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神學/神學資料

모세오경 1 (창세기, 출애굽기)

by 이덕휴-dhleepaul 2019. 12. 22.

모세오경 1 (창세기, 출애굽기)

Ⅰ. 입문

1. 전제되는 몇 가지 문제점들

 1) 모세의 친저성(親著性) 문제
  신약성서는 오경 전부를 모세가 직접 쓴 것으로 보았고 (마태복음 19,7; 요한복음 5,47 이하 참조) 적어도 1,500년 가까이 사람들은 모세가 오경을 직접 썼다고 생각했다. 15세기에 스페인 아빌라의 주교 Tostatus가 적어도 신명기 34장 모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모세가 직접 쓸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것이 최초로 제기된 역사 비평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1520년 B. Carlstadt가 <성서정경 연구>에서 모세의 친저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 18세기에 Astruc이 처음으로 역사적 방법론을 오경주석에 도입하여 문헌가설을 내세웠다. 하느님에 대한 명칭이 일관성이 없는 것에 특별히 착안하였던 것이다(야훼, 엘로힘).
 오경 안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시대착오적인 구절들 역시 모세의 친저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창세기 36장에는 에돔 왕들의 명단이 나온다. 36장 31절에 보면 이스라엘에 왕이 있기 전에 즉 사울의 시대 이전에 에돔에는 이미 왕들이 통치하고 있었다. 모세가 자기보다 최소한 200년은 후대인 이런 에돔 왕들의 이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불레셋에 대한 언급 역시 시대착오적이다(창세기 21, 32.34; 26,14.15.18; 출애굽기 13,17). 기원전 1195년 경 Medinet Habu에 있는 람세스 3세의 비석에 의하면 에집트 해군이 불레셋 족속에게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거기서 발길을 돌려 불레셋 민족은 팔레스티나 해안에 정착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랄에서 불레셋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창세기 21장 참조). 또한 불레셋 족속이 팔레스티나에 정착할 때까지 모세가 살아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출애굽기 13,17 참조).
 오늘날에는 모세의 친저성을 지지하는 학자가 거의 없다. 실제로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 다만 모세의 정신과 권위에 의거하여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 문헌가설의 문제
   19세기 중반에 이미 J, E, D, P 네 가지 문헌을 가려냈다. 그 후 벨하우젠(Wellhausen 1844-1918)에 의해 문헌가설이 확실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런 문헌가설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많다. 문헌가설은 그 체계가 허술하고, 성서의 어느 구절을 J, E, D, P 중 하나로 귀속시키는 것이 합당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서를 있는 그대로 보자는 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구조주의적 성서해석이다.

   3)모세 오경이냐? 모세 육경이냐? 모세 사경이냐?
    이것은 단순히 책의 숫자를 다섯으로 할 것이냐? 여섯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넷으로 할 것이냐? 의 문제가 아니다. 나름대로의 방법론적 관점에서, 신학적 관점에서 모세 육경과 모세사경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 육경을 주장하는 근거는 여호수아서와 모세오경의 관련성 때문이다. 우주의 창조에서 시작하여 모세의 죽음에까지 이르는 모세 오경의 이야기는 신명기에서 끝나지 않고 여호수아에서 계속되고 있다. 성조들에게 하신 하느님의 약속이 가나안 정복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우리는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모세 육경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폰 라드(G. von Rad)이다. 그는 1938년 <육경의 양식사적 문제>라는 저서에서 이스라엘의 옛 신앙고백문을 가려냈는데 신명기까지가 아니라 여호수아서까지 포함해서 연구를 했다.
 일부 학자들은 모세 오경에서 신명기를 따로 분리시켜, 모세에서 시작하여 바빌론 유배 직전에 이르는 대역사서의 서문으로 삼는다. 모세 오경에서 신명기가 떨어져 나오니까 모세 사경이 된다. 이것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M.Noth이다(1943년 <전승사적 연구>라는 저서). 역사적 과정을 중시한다면 M. 노트의 이론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모세 오경은 어디까지나 토라(율법서 혹은 모세 오경)로서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내려 왔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우리는 토라가 형성된 역사적 과정을 무시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토라가 육경이나 사경이 아니라 오경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 왔는가? 사경의 가설을 이것을 설명해야 한다.
 토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기초가 되고 규범이 되었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모세 오경은 하나의 단일한 책으로서 받아들여졌다. 기원전 6세기 경부터 이렇게 단일경전으로 받아들여져 온 모세 오경은 육경 혹은 사경이 아니라 오경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물론 문학적인 비평이나 전승사적인 관점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오경이 형성된 그 역사적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회서(기원전 130년경)의 서문에 보면 구약성서의 책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율법서, 예언서 그리고 성문서가 분명히 구별되어 있다. 신약성서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마태복음 5,17; 루가복음 16,16;24,44; 요한 1,17.45; 7,19). 이런 예들을 보더라도 토라는 육경 혹은 사경이 아니라 오경의 형태로 계속 전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전개방법
 수미일관한 문학작품이 아니다. 반복, 단절, 도약, 누락이 많다. 바로 이것 때문에 16세기에 문헌가설이 대두되었다.
 대부분의 역사서술은 천지창조에서부터 시나이 도착까지에 집중되어 있다. 즉 창세기 1장부터 19장 까지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줄거리 사이에 법조문들이 중간 중간 들어가 있다. 법조문이 갑자기 등장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막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조문들은 출애굽기 20장부터 신명기까지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그러므로 모세 오경은 역사서술과 법률부분이 합쳐져서 전개된다. 무대가 시나이산 밑에서 멈추었다가(출애굽기 20장) 민수기 9장에 가서야 비로소 시나이산을 떠나 행군에 들어간다. 이것은 법률 부분 때문에 역사서술이 중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애굽기 20장에서부터 레위기 전체 그리고 민수기 8장까지는 거의 대부분이 법률에 관한 내용이다.

3. 내용구분
  줄거리로 볼 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원역사와 성조사  + 출애굽사                      + 모세의 연설
    = 서론             = 본론                           =결론
    = 창세기           =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4. 전체적 사상
  모세오경은 하느님 백성의 형성과정을 서술한다. 히브리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인간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구원경륜의 성취과정을 보여준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