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미스
두나미스(그리스어: δυναμις)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에네르게이아의 대개념으로 쓰이는 술어이다. 가능태(可能態)라고도 한다. 좀 더 자세히는 ->https://jesus4today.tistory.com/1 를 참고하라
능력(power)과 권세(권능, authority)의 관계
Views 23666Harvey Cox가 말하는 성령의 능력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세계에서 직면하고 있는 가장 미묘하고 심각한 도전 즉 세속의 힘에 잘 대처하도록 도와주는데 필요한 것은 성령의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에 대한 철저한 이해이다. (Harvey Cox,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 제5회 국제신학학술세미나 자료집, p.42, 미국 하바드대학 종교학 교수)
Harvey Cox의 “성령의 권능에 대한 철저한 이해이다”라는 것은 맞는 말인데 불행하게도 그는 성경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성령의 권능에 대하여 철저히 연구하지 아니 하였다. 만약에 그가 성령의 권능을 철저히 연구하였다면 본인이 저술한 이러이러한 책에 성령의 권능을 자세히 연구하여 밝히고 있으니 본인의 저서를 읽으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런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조용기 목사가 말하는 능력과 권세(권능)
성령세례(충만)는 중생한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는데 필요한 봉사의 능력과 권능을 갖기 위하여 반드시 받아야 한다. (조용기 목사, ‘성령론’ p.112,140-1)
“너희는 하늘나라에 기록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9).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다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어 영으로 거듭나자 마자 어찌할 수 없이 마귀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받게 된 것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런 권세를 예수 안에서 오늘 이 시간에 가지고 있습니다. 중생과 동시에 얻은 예수인으로서의 권세를 활용해야만 될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 ‘극한 슬픔을 극복하고’ p.115-7,127)
눅 10:17-19의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 결단코 없으리라.” 능력과 권세는 같은 말처럼 생각되지만 이는 대단히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능력은 헬라어로 ‘두나미스’입니다. 이것은 물려받은 힘을 말합니다. 자동차의 엔진의 힘도, 폭탄이 터지는 힘도 능력입니다. 그런데 권세는 헬라어로 ‘익수시아’인데 이것은 능력보다 높습니다. 건강한 자녀가 태권도 7,8단의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연로한 칠순 부모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이는 자녀들이 칠순 부모의 권세에 순종해야 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음으로 단호히 마귀의 능력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권세를 받습니다. (조용기 목사, ‘조용기 목사 설교 전집’ 제6권 1996, p.224)
이상에서 조용기 목사는 “성령세례(충만)는 중생한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는데 필요한 봉사의 능력과 권능을 갖기 위하여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하여 중생한 후에 능력과 권능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여러분이 예수를 믿어 영으로 거듭나자 마자 어찌할 수 없이 마귀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받게 된 것이다. 여러분과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권세를 받습니다”라고 하여 중생할 때 권세(권능)를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의 “중생 후에 능력과 권능을 받는다”는 주장과 “중생할 때 권세(권능)를 받는다”는 주장은 완전히 모순된 것이다. 이상에서 조용기 목사는 “능력은 헬라어로 ‘두나미스’입니다. 이것은 물려받은 힘을 말합니다. 권세는 헬라어로 ‘익수시아’인데 이것은 능력보다 높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음으로 단호히 마귀의 능력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여 능력(두나미스)과 권세(익수시아)는 서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릇된 주장이다.
