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국가권력의 창설과 행사, 작용의 근거와 정당성이 국민의 정치적 합의에 귀착해야 한다는 원리를 흔히 '민주주의 원리'라고 한다. 민주주의 원리는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통치원리이며, 국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 초기의 민주주의 원리는 국가의 역할이 국민들이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최소한의 파수꾼의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이른바 '야경국가' 모델에 기초하고 있었지만, 소수의 부르조아 계층이 생산기술을 독점하고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상황 속에서 탄생한 것이 현대에 주류적인 국가형태인 '복지국가(welfare state)' 모델이다. 복지국가란 국가가 국민 전체의 복지 증진과 행복 추구를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삼고 적극적으로 복지혜택을 부여하는 국가형태를 말하는데,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 이념이 들이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국가형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원리가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통치이념으로 자리잡기까지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을 치르고서야 노예가 해방되었으며, 흑인들의 참정권 인정의 이면에는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수많은 흑인들의 투쟁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기까지는 수많은 여성 운동가들의 투쟁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 역사적 사건들은 당장 세계사 교과서를 펼쳐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의 이면에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세상을 바꾸는 데 공헌했던 법률가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침 오늘 다루게 될 마이클 리프와 미첼 콜드웰의 『세상을 바꾼 법정』은 미국을 비롯하여 서구사회에 가장 큰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 8개의 재판들을 소개하고 있는 법학 교양서이다. 『세상을 바꾼 법정』에는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한 판결인 '카렌 앤 퀸란 판결', 미국사회에서 노예제도에 대한 거센 논쟁을 일으키고 급기야 남북전쟁의 시발점을 제공한 '아미스타드 사건', 수정헌법 제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둘러싸고 벌어진 '폴크 대 AWARE 사건', 세니카폴스 집회와 함께 여성 참정권 인정에 기여한 '수전 B. 앤서니 재판', 영국의 식민지배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최초로 확인한 '존 피터 젱어의 재판', 미국인에게 명시적으로 유명 인사와 지도자를 비판할 권리를 인정하고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국가로 만드는데 공헌한 '폴웰 대 플린트 판결', 20세기 중반 생명을 경시하는 보험회사와 관리의료 체계에 경중을 울린 '폭스 대 헬스넷 사건', 마지막으로 사법의 이름으로 우생학적인 불임시술을 정당화하고 나치의 불임시술법에도 인용된 '벅 대 벨 판결'이 소개된다. 각각의 사건에서 법률가들은 때로는 국가에 맞서, 때로는 기업이나 여타 사회집단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 의뢰인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법정에 선다.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하는 논거와 논리의 전개과정을 읽다보면 내가 실제로 당시의 법정에 서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아미스타드 호의 반란 혐의로 구속된 노예들을 법률적인 관점에서 변호하는 볼드윈의 뛰어난 변론술과, 반공이라는 명분 아래 무고한 사람들을 위협하는 매카시즘의 횡포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나이저 변호사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들의 반면에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놓고 벌어진 사건에서 의뢰인의 변호인임에도 철저하게 침묵과 무성의한 변론으로 일관한 어빙 P. 화이트헤드의 모습은 법정에서 법률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켜준다. 그러나 본 서평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싶은 판결은 오늘날 언론 자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판결로 평가받는 '폴웰 대 플린트 사건'이다. ※ 본 글은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관점에서 쓰여져 개인에 따라 다소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법률적인 쟁점 중에 '표현의 자유'만큼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는 주제는 없을 것이다. 지난 6월에는 H 대학교에서 일베 조각상 파괴사건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었고, 오늘 인터넷을 서핑하다보니 넥슨의 모 게임 성우가 메갈리아1가 협찬한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촬영한 것 때문에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나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신념이나 사상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타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이유로 해당 성우의 편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한국사회에서 끊임없이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일까? 표현의 자유는 한 사회의 개인이 자신의 신념이나 사상을 자유롭게 외부로 표현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근거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권리이다. 표현의 자유는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제1조, 한국에서는 헌법 제 19조, 20조, 21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미국사회의 표현의 자유와 한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미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원칙이며 그 제한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고 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폴웰 대 플린트 사건'이다. 