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홈지기칼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by 이덕휴-dhleepaul 2020. 4. 11.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완전한 자유란 가능한가?

   완전한 자유란 무엇일까요? 무인도에서 홀로 살았던 로빈슨 크루소가 완전한 자유를 누렸을까요? 그것은 자유라기보다는 사회에서 ‘이탈한 생활’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더 타당합니다. 자유란 아무런 부대낌 없이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겔은 자유와 필연의 관계를 맨 처음 올바르게 설명한 사람이다. 헤겔에게 자유란 필연성에 대한 통찰이었다. “필연은 다만 인식되지 않은 한에서만 맹목이다.” 자유라는 것은, 흔히 몽상하는 바와 같이 자연 법칙에서 독립하여 있는 것이 아리라 오히려 이 법칙에 대한 인식에, 또 인식에, 또 인식에 의해 이 법칙을 일정한 목적에 계획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지는 곳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외적 자연의 법칙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의 육체적 및 정신적 존재를 규제하는 법칙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의지의 자유라는 것은 사실에 관한 지식을 갖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문제에 관한 인간의 판단이 자유로울수록 이 판단의 내용은 더욱더 필연성에 의해 규정된다. 이와 반대로, 서로 모순되는 여러 가지 많은 결단 가능성 가운데서 얼핏 보아 임의로 선택하는 것과 무지에 의한 불확실한 선택은 오히려 자기가 지배해야 할 대상에 의해 지배당한다는 점에서 자기의 부자유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라는 것은 자연 필연성에 대한 인식에 근거하여 우리 자신과 외적 자연을 지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자유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역사 발전의 산물이다. 동물계에서 분리된 최초의 인간은 그 본질에서 동물 자체와 마찬가지로 부자유스러웠다. 그러나 문화에서의 모든 진보는 자유를 향한 한 걸음이었다.

                                                   ― 엥겔스, 『반(反)듀링론』에서.



그 날이 올 때까지

  노동자들의 삶을 주된 테마로 한 황석영의 「객지」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노동자들이 떨쳐 일어선다는 점에서는 적극적 투쟁이라 할 수 있지만, 노동계급의 시각으로 볼 때 그것은 주로 경제적인 면, 그리고 개인적인 대항에만 치우친 아직까지는 소극적 투쟁이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방현석의 일군의 작품들은 개인적인 대항을 넘어 조직적으로 정치적 자유까지 획득하려는 가히 적극적 투쟁이라 할 만합니다. 그것은 또한 적극적 자유의 다른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벽 5시 정각, 조합원 전원이 식당에 모였다. 모두들 옷을 단단히 차려 입었다. 식당 안은 팽팽한 긴강이 감돌았다.

  묵념. 정면에는 검은 액자에 담긴 철순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조합원 동지들, 마침내 결단의 시간이 왔습니다. 150일 동안 싸워온 우리들의 투쟁은 승패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우리의 150일은 힘겹고 험난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150일의 흘린 땀과 눈물은 우리 모두를 위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땀흘림과 눈물을 아까워하지 맙시다. 우리가 아직 눈뜨지 않은 노동자였을 때 우리의 시간들은 오로지 사장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살기를 갈망하여 싸워온 지난 날들은 비록 어렵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동안 우리는 해방의 세상에 살았습니다. 사장은 우리를 돈으로 무릎꿇게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2억, 우리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큰돈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동지 철순이는 단돈 1,500원을 더 받으려고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미정은 말을 끊고 천장을 쳐다봤다.

  “2억, 너무나 큰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했던 돈은 인간다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것이었을 뿐, 돈에 대한 탐욕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김세호 사장이 내놓은 2억의 돈을 우리는 뿌리치기로 결의했습니다. 김세호 사장에게는 돈이 가장 소중한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돈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천만 노동자의 자존심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돈으로 되지 않는 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슴에 피눈물을 흐르게 하고 자신은 궁궐 같은 집에서 제 피붙이와 희희낙낙 살게 내러려두지는 말기로 합시다. 이제 우리는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화해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불타는 적개심으로, 비타협적으로 싸울 뿐입니다.”