명성훈 목사가 말하는 권세와 권능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authority)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권능(power)을 허락하십니다. 권세는 법적 신분이지만 권능은 실제적인 힘입니다. 성령께서는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할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을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증인이 됩니다. 증인이란 증거할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경찰은 제지를 거부하고 덤벼드는 도둑이 있을 때 단지 경찰이라는 법적 신분만 가지고는 도둑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도둑이 덤벼들 때 그 도둑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이 있어야 유능한 경찰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법적 신분 외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도 가지고 있어야 원수 마귀의 공격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명성훈 목사, ‘성령과 함께’ p.63,75-76)
이상에서 명성훈 목사는 “권세(authority)를 법적 신분이지만 권능(power)은 실제적인 힘입니다”라고 하여 권세(authority)와 권능(power)은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하지 않고 있다. 위에서 조용기 목사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음으로 단호히 마귀의 능력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권세를 받습니다” 라고 하여 마귀는 권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아래의 성경기록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조용기 목사와 그의 제자가 된 명성훈 목사의 주장은 전혀 그릇된 것이 다.
마귀도 권세(권능)를 가지고 있다는 성경구절
계 9: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KJV And there came out of the smoke locusts upon the earth: and unto them was given power (eksusia), as the scorpions of the earth have power (eksusia).
NIV And out of the smoke locusts came down upon the earth and were given power (eksusia) like that of scorpions of the earth.
행 26:18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KJV To open their eyes, and to turn them from darkness to light, and from the power (eksusia) of Satan unto God,
NIV to open their eyes and turn them from darkness to light, and from the power (eksusia) of Satan to God,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KJV Who hath delivered us from the power (eksusia) of darkness, and hath translated us into the kingdom of his dear Son:
NIV For he has rescued us from the dominion (eksusia) of darkness and brought us into the kingdom of the Son he loves,
계 9:3에 “전갈의 권세”(power, eksusia), 행 26:18에 “사단의 권세”(power, eksusia), 골 1:13에 “흑암의 권세”(power, eksusia)라 하여 마귀도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용기 목사는 마귀는 권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은 이상의 성경을 읽어보지 않고 자의적으로 주장한 그릇된 것이다.
권세(권능)에는 큰 권세(권능)와 작은 권세(권능)가 있다.
골 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KJV Ye are complete in him, which is the head of all principality (arch) and power (eksusia).
NIV You have been given fullness in Christ, who is the head over every power (arch) and authority (eksusia).
계 3:8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KJV for thou hast a little strength (dunamis), and hast kept my word, and hast not denied my name.
NIV I know that you have little strength (dunamis), yet you have kept my word and have not denied my name.
계 9:3에 “전갈의 권세”(power, eksusia), 행 26:18에 “사단의 권세”(power, eksusia), 골 1:13에 “흑암의 권세”(power, eksusia)라고 하여 마귀도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성령세례를 받은 신자들도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마귀가 갖고 있는 권세는 작은 것이지만 성령세례를 통해 갖게 되는 권세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권세이다. 하나님과 마귀의 관계는 상전과 종의 관계로서 마귀는 하나님이 부리시는 종이다. 쉬운 예를 들면 육군의 사단장은 갖고 있는 권세와 일등병이 갖는 권세와 차이가 있다. 마귀가 갖고 있는 권세는 일등병이 갖고 있는 권세와 같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갖게 되는 권세는 일등병이 갖고 있는 권세를 통제하고 지배하며 굴복시킬 수 있는 사단장이 갖고 있는 권세와 같은 권세이다. 성령님을 통해 주시는 권세는 마귀를 통제하고 굴복시키는 권세로서 마치 사단장과 일등병 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power’와 ‘authority’의 관계
행 1:8의 헬라어 ‘dunamis’를 한글성경에서는 “권능”으로, 영어성경에서는 ‘power’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dunamis’는 ‘power’와 ‘authority’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단어의 뜻을 바로 성경을 통하여 확인하면 성령세례를 받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인은 비록 수십년의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린 아이의 신앙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또한 성령세례를 받지 않는 사역자 곧 성령님의 권능을 받지 않는 사역자는 아직 사역자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성경을 통하여 밝혀진다. 한글에서 ‘권능’이란 말은 권세(authority)와 능력(power)을 합친 합성어로서 권세(authority)와 능력(power)의 뜻을 가지고 있다. 성령세례를 통하여 받게 되는 성령님의 권능이란 무슨 뜻인가를 살펴보자.
