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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문

나무를 던져라 -모세의 셈(아윤 무사)

by 이덕휴-dhleepaul 2023. 6. 11.

날자: 2023.06.11 주일 낮 예배

말씀: 출15:22-27/히 2:14-18(요절:출25절/히18절)

제목: 쓴 물에 나무를 던져라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은혜찬송: 사랑하는 사람들아 서로 사랑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sNs7pYjKfT4 

 

- 본문: 출15:22-27/히 2:14-18

먼저 구약의 출애굽기에 모세의 셈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 하매 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26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

27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수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물이 없었다. 

 

다음으로 히브리서 본문을 함께 봉독합니다. 

히 2:14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히 2:15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 하는 사람들을 해방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히 2:16 실상 주께서는 천사들을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을 도와주십니다.
히 2:17 그러므로 그는 모든 점에서 그의 형제자매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히 2:18 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당하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마라의 축복

- 본문의 배경

출애굽기 15장 소개

이 장은 홍해 둑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의 노래를 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그것을 통과하는 그들의 통과, 파라오와 그의 군대의 멸망, 그리고 미래의 일에 대한 예언적 힌트와 함께 그 안에 나타난 신성한 완전성의 영광을 축하합니다(출애굽기 15:1 ) . 소고를 치며 춤을 추는 미리암을 선두에 두고( 출애굽기 15:20 ) 홍해에서 술 광야까지 이스라엘 자손의 행군과 마라에서 발견되는 쓴 물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원망을 일으키고 그들에게 나무를 던짐으로 그들이 달콤하게 된 것, 출애굽기 15:22만일 그들이 그의 계명에 순종하면 애굽인들이 앓던 질병으로부터 면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출애굽기 15:26), 이 장은 그들이 엘림에 오는 것으로 끝납니다.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를 발견하고 거기 진을 쳤습니다( 출 15:27) .

홍해에서 시내산까지의 여정의 역사는 사실 이 구절로 시작하는데, 홍해에서 - 모세와 그의 백성이 그들의 구원을 축하하기 위해 멈춘 지역은 일반적으로 "아윤 무사(Ayûn Mûsâ는 작은 오아시스), 즉 모세의 샘으로 인정됩니다. 홍해를 건너는 통로 근처에 있는 유일한 녹지입니다. 그곳에는 모세 시대에 이집트인들이 사르부텔 카뎀(Sarbutel Khadem)과 와디 무가라(Wady Mughara)에 있는 고대 정착지를 오가는 빈번한 호송대를 사용하기 위해 아마도 우물을 에워싸고 매우 조심스럽게 보관했을 것입니다.
수르 광야 - 이 이름은 애굽 북동쪽 국경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체 지역에 속한다. 이 단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집트어이며 이집트와 시리아 사이의 모든 국가를 가리키는 Khar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 같습니다.
3일 - 경로에서 물이 발견되는 첫 번째 지점인 Ayoun Musa와 Huwara 사이의 거리는 지리적으로 33마일입니다. 전체 지역은 모래 또는 거친 자갈 지역입니다.

22. 수르 광야—아라비아-페트라이아 서부 전체를 포함함. 에담 광야는 홍해의 북쪽 부분과 동해안을 따라 상당히 멀리 뻗어 있는 그 일부였습니다. 반면 "수르 광야"(지금의 수드르)는 팔레스타인 옆에 있는 아라비아-페트레아의 모든 사막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슈르; 그래서 일반적으로 창세기 16:7 ; 이스라엘인 에담은 이 장소를 민수기 33:8 과 비교하여 수집할 수 있습니다 . 그곳과 여기 모두 그들이 이 광야에서 3일을 갔다고 합니다.