본 사건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포르노 잡지 <허슬러>의 창간인 '래리 플린트'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이자 도덕적 다수파의 대표였던 '제리 폴웰'을 적나라하게 풍자, 비방한 혐의로 고소당한다. 당시 플린트는 폴웰이 자신의 어머니와 화장실에서 성교를 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기사를 보도하였는데, 플린트의 몇 차례의 비방을 침묵으로 일관한 폴웰은 이 기사를 읽고 심히 분노하였으며 플린트의 기사가 자신의 목사로서의 평판을 더럽히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라고 판단하였다. 문제의 기사는 다음과 같다. (얼핏 보면 주류회사 광고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쉽게 요약하면 플린트가 폴웰에게 "너희 어머니는 창녀야"라고 비방했다고 보면 된다) 폴웰은 플린트가 수정헌법 제1조가 규정한 표현의 자유를 남용했다고 생각하고 지체없이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소송에서 승리를 보장받기 위해 당대에 최고로 명망있는 변호사 중 한 사람인 '노먼 로이 그루트먼'을 자신의 변호인으로 고용하였다. 그루트먼은 예일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칼럼비아 로스쿨에서도 뛰어난 변론으로 여러 차례 수상경험이 있었으며, 수정헌법 1조와 관련하여 승소경험이 풍부한 유능한 변호사였다. 게다가 그루트먼은 <허슬러>의 경쟁잡지인 <펜트하우스>를 여러차례 변호하며 플린트에게 '이달의 꼴통'이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플린트가 싫어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교회의 대표목사이자 도덕적 다수파의 대표인 제리 폴웰과 수정헌법 1조에 대해 풍부한 소송경험을 갖춘 그루트먼의 결합으로, 폴웰 대 플린트 사건의 재판은 시작하기도 전에 사실상 결말이 난 것처럼 보였다. 한편 본 사건의 피고가 된 플린트는 이 소송을 폴웰이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시도라고 보았고 매우 분노했다. 플린트는 미국사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공적 인물인 폴웰이 근본주의적 관점을 자유롭게 설파할 수 있다면 그러한 권리가 자신에게도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수정헌법 1조는 자유로운 발언과 출판의 자유를 비롯하여 공적 인물을 비판할 수 있는 권리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린트는 수정헌법 1조가 자신의 모욕적이고 저급한 패러디조차도 보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의 결과 그루트먼에 대항할 수 있는 변호사인 '앨런 아이작맨'을 고용하기에 이른다. 아이작맨은 마찬가지로 수정헌법 1조에 관한 폭넓은 소송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여러차례 플린트를 대행하여 소송을 승리로 이끈 스페셜리스트였다. 폴웰과 플린트는 플린트에게 명예훼손과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할 것인지를 놓고 연방대법원까지 가는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1심과 2심 법원은 플린트가 해당 광고의 아래에 작게 '패러디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오'라고 적어놓았으며, 폴웰의 평소 행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명예훼손 혐의를 부정하고 15만 달러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만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이조차 맘에 들지 않았던 플린트는 연방대법원에 심리를 요청한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하급심의 판결 중 사안의 중요성이 높은 극히 일부의 판결만을 심리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 사회는 수정헌법 1조에 대해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였고, 폴웰과 플린트의 재판은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쟁점을 다루고 있었기에 연방대법원은 본 사건을 심리하기로 결정한다. 연방대법원에서 플린트의 변호인 아이작맨은 前대법관 홈즈의 논리에 따라 사람들이 혐오스럽다고 느끼는 표현이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대법관들 앞에서 언론, 출판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대법관들의 날카로운 지적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적극적으로 설파하는 아이작맨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한다. 로마의 위대한 정치가이자 연설가였던 키케로가 환생하여 돌아왔다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아이작맨은 <허슬러>를 혐오했지만 미국인들 중에서 포르노를 선호하는 이들의 '선택할 자유'와 공적 인물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근거로 플린트에 대한 무죄판결을 이끌어낸다. 그루트먼도 아이작맨에 필적하는 훌륭한 변론을 마쳤지만 대법관들은 "흠 잡을 데 없는 경력과 순수한 인격을 과시하는 사람은 그를 반대하는 사람이나 부지런한 기자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한다고 해서 '반칙'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며 플린트와 아이작맨의 손을 들어주었다. 폴웰이 패소하자 그가 대표로 있던 도덕적 다수파는 분열, 해체되었으며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에서는 더 이상 그의 설교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게 되었다.2 폴웰 대 플린트 판결이 있은 이후로 미국 내에서 모든 사람들은 공적 인물을 자유롭게 비판하고 그들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되었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수정헌법 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침해하는 어떠한 제한도 용납될 수 없음을 확인한 결정이었다. 폴웰 대 플린트 판결 이후 정치 평론가들은 자유롭게 패러디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유명인사를 풍자하더라도 소송을 당할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나 사상을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명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본 사건의 영화판인 [래리 플린트]에서 플린트는 "나 같은 쓰레기의 자유가 보장되면 모든 사람들의 자유도 보장될 수 있다."는 명대사를 남긴다. 플린트는 자신이 폴웰을 비방한 패러디가 매우 저급하고 저질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플린트는 수정헌법 1조는 그러한 패러디조차도 보호한다는 믿음 아래 소송을 진행하였고 마침내 승소했다. 