눅 20:1-2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eksusia, authority)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eksusia, authority)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행 4:5-7 이튿날에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예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dunamis, power)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눅 20:1-2에서 “무슨 권세(eksusia, authority)로 이런 일을 하느냐,” 그리고 행 4:5-7에서 “무슨 권세(dunamis, power)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라고 하여 ‘authority’(eksusia)와 ‘power’(dunamis)는 전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요 17:2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eksusia, authority)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라고 하였고, 마 28:18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eksusia, authority)를 내게 주셨으니”라 하였고, 눅 4:14에서는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dunamis, power)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라 하였다. 따라서 요 17:2, 마 28:18에 기록된 권세(eksusia, authority)와 눅 4:14에 기록된 권능 (dunamis, power)은 전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eksusia, KJV는 power로 번역, NIV는 authority로 번역)을 주시니라.
눅 9:1-2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귀심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dunamis, KJV-power, NIV-power)과(and, kai) 권세(eksusia, KJV-authority, NIV-authority)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은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마 10:1의 ‘eksusia’를 KJV에서는 ‘power’로 번역하고, NIV에서는 ‘authority’로 번역하여 ‘eksusia’는 영어의 ‘power’와 ‘authority’의 뜻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마 10:1에서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eksusia’를 주시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면서, 눅 9:1-2에서는 제자들에게 ‘dunamis’와 ‘eksusia’를 동시에 주시어 복음사역에 임하게 하시었다. 여기에서 ‘dunamis’와 ‘eksusia’가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 문제가 생긴다. 똑같은 예수님의 똑같은 말씀을 마태와 누가가 서로 각각 다르게 기록했다면 모순이다. 그러나 ‘dunamis’와 ‘eksusia’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음으로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행 1:8에서는 ‘dunamis’를, 눅 10:19에서는 ‘eksusia’를, 눅 9:1-2에서는 ‘dunamis’와 ‘eksusia’를 주시어 복음전도와 병고침의 사역에 임하게 하시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경우에 ‘dunamis’와 ‘eksusia’의 뜻이 다르게 사용하셨다면 이는 모순이다. 그러나 ‘dunamis’와 ‘eksusia’는 서로 같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단어 중에서 어느 한 단어만 사용해도 되며, 눅 9:1-2에서와 같이 두 단어를 동시에 사용해도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눅 9:1-2에 나오는 “과”(and, kai)는 서로 다른 뜻의 두 단어를 연결시키는 접속사 “과”의 뜻이 아니라 “곧, 즉”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요 19:10-11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eksusia, authority)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eksusia, authority)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eksusia, authority)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지상의 이스라엘에 계실 때에 이스라엘 총독이었다. 빌라도 총독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는 권세(eksusia, authority)는 로마의 황제가 준 것이다. 빌라도가 로마의 황제로부터 총독의 권세를 받지 아니했다면 그는 총독이 결코 될 수 없으며 절대로 총독이 아니다. 한 나라의 경찰관이 되려고 한다면 그는 그 나라의 시민이어야 하고 대통령이 그를 경찰관로서 임명하여 경찰로서의 권세를 주어야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가 경찰관으로서의 임명장을 받아야 경찰관이 되어 경찰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경찰관의 임명장을 받지 아니하면 그는 절대로 경찰관이 아니다. 여기에서 임명장은 ‘권위, 권세, 권능’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사회에서 어느 학교의 정식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사범학교나 혹은 특정학교에서 교사가 되기 위한 소정의 교과과정을 이수하고 정부기관으로부터 교사 자격증 내지는 교사의 임명장을 부여 받아야 한다. 비록 그가 교사가 되기 위한 소정의 과정을 이수했다고 하더라도 교사자격증이나 교사의 임명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 정식 교사가 아니다. 교사의 자격증이나 교사의 임명장은 교사가 갖게 되는 권위 곧 권세(authority)를 상징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초중고의 학교를 마치고 장성하여 어른으로서 행세를 하고 어른으로서의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면 각 나라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18세가 되어야 하고, 18세가 되었다는 출생증명서가 있어야 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하면 운전면허증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이 맡긴 복음사역을 감당하는 복음의 사역자들은 비록 그가 신학교를 졸업하여 목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성령세례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님의 권능(power and authority)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아직 복음사역자로서의 임명장을 받지 못한 것이다.
