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발명품] 벨크로 / 세상을 바꾼 발명품 (15)
국방부에서는 광복 70년을 맞아 애국심 고취를 위해 올 여름부터 장병 전투복에 태극기 마크를 부착한다고 밝혔다. 태극기는 일반문양과 위장문양 2종으로 보급되는데 일반문양은 영내근무 및 외출할 때 달고, 위장문장은 훈련 및 작전을 수행할 때 부착한다. 전투복에 이처럼 2종의 태극기 마크를 자유자재로 바꿔 달 수 있는 것은 ‘벨크로(Velcro)’ 덕분이다.
일명 ‘찍찍이’로 불리기도 하는 벨크로는 원래 상표명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물건을 가리키는 명사가 되었다. 벨크로는 자연을 관찰해 얻은 아이디어에 과학기술을 더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생체모방기술’의 첫 번째 산업화 성공사례로도 유명하다. 벨크로가 모방한 자연은 바로 도꼬마리라는 식물의 열매이다.
1941년 어느 날, 스위스의 전기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은 포인터 종의 사냥개를 데리고 유라 산에서 사냥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옷과 사냥개의 털에 잔뜩 묻어 있는 도꼬마리 열매를 발견했다.
그것을 일일이 손으로 떼어내던 조르주는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도대체 어떤 원리로 도꼬마리 열매는 바지에 이처럼 단단히 붙는 걸까?” 수년 전부터 발명가로도 활동하고 있었던 그는 옷에서 떼어낸 도꼬마리를 연구실로 가져가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때 그는 도꼬마리 열매가 자그마한 갈고리로 된 덩어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갈고리 덩어리가 바지에 들러붙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입은 바지가 올가미 모양의 섬유로 되어 있었기 때문.
그 순간 조르주는 좋은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도꼬마리 열매를 모방한 제품을 만들면 지퍼나 단추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여밈 장치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혼자서 조용히 개발에 나선 그는 한쪽 면에는 도꼬마리처럼 수많은 갈고리가, 다른 한쪽 면에는 올가미 형태가 달려 있어 맞붙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여밈 장치를 개발해 1951년 특허를 출원했다. 다음해 그는 전기기술자라는 직업까지 그만두고 회사를 설립해 제품을 출시했다.
포기하지 않은 연구 끝에 문제점 해결
하지만 그의 발명품인 ‘잠금 테이프’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몇 번 붙였다 떼거나 빨래를 하고 나면 갈고리가 쉽게 떨어져서 접착력이 약해지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던 탓이다.
재정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파산 위기에 내몰렸지만, 조르주는 자신의 확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프랑스 리옹에 있는 섬유회사 등을 찾아가며 연구를 이어간 그는 마침내 새로운 여밈장치에 적합한 나일론의 제조에 성공했다. 나일론을 고온과 저온 상태로 번갈아가며 연구한 끝에 너무 부드럽지도 뻣뻣하지도 않은 튼튼한 실을 만들 수 있었던 것.
새로운 실을 이용해 천을 대량을 만들 수 있는 직조기도 고안했다. 또한 여러 종류의 열원을 시험한 끝에 적외선을 이용하면 견고하면서도 유연한 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마지막으로 남은 과제는 갈고리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연구실을 벗어나 인근 마을의 이발소를 찾은 그는 이발기계로 머리를 깎는 이발사의 모습 속에서 마침내 그 마지막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원형으로 만든 고리의 중간을 자르되 한쪽 부분이 더 길게 남겨지도록 자르면 자연적으로 갈고리 모양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1957년 조르주는 새롭게 개선한 제품을 다시 출시했다. 그 제품에 ‘벨크로’라는 새로운 상표명을 붙였다. 프랑스어로 ‘벨벳’을 뜻하는 ‘벨루(velour)’와 ‘고리’를 뜻하는 ‘크로셰(crochet)’의 합성어였다.
그러나 의류시장에서 혁신을 일으킬 것이라는 조르주의 기대와는 달리 벨크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의외로 미지근했다. 마치 쓰다 남은 천조각을 이어붙인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고급 의류업체들에서 번번이 퇴짜를 당해야 했다.
아동용품 시장에서 첫 히트 기록
반응은 전혀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벨크로를 부착한 어린이용 책가방과 지갑이 대성공을 거둔 것. 사용하기 편리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들이 나서서 벨크로가 달린 제품을 사주기 시작했다. 이후 입고 벗기 힘든 스키복과 스쿠버다이빙복 등 스포츠 의류에서도 벨크로는 각광을 받았다.
1969년 7월 21일 달에 처음 발자국을 남긴 닐 암스트롱의 우주복에도 벨크로가 부착되는 등 우주업계에서도 벨크로는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무중력 상태의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벨크로 없이 식사도 못할 정도다. 음식이 떠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음식 용기에 벨크로를 붙여 식탁에 고정해야 우주인들이 밥을 편안히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벨크로는 시계줄, 수술 가운, 혈압측정기, 어린이용 안전 다트 등에서부터 의료용, 군복, 항공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보통 5㎠의 벨크로에는 약 3,000개에 이르는 갈고리와 고리가 있다. 서로 붙이게 되면 그중 1/3 정도만 서로 연결되는데, 그만큼만 접착해도 약 80㎏의 무게를 벽에 붙여둘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이처럼 강력한 접착력을 지닌 벨크로는 여닫기 편리할 뿐만 아니라 지퍼와 달리 끼거나 고장 나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단추나 지퍼의 경우 억지로 압력을 가하면 망가지기 쉽지만, 벨크로는 천 자체가 찢어지지 않으면 파손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만 오래 사용할 경우 접착 기능이 약간 상실되며, 뜯을 때 소리가 난다는 단점은 있다.
앞으로 나노테크놀로지가 더욱 발달해 갈고리와 고리의 지름이 1nm(10억분의 1m) 수준의 나노 벨크로가 상용화될 경우 그 접착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강력한 접착제인 재래식 에폭시 접착제보다 30배 이상 단단하게 대상물을 고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그렇게 되면 미세 로봇들의 구성 요소들도 벨크로를 이용해 간단히 부착시킬 수 있게 된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15.07.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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