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칸트 번역자 백종현 서울대 명예교수의 ‘칸트 3대 비판서 특강’이 책으로 나왔다. 현대 철학의 논의 중에서 칸트를 거치지 않은 것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칸트 철학의 핵심과 맥락을 강의 형식에 담아 쉽고 명료하게 전달한다.
칸트의 3대 비판서로 불리는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은 각각 진선미(眞善美)의 영역을 논하는 철학의 고전이자 지식인의 필독서로 알려져 있지만 제대로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칸트의 삶과 칸트 시대의 사회상을 비롯해 칸트 철학은 어떻게 철학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한국어로 칸트를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여 근대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3비판서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백종현 교수의 이번 책은 아카넷출판사의 한국어 칸트전집 발간 15주년 및 칸트 3대 비판서와 ‘인간학’을 담은 ‘특별판 한국어 칸트선집’(전4권) 발간을 기념하여 2017년 9월 3회에 걸쳐 진행한 특강 내용을 정리하고 보완한 것이다. 각 강의 말미에는 실제 강의에서 청중들과 주고받은 질의응답의 내용을 삽입했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칸트적 이성의 모든 관심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
저자에 따르면 통상 인간은 ‘이성적 동물’로 정의된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고찰에서는 인간의 ‘이성성’과 함께 인간의 ‘동물성’ 그리고 이 두 특성 간의 충돌이 문제가 되므로 칸트의 철학도 이를 주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칸트적 이성의 모든 관심은 다음의 세 물음을 향해 있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인간 이성의 모든 관심사를 수렴하여 일단 이렇게 세 물음으로 정리한 칸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덧붙이고, 앞의 세 물음에 대한 답을 통해 이 마지막 물음의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1강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제1강에서 다루는 첫째 물음은 ‘순전히 사변적’인, 곧 ‘진리’에 대한 것으로, 이 물음에 대한 탐구가 『순수이성비판』으로 결실을 맺어, 인간의 참다운 대상 인식(자연과학적 지식)의 가능 원리인 인간의 선험적 의식의 초월성을 밝혀내기에 이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1강에서는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의의와 이 사고 변혁의 결실인 칸트의 초월철학의 세계를 안내하며 강의 말미의 <질의응답>을 통해 칸트철학의 중심 용어인 ‘트란첸덴탈(transzendental)’을 왜 ‘초월적’으로 번역해서 사용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철학 용어를 사용하고 이해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그 용어의 맥락을 아는 일이다. ‘트란첸덴탈(transzendental)’이 칸트 인식론과 형이상학의 중심 용어이기는 하지만, 칸트가 지어낸 말도 아니고 칸트 혼자서 사용하는 말도 아니다. 칸트의 이 용어 사용의 연유는, 그가 당대의 독일 프로테스탄트 스콜라 철학자들과의 사상적 대결 중에 스콜라의 옛 ‘초월철학’을 전복시킬 새로운 ‘초월철학’을 내놓은 데에 있고, 칸트 이후에도 다수의 사상가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그들 간의 ‘초월적’에 관한 의미 다툼이 그들 각각의 사상의 고유성을 드러냄과 함께 그들 사상의 상호 관련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비록 서로 다른 의미로 용어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하나의 독일어 낱말 ‘트란첸덴탈(transzendental)’을 하나의 한국어 낱말 ‘초월적’으로 옮기는 것이 합당하다. 이렇게 해야만 이 말로 지칭되는 사상들의 상호 연관성과 역사적 맥락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124-125쪽)
2강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제2강의 물음은 ‘순전히 실천적’인, 곧 그 자체로 ‘선’한 것에 대한 물음으로, 3비판서 중 『실천이성비판』은 이 물음에 대한 탐구의 결과를 담고 있다. 그것은 곧 인간이 존엄한 근거인 인간 실천이성의 자율성을 천착한 것이다. 2강에서는 『순수이성비판』과 별도로 『실천이성비판』이 출간된 배경을 비롯해 정언명령으로서의 도덕법칙의 의의와 그에 근거한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를 주로 설명한다. 강의 말미의 <질의응답>에서는 ‘도덕(Moral)’과 ‘윤리(Sitten)’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컨대 도덕의 문제는, 첫째로 선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서 유래하느냐, 누가 ‘선’이라고 일컫는 것이, 과연 선이며, 무슨 뜻에서 선이냐 하는 것이다. 이 선의 원천 문제가 그 선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의 문제로 다시금 연결된다. 그런데 선을 실천할 인간의 능력을 자유라고 하므로, 도덕 문제의 중심에는 자유 개념이 들어선다. ? 그 근본 물음의 차이로 말미암아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이 나뉘게 된 것이다.”(142쪽)
3강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3강은 “무릇 내가 행해야 할 것을 행한다면, 나는 그때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를 묻는다. 이 “물음은 실천적이면서 동시에 이론적”이다. 그것은 실현될 수 있는 최고선을 겨냥한 것으로서, ‘최고선’은 실천적인 것 및 도덕법칙과 관계되면서도 이 세계 즉 자연 안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사물들의 이론적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물음은 결국은 “종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인간의 희망은 최고선의 실현인데 그것은 결국 신의 도움으로만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제3비판서인 『판단력비판』의 후반부에서 읽을 수 있다.
