 말씀이 계속적으로 공급 되어지는 상태가 기름이 있게 되는 상태이며 예수님이 나의 머리가 되고 나의 주가 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바로 신령한 예수님 생명과 공명현상이 이루어지는 상태로서 말씀과 하나 되고 말씀 안에 있는 상태가 되어 내 몸(존재)이 말씀화가 되고 예수님의 영성으로 닮아가며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게 되고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실질적인 나의 구주가 되어 나의 주인이 되고 나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과 땅의 속성을 가진 육성적인 인간이 신령한 속성을 가진 존재로 홀연히 변화 되는 상태로서 세상의 속성과 성별되어지는 상태이며 진리에 속한 심령 상태가 되어 성경을 읽을 때에 진리의 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2. 생명의 공명과 오염현상

오늘 날처럼 말씀은 풍성하나 교회가 문제가 되고 세속화 되고 말세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시대가 된 근본 원인은 성경을 오해하고 말씀의 본질을 신학적인 연구 대상의 학문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마인드가 생명이 죽어 있고 예수님의 임마누엘의 존재를 학적으로는 인정하나 실질적인 마인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신적인 마인드는 신령성을 인정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세계를 인식하지 못함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무의식적인 마인드는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말귀를 알아듣는데 엄청난 오해나 해석상의 차이를 가져온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해석법을 따라 영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의문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심령이 세속적인 학문이나 지식으로 혹은 율법적인 개념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심령이 세상적인 교리로 오염되고 병들어 있고 성경이 보여주고자 하는 영생을 알지 못해 심령이 치유되고 않고 영성이 하늘의 속성을 가진 생명과 공명을 이루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접붙임의 말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생명적으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귀가 열리지 않은 상태이며 영을 보지 못하는 상태라서 생명적인 이해에 근본적인 오류를 일으켜 믿는 사람들이 영생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한 교훈이나 메시지나 가르침으로 이해되어 살아 운동력 있는 영생의 말씀으로 읽고 듣고 해석하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을 여러 가지로 성경에서 말하고 깨우쳐주고 있으나 진리의 영이 아닌 인간의 영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기 때문에 영생의 진리를 헤아려서 보는 눈이 열리지 않고 귀가 열리지 않아서 하나님의 말귀를 알아듣는 훈련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생각이나 마음이나 신학이나 선입관이나 가르칠려고 혹은 연구하려는 자세와 마음으로 읽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성경을 읽을 때에는 예수님의 마음이나 의도를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읽고 영으로 지각하며 읽어야 하며 성경 전체의 흐르는 맥락 안에서 해석해야 오류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으며 또 다른 말로는 성령의 조명이나 계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기름부음이 있어야 된다고도 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적인 속성으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잘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마인드와 영성이 먼저 해결되어야 하며 신앙생활도 먼저 성경을 열수 있는 마인드가 될 수 있도록 영성훈련이 먼저 되고 난 후에 신앙생활을 올바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된다.

바늘이 실을 꿰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바늘 따로 실 따로 이것은 아무런 결과를 가져 올 수 없는 것이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따지는 식의 율법적인 가르침은 샘영안에 들어오거나 복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영적인 성장은 동시에 이루지고 성장하는 것이지 성경지식을 가르침으로 영성이 훈련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열리지 않은 상태는 하나님과의 공명 상태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시행착오를 일으키게 된다.

성경 해석상에 난제가 많다는 것은 성경이 열리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그 숫한 연구나 오랜 연구에도 왜 이러한 난제가 풀어지지 않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wksuk 아버지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직 육신적인 어린 아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식이나 교만은 자신을 굽히지 않고 탓을 다른데 돌리고 있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금한 실과를 따먹고 책임을 다른 곳에 돌리고 있는 것이다.

영생을 구하려고 성경을 상고하려면 예수님 앞에 자신을 굴복해야 하는 것이며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비워야 하는 것이다.

신령을 꺼려하고 두려워하는 의식으로서는 의문은 죽이는 것이나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해석하라는 말귀를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신령으로 예배하고 신령으로 성경을 일고 신령으로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구체적이지 못하는 것은 자신도 의시하지 못하는 사이에 성령을 훼방하거나 거역하거나 슬프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령 상태나 영성은 성경을 읽고 해석하여 알아들을 수가 없으며 성경을 기록한 영과 주파수나 공명 상태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교훈이나 가르침에서 영생의 진리가 보여야 생명적으로 읽게 되는 것이며 영생의 말씀이 보이게 되어 있다.

