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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연구

by 이덕휴-dhleepaul 2021. 1. 23.

정치학석사학위논문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연구

 

 

 


국문초록

 

본 연구의 목적은 독일의 공법학자인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
하려는데 있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칼 슈미트의 이론 구성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인
데, 본 연구에서는 특히 이 개념에 대한 이론과 역사, 두 측면 모두에서의 보다 엄밀하고 합당한
비판을 시도하려 한다.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무엇보다도 정치를 판별하기 위한 기준으로 적과 동지의
구분을 제시했다는 점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옹호자’들은 슈미트를, 민주주의 질서를
내전상태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한 진정한 현실주의 정치사상가 중 한 명이라고 보
는 반면, ‘비판자’들은 그가 자유주의를 거부하고 전쟁을 이상화하며 그 결과 나치 정권을 적극
적으로 지지하게 된 전체주의 사상가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두 가지 입장
모두가 슈미트의 이론에 대한 진정한 비판을 위해서는 불충분한 결론에 다다르고 있다고 보며,
이들 입장의 불일치로부터 슈미트에 대한 비판의 논리를 전개하고자 한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특히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사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가 보기
에 폭력적인 투쟁의 가능성은 상존하는 것이며 현실로부터 결코 제거될 수 없다. 이러한 전제하
에서 모든 적대관계는 언제나 정치적인 적대관계로 그 강도가 높아질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적대관계들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하는 동시에 완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
이 유지되는 가운데 적대관계가 순수하게 정치적으로만 규정될 때이다. 그렇지 않고 전쟁과 적의
개념에 윤리적인 판단이나 경제적인 이해가 침투해 들어오면 적은 정당하지 않은 적이 되고, 전
쟁은 무제한 적인 것이 된다.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생각은, 특히 슈미트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내전과 중세의
혼란상을 ‘국제관계로서의 전쟁’ 혹은 ‘정치의 도구로서의 전쟁’으로 극복한 유럽의 근대 국가와
국가간 체계의 질서를 준거로 할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한편으로는 근대성 자체의 위기 때문에 근대성의 정치적 표현물이라고 할 수 있는 근대
국가가 더 이상 주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전체국가’
라고 부르는 형태를 통해 근대 국가가 다시 그러한 지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래야
만 한다고 주장한다. 즉 후자의 가능성이 실현됨으로써 그에게 있어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동의어
인 인민의 동질성이 재창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슈미트의 정치이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바로 ‘예외상태’에 관한 인식이다. 정
신사적으로 근대성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 근대성의 정치적이고 법적인 표현물인 근대 국가 질서
는 점증하는 위협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곧 예외상태의 증대를 의미한다. 예외상태란 정상
적인 상황에서의 법규범이 적용될 수 없는 상태이며, 따라서 법규범의 통일적인 체계로 이루어진
법질서의 한계를 나타낸다. 슈미트에게 있어서는 바로 이러한 한계 너머에서 정치와 법질서의 보
존을 위해 결정을 내리며 개입하는 것이 바로 주권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
정하는 자’인 동시에, ‘그러한 급박한 상황에 대한 결정만이 주권적’이다.


분명 이러한 법의 한계를 넘어선 주권의 행사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슈미트의 논의는 근대성
을 합리성 자체와 동일시하거나, ‘계몽의 역사적 기획’으로 보는 관점을 따를 때, 비합리적인 정
치이론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근대성에 관한 담론들을 비교해 볼 때 우리가 얻을 수 있
는 결론은, 근대성을 합리성과 동일시하는 것과 같은 접근 방식은 오히려 근대성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이론가들이 관심을 갖는 특정한 시공간적 배열로서의 근대
성이라는 관점이 우리에게는 근대성에 대한 연구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시
각의 보다 중요한 장점은 특히 근대에 특수한 시공간적 배열에 대한 관심이 또한 근대에 고유한
영토적 정치 구조인 근대 국가와 국가간 체계에 대한 관심과 맞닿는다는데 있다. 그런데 이 문제
에 관해서 슈미트가 또 다른 방식으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중요하다.


슈미트의 애매한 입장은 특히 역사적 맥락의 규모를 근대성이라는 거시적 수준에서 바이마르
독일의 보다 구체적인 수준으로 좁힐 때 더욱 분명해진다. 보다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
가 관심을 갖고자 하는 것은, 그가 바이마르 공화국 상황에 대해 정치적 처방으로 제시하는 ‘전
체국가’의 개념과 그러한 국가 개념에 상응하는 전쟁의 양상으로서의 ‘총력전’에 대해서이다. 이
때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역사적 맥락과 매개시켜주는 분석 틀은 슈미트 자신도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목적-수단 관계이다.


목적-수단 관계란 특히 고전적 현실주의와 법실증주의의 이론가들이 정치(법)와 폭력의 관계
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하는 개념 틀이다. 클라우제비츠로부터 베버와 슈미트에 이르는 대부분의
고전적 현실주의자들은 목적-수단 관계를 통해 정치와 폭력의 필연적인 결합을 설명하는데, 우리
가 특히 슈미트를 다루면서 이 목적-수단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점에
서다. 우선, 그가 기술을 정치와 관계지을 때, 기술을 폭력과 마찬가지로 수단으로만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그가 기술에 대해 보여주는 비관적인 관점은 폭력
이나 전쟁수단에 대해 현실주의자들이 보여주는 그것과 동일하다. 이와 함께 슈미트의 정치이론
이 무엇보다도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라고 묘사되는 위기 상황의 도래에 대한 대응의 성격을
띈다는 사실이 슈미트의 이론과 정치적 기획을 이해하고 비판하는데 있어서 목적-수단 관계에 대
한 이해가 갖는 중요성을 확인시켜준다고 하겠다.


본 연구는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를 염두에 두고서 전체국가와 총력전이라는 두 가지 사항
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 둘은 모두 슈미트에게는 당시에 직면하게 된 엄연한 현실이자 정치
적 당위인데, 우리에게는 또한 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타당성을 시험하기 위한 역사적인 장
이기도 하다. 전체국가의 개념을 통해 슈미트는 독일 국민 전체에 의해 선출된 진정한 대표자인
라이히 대통령이 바이마르 헌법 48조에 명시된 독재의 권한에 따라 정치적․경제적 위기에 대응
하는 적절한 조치들(예외에 대한 결정)을 취함으로써, 바이마르 공화국의 다원적인 혼란상태를 제
거하고 인민의 동질성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총력전의 문제에 있어서도, 전쟁을
이상화하는 생각에는 끊임없이 반대하지만 외부의 정당한 적과의 전쟁상태를 통해 인민의 동질
성을 활성화하여 정치공동체 내적인 적대관계를 상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 그러
나 이 두 가지 경우 모두에 있어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슈미트의 권위주의적이고 호전적
인 대안들이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나치 정권 모두에서 어떤 정책을 통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
라 오히려 반대로 그러한 제안들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연구자들
에 따르면 나치 국가의 권력 구조는 슈미트의 기대와는 달리 ‘리바이어던’이 아니라 ‘베헤모스’이
며, 통일적 권력이 아니라 다극적 권력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총력전이라는 것도 (레닌의 혁명적 세계 내전을 포함한) 정의전쟁이나 나치의인종주의 전쟁과 같
은 보편적 가치를 전제하는 무제한적인 전쟁과 적의 양상 속에서 슈미트가 말한 순수한 의미의
정치적인 적은 ‘실제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그 실체가 불분명한 것으로 드러난다.


슈미트에 대한 이러한 본 연구의 비판적 검토는 그 현재적 함의에 있어서는 일차적으로 역사
적인 시대의 제약 속에 놓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미트의 정치이론에 대한 이 같은
관점은 ‘테러의 시대’에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무제한적인 ‘비상사태’에서 민주주의 질서와
우연성 사이의 관계를 최소한 정치사상의 수준에서라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고 볼 수 있다.


주요어: 적과 동지의 구분,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 결정주의, 주권, 예외상태, 목적에 대한 수
단, 정치와 폭력, 민주주의와 전쟁, 전체국가, 총력전

 

 


목차

 

1. 서론
1.1. 연구의 배경 .................................................................................................1
1.2. 칼 슈미트: 민주주의자인가, 전체주의자인가? .......................................................2
1.3. 연구의 구성과 범위 ..........................................................................................11
2. 근대성과 정치
2.1. 정치적인 것의 개념 ..........................................................................................13
2.1.1. 국가와 정치적인 것 ...............................................................................14
2.1.2.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 ...........................................................................20
2.1.3. 주권과 예외 ..............................................................................................24
2.2. 근대성의 정치적 구조 ......................................................................................29
2.2.1. 역사적 기획으로서의 근대성 ...............................................................30
2.2.2. 시공간적 배열로서의 근대성 ...............................................................32
2.2.3. 근대국가와 국가간 체계의 변화 .........................................................34
3. 전체국가와 총력전
3.1. 목적에 대한 수단 ...........................................................................................39
3.1.1. 정치와 기술 ..............................................................................................39
3.1.2. 정치와 폭력 ..............................................................................................43
3.1.3.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 ..........................................................................46
3.2. 전체국가 ......................................................................................................48
3.2.1. 대중민주주의 시대의 국가와 기술 ....................................................49
3.2.2. 합법성과 정당성 .....................................................................................52
3.2.3. 바이마르와 제3제국 사이에서 .............................................................56
3.3. 총력전 ......................................................................................................60
3.3.1. 정의전쟁과 절대적인 적 .......................................................................61
3.3.2. 실제의 적과 인종주의 ...........................................................................66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4. 결론 ..................................................................................................................71
5. 참고문헌 ..............................................................................................................75
ABSTRACT ..............................................................................................................84

 

 


1. 서론

 

1.1. 연구의 배경


독일의 공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Der Begriff des
Politischen)”에 대한 본 연구는 다음의 두 가지 동기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개념
사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현재에 우리가 직면한 정치 현실과 관련된 것이다.


우선 이론적으로 볼 때, 정치적인 위기와 역사적인 변화는 언제나 기존의 개념들을 재검토하
고, 또한 필요하다면 새롭게 개념화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기존의 개념과 그 개념들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토대에 대하여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야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러
한 작업이란 개념들 사이의 특정한 관계의 재배치를 의미할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선 현 시점에
서 정치학이라는 학문 영역에서 이러한 상황에 처한 개념들은 무엇일까? 혹자는 국가가 쇠퇴한
다고 주장한다(Strange 1996). 또 다른 학자는 기존의 주권 개념에 대한 불만족을 표시하며, 주권
을 ‘조직적인 위선(organized hypocrisy)’이라고 부른다(Krasner 1999).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후쿠야
마(Francis Fukuyama)가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을 선언하였듯이, 공적인 의미의 ‘정치’ 또
한 종말을 고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Boggs 2001).


이러한 일련의 문제제기는 그러나 단지 우연적인 것, 혹은 언제나 기존의 개념들에 대해 시
도되는 일련의 반증이나 비판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이러한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주권과 국가,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말로 국
가가 쇠퇴하느냐, 혹은 정치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들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의 모
색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닌 것이다. 이 학문적 작업들은 어떤 역사적 변화의 징후로 읽을 수
있으며, 특히 ‘주권 국가’와 ‘정치의 공적 성격’ 등과 같은 개념들을 통해 지금까지 역사상의 일
정 기간 동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국가, 주권, 정치간의 관계의 변화의 징후로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주권 국가’라는 관념은 국가와 주권을 동일시할 수 있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을
배경으로 성립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주권이 이제 ‘조직적인 위선’이라면 이는 ‘주권 국가’라는
것이 더 이상 진정으로 분석적인 용도―학문적인 관례상의 용법과 구분되는―로 사용되는 개념
으로서는 효용성이 폐기될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가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
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작업은 문제가 되는 이들 개념들―국가,
주권, 정치―의 관계의 새로운 양상을 파악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또한 현재의 정치적인 상황, 특히 현대의 민주주의가 처한 상황과 결코 무관
할 수 없다. 이른바 “문명화 과정”을 거쳐 현재에까지 이르는 서양의 영토적인 근대 국가와 주로
결합되어 있는 민주주의 제도는 전쟁을 근대 국가들의 체계 외부로 밀어내고 내전을 국가간의
전쟁으로 극복하고 그 파괴적 성격을 완화하여 근대 국가와 국가간 체계라는 틀 안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였다. 그러나 테러리즘과 그에 대한 전쟁이라는 무제한적인 “비상사태
(Ausnahmezustand)”에 직면하여 이러한 근대 국가의 틀에 묶여있는 민주주의는 중대한 위기를 맞
고 있다고 여겨진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폭력 행사가 더 이상 주권 국가간의 전쟁의 형태로
‘완화’되지 않는 20세기 이후의 상황이 이를 입증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최
소한 전쟁과 폭력에 대해 무관한 것으로만 여겨질 수는 없으며, 근대 초기 유럽의 국가간 체계에
서처럼 전쟁을 단지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영역의 외부로 추방하는 것으로는 진정으로 파괴
적인 폭력행사로서의 전쟁 그 자체를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상과 제도를 다시 성찰하고 그것을 보다 민주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특히 전쟁과의 관계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역사적이며, 또한 무엇보다 사상사적인 검토를
하는 일은 불가피한 작업이다. 근대 유럽의 국가간의 국제법 질서가 진정으로 이룩한 것은 전쟁
의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전쟁의 제한이었으며, 또한 전쟁을 서유럽 국제 질서의 외부인 식민지
들을 향해 밀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을 추방하고 밀어낼 문명 세계의 외부가 더 이상 존재하
지 않게 되었을 때, 식민지들이 더 이상 전쟁의 무대로 남기를 거부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두
번의 세계 대전으로 폭발하였다. 이제 문명은 더 이상 비문명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명들간의 충돌이 우리 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에 더 가깝다. 게다가 이 탈근대 문명권들은 자본
주의 세계 체제 외부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더 이상 전쟁을 추방할 수 있는 외부의 장소는 존재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1.2. 칼 슈미트: 민주주의자인가, 전체주의자인가?


이러한 동기들을 우리의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때, 헌법학자인 칼 슈미트가 왜 정치사상가,
혹은 민주주의 이론가(또는 비판자)로서 부각되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슈미트는 정치질서를
그 질서 자체가 목표로 하거나 추구하려는 가치로부터 정의하려는 입장에 반대하여, 정치질서의
고유성이란 그것이 직면하는 ‘위협’과의 관계에서만 드러난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이론가 중 한
사람이다.1) 그의 민주주의 이론과 그것으로부터 도출되는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모두 이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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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스키노(Pasquale Pasquino)는 정치이론의 주요한 관점들을 다음과 같이 정치질서와 위협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에 따라 분류한다. ⑴ 법의 범위를 벗어난 중앙 권력의 행사가 정치질서에 대한 가장 주요한 위협이라고 보는 자유주의적 관점. 국가 권력의 남용과 같은 위협에 대한 자유주의적 대안은 ‘권력분립(separation of power)’이다. ⑵ 정치체 내부의 갈등을 조절할 제도의 부재를 가장 중요한 위협이라고 보는 공화주의적 관점. 이러한 관점에서 요구하는 것은 ‘갈등의 제도화’로서의 ‘혼합정체(mixed
constitution)’이다. ⑶ 타협할 수 없는 가치를 걸고 벌어지는 투쟁을 정치질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위협이라고 보는 근대 주권 이론. 특히 홉스가 대표적인데, 종교전쟁과 같이 ‘진리’와 ‘구원’에 대한 신념의 차
이로 벌어지는 갈등은 권력 분립이나 혼합 정체로는 해결이 될 수 없으며 오직 ‘동질적인 사회(society
without qualities)’의 구성과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가 대안이 될 수 있다(Pasquino 1996). 이러한 유형 분류에서 볼 때, 슈미트의 관점은 보다 상세한 검토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세 번째의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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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사고의 결과물이다. 민주주의를 포함한 모든 정치질서는 질서 자체에 상존하는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피할 수는 없다. 특히 이러한 위협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상황은 홉스(Thomas
Hobbes)가 ‘자연상태(state of nature)’라고 부른 ‘내전(civil war)’이다. 이는 물론 슈미트 자신이 겪었
던, 그래서 그의 이론의 중요한 원천이 된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홉스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정치질서로부터 내전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제거하고자 했
는데, 그 결과 그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란 인민의 ‘동질적인 상태’로 정의된다. 그러나 이러한 ‘동
질성’이란 순수하게 정치적인 동질성이기 때문에 결국 정치적인 평등과 동의어가 된다. 인종적이
거나 종교적인, 혹은 경제적인 동질성(평등)과 달리, 투쟁의 장인 정치의 영역에서 그러한 동질성
의 상태, 즉 정치 공동체의 내적 평화란 결코 자명한 것으로 생각될 수 없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끊임없이 동질성을 저해하는 위협요소에 대항하여 재창출되어야만 한다. 슈미트는 이러한 인민의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홉스나 헤겔과 같은 근대 정치철학자들이 생각했듯이 정치 공동체
의 외부의 적을 선언해야만 한다고 보았다.2) 공동체 외부의 적의 존재와 그에 대한 적대감정은
공동체 내부의 상호적인 적대관계와 불신을 상대화시킨다. 그러나 슈미트는 홉스의 논리를 전적
으로 따르고 있지는 않다. 홉스는―특히 자유주의적 해석에 따를 때― 자연상태가 시민사회로 전
환되는 사회계약의 순간에 자연상태는 완전히 극복되기 때문에 정치질서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
에 대한 인식은 최소화된다고 보는 반면, 슈미트는 홉스로부터 자연상태는 완전히 제거되는 것이
아니며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는 해석을 도출하여 홉스에 대한 ‘계약론’적인 해석
에 반대한다.3) 슈미트에게 있어 주권자는 자유주의적인 최초의 입법자(=결정자)가 아니다. 오히
려 주권자는 기존 법체계의 규범이 적용될 수 없는 예외상태에 직면할 때마다 적과 동지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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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홉스는 ‘정치공동체의 적’의 기능을 『리바이어던(Leviathan)』의 17장 4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통의 적(common enemy)이 없을 때(...), 그들[다중(multitude)]은 서로 전쟁을 일으킨다”(Hobbes 1994: 107).
3) 예를 들어 맥퍼슨(Crawford Brough MacPherson)의 관점은 홉스에 대한 계약론적 해석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MacPherson 1964를 참조. 그러나 슈미트가 계약론적 해석을 반대한다고 해서 자유주의 일반이나, 자본주의에 대해서 완전히 반대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슈미트의 보수주의 정치학과 자본주의 경제의 관계에 대해서는 Cristi 1988, Scheuerman 1999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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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결정을 내림으로써만, 그 결정의 권위에 복종하는 시민들에 의한 ‘인민의 동질적인 상태’
를 회복시킬 수 있다. 그는 실제로 유럽의 근대 국가들이 이러한 국내적인 정치적 평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정치이론의 타당성을 역사적으로 입증하려 한다. 따라서 슈미트는
16․17세기의 보댕(Jean Bodin)과 홉스의 주권 이론을 20세기 정치의 본질로 재해석하려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정치사상이 갖는 민주주의 이론적 함의는 분명하다. 슈미트의 정치이론은 그 자
신의 고유한 의미에 따라 민주주의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민주주의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시각인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와는 분명히 대립되는 것이다. 형식
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슈미트의 주권자는 합법성의 체계를 넘어서 예외적인 조치를 취
하는 독재자가 됨으로써 권력 분립이라는 자유 민주주의의 기초를 중단시키고 정치 질서의 절차
적 측면을 완전히 무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와 달리 실질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슈미트의 이론은 전체 인민 혹은 국민 자신의 결정의 여지는 최소화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
서 민주적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나 슈미트는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기존의 민주주의에
대한 두 가지 입장 모두를 ‘정치적인’ 이론으로 보기를 거부한다. 그는 흔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만 비판적인 것이 아니다. 그가 보기에 자유주의 이론, 즉 형식적 민주
주의의 관점은 주권자의 최초 결정을 논리적인 공리로 축소하거나 초월적인, 그래서 결국 현실적
인 정치 현상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신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적과 동지에 대해 결정하
는 문제를 회피하기 때문에 비정치적이다. 반면, 실질적 민주주의는 사회에 의한 정치의 통제와
제한을 의미하지만 사회 자체가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불과한 것으로 환원되면서 비정치적인 성
격을 갖게 된 이상, 경제적인 가치로 ‘세속화’되어버린 자연법적 이상―예를 들어 경제적인 의미
의 ‘평등’―을 전제로 하여,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게 될 민주주의를 정초하려는 기획
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슈미트의 정치이론에 대해 우리가 펼 수 있는 논의의 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슈미트는 자기 자신의 것을 포함한 모든 정치이론을 언제나 구체적인 대립과 정치 상황의 산물
로 보기 때문이다. 그가 직면한 20세기초의 현실이란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전쟁의 동력이 되는
제국주의의 시대이다. 더구나, 한편에서는 미국과 영국의 자유주의가,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독일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국제사회주의 운동 세력들이, 슈미트가 정치적 합리성의 화신이라고
생각한 유럽의 근대 국가의 정당성을 파괴하고 있었다. 즉 유럽의 근대 국가는 자신의 인민의 적
과 동지를 결정함으로써 시민들로 하여금 그러한 결정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만들어야 하지만, 그
러한 권위의 원천으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해 간다는 것이 슈미트의 중요한 역사인식이다. 이러
한 유럽의 근대 국민국가의 정당성의 상실은, 제국주의 전쟁의 발발로 표현되는 것처럼, 경제적
인 이해관계와 기술적인 수단에 의해 유럽의 국가간의 평화가 이룩한 국가간의 제한전이 세계적
인 무제한 전쟁으로 전환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는 슈미트에게는 국가와 인민과 같은
정치적 주체가 아닌, 경제가 이윤율 상의 상대방을 경쟁자가 아니라 무력 투쟁의 대상으로서의
적과 동지로 규정하게 되는 세계의 도래를 의미한다. 슈미트의 정치이론, 특히 정치적인 것의 개
념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켜서 이해해야만 한다. 근대 국가의 정당성의 위기의 상
황에서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관념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원리에 따라서 적과 동지의 관계를 순수하게 정치적으로만 정의할 때에 제국
주의 전쟁과 같은 무제한적인 전쟁을 피하고 근대 유럽 국제질서의 국가간 전쟁처럼 폭력적 파
괴 행위를 완화하고 축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슈미트의 극단적인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 대한 추구는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분명 권위주의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정치적 기획인 “전체국가(totaler Staat)”―이전의 근대 국가와는 달리 사회 전체를 정치
적으로 장악하고 동원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었다. 그는 또한 이탈리아 파시즘
국가를 그러한 강한 국가의 모델로 보려고 하였으며, 결국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하자 나치당에
가입하게 된다.


본 연구의 문제의식은 기존의 슈미트에 대한 연구들이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 같은 그의 주요
개념과 이론들에 대해서 충분히 역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여기서 ‘역사적’
인 것의 의미는 단지 이론적인 것의 가치를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이론적인 것을 역사 내부―역사적인 맥락이라고 흔히 부르는 것―에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에
관한 문제와 관련된다. 일말의 단순화가 허용된다면 슈미트의 이론에 대한 “옹호자”4)들과 “비판
자”5)들은 바로 이론과 역사가 분리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옹호자”와 “비판자”라는 말에는 어떤 “불균형”, 혹은 “불일치”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
면 옹호자들은 슈미트 이론이 가지는 이론 내적인 정합성과 그것이 역사적 현실과 일치했던 근
대 초기의 상황과의 관련성에 해석의 중요성을 두는 반면, 비판자들은 슈미트 자신의 정치적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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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표적으로 McCormick 1997a에서 지적되었듯이 사실 슈미트를 해석하는 입장을 단순히 옹호자와 비판자로 분류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본 연구에 있어서는 그 입장들 중 어느 하나를 전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려는 의도를 갖지 않는 한에서 이러한 분류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본 연구가 다
루는 저자들을 중심으로 볼 때, 전형적으로 다음의 저작들을 옹호자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Schwab
1989; Bendersky 1987; Gottfried 1990; Kervégan 1992; Mouffe 1993; Bolsinger 2001; Hirst 1999 등을 참조.
5) 비판자들에 대해서는 대표적으로 Löwith 1935, 1964; Herf 1984; Holmes 1993; Wolin 1990, 1992;
Scheuerman 1999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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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즉 나치 정권에 대한 지지―과 같은 이론 자체에 대해서 외재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역사적
인 사실들을 근거로 그의 이론을 이해하고 평가하려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의 이론에 대
해서는 옹호자들에게서 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이는 그들이 슈미트 자신의 개념들에 대
해 보다 분석적이고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슈미트에 대한 본 연구의 비판적인 결론에 도
달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론적으로 이러한 옹호자들, 혹은 이론적으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연
구들에 주로 의존하게 될 것이다.