성령세례를 통한 성령님의 권능을 받는 것은 경찰관의 임명장을 받는 것과 같으며, 교사가 되는 자격증 내지는 임명장에 해당되며,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운전면허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군병이라 말한다. 군복을 입었지만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지 아니했다면 아직 정식 군인이 아니다. 민간인이 군인이 되고자 할 경우에 군에 입대하면 군복으로 갈아입게 되고 군인이 되는 각종 훈련을 받게 된다. 이때의 군인은 분명히 군인인데 계급장이 없는 군인이다. 소정의 기본적인 군사훈련의 과정을 마치면 일등병 또는 소위의 계급장을 달게 되어 정식 군인이 된다. 계급장은 권위와 권세를 상징한다. 사관학교의 4년간의 전 교육과정을 이수했다고 하여 그는 장교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졸업과 동시에 소위라는 계급장을 부여받아야 그는 정식 장교가 될 수 있다. 계급장이 없는 훈련병, 계급장이 없는 사관생도는 분명히 군인은 군인이지만 정식 군인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십자가 군병이 된다. 십자가의 군병이 되는 조건은 예수님을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세주(Savior and Lord)로 인정하고 영접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누구든지 십자가가 군병이 된다. 십자가의 군병의 사명은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세상에서의 일반 전쟁에서 계급장이 없는 군인은 없다. 이 계급장은 그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통하여 달아준다. 기독교에서의 전쟁은 마귀와의 영적 전쟁이다. 영적인 전쟁에 임하는 십자가의 군병들이 계급장이 없이 전쟁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왕 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의 군대의 총사령관으로서 임명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은 직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성령세례(권능충만)를 통하여 성령님께서 주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eksusia, authority, 마 28:18)를 받으셨다. 눅 3:21-22의 기록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성령님을 통하여 성령세례(충만) 곧 성령님의 권능을 부여 받은 것은 십자가 군병의 총사령관으로서의 임명식에 비유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모든 그리스도인들, 평신도, 교사,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선교사, 목사는 십자가의 군병이 되었다. 십자가의 군병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성령세례를 통하여 성령님이 주시는 권능의 계급장을 부여 받아야 한다. 성령세례를 통하여 성령님의 권능의 계급장을 받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그가 비록 모태신앙의 소유자로서 수십년을 넘게 권사와 장로의 직분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수많은 신자가 모이는 큰 교회를 이끄는 목사라고 하더라도 그는 십자가의 정식 군인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삼년 동안에 복음사역에 필요한 신학과정의 모든 교육과 마귀를 쫓은 등의 모든 실습교육을 받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을 직접 체험하였다. 3년간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이라 하더라도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권능을 받지 못했다면, 즉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면 그들은 아직 십자가의 정상적인 군병이 결코 아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통해 권능을 받지 아니한 제자들에게 복음사역에 임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아니하시고 대신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리시었다.
