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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칼럼

Deism - 理神論

by 이덕휴-dhleepaul 2021. 8. 26.

 

1. 개요 2. 상세 3. 쇠퇴 4. 특징 5. 다른 매체에서의 등장 6. 유명한 이신론자들

6.1. 고대 그리스6.2. 근대

6.2.1. 영국6.2.2. 프랑스6.2.3. 독일6.2.4. 미국

6.3. 현대

7. 같이 보기 8. 여담

1. 개요[편집]

理神論 / Deism
자연종교(Natural Religion) 또는 자연신교라고도 불린다. 신이 세계를 창조한 이후에도 초자연적인 섭리와 기적을 통해 세계의 운행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고 믿는 유신론과는 달리, 이신론은 신이 세계를 창조한 이후에는 세계의 운행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1]

1705년 사무엘 클라크는 당시대의 이신론을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는데,[2] 이들 중 어떤 것은 심지어 무신론이나 유신론으로 보일 만큼 그 개념의 스펙트럼이 넓다. 하지만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 다양한 종류의 이신론들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자연적 인식능력인 '이성(Reason)'에 반하는 성경의 계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자연은 동일한 사건 아래에서는 동일한 현상을 일으키도록 하는 통일된 질서를 견지하고 있다'는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합리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의 질서'와 반대되는 기적과 초자연적 섭리를 믿는 계시 종교를 배척한다는 것.

2. 상세[편집]

16세기 후반에 일어난 과학혁명종교개혁은 '종교'라는 용어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종교개혁 이전만 하더라도 '종교'라는 용어는 초월적인 것을 향한 인간의 경건한 삶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어떤 삶을 사느냐'가 아닌 '무엇을 믿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종교 간의 교리적 논쟁이 일어났고, 시간이 갈수록 이 논쟁이 가열됨에 따라 종교는 초월자를 향한 경외심에서 비롯되는 경건함과 신앙이 아닌, 교리의 체계를 의미하는 용어로 변질되었다. 이것은 기존 종교가 따랐던 신앙과 실천의 관점이 아니라 이성과 인식의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보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대 자연과학의 발달로 인해, 계시의 도움없이 인간의 자연적 인식능력이라 할 수 있는 '이성과 경험'만으로도 자연의 진리를 밝힐 수 있음을 알게 된 근대 지식인들은, 예언과 기적을 통해 자연의 운행과 인간사에 수시로 개입하는 '설명할 수 없는 신' 대신, 흡사 시계처럼 이 우주를 질서 속에 운행하도록 제작한 시계공과 같은 신을 점차 찾게 되었다.

또한 부패한 교회의 정화를 위해 마틴 루터가 불을 붙인 종교개혁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의 부패문제보다 더 심각한 종교 간 분쟁을 야기했다. 17세기 초에 발생한 30년 전쟁은 유럽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교리적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보편적 종교를 찾게 만들었고, 그 때 지식인들의 눈에 띈 것이 바로 근대 자연과학의 기계론적 세계관의 토대가 되는 이신론이었다.

이신론은 계시와 신앙이 아닌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에서 자연종교라 불린다. 이 자연종교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비인격적인 질서의 신을 믿는다는 점에서 종교가 부패하고 타락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덕적 실천 외에는 어떠한 신조나 교리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든 종교적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인류의 이상적인 종교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기성종교를 계몽의 대상으로 보았던 근대 계몽주의자들은 계시에 기초한 기성종교를 이러한 자연종교로 대체하고자 하였다. 영국의 18세기 초는 바로 이런 시도가 그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3. 쇠퇴[편집]

헨리 도드웰의 《논증에 기초하지 않은 기독교》가 출간된 1743년을 기점으로 18세기 영국 이신론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도드웰은 이 책에서 종교의 기원과 토대는 이성이 아니라 신앙(믿음)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종교는 이성적 담론의 대상이 아니다는 도드웰의 주장은 계시종교에 대한 공격이었을 뿐 아니라, 종교와 이성을 엄격히 구분함으로써, 이성으로 기적과 예언의 유무를 논하는 이신론에 관한 담론들을 의미없게 만들었다. 이성적 논의는 종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구원의 문제나 인간의 인격 형성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으며, 종교는 그 본성상 이성이나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모든 이성적 논의는 무의미하게 된다.

이후 여기에 영향을 받은 칸트는 자신의 철학을 순수이성(자연을 파악하는 합리적 이성)과 실천이성(도덕, 종교)으로 구분하여 전개시킨다. 또한 '종교의 본질은 이성이 아니라 믿음(신앙)에 있다'는 도드웰의 이러한 주장은, 18세기 대대적인 영적 대각성 운동(종교 부흥운동)의 발단을 제공했다.

4. 특징[편집]

이신론자들은 신의 존재는 믿으나 종교나 경전 등에 의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언이나 기적 등을 그다지 필요없는 것 내지 없는 것으로 본다.

종교나 경전 같이 구체화된 교리가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은 기본적인 사상을 빼면 더 자세한 내용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편이다. 바꿔 말하면 위의 내용만을 충족하되 이 내용에 모순이 되지 않는 한 그 외에 무엇을 믿어도 이신론자라는 것이다. 몇몇 이신론자들은 예언과 기적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기독교인들로 여겼는데[3] 이는 그러한 '미신'이 가미되기 전의 비교적 '순수했던' 시절의 기독교를 믿는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예로, 일부는 내세를 믿는 한편 다른 일부는 믿지 않고 또 다른 일부는 내세의 존재는 유추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믿는지 믿지 않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 모두 위의 내용을 믿기만 한다면 다 이신론자들이라 불린다.

