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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문

의인은 하나도 없다(롬 3:9-12)

by 이덕휴-dhleepaul 2023. 3. 5.

날자:2023.03.05 주일 낮 예배 -인천에서

제목: 의인은 하나도 없다

말씀: 롬 3:9-12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본문---- 로마서 제3장9-12절  다함께 봉독합니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오늘 주신 말씀에 보면 유대인은 하나님의 자칭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의인입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죄인이면서도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한 뭐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나무라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마치 요즈 정부에 관리들을 보는 기분입니다만, 좌우간 심지어는 괴변까지 늘어놓으면서 자기의 죄를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유대인에 대한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언제나 죄인은 죄없고 돈이 없을 뿐입니다.


 오늘의 본문 3:8절의 끝 부분에는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고 질문했습니다. 유대인들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죽어 마땅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한 뒤에 오늘 본문에서 관심의 초점을 그들에게서 우리에게로 돌리고 있습니다. 

 

 1. 죄 아래 있는 인생(9절)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예수 믿는 우리들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과 질적으로 더 나은 것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결코 아니라' 아주 강한 부정입니다.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똑같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권세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종류와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아래에서는 모두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믿지 않으면 죄인이 아닙니까?   믿든 안 믿든 그것은 자기자신의 합리적 판단이지 결코 인간의 도덕적 윤리적 결함은 물론 하늘 아래에 사는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이 피조물의 신세입니다.


여기 '죄 아래 있다'는 말은, '죄의 지배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즉 죄의 손아귀에 꼭 잡혀 끌려 다니고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죄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제일 많이 쓰는 단어가 헬라어로 '하마르티야'로 '과녁이 빗나갔다'는 뜻과 '분배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과녁에 미치지 못하거나 빗나감으로 하나님의 생명과 구원과 축복의 상급을 분배받지 못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죄라고 하면 우리가 생각할 때, 도덕적, 윤리적인 죄를 내세우게 된 것과 물론 인간적인 면으로 볼 때, 큰 죄인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시51:4절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죄란 또 히브리어로 '탈선'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기차가 레일 위로 달려야 하는데 길이 좁다고 넓은 길로 함부로 굴러가면 전복되고 맙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제 멋대로 살다보면 탈선해 버립니다.

 

2.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죄

 

불법이 죄입니다. 요일3:4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선을 행해야 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약4:17절에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불 신앙이 죄가 됩니다. 요16:9절에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예수)를 믿지 아니함이요'

 

3. 죄의 성질

 

죄는 전염병과 같습니다. 갈5:9절에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죄는 병균과 같아서 전파되는 속도와 세력이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는 자랍니다.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 죄는 질병과 같아서 우리의 영혼을 죽입니다. 죄에서 살 수 있는 길은 만병의 의사이신 예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죄는 무거운 짐과 같습니다. 시38:4절에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이 짐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죄의 포로가 된 우리들의 심령에도 기쁨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생 갚지 못한 이 죄 값을 우리 주님을 통해서 갚아주셨습니다. 아무리 죄에 빚진 자라 할지라도 예수 앞에 나오면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 피로 죄 사함을 받습니다. 

4. 결론

왜 죄를 짓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16:6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감히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보디발의 부인이 그의 미모로 그를 날마다 유혹해도 "하나님 목전에서 어찌 악을 행할 수 있느냐"며 피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유혹이 오면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죄 값을 단번에 받지 않는다고 등한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전8:11절에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총명이 어두워집니다. 엡4:18절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롬8: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하나님과 원수가 되면 기도가 막힙니다. 찬양이 끊기고 감사는 사라집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은 그가 살았어도 그의 심령은 죽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됩니다. 영혼의 멸망으로 심판 때에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죄는 무섭습니다. 죄 중에서도 무서운 죄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지 아니한 죄, 그 죄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가 없습니다.

