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trich Bonhoeffer
1. 생애와 신학
디트리히 본회퍼(독일어: Dietrich Bonhoeffer, 1906년 2월 4일~1945년 4월 9일)는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며, 반 나치운동가이다. 고백교회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외국 첩보국(독일어: Abwehr)[1]의 구성원에 의해 진행된 계획에 가담하였다. 그는 1943년 3월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결국 독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1945년 4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1906년 2월 4일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정신과 의사인 칼 본회퍼와 파울라본회퍼 사이에서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1513년 네덜란드에서 독일로 이주해온 중산층의 부잣집이었는데, 뛰어난 학문적 실력과 지위를 갖고 있었다. 그의 집안은 루터교회에서 신앙생활해온 전통적인 개신교 가문이었다. 할아버지는 프로이센 왕실에서 궁정 목사였고, 어머니 파울라도 자녀들에게 성서 이야기, 시, 노래를 가르칠 정도로 믿음과 교양이 모두 훌륭하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아버지는 신앙에 무관심했다. 본회퍼가 신학자가 되려고 하자 형제들과 부모는 "종교는 부르주아에게 어울린다. 다른 학문을 하도록 하라"면서 반대했는데, "그렇다면 내가 바꾸겠습니다."라면서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형제들과 부모는 본회퍼의 뜻을 존중했고, 본회퍼도 자신의 신념을 고집했다.
어려서부터 신학자가 되고 싶었던 본회퍼는 1923년 튀빙겐 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 (현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는데, 베를린대학교 졸업시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2]를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 《성도의 교제》는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가 칭찬할 정도로 훌륭한 논문이었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나치에 저항하다가 처형당한 순교자이기 이전에 뛰어난 신학자였다는 사실은 신학을 공부할 때에 시대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비판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 곧 신학수업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역사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던 본회퍼는 로마에서도 공부하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례(Liturgy, 예전)와 교의를 비판적으로 경험하였다. 베를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한 그는 에스파냐의 독일인 루터교회에서 부목사로 1년간 목회하였다. 논문 《행동과 존재》(독일어: Akt und Sein)을 발표하여 교수자격을 취득한 본회퍼는 베를린대학교의 신학부 강사로 임명되었으며, 25세부터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는 교회법에 따라 1년뒤에 루터교회의 목사 안수를 받았다. 진보 신학의 명문으로 불리는 유니언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유학시절에 그는 백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받는 흑인들의 삶 속에서 민중들과 어울린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유니언 신학교에서 본회퍼는 프랑스 개신교 성직자인 장 라셰르(프랑스어: Jean Lasserre) 목사의 영향으로 예수의 산상수훈에 신학적 뿌리를 두는 기독교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1933년 집권한 나치의 독재에 대해서 독일교회는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영혼구원을 위해 예수를 보내 주셨듯이 지금 현재 독일의 "경제적, 사회적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히틀러를 보내주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히틀러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이였고, 단지 히틀러를 우상으로 치부하여 숭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본회퍼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히틀러는 독일국민들을 히틀러라는 우상을 숭배하게 한다고 경고하는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었고, 결국 방송은 중단 당하고 말았다. 신학자 칼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할 교회가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발표한 원고를 신문에 넣었다. 이때부터 본회퍼는 나치의 미움을 받기 시작하였다.[3]
당시 독일교회에서는 본회퍼처럼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나치에 반대하는 신학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고백교회를 결성하여 그들의 양심을 실천했다. 하지만 나치의 탄압으로 고백교회 참여자들은 박해받았는데, 본회퍼의 경우 1943년 4월 체포되어 2년간 수용소를 전전했다. 이때 그가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는 《옥중서간》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본회퍼가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하였다는 증거가 확보되면서, 1945년 4월 9일 새벽, 플로센뷔르크 수용소(Flossenbürg concentration camp)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유언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였으며, 그의 묘비에 새겨진 문장은 "디트리히 본회퍼–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신학은 고난을 함께 나누는 삶의 실천이다. 디트리히 본회퍼에 대한 나치의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미국으로 망명할 수도 있었다. 개신교 신학자이자 유니온 신학교 교수로 일하던 라인홀트 니부어가 신학 교수 자리를 마련한 뒤, 초대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회퍼는 독일 국민들과 고난을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났을 때 독일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동참할 수 없다면서 이를 거부했다.