기도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뉜다. 기적을 빌지만 않는다면 기도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무이자 필요행위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의견도 있고, 신은 인간이 접촉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기도는 소용이 없다는 의견도 있으며, 명상과 자기정화를 목적으로 기도를 하는 이신론자들도 있다. 후자의 경우 무엇을 바라서 기도를 한다기 보다는 신에게 감사를 나타내는 쪽으로 기도를 하게 된다.

신을 믿으면서도 종교를 멀리 하는 이신론의 특성 덕분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편이다. 단적인 예로, 알려진 이신론자 중에는 무신론에서 '개종'한 사람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20년간 천주교 신부였던 사람도 있다. (영문크리 주의)

위에도 얘기했듯이 구체화된 교리가 없기에 수많은 종류로 나뉘는데, 유일이신론(한 명의 신), 다이신론(여러 명의 신), 범이신론(세계가 곧 신), 범재이신론(세계는 신의 일부) 등이 그 예이다.

로마시대에 시작된 초대교회 때부터 차츰 기독교에 헬레니즘 문화가 들어오고 또 철학 개념이 들어오면서[4] 선지자나 성경[5] 뿐만 아니라 자연에도 하나님의 속성이 들어났다는 자연계시의 생각이 존재했다.[6] 중세에 아퀴나스 때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유행했고 이러한 영항 때문인지 자연 관찰에서 신을 찾으려는 시도나 경향이 존재했다. (제1원인론 따위) 이신론은 어느 정도는 이런 경향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있다.

계몽주의 시대 이신론에 기반하여 생겨난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프리메이슨이다. 이신론은 이 세상에 간섭하시는 인격적 주재자로서의 하느님을 부정하기에[7] 이런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는 계시종교인 가톨릭 교리와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프리메이슨의 활동이 실제 반가톨릭 사조로 나타나자 가톨릭교회는 프리메이슨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게 되었다. 교황청은 가톨릭 신자의 프리메이슨 가입을 자동 파문 사유로 규정하였으며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8] 이후 합리주의, 이성주의에 입각해 종교나 경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또 이를 의지하지 않고 신을 파악하고자 힘쓴 이신론은 현대의 무신론 사조에 영향을 준다.

대표적인 이신론자들은 미국 건국의 주역중 하나인 토머스 제퍼슨이 있는데, 제퍼슨 미국 3대 대통령은 그리스도의 기적전승을 "천박한 속임수"라고 비난했다.

5. 다른 매체에서의 등장[편집]

6. 유명한 이신론자들[편집]

 

6.1. 고대 그리스[편집]

6.2. 근대[편집]

6.2.1. 영국[편집]

6.2.2. 프랑스[편집]

6.2.3. 독일[편집]

6.2.4. 미국[편집]

6.3. 현대[편집]

7. 같이 보기[편집]

8. 여담[편집]

  • 한편 동양의 유교도 이신론에 해당한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 주나라 이후 유교 문화권에서는 내세나 신에 관한 별도의 경전은 없으나, 그렇다고 하늘(天)의 존재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때 이 '하늘(天)' 개념을 하나라의 인격신이 주나라들어 인문화된 것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공자 이후 유학에서는 하늘(天)이 이치, 또는 일종의 대세를 나타내는 데 쓰이곤 했다. 이런 이해는 공자맹자 등의 저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11]

    실제로 계몽주의 시대의 이신론은 유교와 다소 관련성이 있다. 이 무렵 유럽에서는 중국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어오면서 공자, 맹자 철학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가 생겨나고 있었고, 서구 입장에서 이신론적인 중국 철학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상당히 흥미롭게 인식되고 있었다. 볼테르는 유교를 칭찬하는 서술을 하였으며[12] 청나라의 강희제를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보았다.

[1] 이와 비슷하지만, 창조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연적인 방식'으로 세계의 운행에 관여한다고 믿는 역사적 이신론(Historical Deism)도 있다.[2] 사무엘 클라크는,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 / 세상사에 관여함 / 도덕적인 존재 / 내세에서의 심판과 상벌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4가지 유형으로 이신론을 구별하였다. 지금의 분류와는 다른 점이 많다. 다만 이신론이 무신론, 유신론, 범신론과는 다르다는 것을 차례대로 증명함으로써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3] 사실 이 시대까지도 유럽 사상에서 기독교를 배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에 이신론자들은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4] 이 중 대표적인 것 요한복음 서문에 예수를 자연법칙 또는 신의 힘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비인격적인 로고스(logos)를 빌려와서 설명한 것이다.[5] 이 때는 신약을 포함한 성경이 정경화 작업이 안 됐으니 구약 한정.[6] 로마서 1:19~20 참고.[7] 이 논리는 이 세상에 간섭하는 신을 전제로 한 기독교의 중요교리인 성육신의 부정으로 연결될 위험이 다분히 크다.[8] 개신교도 인격신을 믿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반가톨릭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개신교 목회자들까지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아이러니.[9] 다만 이쪽에서 말하는 신은 보통 일반적으로 생각 하는 신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10] 명분은 이신론이지만 실상은 항목 참조,[11] 다만 묵자는 세상에 개입하는 인격신을 믿었음으로 이신론에 해당되지 않는다.[12] Voltaire and China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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