 

Exodus 15 Jamieson-Fausset-Brown Bible Commentary

Jamieson-Fausset-Brown Bible CommentaryThen sang Moses and the children of Israel this song unto the LORD, and spake, saying, I will sing unto the LORD, for he hath triumphed gloriously: the horse and his rider hath he thrown into the sea.CHAPTER 15Ex 15:1

biblehub.com

그래서 모세는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했다.... 또는 "그들을 여행하게 했다"
 
(a)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어렵게 행해졌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바다에 던져진 이집트인들의 전리품과 약탈물에 너무 열심이고 열심이었다. 해안, Jarchi가 관찰 한 것처럼 그들의 말 마구는 금과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서 그들 자신을 위해 그 나라를 소유할 의향이 있었습니다. 그것의 주민들, 적어도 그 군대는 파괴되고 그들의 갑옷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그들의 인도자인 모세가 그들에게 행진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들이 명령을 받을 때까지 홍해에 머물면서 원수의 전리품을 취하고 찬송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신의; 그러나 모세가 그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했을 때,그들은 '술' 광야로 나갔다. 민수기 33:8 에 나오는 것처럼 에담 광야도 마찬가지입니다.또 다른 여행자는 (d) 이 광야를 스두르 광야라고 불렀고 이제 그들이 홍해에 들어가기 전에 있던 곳은 에담 광야였으므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다시 같은 해안으로 나왔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 어려움에 대한 솔루션은 Gill을 참조하십시오.출애굽기 14:22 ,
 
그들이 광야에서 사흘을 갔으나 물을 찾지 못하더라. 덥고 모래가 많은 사막에서 엄청난 수의 사람과 소에게 매우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것은 의심 할 여지없이 Tacitus (e)와 같은 이교도 작가들이 말한 이야기에 대한 이유를 제공했습니다. 모세의 인도 아래서 물이 없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들나귀 떼를 따라 숲이 우거진 바위에 이르러 큰 샘을 발견하고 이곳을 3일 동안 여행하였다. 니산월의 스물둘째, 셋째, 넷째 날은 4월 초였다.

 'Ayûn Mûsâ는 수에즈 시장에 공급되는 과일과 채소가 있는 수 에이커의 정원 땅이 경작되었습니다. 종려나무와 에셀나무가 더욱 풍성합니다. 그러나 'Ayûn Mûn Mûn이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착지였는지 아니면 추정된 교차점 맞은편에 있는 편리한 위치 때문에 그렇게 추정되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1. 마라의 쓴 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라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마라에서는 물이 있었지만 쓰다. 그들이 그것을 마실 수 없도록.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가장 약속한 것을 쓰라리게 하실 수 있으며, 종종 이 세상의 광야에서 우리의 결핍과 피조물에 대한 실망이 우리를 창조주께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곤경 속에서 백성들은 안달이 나고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위선자들은 고상한 애정을 나타내고 종교적 행위에 진지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험을 받을 때에는 넘어집니다. 극심한 시련의 시기에 참된 신자들도 안달하고, 불신하고, 불평하도록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시련에서 우리는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그 앞에 우리의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복종하는 의지, 평화로운 양심, 그리고 성신의 위로는 가장 혹독한 시련을 참을 만하고 참으로 즐겁게 해 줄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 - 나무를 던져라
모세는 백성들이 소홀히 한 일을 했습니다. 그는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분은 모세에게 물에 던진 나무를 지시하셨고, 즉시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나무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상징으로 삼습니다. 이 나무는 모든 신실한 자들에게 고통의 쓴 물을 달게 하고 그들이 환난 중에 기뻐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반항하는 이스라엘 사람은 반항하는 이집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위협은 묵시적일 뿐 약속은 표현됩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의사이십니다. 우리가 잘 지켜지면 그가 우리를 지키십니다. 만일 우리가 건강하다면 그는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시며 우리의 날의 길이이십니다. 우리가 멸망에서 보호를 받고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심을 잊지 말자 주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엘림에는 좋은 물이 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한동안 그의 백성에게 마라의 쓴 물가에 진을 치라고 명하실지라도 그것이 항상 그들의 몫은 아닐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낙심하지 맙시다."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46:1)고 시편기자는 쓰고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하나님은 은신처 되시며,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도울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3. 십자가의 대속 -낙심하지 말라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받는 한 가지 길이 바로 십자가 대속입니다. 마치 보석금과 같은 겁니다. 다른 사람이 보석금을 대신 내줘도 풀려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심으로 죄값을 치러주심으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 됩니다.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믿는 성도들은 이제 의인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제는 사망 끝입니다! 사망의 쓴물이 영생의 단물로 바뀐 겁니다. 지옥의 쓴물에서 천국의 단물로 바뀐 겁니다. 요5:24 보면,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까? 그분은 의롭지만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믿습니까?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이미 의인이 된 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완전히 옮겨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환난 중에도 낙심하지 말라

