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예술적 성경이며 톨스토이 작품 세계의 마지막 불꽃이다." (로맹 롤랑)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이자 사상가 톨스토이의 작품세계는 1881년을 기점으로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1881년에는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사망과 황제 알렉산드로 2세의 암살 등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이 시기의 톨스토이는 삶의 의미와 죽음, 그리고 내세의 삶과 같은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문제들 앞에서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 결과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1869)』, 『안나 카레니나(1877)』와 같은 최고의 문학적 성취들을 뒤로 한 채 종교의 영역에 심취하게 된다. 이러한 행보의 연장으로 톨스토이는 신학과 성서 연구에 전념했고 내적인 성찰과 자기반성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치열한 영적 반성과 참회를 거친 톨스토이의 눈에는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철저하게 부패한 교회와 성직자들, 그리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일반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박해와 폭력이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정교회의 이러한 부패와 타락을 폭로하고 개별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정신을 설파하였는데, 그의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사상은 단순한 종교의 문제를 넘어서 근대 사법제도의 모순과 불합리를 비판하고 국가와 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폭력과 형벌을 거부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처럼 당대의 정치, 사회, 종교, 문화에 내재한 수많은 부조리를 고발하고 보다 나은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던 후기 톨스토이의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 바로 그의 3대 명작 중 하나인 『부활(1899)』이다. 톨스토이는 '부활'에서 19세기 러시아의 젊은 귀족 네흘류도프와 창녀 카츄샤의 불경하면서도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통해 구체제의 모순과 부조리를 폭로하고 읽는 이들로 하여금 인생의 의미와 가치 등에 대해 고민하게 해준다.
톨스토이의 후기 역작인 부활의 줄거리는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1부에서는 작품의 주인공 네흘류도프와 카츄사의 첫 만남과 법정에서의 재회, 그리고 '영혼의 정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사람으로 변해가는 네흘류도프의 모습이 등장한다. 과거 네흘류도프는 군복무 중 3년 만에 방문한 고모집에서 하녀로 살던 카츄사를 능욕하고 100루블 짜리 지폐 한 장만을 지워준 채 도망친 전력이 있다. 이후 카츄사는 그의 아이를 가졌으나 네흘류도프는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저택에서 쫓겨나 도시를 전전한 끝에 아이를 잃고 유곽에서 몸을 파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후 시베리아의 부유한 상인을 독살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그녀를 지켜보며 장성한 네흘류도프는 복잡한 심경에 휩싸이게 된다. 그가 알기로 카츄사는 도덕적인 품성을 지닌 여자였고 그런 대담한 짓을 저지를만큼 악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상인의 재산을 노린 다른 두 피고인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상태였으나,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과거행적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그녀의 무고함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했고 결국 그녀가 시베리아로의 유형을 선고받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강한 죄책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후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과거와 삶의 행적을 되돌아보며 참회의 시간을 거치게 되고, 그 전까지 지속해왔던 유부녀와의 부적절한 관계와 결혼상대였던 코르차진 가의 처녀 미시와의 관계를 모두 단절하는 등 올바르고 진실된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네흘류도프는 이것만으로는 자신의 죄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결국 카츄사가 있는 감옥으로 찾아가 그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녀의 사면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게 된다. 이처럼 톨스토이는 1부에서 과거의 잘못을 둘러싼 네흘류도프의 내적 갈등과 반성의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그가 카츄사의 사면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직면하는 사법제도의 불합리와 모순, 그리고 미사를 집도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특히 집필 당시 신학과 성서 연구에 전념하며 그리스도교에 깊이 몰입했던 톨스토이에게, 당대의 교회는 신앙의 이름으로 온갖 부패와 탈선을 장려하는 위선과 기만의 온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톨스토이의 문제의식들은 부활의 2부와 3부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1부가 주인공 네흘류도프의 내적갈등과 카츄사의 사연을 다루는데 집중하였다면, 2부에서는 부패한 사법제도와 형벌제도에서 비롯되는 여러 폐해들이 한층 더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특히 톨스토이는 네흘류도프와 변호사의 대화를 통해 사법정의 실현과 실체적 진실 발견에 앞장서야 할 수사기관과 재판관들이 어떻게 변질되고 타락하게 되었는지를 날카롭게 조명하고, 폐쇄적인 권력구조 아래에서 그들의 직무원칙은 더 많은 월급과 명예, 권력욕과 같은 사회적 성취에 대한 욕망으로 점철되어 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법제도의 폐단은 수많은 오심피해자와 선의의 범죄자1, 정치범과 생계형 범죄자들을 양산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엄격한 규율과 관료제로 대표되는 형벌제도는 교정과 교화라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인간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제도로 변질된 현실을 개탄한다. 여기서 톨스토이는 인간의 품성이 본질적으로 선하지만 관료제라는 권력구조가 그들의 인간에 대한 책임을 무뎌지게 하고 타인에 대한 폭력과 부조리를 자행하게 만든다는 스스로의 믿음을 네흘류도프를 통해 드러내는데, 이와 같은 톨스토이의 관료제에 대한 비판적인 통찰은 훗날 20세기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에 의해 개념화되는 '악의 평범성' 개념과도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가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들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으며, 이들의 극단적인 행동은 개인의 타인에 대한 책임을 최소화하고 주어진 임무에만 충실하게 만드는 관료제의 폐단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한나 아렌트의 주장이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확립되었음을 상기해보면, 1881년 부활을 집필할 당시부터 관료제의 비인간적인 면모와 폐단을 일찌감치 지적하고 경계했던 톨스토이의 식견과 통찰은 실로 놀라울 정도다. 