성경은 영생을 알게 하는 책이요 예수님의 얼굴이요 마음이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며 말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경해석의 오류나 의문의 성경해석은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속성과 생명력이 죽어버린 교훈이 되고 이 생명력이 없는 무자적인 지식적인 말을 영생의 말씀으로 착각하는 다수의 공중 세력들이 이 세상이나 교회나 심령이나 영성을 지배하고 다스리기 때문이다.

세상의 속성을 벗어버리지 못한 심령이나 교회는 진리를 분별할 수 없는 눈에는 숫자나 그럴듯한 치장이 진리로 보이는 것이다.

성경의 문자적인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영이나 정신이나 마음이나 생명이 중요한 것이며 진리가 중요한 것이다.

성경을 영으로 읽거나 해석하는 자세를 비판하는 것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우둔한 처사이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미련한 것이다.

사단은 이러한 무지를 통해 권세를 휘두르는 것이다. 무지가 죄요 죄의 삯은 사망이며 사망 세력을 잡은 자는 마귀이며 마귀는 이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세력을 통하여 좁은 진리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신칭의의 교리는 쉽게 받아드려도 영생의 진리는 받아드리지 않고 이단시한다. 공중 세력과 속성이 같기 때문이다. 영생의 진리로 성경을 연구하면 성경이 열린다는 것을 사단은 알고 있는 것이다. 영생의 진리 안에 들어가 버리면 사단은 건드릴 수가 없기 때문에 결사코 사망 세력권 안에 붙들어 두려는 것이다.

이신 칭의의 교리는 영생의 진리 안에 들어오기 위한 준비 과정이요 아직 진리의 영이 역사하지 않는 상태이며 단순히 구원의 예수님이 나의 실체가 되어 임마누엘의 심령 상태가 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사단이나 귀신이 쫓겨 가지 않아도 되는 진리이며 사람의 가르침이기 때문이거나 세상적으로 인정받는 어느 특정인의 가르침이며 예수님이 각 사람에게 깨닫게 하는 영생의 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이 열리지 않은 상태는 이 공중권세 잡은 자들의 세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하늘의 진리를 분별하는 신령한 눈이 어둡고 세상적인 지식으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한다.

성경을 영으로 해석하는 것을 알레고리로 해석한다고 공격하는 것이나 성경을 의문으로 해석하는 것이나 다 같이 위험한 것이다. 동시에 적용하고 일치하는 영생의 진리로 읽고 해석하는 방법 외에는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대로 해석하는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성경이 열리지 않은 상태는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 신령한 속성을 빼버리고 인간의 말로서 알아들으려고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세력이나 어두움의 주관자들의 세력이나 하늘에 속한 악한 영들의 가르침이나 역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영생이 아닌 진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가 아니라 어느 특정인이 성경을 해석하기 위한 기준을 만들어낸 주장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하나님과 속성이 같은 코드가 아니며 영생의 진리에 속한 영성이 아니다.

영생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지 않는 연구는 진리의 속성이 인간에게서 나오는 영이나 생각이나 마음이나 주장이나 사상의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에 사단이 틈 탈 수 있는 허점투성이며 성경적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문자적으로만 의미를 말하게 되어 알맹이 없는 껍질만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이다.

영생의 진리는 진리라는 모양과 생명이 되는 영생이 하나 된 상태로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진리이며 하늘과 땅의 진리가 동시에 일치하는 진리이며 살아계시는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읽혀지고 들려지고 지키고 행함으로 성취되는 말씀을 먹을 수 있게 되는 심령이나 영성이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났지만 심령이 육적 몸을 벗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말을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의 속성을 따르는 인도자나 무리들이 진리를 왜곡되게 가르치거나 생명 없는 지식을 하나님 말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생의 진리 아닌 것을 먹음으로 그 심령이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이 사라지고 인성교육에 세상 적으로 오염되어 심령들이 병들어진 몸으로 성경을 보는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이다. 눈이 어두우면 몸이 얼마나 어둡겠느냐? 하시는 예수님 말씀은 이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심령을 오염시키는 세력들이 666의 세력들이다. 복음 속에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진리를 잘 알지 못하고 문자적인 이론이나 종교적인 개념이나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생의 진리나 교훈을 영으로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고 전함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음으로 화합하여 들음으로 시작하는 구원의 진리로 시작하여 마지막 구원의 종착역이 영생이며 이 영생의 생명력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거룩해지는 천국복음이다.

