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홈지기칼럼

막 12:13-17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by 이덕휴-dhleepaul 2018. 7. 28.

막 12:13-17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공관:    마태복음22:15~22/눅20:20-26
논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한 가지 모의를 했습니다. 그 모의는 어떻게 하면 예수를 처단할까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들의 모의는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본문에서는 예수님께 국가에 대한 세금문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당시 유대사회는 로마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에다가 무거운 세금을 내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로마로 부터 지배를 받으면서 늘 반항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세금을 걷어가는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로 죄인 취급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가장  민감한  세금문제에  예수님을 개입시켜 이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종패집단)들과 헤롯 당원(정파집단)들은 예수님께 나와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옳지 않은 것입니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때 만일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하면 유대백성들로부터 비난과 반발이 쏟아져 나오게 되어 있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하면 로마의 정부에 반항하는 것이 되어서 예수님을 고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의 그런 악한 의중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외식하는 저들을 꾸중하시고 세금 낼 돈, 한 데나리온을 가져오라하시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세파와 헤롯당파는  서로 반대당이었지만,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이때는 서로 의기투합한다.
가이사:
율리오 케사르의 속명이었는데, 그의조카 아우구스투스가 제국을 조직한 후부터 황제의 칭호로 되어, 실제로는 `황제'의 동의어로 쓰였다.
통치권을 손에 넣고, 그는 겸손을 가장하여 황제의 위를 사양했다.
그러나 대장군, 즉 군 통수자의 지위를 누렸다. 그의 이름 `케사르'는 그의 상속자들이 준 것인데, 점차 왕위보다 더 큰 의의를 가진 제위로 되었다.
신약 시대의 팔레스틴과 유대인들은 로마 가이사의 권세 하에 있었다(아구스도(BC 31- AD 14), 디베료(AD 14-37), 칼리쿨라(AD 37 -41), 글라우디오(AD 41- 54) 및 네로(AD 54- 68,)의 처음 다섯 가이사의 재위 기간과 일치한다.
아구스도는 예수 탄생할 때 호적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디베료 때에 세례 요한은 전도하며 요단 강에서 세례를 주었고, 글라우디오때에 아가보 선지자는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와서, 성령의 지시로 흉년이 들 것을예언했다. 네로 때에는 바울이 로마의 옥에 갇히게 되었다. 최초의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베드로와 바울도 그의 손에 희생되었다. 당시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자는 가이사에게 상고할 권리가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무죄함을 가이사에게 호소한 적도 있었으나, 뜻대로되지 않았다.

 본문검토: 막 12:13-17
Paying Taxes to Caesar 
13 yAnd they sent to him some of zthe Pharisees and some of zthe Herodians, to atrap him in his talk. 14 And they came and said to him, “Teacher, bwe know that you are true and do not care about anyone’s opinion. For cyou are not swayed by appearances,3 but truly teach dthe way of God. Is it lawful to pay etaxes to fCaesar, or not? Should we pay them, or should we not?” 15 But, knowing gtheir hypocrisy, he said to them, “Why hput me to the test? Bring me ia denarius4 and let me look at it.” 16 And they brought one. And he said to them, “Whose likeness and inscription is this?” They said to him, “Caesar’s.” 17 Jesus said to them, jRender to Caesar the things that are Caesar’s, and to God the things that are God’s.” And they marveled at him.

13절)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들이 서로 공모하여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하였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로마권력에 반대하는 무리였다면 헤롯당원들은 종교세력이라기 보다는 헤롯을 등에 업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무리들이었기에 이 두 그룹은 둘은 앙숙에 가까왔다. 그런데 이 두 그룹이 서로 힘을 합쳐서 예수를 올무에 빠뜨리려고 나아온 것이다. 본문 처음의 그들은 앞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11:18)이다. 
  • The pronoun “they” must refer again to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11:18). For the identity of the “Herodians” and their relationship to the “Pharisees,” see the comments on 3:6. The word translated “catch” (“entrap,” RSV; “trap,” NRSV, NEB, REB, NASB, GNB) often was used to refer to catching an animal in a snare or hooking a fish. The use of the word implies deceit and treachery.