요컨대 톨스토이는 2부에서 네흘류도프가 카츄사의 사면을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협력을 요청하는 과정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들을 조명하는 데 집중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3부에서는 카츄사에 대한 원로원으로의 청원이 거절되고 네흘류도프와 카츄사가 함께 시베리아로 향하는 여정이 다뤄진다. 수차례의 감정적인 교류를 경험하며 내면의 상처들을 치유해나가던 이들은, 이제 정치범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당대의 러시아는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갈등이 극에 달해서 사회주의 이념이 태동하고 있었는데, 사회주의자들은 급진적이고 과격한 행동으로 정치범으로 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시베리아로 향하던 네흘류도프와 카츄사가 그들과 만나는 것은 필연적 숙명이었을 것이다. 이들 혁명가들은 각기 다른 신념과 가치관, 성장배경을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설파했고 네흘류도프와 카츄사는 이전까지는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카츄사는 솔직하고 인간미 넘치는 혁명가 시몬슨과 사랑에 빠져 작품의 말미에서 네흘류도프와 결별을 선언한다. 이후 톨스토이는 네흘류도프가 성서를 읽다가 큰 깨달음을 얻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부활의 대미를 장식한다. 여기서 네흘류도프는 성서를 통해 "개별 사람들을 괴롭히는 끔찍한 죄악에서 구원받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죄를 하느님께 고백하고 타인을 징벌 또는 교정하는 것이 자신들의 소관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우친다. 그리고 그 옛날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가르친 것처럼 서로 사랑하고 하느님이 내리신 계율들을 실천하면 지상천국이 도래하고 인간은 그들 자신에게 허용된 최대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임을 상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네흘류도프의 새로운 삶에 대한 열린 결말로 부활을 마무리한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꺼림칙한 결말이지만, 당시 그리스도교에 심취했던 톨스토이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신의 사랑과 율법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던 듯하다. 그래서일까 톨스토이는 작중 카츄사가 도피처로 찾은 혁명가들의 모습 또한 그리 믿음직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그가 작중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혁명가들은 독재에 맞선다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모였음에도 그 방법과 시기 등을 두고 저열하게 대립했고 그들이 내놓은 결론 또한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리 미덥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톨스토이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인간적이면서도 불완전한 면모를 보여준다(심지어 톨스토이 자신을 대변하는듯한 네흘류도프도 작중에서는 지극히 모순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가 이러한 인물묘사를 채용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내 짧은 식견으로는 아마도 '부활'이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신에 대한 믿음과 개별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기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리하자면 톨스토이는 1881년 그의 정신적 위기를 맞아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 해답을 문학이나 철학이 아니라 종교에서 찾고자 했다. 이러한 행보의 일환으로 톨스토이는 신학과 성서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당대 러시아 정교회의 부패와 타락, 그리고 사법제도와 형벌제도의 모순과 불합리, 나아가 국가와 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폭력과 야만을 지양하고 개별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인류애를 설파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후기 톨스토이의 문제의식과 사회 비판, 그 자신의 내적 성찰과 참회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 바로 그의 3대 명작 중 하나인 『부활』이다. 이 작품이 출간된 이후 톨스토이는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된다. 처음에는 도대체 어떤 글을 썼길래 파문까지 당할까 싶었지만 실제 부활을 읽다보면 그가 파문당한 정도로 끝난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톨스토이는 당대 교회의 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진 현실, 그리고 그러한 구조 아래에서 희생당하는 일반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3부에서는 한 노인과 네흘류도프의 마부, 그리고 한 사내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톨스토이는 노인의 입을 통해 교리와 성경해석의 이견을 두고 논쟁하는 종파들의 모습이 마치 "눈먼 개처럼 각자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는 것"과 같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세상에 종교는 많지만 영성은 하나이며, 모든 사람이 자기 안의 영성을 믿으면 결국 모두 하나가 되는 길이 열린다는 자신의 고유한 신념을 설파한다. 이러한 톨스토이의 믿음은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했음에도 근대 그리스도교가 전자의 이념만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을 박해하고 일률적, 획일적인 진리만을 강요하는 형태로 변질되었음을 비판했던 포이어바하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톨스토이는 종교가 인간의 풍요로운 삶에 이바지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당대의 현실을 개탄하며 부활을 집필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2
이렇게 800쪽에 달하는 톨스토이의 부활 독서도 끝이 났다. 그 동안 톨스토이의 명성과 그의 대표작들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특유의 막대한 분량과 경제적 부담으로 좀처럼 읽어볼 기회는 없었는데, 이번에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주관하는 <톨스토이 탐험단 이벤트>에 선정되어 그의 대표작인 부활을 완독하는 소정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하는 고전문학 시리즈는 책 표지가 예쁘면서도 고급스러워서 다른 출판사에 비해 소장하는 즐거움이 남다른데. 출판사에서 톨스토이 3대 명작 완간기념으로 이러한 이벤트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분도 이 기회에 톨스토이 3대 명작에 도전해보시는 것은 어떨까? 분명 평생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이다.
- 여기서는 "자기들 생각에는 아주 일상적인, 심지어 좋은 일이랍시고 한 행위였는데 그들과 아무 관련도 없는, 법률 만드는 사람들이 범죄로 판단하여 처벌을 받은(위의 책 183쪽)" 사람들을 가리킨다.
- 물론 『부활』의 공식적인 집필동기는 톨스토이가 두호보르교파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이민자금 모금이라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쓰여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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