이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나 뜻이 육하원칙에 따라 인간의 심령 속에서 예수님의 생명이 공명 상태로 이루어지고 진행되는 영적인 원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생의 진리이며 성경전체의 맥락과 흐름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전체의 영과 생명의 흐름 즉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이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영생의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거나 부분적으만 보고 있는 상태로서 영생의 진리를 겉 사람과 속사람이 온전하게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외적으로 나타나는 의식이 알고 있음으로 겉 사람은 부자이나 속사람은 거지로 있는 상태이다.

속사람이 신령한 상태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육신적인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육성이 나타나거나 마귀나 귀신이 발동되거나 하여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진리를 왜곡하고 있는 신비의 영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가 역사하는 상태의 신령한 영성을 말하며 예수님의 피를 마시고 생명의 떡을 먹고 마실 수 있는 예수님의 회생과 사랑의 마음과 주파수가 일치하는 진리에 속한 심령이나 영성을 말하는 것이다.

세마포 옷과 피뭍은 옷과 전신 갑주를 입은 상태로 마귀를 이기고 혈과 육을 벗어난 상태를 말하거나 육적 몸이나 세속적인 인간의 가증한 속성을 벗은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천국 복음은 시집가고 장가는 차원이 아니라 이러한 인간적인 속성들을 초월하는 신령한 생명적 차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와 진리는 마음으로는 원하나 육신이 약하여 마귀에게 시험당하고 미혹되는 이 과정과 마지막에 진리의 영으로 오시어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성경을 해석할 수 있게 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귀를 알아듣게 하시어 예수님의 영광의 광채를 우리 심령에서 나타나게 하는 십자가의 도와 그 능력의 비밀을 열어주신다.

하늘의 비밀을 맡은 일꾼이라면 천국의 복음을 이해하고 그 비밀을 천국 열쇠로 풀어서 성경을 통해 영생의 진리를 읽어내고 그 보화를 캐내어 보여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천국 열쇠로 풀지 않으면 성경의 맥락에서 벗어나 인간의 상상력이나 논리로 풀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생의 진리를 이해하지 속사람의 심령이 지각하지 못함으로 진리의 영을 인식하지 못하여 영으로 적용하지 못하여 말씀이 숙성되지 못하고 육신에 속한 상태에 있거나 옥토에서 자라지 못하거나 성령 즉 영생의 기능이 기름 부어지지 않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진행되는 과정이 인간 심령 속에서 일어나고 또 외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구원의 동적이고 역학적으로 일어나는 생명적 변화와 현상을 지각하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하여 신령한 것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신령을 두려워하고 외면하고 자신이 쉽게 이해되고 알 수 있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받아드리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영생의 진리를 보지 못하여 살아 있는 영생의 말씀을 전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가르침이나 율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대중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진리로 인정하지 않는 공중세력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진리란 그 지지 세력이 아무리 많아도 진리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영생의 진리란 시대나 환경에 따라 아무리 많은 대중이 따르고 있고 지지 한다할지라도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수가 있는 것이며 진리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며 동서고금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늘과 땅을 불문하고 일치하고 변치 않는 것이 영생의 진리이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신학적인 조류나 신앙적인 풍토나 종교는 영생의 진리가 될 수가 없으며 바울파다 게바파다 하는 상태는 아직도 복음 안에 들어온 상태가 아니다.

진리의 복음안에는 믿음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이며 진리도 하나이며 주도 하나이며 하나님도 하나이다. 나타나는 외형적인 모습이나 종교방식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을 따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만하되 우둔하게 되어 썩어질 우상을 주장하는 마인드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를 삼키는 것이다.

이 미련함이나 무식이 인간이 자랑하는 교만 속에서 나오는 속성이다.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그리고 진리의 영으로 그리고 속된 것을 벗어난 진리에 속한 심령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심령이 아니면 성령을 주시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내가 여는 것이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원이 있어야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데 이것은 약속을 지키시는 아버지께로부터 보내 주시는 성령의 기름부음으로서 우리의 심령 상태가 말씀과 성령이 하나 된 실체로서 역사하는 심령 상태가 되었을 때 즉 몸으로 산제사를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이며 역사하는 것이다.