14절) 이들이 가지고 온 질문은 바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것이었다. 먼저 이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예수님 당신은 참되시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지 않는 분인데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고 판단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예수님에 대한 진술이 모두 옳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의도는 그분을 예배하고 높이기 보다는 그런 주님께 매우 곤란한 질문을 해서 그분을 올무에, 덫에 빠뜨리려고 한 것이다. 
본문의 세금이라고 표현된 헬라어는 ‘켄소스’라는 단어로 직접세로 이단어라 라틴어로 ‘센서스(sensus)’로 자역되었다. 이는 로마에 의해 당시 그 지역에 부과된 세금으로 1년에 한 데나리온을 바치게 되어있었다. 한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치 품삯으로 그 액수가 많아서라기 보다는 이방세력의 압제를 싫어했고 그 동전에 황제의 형상이 새겨져있어서 이를 반대했던 것이다. 이는 일종의 인두세(poll tax)였다. (Mt 17:25; 22:17, 19; Mk 12:14+)
  • The Greek word translated “taxes” (it is singular in Greek) is kēnsos and is a transliteration of the Latin word census. The reference is to the census, poll, or head tax that was imposed on all residents of Judea, Idumea, and Samaria in a.d. 6. At that time Archelaus (cf. Matt 2:22), the Jewish client-king (actually his modest title was “ethnarch”) of that part of Palestine, was deposed by Rome. It was annexed as an imperial province, and a legate was appointed by the emperor to govern it.11 The tax amounted to only a “denarius” a year (v. 15), i.e., a day’s wage of an agricultural laborer. It was opposed at its inception by Judas the Galilean (cf. Acts 5:37), who led an abortive revolt,12 and it was still deeply resented in Jesus’ time. The tax was hated not because of its amount but because it was a symbol of foreign domination and because it had to be paid with a coin that bore an image of the emperor and an offensive inscription (see the comments on v. 16). The “Caesar” or emperor at the time was Tiberius (a.d. 14–37).

15절)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외식함을 아시고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하시며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와 내게 보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질문에서 예수님께서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하면 로마에 반역을 행하는 것이고,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라 라고 말하면 로마의 세력을 추종하는 매국노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예수님을 매장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 Identical in intent to their earlier question on divorce (see note on 10:2), the Pharisees calculate that Jesus’ answer will either alienate the crowds (11:8–10) or enable them to denounce Jesus to the Roman authorities as a rebel.
본문에서는 시험(페이라조)라는 단어를, 13절에서는 책잡다(아그레우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13절의 단어는 사냥꾼이 짐승을 사냥할때 주로 사용하던 단어이다. 15절의 페이라조는 예수님이 시험받으실때 주로 사용된 단어이다. 

16-17절) 이에 예수님께서 데나리온에 새겨져있는 글과 형상이 누구의 것인지를 물으신다. 무리들이 가이사의 것이다라고 대답하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말씀하시자 무리들은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라워했다. 데나리온의 한 면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다른 한면에는 ‘Son of divine Augustus’라고 적혀 있었다. 
  • Jesus rejects their either-or approach. Obligations to God and state are not necessarily in conflict (e.g., Rom 13:1–7; 1 Tim 2:1–3; Titus 3:1–2; 1 Pet 2:13–17), though obedience to God takes unquestioned priority (1 Sam 13:13–14; 2 Sam 12:1–15; 1 Kgs 13:1–3; Jer 20:3–6; Acts 5:29). Jesus might also imply, as he had earlier (see note on 3:27), that Israel’s fundamental problem is not Rome but their own need to give God his due, namely, repentance (1:4–5, 15) coming from wholehearted love (12:30) of the one whose image they bear (in contrast to image on the coin, cf. note on v. 16).

우리는 본문의 메시지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정부의 요구, 국민으로서의 책무를 어떻게 감당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해볼 수 있다. 본문은 단지 정치와 종교, 세속 정부와 교회로 나누는 이원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권력이 우리의 신앙이나 하나님에 대한 의무와 충돌되지 않을때 세속 권력에 따를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처럼 국가 권력, 권제잡은 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설명한다. 
  • This famous statement by Jesus does not provide a full account of the Christian’s obligation to the state. It does not justify the medieval concept of two empires, the ecclesiastical and secular, each supreme in its own sphere. It does not justify the modern dichotomy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It simply affirms that obedience to a secular power does not necessarily conflict with obligation to God. The lesser obligation may be included in the greater. Other passages on the subject are Rom 13:1–7; 1 Tim 2:1–3; Titus 3:1–2; 1 Pet 2:13–17.

