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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문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3-17)

by 이덕휴-dhleepaul 2022. 12. 25.

 

온전하신 그리스도 

머리되시는 그리스도

몸되시는 교회

 

주님의 이름;

 

예수, Christ, Jesus, Jesus Christ, (the Nazarene, the Messiah, the Savio(u)r, the Lord, the Son (of God), 

the Son of Man, the Lamb (of God), the (Lord's) Anointed

 

이렇게 많은 이름을 가지신 분, 명칭이 많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분이 오셨습니다. 많은 일을 하시는 분이 오셨으니 기대감도 큼니다. 

모두 다 살펴보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그 많은 사역 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주님이 오신 가장 중요한 부분, 즉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을 찾아서 은혜받도록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주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말씀의 주제는 주님오신 목적과 이유와 그 사랑으로 은혜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3-17)

 

막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세계적인 명절인 오늘 성탄절 이 시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왜 육신을 입고 오셨는지 그 목적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 예수님이 바닷가에서 많은 사람을 가르치시고 지나가시다가 레위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관원을 매국노와 같이 여겨졌습니다. 동족인 유대인에게 세금을 과다하게 징수한 후 유대나라를 정복하고 있는 로마 정부에 정해진 세금만 납부한 후 그 나머지는 자기들이 착복했습니다. 즉 로마의 앞잡이였습니다. 이러한 세리들이었기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천대 받는 세리인 레위에게 예수님께서“레위야 나를 좇으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레위는 지금까지 살아온 세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은 옛 사람을 벗고 옛 친구들을 송별하는 잔치요, 새로운 출발의 잔치였습니다. 이 자리에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참석하여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 몇 명이 예수님의 제자에게 묻기를“너희의 선생은 위대한 줄 알았는데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보니까 그렇지 않구먼”하면서 비난조로 시비를 걸었습니다. 예수님이 저들의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온 천하가 기뻐하는 성탄절을 앞둔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시 한 번 생각하므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 

오늘 본문에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을 마태복음 9:9에서는 마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세무 공무원이었습니다. 세리는 로마 정권에 빌붙어 먹고 사는 매국노로 취급되었습니다.

보통 죄인을 지칭할 때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직업이 세리와 창기입니다. 그만큼 세리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밑바닥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세리 마태를 예수님은 세관까지 찾아와 구원해 주셨습니다. 마태는 구원받은 사실이 감사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기 마련입니다. 마태의 집에 마태와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쓸 데 있느니라” 하시면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즉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가리켜 죄인이라고 생각해서 예수님을 찾아온 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드문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말하기를 싫어합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2. 빛으로 오신 온전 하신 주님

 

요12:35-36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죄지은 자는 빛을 싫어합니다. 뱀은 땅 속을 기어다닙니다. 하와를 속여 우리 인간들을 죄악에 몰아 넣은 공로로 이제는 인간을 피해서 땅 굴만 기어다니지요.

빛보다 어둠을 사랑한 것이 원인입니다. 요한 사도는 말합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 3:19-21)”

 

3. 우리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머리되시는 주님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우리는 죄로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머리되시는 주님께서 당신의 핏값으로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였으니 모두가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분명히 낙을 누리는 것이지만 그것도 헛되다고 다윗은 경계하였습니다.

 

전도서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전 2:1-2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죄를 해결하지 않고 다른 일에 사뭇 바쁘다면 이것은 미친 짓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에 가게 됩니다. 죄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가 관계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하여야 합니다. 무슨 방법으로든 이 문제는 해결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피를 흘리지 않으면 죄사함을 얻지 못합니다.

레위기 17:11에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근거없이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라면 하나님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있게 나의 죄를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하십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불안, 초조, 불평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지금도 예수님은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결론. 몸되시는 교회를 위하여 온 몸과 마음을 다하라

골 1:24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사 53:10-12)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사53:10a);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는 그 일생이 어떠할까요? 이사야는 한 마디로, 메시아의 삶이 철저하게 대속의 삶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메시아는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그 자신의 마음이 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육신적인 질병과 장애를 고쳐주기 위하여 자신의 육신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贖愆祭物, 여호와의 성물이나 계명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한 경우 드리는 속죄의 제사에 바쳐지는 제물임, 레5:15-17)로 드리기에 이르면(32:32), 그가 씨를 보게 되며”(사53:10b); 단지 메시아의 마음이 상하고 그 몸이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모든 사람들의 죄악을 전부 속죄할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는 완전한 속죄를 위하여서는 메시아가 그 영혼을 속건제의 제물로 내놓아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 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갖은 고초를 다하시고 승천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성령님을 우리들 각자의 머리위에 내려 주시고 내 안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기고 실행하는 만나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7-39절 말씀으로 이 시간을 모두 마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장 37-39절

기도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감사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 잔치에 모두 다 함께 들어가 영원히 주를 찬양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 만나인 모두가 승리하기 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