“『판단력비판』에 등장한 판단력, 곧 반성적 판단력이 앞서의 두 비판서에서의 주제인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의 연결자라고들 말한다. … 『판단력비판』은 칸트가 66세 때인 1790년에 나왔다. 한국의 교수라면 정년퇴직할 나이다. 나이도 그렇고, 시대의 사조도 바뀌고 『판단력비판』과 함께 사실 칸트의 시대는 갔다. 그때에 이미 독일 이상주의, 독일 관념론의 파도가 독일 문화계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오히려 칸트가 새로운 사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후에 독일 이상주의자들은 칸트의 3비판서 중 『판단력비판』에 가장 큰 호감을 보였다. 왜냐하면 『판단력비판』은 더 이상 칸트의 엄밀한 이성주의의 표상이 아니라, 낭만주의적 색채를 농후하게 지니고 있어서 공감이 많이 갔던 때문이다. 바꿔 말해 『실천이성비판』까지의 칸트를 고전주의자라 한다면, 『판단력비판』의 칸트는 낭만주의의 일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칸트는 고전주의의 절정이다. 음악계로 보면 베토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231-232쪽)
백종현(저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포스트휴먼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석사 과정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하대· 서울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소장,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 한국칸트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철학』 편집인·철학용어정비위원장·회장 겸 이사장, 한국포스트휴먼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논문으로는 “Universality and Relativity of Culture”(Humanitas Asiatica, 1, Seoul, 2000), “Kant’s Theory of Transcendental Truth as Ontology”(Kant-Studien, 96, Berlin & New York, 2005), “Reality and Knowledge”(Philosophy and Culture, 3, Seoul 2008) 등이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Phänomenologische Untersuchung zum Gegenstandsbegriff in Kants “Kritik der reinen Vernunft” (Frankfurt/M. & New York, 1985), 『독일철학과 20세기 한국의 철학』(1998/증보판2000), 『존재와 진리―칸트 <순수이성비판>의 근본 문제』(2000/2003/전정판2008), 『서양근대철학』(2001/증보판2003), 『현대한국사회의 철학적 문제: 윤리 개념의 형성』(2003), 『현대한국사회의 철학적 문제: 사회 운영 원리』(2004), 『철학의 개념과 주요 문제』(2007), 『시대와의 대화: 칸트와 헤겔의 철학』(2010/개정판2017), 『칸트 이성철학 9서5제』(2012), 『동아시아의 칸트 철학』(편저, 2014), 『한국 칸트철학 소사전』(2015), 『포스트휴먼 시대의 휴먼』(공저, 2016), 『이성의 역사』 (2017), 『제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사회 윤리』(공저, 2017), 『인공지능과 새로운 규범』(공저, 2018), 『인간이란 무엇인가― 칸트 3대 비판서 특강』(2018), 『포스트휴먼 사회와 새로운 규범』(공저, 2019), 『한국 칸트사전』 (2019) 등이 있고, 역서로는 『칸트 비판철학의 형성과정과 체계』(F. 카울바흐, 1992)//『임마누엘 칸트―생애 와 철학 체계』(2019), 『실천이성비판』(칸트, 2002/개정2판2019), 『윤리형이상학 정초』(칸트, 2005/개정2판2018), 『순수이성비판 1. 2』(칸트, 2006), 『판단력비판』(칸트, 2009),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칸트, 2011), 『윤리형이상학』(칸트, 2012), 『형이상학 서설』(칸트, 2012), 『영원한 평화』(칸트, 2013),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칸트, 2014), 『교육학』(칸트, 2018), 『유작 I.1』(칸트, 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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