사실상 슈미트의 이론적 발전과 변화의 전체적인 맥락에 있어서도 ‘개념사’의 영역에 속하는
작업은 그가 구체적인 정치적 맥락에서 지지했던 정치적 기획, 혹은 목표와는 달리 그 자신에 의
해서도 이후에 보다 객관적인 것으로 옹호되었다. 슈미트에게 있어서의 개념사의 중요성은 이미
20년대 초에 출간한 『정치신학(Politische Theologie)』(1922)에서 ‘개념의 사회학’이라는 이름으로 제
시된 기획에 의해서 부각되었다. 그리고 전후의 슈미트 자신의 언급들은 한편으로 그의 저작의
정치적 측면을 제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개념사적인 작업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1963
년의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이론가는 개념을 유지시키고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 이상의 것
을 할 수 없다”(1963b: 96/154).6)7) 이러한 슈미트의 개념사적 엄밀함은 슈미트의 이론 자체를 이
해하는데 있어서뿐만 아니라 그것을 비판할 때에도 유용한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옹호자’들을 매료시킨 슈미트의 이러한 개념사적인 엄밀함에 비해 비판자들의 ‘결과론적’인
분석은 보다 단순하며, 그렇기 때문에 슈미트가 말한 ‘결정주의’, 혹은 ‘독재의 딜레마’로부터 벗
어나지 못한다. 결국 이들은 슈미트에 대한 비판을 통해 그의 이론을 진정으로 극복한다는 과제
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 비판자들은 다만 역사의 결과를 통해서만 슈미트를 비판한다.
영국과 미국의 자유주의는 나치 정권과 같은 독재를 경험하지 않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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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칼 슈미트의 일차문헌으로부터의 인용의 출처는 다음과 같이 표시한다. 1963b: 96/154라고 표시된 경우에 1963b: 96은 참고문헌 목록의 1963b. Theorie des Partisanen: Zwischenbemerkung zum Begriff des Politischen. Berlin: Duncker & Humblot.의 페이지 수 96을, 154는 『파르티잔: 그 존재와 의미』. 김효전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8.의 페이지 수를 의미한다. 인용은 국역본이 있는 경우 국역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경우에 따라서 논문의 문맥과 번역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독어본을 기준으로 번역을 수정하였다.
7) 칼 슈미트와 레이몽 아롱(Raymond Aron)의 제자인 줄리앵 프로인트(Julien Freund)는 슈미트에게 있어서의 이론과 개념이 갖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슈미트는 어떤 경우에도 ‘일반 이
론’(general theory)을 제시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프로인트가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결국 “(...)단지 법학자들에게 유용한 개념을 제공하려는 것이 슈미트의 의도였다”(Ulmen 1995: 7). 그에 따르면 슈미트 자신에게 “규칙성으로서의 힘(Macht)은 법적 개념의 기초를 제공하며, 불규칙성으로서의 힘은 단지 이론에 대한 기초를 제공한다. 이론이란 떠오른 생각이며 결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Freund 1988: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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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슈미트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슈미트
의 이론적 입장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독일사의 특수성”에 대한 비판 이상의 것이 되기 힘
들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손쉽게 ‘옹호자’라고 분류한 관점을 지지하는 것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슈미트의 이론의 개념사적 지위, 그리고 역사적인 맥락과의 관계는 결코 이론 내
적인 타당성에 비해 덜 중요한 것으로 쉽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사의 특수성을 절대화
해서는 안 되겠지만 반대로 그것을 역사적인 “사실”의 차원에서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두 가지 입장의 대립을 어떻게 보다 합리적으로 관련지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말하자면 슈미트의 이론을 ‘어떻게 맥락화할 것인가’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
다는 것이다. 정치사상가의 이론은 그의 정치적 선택과는 무관하다거나, 혹은 그의 이론이 곧바
로 그의 정치적 선택을 설명해준다고 보는 관점은 모두 이론과 역사에 대한 단순한 인과관계를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8)


슈미트의 이론에 관한 옹호와 비판의 두 가지 입장이 이론과 역사에 대해 갖는 관점을 염두
에 두고서 그들의 주장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옹호자들은 슈미트
의 정치이론이 ‘허무주의가 아닌 질서’, ‘전쟁이 아닌 평화’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추구를 목적으
로 하며, 그렇기 때문에 나치에 대한 슈미트의 지지와 그의 이론 자체는 나치와 같은 파시즘이나
전체주의와의 관련성에서보다는 오히려 보댕이나 홉스와 같은 고전적인 유럽 근대 주권 사상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9) 이와 달리 비판자들은 슈미트의 이론이 당시에 독일에 만연
했던 보수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반자유주의적이며 허무주의적―보다 정확하게는 ‘정치적 실존주
의(political existentialism)’―인 성격을 띄기 때문에, 독일 민족주의와 나치에 대한 그의 지지는 필연
적인 결과라고 주장한다.10) 후자의 관점은 슈미트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그 자신이 비판하고자
한 ‘낭만주의’와 동일시하려는 시도인데, 슈미트에 대한 비판은 그렇게 막연한 유사성을 통해 추
론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11) 오히려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경우 슈미트에 대한 진정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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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슈미트에 관한 연구서들 중에서 이론적으로 보다 객관적이며 균형 잡힌, 그리고 또한 역사적이고 사상사적이기도한 접근을 하는 시도로는 대표적으로 McCormick 1997a와 Galli 2000을 꼽을 수 있다.
9)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는 대표적으로 Hirst 1999, Schwab 1989 등을 참조.
10)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는 특히 Herf 1984, Wolin 1990, 1992 등을 참조.
11) 슈미트는 『정치적 낭만(Politische Romantik)』(1919)을 통해 자유주의와 반대되는 것으로 인식된 낭만주의가 세계를 “영원한 대화”로 본다는 점에서 ‘주관화된 기회원인론’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이 때문에 낭만주의는 정치적 현실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은 슈미트에게 있어서는 자유주의의 ‘결정에 대한 회피’라는 성격과 밀접히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슈미트의 낭만주의 비판에 대해서는 Balakrishnan 2000: 21-27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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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초점을 놓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기에 진정으로 문제적인 것은 단지 정치에 대한
“낭만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인 관점이 아니기 때문이다.12) 오히려 근대적인 의미의 정치(와 정치
적 합리성) 자체가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특히 그것이 전쟁 혹은 폭력적 수단에 대해 갖는
고유한 관계가 문제의 중심에 놓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근대적인 정치의 구조를 특징짓는 ‘정치적인 것
의 자율성’과 그것에만 고유한 정치와 전쟁의 관계이다. 하지만 정치와 전쟁의 관계는 정태적인
것이 아니며 반드시 동태적인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치와 전쟁의 관계에 대한 역사
적인 변화에 근거하는 동태적인 관점은 앞서 제시했던 슈미트에 관한 해석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슈미트 자신의 정치이론적 입장을 이해할 때 진정 무엇이 문제인지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할 것이다. 이러한 주제영역의 중심에 바로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Der Begriff des
Politischen)』(1927; 1963)13)이 자리잡고 있다.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가장 대표적인 근대적 표현은 바로 고전적인 주권 사상에서 발견
할 수 있다. 보댕과 홉스에 의해 처음으로 정식화된 근대적인 주권 이론의 ‘정치적인 것의 자율
성’이라는 생각은 국가의 폭력적 수단의 독점, 그리고 이에 따른 일상적 폭력의 제거(‘문명화 과
정’)와 전쟁의 제한(‘베스트팔렌의 평화’)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사상사적인 표현물이다. 유럽
의 근대 국가들은 하나의 영토적 관할권에 하나의 주권이라는 이념을 현실화하였다. 그리고 이러
한 주권 사상의 핵심에서 슈미트가 발견한 자율적인 ‘정치적인 것’이란 바로 적과 동지의 구분,
혹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적대관계의 규정의 전제가 되며, 이러한 적대관계의 구체적인 결정이
곧 국내적인 평화상태와 질서, 즉 국내적 적대관계의 상대화를 의미한다.


유럽의 근대 국가를 논하는데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상가인 막스 베버(Max Weber)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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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게다가 슈미트의 이론은 결코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비합리적이지만은 않다. 그에게 정치는 전쟁을 제한하고 국내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합리적인 것’이며, 그의 ‘정치신학’적 기획도 비합리적이거나 낭만주의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그에게 신학은 기술적이고 수단적인 합리성과 함께 근대성(의 합리적 성격)의 중요한 두 가지 구성 요소를 이룬다. 우리는 이와 관련된 주제를
이후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13) 슈미트는 모두 5번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라는 제목의 논문과 책들을 발표하였다. 처음으로 슈미트는 1927년에 『사회과학과 사회정치 논총(Archiv für Sozialwissenschaft und Sozialpolitik)』 58호를 통해 이와 같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는 1928년에 다시 한번 발표되고 최종적으로는 1940년에 슈미트의 논문집(『입장과 개념들: 바이마르-제네바-베르사유와의 투쟁에서의(Positionen und Begrrife im Kampf mit Weimar―Genf―Versailles)』)에 실리게 된다. 1932년에 처음으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다시 1933년과 1963년―이 1963년판은 1932년판의 텍스트를 기초로 한다―에 두 번의 개정판이 나온다(Mehring 2003: 236). 본 연구에서 주로 다루게 될 텍스트는 1940년의 논문집에 실린 1927년의 논문과 1963년에 나온 1932년의 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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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면, 국가가 무정부상태를 극복하면서 주어진 영토 내에서 물리적 폭력 행사에 대한 정당한
독점을 관철시키는 과정은 정치이론상으로는 폭력을 ‘정치에 특유한 수단’으로 장악하게 되는 것
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로써 국가에 의해 수행되는 정치는 바로 이러한 ‘특유한’ 폭력 수단을
갖는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사회적 활동들과 구분된다. 고전적 현실주의 정치학의 가장 중심이
되는 명제인 이러한 정치와 폭력간의 관계에 대한 목적-수단으로서의 규정은 이미 클라우제비츠
(Carl von Clausewitz)에 의해 그 이론적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너무나 자주 인용되곤 하는 그의
유명한 명제는 바로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해 수행되는 정치”라는 것인데, 여기서 그가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이 정치에 의해 동원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 중의 하나가 아니라, 정치
에만 고유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클라우제비츠의 명제의 또 다른 중요한 함의는 단지 정
치가 전쟁에 대한 무제한적인 자유를 갖는 목적이 아니라는데 있다. 전쟁의 관점에서 볼 때 정치
는, 전쟁을 지휘․제한한다는 의미에서 평화와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필연적인 목적이며, 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전쟁은, 현실적인 힘 관계를 규정하는 결정적 수단이다.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정치-전쟁 관계 자체를 제시하는 것만으
로는 아직까지 아무런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우리의 관심의 대상
이 되는 것은 이러한 정치-전쟁 관계에 있어서 관찰되는 모종의 역사적인 변화이며, 동태적인 시
각에서 파악된 정치와 전쟁의 관계이다. 특히 슈미트 자신에 의해서, 그리고 이후에 아롱
(Raymond Aron), 아렌트(Hannah Arendt), 모겐쏘(Hans Morgenthau)와 같은 고전적 현실주의자들과 푸코(Michel Foucault)와 같은 탈구조주의 이론가에 의해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이 변화는 ‘정치와
전쟁의 관계’, 즉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inversion)로 표현이 되곤 한다. 하지만 ‘전도’라는 표현은
여전히 불충분한데 왜냐하면 여전히 정치와 전쟁의 목적-수단 관계, 즉 정치적 전쟁 행위의 전제
가 되는 ‘적대관계의 결정’의 목적성이 그대로 유지되면서도 ‘전쟁이 정치를 넘어서는’ 어떤 상황
이 바로 ‘전도’라는 말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14) 즉 이는 전쟁이 목적이 되고 정치가
수단이 되는 것을 곧바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는 정치에 의해 적과 동지가 구분되는 주
권적 결정이 더 이상 전쟁을 제한하거나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15) “총력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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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슈미트는 물론 이 점에 있어서 그 자신의 정치적 기획을 정당화하고 자유주의적인 세계 질서를 비판하기 위하여 이러한 표현, 즉 ‘전쟁이 정치(적인 것)를 넘어선다’는 말을 사용한다(1963a: 37/44/36).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주장 자체에는 이미 논리적인 딜레마가 내재하는데, 이는 현실적이지 않은 전쟁, 즉 이른바 ‘무제한적인 전쟁’을 수행하는 적에 대해 어떻게 현실적인, 따라서 ‘제한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15) 슈미트 자신이 회고하듯이 “1914년 유럽의 민족들과 정부들은 실제적인 적대 관계없이 제1차 세계 대전에 말려들었다. 실제의 적대 관계는 전쟁 자체에서 비로소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전쟁이라는 것은 유

럽 국제법상의 관례적인 전쟁이었던 국가간의 전쟁으로 시작되어 혁명적인 계급적 적대 관계의 세계
내전으로 막을 내렸다”(1963b: 96/154; 번역수정). 슈미트가 클라우제비츠에 대한 독해를 통해 도출하는
실제적인, 혹은 현실적인(wirklich) 전쟁과 적,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절대적인 전쟁과 적의 개념들에 대
해서는 3장에서 다시 자세히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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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Hobsbawm 1997: 37-81)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인 변화의 결정적인 징후이자 파국적인 결과였
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 그리고 정치-전쟁 관계의 역사적인 변화 속에 슈미트 자신과 그를 둘
러싼 이론적, 역사적 논의들을 위치시킬 때 우리는 이 전체 논의의 지형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이
해의 가능성을 열게된다. 분명 근대 초기에 고전적 주권 사상이 출현했을 때 정치적인 것의 자율
성은 정치에 의한 전쟁의 제한을 실현하였거나, 최소한 그러한 현실과 일치하는 이론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급격한 사회․역사적 변화의 결과로 등장한 “총력
전의 시대”에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은 더 이상 ‘정치에 의한 전쟁의 제한’이라는 이상을 실현할
수 없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은 국가에 의한 정치적 결정의 독점이라는 ‘고
전적인’ 목표도 실현할 수 없게 되었다.16) 여기서 옹호자들과 비판자들의 논리의 “공백”은 정확
하게 일치하게 된다. ‘총력전의 시대’에 옹호자들이 주장하듯이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은 여전히
전쟁을 자신의 수단으로 삼는 목적으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질서=정치’라는 근대적인 공식은 유
효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비판자들이 관찰하였듯이 비대해지고 그 결
과가 예측불가능해진 전쟁은 정치를 넘어서고 따라서 ‘정치=전쟁’이라는 또 다른 공식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되며, 이는 총력전에 의해 ‘질서=정치’라는 공식과 결합하게 된다. 즉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질서에 대한 추구가 역설적이게도 곧 전쟁에 대한 추구로 직결될 수 있는 상황, 혹은
질서에 대한 추구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전쟁에 대한 추구와 상충하지 않고 오히려 전쟁 쪽을
강화하는 현실적인 경향이 바로 총력전에 직면한 정치상황 속에서 마련되는 것이다. 슈미트의 이
른바 ‘정치적 선택’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인 조건들과 함께 비로소 보다 명확하게 평가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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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프란츠 노이만(Franz Neumann)은 나치 국가를 관찰한 결과 그 권력 구조가 리바이어던이 아니라 베헤모쓰(Behemoth; 홉스가 질서와 권위에 대한 상징인 리바이어던에 대립하는 내전에 대한 상징으로 도입한 신화상의 동물)가 되는 경향이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Neumann 1944). 마찬가지로 바이마르와 나치의 역사를 연구한 포이케르트(Detlev Peukert)도 나치 권력 구조의 다층성과 다극성(Polykratie)을 강조하면서 단일 지배 체제로서의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의 모델을 분석적으로 비판한다(Peukert 1982: 116-122). 이러한 나치 시대의 현실은, 바이마르 공화국에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새로운 리바이어던과 같은 주권적인 권위라고 주장한 슈미트의 생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사실은 슈미트의 이론과 정치적 선택 사이의 어떤 인과관계를 지지하기보다는 그의 정치적 기획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퇴색시키는 것 같이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3.2장에서 보다 자세히 논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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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그의 정치적 선택과 절대주의와 권위주의를 뒤섞어 놓은
듯한 정치적 기획에 대한 지지는, 그의 비판자들이 주장하듯이 그가 합리주의를 거부한 ‘정치적
실존주의자’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옹호자들이 슈미트로부터 긍정적인 것으로 보고자
하는 측면에서도 그 원인이 찾아져야 한다.17) 그가 매우 충실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사상가
라는 점도 이러한 ‘비합리적인’ 정치관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해야만 한다. 즉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사상은 단지 그의 “신념윤리(ethics of conviction)”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책임윤리(ethics of responsibility)”의 측면에서도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1.3. 연구의 구성과 범위


본 연구는 크게 보아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2장에서는 우선 슈미트가 정의하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구조와 ‘예외상태’와 같은 관련된
그의 정치이론의 다른 주요 개념들을 살펴볼 것이다(2.1장). 여기에서는 특히 ‘정치적인 것의 자율
성’이라는 생각이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가지고 슈미트가 옹호하고자 하는 중심 문제라는 사실을
역사철학적인 측면과 정치적 측면 모두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
은 근대의 정치적 조건과 근대성 자체의 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과
근대성의 관련성이 그 다음의 주요한 검토 대상이 될 것이다(2.2장). 기존의 근대성에 대한 담론
들이 대부분 근대성을 합리성이나 ‘계몽의 역사적 기획’과 동일시해온 것에 비해 최근의 연구들
은 시공간적 배열로서의 근대성에 관심을 가지며, 이는 정치학의 일부 영역에서 일고 있는 근대
국가간 체계의 영토성에 대한 관심과 일치하는 점이 있으며, 이러한 근대성에 대한 정의가 슈미
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해 갖는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3장에서는 2장에서의 분석의 시간 규모를 보다 구체적인 역사적인 맥락으로 좁혀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 현실사이의 관계에 주목할 것이다. 우선 슈미트의 정치이론과 역사적 현실을 매개해
주는 개념으로서의 목적-수단 관계, 그리고 이 관계가 전도되었다는 것의 의미를 파악하고(3.1장),
이를 전제로 하여 바이마르 공화국으로부터 제3제국 초기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정치적 기획인
전체국가(3.2장)의 개념과, 이러한 국가의 형태에 조응하는 전쟁의 양상인 총력전(3.3장)의 양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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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슈미트의 이론에 통상적인 의미의 합리성을 넘어서는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고, 형식적이고 기능적인 합리성에 대해 그가 표현하는 거부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이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충분히 지적했다고 할 수 있다. 슈미트의 이론에서의 합리적인 요소와 비합리
적인 요소의 공존에 대해서는 Holmes 1993: 39를 참조.. 그의 이론에 있어서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는
자유주의와 규범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Schwab 1989; Kervégan 1992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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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볼 것이다. 특히 여기서 우리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해 슈미트가 주장하는 현실적인 타
당성을 확인해 볼 것이다.


덧붙여서 본 연구가 시도하는 슈미트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역사적 맥락의 한계가 있다는 점
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다.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대표되는 ‘총력전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냉전이라는 새로운 전쟁과 평화의 양상이 고착화되었고, 다시 세계는 냉전의 구도가 무너지는 것
을 경험하였다. 그에 따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어떤 현재적인 의미를 갖느냐하는 문
제는 슈미트의 전후 저작들에 관한 연구와 더불어 또 다른 독립된 논문을 구성해야 하는 중요한
주제가 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와 관련된 내용에 대한 논의는 최소화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슈미트의 저작들에 접근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잠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무엇보다도 슈미트 자신이 공법학자였기 때문에 그의 법학 저작들로부터 정치이론을 도출해야하
는 어려움이 있고(Schwab 1989: v), 더 나아가서 슈미트의 저작들과 그의 개념들이 역사, 형이상학,
정치학, 그리고 법학의 각 영역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를 더욱 난감하
게 만든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중심 개념들과 그것이 지칭하는 현실이 직면한 위기와 변화
에 대한 슈미트 자신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특히 다른 저자들
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슈미트에 대한 연구는 개별 학문들의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영역에서만 이
루어지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이 담고 있는 위기와 변화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가운데 슈미트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근대성과 정치

 

2.1. 정치적인 것의 개념


이 장에서 우리의 논의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 자체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
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이론적인 검토에서 우리는 역사로부터 분리된 순수
한 이론을 다룰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슈미트 자신이 그 개념을 정교화하는데 있어서 역사적 변
화와 역사철학적인 전제들을 그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선 국가와 정치적인 것의 관계에 관한 슈미트의 생각의 이중성으로 드러난다. 국가의
개념과 정치적인 것의 개념 사이의 관계의 재정립은 이미 기존의 근대적인 국가 개념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인데, 이러한 위기는 슈미트의 이론 구성 내에서 이중적 가능성을 함축한다. 국가로
부터 정치적인 것이 떨어져나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슈미트는 국가가
다시 ‘전체국가’라는 형태로 다시 활성화되어 정치적이고 주권적인 주체로 재등장하는 가능성을
고려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성 시대의 종말, 즉 국가가 그러한 주권자로서 되돌아올 역사적
인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고 국가로부터 정치적인 것이 완전히 이탈하게 된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근대 국가의 정당성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정신사적 격변은 곧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
는 생각으로 표현되는데, 한편으로―특히 역사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
이란 근대성 자체의 위기의 시대 즉 탈주술화된 시대에 필연적이고 현실적인 정치적 정당성의
유형인 동시에―왜냐하면 근대의 특정한 가치나 목적론에 의해 정당화되는 정치적인 것의 시대
는 막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정치의 고유한 폭력수단이 다른 이해관계
에 의해 동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슈미트의 정치적인 당위이기도 하다. 이는 근대 조기 주권 사
상에 대한 재해석인데, 근대 국가의 정치권력이 종교전쟁과 같은 비정치적인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었듯이 제국주의 시대의 경제전쟁의 상황과 정의전쟁이라는 윤리적 전쟁 상황을 정치적인 것
의 자율성의 확립을 통해 순수한 정치적 전쟁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슈미트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즉 적과 동지에 대한 구분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인데, 이러한 조건이 내전 상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오직 정치에 의해서만 적과 동지의 적대관계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
이다.


근대성의 위기와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생각은 슈미트로 하여금 법학과 정치학에 있어
서의 위기의 개념인 ‘예외상태(=비상사태)’에 대해 천착하도록 만든다. 정신사적으로 근대성의 위
기가 점증하는 것은 근대성의 정치적이고 법적인 표현인 근대 주권 국가가 보장하는 공동체 질
서에 대한 예외상태가 증가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슈미트 자신의 ‘예외’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인식론의 차원―예를 들어 물리법칙과 그 예외와 같은―을 넘어서 역사(철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고 봐야한다.


2.1.1. 국가와 정치적인 것
슈미트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바로 정치적인 것의 기준(Kriterium)을 적과 동
지의 구분에 두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 점이 슈미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그런 만큼이나 숱한 오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전쟁의 현실적 가능성
에 대하여 규범적으로 접근하거나 전쟁과 같은 극한 투쟁 가능성을 정치이론의 구성에서 제외시
키는 관점에서 볼 때, 분명 슈미트의 이러한 정치에 관한 개념화는 문제시되지 않을 수 없을 것
이다. 이런 관점에서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정치에 관한 ‘갈등 이론’적 접근이라고 부
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상 이러한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투쟁 그 자체를 의미하는
홉스적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18) 왜냐하면 슈미트
의 적과 동지의 구분이란 정치적 공동체의 적을 선언하는 것이며 따라서 최소한 바이마르 공화
국 시절의 슈미트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민주주의’의 동의어로 간주되는 ‘인민의 정치적 통일체’
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19)


남미 원시부족들의 전쟁과 경제를 주로 연구한 정치인류학자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에 따르
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의 불가능성은 한 주어진 공동체로 하여금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곧바로 분류하도록 이끈다. 즉 타자들은 친구들과 적들로 나누어진다”(Clastres 1980: 281; 인용은
국역본, 강조는 인용자). 즉 사회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마치 그 자체가 홉스의 자연상태의
현실적인 양태로 생각될 수 있는 원시부족들에게 있어서도 전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라는 원초적인 자연상태가 아니라 사회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20) 달리 말해서, 적과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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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스트라우스(Leo Strauss)의 해석(Strauss 1932)에서 우리는 이러한 해석의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 스트라우스의 이러한 슈미트에 대한 독해는, 역사적인 경향에 따라 ‘질서로서의 정치’와 ‘전쟁으로서의 정치’ 사이의 차이가 상대적이 된다는 본 연구의 중요한 주장과 관련해서는 특징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논리의 전개과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트라우스와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들에 대한 분석으로는 Meier 1995; McCormick 1994를 참조.
19)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기준, 혹은 개념이 갈등적이라기보다는 권위에 의한 질서에 가깝다고 보는 입장에는 Hirst 1999, Pasquino 198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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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구분은 초역사적인 인간학적 조건이라고까지 볼 수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이는 단지 자연적
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다. 하지만 슈미트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근대적인 정치의 조건과
개념이다.


때때로 슈미트는 정치의 근대적인 조건들을 뛰어넘어,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거나 혹은 고대
적인 기원을 갖는 이론(과 신화)들로부터 자신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한
다. 예를 들어 그는 공적인 적과 사적인 적을 개념상으로 구분하기 위해 희랍어(πολέμιος-ἐχμος)
와 라틴어(hostis-inimicus)에서의 구분을 끌어대거나 인간의 본성을 악한 것으로 보는 비관적이고 현
실주의적인 인류학적 전제들로부터 자신의 정치이론의 근거를 찾기도 한다.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사가 언제나 근대성 내부에서 ‘유일한 정치단체’로서 스스로를 주장한 근대 국가와 그
것이 직면한 특정한 역사적인 국면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슈미트 자신에 의해서도 보다 분명
하게 주장된다.22) 따라서 1920년대와 30년대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그의 연구의 중심적인 주
제도 단순히 적과 동지의 구분이 정치적인 것의 기준이라는 사실을 밝히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근대 국가와의 관계에서 갖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의미인 바 이는 곧 “국가는 조직된 정
치적 통일체로서, 전체로서는 그 자신에 대해서 적과 동지를” 구별한다는 ‘정치적’ 사실과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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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러한 클라스트르의 주장이 홉스의 자연상태가 단지 허구적인 가설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파스키노(Pasquale Pasquino)는 홉스의 자연상태가 “추상화(abstraction)”라기보다는 “뺄셈(subtraction)”, 즉 경험적인 현실에서 특정한 부분, 여기서는 권위, 혹은 권력을 제거함으로써 생각할 수있는 상태라고 봄으로써 홉스의 자연상태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을 돕고 있다(Pasquino 1994; McCormick 1997: 256 15n에서 재인용). 홉스의 자연상태를 현실로부터의 ‘추상화’라고 보는 관점은 MacPherson 1964를 참조. 파스키노의 논리에 따르면, 무정부상태란 정부 이전의 원초적인 상태가 아니라 정부가 존재하는 경험적인 현실에서 정부를 제거했을 때 생각할 수 있거나 실제로 가능한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1) 슈미트가 바이마르 시절로부터 제3제국 초기까지 주장하였던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전체국가(totaler Staat)”의 현실화된 형태로서의 이탈리아의 파시즘 국가를 칭송하면서 슈미트는 이러한 국가를 단순히 고전적 유럽의 사상에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 고대적인 사상들과의 연관관계를 강조한다(1929a:
113-115/162-164). 공적(公敵)과 사적(私敵)의 구분의 어원에 대해서는 1963a: 29-30/36-37/28-29에서, 비관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그래서 적과 동지간의 투쟁의 가능성을 항상 전제하는 인간관만이 유효한 정치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는 슈미트 자신의 생각은 1963a: 59-68/71-81/58-68에서 다뤄지고 있다.
22) 국가 개념이 근대 유럽의 국제법 질서에만 속한다는 ‘구체적 사고’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1963
년판의 서문을 포함한 대부분의 40년대 이후의 저작들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다. 특히 『국가개념의
구체성과 역사성(Staat als ein konkreter, an eine geschichtliche Epoche gebundener Begriff)』(1941)이라는 제목의 강연과 이후에 이 주제를 보다 본격적으로 전개시킨 『대지의 노모스: 유럽 공법의 국제법(Der Nomos der Erde im Völkerrecht des Jus Publicum Europaeum)』(1950)에서 다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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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1963a: 30/37/29-30).


하지만 국가의 개념도 그것이 개념인 한에서 정치적인 개념이지 초역사적인 추상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중요한 한 측면인 역사철학적인 부분을 확인하
게 된다. 슈미트에 따르면 “모든 정치적인 개념들은 어떤 구체적인 국내외 정치적인 대립으로부
터 나오며, 이러한 대립이 없다면 그것은 기만적이며 무의미한 추상에 그친다. 따라서 구체적인
상황, 즉 구체적인 대립을 도외시할 수” 없다. 즉 “모든 정치적 개념은 논쟁적인 개념”이기도 하
다(1930: 129).23) 이러한 슈미트의 역사철학적이고 개념사적인 전제는 국가의 개념, 그리고 그것이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 갖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제 “국가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
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는 그의 명제는 바로 그러한 전제를 반영한 결과물이다(1963a: 20/23/19).
사실 이 명제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는데 케르베강(Jean-François Kervégan)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
이 설명한다.


즉, 국가와 정치적인 것이라는 두 개의 생각 사이의 논리적인 관계의 한 측면과,
근대 서양의 근대 국가들의 역사상의 우월적 지위의 측면이 그것이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언급은 후자의 측면으로서, 근대국가(주권, 대표, 내부 분쟁의 평화
적 해결)의 성격과 속성들이 정치적인 것으로부터 논리적으로 파생된다는 점을 증
명해내려는 것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것은, 또한 그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오로
지 인간들간의 관계들이 극복불가능한 정치적인(갈등적) 차원을 포함하기 때문에서
다. 따라서 논리적 개념적 시각으로 보면, 국가를 “정치적 실질”과 연관해서, 그것
을 바탕으로 삼아 생각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국가와 정치적인 것 사이의 통상적
인 혼동은 역사적 시각에서 이해될 수 있다. (Kervégan 1992: 77)


슈미트가 이 명제로 시작을 하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1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매
우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국가와 사회의 관계,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정치의 위치가 달라
지고 있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국가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등치 시키는 이론적․정치적 관점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은 이들 개념의 구체성과 정치적인 성격을 지워버리고 스스로의 이
론적인 현실성도 포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슈미트는 이러한 기존의 국가이론들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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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모든 정치적인 개념, 관념과 용어들은 논쟁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것들은 구체적인 대립관계를 취하며, 결국은 (전쟁이나 혁명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적과 동지의 결속인 구체적 상황과 결부되며, 이러
한 상황이 소멸할 때에는 모두 공허하고 유령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국가, 공화국, 사회,
계급, 나아가서는 주권, 법치국가, 절대주의, 독재, 계획, 중성국가 또는 전체국가 등과 같은 말은 그것
이 무엇을 가리키며, 누구를 공격하고 부인하며, 무엇을 반박하려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1963a: 31/38/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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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자신의 일차적인 목표로 삼고 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슈미트 자신의 이론적 시도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슈미트 자신의 입장에서 발견되는 모호한 또 다른 이중성이 읽는 사람을
혼란시킨다. 그 이중성이란 국가적인 것을 다시 정치적인 것으로 복원시킴으로써 국가와 정치를
다시 동일시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지 가능성과 국가가 정치적인 것으로부터 완전
히 이탈하여 “국가성시대의 종말”을 향해 간다는 또 다른 가능성 사이의 이중성이다.24) 슈미트
자신은 1963년 판의 서문을 통해 이 점을 해명하면서 자신이 한때 정치적 기획으로 주장했던 전
자(전체국가로의 전환)의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포기하지만, 바이마르의 슈미트에게는 아직 그러
한 확신이 없어 보인다―오히려 그 당시의 슈미트의 확신은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 대한 것이
다. 그러나 특히 후자의 가능성(국가성시대의 종말)을 염두에 두고 슈미트는 1963년에 다음과 같
이 쓰고 있다.


