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 키츠를 생각하면서 곧 바로 우리에게 이상이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둘 다 천재라면 천재로 박재라면 박재이리라. 암튼 두 분의 생노병사와 심미안적 작품들이 어쩌면 이리도 닮았을까?? - 이덕휴
[책과 길] 물위에 새긴 사랑의 진혼곡…‘죽기 전 100일 동안’ |
지상은 불행·슬픔·고통·질병으로 가득한 지옥일지도 모른다.그러나 무엇이 이 지옥 같은 지상에서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일까.25세로 요절한 영국의 천재 시인 존 키츠(1795∼1821년)는 그 해답을 ‘사랑’에서 찾고 있다.그는 18세 꽃다운 처녀였던 ‘패니 브론’을 만난 순간부터 폐결핵 세균이 온 몸에 퍼지는 고통을 감내하며 삶의 순간들을 사랑의 선율로 바꿔 노래 불렀다.
미국의 전기작가 존 에반젤리스트 월시가 쓴 이 책은 키츠가 패니에게 보낸 19세기식 연애편지와 미완의 시편들을 통해 ‘사랑이 있기에 지상은 여전히 살만한 것’임을 보여주는,드물게 아름다운 문학평전이자 ‘존 키츠 평전’으로는 국내 최초의 번역서다.더구나 최근 인문분야 도서 가운데 보기 드물게 출간 보름만에 2쇄에 들어가는 등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무엇보다도 저자는 키츠의 열정이 만들어낸 내면의 스펙트럼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키츠는 죽기 2년 전에 열 여덟살의 여인 패니 브론을 만나 뜨겁게 사랑했다.패니는 그러나 키츠 사후 180년이 흐른 지금까지,키츠를 죽음으로 몰고 간 파렴치한 여자로,또는 더없는 기지와 지혜로 시인의 고귀한 영혼을 사로잡았던 매력 넘치는 여자로 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키츠는 아름다운 방종에 자신을 맡기고 싶었다.그는 세상 모든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사랑에 빠져들고 있었다.그는 눈에서 ‘기억’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하느냐고 시를 통해 호소하기도 했다.그의 눈은 바로 한 시간전에 재기발랄한 패니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촉감은 기억을 품고 있다./오 사랑이여,말하라,/그것을 죽여버리고 옛적의 내 자유를 되찾으려면/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당시 키츠는 시 ‘히페리온’에 몰두하고 있었으나 패니의 얼굴이 어른거려 작업은 자주 중단되곤 했다.그러나 패니는 자신보다 키가 작은 시인에 대해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키츠의 도발적인 대시를 그녀는 감당하기 어려웠다.“나는 산책 도중에 당신의 아름다움과 나의 죽음의 시간,두 가지를 곰곰 생각합니다.아,내가 그 둘을 동시에 소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패니는 키츠를 사랑한다는 일이 불 속으로 뛰어든 것과 마찬가지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마침내 약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키츠는 심한 각혈로 고통받고 있었다.의사의 권고로 따뜻한 로마에 왔을 때 키츠의 병명은 폐결핵으로 확정되었다.그리고 스페인 광장 26번지의 어둡고 좁은 방에서 숨이 멎기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키츠는 죽음을 명상하였고 친구인 세번에게 유언을 남겼다.“묘비명에 이름도 적지 말고,‘여기 물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이 있노라’란 단 하나의 문장만 적어달라”고. 세번은 단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잠든 키츠의 얼굴을 스케치하면서 키츠의 병상을 지킨다.마침내 키츠는 숨을 거두었다.이후 세번은 유명한 화가로 칭송을 받았지만 정작 약혼녀 패니는 ‘시를 삶에서 자연의 힘이나 다름없이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야유를 받는다. 패니는 이름없는 시인과 결혼했고 가족에게 키츠와의 일을 비밀에 부친다.그러나 패니가 늙어가는 동안 키츠의 명성은 높아져 갔다.늙어 병든 패니는 어느 날 자식들을 불러놓고 자신이 지닌 키츠의 유품을 보여준다.하지만 저자는 패니가 키츠의 죽음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오히려 사랑이 어떻게 시인을 찾아왔고 시인은 어떻게 사랑을 소유했는지에 관해 쓰고 있다. 정철훈기자 chjung@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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