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는 18세기 유럽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작가이다. 생전에는 17세기 고전주의를 계승했다는 평을 받으며 비극 작가로 크게 인정받았으나 오늘날에는 《자디그》,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등의 철학 우의소설이나 《루이 14세》, 《풍속시론》 등 역사 저술, 《철학서간》, 《신앙자유론》, 《철학사전》 등의 철학 저술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루이 14세의 죽음부터 프랑스 대혁명 직전의 시기를 살면서 그가 보여 준 비판 정신, 재치, 풍자, 지식 등은 당대 프랑스의 발전과 프랑스 특유의 정서를 구현했다. 또한 디드로, 루소와 함께한 백과전서운동은 18세기 유럽 문명의 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서 싸우겠다.” 볼테르가 말했다는 이 명언이 최근 입말과 댓글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촛불시위에 나타나 발언기회를 요구한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을 쫓아낸 시민들과 총학생회 주최 강연회에 온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을 몰아낸 학생들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끊임없이 인용되는 어구다. 촛불시위를 지지하는 쪽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탄압에 반대해 인용한다. 어느 쪽이든, 사소하나마 한 가지는 정리하고 가자. 정말 볼테르는 이 말을 했는가? 무슨 일만 있으면 재탕되는 볼테르 인용은 세심히 살펴볼 당위가 있다고 하겠다.
이 어구는 영국 출신의 작가 홀(Evelyn Beatrice Hall)이 1906년에 쓴 볼테르의 전기에 처음 등장했다. 불어 원문은 영어에서 불어로 거꾸로 번역된 듯하다. 볼테르가 살던 시기에 헬베티우스라는 철학자가 쓴 책 『지성론(De l'esprit)』이 정부와 교회의 탄압을 받고 불태워졌다. 그러나 볼테르, 루소 등은 이 책이 유명한 철학자들의 내용을 짜깁기한데다 수준도 형편없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헬베티우스는 탄압을 당하자 자신의 주장을 차차 철회했다. 볼테르가 보기에 그는 유명세를 타고 싶어서 들은 풍월로 객기를 부린 것에 불과했다. 볼테르도 똑같은 탄압을 받은 적이 있지만, 탄압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위대한 철학자가 될 수는 없었다. 졸지에 자신의 수준까지 떨어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는 그를 지지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문제의 어구는 홀이 곤혹스러운 볼테르의 입장을 추정해 서술한 것이다. 문맥상 비아냥에 가깝다. 그러나 이 어구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볼테르의 명언으로 올라 널리 유포됐다. 이후에 볼테르의 편지에 비슷한 어구가 나온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근거가 없다. 18세기에 출판된 볼테르의 편지를 열람할 수 있는 웹사이트에서 직접 찾아봤지만, 역시 없다.
물론 어떤 말을 했다는 주장은 쉽게 증명되지만, 어떤 말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끝내 증명될 수 없다. 또한 볼테르가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맥락이 사상된 채 출처가 불분명한 하나의 어구가 강력한 논거로 거듭 쓰인다는 것은 토론을 비루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모든 내용들은 끈질긴 웹서핑의 결과이므로 확인하고 싶다면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하진 않을 것이다. 출처가 확실한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며 마치도록 하겠다. 『철학사전』 중 <언론의 자유>의 마지막 어구다. “읽고 춤추도록 내버려 두라. 이 두 가지 즐거움은 결코 세상에 해악을 미치지 않는다.”(Let us read, and let us dance―these two amusements will never do any harm to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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