 

모세와 함께 낙원의 땅으로 가는 구원 여정은 쉽게 지나가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우리 만나성도들의 구원여정은 때로는 깊은 웅덩이에 때로는 가지밭길에 3일간의 긴 사막길에서 만난 물마져도 쓴 물을 맛보는 참으로 힘든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마는, 우리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지나 사흘 길을 가는데 물이 없어서 고통을 경험하였습니다.

마라의 물을 마셨는데 그 물이 써서 도저히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무를 던져라"고 하셔서 그대로 순종 하였습니다. 그러자 마라의 쓴 물이 단 물로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에게 꼭 필요한 물은 쓴 물이 아니라 마실 수 있는 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나무를 집어 던졌더니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승리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서로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도 우리 만나인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면서 이 시간 예배를 마칩니다.

- 본문의 참고 말씀 설교:Exodus 15:22-27 Sweet Water of Life (abideinchrist.com)

-Papago (naver.net)

 

Exodus 15:22-27 Sweet Water of Life

Unless otherwise noted "Scripture quotations taken from the NASB." "Scripture taken from theNEW AMERICAN STANDARD BIBLE®, © Copyright 1960, 1962, 1963, 1968, 1971, 1972, 1973, 1975, 1977, 1995 by The Lockman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www.Lockman

www.abideinchrist.com

- 분문을 주제로 한 롬8:28 말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전회위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가 바뀌어 복인 된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신앙 안에서 그렇습니다. 강가에 버려진 기구한 운명을 살았지만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모세, 형들에게 위해서 노예로 팔려갔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한 요셉,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시골 어부에서 인류의 스승이 된 예수님의 제자들.. 처음의 출발이 힘들고 안 좋았다고 해서 끝까지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불행한 조건이 더 복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정해진 운명은 없습니다. 오히려 운명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모르파티!(라틴어)