오늘날에도 폴웰 대 플린트 판결은 언론, 출판의 자유에 기념비적인 판결로 평가받고 있다. 만약 폴웰 대 플린트 판결에서 표현의 자유의 인정범위를 한국사회에 대입해보면 어떻게 될까?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플린트가 폴웰을 상대로 승소할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미국에서 통상적으로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사람들의 상식에 비해 급진적일 정도로 진보적인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대법원의 판결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것이 사실이다. 즉, 사람들의 일반상식에서 벗어나는 판결은 지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대다수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인정범위는 어느 정도일까? 지난 6월 H 대학교에서 일베 조각상을 파괴한 학생들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메갈리아가 협찬한 티셔츠를 입은 것만으로도 비방을 일삼는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해당 성우와의 계약을 중지하는 게임회사의 모습을 보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표현의 자유가 미국에서의 표현의 자유보다 협소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해보인다. 해당 조각상을 기획한 조소과 학생은 작품의 제작의도가 "실체가 없는 일베의 존재를 보여줌으로써 논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밝혔는데, 조각상의 파괴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참단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념이나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설령 제 아무리 혐오스러운 표현이라고 해도 그것을 표현할 자유는 보장하는 것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이다. 일찍이 계몽사상의 선구자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러한 의견으로 인해 박해 받는다면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신념 아래 앙시앙 레짐의 불합리한 형사절차를 고발하고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이 격언이야말로 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가장 명료하게 표현한 격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베가 우리 사회에서 여러차례 물의를 일으킨 것과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베를 비롯한 극단적인 커뮤니티 회원들이 종종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그들이 실정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지 그들이 불온한 사상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특정한 집단의 이념이나 사상을 비판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행위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공공장소에 전시된 조형물을 파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재물손괴죄에 해당하며 그 행위자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용인된다는 것은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가 자신의 숭고한 이상을 위해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나는 대중이 특정한 개인의 사상이나 신념이 온전한 것인지 불온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설령 다수의 의견이 옳다고 해도 소수의 의견을 억압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행동일까? 그것은 미셸 푸코가 고발했던 것처럼 '이성의 비이성에 대한 억압'인 것은 아닐까? 물론 그들이 학교에 소속된 학생으로서 해당 조각상이 전체의 의사를 대변할 것을 우려하여 철거를 요청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학생들은 법적인 절차를 준수하고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해당 조각상의 철거를 진행했어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H 대학교에서 조각상을 파괴한 몇몇 학생들의 행동은 지극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해당 학생들은 타인의 정의와 부정의를 논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타인의 신념이나 사상을 불온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오만함과 목적이 정의로우면 모든 행동이 용인된다는 잘못된 사고방식부터 바로잡기를 바란다. 다양한 이념이나 사상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포퍼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이야말로 '열린 사회의 적들'이다. [스크랩한 내용들] 1.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카렌 앤 퀸란과 인간답게 죽을 권리- "만일 카렌 앤 퀸란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의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이라도 있다면, 아니 백만분의 일이라도 소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가 어떤 존재이기에 그 가능성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권리로 우리가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렌 앤의 주치의들을 위한 랠프 포르지오> "의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전체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아무런 느낌도 가질 수 없는 그의 육체는 자연 경과를 따르지 못한 채 단순한 기능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랑과 희망을 느끼고 평화와 즐거움을 알고 한 가족의 일원이었던 인간에게 이보다 비참한 일이 있겠습니까? 전선과 튜브, 기계장치로 그럴듯하게 보이기만 하면 죽음도 속일 수 있다는 착각에, 깨어날 가망도 없는 사람의 생명을 억지로 연장하는 것만큼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 또 있겠습니까?" <카렌 앤 퀸란의 변호사 폴 W. 암스트롱> "카렌 앤 퀸란의 삶과 죽음을 단지 존엄사를 희망하는 사전 유언이나 생명유지 장치를 거부하는 사전 지시 혹은 비정상적인 치료 방법의 문제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 퀸란 부부에게 존엄사는 딸을 '평온과 안식으로 이끄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태'로 되돌리는 일이었다." 2. 