임마누엘의 실체가 성경을 풀어서 보여주시는 말씀이 될 때에 심령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영적 우너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마인드는 신령한 말씀은 거역하고 의문의 말이나 가르침은 쉽사리 받아드리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보다 대중이나 인간에게 인정받으려는 자세가 진리를 왜곡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 잘 보이랴 하나님께 잘 보이랴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무의식적인 마인드나 육신의 생각이 생명 없는 초등학문을 만들게 되어 우상을 섬기게 만들거나 무저갱 속에서 나오는 짐승적인 인간의 속성을 통하여 나오는 신비의 열쇠로 성경을 여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성경을 열지 못하게 하는 무저갱 세력을 볼 수 있으면 진리에 속한 심령이 되어 있는 상태로서 종말로 성경을 해석하지 않게 되고 계시록 뿐만아니라. 구약도 성경이 열린 상태로 보이면서 성경전체의 맥락이 체계가 세워져서 하나 된 진리의 형체를 이루어 심령 성전에 하나님이 거하시게 되는 것이 영생이다.

기필코 끝까지 일곱 인봉을 떼고 성경을 열어서 영생의 열매를 맺고 생명책에 기록되고 뱃속에서 생수와 같이 솟아나는 영생이 역사하는 상태가 되어야 만주의 주가 되시고 나의 왕이 되신 구세주를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것 같이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편에서 보면 불가능한 것처럼 어렵게 보이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간단한 것이며 적은 일이다. 영생의 진리로 성경을 해석하기 시작하면 일주일 만에 들어 갈 수 있는 천국을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자신을 버리고 마음을 주께 돌이키고 주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어찌 성령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핵심은 영생을 구하면서 나를 비우지 않고 자신을 고집하는 밑바닥에 깔린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는 눈이 영생의 진리로 보지 못하게 하는 세력에 잡혀 있는 눈으로 성경을 읽고 보고 있는 것이다.

신령한 몸과 새 부대의 심령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율법적이고 비판적이며 패쇄적인 마인드에서 속히 벗어나는 것이 성공과 부흥과 영성과 축복의 열매를 맺고 행복한 천국의 복음을 마음껏 누리며 살게 되는 지름길이며 내가 사는 길이며 이웃과 화평케 하는 길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다.

진리 아닌 것은 진리의 모방품이거나 거짓이거나 불순물이 섞인 것이다. 심령은 진리로 거룩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가 무엇인가를 확실히 분별하지 못하고 답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오염된 심령의 죄와 사망의 세력들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 불순물들이나 들보나 쓴 뿌리를 뽑아 버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영생의 진리를 알기위해 진리에 속한 심령 속에서 역사하는 진리의 영이 하늘과 땅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하늘의 뜻을 계시하는 영을 지각해야 눈을 가린 어두움을 씻고 성경의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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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의 말씀을 신령적으로 알지 못 하고서는 신령으로 예배도 드릴 수가 없고 진정으로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달을 수도 없고 내 심령의 어두운 부분이나 “나”를 잡고 있는 잠재의식 가운데 있는 죄와 사망의 세력을 몰아내는 방법(길)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이 열리지 않으면 죄와 사망의 세력을 분별하지 못하는 심령 상태일 뿐만 아니라 주위 환경이나 대중들이 주장하는 공중 세력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들이나 가르침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심령에 침투하는 오염된 사람들의 말이나 교리나 진리 아닌 거짓을 보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받아드리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 말이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광명의 천사를 가장 했거나 율법적인 것들은 심령에 가라지를 심어주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심령이 병들고 무능해지고 신성이 부패해 지고 인간적이 되고 소금이 맛을 잃어버린 것과 같이 신령한 속성들이 살이고 육체로 돌아가는 것이다.

신령이 있어도 거룩한 진리의 속성이 없으면 영적 파워가 있기 때문에 신비로 빠져버려 오히려 더 강퍅해지고 교만해지고 자기의 영적인 능력이나 은사를 자랑하게 된다. 이것은 지식이 교만케 하는 원리나 같은 것이다.

성경을 영으로 풀되 영적 원리로 풀어야 영생의 진리가 보이며 알레고리가 되지 않고 논리적이고 신학적이며 교리적으로 오류 없이 해석할 수 있게 되고 난제가 풀어지는 것이다.