눅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행 1:4-5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상의 구절들을 바로 해석하지 못하면 성령세례의 뜻을 전혀 알 수 없다. 눅 24:49, 행 1:4-5, 행 1:8의 기록은 문자적인 표현이 다르지만 같은 뜻을 가진 기록이다. 눅 24:49과 행 1:8의 한글성경에서 ‘능력과 권능’은 헬라어 원문으로는 ‘dunamis’인데 단순히 ‘power’의 뜻이 아니라 ‘authority’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눅 24:49에서 말하는 “능력으로 옷 입히운다,” 행 1:8에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의 뜻은 군복에 권위와 권세의 상징인 계급장을 단다는 뜻이다. 계급장은 바로 권위와 권세(authority)를 의미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군병이다. “성령세례를 받는다. 성령님의 권능을 받는다”는 것은 군병의 계급장을 단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의 교육과 실습을 마친 십자가 군인이지만 아직 성령세례를 통하여 권능의 계급장을 달지 아니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들에게 예루살렘이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제자들이 복음사역자로서 눅 24:49, 행 1:4-5, 행 1:8, 행 2:3-4의 관문을 통과하지 아니했다면 그들은 정식 군병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관문을 통과하여 권능의 계급장을 단 십자가의 군인으로서의 사역을 정식으로 오순절 날로부터 시작하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주님의 군병이 된 신학자, 목회자, 선교사, 전도사들을 위시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반드시 눅 24:49, 행 1:4-5, 행 1:8, 행 2:3-4의 성령세례를 위한 오순절 다락방의 임관식을 통과해야만 한다. 오날날에도 120명의 제자들고 같이 성령세례를 위한 오순절 다락방의 임관식을 통과하지 아니했다면 그는 예수님이 임명한 신학자, 목사, 선교사, 전도사들이 결코 아니다. 필자는 오늘날 95% 의 신학자들, 목사들, 선교사들, 전도사들, 장로들이 성령세례의 임관식을 통과하지 아니한 상태에 있다고 단호이 주장한다.
R. A. Torrey의 주장: “권능으로 입히울 때까지 사역을 해서는 안 된다.”
대학교육과 신학교육을 받고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며 설교를 하지만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 목사 안수를 받은 목사들과 그리스도인의 일을 하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위로부터 권능으로 입히울 때까지 현재하고 있는 사역을 중지하고 계속해서는 안 된다.(R. A. Torrey, ‘The Person and Work of the Holy Spirit’ p.173)
조용기 목사의 주장: “중생 시에 권능을 받는다.”
“너희들은 하늘나라에 기록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9).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다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어 영으로 거듭나자마자 어찌할 수 없이 마귀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받게 된 것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런 권세를 예수 안에서 오늘 이 시간에 가지고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 ‘극한 슬픔을 극복하고’ p.115-7,127)
조용기 목사의 주장: “중생 후에 권능을 받는다.”
성령의 세례(혹은 충만)는 중생한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는데 필요한 봉사의 능력과 권능을 갖기 위하여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 ‘성령론’ p.141)
미국의 D.L. Moody는 국민학교 5학년의 학력이 전부이며 구두수선공이었던 그가 대략 2000년대 초 미국과 영국의 교계를 뒤흔들었는데 이러한 Moody의 신학적인 배경을 제공한 이는 Torrey였다. 위에서 말하는 Torrey의 주장은 눅 24:49, 행 1:5,8에 근거한 바른 주장으로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금과옥조와 같은 교혼이다. 이상에서 조용기 목사는 “성령의 세례(혹은 충만)는 중생한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는데 필요한 봉사의 능력과 권능을 갖기 위하여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중생 후에 성령세례 곧 권능을 받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그는 “주님께서는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다 주었다. 중생과 동시에 얻은 예수인으로서의 권세를 활용해야만 될 것이다”라고 하여 “권세는 중생과 동시에 받는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분명히 “권능은 중생 후에 받는다. 권능은 중생 시에 받는다”고 하여 앞뒤의 말이 일치하지 않고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 조용기 목사는 성령세례란 중생 후에 받고 성령세례란 권세와 능력(권능)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의 “권세는 중생과 동시에 받는다”는 주장에 의하면 중생 시에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되어 중생 후에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주장과 완전히 모순된다. 따라서 한국오순절교단의 거두라고 불리우는 조용기 목사의 바른 성경적인 성령론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이 바로 정립되어 있다는 증거와 근거가 일체 없다.
조용기 목사의 주장: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하늘의 권세가 부여된다.”