아미스타드 선상의 반란-자유를 되찾기 위한 흑인 노예들의 슬픈 항해- "저는 이 법원이 정의의 법정이라는 점에서 위안을 받습니다. 이 같은 자명한 말을 하면서 저는 이 법원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고려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정의란, 약 2천 년 전에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서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와 인권을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 즉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영속적인 의지'입니다. 정의의 법정에서는 당사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허용해야 하고 그 권리는 법원이 보호해야 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각자의 생명과 자유가 이 법원의 결정에 달린 36명의 의뢰인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애덤스 前 대통령의 변론 중에서> "불행한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존 퀸시 애덤스의 변론은 국가에 대한 그의 탁월한 공헌을 마무리 짓는 업적이었다. 연방대법원에서 전직 대통령의 변론은 그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첫번째로 그의 변론은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였다. 두번째로 외국정부의 요구에 굴복하고 사법권을 침해하려는 행정부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해냈다. 세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인들에게 불리한 선례로 생각하던 앤털로프호 판결을 오히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변론은 정의를 촉구하였고 대법관들이 '공정한' 태도로 사건을 보도록 하였다." 3. 우리 안의 적-매카시 선풍에 맞선 라디오 스타- "이 사건에 공산주의의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공산주의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임무를 국가에 맡기고 적법절차를 지킬 것인지 아니면 양복 소매에 도청장치를 숨긴 자경단원의 손에 그러한 임무를 맡길 것인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자경단원에게 그러한 임무를 맡기시겠습니까? <나이저 변호사의 최후 변론> "폴크 대 AWARE 사건은 단순한 명예훼손 사건이 아니다.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은 수세기 동안 있어 왔다. 이 사건은 명예훼손에 관한 종전의 법 이상의 것이다. 매카시즘의 교활한 무고와 의심에 도전한 것이다. 미국인은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고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선언이었다. (...) 매카시즘으로 희생된 권리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수정헌법 5조에 따른 진술거부권이다. 수정헌법 5조는 "누구도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매카시의 사망과 폴크의 승리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폴크 사건의 재판은 사람들에게 두려움 없이 매카시즘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나이저 변호사의 최종 변론은 미국인에게 왜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없어져야 할 악행인지 알려 주었다. 나이저의 정당한 분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목숨을 걸고 지킨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을 전율케 하는 고발이었다. 존 헨리 폴크는 진정한 애국자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는 미국이 도전에 견디고 서로 다른 신념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보여 주었고, 언론 자유는 단지 인기 없는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에 그치지 않고 두려움 없이 그러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여야 한다는 점을 확신시켜 주었다." 4. 투표권 없는 자유는 가짜다-'투표한 죄'로 구속된 수전 B. 앤서니- "투표할 권한이 없는 자유는 웃음거리일 뿐 노예 상태가 마찬가지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수전 B. 앤서니의 연설> "피고인이 투표한 것이 위법하다는 유일한 이유는 피고인이 여성이라는 사실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피고인의 남동생이 투표를 했다면, 처벌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훌륭한 행동을 했다고 칭찬받았을 것입니다.단지 여성이 했다는 이유로 범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범죄의 구성요건에는 행위만이 아니라 행위자가 여성이어야 한다는 요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알기에 이 사건은 피고인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법정에 선 최초의 사례일 것입니다." <수전 B. 앤서니를 위한 헨리 셀든 변호사의 최종 변론> "범죄자를 처벌하는 합법성은 그들 스스로가 그 법을 제정하는 데 동의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법률은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체결하는 계약의 한 부분이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람들은 그러한 법률에 동의하는 것이며 법률로서 보호받는 것이다." <법률에 대한 블랙스톤의 개념 정의> 5.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식민지 시대의 언론 자유를 위한 투쟁- "해밀턴 변호사의 최종 변론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관한 현대적인 법 이론의 기초를 잘 요약하고 있다. 그의 주된 주장은 더 나은 정부가 되려면 누구나 정부 정책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언론기관이 정부 정책을 사실대로 보도할 수 있어야만 일반 대중에게 올바른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대 최고의 웅변가인 해밀턴 변호사의 변론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대한 미국의 사상을 보여 주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자에게 불만을 표시하고 항의할 수 있는 권리는 자연권입니다. 