[고전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고전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고전11: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전11:30]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고전11: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고전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 오염된 심령 상태

심령이 오염되어 진리에 속하지 않으면 이러한 인간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별하여 지각하는 영적 감각이 하나님께 대한 것은 둔해지고 인간의 타산적인 속성이 성령을 슬프게 하거나 대적하는 속성이 생겨서 진리의 영으로부터 나오는 빛과 깨달음이 부족하여 지고 영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육신의 생각을 좇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기도해도 성경을 읽어도 예배를 드려도 사람과 대화를 해도 설교를 해도 사단들이 역사하기 때문에 심령이 곧잘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입으로 사탄의 속성을 가진 영이나 말이 나오게 되고 자신의 심령과 주위 사람들의 심령을 공격하게 되고 화평을 깨트리게 된다.

그 많은 하나님에 관한 정보나 지식이나 은사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육신의 생각이나 소욕이나 의지로 결단하고 선택하고 판단하게 되어 하나님의 속성이 없어지고 인간의 속성이 표출되고 이 인간의 육신의 생각을 통하여 마귀가 인간의 심령을 신령하게 성장하는 상태를 머뭇거리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태가 삶에서 반복 되어 지는 것이다. 구원의 이론과 실체가 다른 것이다. 심령에 항상 변하지 않고 중심이 흔들리지 않은 상태는 생명력이 있으되 그 생명력이 그리스도의 피 묻은 생명력의 옷을 입은 영생의 진리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영적인 정보나 지식이 있어도 인간 스스로는 이를 행동으로 온전케할 수 는 없다는 것이 영생의 진리이다. 오직 예수님 생명으로 제조된 진리만이 가능하며 이를 증거하고 이 예수님의 의를 드러내고 영광을 위하여 일하시는 성령 즉 진리의 성령만이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여 성경을 보는 눈이 가린 것을 벗겨주시고 자신의 허물과 죄를 깨닫게 하며 의의 길을 볼 수 있게 하고 심판의 영적 상태와 결과를 알게 하는 영생의 진리를 볼 수 있게 한다.

인간에 의하여 작성되고 만들어진 진리나 교리나 신학은 예수님의 생명이나 하나님의 의를 들어내기보다 인간의 휴머니즘이나 윤리관이나 인간의 영광을 들어내거나 인간에게 인정받으려는 속성이 깔려있고 자기가 속한 무리나 당의 가르침이나 교리에 매여 있는 경우나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고 자신을 합리화 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초월하고 순수한 진리만을 주장하지 못하고 발람의 교훈을 전개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속성이나 세상의 속성이나 더구나 마귀나 귀신의 속성을 알지 못하는 상태와 차원에서는 성령이 자유롭게 역사하지 못하여 억압당하거나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대중의 세력에 늘려 있게 되는 상태에 있거나 참된 진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것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인간의 자신의 자존심을 손상하는 일에 결코 자신을 양보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살기위한 본능을 발휘하게 되어 공격성을 갖게 되거나 시기하고 남을 죽이려하는 것이 깔려 있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나 이 책을 기록하고 있는 저자나 다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속성을 탈피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다. 오직 내가 사는 길은 내 속에 말씀 예수님이 생명으로 나타나는 길 밖에 방법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이 열린 상태가 되어야 영생의 말씀을 먹고 예수님과 같은 속성의 영성이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과 성령이 역사하는 방법과 원리를 알고 적용하여 성령을 힘입는 방법을 알고 그 권세를 적용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영생의 진리이며 사단의 세력이나 세상의 오염된 진리나 인간적인 연구나 윤리도덕이나 능력이나 노력이나 영적인 정보만으로서는 이것을 알고 있어도 권세가 나오지 않음으로 불가능한 심령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능력이나 속성이 없는 진리는 심령을 오염시켜 인간의 속성이 겉으로는 경건하나 속으로는 더 부패하게 되어 갈등이 더 심하게 된다. 하나님의 장중에서 벗어 날 수도 없고 억지로 경건하게 살려고 하니 뜻대로 되지는 않고 막연한 하나님의 손길만을 기다리니 답답하고 조급증과 불평과 원망이 더 나오기도 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삶은 고달프고 하나님을 의지해도 바라보아도 언제 이 고난이나 환란에서 벗어날지도 모르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발버둥치게 된다.

물론 문제가 잘 풀리는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인생이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믿음이 없다고 책망들을 것만 생각하고 혼자서 끙끙 앓기만 하다가 작정기도에 들어가기도 하고 간혹 작정 기도에 응답 받았다는 간증에 자신도 그러한 행운이 찾아올것인가의 기대를 하면서 혼갖 힘을 다해 “믿습니다”라고 손을 모아 큰 소리로 외쳐본다.