본회퍼는 덴마크의 기독교 사상가 키르케고르의 영향으로, 《나를 따르라》(1937년 출간)에서 독일교회가 값싼 은혜를 나누고 있다고 비평했다. 그가 말하는 값싼 은혜는 "죄에 대한 고백이 없는 성만찬, 죄에 대한 회개 없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설교, (세례의 의미를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설명하는)예식을 무시한 세례, 회개가 없는 면죄의 확인"이다.[4] 성례전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값싸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하는 값싼 은혜는 그리스도를 따름이 없는 은혜, 그리스도를 따름에 따른 고난이 없는 은혜, 성육신의 실천이 없는 은혜이기도 하다. 즉,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이 없는 신앙은 싸구려 신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적이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값비싼 은혜를 얻기 위한 싸움이다. 값싼 은혜는 싸구려 은혜, 헐값의 용서, 헐값의 위로, 헐값의 성만찬이다. 그것은 교회의 무진장한 저장고에서 몰지각한 손으로 생각없이 무한정 쏟아내는 은혜이다.(중략)교훈과 원리의 체계도 값싼 은혜이다.(중략)죄를 뉘우치지 않고 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세상은 자신의 죄를 감싸줄 값싼 커버를 값싼 은혜에서 얻는다. 값싼 은혜는 하나님의 생생한 말씀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부정한다. 값싼 은혜는 죄인을 의롭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의롭다고 하는 것이다. 은혜가 홀로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해줄 테니 모든 것이 케케묵은 상태로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 (중략) 값싼 은혜는 우리가 스스로 취한 은혜에 불과하다. 싸구려 은혜는 그리스도를 본받음이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곧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은혜[5]에 불과하다.[6]
본회퍼는 자신이 경험했던 반나치 운동을 통해서 이상적인 교회상을 끄집어 내었다. 그는 삐뚤어진 세상 즉, 독재가 가능한 그 당시의 현실에 저항하는 교회상을 그려 내면서, 신학적 교리를 배우고 논쟁하는 교회가 아닌, 세상의 불의와 싸우는 정의에 불타는 교회를 원했다. 그런 그의 생각에 신학을 맞추어 낸 것이 교회와 세상이 변증법적으로 통일되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위임들을 '노동', '결혼', '정부 혹은 문화', '교회'의 네가지를 통하여 발견하였고, 교회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자로 행동한다고 보았다.
- 이마누엘 칸트 : 본회퍼는 칸트의 주관주의 선험론과 구성설에 나오는 인간 인식의 특성들을 보다 자세하게 분석하고 설명하였다.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 헤겔은 칸트의 관점에다가 계몽주의의 낙관론을 가미하였다. 또한 이 낙관론이 변증법을 통해서 절대치를 획득할 수 있다고 예언하였다.
- 폴 틸리히
- 마르틴 루터 : 본회퍼는 인간 안에 내재된 헛된 교만을 루터를 인용해 '자기 안으로 구부러진 마음'이라고 지었다.