교통순경은 육체적으로 큰 힘이 없을지라도 정부가 준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힘차게 질주하는 건축용 트럭을 그 자리에서 세울 수 있습니다. 능력은 아무리 크 다고 할지라도 권세 앞에서는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능력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조용기 목사, 1984년 6월 19일자의 순복음의 말씀, “권세있는 말씀’의 설교 중에서 발췌)
하나님께서는 이 권세(눅 10:19)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하늘의 권세가 우리에게 부여되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태어날 때부터 쥐를 잡을 권세를 가지고 태어나며, 독수리가 태어날 때부터 새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태어나듯이 우리도 예수를 믿고 중생하면서부터 원수 마귀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 ‘당신의 기적을 계획하라’ p.94)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맡겨진 권세를 가진 권세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안방에서 고양이를 곱게 기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봄날에 고양이를 안고 볕을 쬐는데 큰 쥐 한 마리가 쌀가마니 뒤로 뛰어가는 것이 보여 이 고양이에게 쥐 잡는 연습을 시킬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쌀가마니 뒤를 막고 재빨리 쥐 있는 곳으로 고양이를 밀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 쌀가마니를 밀어 보니까 그만 고양이가 쥐에게 꼬리를 물려 눈에 불을 켜고서 쩔쩔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얼른 개를 불러 쥐를 물어 죽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고양이를 안고 ‘이 고양이야. 안방에서 쌀밥만 먹여 끼웠더니 그래 네가 고양이인줄 모르고 쥐에 물리냐? 이 못난 고양이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처럼 권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귀에게 도적질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비참한 일이 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여러분은 권세 있는 권세자들 입니다. (1983년 6월 19일자 ‘순복음의 말씀’ 조용기 목사의 설교 중에서 발췌)
이상에서 조용기 목사는 “고양이가 태어날 때부터 쥐를 잡을 권세를 가지고 태어나며, 독수리가 태어날 때부터 새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데 이는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고양이는 태어날 때부터 쥐를 잡을 권세를 가지고 태어나며, 독수리는 태어날 때부터 새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태어나자마자 쥐를 잡고, 태어나자마자 새를 잡을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느 정도의 성장하는 단계를 거쳐야 잡을 수 있다. 고양이 새끼와 독수리 새끼는 어느 정도 성장하면 본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세가 자동적으로 발동되어 쥐를 잡고 새를 잡을 수 있지만 기독교인들의 경우는 이들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조용기 목사는 위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능력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하늘의 권세가 우리에게 부여되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날 때, 중생할 때, 거듭나자마자, 중생하자마자 원수 마귀의 능력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세를 부여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이 권세를 받기 위해서는 믿고 거듭난 후, 즉 중생한 후에 성령세례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고 하여, 중생했다고 하여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자동적으로 받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살펴보자.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실 때 이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태어나셨지만 30세쯤 되실 때에 요단강에서 물세례를 받고 나신 직후에 물에서 나오셔서 기도하실 때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성령세례(충만) 곧 성령님의 권능(권세)을 부여 받고 이 권능(권세)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며 마귀를 쫓으셨다. 베드로를 위시한 120명의 제자들도 중생한 후 3년이 지나서 다락방에 모여 10여일간 기도하던 중에 오순절 날 성령세례(충만)의 과정을 통하여 권능을 부여 받고 예루살렘으로부터 이 권능을 행사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중생할 때 이러한 권능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중생하지만 중생한 후 별도로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실제로 이 권능을 받게 되는 것이지, 조용기 목사가 주장한대로 “그리스도인들은 능력을 굴복시킬수 있는 권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하늘의 권세가 우리에게 부여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조용기 목사의 주장과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하늘의 권세가 우리에게 부여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라는 주장이 되어 버린다. 이와 같이 조용기 목사는 그릇된 연구로 한국의 신학계와 교계를 분명히 오도하여 목회자들과 선교사들과 신자들은 그릇된 목회와 선교사역과 그릇된 신앙생활을 하게 만들고 있다.