심령에 진리가 없고 오염된 심령은 항상 반신반의 하며 막연한 하나님을 기대하거나 뜨겁게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오직 예수. 오직 믿음이라고 다짐하고 다짐하지만 이는 허공을 치는 것이다. 내말이 내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하나님의 약속솨 진리의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인 것을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열린 상태는 이러한 영적 심령 상태를 인식하고 분별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해결하는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깨달아 자신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좇아가기 때문에 장래 일을 알게 하시는 진리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 때문에 불안이나 막연한 기대가 아닌 반드시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는 확고부동한 진리를 알게 되어 소망가운데서 달려갈 수가 있게 된다.

이 심령이 오염된 상태와 진리에 바로선 상태의 삶이나 신앙의 질적 차이는 지옥과 천국의 차이다.

성경이 열리기 시작하면 불신의 한구석에서 나오는 불안이 제일 먼저 없어지고 이러한 억지로 믿어보려는 태도나 경건한 척하려는 의식이 없어지고 자유스러운 마음과 믿음의 생활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자리 잡고 주인공이 된 자존심이 사라지고 혈기도 차즘 살아지고 모든 것이 긍정적인 사고로 저절로 바뀐다.

억지로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의무적이고 자의적인 모든 것들과 행동과 사고방식들이 새롭게 형성되어 가며 시기하던 마음이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율법적이고 윤리적인 것들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억지로 도덕군자인 것처럼 가장하지 않아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자의적인 자세로 바뀐다.

사림의 눈치를 보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이 자신도 모르게 영을 따라 생각하기 시작하고 영을 따라 행동하기 시작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영적으로 자라게 하는 것을 스스로 지각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분별하는 지혜를 따라 지혜로운 판단으로 세상이나 사건을 보게 되고 성경이 열림으로 일어나는 영생의 값어치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기적은 갑자기 생기는 것만이 아니다. 하루 하루의 삶이 기적의 삶으로 감사만이 나오게 된다.

진리에 선 자의 삶과 심령의 오염된 삶이나 신앙의 차이는 누가 뭐래도 이론적으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 성경이 열린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영생의 진리로 말미암아 열려지게 되는 축복은 성경뿐 만아니라 능력과 은사는 물론 환경 속에서 일어난 영육간의 다양한 축복이 생긴다.

그 상태와 결과는 진실로 헤아리는 만큼 상급으로 그 대가가 돌아 온다. 가장할 필요도 없고 억지로 신령한척 가장 할 필요도 없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다. 삶이 증명하고 결과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오염된 심령은 이러한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과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하여 좀처럼 남을 믿지 못하고 축복의 기회나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고 자신의 고집을 꺽을 줄을 모르고 남에게 피해를 받게 되면 자신은 물론 이웃 사람에게도 불안과 공포를 제공하는 미련한 행동을 하고 말씀을 전하는 자는 이러한 사망의 세력을 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율법적으로 남을 정죄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겉 사람은 후패하고 속사람이 강건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영생의 진리이다. 이 방법 외에는 길이 없다. 이 영생의 진리 외에 다른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하면 성경이 잘 열리지 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겉 사람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길이 없을 뿐 아니라 계속되는 마귀의 참소를 이길 수가 없다.

이 하늘의 신령한 생명과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 외에는 시대 정신에 물들어 있는 인간의 영이 뿌려 논 가라지나 종교적이고 율법적인 거짓 영에게 자신이 속고 있고 진리를 왜곡하기 때문에 성경의 영맥도 뚫리지 않고 심령이 신령한 진리의 영이 역사하는 영성이 생기지 않거나 성장하지 않는다.

영적 생명은 성장하지 않으면 죽어 가고 있으며 신령한 단계로 업그레이드 하지 않으면 주저앉아 있는 상태가 되어 차차 그 속성이 사라지고 열성이 있는 자는 신령한 속성이 아니면 신비가 되든지 열성이 줄어들면 지적이 되든지 육성으로 되돌아가게 되어 좌로나 우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심령이 오염된 심령은 마치 지하실교회에 어느 곳에선가 비가 새어 깔아놓은 장판 밑으로 쓰며 들어오고 언젠가는 물이 장판위로 들어나 축축한 바닥이 되어 사용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요 원리이다.