- 라인홀드 니부어 : 본회퍼는 미국 방문시, 유니언 신학교 (뉴욕시)에서 니부어를 만나서 교회의 지평이 구체성에서 정체성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였다.[9]
2. 성도의 교제 - 박사학위 제출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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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trich Bonhoeffer’s Sanctorum Communio: A Theological Study of the Sociology of the Church디트리히 본회퍼의 산토르툼 코뮈니오: 교회사회학의 신학적 연구
Posted on 게시 대상 January 20, 2009 by 에 의해 Wyman와이먼
Try as I might, I simply cannot believe that a young man in his twenties could write such a mind-boggling, thought-provoking, and insightful masterpiece as Sanctorum Communio.아무리 노력해도 20대의 젊은이가 산토르툼 코뮈니오처럼 마음 졸이며, 사색적이고 통찰력 있는 걸작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I feel that I will never think of “church” in quite the same way again. 다시는 '교회'를 같은 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In fact, I feel like I’ve just been given a view of a mountain that I know I must go back and climb again, but the overall sensation of its height is so startling that I’m not quite sure how to begin. 사실, 나는 이제 막 산에 대한 경치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 산의 높이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너무 놀라워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Maybe, in a weird way, a kind of awed despair is the mark of all truly great books?) (어쩌면, 이상하게 보면 일종의 경각심이 모든 진정한 위대한 책의 표식이 아닐까?) They say that Barth’s commentary on Romans fell on the playground of the liberal theologians like an atom bomb. 그들은 바스의 로마인에 대한 논평이 원자폭탄처럼 진보주의 신학자들의 운동장에 떨어졌다고 말한다. Well, Sanctorum Communio has fallen into the playground of this Baptist pastor in just the same way. 음, 산토르툼 코뮈니오는 똑같이 이 침례교 목사의 운동장에 빠져버렸어.
Originally published in 1930, three years after it initially appeared as Bonhoeffer’s doctoral dissertation (and 15 years before Bonhoeffer would be put to death), Sanctorum Communio: A Theological Study of the Sociology of the Church represents a staggering achievement.본회퍼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처음 등장한 지 3년 뒤인 1930년에 처음 출판된 산토툼 코뮈니오: 교회 사회학의 신학 연구는 놀라운 업적을 나타낸다. Karl Barth would later say of this work, “I openly confess that I have misgivings whether I can even maintain the high level reached by Bonhoeffer, saying no less in my own words and context, and saying it no less forcefully, than did this young man so many years ago” (2). 칼 바르스는 나중에 이 작품에 대해 "본회퍼가 도달한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내가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고백한다"면서 "내 자신의 말과 맥락에서 그 이하도 말할 수 없고, 또 그 이하도 힘없이 말할 수 없다"(2)고 말했다. He would also call this book “a miracle.” 그는 또한 이 책을 "기적"이라고 부르곤 했다.
It is steeped in sociological categories that many readers might find offputting.그것은 많은 독자들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학적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 I do not claim to have followed some of the more technical aspects of the social philosophy sections, but struggling through these parts is reward enough in and of itself to warrant the effort. 나는 사회철학 분야의 좀 더 기술적인 측면을 따랐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부분을 통해 고군분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그 노력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한 보상이다. Even so, I daresay that the work is accessible enough to anybody who cares deeply about the church. 그렇더라도 교회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일을 충분히 접할 수 있다고 감히 다짐한다. I found it to be so anyway. (In a strange way this book reminds of Moby Dick. 어쨌든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상하게도 이 책은 모비 딕을 연상시킨다. I had to sludge through some of the sailing history and terminology that was, frankly, foreign to me. 나는 솔직히 내게는 낯선 항해 역사와 용어들을 대충 훑어봐야 했다. But the story, and, on hindsight, the foundation that the denser parts of that book lend to the story, was overwhelming.) 그러나 그 이야기, 그리고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 책의 더 촘촘한 부분이 이야기에 빌려주는 토대가 압도적이었다.)
