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23.06.04 주일 낮 예배 말씀: 요한복음 9:1-3 제목: 하나님의 섭리(攝理) /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 이덕휴목사
바리새인들에게 설교하시는 예수님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2.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절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
니라
3 “It was not because of his sins or his parents’ sins,” Jesus answered. “This happened so the power of God could be seen in him.
(4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by Anvely - YouTube
(45) 서로 사랑하자 - 오세영, 18년 7월 8일 4부 헌금송 - YouTube
- 들어가는 말씀: 섭리란 무엇인가
전에 부르던 유행가 가사에, "못난 사람 못난데로 살고, 잘난 사람 잘난데로 산다"라는 노랫말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사는 모양새는 천태만상입니다. 한자로千態萬象이라고 쓰는데 천 가지 모습과 만 가지 형상이라고 하는데
이는 세상에 모든 것,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든 식물들이 한결같지 않고 각각의 모습으로 그 모양새가 만 가지로 다르다는 뜻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 제27문에 보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칼뱅주의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문답식으로 작성된 기독교의 신앙고백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더불어 칼뱅주의 전통을 따르는 개신교(장로교회, 개혁교회 등)에서 영향력 있는 신앙고백입니다.
27문: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
2)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
- 말씀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 내용
(렘 5: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렘 23:23-24) 『[2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지 않느냐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행 14: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잠 22: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 오늘의 본문
(요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1. 내가 나 됨은 내 뜻이 아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고전15:10말씀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잘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못난 것도 은혜요 주시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기독교의 신앙과 교리 가운데 정말, 중요하게 사용되며 믿는 말이 섭리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나를 지으시고 나를 주 안에서 하나되게 하심은 나의 뜻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소산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인의 첫 발자욱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온전히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오직 순종 또 순종입니다.
(마 10:29-30)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내가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내 인생의 배후에서 역사하시고, 이끄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갈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갈 1: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
2.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오늘 본문에 주님께서 소경을 눈뜨게 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윗 그림 참조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것은 우리의 사는 길을 유익한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선을 이루기 위해 서로 합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사도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라"(롬 8:28)고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선한 일로 알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바울의 말을 ‘좋은 일 나쁜 일도 우리에게 선한 것, 즉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하나님의 섭리인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오늘 나쁜 일이 있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답은 성경에 있다.
문제는 자기가 답을 정해 놓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이것을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인본주의는 사람이 근본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분이시니 기도하면 모든 일을 해결해주신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대한 답을 기도제목으로 정해 놓고 하나님을 찾는다. 이미 그 답을 만들어 놓고 또는 예정하고서...
그리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라는 바울의 말로 자기의 답을 더욱 확고히 한다. 이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인의 특권인양,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제자?들처럼 - 이미 그들은 답을 정해 놓고 주님에게 묻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요9: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 이 제자들이라는 것은 누구라고 신분이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유대교 출신 바리재파들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부를 때, '랍비'여 하고 부르는 것은 유대교 시나고게(회당)에서 율법을 가르치는 직분자를 랍비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본시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눈이 밝아지면서 선악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자기를 위해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알게 된 선악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며, 세상의 흐름이 기준이 됩니다.
각 인간은 자기의 환경과 처지에 따라서 선악의 기준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선한 것이 저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 되어 결국 서로 자기의 선을 주장하면서 충돌하여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피레네 이쪽의 기준과 피레네 저쪽의 판단이 다르다고 세상사람들은 말합니다. 인지상정이지요. 신앙은 때로는 냉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지상정과 때로는 거리를 두기 떄문이지요. 하나님의 생각과 이 땅 위의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이사야 55장 8∼9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나의 가는 길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며 도와주신다고 믿는 것이 신앙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나는 오직 주님의 길을 가는 종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며 친구입니다. 할렐루야 ~~~~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기며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 남을 위한 것이든 나를 위한 것이든 주님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서 울면서 기도하는 나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알파와 오메가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섭리에는 때가 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나님은 지혜롭게 만물을 돌보신다. 이해 할 수 없는 일들로 가슴 아파하다가도, 결국에는 손뼉을 치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은 충동적이거나 감정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급하지 않습니다. 온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성령님의 9가지 열매(갈5:22-23)에 그 본을 바탕합니다. 육체의 소욕(갈5:16-21)은 성령을 거스린다 - 세상에 속한 욕심은 우리의 마음을 피폐하게 한다. 갖고자 하는 대로 쉽게 주지 않으니까 초조하고 경쟁자가 있으니까 시기심 이 생기고 빼앗아 가려고 하니까 긴장과 분노가운데 있게 되고, 없어질까봐 불안 하다. 남에게 인정받고 명예를 누리며 살려고 하는데 알아주지 않으니까 실망하고, 잘나지도 못한 것이 잘난 척하니까 꼴보기 싫고 나를 짓누르고 중상모략하 니 자존심 상하고 밉고 복수심이 불타오르고 원수맺게 되고 그런 가운데서도 억 지로 명예를 얻으려니까 나를 과대선전하며 교만과 가식으로 나를 꾸미게 된다.
요즘같은 세상에는 널부러진 것이 박사학위다. 심저어 ~~'유지'를 영어로 YUGI라고 쓴 것도 박사학위라고 하는 것이 청와대(현재는 한남동) 안주인으로 사는 세상입니다. 문제는 돈들여서 배우고 힘들게 박사학위를 땄는데 그것을 못써먹고 썪히자닌 속이 터져나갑니다. 배웠고 익혔고 땃으니 한 판 써먹어야 하는데 못쓴다. 환장할 세상이다.
그러나 공자선생 왈, 배우고 가르치니 이 또한 낙이로다. 하구서는 설령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이 또한 낙이지 않느냐고 하였습니다. "人不知 而不溫 不亦君子乎"(인부지 이불온 불역군자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공자의 논어 제1편 학이편의 첫 장.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불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은 사람입니다. 시시각각 변하고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는 모두가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인간은 신분상승을 위해 노력합니다. 걍 노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찍어 누르고 헐뜯고 없는 죄를 만들어 내어 자기의 유익을 취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한남동으로 피신가서 나라 엎어먹고 있는 누구처럼, 파멸의 날은 이런 자들에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정의로우심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행동하는 정의여, 살아 숨쉬는 정의이며, 눈동자처럼 지켜보는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절대 불변하고 꼭 지켜지는 정의입니다. 인간의 정의는 시시때때로 변하지만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은 영원하십니다. 할렐루야~
결론 -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는 만나인이 됩시다
우리는 날마다 호흡을 합니다. 물을 마십니다. 음식을 먹습니다. 호흡하면서 공기에 대해서 감사합니까? 잠자리를 마련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까? 사막에서 눈을 감고 있어도 모랫가루가 눈에 들어와 아침되어 눈을 비비면 모래가루가 묻어 나오는 곳에서 잠을 자도 하나님께 잠자리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합니까 ???
주시는 모든 것이 감사할 줄 모르면 그것은 공중에 나는 새만도 못한 인생입니다. 우리 만나인을 그렇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아멘
[
하나님의 통치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있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 뜻하시지 않는 일은 발생 할 수 없습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의지에 강제로 통치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들 의지에 따라 행동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속에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행하게 됩니다.이것이 기독교 강령이자 믿음입니다.
첫째, 모든 피조물에 마칩니다. 참새 같은 미물의 생사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둘째, 모든 피조물의 행위에 미칩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존재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는 감사한 시간이 되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도 우리 만나인에게 주신 말씀을 봉독하면서 모든 예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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