원수가 어느 듯 우리의 심령을 오염시켜 놓는 현상을 보지 못하면 성경이 열리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장판을 들추어보아야 물이 쓰며 들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각이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뒤집어 보아야 자신의 심령이나 교회나 예수님이 피로 세운 교회 속에 파고들은 여우나 두더지나 황충이와 전갈들을 볼 수 있고 뿌리내리고 있는 쓴 뿌리들을 뽑아 버릴 수가 있다.

이 쓴 뿌리를 뽑는 것이 추숫 꾼을 보낸 후에 오시게 되는 마지작에 불칼을 휘두르는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인 것이다.

그 시기와 때는 아무도 모른다.

성경이 열리어 숨은 것이 없이 적나라하게 다 들어나는 철창 권세의 말씀이 아니면 성경이 열리지 않는다.

이러한 불법의 비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 시대의 징조이며 영적 무질서와 혼동과 암흑의 시대에 노아의 홍수 때나 소돔과 고모라 때와 같이 “빛이 있으라” 하시는 말씀이 나타나며 하나님의 새 창조가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성경을 여는 것이 영생을 아는 것이며 영생을 아는 것이 영생의 진리를 아는 것이며 영생의 진리를 아는 것이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며 예수님을 아는 것이 신령한 말씀을 아는 것이며 신령한 말씀을 아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만물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는 눈이 신령한 눈이며 신령한 눈을 가진 자가 신령한 사람이며 신령한 사람이 하늘에 속한 진리의 말씀을 가진 자이며 진리의 말씀을 가진 자가 말씀을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고전2: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2:7]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전4:1]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고전14:2]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전15: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엡1: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엡3:3]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엡3:4]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4. 영의 진동과 파장의 원리

[계8: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영은 외부에 그 세력을 전파하게 되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오염된 생명은 나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주위에 나쁜 파장을 주게 된다.

내가 악한 말을 하거나 심령을 공격하여 이웃의 심령을 상하게 할 수도 있고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악한 심령을 갖고 있으면 나쁜 파장을 전파한다.

심하게 귀신이 들린 사람의 파장은 머리를 아프게 하고 불쾌하게 하거나 강퍅한 심령이 되게도 하며 귀신에게 오염되기도 한다.

반대로 사람의 부드러운 심령은 자신에게도 펑안을 주고 또 주위에 많은 사람들에게도 선한 파장을 주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것은 두드러지게 크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지만 민감한 사람은 미미한 현상이라도 세밀하게 지각하게 된다.

이러한 영적 지각이 성경을 읽는 경우에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성경의 내용은 영으로 기록된 문자임으로 그 속에는 영의 가능과 영생의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능은 성경 단어와 내용에서 나오는 그 파장의 질이 영적 속성을 결정하기 때문에 신령한 것은 파장이 강하게 느껴지고 세속 것은 지각되지 아니한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영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상태가 되어 공명 상태를 이루는 현상을 지각하는 현상이다.

[히5:12]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5:14]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성경의 단어나 말이나 글이나 심지어 어떠한 책에서도 감각이 되어 진다.

이러한 지각은 심령이 깨끗하면 깨끗할수록 더 민감해진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의 보이지 않는 능력의 하나이다. 신령한 속성은 모든 것을 볼 때에 이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직관적인 기능을 통하여 민감하데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겉 사람의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이 이러한 영의 속성들을 보는 눈을 갖게 되기 때문에 육성의 강퍅한 것이나 세속의 것들 또는 가짜로 위장한 것이나 거짓 말 들을 지각하는 기능이 발달된다.

이러한 현상은 신비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고 알고 보면 인간의 생명현상 속에서 이러나는 현상으로서 우리가 이제까지 대중적으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 뿐이다.

이것은 신(new)과학지식에서는 밝혀지고 있는 새로운 과학지식이며 동양에서는 이미 기(氣)를 통하여 이미 밝혀진 사실들이다

거짓말 탐지기나 신종푸루 탐지기와 같은 AURORA 탐지기는 이를 분별해 내고 있다. 간단한 실험으로서 이를 증명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여러분이 성경책을 한쪽 손에 잡고 한쪽 손에는 엄지와 중지의 손가락을 링을 만들고 다른 사람이 떼어 보라고 하면 잘 떨어지지 않는 강한 힘이 있고 또 한 번은 다른 세속적인 책을 손에 잡고 그와 같이 해보면 쉽게 손가락이 벌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믿음으로 살고 소망으로 살면서 사랑의 완성 단계에서는 이러한 상태로 눈을 가린 어두움의 세력들 수건을 벗어진 상태로 성경 곧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게 되고 감추어진 것이 없이 드러나는 현상으로서 진리로 거룩해 지는 속성을 통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이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로 임재하시는 현상이며 영생의 기능이 신령한 것을 지각하는 기능이며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는 생명현상이다. 다른 말로는 내 심령 속에 있는 영이 성경 속에 있는 영을 지각하는 현상이다.