인류에게 있어서 유럽은 그 시대의 법학적 개념이 모두 국가에 의해서 각인되었던
시대, 국가를 정치적 통일체의 모델로서 전제하였던 얼마 전까지의 시대에 살아 있
었다. 이제 국가성(Staatlichkeit)의 시대는 끝나간다. (...) 그러나 국가와 관련된 개념
들은 유지되고 있는데, 그것도 고전적인 개념으로서 유지되고 있다. 물론 고전적
이라는 이 말은 오늘날 대개가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의미로 들린다. (1963a: 10/12;
번역수정)


여기에서의 ‘국가성’이라는 말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성의 종말’이란 국가의 종말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따라서 이는 그 자체가 이중적이고 “모순적(ambivalent)”인 성격의 문제이다.
즉 국가는 존재하면서도 국가를 사회로부터 구별시켜주는 국가의 고유한 정치적 성격은 사라져
간다는 문제의식이 표명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국가성의 종언’이 ‘국가의 종언’과 동일한 것이
라면 오히려 이 문제의 이중적이고 애매한 의미는 해결된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언급을 통해 노
년의 슈미트는 정치적인 주체로서의 근대 주권 국가의 복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그
러나 문제는 젊은 칼 슈미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정치적인 것을 다시 독점적으
로 장악하게 될 국가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1932년에 정치적
인 것과 국가적인 것의 동일시를 비판하면서도, “국가는 그 말의 의미나 역사적인 출현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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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러한 32년 당시의 슈미트 자신의 모호한 태도에 대해서는 Kervégan 1992; Schönberger 2003를 참조. 본 연구에서 후자의 가능성(‘국가성 시대의 종말’)에 대해서는 근대 국가에 관한 현재의 정치사회학적이나 국제정치학의 국가이론들과의 비교를 통해 조망해보는 2.2장에서 다룰 것이며, 전자의 가능성(전체국가)은 특히 슈미트의 정치이론을 바이마르 시대의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판단하고 비판하기 위하여 3.2장에서 다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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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하나의 특별한 성질의 상태이고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권위를 갖는 상태이기 때문에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지위에 대하여 지위 그 자체이다”라고 말한다(1963a: 20/23/19-20; 번역수정).
그는 그러면서 곧바로 ‘전체국가’의 개념을 향해 나아간다. 아직 당시의 슈미트에게 있어서 ‘국가
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한다’라는 명제가 의미하는 것이란 근대 국가의 전제들을
당연시하지 않고 재검토해야 한다는 정도의 것이지, 근대 국가가 자신의 정치적 능력의 토대가
된 이러한 전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보다 극단적인 인식(“국가성의 시대는 끝나
간다는)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슈미트는 전체국가의 현실을 근대 국가가 직면한 심각한
위기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해서 보다 강도 높은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국가의 복귀를 그 해결책으로 제안하고 있다. 우리는 논문의 3부에서 정
치적인 것의 개념의 현실적인 적용이라 할 수 있는 전체국가, 그리고 그러한 국가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전쟁(투쟁)의 양상인 총력전에 대해서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살펴볼 것인데, 이에
앞서 우선 정치적인 것의 개념 자체의 구조와 그것의 개념사적 위치, 특히 거시적인 관점에서 근
대성과의 관계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왜 국가는 정치적인 성격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는가? 달리 말한다면, 어째서 더 이상 ‘국가
적인 것=정치적인 것’이라는 등식을 국가이론의 전제로 당연시 할 수 없는가? 이는 이미 베버에
의해서도 관찰된 국가와 사회간의 상호 침투 현상 때문이다.25) 여기에서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국가가 어떤 정치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또한] 정치적인 것은 어떤 국가적인 것”으
로 나타난다는 “불만족스러운 [논리적] 순환”인데, 이는 그 자체가 역사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
때문에 정치와 국가간의 관계는 그 자체가 “논쟁적”이고 “정치적”인 것―즉 구체적인 진리―이
다. 반면에 이 개념간의 관계의 논쟁적-정치적 성격을 부정하면서 역사적인 변화와는 상관없이
추상적인 학문적인 전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슈미트의 눈에는 특정 학문 분야에서만 유용한 “실
용적”이고 “기술적”인 태도로 비칠 뿐이다(1963a: 21/24-25/20-21; 번역수정). 우리가 여기서 유념해
야 할 사실은 이러한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태도에 대한 슈미트의 비판 또한 역사적인 성격을 갖
는다는 것이다. 슈미트는 이러한 논쟁적이고 정치적인, 따라서 구체적인 성격을 갖는 ‘정치의 표
지로서의 국가’라는 생각―즉 무엇이 정치적인 것인지를 판별할 수 있게 해주는 기준으로서의 국
가라는 생각―이 역사적으로 유효한 시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26) 그러나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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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국가와 사회의 상호침투에 대한 생각은 슈미트가 처음 표명한 것은 아니며 이미 베버에게서 발견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슈미트의 정치적 기획인 전체국가가 동질성과 동일성의 구현이라면 베버는 그와 달리 이질성과 다원주의적인 정치 기획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입장의 차이를 보인다. 베버와 슈미트
가 주장하는 정치적 기획의 차이에 대한 비교는 Kim 2004: 160-169를 참조.
26) “(...) 국가와 국가의 기구들이 어떤 자명하고 확고한 것으로서 전제될 수 있는 한, 그러한 규정[국가적인 것=정치적인 것]은 국가 또는 국가적인 것과 만족스런 관련을 가지는 것이다. (...) 또한 국가가 실제로 명확하고 명백하게 규정된 크기이며, 비국가적인, 바로 그 때문에 “비정치적인” 집단과 업무들에 대
립하는 한은, 즉 국가가 정치적인 것을 전유하는 한은 학문적으로 정당하다. 국가가 (18세기에 있어서
처럼) “사회(Gesellschaft)”를 대항자로서 인정하지 않았거나, 또는 적어도 (독일의 19세기로부터 20세기에 걸치듯이) “사회”의 상위에 안정된 구별할 수 있는 권력으로서 존재하고 있던 경우에는 그러하였
다”(1963a: 23-24:26-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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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에는 우리가 앞서 지적했던 것과 같은 바로 그러한 ‘애매성’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한편으로 이제 “국가성의 시대”는 끝나가지만, 이는 다른 한편으로 전체국가라는
현실이 존재하며 이 전체국가라는 현실적인 가능성을 통해 국가가 다시 정치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며, 그래야만 한다고 슈미트는 주장하기 때문이다.27)


(...) 국가와 사회가 상호 침투함에 따라서 국가적=정치적이라는 등식은 그 만큼 부
정확해지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 모든 지금까지의 국가적인 문제가 사회
적인 것이 되고, 반대로 모든 지금까지 “단지” 사회적인 문제가 국가적인 것이 된
다. 그 경우에는 지금까지는 “중립적인” 영역―종교, 문화, 교양, 경제―이 비국가
적 및 비정치적이라는 의미에서 “중립”이라는 것을 중단해 버린다. 중요한 영역들
의 이와 같은 중립화와 탈정치화에 대한 논쟁적인 대립개념으로서, 어떠한 영역에
대해서도 무관심하지 않고, 잠재적으로는 모든 영역을 장악하는 국가와 사회의 동
일성으로서의 전체국가(der totale Staat)가 등장한다. 거기에서는 따라서 모든 것이
적어도 가능성으로서는 정치적이며, 국가를 끌어대어 “정치적인 것”의 특수한 구별
표지(Unterscheidungsmerkmal)를 마련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게 된다. (1963a: 24,
26/27, 29/22, 25; 번역수정)


슈미트가 보기에 이제 근대 국가를 기준으로 정치적인 것을 판별하는 이론들은 유효성을 상
실하는데 그것은 이러한 이론들이 여전히 중립적인 영역을 탈정치적인 영역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가 보기에 유럽의 정신사적인 중립화의 추구는 이제 종착점에 도달하였으며,
국가와 사회의 상호침투의 경향, 즉 중립적이고 비정치적인 영역의 쇠퇴 현상이 이를 반증한
다.28) 따라서 그는 정치적인 것은 이제 자신에 대해서 외재적인 것이 되어버린 국가로부터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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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역사적 경향과 슈미트의 정치적 기획 사이의 대립 관계에 대해서는 Colliot-Thélène 1995를 참조.
28) 여기서 우리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 중립성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원래는 1931년에 발표하고 이후에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1963년 판에 첫 번째 계론(Corollarium)으로 덧붙인 「국가의 국내정치적 중립성이란 개념의 다양한 의미와 기능들에 대한 개관(Übersicht über die verschiedenen Bedeutungen und Funktionen des Begriffes der innerpolitischen Neutralität des Staates)」에서 그는 “부정, 즉 정치적 결정에서 벗어난” 수동적이고, 결정적으로는 비정치적이라고 해야 할 ‘중립성’으로부터 “긍정, 즉 결정으로 이어지는” 능동적이며, 정치적인 중립성을 구분한다(1963a: 97-101/117-123). 이런 그의 구분으로부터 미루어볼 때, 그가 단순히 중립성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론적으로는 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비정치적인 영역들에게 내주었던 중립성을 국가와 정치가 환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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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그것에 고유한 기준들로부터 판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9) 그리고 이러한 슈미트의 의도
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생각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2.1.2.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 혹은 척도들로서 ‘자율성
(Selbständigkeit)’, ‘사실성(Sachlichkeit)’, ‘고유성(Spezifität)’, 그리고 ‘강도(Intensität)’를 제시하는데 이들 기준들은 정치적인 것에 대한 외적인 척도가 아니기 때문에 결코 서로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고찰하기는 어렵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판별하는 기준에 관한 슈미트의 논리 전개는 우선 정
치적인 것의 ‘고유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규정은 정치적인 것에 고유한(spezifisch) 범주들을 밝히고 확
정함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다. 즉 정치적인 것에는 그것에 특유한 기준들―인간의
사고나 행동의 다양한, 상대적으로 자율적인(relativ selbständig) 영역, 특히 도덕적․
미적․경제적인 것에 대하여 독자적인 방법으로 작용하는―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것은 특유한 의미에서 정치적인 행동이 모두 거기에 귀착할 수 있는, 거
기에 고유한 궁극적인 구별 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 정치적인 행동이나 동
기의 기인으로 생각되는 특수 정치적인 구별이란 적과 동지의 구별이다. (1963a:
26/31/25-26; 번역수정)


슈미트에게 있어 정치적인 것의 그 고유성이란 정치적인 적과 동지의 구분이 어떤 “새로운
영역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상술한 대립들[도덕적인 선․악, 미학적인 미․추 등]의 하나
내지는 몇몇에 근거하지도 않으며, 또한 그것들에게 귀착시킬 수 없다는 그러한 방식으로 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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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는 기술의 문제를 전체국가의 개념과 결부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이는 그의 정치사상을 이해하는데 극히 중요한 주제이다. 그 자신이 1932년 판에 덧붙여서 출판한 1929년의 강연인 「탈정치화와 중립화의 시대(Das Zeitalter der Neutralisierungen und Entpolitisierungen)」에서 그는 기술적 사고가 사회적으로 전면화됨으로써 16세기부터 19세기 유럽의 사상사를 관통하는 중립적 영역에 대한 추구는 종언을 고하게 된다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전체국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논문들에서 전체국가는 결국 기술(과 기술적 수단들)을 정치적으로 장악해야만 하는 정치적으로 장악해야만 하는 주체로 묘사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3.1장에서 다시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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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타의 비정치적인 대립들과 정치적인 대립 사
이에 질적인 단절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인 대립은 비정치적인 대립들에 비해
그 ‘강도’에 있어서 그 정도가 양적으로 가장 강한 대립이다. 이러한 양적인 연속성과 질적인 불
연속성에 의해 정치적인 적대관계로서의 적과 동지의 구분은 도덕적, 미적 혹은 경제적인 대립의
논리로부터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완전히 자율적인 고유의 원리를 갖는 동시에 그러한 비
정치적인 적대관계에 비해 그 강도에서 우위에 놓인다는 이중적인 관계로 규정된다. 여기서 슈미
트는 헤겔의 변증법에서의 “양으로부터 질로의 전화”의 원리를 참조하고 있다. 즉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란 인간 활동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의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영역들로부터 출발하여 그
강도가 양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마침내 질적인 단절이 일어난다는 의미에서의 자율성이며, 따라
서 도덕, 경제, 미학, 종교의 영역으로부터는 ‘절대적’으로 자율적인 동시에 진정으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립이라는 의미를 획득한다.30) 여기서 ‘자율성’은 소극적으로 다른 영역들로부터 단지
독립되어 있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적대관계의 강도 높음으로부터 획득한 의미의 자율성으로
써 적극적으로 다른 영역들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그
런 점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의미는 최소한 이론의 수준에서는, ‘예술의 자율성’이 ‘예술
을 위한 예술’을 의미하듯이 단순히 ‘정치를 위한 정치’로 이해될 수는 없다. 특히 이러한 강도
높은 정치적인 대립이라는 “극단적인 갈등의 경우”에 그 대립의 당사자들만이 그러한 갈등에 대
해 결정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구체성이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과 결합한다는 사실은, 소극적인
고립이라는 것이 아닌 ‘적극적 의미의 자율성’이라는 해석의 근거가 된다.31)


그런데 슈미트의 정치이론에 있어서는, 정치적인 것이 단순히 그 자체로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로 이러한 정치적인 것이 자율적이며 또한 자율적이어야
한다는 데에 중요성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국가에 의한 정치적인 것의 재장악 즉 정치적인 것
의 자율성의 현실화가 당면과제로 등장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슈미트에게서, ‘정치적인 것
의 자율성’이란 국가가 다시 정치적인 주체로서의 주권적 지위를 회복하는데 있어 택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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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슈미트의 헤겔 변증법의 양-질 전화와 구체성, 그리고 정치적인 성격에 대한 해석은 1963a:
62-63/74-75/62-63에서 전개되고 있다.
31) 슈미트와 스트라우스는 모두 정치적인 것의 ‘절대적인 자율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양자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란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스트라우스는 슈미트가 정치
적인 ‘지식’의 원천을 극단적인 구체성에서 찾는 것에 반대하여, “순수하고 전체적인 지식”은 “구체적인
정치적 실존”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훼손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으로부터 나온다고 봄
으로써 슈미트 자신이 “문화적․사회적 무(無)”라고 부른 기원으로의 회귀를 주장하기 때문이다(Strauss
1932: 107/182; 1929b: 93-94/111-112/141). 그런 점에서 슈미트와 달리 스트라우스야말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절대적인 성격을 ‘정치를 위한 정치’로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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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필연적인 형태인바, 이는 한편으로는 역사철학적이고 정신사적인 상황과의 관련성에서, 그
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통제할 수 없는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정치적 당
위로서 그 의미를 갖게 된다.


우선 정신사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면,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은 역사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슈미트가 보기에 “근대 국가이론
의 중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 개념”인데, 이러한 ‘세속화’의 과정의 심화에 따라서 홉스가
생각했던 절대주의적이고 초월적인 주권자는 이제 현실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
이다(1922: 43, 52-53/42, 51/36, 48-49). 이런 판단에 비추어 보면, 슈미트는 베버의 다음과 같은 역
사철학적인―그러나 결코 역사법칙적이지 않은― 문제 의식을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베
버가 보기에 칸트와 헤겔 등의 근대 철학자들은 “모두 근대적 자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자유의 자의성을 회피하기 위해 형이상학적 거대담론의 구축에 의존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
속적인 형이상학이 종교를 대체했던 것이다”(김성호 2003: 175). 세속화의 진행은 슈미트로 하여
금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앞선 정치사상가들이 그랬듯이 어떤 형이상학적인 토대 위에 세운다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다시 말해, 세속화(혹은 ‘탈주술화’)의
과정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토대나 가치를 전제한 정치는 더 이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되는
데, 이것이 바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역사철학적인 조건을 이룬다.32)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은 이러한 정신사적인 요구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 당면한 상황
인 세계 대전과의 관련성에서도 조명되어야 한다. 슈미트에게 당위로서의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
은 전쟁을 공적 주체들간의 전쟁으로 완화하고 제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즉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 실현되고 유지되어야만 적대관계를 순수하게 정치적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되며, 따라서
결국 국가간의 공적인 전쟁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전쟁은 윤리적으
로 정당화되고 더욱 끔찍한 형태가 될 것이라고 슈미트는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예를 들어


(...) 그 내용―그것이 아무리 올바르고 이성적이거나 또는 고귀한 것이라 할지라
도―으로부터 다른 인간의 육체적 생명에 대한 처분권이 생겨날 수도 있을 그러한
강령, 규범, 그리고 합목적성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하여, 살아 남은
사람들의 상업과 산업이 번영하도록 또는 자손의 소비력이 증대되도록 하기 위하
여 사람을 살해하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을 진지하게 요구한다는 것은 전율
할 일이며 미친 짓이다. (1927: 70/99-100)

즉 슈미트가 보기에 적대자와의 무력 투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치적인 정당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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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베버와 슈미트의 역사철학의 차이에 대해서는 Coliott-Thélène 1995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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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곧 ‘공공성’뿐이다. 그의 현실주의적 전제에 따르면 전쟁 자체의 근절이나 추방은 아예 불가
능하며, 그가 보기에 전쟁을 더욱 격렬하고 비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전쟁에 대해 윤리적
인 접근―그것이 정당화든 반대든 상관없이―이다. 왜냐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로부터 벗어난
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쟁에 대해 윤리적으로 접근하는 이상주의는, 현실의 정치에서는
전쟁 자체를 추방하는데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추방해야 할 윤리적인 적’을 향해 벌이는 “정의
전쟁(just war)”을 정당한 것으로 지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33) 따라서 전쟁과 적은 오직 정치
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공공의 적 이외에 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없
다. 적이 공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선 “개인 그 자체에 대해서는 바로 그 사람
이 개인적으로 (...) 싸워야 할 적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963a: 70/85/71). 슈미트가 보기에,
만일 개인이 자신의 상대방을 위해 투쟁을 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사적인 이해에 의한 것이며 따
라서 ‘범죄’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 1777-1811)의 소설의 주인공
“미하일 콜하스(Michael Kohlhaas)”는 당연히 “강도와 살인자”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는 “오로지 침
해당한 그의 사적인 권리를 위해서만 투쟁하였으며, 외국의 침입자에 대해서도 투쟁한 것도 아니
고, 또 혁명적인 일을 위해 투쟁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투쟁은] 순수하게 범죄적인
것이 된다”(1963b: 92/148).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원리에 따르면, 적은 언제나 집단의 적이며 또한 특히 정치적인 공
동체의 적, 즉 공공의 적이어야만 한다. 그러한 “적이란 경쟁상대 또는 상대방 일반은 아니다. 또
한 적이란 선천적인 혐오감 때문에 증오하는 사적인 상대방도 아니다. 적이란 단지 적어도 때에
따라서는, 즉 현실적 가능성으로서 투쟁하는 인간 전체이며, 바로 그러한 전체와 대립하는 것이
다. 적이란 공적인 적만을 말한다”(1963a: 29/36/28). 그러나 국가의 공적인 성격은 이미 사적인 영
역이자 완전히 경제화된 사회에 의해 침해를 받고 있으며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한데 뒤섞이고
있다. 따라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혼란이 생긴 것은 법이나 평화와 같은 개념이 이와 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때, 즉 명확한 정치적 사고를 방해하고 자기의 정치적 노력에 정당성을 부여
(legitimieren)하고, 상대방을 자격이 없는 부도덕한 입장으로 만들려고 이용될 때이다”(1963a:
65/79/66; 번역수정). 슈미트에게서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이란 정치 공동체의 적이 순수한 정
치적 목적, 즉 질서의 회복이라는 의미에서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비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수단
화되는 경우이다. 즉 공공의 적이 종교적이거나 경제적인 적으로 변질되는 경우이다.


따라서 슈미트는 다음의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실제의 적, 즉 공공의 적이자 정치적인 적
대 관계를 확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한편으로는 크롬웰이 교황파의 스페인에게 표현한 적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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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우리는 이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적”이라는 개념과 함께 3.3장에서 자세하게 분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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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적, 신의 섭리에 의한 적(the natural enemy, the providential enemy”)이라는 “절대적인 적”의 형
상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적들에 대한 확정을 포기하는 행위의 가능성이 있다. 후자의
가능성은 특히 러시아와 프랑스의 “몰락하는 계급들”이 혁명에 직면하여 농민과 민중을 “선한 인
간”으로 보는데서 명확하게 드러난다(1963a: 67-68/80-81/67-68). 그러한 생각은 슈미트에게는 적을
결정하는 권한을 포기함으로써 정치적 주체가 소멸되는 것을 의미하지 결코 정치적인 것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국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는 결정이 공적인 권위로서의 주권자
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동시에 이러한 결정의 권위에 시민들이 복종을 함으로써 인민의
정치적 통일체가 유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홉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주권자의 그러한 진정으로
정치적인 결정은 내전(예외상태)을 종결시키고 법규범이 적용될 수 있는 정상상태를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미트는 이러한 주권과 시민의 “보호와 복종의 상호관계”는 “국가의 생
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이라고까지 주장한다(1963a: 53/63/52; 번역수정). 이러한 공적
권위에 의한 적과 동지의 결정, 그리고 그에 따라 존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무력 충돌의 가능성
은 상대방을 괴멸시키기 위한 절대적인 전쟁과 스스로의 교전권을 포기하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기소멸이라는 이상주의의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의 현실적인 균형이기 때문에, 이때의 극한
대립의 가능성으로서의 전쟁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정치적인 것의 목표나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34) 달리 말해서, “전쟁이란 이상이나 법규범 때문이 아니라 현실의 적에 대해서
수행된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1963a: 50-51/60/49).35)


2.1.3. 주권과 예외
슈미트의 정치이론은 이미 살펴본 내용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듯이 ‘근대성’ 혹은 ‘근대 정치’
가 직면한 극도의 위기 상황이라는 주제와 직결되어 있다. 즉 상존하는 투쟁의 가능성과 대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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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그 밖에 현대의 전쟁기술의 가공할 발전(...)은 예전의 전쟁에서 영웅적이며 명예적이었던 모든 것, 개인적인 용기나 싸우는 기쁨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전쟁은 콩스탕의 결론에 의하면, 오늘날에는 어떠한 이점도 매력도 상실한 것이다”(1963a: 74-75/90/75-76). 이러한 서술을 근거로 케네디(Ellen Kennedy)는 “에른스트 윙어(Ernst Jünger) 혹은 심지어 에리히 카우프만(Erich Kaufmann)과 같은 동시대인들과는 달리 슈미트는 전쟁을 이상화하지도 않았고 투쟁을 덕으로 간주하지도 않았다”고 본다(Kennedy 1997: 44).
35) “여기서 주어진 정치적인 것의 정의는 호전적 또는 군국주의적인 것도 아니며, 제국주의적인 것도 또
한 평화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또한 전쟁에서의 승리나 혁명의 성공을 “사회적 이상”으로서 주
장하려는 시도도 아니다. 왜냐하면 전쟁이나 혁명은 어떤 “사회적인 것”도 어떤 “이상적인 것”도 아니
기 때문이다”(1963a: 33/40-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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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성은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정치를 위한 정치’라는 순환논리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이
문제는 주권(sovereignty)과 예외(exception)의 관계라는 슈미트 정치이론의 범주들과 관련될 때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이 범주들은 슈미트의 정치이론에 있어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만큼 핵심적
인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축을 형성한다. 이러한 두 축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바로 슈미트의 ‘결정
주의(decisionism)’ 사상이다.36) “주권자는 비상사태를 결정하는 자(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heidet)”(1922: 13/17/5)37)라고 말하는 『정치신학(Politische Theologie)』의 권두언이 함축하고 있는 결정주의는 ‘적과 동지의 구분’만큼이나 슈미트의 이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며,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보다 충실히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논
의이다. 슈미트의 결정주의는 우선 주권자를 지상의 신(mortal god)으로 정의한 홉스로부터 유래한
다. 결정주의 사상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홉스의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을 만든다(auctoritas, non
veritas facit legem)”는 명제로 표현된다. 즉 법과 질서의 원천은 주권자의 권위적 결정에 있지, 결
코 진리나 규범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38)39)


그러나 슈미트의 결정주의 사상이 홉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것은 결코 슈미트의 주권 개념이 홉스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케네디
(Ellen Kennedy)는 슈미트의 주권이론에 대한 오해들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홉스와 슈미트의
주권 개념의 차이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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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결정주의로 표현되는 슈미트의 규범주의 법학에 대한 비판은 『정치신학』과 『정치적인 것의 개념』간의 이론적인 연속성을 지지하고, 특히 후자를 결정주의의 관점을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러한 관점들에 대해서는 Schwab 1989; Gottfried 1990; Kervégan 1992; Hirst 1999를 참조.
37) 독일어 전치사 über의 의미에 의해 이 문장은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즉 주권자는 비상사태‘를’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지금이 비상사태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동시에 비상사태‘에 대해’ 결정하는데, 이는 비상사태에 직면하여 무엇을 해야할지를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이 문장의 해석에 대해서는 Freund 1995, McCormick 1997b: 169를 참조.
38) 이에 대해서는 Schwab 1989: 44-51을 참조.
39) ‘비상사태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주권자’라는 결정주의 사상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헌법학에서의
‘독재(dictatorship)’에 대한 논의와 관련된다. 슈미트 자신은 1921년의 『독재론: 근대주권 사상의 기원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까지(Die Diktatur: Von den Anfängen des modernen Souveränitätsdedankens bis zum proletarischen Klassnkampf)』에서 ‘위임 독재(komissarische Diktatur)’와 ‘주권 독재(souvären Diktatur)’를 구분하면서 전자를 단지 기존 헌정질서를 수호하는 역할만을 하는 제한된 독재―이 때 독재는 주권과 엄격히 구분된다―로, 후자를 기존 헌정질서에 변경을 가할 수 있는 독재―이 때 독재와 주권은 구분되지 않는다―로 정의하고 있다(1921). 이러한 슈미트 자신의 구분에 입각해 볼 때 『정치신학』에서의 변화, 즉 주권자에게 비상사태에 대한 결정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위임 독재에 대한 옹호에서 주권 독재로의 옹호로 전환된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McCormick 1997b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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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는 주권 권력을 입법에 대한 권위를 갖는 개인이나 제도에 위치시켰다. 슈미트
는 당시의 대결적인 다원주의의 현실과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
극적으로 증대된 국가의 기능들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 혹은 심급으로서
의 홉스적 주권 개념을, 주권자가 창조자와 통제자로서 그 위에 우뚝 설 수 없는
그러한 과정 속에서의 실존적 개입의 계기로 변형시켰다. (Kennedy 1997b: 107)


케네디가 보기에, 슈미트의 주권자가 신과 같은 전능한 존재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오히려 슈미트는 그 반대로 생각하는데, 그가 보기에 “국가의 창조자이자 보증자로서 기능하는”
주권자란 근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Kennedy 1997b: 105). 슈미트의 정치신학에 있어서 초월적인
신과 같은 위치에 놓이는 것은 주권자가 아니라 예측불가능한 정치적 사건들로서의 극단적인 ‘우
연성’이며, 바로 ‘예외상태’이다. 주권자는 이러한 예외에 대해서 해석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40) 슈미트에게 있어 주권자는 법 체계 자체를 초월하여 그러한 법 체계의 질서와 균형을
보장하는 전능한 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결정을 통해서만 정치적으로 존재한
다고 할 수 있다.41) 그리고 이러한 주권자의 결정에 존재론적으로 선행하는 것은 바로 우연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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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까를로 갈리(Carlo Galli)는 특히 예외상태를 우연성과 관련시켜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하는 대표적인 입장을 보여준다.(Galli 2000). 그는 특히 아래에 인용된 “홉스 크리스탈(Hobbes-Krystall)”에 대한 해석을 통해 슈미트의 정치신학에서 “초월성은 우연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alli 2000: 1607). 그의 이러한 주장은 슈미트의 정치신학에 있어서 주권자의 위치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초월성(Transzendenz)에 열려 있다
↙1 진리: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5↖
↙ 2 누가 해석하는가? 4↖
↙ 3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을 창조한다 3↖
↘4 간접 권력이 아닌 직접 권력 2↗
↘5 복종 복종 1↗
↘ 과 과 ↗
↘ 보호 보호 ↗
------------------------------------
아래
닫힌, 욕망의 체계
(1963a: 122/149; 번역 수정)
41) “(...) 중대한 사태(Ernstfall)를 지향하는 결속만이 항상 정치적인 것이다. 그 때문에 그 결속은 항상 결정적인 인간의 결속이며, 따라서 정치적 통일체는 일반적으로 그것이 존재하는 한, 항상 결정적 통일체이며, 또한 예외적 사태(Ausnahmefall)도 포함하여 결정적 사태에 대한 결정권(Entsheidung über maßgebenden Fall)을 개념필연적으로 항상 장악하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주권적(souverän)이다”(1963a: 39/46-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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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예외’이다.