  미정은 조합원 하나하나를 둘러보았다.

  “조합원 동지들, 우리는 승리해야만 이 자리에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김세호를 무릎 꿇려야만 현장에 들어가 다시 작업대에 앉을 수 있습니다. 이기고 돌아옵시다.”

  조합원 동지들, 사랑합니다, 며 미정이 말을 맺었다.

  어두운 죽음의 시대 내 친구는 멀리갔어도, 어깨를 걸고 나지막히 함께 노래를 불렀다. 토막초가 하나씩 나누어지고 불이 꺼졌다. 굵은 눈물을 흘리며, 역사가 부른다.

  미정부터 촛불과 함께 결단의 마음을 밝혔다.

  “노동자의 눈물 없는 해방의 새날을 위해 온몸을 던져 싸우겠습니다.”

  민영이 촛불을 이어받았다. “우리로부터 웃음을 빼앗아간 자들로부터다시 웃음을 빼앗기 위해 싸웁시다.”

  “정상 가동이 되어 나도 친구들 앞에 월급 봉투를 내밀고 싶다……”

  “그동안 동료들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용서를 바랍니다.”

  65개의 촛불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다.

  순옥이 출정 선언문을 읽어나갔다.

  “김세호 사장, 또 다른 생명을 요구하는가! 더 많은 피를 요구하는가!”

  노동부, 당신들은 송철순 동지의 목숨 하나로는 아직 우리의 희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가! 더 큰 우리의 희생을 요구하는가!

  당신들이 우리를 짓밟음으로써 열사의 뜻을 지워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2,500만 노동자의 자존심을 짓뭉개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착각인가를 우리는 보여주겠다.

  우리의 요구는 단 한 가지. 우리의 일터를 돌려달라!

  이제 우리는 당신들을 2,500만 노동자의 이름으로 응징할 것이다!

  우리는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한 사람씩 돌아가며 악수를 했다.

  모든 촛불을 껐다. 온통 어둠뿐이다.

  낮은 노랫소리가 가슴에서 가슴으로 물결쳤다.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하나되어 우리 나선다. 승리의 그 날까지. 지키련다 동지의 약속. 해골 두 쪽 나도 지킨다……

  민영은 2조의 조장이 되어 정문을 빠져나갔다.

  미정은 마지막 5조를 이끌고 세광을 나섰다.

  캄캄한 새벽 하늘에 펄럭이는 깃발들만 소리없는 함성으로 이들의 출정을 배웅했다.

                                                  ― 방현석, 「새벽 출정」에서.

 


개인의 소극적인 대항, 그리고 자유

   국내 최초의 본격 노동 소설이라 칭하는 황석영의 「객지(客地)」는 이 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80년대 유행처럼 번진 노동 소설의 모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객지」는 단순히 임금 투쟁에 그친 한계 또한 있습니다.

  “제깟 것들이……”

  소장은 혼자서 빙긋 웃었다. 감독조를 짐짓 3공사장으로 보내길 잘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실은 그들이 없으면 인부들을 통솔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었다. 원하는 대로 모두 수걱수걱 들어 주고 나면 길 잘못 들인 강아지새끼처럼, 또 무엇을 달라고 보챌지 몰라 불안할수록, 더욱 감독조는 필요했다. 그래서 잠잠해질 때까지 당분간 보냈다가 인부들과는 낯선 다른 패들로 교대시킬 뿐이었다. 현재 노임도 올렸고 시간 노동제도 실시하고 있는 척할 수밖에 없지만, 우선 내일의 행사를 위해 숨 좀 돌려 보자는 게 그의 속셈이었다. 그 다음엔 주동자들을 먼저 아무도 모르게 경찰에게로 데려다가 책임을 물어 따끔하게 본때를 보인 후, 여비나 두둑이 주어 구슬리며 딴 지방으로 쫓아보낼 작정이었다. 그의 손에는 쟁의에 참가했던 인부들의 명단이 저절로 들어와 있는 셈이었다. 그들 불평분자의 절반쯤은 3공사장 인부들과 교대시키고, 나머지는 남겨 두되 각 함바에 뿔뿔이 흩어지게 배당할 거였다. 점차로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둘씩 해고해 나갈 것이었다. 차츰차츰 작업량을 늘리고 작업장을 줄여 가면 남는 인부가 많게 될 테니 열흘도 못가서 감원할 구실이 생길 거였다. 따라서 인상되었던 노임을 차츰 낮추며 도급을 계속시키면 인부들은 모르는 사이에 전과 같이 만들 수가 있을 게 뻔했다. 한편 감원시키고, 날마다 공사장을 찾아드는 뜨내기들을 한편 채용해 나가면 어항에 물 갈아 넣는 것처럼 인부들은 모두 새사람으로 바뀔 것이었다. 소장은 이 모든 일들을 열흘 안으로 해치우고 원상 복구를 해놓을 자신이 있었다. 그는 누구도 엄연한 현실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인부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옆의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저 사람들과 환자를 데리고 사무실로 내려가게.”