백범일지를 보면 김구 선생이 과거시험을 보러갔다가 그냥 돌아옵니다. 중인의 신분으로는 장원급제를 한들 관직에 오를 수 없으니, 해봤자 글 못 쓰는 양반들 대신 글 써주는 일밖에 더하겠는가 하면 포기한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선생의 부친이 선생에게 풍수․역학․관상에 관한 책을 구해주고 그 책들을 공부하도록 권합니다. 그래서 관상학을 공부하였는데 어느 날 자신의 얼굴 관상을 살펴보았다는데 눈도 거지요, 귀도 거지요, 코도 거지요, 입도 거지라는 풀이가 나왔습니다. 이에 실망한 선생은 양반도 아닌데 관상마저 거지 관상이니 살 이유가 없다면서 자살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관상 책 마지막 구절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1)- 관상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심상(心相)을 따라 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읽고 마음의 상이 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은 김구선생은 자살 대신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국가의 큰 인물이 됩니다. 똑같이 거지로 살 사주였어도 한 사람은 서울역에서 구걸하는 거지가 되고, 한 사람은 운명을 극복하고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쳐 일하는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믿고 시인하고 따르면 우리의 삶은 믿음대로 됩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심지를 보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은 특별히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운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출애굽기 15장 말씀입니다.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당당하게 수르광야로 들어갑니다. 엄청난 구원의 감격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 길을 사흘 동안 걸었습니다. 3일 동안 무더위 속에서 행군한다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 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피곤에 지쳤고 목말라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물 근원을 찾고자 애썼습니다. 더울 때 목마른 것처럼 힘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물처럼 반가운 것이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나 기뻐 다투어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즉시 다 뱉어냈습니다. 써서 마시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마라에서 발견한 물은 단물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쓴물 이었습니다. 이들은 그 물을 ‘마라’라 하였습니다. 그 쓴물로 인해 구원의 감격 속에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 마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홍해가 갈라지고 세계 최강 애굽 군대가 홍해 바다에 수장되고 자신들이 구원받는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직도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백성들의 대놓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모세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픔을 느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을 듣고서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원망하여 가로되 하나님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셔서 마라의 쓴물로 인해 죽이시려하십니까? 우리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주셨습니다.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그리고 그 응답과 함께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셨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단만 쓴맛 다 맛보게 됩니다. 달면 맛있어 삼키고 쓰면 인상을 찡그리며 뱉습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단맛이 나는 삶을 살 때는 하나님께 감사를 하지만 삶이 쓰고 고통스러울 때는 왜 나에게 이런 환경을 주셨는가 원망도 합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여전히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화위복의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하나님을 가리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당한 힘든 환경도, 실패도, 실수도, 잘못도 바꾸어 선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라의 쓴 물에 어떤 선한 의미가 있습니까? 왜 우리의 삶 속에 때론 마라의 쓴물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이 쓴 물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고 교훈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단련시키고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가신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가 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에 산전수전 다 겪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또 눈물을 흘리며 빵을 먹어보지 않고 인생을 말하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인생은 단맛 쓴맛을 다 맛봄으로써 그만큼 연륜이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 맛만 맛보며 살 수 없습니다. 삶은 쓴맛 단맛을 맛보며 살아야 성숙해 집니다. 깊은 산 속에서 아름드리 나무를 벌목한 것을 보면 나무태가 뚜렷히 보입니다. 연하고 짓고 연하고 짙은 것이 반복됩니다. 추운 겨울은 옅게, 더운 여름은 연하고 넓게 그렇게 테를 이루며 든든히 자라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로 나무 가지를 던져 그 물을 치료해주셨습니다. 마라의 쓴 물은 순식간에 단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근심과 원망도 즉시로 감격과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켜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단 것과 쓴 것이 있을 때 어떤 것을 먼저 먹습니까? 쓴 것을 먼저 먹어야겠지요? 저는 내 인생이 단 멋이 없는 쓴맛만 있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믿으면서도 운명적 생각을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거의 안좋은 여건과 상황들만 있기 때문입니다. 학벌 족벌 재벌 아무것도 없이 믿음으로 목자가 되어 희망을 가졌지만 사역은 시골 제주 청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느정도 이룬 사역도 무너져서 성도들은 지역교회로 흩어지고, 자녀들도 곁을 떠나고, 유일하게 남은 사모마져 떠나서 혼자 남았을 때 어떤 심정이 들었겠습니까? 이 자리가 가시망석 같고 마라의 쓴물 같지 않았겠습니까? 떠나고 싶은 마음밖에 더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 때 떠났으면 어떻게 됩니까? 큰 일날뻔 했지요. 지금 이곳은 꽃방석이 되고, 세계의 중심이 되고, 단물나는 행복한 목회를 행복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이런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동되어 시를 한 편 쓴 것이 있습니다. 모래시계라는 시입니다.

하나님의 모래시계 /김해영

가만히 모래시계를 보노라면
하나님은 뒤집기 명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가 떨어져 끝날 때
하나님은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으십니다.
시계는 다시 거꾸로 돌아가고
그 모래가 다 떨어져 끝날 때쯤 되면
다시 그 시계를 '!'뒤지어놓으시지요.
 
하나님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모래의 질량은 하나도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내 인생은 모래 한 알갱이도 잃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의 그 알갱이는
영광스러운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은 시간 뒤집기 명수입니다.
내 인생의 잘룩한
모래시계 허리를 잡으시고
내 힘이 쇠잔하고, 슬퍼 절망할 때
세월의 무상함을 뒤집기하십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새롭게 되어
먼저 된 자는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는 먼저 되고,
슬픈은 기쁨이,
절망은 소망이 됩니다.
 