이 ‘예외’라는 것에는 여러 가지의 학문적 측면들이 결합되어 있는데, 특히 슈미트의 저작들
에서의 용례들에 따라 볼 때, 예외란 다음과 같은 6가지의 측면으로 나누어서 접근할 수 있을 것
이다.


⑴ 예외는 ‘인식론’의 수준에서 존재한다. 여기서 예외는 정상, 혹은 규칙성, 법칙성에 대한
상대 개념이다.42)


⑵ 예외는 ‘법학’의 수준에서 논의될 수 있다. 슈미트 자신도 포함되어 있는 신칸트주의 철학
과 법학의 영향에서 볼 때, 이는 ⑴에서부터 도출된다고 볼 수 있다.43) 이 때 예외는 규범(Norm)
에 대한 상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법규범이 적용될 수 없거나, 법명제(legal proposition)에 포
섭될 수 없는 경우를 예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형식주의 법학에서는 법체계 내부에 그
러한 예외에 대한 인식을 포함시키기를 거부한다.


⑶ 법학과 정치학, 즉 켈젠(Hans Kelsen)의 신칸트주의적인 “순수 법학”에 따라서 당위(Sollen)
와 사실(Sein)의 구분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예외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서 비로소 예외상태(Ausnahmezustand)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으며, 슈미트가 ‘예외상태의 제도화’
라는 표현을 통해 법치국가적 헌법에 예외상태의 문제가 법제화되는 현상을 추적한다(1928:
110/133; 1958: 261).


⑷ 순수하게 정치적 의미의 예외상태가 존재하는데 이 경우에 Ausnahmezustand라는 말은 슈왑
(George Schawb)의 제안에 따라 ‘비상사태(state of emergency)’라고 번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Schwab 1989: 7).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사용되는 “중대한 사태(Ernstfall)”나, “결정적인 경우
(maßgebender Fall)”는 모두 이런 수준에서의 예외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순수한 ‘구
체적인 결정’의 의미가 가장 분명해진다고 할 수 있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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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칼 슈미트의 사상은 예외적인 사례들이 어떤 현상의 본질을 드러나게 한다는 잘못된 원칙이 가장 정
교하고, 체계적이며, 의식적으로 전개된 것들 가운데 하나다. 극단적인 사례에 대한 슈미트의 분석은 대
부분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슈미트는 (의식적이긴 하지만) 과도하게 예외적인 경우로부
터 도출해 낸 현상의 일반적 특성을 확대 해석했다”(Manin 1997: 161 82n; 인용은 국역본). 이와 같은 마
넹(Bernard Manin)의 지적은 인식론의 수준에서는 분명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예외상태의 문제를 전부 포괄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43) 슈미트가 초기에 신칸트주의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해서는 Bendersky 1987: 9-11을 참조. 또한 독일의 실증주의 법학의 자연과학적 중립성에 대한 추구에 대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설명으로는 Caldwell 1997: 13-16, Jacobson & Schlink 2000: 3-8을 참조.
44) 슈미트는 로렌츠 폰 슈타인(Lorenz von Stein)을 인용하여 다음과 쓰고 있다. “따라서 헌법이 침해되는 경우에 투쟁은 헌법이나 법의 틀 밖에서, 즉 무기의 폭력으로 결정되어야” 한다(1963a: 47/56-57/47). 고트프 리드(Paul Edward Gottfried)에 따르면 Ernstfall과 Ausnahmefall은 구별되어야 하는데, 그가 보기에 Ausnahmefall이 단지 법규범의 정상적인 적용이 불가능한 상황, 즉 예외적인 경우와 상태를 의미한다면, Ernstfall은 이러한 Ausnahmefall의 보다 강도 높은 “연장(extension)”으로 “자신이 속한 정치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게 되는 항상 존재하는 가능성”을 의미한다(Gottfried 1990: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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⑸ 형이상학적 수준에서 예외는 양적 연속성에 대한 질적인 단절, 혹은 불연속을 의미한다.
규범의 적용은 연속성을 전제하지만 예외는 그러한 연속성에 대한 단절로서 나타난다.45)


⑹ ⑸의 측면으로부터 ‘예외(상태)’의 역사철학적인 의미가 도출된다. 즉 이때 예외상태의 존
재는 역사를 연속적인 것으로 보는 역사주의적 관점에 대립된다. 이 때 예외상태는 연속적인 역
사의 단절 지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46)


결국 역사철학적인 측면과 결부되는 예외상태의 이러한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근대적인
정치의 조건의 문제로 되돌아오도록 만든다. 즉 역사의 연속성으로부터 어떤 토대도 제공받을 수
없다는 정치의 근대적인 조건은 바로 근대성 자체가 위기를 맞는 시대에 슈미트에 의해 재발견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으로부터 근대성에 접근했다면 이
제 우리는 근대성에 관한 여러 시각들로부터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위치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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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슈미트에 따르면 “규범은 동질적인 매체를 필요로 한다”(1922: 19/23/13). 이러한 생각은 “법으로부터 양을 제거할 수는 없다(Non potest detrahi a jure quantitas)”는 명제에서 유래하는 것인데, 예외로서의 독재는 시공간적인 단절을 의미한다. “헌법에 의해서 법개념으로 구성된 국가의 내부에서는 영역적으로 그 효력이 상실될 수 있는 한정된 공간이나 시간적 단절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국민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불법의 “적” 내지 “반란자”로 취급되어야 할 어떤 특정한 개인집단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예외야말로 독재의 본질에 속하며, 또한 독재가 사태에 따라서 규정된 행동 위임이기 때문에 그러한 예외는 가능한 것이다”(1921:.137/172)
46) “주권적 독재는 현행 헌법에 근거하여, 즉 헌법상의 하나의 법에 의해서 현행법을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이 진정한 헌법으로서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상태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권적 독재는 현행 헌법이 아니라 초래되어야 할 헌법에 근거하는 것이다”(1921: 137/172).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곧 주권적 독재라고 할 수 있는데, 슈미트는 “공산주의적 문헌에서 보듯이, 공격해야할
정치질서 뿐만 아니라 추구해야할 자신의 정치지배도 또한 독재라고 부르는 경우”에 주목하면서 “자신
의 국가를 전체로서 독재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국가가 그것에 의해서 올바른 상태를 실현시켜 나가기
위한 과도기의 도구라는 것을 의미하며, 더구나 그 존재이유를 이미 단지 정치적이거나 결코 실정적․
헌법률적이지만은 않은, 역사철학적인 규범에서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1921: xv/17; 강조는 인용자). 따
라서 발터 벤야민은 슈미트와는 반대편에 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억눌린 자들의 전통이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훈은, 우리들이 오늘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비상사태”라는 것이 예외가 아니라 상례
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에 상응하는 역사의 개념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되면 진
정한 비상사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사실이 명약관화해질 것이고, 그리고 이를 통해 파
시즘에 대한 투쟁에서 우리가 갖는 입장도 개선될 것이다”(Benjamin 1939: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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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근대성의 정치적 구조


앞선 장에서 우리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 자체와 그에 연관된 슈미트의 이중적 태도를 집중적
으로 다루면서, 근대성의 문제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임을 확인하였다. 이
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필요에 따라 근대성을 다루는 기존의 담론들과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접
점을 찾으려 한다.


우리는 우선 근대성 자체에 대해서 다루는 담론들의 전형을 이루는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근
대성에 대한 보다 사실적이고 역사적인 인식을 위해서는 근대성을 단순한 역사적인 기획과 같은
이념적 산물로서가 아니라, 근대성에 고유한 시공간적 배열로 접근해야 함을 밝힐 것이다. 왜냐
하면 우리가 보기에 이념적 산물, 혹은 그러한 기획으로서의 근대성은 그 자체가 다른 개념들을
설명해줄 수 있다기보다는 그 자체가 설명을 필요로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는, 근대성을 어떤 시공간적 배열로 접근하는 시각이 최근 국제정치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지구적 규모의 국가간 체계의 변화에 관한 연구들의 성과와 접점을 가지는 동시에, 슈미트 자
신이 전후에 자신의 “국가성 시대의 종말”이라는 테제를 발전시키면서 시도하는 연구와도 공통
점을 지닌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성과물들이 공통으로 지시하고 있는 것은 근대성에 고유한 시공간적 배열이
특히 유럽의 국가간 체계와 결정적인 연관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은 곧 근대 유
럽에 고유한 영토적 정치조직인 근대 국가와 국가들간의 체계에 대한 연구가 근대성 자체에 대
한 탐구에서 갖는 중요성을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근대 국가와 국가간 체계 자체에
대한 연구만큼이나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이들 연구의 대상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가를 확인하는 ‘동태적’인 시각이다. 우리는 베버의 근대 국가에 대한 정의를 공리로 삼는 정치
사회학의 연구와 최근의 주권과 근대 국가, 그리고 지구화(globalization)에 대해 논의하는 국제정치
학 분야에서의 논의를 비교함으로써 슈미트의 ‘국가성시대의 종말’이라는 주장의 함의를 확인할
것이다. 특히 ‘주권의 영토적 배타성’이라는 고전적인 원리에 비추어볼 때, 1920년대의 슈미트 자
신도 이미 그러한 원리가 침해되는 역사적 경향에 그 자신도 편승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러한 슈미트 자신의 편승은 근대 국가와 국가간 체계에 대한 동태적 시각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2.2.1. 역사적 기획으로서의 근대성
여기서의 우리의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계몽적 이성’의 실현이라는 ‘역사적 기획’으로
서의 근대성에 대한 해석과 대별되는 의미에서 영토적 주권체로서의 유럽 근대 국가와 국가간
체계의 근대적인 측면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일이 요구된다. 슈미트는 후자를 근거로 전자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사상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전자에 대한 후자의 실재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는 “국가성의 종말”이라는 슈미트의 명제를 이러한 근대성의 정치적 측면(후자)
에 적용함으로써 슈미트가 유럽 근대 국가와 국가간 체계에 관한 다른 이론가들과 어떤 점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며, 어떤 점에서 다르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여기서 국가와 국가간 체
계에 관한 이론들과 역사적인 경향을 관련짓는데 우리가 적용하게 될 기준은 슈미트의 이론 틀
을 따라 두 가지가 될텐데, 하나는 국가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고, 또 다른 기준은 바로
적과 동지의 결정권으로서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근대성’이란 분명 역사적인 대상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정치적
근대성’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어떤 것으로, 영토적 정치 조직으로서의 근대 국가와 그러한 근대
국가에 특유한 정치의 개념이다. 특히 앞서서 우리가 살펴본 “국가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
을 전제한다”는 슈미트의 명제의 역사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근대성의 정치적 측면에
대한 역사적인 접근은 필수적이다. 이렇게 근대성의 정치적 측면을 따로 분리하여 고찰하려는 의
도는 우리가 접하게 되는 이론적 상황, 즉 ‘근대성’이라는 말에 너무나 많은 규정들과 가치판단
이 일관성 없이 뒤섞여 있는 혼란 상태를 피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이론적 혼란이 무엇인지를 살
펴보기 위해서, ‘반동적 근대주의(reactionary modernism)’라는 개념을 정교화해 제시한 허프(Jeffrey
Herf)의 책의 서두를 하나의 사례로서 살펴보도록 하자.


일반적인 근대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각 민족들의 사회만이 존재하
였으며, 이들 사회는 각자의 방식대로 근대적이 되었다. 이 연구는 독일의 근대성
의 문화적 역설, 즉 계몽적 이성을 거부한 독일 사상가들에 의한 근대 기술의 수용
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럽의 근대성의 발전에 관한 사회학적 이론들에서 다음
과 같은 이분법이 두드러진다. 전통과 근대, 진보와 반동, 공동체와 사회, 합리화와
카리스마. 근대 독일사에 적용되었을 때, 이러한 이분법은 독일 민족주의와 이어서
국가사회주의가 무엇보다도 근대성―프랑스 혁명의 정치적 가치와 산업혁명이 창
조한 경제, 사회적 현실―을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자극 받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Herf 1984: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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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허프는 슈미트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어떤 전형을 제시한다. 특히 그는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독일 파시즘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하는 논리를 적용하여 슈미트를 그 자신이 비판했던 낭만주의의 타락한 형태와 동일시함으로써 비판을 시도하지만 이는 슈미트가 근대성에 대해 허프 자신과는 다른 표상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데서 비롯되는 오해인 것 같다. 우리는 그가 관찰한 사실 자체는 매우 중요하
게 생각하며 이 문제는 나치즘의 권력 구조, 그리고 총력적이라는 맥락과의 관계에서 슈미트의 정치적
인 기획을 평가하는 3부에서 다시 다루게 될 것이다. 허프의 슈미트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특히 Herf
1984: 115-121을, 그리고 그의 슈미트에 대한 해석 중에서도 기술에 관한 관점에 대한 반론, 그 중에서
도 허프의 분석과는 달리 슈미트가 기술을 물신화하지 않는다는 분석은 McCormick 1993: 124-127을 참
조. 본 연구는 맥코믹(John P. McCormick)이 슈미트에게 있어서 정치와 기술간의 상호작용을 규정하는 목적-수단 관계에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그의 논의의 전반적인 흐름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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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는 여기서 볼 때, 일반적인 의미의 근대성에 대해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듯 하지만 특
정한 가치들, 특히 이른바 “계몽주의적 기획”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근대성의 보편적인 속성
으로 규정하면서 독일의 민족주의와 나치즘이 이러한 근대성의 가치들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통
해 그들의 ‘반동적’인 성격을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근대성이 무엇인지를 보다 분명히
하기보다는 더욱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같다. 일반적인 근대성이 존재하지 않고 각 민족
들의 근대성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계몽적 이성의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러
한 태도가 우리에게 한편으로 익숙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여전히 그 타당성에 의문
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기원을 갖는 두 가지 사건(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이 정치와 사회/경제라는 측면에서 간단하게 결합할 수 있는 것인지 또한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혼란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허프의 개념을 전제로 한 다음의 연구의 한
부분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은 (...) [전후 한국에서 일어난] 근대화의 성격을 ‘반동적 근대주의Reactionary
modernism’로 지칭한다. 여기서 ‘반동적’이란 ‘반민족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서구의
근대성이 지닌 진보성․혁명성․합리성․민주성이 거세되었음을 뜻한다. (...)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한 허프(Jeffrey Herf)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파시즘의
반자유주의적이고 반계몽주의적 성격과 기술적 근대성 사이의 모순을 찾다가 독일
의 전통적인 혼과 서구의 기술을 접합시키려 했던 일단의 사상가와 기술자들을 발
견했다. 그들은 19세기 말엽부터 비합리적인 독일의 절대정신Geist과 기술적 근대성
을 적절히 종합해냈고 이는 반자본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인 파시즘으로 이어졌다.
(전재호 2000: 14-15)


이제 근대성은 어떤 역사적 사실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완전히 가치의 측면만이 남은 채 ‘진보
성’, ‘합리성’, ‘혁명성’, ‘민주성’이 한꺼번에 담겨있는 매우 혼란스러운 개념이 되어버린다. 이는
어떤 개념에 대한 해명이 아니라 오히려 해명되어야 할 것을 어떤 개념이나 척도로서 제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점이 보여주는 근대성의 개념은 시공간적으로 위치를 확정할 수가 없으
며, 그 자체가 역사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일차적으로는 근대성에 대한 역
사적이고 분석적인 접근에 있어서 장애물이 된다. 특히 이러한 관점에서는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출현한 근대 국가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


2.2.2. 시공간적 배열로서의 근대성
러기(John Gerard Ruggie)는 근대성과 탈근대성이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기존의 인문학
에서의 논쟁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앞서 직면했던 것과 유사한 어려움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탈근대주의에 관한 기존의 논쟁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지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데 이는 전적으로 근대 국가와 국가간 체계가 그 안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
기 때문이다. (...) 특이하고 역사적으로 독창적인 영토적 공간의 배열이 국제정치에 있어서 근대
성의 중심적인 속성을 이뤄왔다”. 그런데 근대성과 탈근대성을 보다 객관적이고 역사적으로 접근
하기 위한 시도로서의 시공간적 배열에 대한 관심은 단지 국제정치학적인 것이 아니라 탈근대성
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기도 하며, 이는 탈근대성의 문제에 천착하는 가장
대표적인 맑스주의 저자들인 제임슨(Frederic Jameson)이나 하비(David Harvey)등의 성과와도 공명하
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자본주의적 시공간 구성에 대한 관심은 특히 국가간 체계가 처음 등장
하면서 서구의 근대사가 시작되는 르네상스로까지 확장된다는 점에서 국제정치적인 주제에 상당
한 정도로 근접하게 된다는 것이다(Ruggie 1993: 143-148; 인용은 144).


더구나 계몽주의적 이상이 실현되는 장으로서의 근대 서구의 시민 사회(civil society)도 시공간
적으로는 언제나 이러한 영토적 근대 국가의 시공간성에 종속되어왔다는 지적도 있다. 근대 시민
사회의 “개념의 출현은 [근대] 국가의 형성과 주어진 영토 내에서의 정치 권력의 집중화와 연결
되어 있었다”(Kaldor 2003: 31). 자본주의의 역사를 연구한 브로델(Fernand Braudel)은 근대 국가의
성립, 특히 폭력 수단의 영토 내적 독점의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쨌든 결과가 중
요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국가가 강한 주먹을 휘두르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내적인 평화, 도
로의 안전, 시장과 도시에 대한 상품 보급의 안정성 확보, 외적으로부터의 보호, 끊임없이 이어지
는 전쟁의 효율적 수행을 보장하는 것이다. 내적인 평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Braudel 1996:
740).


슈미트는 전후의 후기 저작들에서 국제법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정치이론과 근대 국가
가 확립된 유럽의 고전주의 시대 사이의 상관 관계를 강조하였는데, 그는 이를 통해 우리가 앞서
살펴본 저자들과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는 그 자신이 1971년에 출간된 『정치적인 것의 개념』
의 이탈리아어 판에 붙인 서문에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반세기동안 유럽은 세계정치의 중심으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상실해왔다. 나의 학문
적 저작들은 이 반세기 동안에 걸쳐 생겨났다. (...)유럽의 폐위는 유럽의 국가들에
의해 어려운 사유과정 속에서 형성된 특유한 개념의 동요를 의미한다. 국가와 주
권, 헌법과 법률, 합법성과 정당성과 같은 개념들이 이에 속한다. 이 개념들은 신학
적이고, 철학적이며, 또한 법학적인 사고의 기나긴 공생관계의 산물이다. 이들은 본
질적인 요소로서 서양의 합리성에 속하고, 체계적으로 숙고된 유럽 공법에서 정점
에 이르며, 그것과 함께 가라앉는다. 그것은 “고전적” 개념들이다. (1971: 270)48)


이러한 그의 생각은 강한 유럽 중심주의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
의 1963년 판 서문에서 “국가간의 전쟁에서 유럽의 국제법은 그 보기 드문 진보”를 이루었으며
“역사적으로 식민지전쟁이나 내전만을 겪어온 다른 민족들이 그러한 발전을 어떻게 이룩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963a: 11-12/14). 여기서 슈미트가 말하는 진
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유럽 공법의 국제법(Völkerrecht des Jus Publicum Europaem)에 의해 달성된 “유럽의 전쟁에 대한 한계설정과 제한”을 의미한다(1950: 151). 즉 이는 “국가적인 형태의 전쟁에 의
한 내전의 극복”을 지칭하며(1950: 152), 또한 문명에 의한 야만성의 배척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
에서 슈미트는 유럽의 고전적 국제질서와 식민주의적 팽창주의를 구별하려 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은 식민주의의 혐의”를 받고 있지만, 그러한 “손쉬운 단순화는 단지 겉으로만 그럴 듯할
뿐”이라고 반박한다(1971: 270). 하지만 그러한 혐의와 그에 대한 반박 중 어느 것이 옳은가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슈미트 자신이 인정하는 것처럼 보다 명백한 것은 유럽의 국제법적 합리성이
이룩한 ‘진보’라는 것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역사적인 인식이다. 그것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라 ‘몰락’이다. 고전적―슈미트에 의하면 이 “고전적이라는 것은 분명하고 명백한 구별의 가
능성”(1963a: 11/13), 즉 무엇보다도 전쟁과 평화, 정상상태와 비상사태의 구별 가능성을 말한다―
합리성에 의해 유럽의 외부로 추방되고, 유럽 내에서의 국가간의 전쟁으로 제한되었던 “비상사
태”는 더 이상 그러한 방식으로 한정될 수 없었다. 포이커트(Detlev Peukert)가 관찰한 바 ‘고전적
근대성’(classical modernity)의 결정적인 위기의 징후인 “나치즘의 폭력은 유럽 내부의 “정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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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슈미트가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고전적인 유럽 근대 사상과의 연결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또한 그 자신이 나치에 협력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과오를 ‘중립화’하기 위해 전후에 자신의 저작들의 보다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강조하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라
는 그 자신의 의도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슈미트의 전후 활동과 그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소개는
Bendersky 1987: 274-287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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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특히 식민지 전쟁에서 나타났던 행위와 태도들이 파시즘의 대두와 함께 주변으로부터 중
심으로 이동하면서 출현한 것일 뿐이다”(Peukert 1982: 61-62).


2.2.3. 근대국가와 국가간 체계의 변화
국가와 주권, 그리고 정치에 관한 사회과학에서의 기존의 논의는 거의 언제나 명시적으로든
아니든, 베버(Max Weber)의 유럽 근대 국가에 관한 정의를 ‘공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버의 유명한 정의에 따르면 중세 이후에 유럽에서만 출현한 근대적인 정치 조직으로서
의 ‘국가’란 ‘한정된 영토 안에서의 물리적 폭력에 대한 정당한(legitimate) 독점’을 행사하는 것으
로 파악된다. ‘정당한 물리력의 사용’은 국가에 ‘특유한 수단(specific means)’이며, 이를 통해서만
국가라는 영토적 정치단체는 다른 조직과 구별된다. 하지만 이는 결코 ‘물리적 수단’이 국가의
유일한 수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국가가 그것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
하자면 국가는 물리적 폭력 사용의 정당성의 유일한 원천인 것이다. 요컨대, 정당한 물리력의 사
용이 국가에 의해 독점된 영토 내부에서 어떤 다른 집단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는 물리력의 사
용이 정당성을 갖는다면, 그 정당성은 그것을 사용하는 집단 자체가 원천이 되는 정당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국가로부터만 나온다는 점을 베버는 지적한다(Weber 1978: 54-56, 901-954;
Weber 1994: 310-311). 그런데 물리적 강제력과 정당성 사이에 존재하는 순환논리는 베버의 정의
가 학문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적용되는 정도만큼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예
를 들어 국가에 관한 베버적 관점을 대표하는 사례중 하나라고 할만한 만(Michael Mann)의 연구를
살펴보자. 그의 연구는 베버의 국가에 관한 정의에서 주장되고 있는 폭력 사용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를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회피하려는, 최근의 국가 연구에 있어서의 어떤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는 베버의 국가에 관한 정의에서 제도와 영토에 관한 부분과 물리적 폭력 수단의 독점과
정당성의 관계의 부분을 분리시키면서 후자가 국가를 군사력에 등치시키는 학문적 혹은 정치적
경향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최소화하려 하고, 이를 국가의 군사적 기능의 문제
로만 환원시키려 한다(Mann 1984: 186, 188, 196).49)


이와 달리 호프먼(John Hoffman)은 베버의 유럽 근대 국가에 관한 정의에서, 특히 물리력과 정
당성의 관계가 가지는 문제적(problematic) 성격―호프먼의 말에 따르자면 “모순으로서의 국가(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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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만이 단지 근대 국가와 전쟁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그에게 있어서 전쟁과의 본질적
인 관계를 갖는 것은 국가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인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이는 뒤에서도 보게 될 찰스
틸리(Charles Tilly)의 전쟁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경제적 설명과 친화력을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해서는 Tilly 1975, 1985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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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e as Contradiction)”―을 자신의 연구의 중심에 놓는다. 그는 앞서 잠시 살펴보았던 만의 경우와
는 달리 베버의 국가에 관한 정의에서 물리적 폭력 수단의 합법적 독점과 행사라는 부분이 보다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며, 국가에 의한 물리력(force)의 동원이 정당성(legitimacy)의 기반을 침식시키
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호프먼의 시각에 따르면, 유럽 근대 국가에 있어서의 ‘내적 정
당화’와 ‘외적 수단’의 결합은 이미 자기 모순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베버의
문장에 보다 충실하게 말하면 ‘근대 국가는 물리적 폭력 수단의 정당한 독점을 성공적으로 주장
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완전하게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Hoffman 1995). 게다가 베버 자신이 유럽 근대 국가로 표현되는 근대성(의 정치적 구조)이라
는 것이 시공간적으로 매우 제한적인 현상임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50)


틸리(Charles Tilly)는 베버의 근대 국가에 대한 정의를 전제하고 근대 국가와 폭력, 즉 전쟁간
의 본질적인 관계에 주목한 가장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호프먼이 제기한
폭력과 정당성의 문제를 근대 국가를 분석하는 가장 중심적인 틀로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전쟁
은 국가를 만든다”. 그리고 “국가는 전쟁을 만든다”(Tilly: 1975: 42; 1985: 170). 특히 폭력 수단의
독점 현상과 정당성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분석을 제공한다. 틸리에 따르면 근대 초
기의 관점에서 정당한 무력과 정당하지 않은 무력은 사실상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이때에 정당
성의 문제는 국가의 무력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주어진 영토 내에서의 무
력의 독점을 심화시켰고, 이러한 “폭력 수단의 독점의 경향은 정부가 보호를 제공한다는 주장을
(...) 보다 신뢰할만하고 저항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그 후에 정당한 폭력 행사와 그렇지 않
은 폭력 행사의 구분이 명확해지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그 과정에서 국가의 군대는 상대적
으로 “일체화되고 영구화(unified and permanent)”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국내적 무력 독점과 평
화 정착은 국제관계에 있어서 전쟁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국제관계로서의 전쟁”이 성립하
게 되었다(Tilly 1985: 171-173, 184-185; 인용은 172, 173, 184).


지금까지 살펴본 국가이론가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베버의 근대 국
가에 대한 정의와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국가와 정치, 혹은 국가와 정치적인 것의 관계를 연속적
인 시각에서 역사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 이론가들이 현대의 국가간 체계를 대부
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가와 정치간의 관계의 변형에 대해 말할 기회가 없는 것도 사실
이다. 하지만 이들의 근대 국가의 역사에 관한 연속적인 시각은 특히 틸리에 의해서 명확하게 드
러나는데 그는 국제연맹, 국제연합과 유럽 근대 국가 체계간의 차이를 단지 양적인 것으로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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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베버는 예를 들어 근대국가의 법체계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공법(公法)과 사법(私法)간의 구분이 시공간적으로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가능했던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히 이러한 구분은 대륙법, 특히 독일법의 전통과 관련된다(Weber 1978: 641, 661 2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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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고 한다(Tilly 1985: 185). 따라서 크게 보아 ‘신베버주의적(Neo-Weberian)’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
한 국가이론들과 슈미트의 정치이론은 근대국가와 정치가 폭력에 대해 갖는 본질적 관계에 대해
서는 공통의 입장을 취하지만 그러한 이론를 역사적 맥락에 대해 비추어볼 때,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이들 국가이론가들은 어찌 보면 여전히 슈미트가
바이마르 시대에 행했던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들은 여전히 국가적인 것과 정
치적인 것을 동일시한다.


우리는 국가 자체의 역사와 국가에 관한 이론사에 있어서의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학설이 갖는 위치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유럽 근대 국가의 국가간 주권 체계(의 역
사적 변동)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련의 국제정치 이론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
이론은 앞서 살펴본 정치사회학적 분석들과는 달리 심각한 단절은 아니더라도 분명 국가간 체계
의 변화를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분석의 유리한 점은 근대 국가를 단지 하나의
국가로만 다루는 국내적인 구조의 모델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간 체계 전체를 모델로 고려한
다는 점에 있다.