요 1:12에 대한 조용기 목사의 해석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능력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권세(눅 10:19)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하늘의 권세가 우리에게 부여되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 ‘요한복음 강해’에서 인용)
조용기 목사는 위와 같이 요한복음 1:12에 나오는 “자녀가 되는 권세”와 눅 10:19에 나오는 “마귀의 능력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세”를 전혀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그릇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자녀가 된 후 받게 되는 권세는 전적으로 다르다. 쉬운 예를 들면 한국 사람이 미국 시민이 되려고 하면 몇 가지의 법적인 구비조건이 필요하며 이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 그는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는 자격 곧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 미국 시민이 되어 미국 시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 즉 시민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시민이 되어 시민권을 갖고 있는 것과 시민이 된 후에 미국 대통령이 부여한 특정한 권세(권능)를 갖고 행사하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예를 들어 일반 시민이 경찰관이 되려면 시민이어야 하며 시민 중에서 조건이 구비되어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소정의 훈련과정을 거쳐 임명장을 받고 경찰관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아 경찰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시민이라고 하여 모두 경찰권을 갖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이와 같이 천국시민이 된 믿는 자, 즉 하나님의 천국 백성이 되었다고 하여 천국 백성이 된 그 즉시 자동적으로 “마귀의 능력을 굴복 시킬 수 있는 권세”를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요 1:12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의 뜻은 본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상태에 있었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요건을 갖추었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 자격요건이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이며, 이와 같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권세)를 준 것이다. 본래 천국시민이 아닌 상태, 천국시민권이 없던 불신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시민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바로 이 자격 곧 권리(권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미국 시민권을 갖는 것과 미국 시민으로서 경찰권을 갖는 것과는 구별 되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원수의 능력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세를 부여받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120명의 제자들은 오순절 전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3년 정도가 지난 후 오순절 날에 이르러서야 원수 마귀를 굴복시킬 수 있는 권세를 성령세례(충만)를 통하여 부여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귀의 능력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세를 자동으로 받은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 곧 중생한 후에 권세 (성령세례)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 요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에 나오는 권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 곧 중생한 후에 받게 되는 행 1:8에 기록된 권능(권세)은 분명히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한국 시민권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날 때 그는 한국 시민이 되는 권세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가 태어날 때 성인이 된 한국 시민권자가 가질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18세가 되기 전까지는 성인으로서 가지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18세가 되어야 헌법이 부여하는 성인으로서의 권리(권세)를 행사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요 1:12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행 1:8에 나오는 증인으로서의 복음사역자가 되는 권세(권능)와 구분되는 점이다. 또한 가지의 예를 더 들어보면 한 나라의 왕이 자녀들을 낳을 경우에 그 자녀들은 왕자와 공주가 되는 권세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실제로 왕이 되어 왕이 가지는 권세 즉 왕권을 가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왕으로의 자질을 구비하고 있는 왕자 중에서 선택하여 왕으로 임명되어 대관식을 통하여 왕으로서의 왕권을 부여 받아야 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부여받는 것과 자녀가 된 후에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성령세례를 통하여 성령님의 권능을 부여받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연구하지 아니한 조용기 목사는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능력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권세(눅 10:19)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하늘의 권세가 우리에게 부여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여 그릇된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은 전혀 그릇된 황당한 그릇된 주장이다. 이 그 릇된 주장이 비평 없이 드대로 수용되고 전파된 오늘의 한국신학계와 교계는 환란의 와중에 있으며 방향을 자비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명성훈 목사의 주장: “모든 그리스도인은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가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은 쫓아내는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명성훈 목사, ‘성령과 함께’ p.158)
이상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은 쫓아내는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라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중생한 후에 별도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이 권세를 받는 것이지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 이 권세를 받는 것이 결코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가 주어져 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성경구절도 하나도 없다. 명성훈 목사는 요 1:12의 권세와 눅 10:19의 권세의 차이를 모르고 있다.