I had certain disagreements with Bonhoeffer’s ecclesiology.나는 본회퍼의 교리학과는 확실히 의견이 맞지 않았다. His approach to church discipline is, in my opinion, hopelessly muddled and amazingly oversimplified. 교회 규율에 대한 그의 접근은 내 생각에 절망적일 정도로 혼란스럽고 놀라울 정도로 지나치게 단순화되었다. But I do recall seeing a more biblical handling of it in his Finkenwalde guide, Life Together, so I want to reserve passing too harsh a judgment on him in this regard. 그러나 나는 그의 핀켄발데 가이드인 "Life Together"에서 그것을 보다 성서적으로 다루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점에서 그에게 너무 가혹한 판결을 내리는 것을 보류하고 싶다. Furthermore, I (obviously) have reservations about his handling of infant baptism. 게다가, 나는 (분명히) 그가 유아 세례를 다루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I thought it was pretty par-for-the-course as far as such arguments go. 나는 그런 논쟁에 관해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There was nothing terribly new about it. 그것에는 전혀 새로운 것이 없었다. But, in truth, I remain, to date, firmly unconvinced, though a bit more appreciative than I would have been ten years ago. 그러나, 사실, 나는 10년 전에 비해 조금 더 감사하긴 했지만, 현재까지 확고하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Bonhoeffer begins by describing the fundamental sociality of existence.본회퍼는 존재의 근본적인 사회성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He does this by showing the necessity for one person to acknowledge the other as a genuine person. 그는 한 사람이 상대방을 진실한 사람으로 인정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한다. Only when this happens can we speak of the “individual” existing: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우리는 현존하는 "개인"을 말할 수 있다.
“When the concrete ethical barrier of the other person is acknowledged or, alternatively, when the person is compelled to acknowledge it, we have made a fundamental step that allows us to grasp the social ontic ethical basic-relations of persons…"상대방의 구체적인 윤리적 장벽이 인정될 때 또는 인정하도록 강요될 때, 우리는 개인의 사회적 윤리적 기본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근본적인 조치를 취했다.Thus, the individual exists only in relation to an ‘other’; individual does not mean solitary.따라서 개인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만 존재한다. 개인은 독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On the contrary, for the individual to exist, ‘others’ must necessarily be there” (50-51). 반대로 개인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50-51)는 것이다.
But this understanding of “I” and “You” (which Bonhoeffer calls “the social basic category…the I-You-relation) is itself a work of God.그러나 '나'와 '너'(본회퍼가 '사회적 기본 범주…아이-유-관계'라고 부르는)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그 자체로 신의 작품이다.
“God or the Holy Spirit joins the concrete You; only through God’s active working does the other become a You to me from whom my I arises.`하나님이나 성령께서 너희를 구체화시키시니, 오직 하나님의 적극적인 일을 통해서만 내가 태어난 나에게 다른 한 사람이 너희가 된다. In other words, every human You is an image of the divine You” (54-55) 즉, 모든 인간 유는 신성한 유에 대한 형상이다."(54-555)
What strikes me about Bonhoeffer’s argument is how it aims a blow directly at the fragmented, isolationist understanding of the person that has overwhelmed not only our basic relational assumptions but also, in evangelicalism, our ecclesiology.본회퍼의 주장에 대해 나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관계적 가정뿐만 아니라 복음주의에서 우리의 교회론에서도 압도해 온 사람에 대한 단편적이고 고립주의적인 이해에 어떻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려는가 하는 것이다. We have become a people of the lone individual, or so we like to think. 우리는 외로운 개인의 사람들이 되었다, 또는 그래서 우리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But relationality is fundamentally necessary and also God-enabled. 그러나 관계성은 근본적으로 필요하며 또한 신이 가능하게 한다. In a footnote, Bonhoeffer praises his doctoral supervisor (or whatever he was called at the time), Dr. Reinhold Seeberg, for presenting “the idea of sociality as an inherent component of original human nature. 본회퍼 박사는 각주를 통해 박사학위 소장인 라인홀드 시버그 박사가 "사회성이란 원래 인간 본성의 내재적 요소라는 생각을 제시해 주는 것"이라고 칭찬했다. He thereby brought back into theology an important doctrine without which the ideas of original sin and especially the church could not be fully understood” (64). 이에 따라 그는 원죄와 특히 교회의 사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중요한 교리를 신학으로 다시 가져왔다."(64)
I do not know about the truthfulness of this statement from a historical-theological perspective (whether or not it was Seeberg who brought this understanding back), but I do believe that the sentiment is true.나는 이 진술의 진실성에 대해 역사적-신학적 관점에서 알지는 못하지만(이러한 이해를 되살린 것이 시버그였든 아니든) 그 정서가 사실이라고 믿는다. In fact, I believe that our rejection of this sentiment (whether explicitly or implicitly) has led to the weakening of the church in profound and tragic ways. 사실 나는 우리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이러한 정서에 대한 거부감이 교회의 심오하고 비극적인 약화를 초래했다고 믿는다.
