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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지기칼럼

몇 번까지 용서할까요?

by 이덕휴-dhleepaul 2020. 8. 12.

1821-35 몇 번까지 용서할까요?

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18: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18: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18: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18: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18: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18: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18: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18: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이는 주후105년 중국 후한의 채륜이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점토판에 글을 새기거나, 파피루스 갈대로 만든 파피루스 종이나 양피지에 글을 썼습니다. 중국에서는 대나무 조각에 글을 쓴 목간(木簡)을 묶은 뭉치를 ()’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님시대에는 파피루스 종이가 값싼 필기재료였지만, 건조되면, 잘 부서졌으므로, 보관용으로 사용했고, 평소에 사용하는 책은 양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인쇄술이 없던 시대에 양피에 손으로 글을 써서 만든 책은 부피도 크고 값이 워낙 비싸서 일반인이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책이 귀하던 시대에는, 스승과 제자들이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가르치고 배워야 했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대로, 주님과 제자들 역시 문답식으로 교육을 했습니다.

본문의 상황도 주님과 제자들 간의 문답식 교육입니다.

 

본문에 앞서, 주님은 잘못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교훈하셨습니다.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8: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주님은 개인적으로, 증인들과, 교회 세 단계에 걸쳐서 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돌이키도록 훈계하고, 거부하면, 이방인처럼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잘못한 사람이 회개하도록, 세 단계에 걸쳐서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라고 교훈하신 것입니다. 이 부분은 주님의 강의였습니다.

 

이 교훈에 대해 궁금해진 베드로가 주님께 용서의 회수에 대해 물었습니다.

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스승의 강의에 대한 제자의 질문입니다.

죄를 범한다.’는 말은 하마르티노(aJmartavnw)를 번역한 것입니다. 원래는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잘못하다, 빚을 지다란 뜻으로도 쓰입니다.

베드로의 질문은 내게 잘못을 범한 사람을 몇 번까지 용서해주면 좋으냐?’는 것입니다. 주님이 잘못한 사람에게 세 단계에 걸쳐서 기회를 주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경우에는 몇 번까지 용서해주는 것이 좋으냐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수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수자마다 의미를 부여할 정도로 수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일곱 번까지 용서해주면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관습으로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일곱 번은 할 만큼 했다.’고 여기는 회수입니다.

 

본문에서 핵심 되는 일은 용서(容恕)입니다.

유대인은 죄에 대해 용서받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 하루에 세 번씩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립니다.

- 매년 연초인 나팔절부터 속죄일까지 열흘 동안은 지난 1년간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당사자에게도 용서를 빕니다. 죄를 해결하고 한 해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 죽기 전에는 나의 하나님! 나의 열조의 하나님! 제가 당신 앞에 고백하오니, 저의 회복과 죽음이 당신의 손에 달렸습니다. 당신의 뜻이라면, 저를 완전히 고쳐주옵소서! 그러나 제가 죽어야한다면, 저의 죽음이 제가 지은 모든 죄에 대한 속죄가 되게 하옵소서!” 하고 죄 사함을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가족들은 다음과 같이 화답합니다. “복되시다! 당신이여! 당신은 주 되신 우리의 하나님이요, 우주의 왕이시오, 진실한 심판자시니이다!”

 

탈무드의 율법해석인 미시나에는 용서해줄 수 있는 전제조건인 회개(悔改 테슈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공동체에 잘못을 고백하라

-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세 번까지 용서를 구하라.

-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그 잘못을 저지르게 한 조건을 피하라.

미시나가 말하는 회개는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로만 회개한다고 해서 그의 잘못이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에게 피해를 입혀놓고 사죄나 보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께 회개했다!’고 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능욕하는 죄를 더했을 뿐입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생긴 피해를 보상하고,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자신이 바로 서야, 진정으로 회개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3:8) 말한 대로 회개했다는 증거가 나타나야진정으로 회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말로만 하는 신앙고백은 믿음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믿는다고 고백하는 대로 행하고 살아야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유대인들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 때에 내가 저지른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 저지른 잘못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자기 혼자 저지른 죄라도 여러 사람들이 함께 저지른 것처럼, 일반화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용서해주어야 하는 사람도 그 사람과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고에 따른 것입니다.

 

미시나는 세 번까지 용서를 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세 번까지만 용서해주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세 번보다 훨씬 많은 일곱 번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1년에 일곱 번씩 70년간 용서해주라!’는 뜻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라면, 두 달에 한 번 정도 잘못을 저지르는 셈입니다. 거의 흠 없이 산다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평생 490번이나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미시나에 하루에 세 번 회개기도를 하라!’고 한 것은 보통사람은 하루에 세 번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의 수명을 40년으로 보면, 평생 43,200번이나 잘못을 저지르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세 번만 용서해주거나, 일곱 번만 용서해준다면, 그는 평생 용서받지 못하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가르치신 것은 회수와 상관없이 잘못을 회개한다면, 용서해주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에 근거합니다.

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8: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18: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주님은 하나님은 자기 죄를 자복하는 사람을 의롭다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하나님 앞에 허물이 없고,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에, 죄악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을 찾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130: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130: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우리도 하나님처럼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1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사람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우리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용서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점을 생각하며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주님이 말씀하신 일만 달란트는 우리의 죄 값입니다. 죄 값으로 죽어야 할 우리가 이 엄청난 죄를 용서받았다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저지른 사소한 잘못은 당연히 용서해주며 살이야 한다는 것이 주님의 교훈입니다.

 

용서에는 회개가 전제(前提)되어야 합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은 자신의 부채를 인정하고 갚겠다고 했으므로, 주인이 그 부채를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는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이지, 안 갚으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 사람을 용서해줄 수는 없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로, 북한은 이제까지 저질러온 수많은 도발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며, 재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고 있습니다. 발뺌의 여지가 없는 경우에만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담장을 떠나서는 즉시로 말을 바꿉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한 것도 아니고, 사과한 것도 아니며,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이런 행태는 그들이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며, 대화할 상대도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해주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Ω

[출처] 마18장21-35 몇 번까지 용서할까요?|작성자 pastor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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