대부분의 이론가들이 국가와 주권을 여전히 ‘주권 국가’라는 형태로 동일시하는 한계를 보이
거나 주권을 국가와 구분할 때에도 뚜렷한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는 사실에도 불
구하고 이들간의 주목할만한 공통점은 정치사회학자들이 근대 정치와 폭력 수단간의 본질적인
관계를 강조하였듯이 유럽의 근대 국가의 주권 체계는 영토적 상호 배타성으로 그 성격이 규정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는데 있으며 또한 지금의 국제체계의 영토적 배열이 어떤 변형의
과정 중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논의는 앞서 우리가 다룬,
근대성을 특수한 형태의 시공간적 배열로 보는 관점과 접점을 갖게 된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
과 관점에서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변형, 혹은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근대 유럽의 국가간 체계와
현재의 전지구적인 국가간 체계의 차이―심지어는 국가와 주권간의 적은 정도이지만 나타나기
시작한 불일치에 대해서까지―를 이론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특히 이들 이론가들의 연구의 성과
가 보여주는 공통적인 결론이란 첫째로 국가들의 영토적 상호 배타성의 약화이며, 둘째로 현재의
국가간 체계가 보여주는 엄격한 의미에서의 유럽의 근대 국가간 체계의 모델로부터의 이탈이
다―물론 이론가들마다 이탈의 정도나 그 기준에 있어서는 견해의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Krasner 1999; Ruggie 1993; Sassen 1996, 2000).


이러한 세계질서상의 변화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슈미트에게는 ‘국가성 시대의 종말’로 귀착
되는 것인데, 1920년대 초반의 저작들로부터도 이와 같은 변화의 진행이 관찰된다. 그런데 우리
가 고전적 주권의 이론가로 간주할 수 있는 슈미트의 경우를 검토해 볼 때 이러한 변화가 거의
불가역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며, 이 점이
슈미트를 다른 유럽 근대 국가의 이론가들로부터 구분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신성동맹과 오늘날의 국제연맹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로 간주되는 것은 국제연명이
회원국의 단지 외적인 현상(status quo)을 보장하고 그들의 국내 문제에 있어서의 간
섭(intervention)은 억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주제적인 정당성이 간섭으로 유도될
수 있는 동일한 논리를 가지고, 마찬가지로 인민의 자결권에 호소함으로써 간섭이
정당화 될 수 있다. (...) 헌법이 부과되고 따라서 민주적 원리들이 침해되면 인민의
자결권은 회복될 수도 있고, 이는 정확하게 간섭을 통해 일어난다. 이와는 대조적
으로 간섭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자결의 회복, 즉 압제로부터의 인민의 해방
은 어떤 방식으로든 불간섭의 원리를 침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간섭의 원
리의 선결조건을 창조할 수 있을 뿐이다. 근대의 국제연맹조차도 정당성의 개념을
필요로 하는 민주적 기초에 근거하며 이런 결과로 이것이 법률상의 기초로 삼고
있는 원리들이 손상을 입을 때, 또한 간섭의 가능성을 필요로 한다. (1923a:
40/30-31)


즉 인민의 자결권의 원리는 결코 불간섭주의, 즉 엄밀한 의미의 국가주권의 영토적 배타성을
성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적극적인 간섭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것이 슈미트가 20
년대 초에 관찰하고 있는 바이다. 그리고 이는 슈미트 자신이 ‘정치적 평등’과 ‘정치적 자유’라고
부르는 민주적 원리들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정치적 평등’은 ‘인민의 동질성과
동일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보편적인 인간평등”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외국인을
배제하는데, 다른 영역에서가 아닌 정치적 영역, 즉 정치적 의지의 형성에의 참여를 배제함을 의
미한다(1928: 226-227). 그리고 이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의해 적과 동지의 구분과 일치하게 된
다. 하지만 이렇게 국제 정치적 상황의 변화와 적과 동지의 구분의 결정의 접점에서 우리는 슈미
트의 정치적이고 이론적인 입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는 고전적인 주권 이론과 그에
상응하는 유럽의 국제법 질서의 옹호자로 여겨지는 슈미트 자신의 이론들이 ‘과연 얼마나 이러한
고전적인 모델들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데 대한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홉스의 보
호와 복종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언급할 때조차 그것을 국내적 수준에 한정시키기보다는 국제정
치적 수준으로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51) 즉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주권 국가의 이론가인
슈미트가 스스로의 원칙을 부정하면서까지 역사적인 변화에 편승하게 된다는 사실이며, 이는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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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만약 한 국민이 정치적 생존의 노고와 위험을 두려워한다면, 그 때에는 바로 다른 국민이 그 대신에
이 노고를 없애주고 “외적에 대한 보호”와 함께 정치적 지배도 인수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보호와
복종이라는 영원한 관련에 의해서 보호자가 적을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1963a: 53/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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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슈미트의 이론적인 일관성의 결여로 해석되기보다는 이러한 역사적 경향의 현실성으로 이해
되어야 할 것이다.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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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특히 슈미트가 이후에 국제질서와 관한 광역(Großraum)사상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먼로주의(Monroe Doctrine)가 중요한 모델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변화에 대한 슈미트 자신의 편승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보호와 복종”의 원리와 광역사상, 그리고 먼로주의간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Schwab 1989: 52-53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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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체국가와 총력전


3.1. 목적에 대한 수단


3.1.1. 정치와 기술
슈미트에 관한 중요한 비판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독일의 철학자 칼 뢰비트(Karl Löwith)는
전후에 쓴 글에서 막스 베버와 칼 슈미트를 비교하면서 슈미트의 이론에 있어서 매우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우리는 보다 구체적인 1920년대와 30년대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사에서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지칭하는 현실을 살펴보기에 앞서 슈미트에 대한 뢰비트의 이러
한 평가를 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 그것의 자율성에
대해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뢰비트는 1964년에 쓴 평론에
서 슈미트의 『중립화와 탈정치화의 시대』를 참조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슈미트는 자신을 트뢸치(Troeltsch), 베버(Weber), 좀바르트(Sombart), 라테나우
(Rathenau), 그리고 셸러(Scheler)에 의해서 특징 지워진다고 생각하는, 그에 앞선 세
대와 명확하게 구별(...)[한다]. 한 세대 이전의 사람들은 모두 유럽의 니힐리즘과 압
박해 오는 몰락의 분위기 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불안을 슈미트는
이미 공유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그 불안은 근대 기술의 대규모적인 도구주의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하기에는 「자신의 힘에 의문이 있다」는 점에 오로
지 기인하였기 때문이다. 경제나 기술은 그것이 중성적이기 때문에 바로 매우 다
양한 목적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이다. (...) 따라서 슈미트의 물음은 다음과 같이 된
다. 즉 어떠한 정치가 기술을 수단으로서 이용하고, 그것에 「최종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 충분한 힘을 가질 수 있는가 라고. (Löwith 1964: 305; 국역본에서 인
용; 강조는 인용자)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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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뢰비트는 이미 1935년에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칼 슈미트의 기회원인론적 결정주의(Der okkasionelle Dezisionismus von Carl Schmitt)」를 발표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슈미트의 결정주의와 정치신학을 슈미트 자신이 비판한 낭만주의의 기회원인론적 성격과 결과적으로 동일한 것이 된다는 비판을 전개한다(Löwith 1935). 이러한 뢰비트가 전개한 비판의 논리는 슈미트에 대한 비판의 한 전형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앞서 살펴본 Herf 1984의 경우 뢰비트와 완전히 동일한 논리에서는 아니지만 슈미트에게 유사한 비판을 가한다. 이러한 비판, 즉 슈미트가 결과적으로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추구를 통해 자신이 비판했던 낭만주의의 타락한 형태로 전쟁을 이상화하게 된다는 논리는 이론적으로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여러 사람들을 통해 되풀이된다는 사실은 분명 슈미트의 사상에 대한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봐야하며, 이는 우리의 슈미트의 비판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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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뢰비트의 슈미트에 대한 특색 있는 오해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이해하고, 또한 그
것의 역사성을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확인할 앞으로의 논의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그의 부분적인 오해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한편으로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
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목적-수단 관계의 중요성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와 기술이 “중성적이기 때문에” 바로 그런 이유에서 “다양한 목적”
에 대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술을 통해 뢰비트는 슈미트에 대한 독
해라기보다는 목적-수단 관계에 대한 자신의 입장, 혹은 해석에 더 가까운 어떤 것을 말하고 있
다.


(...) 기술의 중립성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영역[신학, 형이상학, 도덕, 경제]의
중립성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기술이란 것은 항상 오로지 도구와 무기일 뿐이며,
기술이 모든 것에 쓰인다는 바로 그 때문에 기술은 중립적이지 못하다. (...) 문화생
활의 여러 영역에 대한 지속적인 중립화의 과정은 기술에 다다름으로써 그 끝에
이르게 되었다. 기술은 더 이상 저 중립화과정이라는 의미에서의 중립적 토대가 아
니며, 모든 강력한 정치는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1929b: 90, 94/108, 112)


여기서 슈미트가 강조하는 것은 기술만의 고유성이다. 우선 기술만이 다른 영역들과는 달리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신이나 도덕적 당위, 경제적 이익은 순수한 정치적 목적이 될 수
는 없을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목적으로 고려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수단으로는 고려될 수 없
다. 이에 반해 슈미트가 기술에서 보는 것은 바로 수단으로서의 고유성인데, 우선 우리는 뢰비트
가 말하듯이 “수단”이라는 표현으로부터 슈미트가 기술의 ‘도구적 합리성’이나 ‘기능주의’적인 측
면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인데, 왜냐하
면 슈미트가 보기에 현대의 기술적인 “장치는 (...) 그것이 모든 기술, 특히 현대적 기술이니 만큼,
인간 지성의 산물과 인간의 숙련의 산물을 단순하게 죽어버린 것, 영혼이 빠진 것으로 치부해 버
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기술에 대한 신앙과 기술 자체와를 혼동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슈미트가 보기에 ‘기술성(Technizität)’은 ‘기술(Technik)’ 자체와는 달리 “아마도 사악하고 악마
적인” 것인 “반종교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언정 결코 그 자체가 “기계적”이거나 “기술적”인
것, 즉 이른바 도구적 합리성의 기술에 대한 관점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1929b: 93/111).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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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맥코믹(John P. McCormick)은 슈미트의 바이마르 시기의 정치․법이론 저작들을 독해함에 있어서 기술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구분을 중심적인 전제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특히 McCormick 1993b,
McCormick 1997a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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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중립적이지 못한 이유는 기술이 목적과 합리성의 영역들이었던 신학, 형이상학, 윤리, 경
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 전체와 관계를 갖는 정치(국가)에 대해 완전히 낯선 어떤 것이기 때
문이다. 이들 영역은 무엇보다도 “의사가 소통되고 합의와 상호 설득이 가능한 중립적 영역”으로
유럽인들은 여기에서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일치와 공통된 전제의 발견을 희망”하였
다(1929b: 88, 89/106, 107). 따라서 막스 셸러(Max Scheler)는 기술의 영역에서도 그러한 “평화와 이
해와 화해의 영역”을 보고자 했다. 그러나 기술은 경제가 19세기의 ‘중립적 권력(pouvoir neutre)’과
중성국가(stato neutrale)라는 나름의 자유주의적인 정치형태를 산출했던 것처럼 자신의 영역으로부
터 특유의 평화를 가져오는 정치형태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기술적인 것의 고유한 본성으로부터
는 (...) 중립에로의 결단이 나오는 일은 없다. (...) 따라서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순수한 기술로부터
는” 정신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대표하는 “성직자(Clerc)”도 “정신적 지도자”도 “특정 정치체계의
형태”도 도출될 수 없다(1929b: 90-91/108-109). 여기서 강조하건대 슈미트의 기술관은 기술이 정치
(대표)에 대해서 단지 수동적인 측면, 혹은 맹목성만을 가진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에 따르면 기술은 정치에 대해 대립적이고 신학과 종교에 대해 파괴적이기 때문에 순수
한 기술적 사고의 원리에 기초한 사회란 불가능하거나 자기파괴적이 된다. 그가 보기에 기술성이
극도로 발휘되는 사회가 자기파괴적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사고가 그것과 결합되
어 있었기 때문이다(1923b: 42). 그의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 혁명에 의해 수립된 소련에서는 순수
한 기술적 사회가 아니라 기술성이 경제적 사고와 “슬라브 기질”이라는 민족적 ‘신화’와 결합하
여 “절대군주시대의 국가보다도 더욱 국가적이고 더 강도 높게 국가적이라 할 하나의 국가가 탄
생하였다는 것이다”(1929b: 79, 80/97, 98).56) 따라서 슈미트는 다음의 구절에서 단지 수단으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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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나치에 동조한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또한 전후에 발표한 기술에 관한 고찰에서 슈미트와 매우 유사한 생각을 보여준다. “기술은 그 기술의 본질과 같은 것이 아니다. (...) 기술의 본질도 기술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술적인 것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데에만 급급하여 그것에 매몰되거나 (그것을) 회피하는 한, 기술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 우리는 어디서나 부자유스럽게 기술에 붙들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는 기술을 중립적인 것으로 고찰할 때이며, 이 경우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기술에 내맡겨진다”(Heidegger 1962:
15; 인용은 국역본, 강조는 인용자).
56) 슈미트가 보기에 소련은 단지 경제적-기술적인 사고의 합리성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민족(nation)의 신화와 결합함으로써 성립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소련은 단지 형식적이고 기계적이며 생명력 없는 “기술적인 국가(technological state)”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소련은 “기술성의 국가(technicist state)”가 되었다(McCormick 1993: 128). 게다가 슈미트의 관점에서는 사실상 ‘기술 자체의 생명력(Technizität)’때문에 기술적인 국가란 한낮 합리주의적인 유토피아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내란이나 반란에 의해 곧 파괴될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정치형태로서의 국가일 수는 없다(1937a: 147/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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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봉사할 수 있는 “다양한 목적들”을 단순히 열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기술적 발명은 엄청난 대중지배의 수단이 된다. 라디오가 나오자 방송권은
독점되고, 영화가 나타나자 검열이 생긴다. 자유와 예속에 대한 결정은 기술로서의
기술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혁명적이고 반동적일 수 있으며, 자유와 압제
에 봉사할 수도 있고, 집중화와 탈집중화일 수 있다. (1929b: 91/109-110; 번역수
정)
57)


여기서 슈미트가 제시하는 가능성들에 대한 서술은 열거라기보다는 양자택일에 가깝다. 기술
은 슈미트의 현실주의적인 개념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수단이 되거나 그것에 반대되거나 둘 중
에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현실의 모든 기술은 목적에 대한 수단이어야 하며 그 자체가 목적의
영역을 구성하지 못한다. 여기서 목적-수단 관계의 고유한 논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러한 논리
가 정치와 폭력에 대한 관계규정에 있어서의 목적-수단 관계의 논리와 동일한 것으로 보이기 때
문이다. 전쟁, 혹은 파괴적인 폭력이 그 자체로 목적의 영역을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이론이
나 법학이론은 불가능할 것이다. 언제나 폭력은 수단으로서만 고려되는데, 슈미트는 이러한 관계
를 기술에 대해서도 적용한다. 물론 이는 도구적 합리성에 의해 제안이 되고 있는 바이기는 하
다. 하지만 도구적 합리성이나 기능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기술이 필연적으로 수단화되어야 한
다는 논리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 때에는 ‘다양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적절한 수단
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게다가 오히려 목적으로서의 ‘형식’은 수단적 ‘내용’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무관심하기 때문에 목적-수단 관계의 특유성은 단지 형식과 내용(실질)의 구분의 형이상학적인
전제로는 파악될 수 없다. 이미 앞서 우리가 검토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관념은 형식과
실질의 관계로만은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형식-실질의 이원론의 한계에 목
적-수단 관계라는 현실주의의 가장 중요한 명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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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슈미트는 같은 의도를 가지고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술은 쾌적함에 봉
사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같은 정도로 위험한 무기와 도구의 생산에 봉사한다. 그 진보는 그 자체로서
18세기에 진보라고 생각한 인도적, 도덕적 완성을 성취하지 못한다. 기술적 합리화는 경제적 합리화의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정신적 분위기는 오늘날 19세기의 이러한 역사해석으로
충만하여, 적어도 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정식과 개념들은 오래된 적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살
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1963a: 75/9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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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정치와 폭력
막스 베버는 특히 정치와 폭력 사이에 성립되는 목적-수단 관계를 매우 분명히 지적한 것으
로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정치 단체―그에게는 특히 근대 국가를 의미하는데―의 목적들의 영역
은 “그것의 활동의 내용적 측면에서 사회학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Weber 1994: 310; 강조는 인
용자). 즉 정치적 목적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나열될 수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수단들의 영역으
로 나아가는데, “물리적 폭력”은 “모든 종류의 자율적인(selbständig) 지도 활동”들로부터 진정으로
현실적인 정치를 구분시켜주는 기준이 된다(Weber 1994: 309, 310). 따라서 베버는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폭력이 수단으로서 알려져 있지 않은 그러한 사회 구성체들만이 존재할 경우 ‘국
가’의 개념은 사라질 것이며, (...) ‘무정부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는 그러한 조건들
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폭력은 당연히 국가에 의해 행사되는 정상적이거나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에 특유한 수단이
다. (Weber 1994: 310)58)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수단으로서의 폭력’이란 일상적인 어법에서의 단순한 ‘폭
력적 수단’과는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수단으로서의 폭력’은 오히려 정치에 의한
“폭력의 정당한 독점”과 관련된 어떤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수단으로서의 폭력’이 존재하지 않
으면 국가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 때에는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상태, 혹은 홉
스의 ‘자연상태’가 이를 대신하게 될 것인데, 그런 상태는 결코 폭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
가 아니라 그 반대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적에 대한 수단은 단지 ‘어떤’ 목적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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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슈미트의 다음과 같은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에 대한 해석의 논리는 베버가 보여주는 정치와 폭력간의 목적-수단 관계와 동일한 선상에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슈미트는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정식인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해 지속되는 정치이다’를 해석하면서 앞서 우리가 본 뢰비트의 목적-수단 관계에 대한 해석에 반대한다. 그에 따르면 “전쟁은 그[클라우제비츠]에게 있어서 「정치의 단순한 도구」이다. 사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정치의 본질인식에 대한 전쟁의 의미는 그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히 검토된 것은 아니다. 그밖에도 정밀하게 고찰하면 클라우제비츠에 있어서 전쟁은 많은 도구 중의 어떤 하나가 아니라 적과 동지의 결속이라는 「최후 수단」(ultima ratio)인 것이
다”(1963a: 34 10n/41 10n/34 14n; 강조는 인용자). 그리고 이는 정치적인 것을 독점하려는 국가의 목적이 기술적 수단과 맺게되는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슈미트에게 있어서 기술은 앞서 본바와 같이, 폭력과 마찬가지로 정치와 종교에 대해 맹목적이며 파괴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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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단이 아니라 언제나 그 자체가 ‘목적’일 수밖에 없는 자율적인 정치에 대한 ‘고유한’ 수단이
라는 특수한 관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1921년에 발표한 『폭력 비판을 위하여(Zur Kritik der Gewal
t)』라는 짧은 논문에서 폭력에 대한 기존의 비판논리가 필연적으로 빠지게 되는 딜레마를 지적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목적-수단 관계의 고유한 성격과 논리를 밝혀주
고 있다.59) 그가 보기에 “법질서에서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목적과 수단의 관계라는 점은 명백하
다. 더 나아가 폭력은 우선 목적들의 영역이 아니라 수단들의 영역에서만 탐구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명백하다”(Benjamin 1921: 139). 여기서 ‘법질서’란 단지 좁은 의미에서의 합법성(Legalität)의
체계만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보다 넓게 정당성(Legitimität) 자체, 그리고 나아가 슈미트가 정의하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합법성을 유일한 정당성의 유형으로
보는 법형식주의(legal formalism)나 규범주의에 있어서 폭력적 수단, 혹은 물리적인 강제는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최소화되기 때문이다.60) 그가 보기에 법질서와의 관계에서 수단으로서의 폭
력의 대한 기존의 비판은 두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한편으로 목적의 정당함과 부당함에 호소하
는 자연법적인 비판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수단의 적법함을 기준으로 폭력을 비판하는 법
실증주의의 관점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벤야민이 보기에 이 두 가지 입장은 자신이 시도
하려는 폭력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의 출발점이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자연법과 법실증주의는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목적은 정당화된 수단을 통해 성취될 수 있고, 정당화된 수단
은 정당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데에 서로 일치하며 따라서 “자연법주의는 목적들의
정당성을 통해 수단을 ‘정당화’하려하고, 법실증주의는 수단들의 정당화를 통해 목적들의 정당성
을 ‘보증’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순환논리를 구성한다(1921: 140-141). 벤야민은 또한
베버와 마찬가지로 “수단”으로서의 폭력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목적에 의해 다양한 목표(나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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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벤야민이 1930년에 독일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작가인 에른스트 윙어가 편집한 『전쟁과 전사(Krieg und Krieger)』에 대한 비판적인 서평의 형식으로 쓴 『독일 파시즘 이론(Theorien des deutschen Faschismus)』에서 전개하는 파시즘에 대한 비판 논리는 허프에 의해서는 슈미트에 대한 비판 논리로 차용되는 등 파시즘 비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헌으로 간주된다(Herf 1984).
60) 하지만 법질서를 보장하는 의미에서의 “정당한 강제력”의 행사의 가능성은 법형식주의에 있어서도 결코 완전히 배제될 수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보비오(Noberto Bobbio)는 켈젠(Hans Kelsen)의 법학 이론에서의 ‘법적 강제(legal power)’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의 법이론이 결국 홉스의 명제인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을 만든다(auctoritas, non veritas facit legem)”는 원리를 완벽하게 반박하지는 못하며 따라서 그러한 원리에 따르게 된다는, 암묵적으로 베버와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에 대한 분석의 논리에 친화력이 있는 논의를 전개한다(Bobbio 1998). 홉스와 켈젠의 이론적 관계와 이에 대한 슈미트 측의 비판에 대해서는 Dyzenhaus 1994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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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위해 동원되거나 선택될 수 있는 수단들 중 하나라는 생각은 목적-수단 관계의 본질을 파악하
지 못하는 관점이라고 반박한다. “(...) 폭력을 독점하려는 법의 이해관계는 법적 목적들을 보존하
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법 자체를 보존하려는 의도에 의해 설명된다(...). 곧 법의 수중에 있
지 않을 때의 폭력은 그것이 추구할 수도 있는 목적들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법의 바깥에 현존
한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법을 위협한다”(Benjamin 1921: 144). 즉 벤야민의 주장을 그 자신의 관
점과는 반대되는 입장에서 본다면―즉 홉스와 베버, 슈미트의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폭력
은 그 자체로는 어떤 법․정치 질서를 창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존재자체가 그러한 기존
질서에 대해 위협이 되기 때문에 질서 그 자체의 보존이라는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 질서 내
부에 속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가 정치적 의도(politische Absicht)와 목적(Zweck)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표면적으로는 목적 그 자체를 국가가 달성하려는 정책적 목표와 혼동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수단 관계의 핵심을 누구보다도 잘 보여주고 있다.61)
특히 그는 목적-수단 관계가 추상적인 것이기는 하나 목적 자체가 추상적이고 무제한적일 수 있
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 정치적 목적이 전제적 입법자일 수는 없다. 정치적 목적은 그 수단의 본질에
순응해야 하며, 때때로 그 수단에 인해 정치적 목적이 변화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목적은 언제나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 모든 개별적인
경우에 야전사령관은 정치의 방향과 의도가 전쟁 수단과 모순되지 않도록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요구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지만 어떤 개별 경우의 정치적 의도
를 한정하는데 그칠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의도는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이기 때
문에 목적이 없는 수단은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Clausewitz 1998: 54-55).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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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레이몽 아롱은 클라우제비츠가 정치적 의도로서의 목적에 대해 서술하기 위해 “국가 정신의 표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를 통해 클라우제비츠가 단지 좁은 의미의 내각에 의해 결정되는
정책이 아니라 현대의 이론가들의 용어를 빌면 “국익(national interest)”과 같은 보다 총체적이고 추상적인 대상을 지칭하려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Aron 1976: 374-375). 여기서 레이몽 아롱이 말하는 ‘국익’을 그대로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과 등치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국익의 개념은 이미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2) 이에 대한 주석으로는 Aron 1976: 91을 참조. 아롱에게는 따라서 목적과 수단의 관계는 차라리 변증법적인 것이다. 벤야민은 정치적 의도나 목적 대신에 법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서술을 하고 있지만 목적과 수단 관계에 대한 비판의 출발점은 정의롭거나 그렇지 않은 목적에 대한 판단만을 내리는 자연법적 관점보다는 수단들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접근을 하는 법실증주의(혹은 아마도 정치적 현실주의)에 있다
고 본다(Benjamin 1921: 1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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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정치의 수단으로서의 전쟁이란, 곧 정치에 의한 순수한 파괴 행위의 극복이다. “그러
므로 정치는 압도적 파괴 요소로 구성된 전쟁을 하나의 간단한 도구로 만든다. (...) 정치는 전쟁
을 간단한 도구로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의 수단화는 필연이자 당위인데 왜냐하면 “전쟁은
자신의 고유한 문법을 갖고 있지만 고유한 논리는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은 정치의 도
구가 아닌 순수한 상태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언제나 “전쟁은 정치적 행동”이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 만일 전쟁이 완전하고 방해받지 않는 행동이며 폭력의 절대적 표현이라면, 전쟁은 발
생하는 순간부터 정치와는 완전히 독립된 것으로서 정치를 대신하게 될 것이며, 정치를 밀어내고
오직 고유의 법칙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마치 지뢰가 설치 시에 조작된 작용 방향 외의 다른 방
향으로 폭발하지 않는 것과 같다”(Clausewitz 1998: 411-412, 53-54). 그런데 우리의 논의는 여기에
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역사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러한 정치와 전쟁의 목
적-수단 관계의 전도라고 불리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3.1.3.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
클라우제비츠와 베버에 관한 중요한 주석서들을 남긴 레이몽 아롱은 “목적과 수단의 개념이
그 형식적 성격 때문에 추상화의 최고 수준에서 발견”되는 것이지만 그 관계가 여전히 현실적이
며 따라서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클라우제비츠의 공식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
가 보기에 현재의 상황은 클라우제비츠의 공식 자체에 의해서보다는 그 공식의 전도에 의해 더
잘 이해되는 것 같다(Aron 1976: 93, 373). 클라우제비츠의 공식에 대한 전도는 특히 전쟁과 기술
이 초래하는 정치적 효과의 불확실성의 증대와 관련된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19세기에 시작된
것인데, 다음에서 박상섭이 내리는 그에 대한 평가는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가 갖는 역사적인 중
요성과 정치사상에 있어서의 위기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 모든 군사적 행동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절제되거나 완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쉴리펜 플랜이 실천에 옮겨지는 과정을 보면 (...) 군사계획에 따라 정책방향
자체가 규정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 따라서 정책이 기술적 합리성에 전적으
로 복종해야 하는 비합리적 결과를 낳게 되었다. 바로 이 점은 (...) 근대 산업기술
의 발전과 전쟁수행 방식 사이의 교호작용이 만든 사태가 갖는 역사적 또는 정치
이론적 의미 중 가장 심대한 것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섭 1996: 273)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정치와 전쟁의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라는 이러한 역사적인 변화에
대한 서술은 우리의 연구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가 일어난 후에도 전쟁은 여전히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인’ 전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는 것이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점이며, 그것이 슈미트를 비판하기 위한 우리의 논의 핵심사항
이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우리가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도 발견하였던 용어상의 어려
움과 동일한 어떤 것이다. 특히 클라우제비츠 자신에게서도 이러한 가능성은 논리적으로 추적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 동기와 긴장이 약할수록 군사적 요소의 자연적 성향, 즉 폭력성은 정
치가 제시한 방향과 일치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 경우 전쟁은 자연적 성향으로부터 더
크게 이탈될 수밖에 없으며 정치적 목적은 이상적 전쟁의 목표와 더욱 차별성을 띠고 전쟁은 정
치적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게 된다”. 그러나 이는 목적-수단 관계의 가능한 한 극이다. 이와 반
대 방향의 극에서 전쟁과 정치는 서로 일치되는 경향을 띤다. “전쟁의 동기가 크고 강하며 그것
이 교전국 국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전쟁 이전의 긴장이 폭력적일수록, 전쟁은 그 자체
의 추상적 형상에 더욱 가까워진다. 따라서 적의 타도가 더욱 중요해지며 군사적 목표와 정치적
목적은 더욱 일치하게 되고, 전쟁의 군사적 성격은 더욱 강해지는 반면 정치적 성격은 약화된다”
는 것이다(Clausewitz 1998: 55).63) 특히 슈미트를 따라서 클라우제비츠를 읽을 때, 정치는 곧 적과
동지의 구분이기 때문에 목적-수단의 관계가 전도된 전쟁에 있어서도 적과 동지는 여전히 구분되
고 그에 대한 결정은 언제나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본래의 공식과
전도된 공식간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전도된 공식이 지칭하는 역사적 현실에서는 더 이상 정
치적 목적이 전쟁을 제한하고 그 폭력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총력전은 현
실로 닥친 이러한 애매한 상황을 지칭한다. 따라서 목적-수단 관계(와 그 전도)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은 앞으로 전체국가와 총력전의 문제에 있어서 슈미트의 이론을 평가하고 비판하는데 중요
한 기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슈미트의 목적-수단에 관한 논의는 이러한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라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대응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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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전쟁론』의 다른 부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전쟁이 정치의 일부라면 전쟁은 정치적 성격을 띤다. 정치가 웅대하고 강력할수록 전쟁도 그러하며, 이러한 성격은 전쟁이 절대적 양상을 띠는
수준까지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Clausewitz 1998: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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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체국가


슈미트의 전체국가의 개념, 즉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그가 주장한 정치적 기획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될 수 있다. 한편으로 전체국가는 국가의 정치적 정당성과 기술―특히 그 중
에서도 여론 형성과 관련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과의 관계의 측면을 지니며, 다른 한편으로는
“합법성과 정당성”의 문제, 즉 법학과 정치학의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측면을 살
펴보는데 있어서 목적과 수단의 관계, 특히 수단이 목적을 넘어서는, ‘관계의 전도’는 가장 중요
한 역사철학적 전제가 될 것이다.