하나님은 시간 뒤집기 명수입니다.
오늘도 나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새 사람의 희망을 보며
내 인생의 잘룩한 허리를 맡깁니다.

우리가 인생의 쓴물 앞에서 슬퍼하거나 원망할 필요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켜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모르파티입니다. 하나님은 뒤집기 명수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마라의 쓴 물에 던진 ‘나무’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로 그 쓴물에 나무를 던지게 하셨는데 그 나무가 바로 놀랍게도 ‘십지가’를 상징합니다. 온 인류의 상처를 치료한 십자가, 질병과 죽음마저도 치료하는 십자가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 십자가가 치료의 십자가가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먼저 처절하게 쓴맛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그토록 처절하게 가장 고통스러운 쓴 맛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워서 그 쓴 잔을 내게서 거두어달라고 기도까지 하셨습니다. 온갖 채찍질에 침 뱉음과 모욕, 양손 양발에 대못이 박히고, 옆구리에 창이 질리고 물과 피를 다 쏟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바라본 사람마다 치유를 받게 되었고, 나음을 받고, 살아나고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 쓰디쓴 십자가를 치유의 십자가로 삼아 인류를 치료하시는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 가슴 속에도 인생을 변화시킨 그 십자가의 흔적이 있습니다. 김지홍 집사님도 흔적이란 시를 썼습니다.
하나님은 반석이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고,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시 114:8). 사단은 고통의 멍에로 우리 인생을 얽어매어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아들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인생을 모든 올무에서 자유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을 바꾸어주셨습니다. 요즘 마태복음 큐티를 시작하면서 예수님 족보에 올린 믿음의 여인들을 배웠습니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 모두가 인생의 쓴맛을 본 사람들입니다. 특히 룻은 모압의 자격 없는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시아버지를 여위고, 일찍 남편도 잃고 늙은 시어머니만 의지해야하는 신세로 장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붓 쫓고 어머니의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하나님은 그 인생을 역전 시키시고, 훌륭한 믿음의 사람 보아스를 남편으로 예비하시고,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룻기 4:17-22). 다윗도 이새의 막내 아들로서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에 불과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바꾸어놓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고린도후서 5:17). 하나님은 이전의 쓴 것들을 다 지나가게 하시고 인생을 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28) 지금의 조건과 상황을 불평할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은 운명을 섭리로 뒤집기하시는 분 이십니다.
 
영국인의 아프리카 노예무역은 1562년 존 호킨스가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시에라리온에서 배 세척을 끌고 가 거기서 잡아들인 흑인 원주민들을 카브리해의 스페인 정착민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는 나중에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친 공로로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습니다. 그 후 3백년동안 영국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붙잡아 미국과 남미로 끌고 간 흑인만 3백 만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아프리카 노예무역에 열정적으로 뛰어든 사람이 있었는데 존 뉴톤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역시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리온의 해변 마을을 돌아다니며 노예들을 사서 카브리해 농장에 팔았습니다. 그러나 후일에 하나님을 만나 온전히 회개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깊이 뉘우쳤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찬송가를 작사하셨습니다.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입니다. 하나님이 바꾸지 못하는 인생은 없습니다. 마라의 쓴물을 바꾸시는 하나님 안에서 창녀가 변하여 성녀가 되고, 탕자가 변하여 성자가 됩니다. 죄인 중에 괴수인 사울은 변하여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되게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굶주리고, 병들고, 늙고, 사건 사고가 연속이고... 마치 광야와 같습니다. 이 길을 가면서 마라의 쓴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나안을 향하여 끝없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 물을 면하여 단물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오묘합니다. 우리는 그 분의 길을 다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길으니 끝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라의 쓴 물 앞에서도 기도하며 언제나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해야겠습니다. 저와 여러분들 모두기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광야 같은 세상을 통과하고 마침내 복을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본문에 따른 참고 자료:https://biblehub.com/exodus/15-24.htm

 

Exodus 15:24 - The Waters of Marah

So the people grumbled against Moses, saying, What are we to drink?

bibleh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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