Bonhoeffer goes even further in this direction:본회퍼는 이 방향으로 더 나아가고 있다.
“It is our view that there would be no self-consciousness without community – or better, that self-consciousness arises concurrently with the consciousness of existing in community."공동체가 없다면, 또는 더 나은 것은, 공동체에 존재하는 의식과 동시에 자기 의식이 발생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 Second, we assert that will is by its nature oriented toward other wills” (70). 둘째, 우리는 의지가 다른 의지를 지향하는 본성에 의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70)
Yes, but does this destroy the reality of the individual?그렇다, 하지만 이것이 개인의 현실을 파괴하는 것인가? To be sure, we are individuals-run-amuck, but can we not speak of “the individual”? 확실히, 우리는 개인-런-아맥이지만, "개인"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을까? Bonhoeffer’s answer is telling and, I believe, quite profound: 본회퍼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나는, 상당히 심오하다고 믿는다.
“The universal person of God does not think of people as isolated individual beings, but in a natural state of communication with other human beings."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람은 사람을 고립된 개별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인간과의 자연스러운 소통 상태로 생각한다. Furthermore, in relations with others, I do not merely satisfy one side of my structurally closed being as spirit; rather, only here do I discover my reality, i.e., my I-ness.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단지 구조적으로 닫힌 내 존재의 한 측면을 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기서만 나의 현실, 즉 나의 본질을 발견한다. God created man and woman directed to one another. 신은 서로 향하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 God does not desire a history of individual human beings, but the history of the human community. 하나님은 개별적인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공동체의 역사를 원하신다. However, God does not want a community that absorbs the individual into itself, but a community of human beings. 그러나 신은 개인을 흡수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인간의 공동체를 원한다. In God’s eyes, community and individual exist in the same moment and rest in one another. 하나님의 눈에는 공동체와 개인이 같은 순간에 존재하고 서로 안식한다. The collective unit and the individual unit have the same structure in God’s eyes. 집합단위와 개별단위는 하나님의 눈에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On these basic-relations rest the concepts of the religious community and the church” (80). 이러한 기본적 관계에 대해서는 종교계와 교회의 개념들을 쉬게 한다."(80)
Bonhoeffer also points to the potential benefits of conflict in communities: “Genuine life arises only in the conflict of wills; strength unfolds only in strife.본회퍼는 또 "진정한 삶은 의지의 충돌에서만 일어나고, 힘은 투쟁 속에서만 일어난다"고 지역사회의 갈등의 잠재적인 이점을 지적한다. This is an old insight” (85). 이것은 낡은 통찰이다."(85) This is a welcome word for those who wrongly think that all conflict is inherently bad or injurious to the body of Christ. 이것은 모든 갈등이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해롭거나 해롭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말이다.
He then moves to the issue of sin and human culpability.그리고 나서 그는 죄와 인간의 과실 문제로 옮겨간다. He argues for an individual and corporate understanding of sin, whereby, in a very real sense, my sins represent the sins of the whole world. 그는 죄악에 대한 개인과 기업의 이해를 주장하는데, 아주 실제적인 의미에서 내 죄는 전 세계의 죄악들을 대변한다. This opens up the very real possibility for corporate repentance. 이것은 기업의 회개 가능성을 열어준다.