  인부들은 약간은 불안하고 어리둥절해 보였다. 3함바의 고참 인부도 몹시 계면쩍어 하는 빛으로 소장과 마주섰다. 직원들과 내려온 인부들은 환자를 떠 메고 사무실 쪽으로 내려갔으며 고참 인부만이 남아 소장과 얘기했다.

  “위에서는…… 의심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습니다. 보증이 될 만한 각서 같은 걸 원하고 있는데요.”

  “각서……?”

  “건의했던 조건이 앞으로 변경없이 실시되리란 것을, 우리는 확실히 믿을 수가 없으니까요.”

  “좋아, 써 주겠네.”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곧 내려올지도 모르지만, 경찰들을 물러가게 하셔야죠.”

  “그 대신 저녁 전까지 모두 내려올 수 있겠나?”

  “소장님의 처사에 따라서 위에 있는 사람들은 움직일 겁니다.”

  소장은 호탕하게 껄껄 웃어젖혔다.

  “알았네. 경찰들을 모두 돌려 보내도록 하지.”

  3함바 인부는 산 위로 되돌아갔고 환자들 운반하며 사무실로 간 인부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새삼스럽게 산 꼭대기로 올라가기가 쑥스러워진 모양이었다. 3함바 고참 인부는 돌아가자마자 동료들에게 소장이 써 준 각서를 보여 주며 말했다.

  “내일 국회의원들이 온다 해도 기왕에 오늘 경찰과 사무실 쪽의 뚜렷한 행동을 본 이상, 뭘 기다리겠소? 의원들 앞이라고 별 다를 게 없을 거요.”

  “저 사람들 정해 놓은 시간이 저녁 때까진데 우리도 저쪽 체면을 봐 줘야지.”

  그들 곁에 있던 장씨도 한 마디 거들었다.

  “내 경험상으로 미뤄 봐서…… 일이 이렇게까지 결정됐는데 더 버틴다면 그만큼 우리 손해요. 어디 노가다판에서 한두 번 봤어야지, 다 뻔한 이치라구.”

  “내려갑시다.”

  “술이나 한 잔 걸치구 늘어지게 잤으면 좋겠구나!”

  “정말 컬컬해 못견디겠는데.”

하며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환자와 함께 내려갔던 인부들이 오지 않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상상해 보고 있었다.

  작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일터에 나갔던 인부들이 함바로 모여들고 있었으며 그들은 무심하게 공터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3함바 고참 인부가 혼자 떨어져 않아 생각에 잠긴 동혁의 등 뒤로 가까이 왔다.

  “우린 지금, 내려가기로 결정했는데……”

하면서 그는 잠깐 동혁의 뒤에서 서성거렸다. 동혁이 침울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회사측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처럼, 저쪽이 우릴 생각하는 줄 아시오? 저 사람들은 그 동안 우릴 어떻게 취급해 왔는지 잘 알 거요. 나는 내려가지 않겠소.”

  “좋을 대로 하슈, 그건 당신 자유니까.”

  “당신도……”

하며 동혁이 벌떡 일어섰다.

  “만일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인부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는 함께 행동하겠소.”