전체국가는 슈미트에게는 근대 국가라는 정치 질서가 당면한 역사적인 현실64)이며, 동시에
슈미트 자신에 의해 주장되고 정당화되는 정치적 기획이다. 슈미트에게 전체국가라는 상황이란,
국가와 사회가 상호 침투하여 양자가 구분할 수 없게 됨으로써 사회 전체가 국가적이거나, 국가
전체가 사회적일 수 있을 두 가지 가능성만을 허용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것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것이 적어도 가능성으로서는 정치적”이다(1963a: 24/27/22). 여기서는 자본
주의도 더 이상 사적인 경제로만 남을 수 없다. “(...) 국가에 구속되지 아니하는 (비정치적인) 경
제와 경제에 구속되지 아니하는 국가라는 공리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1963a: 26/29/25). 따라서
국가의 조직은 경제적 “자유”가 아니라 경제에 대한 국가의 “계획”을 향해 나아가며, 이러한 변
화는 “의회제적인 입법국가”로부터 “행정국가”로 이행해가는 경향과 일치한다(1932: 266/18/6-7).
전체국가로의 이러한 전환은 유럽 근대 국가의 역사로 볼 때, “17․18세기의 절대적 국가로부터
자유주의적 19세기의 중립적 국가를 거쳐 국가와 사회가 일치하는 전체적 국가”로 이르는 변증
법적인 삼 단계의 발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슈미트에게는 더욱 필연적인 경향으로 인식된다
(1931: 79/111).


특히 바이마르 독일의 현실에서 볼 때 전체국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슈미트는 생각했
다. 하지만 아직 바이마르의 공화국의 국가는 온전한 전체국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바이마르 독
일의 국가 현실과 같은


이러한 종류의 전체국가는 순수하게 양적인 의미에서, 단순한 부피의 의미에서 전
체적인 것이며, 강도와 정치적인 에너지란 의미에서 전체적인 것은 아니다. 독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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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슈미트에게 현실로서의 전체국가, 즉 국가와 사회의 상호침투의 완성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전체국가라는 것은 존재한다. “전체국가”를 야만적, 노예적,
또는 비독일적, 비기독교적이라고 하여 울분을 풀 길이 없다는 매도의 소리를 높여서 거부할 수도 있지
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국가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말살되지 않는다”(1933b: 183/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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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다원적 정당국가는 이러한 종류의 전체국가를 발전시켰다. 그 부피는 놀
라울 정도로 확대되어 있다. (...) 오늘날의 독일 국가는 약체여서 요구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것이며, 정당과 조직적인 이익추구자들이 쇄도하는 데도 저
항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것이다. (1933b: 187/268)65)


하지만 슈미트가 보기에 독일의 정치 현실과는 달리 이탈리아에서 수립된 파시스트 국가는
그가 “질적인 전체국가”라고 부르는 것의 현존하는 모델이다. “질적인 전체국가”란 단지 “전체적”
일 뿐만 아니라 “특히 강력한 국가”로써 “질과 에너지란 의미에서 전체적”이며 그런 의미에서 스
스로의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있는 그러한 국가이다. “국가이론가는 훨씬 이전부터 정치적인 것
은 전체적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색다른 것은 단지 새로운 기술적 수단이라는 것뿐이다. 우리들
은 이 수단이 초래하는 정치상의 영향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1933b:
186/267). 여기서 우리는 슈미트의 논리를 추적하여 우선 전체국가라는 상황에서의 기술적 수단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3.2.1. 대중 민주주의 시대의 국가와 기술
이미 우리는 슈미트가 정치와 기술에 대해 현실주의의 중심명제인 목적-수단의 관계를 적용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전체국가의 상황에서 정치적인 것의 주체로서의 국가가 장악
해야 하고, 이를 통해 보다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새로운 기술적 수단’은
바로 “여론형성(Meinungsbildung)”의 기술이며, 특히 1920년대와 30년대의 국가에게 그것은 바로 라
디오와 영화에 대한 정치적 장악을 의미한다(1933a; 1933b). 여기서 슈미트는 의견의 자유와 검열
에 관한 바이마르 헌법 118조를 참조하고 있다.66) 특히 그는 영화에 대해서 이미 1928년에 헌법
에 관한 저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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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이러한 슈미트의 양적 전체국가에 관한 비판은 사회에 대해 개입적인 복지국가(interventionist welfare state)에 관한 미국의 신보수주의 세력들의 비판과 논리적 유사성을 지닌다. 이에 대해서는 Scheuerman 1999: 85-86을 참조.
66) “바이마르 헌법 제118조 제1항. 모든 독일인은 일반법률의 제한 내에서 언어, 문서, 출판, 그림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자기의 의사를 자유로이 표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어떠한 노동관계나 고용관계도
이 권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이 권리의 행사에 대하여 이를 저해하여서는 안 된다. 제2항.
검열은 실시하지 않는다. 다만, 영화에 대해서는 법률로써 규정을 둘 수 있다. 또한 저속한 문서와 음란
문서를 단속하기 위하여, 공개적인 관람물과 흥행물에 관하여는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하여 법률상의 조
치가 허용된다”(1992: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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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가지는 정치적 문제는 상당히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어떠한 국가라 하더라도 이 강력한 심리기술적 도구를 통제
하지 않은 채로 방치할 수는 없다. 국가는 그것을 정치로부터 격리하여 중립화해
야 한다.―즉 정치적으로 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비록 국가가 그것을 사회
심리적인 동질성을 통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할 용기는 없다고 하더라도 실
제로는 현존의 질서에 봉사하게 해야 한다. (1928: 168/190; 번역수정, 강조는 인용
자)

기술은 수단으로서 장악되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기술상의 가능성이 제고되었다고 하여 그
것이 그대로 정치권력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권력 수단
의 기술이 개발됨으로써 새로운 공격, 저항, 권력의 기반약화, 그리고 사보타지가 발생할 수 있다
는 이유에서 기술상의 가능성이 고양되는 것은 곧 정치권력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
다”(1933a: 367/234).67) 즉 기술적 수단의 발전이란 그에게 있어서는 국가에 의해 정치적으로 장악
되지 않을 경우에는 반드시 국가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는 예외상태의 잠재적인 증대를 의
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여기서도 우리가 앞서 본 기술 수단에 대한 슈미트의 양자택일의 관
점이 드러난다. 이러한 새로운 여론형성의 기술 수단들은 이전의 출판이나 인쇄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68) “기술적 수단이 고도화함으로써 특히 대중에게 영향을 미
칠 가능성, 실로 필연성마저 생기고 있다. (...) 어떠한 자유주의 국가도 정보전달, 대중에 대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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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여론형성 기술”을 정보기술이라는 보다 현재적인 의미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해 볼 때, 최근의 정보기술의 확산과 국가의 주권이나 정당성간의 관계에 관한 연구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지구화(globalization)와 결부된 이러한 연구들은 국내적으로든 국제적으로든 정보기술의 확산은 어떤 형태로든 기존과는 다른 정치적 정당성으로의 변형을 이끌면서 기존의 국민 국가의 정당성과 주권의 침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Castells 2003: 367-418; Creveld 1999: 377-394; Held, McGrew, Goldblatt & Perraton 1999: 517-589를 참조.
68) 이는 크레벨드(Martin van Creveld)에 의해 지적되는 1800년의 이전과 이후의 기술의 성격의 변화를 통해 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1800년 이전의 기술과 이후의 기술을 구분해주는 것은 기술의 “네트워크”적, 혹은 “체계”적인 성격이다. 1800년대 이전의 기술은 근대 국가에 대한 충실한 수단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수단들은 근대 국가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고 “따라서 국경 내부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데 있어서 정부들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1800년대 이후의 기술―철도, 전신, 전
화 등―은 그 체계적 성격 때문에 국경을 초월하거나 이러한 국경을 자신의 “장애물”로 만들었다
(Creveld 1999: 378). 1800년대, 특히 산업혁명 이후의 기술의 이러한 체계적 성격은 전쟁과 관련하여 기
술을 단지 기술적(혹은 기계적)인 것으로만 이해할 수 없게 하는 결과, 즉 정치적으로 예측하기 힘든 기
술 자체의 “자의적이고 우연적인” 효과의 원인이 되어 왔다(Creveld 1991: 311-320). 우리가 여기서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크레벨드와 슈미트가 공유하는 기술에 대한 현실주의적 관점―기술이 인간의 필요한
목적에 대해 봉사하는 수단일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은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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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대중에 대한 암시, 그리고 “여(öffentlich)”론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집단적인 의견의 형성에 대
한 이러한 새로운 기술상의 수단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불가능한 형편이다”(1933b:
186/266-267).


이제 우리는 슈미트에게 있어서 여론, 혹은 공론(öffentliche Meinung; public opinion)이 어떤 구
조를 가지는지를 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공론의 의미를 파악
하는 일은 그의 민주주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인민의
‘동질성’이 ‘동일성’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조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렇다고 해서 결코 그의 이론이 (형식적 민주주의론과 대립된다는 의미에서의) 실질적이거나 직접
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로 귀결된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가 특히 의회주의에 대해 비판
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오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슈미트의 비판은 의회주
의가 단지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의회가 더 이상 전체 인민을
대표하는 주권의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슈미트는 그런 이유에
서 의회제적 대표를 이익에 대한 ‘대리(Vertretung)’로 격하시키면서 진정한 의미의 인민의 정치적
통일체에 대한 전체적인 ‘대표(Repräsentation)’와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928: 311/339). 의
회제적인 대표는 공적인 원리(공개성)와는 대립되는 비밀투표의 원칙이나 비밀회의, 비밀협정과
같은 관행 때문에 더 이상 정치적(=공적) 성격을 가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슈미트는 국민이 직
접 결정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론도 거부한다. 실질적 민주주의의 현대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는
국민투표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슈미트는 국민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것
이 아니라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주어진 의제에 대해 수동적으로 가부만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
에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는 무능력하다고 본다.69) 게다가 그는 그러한 국민 의사형성의 원리들이
‘갈채(acclamation)’에 근거하여 형성된 의사에 비해 보다 더 민주적이라는 근거가 없다고 본다.70)
따라서 슈미트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합의는 진정한 권력을 가져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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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이 점에서 슈미트의 민주주의 이론은 오히려 형식적 민주주의론에 있어서도 최소주의적 정의로서의 절차적 민주주의만을 합당한 정치제도로 보는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엘리트적 민주주의 이론과 상당한 유사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슘페터와 슈미트의 정치이론의 친화성에 대해서는 Scheuerman 1999: 183-207을 참조.
70) 사적인 비밀원칙에 의해 의회제적 대표가 공적인 성격을 잃고 의회에서의 결정이 공적 영역 외부에서 이뤄지게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1923: 50/39; 1928: 208-209/228-229, 국민투표의 한계에 대해서는 1928: 277/302-303; 1932: 339-340/126/89, 인민의 민주적 의사형성으로서의 ‘갈채’에 대해서는 1926: 23/16; 1928: 277/302-303; 1929a: 111/159; 1933a: 370/238을 참조하라. 베버의 카리스마적 권위의 유형으로서의 대중적 ‘갈채’에 관한 분석에 대해서는 Weber 1978:1125-1127을 참조. 베버는 이 때 대중의 갈채에 의한 지도자의 선출을 근대적이지 않은 것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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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있어서 “안정된 권력”이야말로 “국민의 가장 확실하고 가장 진정한 합의”의 조건이며 이
러한 안정된 권력은 영화와 방송과 같은 당시의 새롭고 효과적인 기술 수단을 장악한 질적 전체
국가와 같이 독자적인 적과 동지의 구분의 능력을 갖는 강한 국가권력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이
다(1933a: 370/238).71) 즉 ‘부르주아 공론장’ 혹은 시민사회의 매개 없이 국가가 시민들을 직접적
으로 “동원”하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슈미트에게는 곧 민주주의를 의미한다.72)


3.2.2. 합법성과 정당성
이제 우리는 기술적 수단의 ‘강도’의 증가에 따른 정치적 목적에 대한 초과 현상을 슈미트에
게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법학-정치학적 범주인 예외상태의 문제와 결부시켜 검토해야 할 것이
다. 우리가 새로운 여론 형성 기술과 관련하여 살펴본 전체국가의 측면에 있어서 그러한 기술적
수단은 국가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장악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런데 독일에 있어서 이러한
전체국가의 실현에 가장 중요한 장애물이 되는 것은 이른바 국내적인 ‘전체정당(totale Partei)’들이
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73) 특히 이러한 정당들이 전체국가와 대립하게 되는 것은 국가가 목표
로 하는 바이며 동시에 국가 자체를 의미한다고 까지 할 수 있는 ‘정치의 독점’을 자신들의 수중
에서 수단화하려 한다. 즉 각 정당들의 정파적 목적을 위해 헌법적 제도들과 권한을 전술적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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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발터 벤야민은 이러한 슈미트의 정치적 기획과 역사적인 경향에 비추어볼 때 정치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한 영상기술상의 발전을 묘사하고 있다. “(...) 재생산기술에 의한 전시방법의 변화는 정치에 있어서도 그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오늘날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위기는 통치자의 전시를 결정하는 조건의 위기를 포괄한다. 민주주의는 통치자를 무매개적으로 통일된 인격 속에, 대표자들 앞에 전시한다.
[이 때] 의회는 관중(Publikum)이다! 촬영기구의 혁신은 연설자의 연설을 수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하고 그리고 곧 이어 볼 수 있게 하였기 때문에, 정치가를 이러한 촬영기구 앞에 내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로써 의회는 연극무대처럼 황폐화되었다. 라디오와 영화는 전문적인 연기자의
기능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통치자들처럼 라디오와 영화 앞에서 직접 자신을 연출해야만 하는 사람
들의 기능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 그 결과 새로운 도태작용, 즉 그것으로 인해 스타와 독재자가 승리
자로 부상하는 카메라 앞에서의 도태작용이 일어났다”(Benjamin 1939: 491 20n/216 13n; 번역 수정).
72)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 양자에 관한 슈미트의 입장은 그의 ‘대표성(Repräsentation)’에 관한 이론을 통해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정치의 원리로서의 대표성과 동일성 모두를 고려하면서 절대적인 대표성(홉스)이나 절대적인 동일성(루소)만으로는 어떤 정치형태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슈미트에게 있어서의 대표성과 동일성의 원리에 대해서는 1928: 204-220, 276-277/224-241, 302; Pasquino 1988을, 절대적 대표성의 전형인 홉스의 대표 이론에 대해서는 Pitkin 1967:14-37을 참조.
73) “자세히 관찰해 보면 오늘날 독일에서 전체국가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다수의 전체 정당이 존재한
다”(1933b: 187/268-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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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여기서 목적으로서의 정치가 정파들의 목적의 수단이 되는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가 관찰된다고 할 수 있다. 슈미트는 오토 쾰로이터(Otto Koellreuter)를 참고하여 이들
정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 [이러한] 오늘날 정당은 예전의 자유주의적인 의견정당(Meinungspartei)과는 다른
것이다. 오늘날의 정당은 (...) 행동주의 정당(aktivitische Partei)이며, 이 정당은 언론
에 부여된 자유주의적인 자유를 이용하여 모든 법적 가능성, 즉 자유주의적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다양한 제도와 권한을 자기의 행동수단으로서 냉혹하게 구사하며,
지금까지의 자유주의적 정당에게 이러한 파괴적인 헌법변천을 억지로 강요하고 있
다. (1933b: 188/269-270)


스스로의 목적을 가지고 선거와 언론과 같은 모든 합법적인 제도를 수단화하는 이러한 정당
들에 의해 초래되는 상황은 국가가 정치를 독점하는 가운데 유지될 수도 있는 단순한 다원주의
와는 다른 극단적인 분열을 의미한다. 따라서 독일에는 하나의 국민이 아니라 “다섯 개의 상이한
국민만이 생겨난다”(1933b: 189/271)고 슈미트는 생각한다. 이러한 합법성 자체의 수단화는 ‘초합
법성(Superlegalität)’이라는 슈미트의 『합법성과 정당성(Legalität und Legitimität)』(1932)에서 전개된
개념 분석과 연결된다.74)


이 논문에서 그는 의회주의와 그것이 근거로 하고 있는 정당성의 유형인 합법성의 문제에 비
판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그는 1923년에 형식적 민주주의자들에게 있어서도 필요에 따른
독재는 불가피하며,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든 실질적인 민주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독재의 딜레마’의 논리―즉, 민주주의를 이용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항하
여 민주주의를 보호하고 또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자체를 중단 시켜
야한다는 역설(1923: 37/28)―를 더욱 정교화 한다. 그에 따르면 “합법성”과 그에 따라 도출되는
“정권 획득의 기회 균등”의 원리는 우선 수단과 목적의 관계가 전도되어 합법성 자체가 정치적
목적을 갖게 되는 “초합법성”의 문제를 낳는다. 즉 합법적으로 정권을 획득한 다수가 더 이상 하
나의 정파가 아닌 합법성 자체를 자신의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합법성 체계에 의해 완전히 배제
된 것이라고 생각되는 “예외상태”, 그리고 적과 동지의 관계를 다시 국내적으로 도입하게 된다는
것이다(1932: 283-293;44-58;27-36). 이는 곧바로 앞서 살펴본 ‘전체정당’에 대한 분석과 연결된다.
즉 국내정치 관계에서의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 혹은 국가로부터의 정치적인 것의 이탈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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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현대 기술의 발달은 현대 국가의 권력수단을 끊임없이 증대시킨다. 기술의 발달은 마침내 모든 합법
적인 권력장악에 입각하고 있다는 정치적인 프리미엄을 보강하며, 마침내 합법적 권력은 합법성 자체를
초월해 버린다”(1933a: 369/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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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헌법이 정치적인 것을 장악하는 정당들의 목적에 대한 수단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슈미트가 보기에 근대 법치국가의 정당성 유형인 합법성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거
나 “헌법수호”를 위해서라도 결코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것으로만 남아 있을 수는 없다. 특히 슈
미트는 바이마르 헌법이 절차법적 성격의 1부와 기본권을 보장하는 실체법적 성격의 2부로 구성
되어 있기 때문에 합법성만을 정당성의 원천으로 삼는 입법자는 이 바이마르 헌법의 2부에 근거
하여 단지 형식적이지 않은 “실질에 의거하는 특별입법자(außerordentlicher Gesetzgeber ratione
materiae)”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전체정당들에 의한 ‘초합법성’, 혹은 ‘정치적 잉여가치(politische Merhwert)’의 실현에 대항할 수
있는 진정한 ‘정당성’은 그러나 이미 제정된 헌법을 통해 보장되는 “실질적 특별입법자”의 정당
성이나 국민투표적 정당성, 즉 “주권에 의거하는(ratione supremitatis) 특별입법자”의 정당성은 아니다.
이러한 초합법적 정당성에 대항하여 인민의 정치적 통일체를 전체적으로 대표75)할 수 있는 정당
성의 담당자는 바이마르 헌법 48조76)의 2항에 의해 “명령을 공포하는 라이히 대통령(...)이다. 라
이히 헌법이 제48조에서 라이히 대통령에게 부여한 비상권한들 가운데, 법률, 그것도 라이히 법
률에 대신할 법규명령권이 포함된 것은 오늘날에서는 이론 없이 승인되고 있으며(제48조 5항에
예정된 시행령의 발포까지는 무한정 그대로 이다), 제48조 제2항의 잠정성에 실정법적 내용을 부
여한다”(1932: 319/97/67). 또한 라이히 대통령은 바이마르 헌법 42조77)에 따라 “헌법을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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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바이마르 헌법 제41조. 제1항. 라이히 대통령은 전체 독일 국민이 선출한다. 제2항. 만35세 이상의 모든 독일인은 피선거권을 가진다. 제3항. 상세한 것은 라이히 법률로 정한다”(2000: 242).
76) “바이마르 헌법 제48조 제1항. 란트가 라이히 헌법이나 라이히 법률에 따라서 그에게 부과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 라이히 대통령은 병력을 사용하여 그 의무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다. 제2항. 라
이히 대통령은 독일 라이히 내에서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중대한 장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에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처를 취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병력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목적을 위하여 라이히 대통령은 잠정적으로 제114조, 제115조, 제117조, 제118조, 제123조, 제124조
및 제153조에 규정된 기본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할 수 있다. 제3항. 본조 제1항 또는 제2항에 의하
여 실행한 모든 조치에 대하여 라이히 대통령은 지체없이 라이히 하원(Reichstag)에 보고하여야 한다. 라이히 하원의 요구가 있으면 그 조치는 효력을 상실한다. 제4항. 급박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각 란트
정부는 그 영역 내에서 임시로 제2항에 규정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 조치는 라이히 대통령이나 라이
히 의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그 효력을 상실한다. 제5항. 상세한 것은 라이히 법률로 정한다”(2000:
243).
77) “바이마르 헌법 제42조 제1항. 라이히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라이히 하원에서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나의 힘을 독일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바치고 그 이익을 증진하며 그 장해를 제거하고 라이히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여 양심에 따라 나의 직무를 다하고 누구에 대해서도 정의를 다할 것을 선서합니
다.” 제2항. 선서에 종교상의 서약을 부가할 수 있다”(2000: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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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선서한다(1931: 159/218). 요컨대 라이히 대통령은 민주주의적 대표의 원리와 예외상태에 있어
서 “법률을 대신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와 경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의미와
는 반대로 강한 중립적 권력―“대립하는 집단을 포함하는, 따라서 이 모든 것의 대립을 자기 속
에서 상대화하는 통일과 전체성의 표현으로서의 중립성”(1931: 114-115/159)―이라고 할 수 있다
(1931: 118-119/164-166). 슈미트가 보기에 이러한 라이히 대통령의 독재권에 대하여 반대하여 합
법성만을 유일한 정당성의 유형으로 인정하는 한, “가치와 진실에 대해서 중립의 다수기능주의라
는 허구는 곧 무너(...)[지고,] 결국은 진실의 보복을”(1933: 345/133/94)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슈미트의 경고는 바로 자유주의 정치이론에 대한 그의 전형적인 비판 논리에 근거하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거부나 추방의 노력이 새로운 양상의 보다 강력한 전쟁으로 발전하게 될 것
이라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슈미트는 예외상태에 대한 인식과 조치를 완전
히 배제하는 ‘합법성’의 정당성 체계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예외상태를 추방하려는 노력 그 자
체―여기서는 특히 ‘다수결(majority principle)’과 정권획득에 대한 ‘기회균등’의 원리― 때문에 보다
강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예외상태를 창출하고 또한 그것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다.


이러한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라이히 대통령은 바로 슈미트의 ‘예외를 결정하는 주권자’라는
생각에 일치하는 제도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살펴본 주권과 예외상태의 관계가 라
이히 대통령의 역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이다. 슈미트의 주권론을 비합리적인 정치이론이
라고 보려는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48조 2항에 의해 통치하는 라이히 대통령을 카리스마적 지도
자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곧 정확하지 않은 관점임이 드러난다.78) 이러한 사실은
바이마르 헌법에서의 라이히 대통령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막스 베버와 칼 슈미트의 관점을 비
교해 봄으로써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79) 특히 베버와 슈미트는 공통적으로 법률적 근거
가 없거나 의회의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외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과 독일 국민 전체에 의해 선출되는 대표자라는 사실에서 라이히 대통령의 권한의 정당성을
도출한다. 다만 베버의 경우 대통령이 의회에 대해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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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슈미트는 라이히 대통령이 뛰어난 자질이나 지식, 덕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헌법의 수호자’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한 지도자의 속성은 슈미트의 동일성과 동질성으로서의 민주주의 원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 바이마르 시대의 저작들에서 나타나는 라이히 대통령의 독재권에 대한 슈
미트의 지지는 달(Robert Dahl)의 분류에 따른 ‘수호자주의(guardianship)’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달의 수호자주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 대해서는 Dahl 1999: 112-165를 참조.
79) 바이마르 헌법 제정 과정에서 막스 베버는 라이히 대통령에게 보다 강한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주장은 완전히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Caldwell 1997: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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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는 것이 슈미트와의 결정적인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80) 이렇게 볼 때,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대통령의 역할은 그 기능에서 유래하는 것이지 지도자의 카리스마적인 권위와 관
련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제도적으로 볼 때 바이마르 헌법 48조의 독재권은 대통
령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각, 수상과 결부되어 있다.81) 오히려 인격화된 권한으로 대통령에
독립적으로 ‘입헌독재(Constitutional Dictatorship)’권이 있는 것은 미국의 대통령제의 경우이다
(Rossiter 1948). 사실상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에 이루어진 연방하원(Reichstag)의 해산82)은 힌덴부르
크 대통령에 의해 독자적으로 행사된 것이 아니라 라이히 수상인 브뤼닝(Heinrich brühning)과 폰
파펜(Franz von Papen)에 의해 이뤄졌다.83)


3.2.3. 바이마르와 제3제국 사이에서
우리는 이제 전체국가라는 형상의 이론적이고 제도적인 논의를 역사적인 맥락에 비추어 해석
하고 평가해야만 한다. 이는 특히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과 제3제국의 등장의 원인을 둘러싼 기
나긴 논쟁과 관련된다. 또한 역사적인 실체로서, 혹은 개념적인 틀로서의 파시즘, 나치즘, 그리고
전체주의의 문제와도 깊숙히 연결되어 있다.


1940년대의 프란츠 노이만(Franz Neumann)과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뒤의 이언 커쇼(Ian
Kershaw)에 이르기까지 제3제국, 즉 나치 국가의 권력 구조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분석을 시도한
학자들은 공통적인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 권력체라는 것이 기존의 다른 정치체들
을 분석하는데 동원한 정치학적이거나 역사학적인 ‘합리적’ 틀로는 쉽사리 그 구조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이만은 나치 독일에는 어떠한 정치이론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자체를
국가(‘리바이어던’)라고 봐야할 지에 대해서마저 의구심을 표현했고, 커쇼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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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라이히 대통령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베버의 논의는 Weber 1994: 304-308를 참조.
81) “바이마르 헌법 제50조. 라이히 대통령의 군사력에 관련된 것까지를 포함하는 모든 명령과 법령들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라이히 수상과 해당 국무위원에 의해 연서(Gegenzeichnung)되어야 한다. 연서에 의해 책임성이 보장된다”(2000: 244; 번역수정)
82) 1930년 7월 16일, 1932년 6월 4일, 1932년 9월 12일에 라이히 하원이 해산되었다. 이 중에서 헌법 48조에 의한 해산은 1930년 7월 16일의 라이히 수상 브뤼닝에 의한 것이다. 의회의 해산에 대해서는 바이마
르 헌법 제25조에 규정되어 있다. “바이마르 헌법 제25조 제1항. 라이히 대통령은 라이히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 다만, 동일한 사유에 의한 해산은 1회에 한한다. 제2항. 총선거는 해산 후 60일 이내에 실시한
다”.
83) 이에 대해서는 Kaes, Jay & Dimendberg 1994; McComick 2004: xvi-xxiii; Rossiter 1948: 50-60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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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나치즘에 대한 적당한 설명은 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까지 말했던 것이다(Neumann
1944; Kershaw 1985: 5).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기존의 틀만을 가지고 접근할 때에 생기는 어려
움을 말하는 것이라고 판단되며, 따라서 그것이 이러한 어려움을 나치 국가가 전혀 이해될 수 없
는 대상이라는 식으로 과장할 근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우리의 관심은 나치 국
가의 정치와 구조 자체를 파악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역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슈미트
의 전체국가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 하는 점에 있다.