행 1:8에 대한 이근삼 목사의 해석
행 1:8에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다. 성령세례의 권능은 그리스도에게 연결시켜주는 권능이다. 이 권능의 결과는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근삼 목사, ‘개혁주의 성령론’ 팜푸렛, p.5, 고신대 총장 역임, LA 근교 소재 고신대 복음신학대 총장 역임)
이상의 “성령세례의 권능은 그리스도에게 연결시켜주는 권능이다”라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행 1:8에 기록된 권능은 절대로 그리스도에게 연결시켜주는 권능이 아니다. 만약에 이 권능을 그리스도에게 연결시켜주는 권능이라고 한다면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약 3년 전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이미 연결되어 있었음을 부인하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성령세례의 권능은 그리스도에게 연결 시켜주는 권능이다”라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또한 “이 권능의 결과는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수용한다면 오순절 날 이 권능을 받기 3년 전에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그들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음을 부인하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이 성령세례의 권능의 결과는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게 하는 것이다”라는 주장도 그릇된 것이다. 행 1:5, 행 1:8에 기록된 성령세례의 권능은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후에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서 복음사역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권능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한국의 오순절 교단은 물론이고 장로교 합동교단, 장로교 통합교단, 고신교단을 비롯하여 성경에 기록된 성령론을 바르게 번역하고 바르게 해석하여 바르게 정립한 교단은 일체 없다.
참고로 다음을 함께 읽어보기
영 혼 몸에 대한 이해
1. 우리는 영혼몸으로 지어진 존재
살전5:23/히4:12
2. 영은 완전하다
3. 혼은 완전하지 않다. (=혼은 성화되어 가고 있다)
롬 12:2/고후3:18
4. 몸은 새몸을 받는다.
5. 몸과 내 현실은 혼의 상태의 반영
잠 23:7/요삼1:2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평강(peace/평안, 평화)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sanctify, 성화= renewing of the soul)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로마서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mind)을 새롭게 함으로(=renewing of the mind)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santify = 거룩하게 하시고 = renewing of the soul
- renewing = complete change for the better = 좋은쪽으로 완전한 변화
요한삼서 1장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soul)이 잘됨같이(prosper/번영,형통)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킹제임스흠정역
사랑하는 자여, 무엇보다도 네 혼이 형통함 같이 네가 형통하고 건강하기를 내가 바라노라
약속의 땅을 취하는 해
- 취하다 = 람바노 = 원래의 내것을 가져가다
- 힘들게 취하고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두나미스
1. 기적을 행하는 능력 power for performing miracles
2. 혼의 탁월함 excellence of soul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power/두나미스)을 받고
디모데후서 1장 7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두나미스)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sound mind)이니
우리에게 이미 탁월한 능력을 주셨다 ?
여호수아 3장 5절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sanctify)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wonders)을 행하시리라
너희 가운데에서 왜 '가운데'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을까요? 가운데라는 히브리 뜻을 잘 살펴보면
1) inward part 인간의 내면
; as seat of thought and emotion
2) among, in the mist. ; 가운데
즉.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한다 = 요단강을 건널 때 우리의 내면에 놀라운 일을 행한다 = 성령 세례의 예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께서는 먼저 내면을 완전히 새롭게 행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미 허락하신 예언들이 성취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보기보다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주셨는데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내면을 새롭게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가나안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셨지만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원수를 좇아내야 되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은 주셨고 남은 것은 우리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나미스의 능력이 자동적으로 우리의 혼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영 안에 능력을 부어주셨고 자유의지로 그 능력을 사용하여 우리가 거룩해지시길 원하십니다. 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나미스의 능력이 필요한데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두나미스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두나미스의 능력을 믿고 우리의 혼을 새롭게 행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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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rayluv.tistory.com/35 [prayluv: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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