그렇다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것인가? 동전에 하나님의 형상을 그려 넣으면 하나님의 것일까? 성경은 하나님을 형상화 하지 말 것을 명했다. 또한 성경은 만물이 그에게로부터 나오고 그에게로 돌아간다라고 말한다. 한시적으로 이땅의 권세에게 맡기신 것이다. 우리는 이땅의 권력을 절대화해서도 안되고 주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무시해서도 안된다. 이땅을 다스리시기 위해서 그들을 세우시고 허용하시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온 만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그러한 창조신앙이 우리가운데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1.  질문

 

그들이 주님께 한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고 오직 참으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나이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나이까 불가하나이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속에 숨겨진 올무는 이렇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아래 있었는데 총독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누구나 그들의 지배국인 로마에 일정한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일에 대하여 많은 반항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리들을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있었던 이유도 그들이 로마정권에 아부하여 그들의 관리로써 동족의 세금을 거두어 그들에게 바쳐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 같은 질문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대답을 듣기까지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께서 세금을 바치는 것이 가하다고 하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때는 바리새인들이 모든 선지자들만도 못한 위선자요 겁쟁이라고 공박하고 모략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많은 무리들과의 관계를 멀리 띠여 놓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만약 예수님의 입에서 불가하다고 하시는 말씀이 나오면 이 같은 일이야말로 그들이 노리는 함정인 것입니다. 그들은 당장에 현행범으로 총독에게 고소하여 로마정부에 세금을 내지 못하도록 선동하는 이 사람을 처벌해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든 여하튼 예수는 넘어지게 되었다고 자부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의 간계를 아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칭찬을 잔뜩 치켜올려 논 다음에 그 입에서 말이 나오게 하려는 작전을 쓴 것입니다.

 

2.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예수님은 그들에게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데나리온이란 그 당시 로마에서 사용했던 화폐를 말합니다. 그리고는 이 화폐에 있는 화상과 글이 뉘 것이냐,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가이사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이사란 그 당시 로마의 황제를 말합니다. 주님은 이때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도 기묘하고 의미 심장하며 무엇이라 판단하기가 난감하면서도 그렇다고 올무에 걸 수도 없는 그런 답변이셨던 것입니다.

 

(1) 가이사의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데나리온에 가이사의 화상과 글이 적혀 있는 것은 그것이 분명 가이사의 것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이사가 로마 황제요 그가 많은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사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롬 13:1에서 권세는 하나님께로서 나지 않음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 2:37-38에서도 다니엘이 느브갓네살 왕에게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이사는 로마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세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데나리온은 자신이 발행한 돈입니다. 그는 자기의 것을 다시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은 자신의 권한에 속한 문제요, 또 하나님이 허락하신 바입니다.

 

(2)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란 말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이 세상에는 가이사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이사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까지라도 실인즉 하나님의 소유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신령한 예배는 결코 가이사의 것이 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가이사는 자칭 신으로서 모든 사람들의 경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예배를 받는 존재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배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받으실 수 있는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소유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일을 간접적으로 견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아무리 로마의 지배권 아래 있다고 할지라도 가이사의 권한이 결코 침범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소유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가이사의 것과 구별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야 합니다. 이것은 말 3:10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눈에 보이는 유형적인 권력은 가이사에게 속한 것들입니다. 그들은 그 국민들에게 세금을 부과시키며 여러 가지 의무 조건을 내세웁니다. 우리는 이 가이사의 권력인 국가권력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는 생활이 한 국가의 백성으로서 응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원칙에 대해서 분명한 선을 그려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에 세금을 낼 줄을 알면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어기는 일은 바른 신앙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것을 바치지 않거나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이사가 자기의 것을 반드시 법률로서나 강권적인 방법으로 찾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바치기를 꺼리는 것에 대하여 당신의 것에 대하여 찾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모순되는 듯하면서 그렇지 아니한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셋돈으로 내는 데나리온을 하나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데나리온은 유대 뿐 아니라 로마제국의 모든 영역에서 쓰였던 은 동전입니다. 