전체국가와 나치 국가의 권력 상황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전체주의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연구 중 하나로 꼽히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여기서 아렌트는 나치즘(국가사회주의), 파시즘,
전체주의, 그리고 볼셰비즘까지에 대한 구분의 기준을 갖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정치
운동에 있어서의 본질적 요소―특히 파시즘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겨지는―를 지적하고 있다.


국가사회주의와 볼셰비즘은 결코 새로운 정부 형태를 선언하거나 자신들의 목표가
권력의 장악과 국가 기구의 통제에 의해 달성되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의 지
배에 대한 생각은 (...) 끊임없이 운동하도록 유지되는 운동[그 자체]에 의해서만 달
성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 폭력적 수단에 의한 권력의 장악은 그 자체로 목적
이 아니며 단지 목적에 대한 수단이며 (...) 운동의 종결[목적]은 아니다. 운동의 실
천적인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운동의 틀 안에서 조직화해내는 것이며,
그들을 끊임없이 운동하도록 하게 만들고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며 운동의
목적[끝]을 구성할 정치적 목표란 단순히 존재하지 않는다. (Arendt 1958: 326)


아렌트의 이런 지적에서 물론 볼셰비즘이나 스탈린주의 국가가 나치당의 이데올로기이나 나
치즘 국가에 대해 갖는 차이는 분명히 인식되어야 한다. 노이만이 보기에 국가사회주의는 볼셰비
즘과 달리 이론이 완전히 부재하며, “영구혁명”과 같은 생각도 거부한다. 히틀러가 보기에 영구
혁명이란 정치가들의 끊임없는 권력 투쟁이며, 이는 인종, 정치, 경제 생활의 통합을 저해한다는
것이다(Neumann 1944: 39, 65).84)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이만은 국가사회주의 권력체에 대해 아렌
트와 전반적으로 유사한 서술을 보여준다. 노이만이 관찰한 바 국가사회주의는 “국가주권의 개
념”에 대해서도 반대하였다. 노이만이 보기에 “국가사회주의는 우리가 이해하는 바의 사회 이론,
즉 사회의 작동과 구조, 발전에 관한 일관된 청사진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국가사회주의는
수행하고자 하는 지향점이 있었고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선언들을, 계속해서 바뀌는 일련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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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국가 형태로서의 스탈린주의 정부는 나치 정권만큼 사회에 깊숙이 침투하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지적 되어야할 중요한 차이점이다(Kershaw 198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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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로 조정하였다. (...) 국가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권력이
대통령의 손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요구로부터 성장”한 전체주의 국가의 사상―한때 자신의 스승
이었던 칼 슈미트의 이론이 대표적인 예이다―은 나치당의 국가권력 장악과 체제의 정착에 있어
서만 어떤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언제
나 국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기 때문이다(Neumann 1944: 38-39, 47, 65). 월린(Richard Wolin)
은 슈미트의 이론이 국가사회주의를 어떻게 정당화하였는가에 관심을 보인다. 그는 우리가 살펴
본 아렌트와 노이만 등을 인용하면서, 슈미트의 이론을 비합리적인 정치이론이라고 비판한다
(Wolin 1990). 월린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보수적 지식인들의 파시즘 운동에 대한 관심
이나 동조 현상은 독일에 특유한 것이며 따라서 연구되어야 할 중요한 현상임에는 틀림없다. 하
지만 홉스봄(Eric Hobsbawm)의 지적처럼 “그러한 이론가들은 파시즘의 구조적 요인이라기보다는
장식적 요인이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당한 판단일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서, 국가사회주의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종주의와 반유태주의는 이탈리아 파시즘 운동의 경우에는 처음에
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요소였다는 사실(Hobsbawm 1997: 166-168, 인용은 167)도, 슈미트의 권
위주의적 정치이론과 파시즘․나치즘과의 관계를 살펴볼 때 간과할 수 없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슈미트의 전체국가에 관한 이론은 분명 그 자체로는 국가주의적이거나 권
위주의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슈미트가 제안한
정치적 대안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그 자신이 비판하려 했던 입장들과 구분될 수 있으며, 또
한 현실적인 것이었는가에 있다. 예를 들어 영화나 라디오와 같은 기술 수단을 국가가 정치적으
로 장악하여 이용하게 될 때, 그것이 슈미트 자신이 비판하는 정파들의 공적이지 않은 “선전
(Propaganda)”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구별하기 힘들어 질 것이다.85) 『합법성과 정당성』의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슈미트의 “초합법성”의 개념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나치당의 합법적 집권을
설명해줌으로써 그 자신의 이론적 성과를 지지해주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외상태에 따
른 ‘특별입법자’로서의 라이히 대통령의 48조 2항에 의한 통치라는 슈미트 자신의 대안이 과연,
나치에 의해 바이마르 헌정질서 자체가 중단된 1933년 3월 23일의 조치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일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실제의 국가사회주의, 그리고 보다 넓게는 파시즘 운동 일반―슈미트 자신이 질
적 전체국가의 모델로 간주한 이탈리아 파시즘 국가까지를 포함하는―이 국가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간주하였다는 점에서 차라리 슈미트 자신이 전체정당이라고 명명한 권력의 장악과 행
사에 가까웠다는 점, 그래서 국가사회주의 국가는 슈미트가 칭송한 ‘리바이어던’이 아니라, 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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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경제적 권력지위의 유지 내지 확장을 위하여 수행되는 전쟁은 선전의 힘으로 “십자군”이 되며, “인류의 최후 전쟁”으로 될 것이 틀림없다”(1963a: 77/93/79;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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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내전상태’를 지칭하기 위해 도입한 상징인 ‘베헤모스(Behemoth)’에 더 가까웠다는 노이만의 결
론(Neumann 1944: 459-476)에 동의한다면, 슈미트가 통찰한 ‘국가성의 쇠퇴’라는 역사적인 변화에
의해 그 자신의 권위주의적 기획이 진정 ‘반동적인’ 것으로 현실화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비현실
적인 것으로 밝혀지게 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즉 슈미트 자신 또한 결국 ‘진리의 복
수’를 피할 수 없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요컨대,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획과 그것이
직면한 정치․사회적 파국 사이에 합리적인 구분의 기준을 갖지 못하였으며, 단지 ‘주권적 결정
의 권위’에 의해서만 ‘예외상태’를 극복한다는 ‘정치신학’적 원리로 되돌아갈 뿐이다.


3.3. 총력전


총력전이라는 역사적 현실은 슈미트의 이른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과 전쟁의 관계를 가늠
하면서 그의 개념들에 대한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비판을 하기 위한 우리의 출발점이다. 슈미트에
대한 기존의 비판들은 분명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있어서 전적으로 그릇된 관찰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판들은 “계몽”과 “반계몽”, 혹은 “합리성”과 “비합리성”과 같
은, 이론에 대해 외적이고 또한 그 역사적 실체 또한 분명치 않은 기준들(2.2절)을 그 자신들의
비판 논리의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정치와 전쟁의 관계라는 핵심적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슈미트는 나치 정권 하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전체국가와 총력전의 관계에 어떤 필연성을 부
여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파시즘의 “전체국가” 이론은 국가라는 측면으로부터 그
것[총력전의 전면적인 성격]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한 결합은 한 쌍으로 된 개념의 짝을 만들
어 내었다. 즉 전체국가(totaler Staat)와 총력전(totaler Krieg)이라는 개념의 짝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체국가와 총력전은 “전면적인 적에 의하여 그 의미가 결정된다”(1937b: 235, 236/337, 339). 이미
벤야민이 분석했던 것처럼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의 경험은 독일의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전
쟁에 대한 절대화를 추구하는 관념적 보수주의의 양상으로 표출되었는데, 이는 슈미트와 관련이
있는 작가인 에른스트 웡어(Ernst Jünger) 등으로 대표된다.86) 이러한 사조가 총력전에 대한 독일
의 지적 분위기의 어떤 부분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총력전이 독일의 보수
적 지식인들의 지적 산물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통해서 총력전은
교전국 모두가 관련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들 교전국들의 “(...) 정부주도 전시계획경제들―총
력전에서 이는 모든 전시 경제들을 의미했다―중에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제1차 세계대전 시
의 영국과 프랑스, 제2차 세계대전 시의 영국과 심지어는 미국―의 전시경제가 합리적이고 관료
주의적인 행정의 전통을 갖춘 독일보다 훨씬 우월한 것으로 드러난 것은 기묘한 역설이
다”(Hobsbawm 1997: 72).


근대 전쟁사에 있어서의 극적인 전환점은 클라우제비츠도 관찰하였듯이 “프랑스 혁명”이었다.
프랑스 혁명은 ‘적의 완전한 괴멸’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18세기까지의 전쟁에 대한 제한을 제
거해 버렸다. 혁명으로 인해 국가는 전국민의 힘을 가진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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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벤야민이 1930년에 관찰한 바 윙어와 같은 독일의 우익 민족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전쟁에서의 승패의
의미는 “승자는 전쟁을 유지하고 패자는 전쟁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전쟁에서의 패배와 함께 “현실
적인 적”이 사라지자 이들은 패배를 “내면적인 승리”로 왜곡하려 하였고, 그 결과 “예술을 위한 예술”
이라는 낭만주의적 원칙이 전쟁에 적용되어 전쟁이 절대화된다(Benjamin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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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쟁 수행은 로마 제국이 그 절정기에 할 수 있었던 이후에는 그 어떤 국가도 하기 힘든 것
이었다(Creveld 1999: 244-245). 프랑스 혁명에 따른 ‘국민개병’의 도입과 함께 19세기부터 시작된
기술상의 발전은 전쟁을 체계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변화시켰으며, 이러한 새로운 조직기술에
의해 1830년 이후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장치들도 이 체계에 통합되어 전쟁 동원의 대
상이 될 수 있었다(Creveld 1989: 153). 이는 독일에만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서구 문명에 있어서
전반적인 현상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가 이미 검토한 목적-수단의 관계의 전도의 현상이 이 시기
에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는 논리적인 가능성으로만 고려하였던
정치적 목적이 전쟁의 목표에 근접하려는 경향이 현실적으로 보다 분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따
라서 독일의 역사적인 ‘특수성’만으로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비판하는 것은 충분치 않
으며, 마찬가지로 총력전에 관련된 슈미트의 논의를 단지 나치 정권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론적이
기보다 ‘정치적’인 성격의 것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87) 우리는 슈미트의 전쟁과 적에 대한 개
념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슈미트가 비판하고 있는 새로운 전쟁의 양상과 적대 관계에 대해 살펴
볼 것이다.88)


3.3.1. 정의전쟁과 절대적인 적
우리는 이미 슈미트가 국제 연맹에 대하여 국가의 주권에 대한 간섭 가능성의 증대를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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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슈미트에게 있어서 전체국가와 총력전의 관련성은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하기 이전의 시기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어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슈미트는 ‘동원(Mobilisierung)’이라는 용어로 이익사회
(Gesellschaft)를 지양하는 진정한 정치적 통일체를 설명한다(1963a: 45 15n/53 15n/45 19n). 또한 우리가 인용한 1937년의 글에서도 등장하는 윙어의 1930년작 『총력동원(Die totale Mobilmachung)』은 결정적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미 이 시기에 슈미트는 윙어와의 친분관계가 있었고 이 글을 읽어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마르 시대에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 그리고 전체국가의 개념과 윙어의 사상을 관계짓는 분석으로는 Kervégan 1990: 105-107을 참조.
88) 슈미트는 1963년에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1932년판 텍스트에 대해 회고하면서 그 텍스트의 주요한 결함은 “다양한 종류의 적-관례적(konventionell), 실제적, 또는 절대적인 적-을 명확하고 정밀하게 세분화하여 충분히 구별하지 못하였다는 데에 있다”고 자평한다(1963a: 17/20; 번역수정). 이러한 세 가지 종류의 적대관계란 “현실적인 정치 현상으로서의” 실제적인 적, 근대 유럽의 국제법 질서의 적대관계에 해당하는 “관례적인 적”, 그리고 레닌(Lenin)의 혁명이론과 자유주의적인 제국주의 이론이 “재도입한 절대적인 적”에 각각 해당한다. 슈미트에게 있어서 관례적인 적대관계가 실제적인 적대관계의 특수한 역사적 형태로서 “투쟁에 동원되는 폭력의 행사량을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면, 이와 달리 “절대
적인 적은 [기존 유럽질서의] 모든 법적이고 정치적인 제약를 초월하며, 그것에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
된다(Bolsinger 2001: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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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을 하였다는 사실을 살펴본 바가 있다(2.2.3). 그런데 당시에 새롭게 등장한 국제질서란 슈미
트에게 단지 국가 주권에 대한 간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논리 전개로 볼 때 국가의
주권에 대한 간섭은 결국 적과 동지의 구분에 대한 결정에 있어서의 간섭―즉 대립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 의한 적과 동지의 결정―을 의미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국가간의 동등한 주권을
의미했던 ‘유럽 공법의 국제법’의 결정적인 쇠퇴와 전쟁의 개념에 있어서의 불가피한 변화를 의
미한다.


그러한 변화는 우선 순수한 정치적인 적과 전쟁의 개념에 대하여, 경제와 윤리적 대립이 스
스로의 적과 동지의 구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대립의 강도가 높아짐으로써 “새로운 동지와
적의 결속”으로 귀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1963a: 78/93/79). 국가의 ‘공공의 적’이, ‘정당한 적(justis
hostis)’에서 경제적인, 혹은 윤리적인 적으로 변질된다는 것은 전쟁의 파괴적 성격이 완화되는 것
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 때 전쟁은 “특히 치열하고 비인간적인 전쟁이 되는데 그 까닭은 전
쟁이 정치적인 것을 넘어서 적을 동시에, 도덕적 기타의 범주들에서도 멸시하고 괴물로 만들어
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자국의 영역 내로 되돌려 보낼 적은 아닌 것이다.”(1963a:
37/44/36). 무엇보다도 슈미트는 경제와 윤리로의 양극화라는 ‘탈정치화’의 완성에 의해 출현한 새
로운 적과 동지의 결속의 대표적 양상 중 하나를 우선 자유주의적인 ‘제국주의’로 본다. 이 때
제국주의가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인류(Menschheit)의 이름”이며, 그에 따라 현대적인
의미의 “정의 전쟁”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정의는 전쟁의 개념 속에 포함되지 아니한다는 것은 그로티우스 이래 일반적으로
승인되고 있다. 정당한 전쟁을 요구하는 논리구조는 보통 그 자체가 다시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통합된 국민에 대해서 공정한 이유에 근거해
서만 전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 그 배후에는 교전권의 행사를 타자의 손에게
맡기고 (...) 제3자가 적을 규정한다는 정치적 요구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1963a:
50/60/49)


그리고 스스로의 적과 동지를 결정할 능력을 갖지 못한 국민은 정치적이고 주권적인 주체로
서의 지위를 잃고 제3자의 보다 강한 결정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여기의 슈미트의 주장은 사실상
특별할 것이 없는 현실주의적 시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또한 이미 슈미트 자신도 이러한
역사적 변화에 편승하려는 한다는 사실을 앞서 확인했다(2.2.3). 그러나 우리가 슈미트의 논의를
보다 면밀히 검토할 때 그가 두 가지의 구별되는 논리적 귀결들 사이에서 또 다시 애매한 입장
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1927년에 다음과 같이 말할 때 그는 아직 이 두 가지 결론들
사이에 차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인류의 이름을 빌어 전쟁이 수행
된다고 하는 사실은 (...) 단지 특별히 강력한 정치적 의미를 가질 뿐이다. 어떤 국가가 인류의 이
름을 빌어 자신의 적과 투쟁하는 경우에 그것은 결코 인류의 전쟁이 아니라 특정한 국가가 다른
특정한 국가에 대하여 수행하는 전쟁이다”(1927: 73/103). 그러나 1932년에 그의 논리는 조금 더
정교해지면서 새로운 국제관계의 유형을 식민지 전쟁과 같은 보다 오래된 형태로부터 구별할 가
능성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그가 보기에 ‘인류의 이름’을 내세우는 “제국주의적 팽창”에 있어서
“인류”는 “특히 유용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이며, 그 윤리적․인도적인 형태에서 경제적 제국주의
를 위한 특별한 도구이다”. 그래서 “인류 그 자체는 전쟁을 수행할 수”(1963a: 55/66/54) 없고 다
만 인류의 이름을 빌어 수행되는 전쟁은 제국주의적 이해를 지닌 강대국의 폭력행위를 정당화하
는 역할만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그의 ‘국가성 시대의 종말’이라는 명제를 이러
한 관찰결과를 해석하기 위한 척도로 동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확인했듯이 이러한 전
쟁, 즉 인류의 이름으로 수행될 최후의 전쟁에서, 전쟁은 정치를 넘어서 적의 개념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슈미트는 이 때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데 실패한다. 달리 말해서 그는 새로운 양상의
‘정의 전쟁’의 주체가 단지 제3자로서의 국가인지―이는 그의 ‘국가성’의 쇠퇴에 관한 관찰에 비
추어볼 때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 어떤 것은 아니다―, 아니면 “인류”를 포괄하는 세계적인
통일체에서 “경제적 및 기술적 집중과 결부된 무서운 권력”을 갖게될 ―국가나 정치적 통일체를
이루는 인민이 아닌―“어떠한 사람들(Menschen)”인지에 대해서 확답을 내리고 있지 못하다(1963a:
58/69-70/57). 따라서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관점처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단순
히 국제질서에서의 제3자의 이해관계를 은폐한다고 주장한다고만 보는 입장은 그릇된 것은 아니
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불충분한 피상적인 독해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89) 오히려 우리가 여
기서 따라가고자 하는 논리는 전쟁에 대한 국제법적인 단죄가 결국 새로운 종류의 전쟁으로 귀
결된다고 하는 슈미트의 고찰에 있다. 그가 보기에 1928년의 켈로그 조약(Kellog Pact)은 “국제분
쟁의 해결수단으로서의 전쟁을 단죄”하고 “국가정책(nationaler Politik)의 도구”로서의 “전쟁을 포기
한다”는 것을 선언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국제정책(internationaler Politik)의 도구”로서의 전쟁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켈로그 조약에 의해 초래되는 결과란 슈미트에게는 다음과 같이
비춰진다.


(...) 국제정책을 위하여 이용되는 전쟁은 단순히 국가정책을 위해서만 이용되는 전
쟁보다도 더욱 나쁠 수 있다(...), 또한 전쟁 그 자체를 “단죄”하거나 “추방”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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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하버마스에 따르면 슈미트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통해 주장하려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세계시민주의적 차원에서 교전 당사국들 사이의 관계를 국제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결국 특정한 이해관계를 보편주의라는 가면으로 은폐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Boradori 2003: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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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아니다. (...) 추방할 수 있는 것은 [전쟁 그 자체라기보다는] 단지 특정한 사람
들, 국민, 국가, 계급, 종교 등등에 불과하며, 이러한 것들은 “추방”에 의해서 적이
라고 선언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엄숙한 “전쟁추방”도 적과 동지의 구별을 해소하
는 것은 아니며, 국제적인 적 선언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에 의해서 적과 동지의 구
별에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1963a: 51-52/61-62/50-51)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적과 동지의 구별에는 “특히 본질적으로 평화주의적인 용어가 만들어
지고 있으며, 거기에는 이미 [국가간의] 전쟁이라는 말은 알지 못하며 단지 강제집행, 제재, 형벌
집행을 위한 파견, 평화화, 조약의 보호, 국제경찰, 평화의 보장을 위한 조치만”이 있을 뿐이다.
이로써 패전국 독일의 특수한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근대 유럽의 국가간 체계에서 ‘정당한
적’, 혹은 동등한 적으로 취급되었던 주권 국가로서의 독일은 “(...) 이미 적이라고 불리지 않으며,
그 대신 평화파괴자와 평화교란자로서 법밖에 방치되며, 비인간시” 될 가능성 속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1963a: 78/93/79).90)


자유주의적인 제국주의와 세계적 통일체를 향한 기획이 평화주의의 이름 하에 이루어지는 적
과 동지의 새로운 종류의 결합91)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맑스주의에 의해 규정되는 적대관계가 있
다. 맑스주의와 볼셰비즘은 이미 독재에 관한 슈미트의 논의에서 자유주의와는 달리 결정에 대해
회피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단순히 자유주의에 대해서와 같은 수준의 비판의 대상은 아니었다
(1923: 63-77/51-64; 1926). 슈미트가 보기에 계급은 소련의 정치 형태를 통해 국가의 인민이 되면
서 그 나름의 강도를 지닌 정치적인 것에 도달하게 되었다. 즉 계급적 적대관계가 국가적 적대관
계와 일치하게 되었다. 여기서도 ‘국가성 시대의 쇠퇴’라는 슈미트의 테제에 비춰볼 때, 레닌주의
에 대한 슈미트의 판단 또한 애매한 것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특히 1920, 30년대의 슈미트의
눈에는 소련은 경제적인 계급을 정치적인 인민의 통일체로 끌어올림으로써 계급투쟁이 본래 갖
는 무정부주의적이고 ‘내전’적인 성격을 국가간의 적대관계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1928: 23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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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다른 국가와의 교전권(jus belli)뿐만 아니라 ‘국내적 평화의 유지’를 위해 국가의 “내부의 적”을 선언하고 이들 “내부의 적”을 국가의 영토 안에서 법 밖으로 추방한다는 예외상태의 역설적인 권리를 독점하
는 주권 국가(1963a: 45-48/55-57/45-47)가 세계 정치 무대에서 적으로서 국제법 외부로 추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노출된다는 사실은 분명 슈미트 자신에게는, 반드시 독일 민족주의를 결부시키지 않더라도 일
반적인 국민국가의 현실주의적 옹호자의 입장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임은 분명하다.
91) 제국주의에 관한 슈미트의 비판은 다른 관점에서 이루어진 레닌의 그것과 유사성을 지닌다. 특히 레닌이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ultra-imperialism)을 순수한 경제적 이론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제국주의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관점은 ‘세계적 통일체’가 전세계적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세계적 전쟁으로 귀결 될 수 있다고 보는 슈미트의 논리와 상당한 정도의 유사성
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레닌의 제국주의 비판에 대해서는 Lenin 1917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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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a: 37-38/45-46/37-38). 따라서 그는 레닌(Lenin)을 루카치(György Lukács)의 평가를 준거로 헤겔
의 변증법의 구체적이고 정치적 성격을 계승한 정치(이론)가로 간주한다.92) 그러나 이러한 레닌에
대한 슈미트의 평가는 1963년에는 분명 달라져 있다. 그에 따르면, 근대 유럽의 국제법 체계가
이룩한 전쟁과 평화에 대한 질서정연한 구분, 즉 “고전적인 구별과 여기에 근거한 국가간의 전쟁
억제를 파괴하는 사람은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야만” 하는데 “많은 직업 법률가
들”과 달리 “레닌이나 모택동 같은 직업혁명가들은 그것을 알았다”는 것이다(1963a: 12/14; 번역수
정). 즉 그는 한때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통해 소련이 획득하였다고 본 보다 강도 높은 ‘정치적
인 것’의 실체가 결국은 앞서 본 정의전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등한 상대방으로서의 국가간의
전쟁과 평화라는 유럽의 고전적인 국제 질서의 원리를 파괴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이
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93) 레닌에 대한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특히 1963년에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개정판과 함께 발표한 『파르티잔 이론(Theorie des Partisanen)』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난
다.


레닌은 개념적인 중점을 전쟁으로부터 정치에로, 다시 말해서 적과 동지의 구별로
옮겨놓았다. 그것은 의미 깊은 일이며,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정치의 연장으로서
의 전쟁이라는 생각을 철저하게 계속한 것이다. 다만 레닌은 세계적 내전
(Weltbürgerkrieg)의 직업 혁명가로서 더욱 나아가 실제의 적으로부터 절대적인 적을
만들어내었을 뿐이다.94) (1963b: 94/151)


하지만 이러한 레닌의 전세계적 계급투쟁이 제시하는 절대적인 적의 형상은 슈미트가 보기에
이미 맑스주의에 내재하고 있는 경향이기는 하였다. 맑스(Karl Marx) 자신에 의해 정식화된 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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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모스크바에서 그[헤겔]의 변증법적 방법은 새로운 구체적인 적개념, 즉 계급적인 개념에서 그 구체적인 힘을 실증하고 변증법 그 자체를 합법성과 비합법성, 국가 나아가서는 적과의 타협 등 다른 모든 것
과 마찬가지로 “무기”로 전화시켰다. 헤겔의 이러한 현실성은 게오르그 루카치(...)에서 가장 강렬하게 약동하고 있다. 루카치는 레닌의 발언―헤겔의 발언이라면 계급이라는 말이 민족이라는 정치적 통일체로
바뀌었을 것인데―을 인용하기도 한다”. 즉 “레닌은 말한다. 정치에 대해 많은 경우 기만에 가까운, 작
은 술책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매우 단호한 거부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계급은 기만
될 수 없는” 것이다(1963a: 62-63/75-76/63; 번역수정). 슈미트와 루카치의 지적 관계에 대해서는
McCormick 1997의 1장과 2장을, 슈미트와 레닌의 현실주의적 정치관에 대해서는 Bolsinger 2001을 참조.
93) 레닌의 정의전쟁 원리에 대해서는 Aron 1976: 239, 295에서, 그리고 특히 Bolsinger 2001: 151-165에서 자세히 다뤄지고 있다.
94) 우리는 아렌트에게서도 같은 해(1963년)에 ‘세계적 내전’이라는 말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Arendt 1963: 81). 이에 대해서는 Agamben 2005: 3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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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이미 19세기에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적 적대자를 경제적인 것의 영역에까지 추적하였고,
그리고 이 영역에서 말하자면 적대자 자신의 영토에서 적대자 자신의 무기로 적대자를 추격한
것”이라고 그는 판단한다(1963a: 73/88/74).


1932년과 1963년 사이의 나타난 슈미트의 이러한 레닌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우리에게 그의
정치적 기획을 이해하고 평가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슈미트
자신의 태도의 이중성은―레닌을 보다 강한 의미의 구체적인 적의 개념의 대변자로 보았다가 결
국 그러한 적 개념이 절대적인 적에 다름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게 되는― ‘국가성의 시대의 종말’
과 ‘전체국가’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가능성 사이에서 1930년대에는 후자를 선택했다가 1963년에
는 전자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과 유사한 어떤 것이다.