 신명기 32:35절 말씀입니다.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이란 제목의 설교는 조나단 에드워드가 1741년 7월 8일, 북부 아메리카의 엔필드에서 설교한 것이다. 그 당시는 대영적 각성의 시대였다. 미국 설교역사에서 대단히 유명한 설교 중의 하나이다. 이 불신의 시대에 공의에 입각한 하나님의 진노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이 설교는 현대 사회나 기독교 세계의 질병들에 긴급하게 필요한 약인 것이다. 주께서 이 설교의 원본을 통해 무수한 이들에게 그렇게 하셨듯이, 당신의 영혼에게도 풍성한 복을 내려주시기 바란다.

 

"그들이 실족할 그때에"(신 32:35) - 35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니, 내가 갚는다. 원수들이 넘어질 때("Their foot shall slip in due time")가 곧 온다. 재난의 날이 가깝고, 멸망의 때가 그들에게 곧 덮친다.'

"그들이 실족할 그때에"(흠정 역에는 "그들의 발은 정해진 때에 미끄러지리라"로 되어 있음/역주)라는 말씀은 이 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면할 수 없는 형벌과 멸망에 관한 네 가지 사항을 암시하는 듯 하다.

 

첫째로 그들은, 마치 항상 갑작스런 추락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미끄러운 곳에 서 있거나 걷고 있는 어떤 이처럼, 언제나 멸망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방식에 의해 그들의 멸망이 들이닥칠 것임을 이 말씀은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미끄러지는 발에 이것은 묘사되어 있다. 같은 위험이 시편 73편 18절에도 설명되어 있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두 번째로, 그들은 항상 갑작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파멸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미끄러운 길을 걷고 있는 그는 언제라도 넘어질 수 있다. 그는 그가 서있든지 넘어져 있든지 간에 다음 순간 무엇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그가 넘어질 때, 그는 경고 없이 갑자기 넘어진다. 이것은 시편 73편 18,1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되어지고 있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 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 하였나이다"

 

세 번째로, 그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넘어지기 쉽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미끄러운 길 위에 서 있거나 걸어가는 자들은 자신들의 무게에 의해서만 넘어질 수 있다.

 

네 번째로, 그들이 아직까지 넘어지지 않은 이유는 아직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정해진 시간이 오면 그들의 발은 미끄러질 것이다. 그들은 넘어지기 위해서 남겨져 있는 것이다. 그들만의 무게로 인해 그들은 충분히 넘어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붙드시지 않고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둔다면 즉시 그들은 파멸로 빠지고 만다. 매우 경사지고 미끄러운 언덕이나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은 붙들어 주지 않으면 서 있을 수 없다. 그가 그냥 버려진다면 즉시 넘어져서 실패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그들을 그들의 길로 가게 내버려 두실 것이다.

 

신명기 32장 35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순전한 즐거움만이 악인을 잠시라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하나님의 순전한 즐거움이란, 그의 통치적 즐거움, 중재적 즐거움이나 목적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죄인의 생명을 보호할 어떠한 의무도 갖고 계시지 않다. 하나님은 아무 어려움이 그를 내버려 두실 수 있으며 악인의 생명을 잠시라도 보호할 의무에 붙들려 계시지 않는다. 이 두려운 진리가 우리가 계속 이야기해 나갈 때 명백히 지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모두 죄 아래 사는 인생입니다. 우리 만나인의 오늘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설령 내가 굳게 믿는 신앙의 큰 줄기가

죄의 사슬에 매어 있는 신앙은 아닌지 또는 그 믿음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서 구원의 정복에 들어있는 신앙은 아닌지 아니면 남에게 보여주기 신앙은 아닌지 참으로 오늘 다시 한 번더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다가가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것도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든 사람들입니다. 

그 발이 언제 어느떄 미끄러지면 바로 지옥행입니다. 그 시간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결코 그리스도의 시간은 멈추지 않습니다. 

 

살전 5:16-18절을 우리는 또 봉독하면서 이 시간 구원의 기쁨 안에 든 우리 만나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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