When Bonhoeffer moves into a more specific discussion of the church, he sees these sociological realities as reaching their apex in the body of Christ: “There is in fact only one religion in which the idea of community is an integral element of its nature, and that is Christianity” (130-131).본회퍼는 교회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갈 때, 이러한 사회학적 현실들이 그리스도의 신체에 정점에 도달하는 것으로 본다: "사실 공동체의 사상이 그 본성의 필수 요소인 종교는 하나뿐이고, 그것이 기독교다."(130-131) Furthermore, Christ is present in the church: “The church is the presence of Christ in the same way that Christ is the presence of God” (138). 나아가 '교회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존재와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존재'(138)라는 예수가 교회에 출석한다. And He is poignantly present because of “the paradoxical reality of a community-of-the-cross, which contains within itself the contradiction of simultaneously representing utmost solitude and closest community. 그리고 그는 "최고의 고독과 가장 가까운 공동체를 동시에 대변하는 모순을 그 안에 담고 있는 십자가 공동체의 역설적 현실" 때문에 침착하게 존재한다. And this is the specifically Christian church-community” (151). 그리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기독교-교회 공동체(151년)이다.
Here is one of the great strengths of Sanctorum Communio: it’s argument that the church is an inherently necessary definitional reality.여기 산토툼 코뮈니오의 큰 장점 중 하나가 있다: 교회가 본질적으로 필요한 정의적 현실이라는 주장이다. How badly do Southern Baptists, among others, need to return to this kind of understanding of the church? 남침례자들은, 그 중에서도 교회에 대한 이런 종류의 이해로 얼마나돌아가야 하는가? The church is not a voluntary association of separated, isolated, “saved” individuals. 교회는 분리되고 고립되고 "저장된" 개인들의 자발적인 연합이 아니다. The church is the necessary definition and identity of the community of the cross which is comprised of all of those who are in Christ.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 십자가 공동체의 필요한 정의와 정체성이다.
Bonhoeffer goes on to some very helpful discussions of forgiveness of sin, the Lord’s Supper, the need for confession, and the interchange of wills within the body of Christ.본회퍼는 죄에 대한 용서, 주님의 만찬, 고백의 필요성,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의지의 교환에 대한 매우 유익한 토론에 계속된다. I found all of this illuminating, even when I disagreed. 나는 이 모든 것이 내가 동의하지 않을 때 조차도 빛을 발한다는 것을 알았다.
I’ve only scratched the surface of the book in this review, but I do hope it has given a picture of the kind of thinking and wisdom you’ll find in Sanctorum Communio.나는 이 리뷰에서 책의 겉면을 긁어냈을 뿐이지만, 나는 그것이 당신이 산록툼 코뮈니오에서 찾을 수 있는 일종의 사고와 지혜의 그림을 주었기를 바란다. This book is a masterpiece and a treasure. 이 책은 걸작이며 보물이다. Every pastor should read this and drink long and deep from this well. 모든 목회자는 이것을 읽고 이 우물에서 길고 깊은 술을 마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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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Dietrich Bonhoeffer’s Sanctorum Communio: A Theological Study of the Sociology of the Church” '디에트리히 본회퍼의 산토르툼 코뮈니오: 교회사회학의 신학적 연구'에 대한 2가지 생각
- Ronald Hansen on November 19, 2016 at 3:39 pmsaid:로널드 핸슨 온은 이렇게 말했다.Reply ↓회신 ↓
- Wyman와이먼 on November 20, 2016 at 4:30 amsaid: 다음과 같이 말했다.Reply ↓회신 ↓
- Thank you for the comment Ronald.로날드 코멘트 고마워. Sanctorum Communio is a very important book! Sanctorum Communio는 매우 중요한 책이다! I need to reread it actually. 사실 다시 읽어야 해. Barth called that book a miracle. 바르스는 그 책을 기적이라고 불렀다.
- Thank You for this review.이 리뷰에 감사한다. I am reading Eric Mataxes “Bonhoeffer” and the Sanctorum Communio greatly interests me. 나는 Eric Mataxes "Bonhoeffer"를 읽고 있는데 산록툼 코뮈니오가 나를 매우 흥미롭게 한다.
It sounds like it the understanding in it is some of what our current No. 그 안에 있는 이해가 현재 우리의 No의 일부인 것 같다. American church needs for revival. 미국 교회는 부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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