3.3.2. 실제의 적과 인종주의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유럽의 근대 국가는 국가간 전쟁이라는 형태로 무제한적인 폭력 행사
를 극복한 것으로 주장된다. 즉 유럽의 국가간 체계의 고유한 ‘영토적’이고 ‘법’적인 배열은 국가
를 국내적인 유일한 정치단체로 만들 수 있었다. 이는 “전쟁을 틀 속에 잡아넣음으로써(...) 전쟁
상대방을 범죄화하는 것의 포기, 그에 따른 적대 관계의 상대화, 즉 절대적 적대 관계의 부정”을
통해 실제적인 적대관계를 도입한 것을 지칭한다. 슈미트가 보기에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결과
“자신의 적을 차별 대우하고 비방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사람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실제로 무언
가 희귀한 일이며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도적인 일이기도 하다”(1963b: 92/147). 무엇보다도
‘실제의 적’이란 곧 ‘공공의 적’인데, 이는 여러 차례 강조하였듯이 영토적 정치체인 근대 유럽의
주권 국가의 공공성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때 실제적인 적은 무엇보다도 순수한 정치적인
적이라는 동어반복을 피하면서 ‘영토적’으로 규정되는데 앞서 보았듯이 ‘싸워서 자신의 영토로
격퇴해야할 적’을 의미한다. 이러한 실제의 적은 또한 철학적으로 정의되는데, 이 때 적의 실제성
이 “실존적(existenziell)”이라는 말로 표현되기 때문에 슈미트의 정치이론이 비합리적인 것에 근거
한 “정치적 실존주의(Political Existentialism)”(Wolin 1990)라는 비판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
다. 하지만 여기서 ‘실존적’이라는 말은 사실적이고 따라서 객관적인 어떤 것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되는데, 한편으로 이는 규범적인 것과 구분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형식주의적인 타당성에 의
해 정의되는 종류의 객관성과의 차별성도 의도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전쟁, 싸우는 사람들의 죽을 각오, 적의 편에 선 타인의 육체적 살해, 그것은 모두 규범적 의미
가 아니라 실존적 의미에 불과한 것이다. (...) 만일 그와 같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육체적 말살이
자기의 실존형식(Existenzform)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서 자기의 실존형식을 주장하려고 생긴 것”이
라면 말이다(1963a: 49-50/59/48-49; 번역수정, 강조는 인용자). “부정”의 관계의 도입, 그리고 앞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 대한 논의나 레닌에 대한 평가에서도 알아챌 수 있듯이 슈미트는 여기
서 헤겔의 변증법에 상당한 정도로 의지하고 있다. 헤겔의 국가 개념이 19세기 독일이라는 역사
적 특수성에만 속할 수 있다고 비판하는 것과는 달리 슈미트는 헤겔의 변증법의 구체성과 정치
적 성격에 주목하면서 헤겔에 의해 제시되는 민족들의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적의 개념”을
특히 중요시한다. 헤겔에게 있어


적이란 그 살아있는 총체성에서 부정되어야 할 타인으로서 인륜적(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인민의 영원성”에 있어서의 “절대적 생명”이란 입장에서의) 이질성
(Differenz)인 것이다. “그러한 이질적인 것은 적이며, 이 이질적인 것은 서로 관련을
가지며 동시에 대립의 존재에 대한 대립물이며 적의 부정으로서 이다. 그리고 쌍방
에 동일하게 성립하는 부정이 투쟁의 위험이다. 인륜상 이러한 적이 될 수 있는 것
은 인민의 적뿐이며, 적 자신도 한 인민인 경우에 한정된다. 여기서는 개별성
(Einzelheit)이 등장하기 때문에 인민에 관하여 말하면, 그것은 개별적인 것은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는 것이다”.95) (1963a: 62/75/63; 번역수정)


이러한 적에 대한 변증법적 개념은 분명 홉스가 생각했던 적의 개념보다 훨씬 적극적인 성격
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변증법을 단지 개인들의 실존주의적 심리의 문제가 아
닌 무엇보다도 주권(이론)과의 관련성 속에서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슈미트는 어찌되었건 개인
에게는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실존적인 적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국가의 주권
이란 공적인 “생살여탈권(jus vitae ac necis)”으로서의 “교전권(jus belli)”의 독점을 의미하기 때문이
다. 이러한 공적인 생살여탈권은, 슈미트에 따르면, 시민들에게 있어서 다음과 같이 인간의 생명
을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는 “이중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국민에 대해서는 죽을 각오
와 살인할 각오를 요구하며, 또한 적 측에 서 있는 인간을 죽인다는 이중의 가능성을 의미한
다”(1963a: 45-48/55-57/45-47).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스트라우스가 정확하게 관찰하였듯이 홉스의
적에 관한 생각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것이다. 홉스는 주권자가 신민들에게 죽음을 요구할 수 있
는 조건을 “최소한도”로 제한한다. 그래서 스트라우스에 따를 때, 홉스에게 있어 “국가는 개개인
에 대하여 [총체적이지 않은] 조건부의 복종만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Strauss 1932: 91/164). 그
러나 이와 달리, 슈미트와 헤겔의 적 개념은 보다 적극적이며 전면적이다. 그런데 이들 사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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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적은 나 자신과 같은 평면에 서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나는 자신에 대한 척도, 자신에 대한 한계,
그리고 자신의 형상을 얻기 위해서 적과 투쟁적으로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1963b: 87-88/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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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이론적 구성의 차이는 단지 이론 내적인 차이로만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우리는 유럽 근
대 국가의 역사적 변화에 이러한 차이를 비춰봐야만 할 것이다. 즉 스트라우스의 결론처럼 단지
홉스가 보다 ‘자유주의’적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그릇된 분석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시각에서는 불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96) 홉스의 시대는 국가와 전쟁의 관계에서 보자면 전국민의 힘을 전쟁에
동원하는 종류의 ‘국민전쟁’이 정치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불가능했던, “산업혁명”과 “프랑스혁
명” 이전의 시대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시의 국가의 목표는 헤겔의 시대의 국가처럼
국민전쟁의 수행이 아니라 ‘폭력수단의 독점을 통한 국내적 평화의 수립’(Creveld 1999: 155-170)이
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의 근대 국가란 지금과 같이 완전한 형태의 것이 결코 아니었
다. 이 시기의 “국가는 가능한 대로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는 있지만 모든 권리를 행사할 수도 없
고 모든 책무를 다할 수도” 없었으므로 “모든 방면에서 다른 것들에 기대어야” 했다(Braudel 1996:
786).


그러나 이론적인 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홉스의 생각을 포함한 고전적 주권
이론은 삶과 죽음에 관해 고유한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생명의 보존, 즉 죽음으로부터의
보호와 안전을 위해 성립된 권력이 신민들에게 죽음을 요구함으로써 사회계약의 본래적인 한
계―삶의 영역―를 넘어서게 된다는 역설이다. 주권과 전쟁, 그리고 인종주의의 관계를 탐구하면
서 푸코(Michel Foucault)가 발견하게 되는 마찬가지의 역설은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과 적의 개념
을 이해하는데 매우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푸코에 따르면 주권이 행사하는 삶과 죽음의 권
리의 문제에 대해 17세기와 18세기의 법률가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표명했다.


사회계약의 수준에서, 다시 말하면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주권을 형성하고 한 군주
에게 자신들의 권한을 위임[한 것은] (...) 그들이 어떤 위험이나 빈곤에 의해 급박
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들이 하나의 군주를 만들어 낸 것은 자신들의 삶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실질적으로 군주의 권한 속에 있는 것은 삶[이고](...) 군주의 권
리를 정초하는 것은 삶이 아닐까? 그런데 군주는 실제적으로 자기 신민들에게 삶
과 죽음의 권리를, 다시 말하면 그저 죽음의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삶이 계약의 최초의 근본적인 동기였으므로 결코 계약의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Foucualt 1997: 2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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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홉스는 “자유주의의 창시자”이다. “홉스가 비자유주의적 세계 내에서 자유주의의 기초를 쌓았던 것에 대하여 슈미트는 자유주의적 세계 내에서 자유주의 비판을 계획한 것이다”(Strauss 1932: 92-93/165-166).
97) 푸코의 이 강의록,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976,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6)』(Focault 1997)의 정치 사상적 함의에 관해서는 Pasquino 1994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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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들 법률가들의 문제제기에 의하면 주권을 성립시키는 토대가 되는 자연상태(=급박한
상황, 혹은 예외상태)는 그 자체가 주권에 의해 죽음의 권리가 행사되는 역설의 원인이 되며, 이
는 ‘사회계약’을 통해서는 결코 완전하게 통제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
은 고전적 주권 이론에만 해당되는 내용이며 따라서 이때 주권이 죽음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순수하게 정치적이고 법적인 성격만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푸코가 관
찰한 바에 따르면, 19세기에 등장하여 금새 전사회로 확산된 생물학적 권력수단98)은 주권과의 관
계에서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와 같은 변화를 촉발시킨다. 즉 “생물권력이 군주권 쪽으로 넘쳐
흐르는 현상”과 함께, 인종주의의 개입이 주권자가 행사하는 죽음에 대한 권리를 변형시키게 된
다는 것이 푸코의 역사적 분석의 내용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복합물이 만들어내는 전쟁과
적에 대한 개념은 더 이상 순수하게 정치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슈미트가 순수한 정치적인 것의
준거로 삼는 고전적 주권 이론을 기준으로 볼 때, 주권이 행사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는 처
벌의 권리이지 다른 인민(혹은 인종)과의 전쟁에서 자신의 시민들을 죽음에 노출시킬 수 있는 권
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푸코가 보기에 인종주의는 특히 19세기 동안 전쟁을 극적으로 변화시켰
다. 그가 보기에 인종주의가 없었다면 19세기에 출현한 현상, 즉 “적군하고만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시민들도 전쟁의 위험에 노출시키고, 그들을 수백만씩 죽게 하는 일”은 가능
하지 않다. 이제 인종주의와 생물권력에 의해서, 더 이상 순수한 의미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관
계라고 볼 수 없는 인종적이고 생물학적 적대관계가 등장한다. 특히 나치국가는 이러한 역사적인
변화의 극단적인 예이다(Foucualt 1997: 213-234). 이러한 푸코의 분석은 ‘총력전’의 등장과 발전이
라는 전쟁사적 경향이 단지 군사적이거나 정치적 일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
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케 해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쟁과 적은 더욱 더 절대적인 형상을
띄게 된다.


푸코의 이러한 관찰이 슈미트의 정치이론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푸코의 고찰이 중요성을 갖는 이유는, 그가 보기에 생물권력의 대두와 인종주의 때문에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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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푸코는 이를 생물권력(biopouvoir)이라고 부른다. 이는 사회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의미하며 “살게 내버려두고 죽게 만드는” 주권 권력과는 달리 “죽게 내버려두고 살게 만드는” 권력이라고 그 성격을 규정한다. 우리가 이를 주권에 대해 권력수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생물권력이 주권 권력을 결코 그대로 대체하지는 않는 기술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Foucault 1997: 213-215). 생물권력이라는 푸코의 개념을 슈미트의 주권이론과 결합시켜 정치철학적 분석을 시도하는 대표적인 예로는 Agamben
1998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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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어떤 적대관계도 더 이상 순수하게 정치적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슈미트는 그러한, 이미 변질된 적대관계 자체의 존재로부터 그것의 정치적인 성격
을 사후적으로 추출하면서, 그것이 전쟁의 파괴적 성격을 완화시켜주기를 기대한다. 슈미트의 그
러한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바로 슈미트의 이론적 애매함을 설명해주
는 것 같다. 전체국가가 그 시민들에게 요구하는 ‘총력동원’은 분명 국가에 의해 선언되는 공적
인 적대관계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목적’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하지
만 그러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기술 수단들은 이미 정치적 목적을 넘어서고 있으며, 그
에 따라 정치 자체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총력전은 바로 이러한 변화의 전환점을 지시한다. 즉
총력전은 아마도 고전적 기준에서 정치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최후의 양상인 동시에 이제 적대
관계가 정치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만으로는 폭력 행사가 더 이상 완화되지 않는, 그러한 역사적
변화의 지점을 가리킨다.


슈왑과 같은 슈미트에 대한 ‘옹호자’는 공적인 적과 사적인 적간의 구분을 영어로는 enemy와
foe의 구분으로 표현할 것을 제안하면서 히틀러의 인종주의적 적 개념으로부터 슈미트의 정치적
인 적의 개념을 구분해내고자 한다. 그는 그의 enemy-foe의 구분에 따라 나치 독일의 인종주의 정
책이 정치적 적(enemy)개념에 대해 인종적인, 그래서 정치적이지 않은 적(foe)의 개념을 주입했다
고 본다. 이러한 정치적인 적(enemy)으로부터 비정치적인 적(foe)으로의 전환은 나치즘과 공산주의
에 의해, 그리고 유럽 주권 국가의 쇠퇴 함께 두드러졌으며, 최근의 미국의 외교 정책에서도 그
러한 비정치적인 적의 개념이 발견된다고 본다(Schwab 1987: 200-201). 특히 히틀러와 나치의 인종
주의라는 것이 단지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과학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19세기말의
후기 다윈주의적 잡동사니”(Hobsbawm 1987: 169)였다면 이러한 적의 개념은 결코 순수한 정치적
인 적의 개념으로 간주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실제적인 적의 개
념을 추출하고자 하는 슈왑의 시도는 순전히 이론 내적으로는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겠으나, 우
리가 보기에는 슈미트의 적 개념을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 같다. 즉 이제 현실에서
순수하게 정치적인 적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게다가 총력전의 시대
가 슈미트가 비판해마지 않던 정의전쟁의 양대 주체들에 의해 종결되고 냉전이라는 새로운 비-전
쟁상태와 ‘적과 동지의 새로운 결속’이 출현에 의해 극복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우리의 결론을
보다 지지해주는 것 같아 보인다.

 


4.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생각이 목적-수단 관계의 전도라는 역사적인
상황에 처하여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칼 슈미트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았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슈미트의 정치이론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면서 그
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기 위해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무엇보다도 슈미트가 역사적 변
화와 도래하는 위기 상황에 대해 보여주는 애매하고 이중적인 태도다. 첫째로 정치적인 것의 개
념과 근대 국가의 관계에서 그는 국가=정치라는 기존의 정치이론의 전제를 비판하면서 국가가
정치적 주체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는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가가 다른 형태로 다시 한번 정치적인 것을 장악하는 주체로 나타날 것에 대한
기대를 보여준다. 국가를 개별 국가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보다 총체적으로 국가간 체계의 수준에
서 고려할 때, 이러한 슈미트의 이중적인 태도는 유럽의 고전적 국제법 질서의 주요 원리인 주권
의 영토적 상호배타성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주권 체계 자체가 ‘조직적 위선’으로 변질되는 상
황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변화에 편승하는 방향으로 이론을
전개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슈미트의 정치이론의 내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을 이러한 애매한 입장은 특히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처음 제시된, 바이마르 공화국이 처했던 역사적 맥락과 관련시켜볼 때, 그 문제적 성격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바이마르 시대의 위기로부터 출현한 것은 리바이어던이 아니라 베헤모스
였으며, 총력전의 상황에서 순수하게 정치적인 적, 즉 원래의 영토로 추방해야 하는 적이란 어디
에서도 그 온전한 실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슈미트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정치적인 것에 대한 자
신의 일관된 입장을 표면적으로는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변화는 결코
그가 생각했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국제질서는 그가 비판했던 세력들에 의
해 재편되었다.


슈미트에 관해 본 연구가 전개한 해석과 비판의 의미는,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제한적인 것
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어쨌든 행위로서의 전쟁은 1945년에 종결되었으며 슈미트가
절대전쟁과 정의전쟁의 주체라고 비판하였던 냉전의 양극에 의해 전쟁과 평화의 새로운 구도가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전쟁의 관계를 자신의 정치이론의 본질적인
질문으로 삼은 슈미트의 이론은 여전히 어떤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홉스봄의 말처럼 “세계
대전 없이는 단기(短期) 20세기를 이해할 수 없다. 전쟁은 그 세기에 흔적을 남겼다. 단기 20세기
는 총소리가 나지 않고 폭탄이 터지지 않았을 때조차 세계전쟁의 견지에서 살았고 사고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Hobsbawm 1996: 38). 더구나 9․11 사태 이후의 세계의 민주주의는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 범위를 제한하거나 극복하기 힘든 비상사태에 직면하고 있다(Ferejohn
& Pasquino 2004: 228, Quirk 2004: xii). 우리는 이러한 21세기에 있어서의 민주주의에 관한 “예외
의 도전(The Challenge of the Exception)”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에 대처해야할 것인가?


이러한 시대에 칼 슈미트에 대한 관심과 논쟁이 지속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
다.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그는 근대 국가의 정치질서와 비상사태의 관계를 가장 엄밀하게 고
찰한 20세기의 정치사상가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는 근대 정치 질서에 고
유한 ‘비극적 조건’인 토대의 부재를 누구보다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제하에서 자
신의 정치이론을 구성하고 있다(Galli 2000). 즉 그의 정치이론은 근대의 정치가 확고한 근거로부
터 정초된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우연성으로 가득 찬 혼란과 무질서로부터 수립되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이러한 우연성과 예외는 현실로부터 결코 완전히 제거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슈미트는 이러한 우연성을 홉스와 마찬가지로 ‘내전상태’로만 이해한다. 그는 우연성
을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정치 질서 자체에 대해서는 붕괴에 이르
도록 하는 치명적인 것으로만 인식한다. 이러한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그의 관점은 그 자신의 결
정주의 사상의 기초가 된다. 게다가 폭력적인 우연성에 대한 결정주의의 해결책은 우연성으로부
터 폭력적인 성격을 제거하여 정치질서에 대해 창조적이고 민주적인 계기로 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폭력성을 주권의 수단으로 삼아 권위에 의한 “보호과 복종”의 상호관계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슈미트 자신의 이러한 결정주의적인 정치 기획은 예측불
가능성이 극대화된 기술과 폭력수단에 대해서 그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파국적인 상황으로
빠져들고 만다.


따라서 민주주의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정치이론의 진정한 문제점은 기존의 헌정질서
를 보호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위임독재’와 헌정질서 자체를 변경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
하는데 까지 나가는 ‘주권독재’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는 데 있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정치 질
서에 대해서는 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분명 예측 불가능한 사건의 성격을 띌 수밖에 없는 민
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폭력적 내란 상태를 구분할 수 있는 원칙이나 기준을 제시하려는 시도 없
이, 단지 양자를 동일시한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1931년에 “국가들의 본성에 대하
여 고찰하면서 (...) 단지 강한 국가들만이 자유 민주주의를 허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관찰”
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약한 국가에게 있어 “야당”을 허용하는 것은 “사치”라는 주장은
그에게는 당연한 것이다(Schwab 1989: 57). 그에게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위기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나치당의 집권 시도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의 부재는,
단순한 보수적 엘리트주의의 표현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연성과 정치질서의 관계에 관한 그의
관점과 직결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슈미트를 파시스트라고 비난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이 함축하는 “자유주의적 결정주
의”(Holmes 1993)나 ‘민주평화론(Democratic Peace)’에 입각한 “정의전쟁” 이론들99)은 슈미트 자신의
결정주의가 빠져있는 딜레마를 확대된 규모에서 새로운 형태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민주평화론과 결부된 정의전쟁 이론은 민주화되어야할 국가와 사회가 곧 정의전쟁의 대상
이 된다는 역설을 통해 슈미트의 결정주의적 딜레마를 세계 정치의 규모에서 재생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최근의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전쟁은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준다.
‘정의전쟁’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적 입장과는 달리 한나 아렌트는 폭력에 대한 언어의 우위를
주장함으로써 결정주의적 사고가 동원하는 ‘폭력의 공포’에 대해 맞설 수 있는 보다 급진적인 정
치 이론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폭력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곳에서는, 법뿐만 아니라―(...) 법은 침묵을 지킨
다―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이 침묵을 지켜야 한다. 폭력은 이러한 침묵 때문에
정치 영역에서 예외적 현상이다. (...)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폭력 자체가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지 언어가 폭력에 직면했을 때 무기력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렌트가 보여주는 폭력과 언어간의 완전한 분리는 오히려 아렌트를 다시 슈미트에
접근하도록 만든다고 생각된다. 물론 아렌트는 슈미트와는 다른 정치적인 것의 기준에 대한 생각
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언어 사이에 놓인 넘을 수 없는 간극은 언어에 대해
우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을 낯선 것으로 만들어 버리며, 그 때문에 우연성은 폭력과 함
께 정치적 행위를 의미하는 언어의 외부에 방치된다. 따라서 우리의 이러한 관점에서는, 아렌트
의 제안의 한계란 폭력에 대한 언어의 우위를 주장했다는 이상주의적인 목표의 추구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우연성과 정치질서의 관계에 있어서 슈미트와 유사한 현실주의적 결론을 내리
고 있다는 점에 있다.100)


정치사상은 오직 정치현상 자체의 세련화만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 문제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을 다루는데 머무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자연적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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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특히 여기서 우리는 롤즈(John Rawls)가 전개한 지구적 규모의 민주주의와 정의전쟁에 관한 제안(Rawls 1999)을 이러한 입장의 전형적인 사례로 간주한다.
100) 한나 아렌트와 슈미트의 정치이론에 공통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Norris
1998: 68, Scheuerman 1997을, 차이점에 대해서는 Bolsinger 2000: xii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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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과 달리 자신을 전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 언어의 세련화를 필요로 한다. 그러
므로 전쟁론과 혁명론은 폭력의 정당화를 취급할 수 있을 뿐이다. 정당화는 그 정
치적 한계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러한 정당화가 폭력 자체의 정당화나 미
화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정치적이지 않고 반(反)정치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Arendt 1963: 83; 인용은 국역본)


물론 여기서 우리는 아렌트와 슈미트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
다. 하지만 폭력과 함께 우연성을 언어의 외부로 추방하면서 언어(정치적인 것)의 정당화의 대상
으로만 삼는 것으로는 결정주의로부터 충분히 멀어질 수 없다고 본다.


우연성으로부터 폭력성을 제거하면서 그것을 정치질서의 창조적 구성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가 하는 문제는 매우 비현실적인 것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정치질서와 우연성
의 관계에 관해 바로 그러한 생각이 충분히 ‘현실주의’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최
근의 몇몇 저자들은 우연성과 정치질서 사이의 관계에 대한 홉스적인 (혹은 슈미트적인) 모델에
대비를 이루는 마키아벨리적 모델에 관심을 보인다(McCormick 1993; Pasquino 1993: 82, 87-88 33n,
43n). 예외적 상황과 사회 내적 갈등을 폭력적인 내란상태로만 인식하는 홉스적인 모델과 달리
마키아벨리적 모델은 특히 『로마사 논고』의 1권 4장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듯이 정치적이고 사
회적인 의미의 우연성을 오히려 자유와 민주적 요구의 실현의 원천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여기
서 마키아벨리는 로마의 공화제에서 평민과 원로원간의 대립, 특히 평민들에 의한 “난동(tumult)”
은 유혈 투쟁이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고 정치질서의 힘과 구성원들의 자유의 원천이었
다고 본다(Machiavelli 1970: 114-116).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제안은 “슈미트와 함께 그리고 슈미트
에 대항하여”(Mouffe 1999: 6) 진정으로 어떻게 민주적인 정치이론을 구성해갈 수 있는 것인지 하
는 방향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즉 ‘슈미트와 함께’ 민주적 정치 질서가 직면하는 본원적인 불확
정성은 인식하면서도, ‘슈미트에 대항하여’ 이러한 불확정성을 결정주의에 대립되는 방식으로, 정
치질서의 창조적이고 민주적인 계기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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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호. 2000.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서울: 책세상.


ABSTRACT


A Study on Carl Schmitt's Concept of the Political

Hong, Chul-Ki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Graduate School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ritically investigate German public law theorist, Carl Schmitt,
and his concept of the political. This concept of the political is the central idea of Schmitt's theoretical formation, which is the object of this study's attempt at a more rigorous and reasonable criticism from both theoretical and historical aspects.

 

Carl Schmitt's concept of the political has always been in debate since his essay was first published in 1927 because the criterion of politics is presented as distinction between friend and enemy. 'Apologists' think him as one of true political realists, who provided the principle for protection of democratic order from civil war, while 'critics' condemn him as a totalitarian thinker for his anti-liberalism, idealization of war and active support for the Nazi regime. This study considers these two positions unsatisfactory and tries to develop a criticism of Schmitt from the discrepancy between them.

 

This concept of the political should be understood primarily as an idea of 'autonomy of the political.' According to Schmitt, violent struggle is an ever-present possibility; thus, it is impossible to remove this possibility from the arena of Realpolitik. Under the assumption of the necessity of violent struggle, every struggle, which can be intensified up to the degree of being a political one, should be legitimized by the political and transformed into political antagonism with a relaxation of its destructive character, thereby maintaining the autonomy of the political. Otherwise, the enemy and war, which are not purely political but also ethical or economic, take the forms of an unjust enemy and unlimited war, respectively.

 

For Schmitt, the autonomy of the political refers especially to the legitimate order of the modern
European state system and claimed as successfully overcoming civil war and medieval! anarchy with 'war as international relations,' or 'war as an instrument of politics.' Schmitt's position here, however, seems ambivalent. On the one hand, he thinks that the modern state, the political and legal expression‎! of modernity, is not and will not be able to retain its sovereignty any longer because modernity itself is in crisis. On other hand, he insists that the modern state will and should recover its sovereign position through the form of what he calls the 'Total State' in order to bring back 'the homogeneity of the people,' which is a synonym of political democracy in his vocabulary.


Recognition of the 'state of exception' is essential to comprehend Carl Schmitt's political theory. If
modernity is in danger spiritual-historically, it is as an increasing threat, i.e., a state of exception, which the modern state as the political and legal expression‎! of modernity confronts. The state of exception designates the limit of a unified system of legal norms applied in a normal situation. For Schmitt, it is sovereignty that has the power to decide and intervene in this situation and exceeds the limits of legal system in order to preserve political and legal order. Therefore, the 'sovereign is one who decides on the exception' and 'only this decision about the critical situation is called sovereign' at the same time.


It is clear that Schmitt's argument on the necessity of sovereign power exceeding the limitation of law appears totally irrational according to the perspective that identifies modernity with 'rationality' or the 'historical project of Enlightenment.' In comparison with some discourses on modernity, however, this perspective, rather, appears to be an obstacle, to some degree to the historical approach to modernity. Recent research provides a more interesting view in which modernity has to be seen as a specific 'spatio-temporal configuration.' This perspective coincides with the growing interest in the modern state system's territorial and legal arrangement in international relations as an area of study.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Schmitt shows another ambivalent attitude on this matter as well.


The smaller the scale in which historical contexts are taken, the more evident the contradiction that
can be found in Schmitt's positioning, especially in the situation of the Weimar Republic in 20's and 30's Germany. In a more concrete context of history, this study deals with the Total State, proposed as his political prescription for the Weimar Constitution, and Total War, to which this concept of State corresponds. Here, the concept is a means/ends relation as a theoretical medium through which Schmitt, himself, also explicates the political, which mediates through his political theory and the historical realities in our study.

 

This relation where the notion of 'means to an end' is represented has been introduced to determine the interaction between politics (law) and violence, particularly, by classical political realists and legal positivists. Most classical realists from Clausewitz to Weber and Schmitt describe the necessary articulation of politics and violence by a means/ends relation. Moreover, there are two fundamental points that give significance to our engagement with Carl Schmitt's political theory, in terms of the means/ends relation. First of all, from the viewpoint of politics as an end, he argues that technology should be considered only as means, just as in the case of violence. His perspective reveals a pessimistic attitude towards technology, which can also be found in his realistic attitude towards violence and war as means of politics. Furthermore, in order to both understand and criticize Schmitt's theory and political project,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the nature of the means/ends formula, itself, because his political theory is a response to the critical situation, described as 'inversion' of the formula.

 

The second half of this study aims at examining the situation surrounding the concepts of Total State and Total War in terms of an 'inversion' of the means/ends relation. These two phenomena are inevitable realities and political goals for Schmitt in Weimar, but for us rather, historical laboratories to test the validity of his concept of the political. By the concept of the Total State, Schmitt argues that the Reich President, a representative elected by the entire nation of Germany, must remove the disorder of 'Polykratie' in the Weimar Republic and recover the German people's political homogeneity by invoking emergency measures, i.e., the decision on the exception in accordance with dictatorial powers specified in Article 48 of Weimar Constitution in order to respond to looming political and economic crises. On the question of Total War, he rejects any position that idealizes war, but hopes that the state of war against a public enemy brings back an internal peace, relativizing any antagonism inside the political community. However, what
we discover in both cases is not that his authoritarian and bellicose proposals have been fully realized through decision-making in both the Weimar and Third Reich, but that, on the contrary, all his proposals have appeared unrealistic. According to the research, the Nazi State is not a Leviathan or a monolith but a Behemoth and Polykratie. In the case of Total War, his notion of a purely political enemy has no substance in the age of Just War and the Nazi's racial war.

 

The implication of the critical investigation that this study attempts on Carl Schmitt's political theory
should be restricted by historical period. Nevertheless, this study will provide the chance to rethink, at least, on the level of political thought, the relation between the democratic political order and contingency which is conceived only as civil war and thought to be overcome only through political war by Carl Schmitt, in the current situation of "Time of Terror" within which democracy faces an open-ended state of emergency.


keyword: friend-enemy distinction, autonomy of the political, decisionism, sovereignty, state of exception, means to an end, politics and violence, democracy and war, total state, total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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