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샤르트르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즉자적 존재와 대자적존재로 나눕니다. 즉자적 존재는 의식이 없는 객체이다. 의식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행동할수도 없고 삶의 환경에 대해 자유를 행사할수도 없다, 즉 무생물은 모두 즉자적 존재인 것이다. 반면, 자기자신을 대할수 있는 의식을 가진 것을 대자적이라고 하며 대자적 존재는 의식이 있는 존재를 말한다. 인간은 본래 대자적 존재인데, 타인에게 관찰대상이 되면 즉자적 존재로 전락한다. 왜냐하면 적극적으로 행동할수도 자유를 행사할수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김형철교수의 최고의 선택에서 나온 사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미국의 한 IT회사에서 주요 회의한 내용이 신문에 노출되자, 화가 난 회장은 정보를 흘린 범인이 누구인지 찾기 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하여 중역들을 미행하고 이메일을 해킹하고 도청장치를 달고 운전기사를 첩자로 심어놓는등 상상을 초월할 만큼 치밀하게 조사했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 범인을 찾는데 실패하고 이사실이 언론에 포착돼 기사가 나가면서 미국의 전 IT업체가 발칵 뒤집어 진 것이다. 물론 회사의 기밀을 누출한 중역은 분명히 잘못된 행위인 것은 맞으나, 회장이 사립탐정을 고용해 뒤를 캐기보다는 문제의 중대함을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는데 모두를 동참시키는 것은 그들을 삶의 주인공 즉 대자적 존재로 대우하는 것이다. 반대로 몰래 감시하고 염탐하는 것은 즉자적 존재로 대하는 태도인 것이다.
*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의 의미
우리가 만드는 모든 도구에는 나름믜 본질이 있다. 예를들면 톱의 본질은 썰기 위한 것이다. 이런 본질을
이루기 위해 톱을 만든다. 썰지 못하는 톱은 톱이 아니다. 이처럼 사물에서 '본질은 실존에 앞선다.'
하지만 인간은그반대다. 인간에게는 본질이 없다. 인간은 세상에 그냥 던져져 있을 뿐이다. 또한
다른 사물과 달리 자신이 아무 이유없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수도 있다. 이 극단적인
허무를 깨닫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펼칠수 있다. 자신에 대해 원래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나를 본질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없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짐으로써 자신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갈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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