  “내일까지 기다릴 작정이오?”

  동혁은 그에게 대답하지 않고 바위가 우뚝 선, 보다 높은 쪽으로 올라갔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젠 이미 마음을 내일로 활짝 열고 있었으므로 자기에게 맞서올 어떠한 조건에 대해서도 자유로이 응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발길에 뭔가 채여서 굴러갔다. 동혁은 무심결에 그것을 주워 올렸다. 붉은 종이로 포장된 한 개의 남포였다. 그는 어제 한동이가 지껄이던 농담을 생각해 냈고, 그것을 심지가 바깥쪽으로 가도록 입에 물어 보았다. 꺼끌꺼끌하고 두터운 종이 포장 때문에 입 안이 건조해졌다. 동혁은 피식 웃고 나서 남포를 호주머니에 쑤셔 넣어 버렸다.

  그는 바위를 등지고 함바를 향해 앉았는데, 독산을 내려가는 인부들의 모습이 몇 명씩 그의 눈 앞에 아른거리곤 했다. 제방이 보였고, 그 너머로 무한하게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이 보였다. 숙부가 타고 있던 이민선이 바다 바깥을 다시 지나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자기의 결의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었으며, 거의 텅 비어 버린 듯한 마음에 대하여 스스로 놀랐다. 알 수 없는 강렬한 희망이 어디선가 솟아올라 그를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동혁은 상대편 사람들과 동료 인부들 모두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

라고 그는 혼자서 다짐했다. 

                                                   ― 황석영, 「객지(客地)」에서.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의미


소극적 자유는 일반적으로 ‘구속의 결여’, ‘타율적 강제를 벗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롬에 따르면 그것은 ‘-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소극적 자유의 기본형은 ‘-으로부터의 자유’이다. 무엇으로부터인가 하는 것은 다양하다. ‘국가로부터의 자유’, ‘종교로부터의 자유’ 또는 포괄적으로 ‘타인으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하다.


노예로부터의 자유인 소극적 자유가 있다. 전제군주의 자비로 얻은 자유이거나 제도적으로 보장된 자유이거나 간섭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자유가 소극적 자유이다.


소극적 자유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자유’라는 적극적 자유보다 더 제한적인 자유를 뜻하기도 한다.


소극적 자유는 ‘-으로부터의 자유’로 국가, 사회, 다른 개인들에 의한 강제적 간섭의 부재를 의미한다.

적극적 자유는 ‘스스로 자신이 주인이 되게 하는 자유’, 즉 완전히 인간적 존재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자유, 인간의 발전적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자유이다.

T.H. Greene(1836-1882)이 이같은 구분을 명시적으로 제시했다.


19세기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각해진 상황에서 그린의 ‘적극적 자유’는 복지국가의 국가 개입의 옹호로 나아간다. 인간의 가능성과 존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거권, 건강권, 노동수단을 향한 평등한 접근 등과 같은 자유 실현의 조건이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리떼의 자유가 양떼의 죽음을 뜻하는 경우가 흔하다.’ ‘소극적 자유’의 허용, 그리고 기에 따른 제한적 자유방임의 폐해를 약자는 감수해야만 한다. 이로 인한 경쟁체제는 ‘소극적 자유’마저 의미 있게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조차 마련해주지 못한다. 케인즈까지 이어지는 개혁자유주의의 이론적 원류이다.


반면에 소극적 자유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원적 속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적극적 자유에 치중할 경우 전체주의와 독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기인한다. 허버트 스펜서,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이 주장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게 된다.


‘소극적 자유’, ‘적극적 자유’라는 말은 이사야 벌린이라는 사람이 ‘자유의 두 개념’이라는 강연에 논의한 이후 줄곧 인용되어 왔다. 보수적 자유주의자였던 이사야 벌린은 자유라는 말 한 마디에 내포되어 있는 그 복잡한 의미들은 구분하고 공동체 참여와 자아 실현 등을 역설하는 좌파의 적극적 자유론을 비판한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같이 언급된다 해도 그 의미는 다른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사야 벌린이 언급한 의미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