진리에 속한 영이 성경의 속의 영을 지각하는 현상이다.

성경 속에 있는 단어나 내용을 신령성을 제거하여 읽거나 번역하면 생명력이 죽게 된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읽어야 하고 지각되고 해석되는 이유이다.

세속적인 심령으로서는 성경이 읽혀지지 않는 것이다. 진리에 속한 심령만이 성경의 생명나무에 접는 할 수 있고 들을 귀와 눈이 있는 자 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는 영적 법칙이요 진리이다.

세상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씻어버리지 않으면 더러워지게 되어 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겨주는 것은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씻어주는 영적인 원리이며 진리의 속성이다.

성경을 어떤 눈으로 읽고 어떤 심령으로 읽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율법적인 마인드나 세속적인 마인드에서는 이러한 자각이 나오지를 않는다.

영적인 마인드가 되어도 이러한 영생의 기능을 알지 못해 일깨우지 않고 잠재우고 있으면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신비 속에 과학적인 논리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거짓 말하는 자나 거짓 선지자는 이러한 영적 탐지 기능을 가진 기계 앞에서 가증한 말로 영혼들을 죽이는 거짓 진리는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도 거짓 신학서적들을 한쪽 손에 들고 간단한 실험을 해 보면 알 것이다.

[마10:26]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요17:17]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17:19]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엡6: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계3: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공중 세력의 눈치를 보지 말라 진리는 언젠가는 승리하는 것이다.

지각이 마비된 오염된 심령이나 양심이 화인 맞은 위선 자나 가증한 말세적인 심령이나 들을 귀가 없는 심령은 자신이 이러한 가증한 분위기나 환경을 조성하여 영혼들을 죽일 뿐만 아니라 가증한 주장이나 이론으로 신령한 것을 공격하거나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비판하고 정죄하게 된다.

이러한 공중 세력에 물들은 사람들이나 이론이나 가라지로 병들은 심령들은 이러한 영적인 지식이나 분별력이나 거룩성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도 자신도 보지 못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말이나 행동이나 사상을 가지게 되고 자신이 사망에 매여 종노릇하고 있고 죄나 사망의 세력들이 역사하는 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나 결과들이 일어나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자신의 우둔함을 보지 못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고 자기가 보는 눈으로만 이해하고 해석하여 큰 소리만 치게 된다.

진리에 바로 서지 못하고 오염된 심령은 문제해결과 상황 판단을 그르치고 하나님 뜻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계산이나 이익에 따라 일어나는 생각이나 마음을 따르게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신이 스스로 그르치고 좋지 않은 열매를 맺게 한다.

가시나무에서 좋은 열매 맺을 수 없다. 신학이나 성경 해석학을 연구하기 전에 먼저 경건에 이르는 훈련이 먼저 필요하다.

[딤후4:4]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살후2:10]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설사 그 세력을 간파하고 안다 할지라도 세속적인 욕심과 교회 부흥과 자신의 입장이나 현실과 교리나 사상을 고집하고 자신의 것을 내려놓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막강한 현실적인 세력을 초월하여 진리와 하나님 편에 서지 않고 그 현실과 타협하게 되어 마귀의 세력들이 자신의 심령이 오염되고 있다

그러므로 지각이 둔하면 진리를 외면하게 되는지를 모르는 영적 문둥병에 병들게 되어 영적 지각이 마비되어 심령이 어두워지고 성경이 열리지 않게 되어 인간의 생각으로 성경을 읽고 보고 듣고 말씀을 지킬 수 없는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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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한 엄청난 지식이 있거나 영적 은사나 능력이 있어도 이 공중 권세를 분별하거나 이길 수 있는 지각이나 능력이 없으면 하나님의 의를 따르지 못하고 불의한 상태가 되어 공중 세력들의 주장이나 사상이나 뜻을 따르게 되어 진리에 서지 못하게 된다.

[잠23: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엡4:18]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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