이러한 권리의 제한은 법률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법률로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허위일 때에만 제한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내용이 진실하다면 능력 없는 집행부에 반대하는 것이 정당화되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큰 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경계 안에서 흘러갈 때 강은 아름답고 쓸모 있습니다. 그러나 강이 범람하고 나서 이를 막으려고 하면 이미 때는 늦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휩쓸어 가고 파괴와 황폐를 초래할 것입니다. 권력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 불법적인 권력자로부터 자유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권력자가 자신의 욕심과 야망 때문에 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온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전설적인 변호사가 되려면 관습적인 생각과 적대적인 판사와 지나치게 열성적인 검사들에게 영향 받지 않고 법률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6. 포르노 황제와 전도사-언론 자유의 상징이 된 <허슬러>의 발행인- "일반적으로 영향력 있는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나 실수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수정헌법 1조가 아니면 미국인은 권력자들에 대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플린트는 자신의 패러디가 모욕적이고 도발적이고 두말할 나위 없이 비열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수정헌법 1조는 이러한 패러디로 보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매년, 아니 거의 매일, 우리는 우리 삶을 불완전한 지식에 기초한 일종의 예언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한 실험이 계속되는 한, 혐오스럽거나 다른 의견일지라도 표현하는 것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 법의 목적에 즉각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에 국가 안전을 위해서 이를 즉시 제지해야 할 때만을 예외로 다루어야 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혐오스럽다고 느끼는 표현이라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前대법관 올리버 웬델 홈즈의 주장> "그루트먼은 언론 자유가 증오를 위한 방책이 되거나 혹은 사실을 왜곡하고도 책임을 면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표현의 자유는 소중한 것이지만 무제한의 권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폴웰의 관점에서 볼 때 언론 자유는 보다 좁게 해석되어야 하며 헌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이 명백하게 수정헌법 1조의 대상에 포함하려 했던 중요한 견해와 가치만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루트먼은 공적 인물이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오직 모욕을 주고 평판을 떨어뜨리는 데 목적이 있는 악의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작맨은 표현의 자유가 보다 넓게 해석되어야 하며 극히 제한적인 떄에만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은 아무리 내용이 저급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피해를 주지 않은 이상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폴웰 목사가 패러디 내용과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3, 그가 입은 피해는 감정적인 상처밖에 없다. 아이작맨은 미국이 진정으로 언론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상대방이 분노를 느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침묵을 강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역사는 종종 주류 문화에서 배척된 사람들이나 이단아들이 수정헌법 1조에 규정된 위대한 표현의 자유를 얻고자 투쟁에 나서는 모습을 목격해 왔다. 공산주의 선전선동가, 인권운동가, KKK단,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래리 플린트가 그러한 사람들이다." <역사학자 로드니 스몰라> "철학자와 현인과 포르노 제작업자 모두 똑같이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 한 명의 자유를 억압하려고 하면 결국 그들 모두의 자유를 억압할 것이다." 7. 생명의 가격-의료보험 회사를 상대로 한 환자의 투쟁- "배심원 여러분께서는 주치의가 환자의 치료 방법을 선택하게 해야 하는지 아니면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지도 않고 치료비 절감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의료보험 회사의 부사장이 치료 방법을 선택하게 해야 하는지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의료보험 회사의 임원이 받는 인센티브는 환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넬린 폭스의 변호사 마크 히플러> 8. 훌륭한 태생을 위한 유전자 개량-캐리 벅의 강제 불임시술과 출산의 자유 제한- "사회적으로 부적합한 자녀를 출산할 가능성이 있으며 불임시술을 받는다고 해도 건강에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불임시술 덕분에 캐리 자신과 사회 모두의 이익이 증진된다." <캐리 벅의 불임시술 결정에 대한 1심 법원의 판결> "벅 대 벨 판결이 미국 내에 끼친 영향도 놀랍지만 해외에 미친 영향은 그보다 훨씬 컸다. 1933년 7월 14일 독일은 해리 러플린의 『우생학적 불임시술법』을 모델로 한 법률을 제정했다. 선서증언에서 캐리 벅의 출산 능력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는데 스트로드가 입안한 버지니아 주 법률의 모델이 된 법전을 만든 바로 그 해리 러플린이었다. 독일의 법률은 캐리 벅을 수용시설에 수용하도록 결정한 법원과 같이 국가가 임명한 재판관들로 법원을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각각의 재판부는 2명의 의사와 한 명의 판사로 구성된다. 법 제정 1년 만에 독일에서 5만 6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강제로 불임시술을 받았다." "벅 대 벨 판결의 영향 중 최악은 뉘른베르크 법정에 전범으로 출석한 피고인들이 나치 불임시술법에 대한 선례로 이 판결의 예를 들었다는 것이다. 나치 불임시술법에 따라 12년 만에 대략 200만 명에 이르는 '결함 있는' 사람들이 불임시술을 받았다. 나치 정권이 '결함 있는' 사람들을 불임시술하고 수십만 명의 소위 정식적으로 결함 있는 사람들을 수용소에서 살해하여 소각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함께 보면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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