그 동전의 앞면에는 ‘신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시저 아우구스투스’라는 글이 있고, 뒷면에는 ‘최고 신관(Pontifex Maximus)’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로마의 돈에는 로마의 황제가 신이라는 말이 적혀져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돈을 가리켜 ’맘모나스‘신이라 한 것과 맥이 통하지요?
이 세상의 힘이 진짜 힘이며, 그것이 바로 신이라는 세상 힘의 원리 속의 신관이 그 동전 하나에 완전하게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동전을 가리키시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은 세금은 가이사의 것이니까 떼어먹지 말고 가이사에게 꼬박꼬박 내고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니까 떼어먹지 말고 하나님께 내라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가이사의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심지어 가이사의 황제자리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롬13:1)
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럴진대 이 세상에 가이사의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우매한 인간들은 가이사로 대표되는 세상의 힘을 실존하는 신으로 여기며 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 가이사의 힘을 얻어내기 위해 가이사에게 언제든지 복종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이사는 허구의 신인 것입니다. 그런 허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따라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는 말씀은, 우리 삶의 문제로 가이사, 즉 세상 권세에 속해 있는 자들은 세상일에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집중하여 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이 가이사의 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가이사의 권세 아래에 이미 속해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것에 의해 그들의 삶이 움직여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은 그렇게 가이사의 것인 세상의 힘과 가치 아래에서 속박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그게 타락한 모든 인간들의 실존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소유를 찾아 가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원래 성전에서는 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지 않은 갈릴리, 두로의 동전만을 사용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계시록에서 가장 길게 쓰여진 두아디라 교회,


현재의 지명은 아키사르다. 버가모와 샤데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BC7세기 경 리디아인들이 거주하며

펠로피아 라 불렀다. 아키사르에는 두아디라라고 불리던 옛 시대의 모습은 남이 있는 것이 거의 없다.두아디라는 ‘두로라고도 불리며, 그 당시 로마가 전략적으로 많은 유대인들을 이주시켰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상술과 지리적 특성은 자연히 상업도시로 번성하고, 두로는 고대 페니키아(성서명: 베니게)의 주도(主都)로, 지중해를 주름잡는 무역의 중심지로 자주물감 산업과 조선사업, 카르타고를 비롯한 중동 각국과의 해상무역으로 경제적인 번영과 문화의 꽃을 피웠던 역사적인 상업도시이다. 


그래서 성전 안에 돈 바꾸어 주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건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구별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전 안에서 유대인들이 가이사의 동전을 소유하고 그것으로 세금을 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물음으로 해서 자기들이 이미 그 가이사의 권세에 복속되어 있음을 폭로 당한 것입니다. 가이사라는 신을 실체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힘으로 자신들의 가치와 영광과 만족을 챙기려 하는 이들은 이 세상에서의 자기들의 행위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로마의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행위와 안 내는 행위에 의해 가이사의 소유됨과 하나님의 소유됨의 갈림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들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던 하나님에게 십일조를 바치던 그러한 인간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소유됨이라는 사건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벧전2:9~10)
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그러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는 말은, 가이사라는 세상의 힘에 착념하여 가이사화 되어 있는 이 세상에서, 소수의 선택된 하나님의 것들이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이므로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하며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들고 자기를 부인하며 살아가는 신앙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드려지는 삶을 사도 바울이 이렇게 표현을 했지요?


(롬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진정 하나님의 것은 무엇입니까? 물질적인 것보다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지혜롭게 받드는 영적인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께 속한 영혼입니다. 가이사의 것을 쟁취하려는 허망한 욕망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드리며 살려는 거룩한 마음’에 가장 아름다운 지혜와 복됨이 있습니다. 이 지혜를 따라 사는 복 있는 하나님의 형상들, 하나님께 속한 ‘진정 존엄한 영혼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로마의 화폐; 황제의 얼굴형상을 새겨넣었다.
                



'홈지기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마겟돈 전쟁과 천년왕국  (0) 2018.08.01
신은 죽었다   (0) 2018.07.28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0) 2018.07.18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져라  (0) 2018.07.07
성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0) 2018.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