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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

by 이덕휴-dhleepaul 2018. 7. 28.

신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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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전2. 의미3. 해석4. 각종 매체에서


1. 원전[편집]

Gott ist tot.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명언이자 두고두고 써먹히는 떡밥. 다만 니체의 말로 유명해졌을 뿐 Gott ist tot라는 명제를 니체가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그의 저서인 《즐거운 학문》에서다. 한 미치광이의 말이다, 원문을 보자:[1]

그대들은 밝은 아침에 등불을 켜고 시장으로 달려가 쉴새없이 이렇게 외치는 미치광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신을 찾는다! 나는 신을 찾는다!"
주변에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많이 서 있었으므로, 그는 더 많은 조소를 일으켰다. 길이라도 잃은 것인가? 누군가가 말했다. 어린아이처럼 길을 못 찾고 헤메는 것인가? 또 다른 이가 말했다. 아니면 그는 숨는 것인가?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인가? 여행을 하던 것인가? 이민을 위해 온 것인가?—이렇게 그들은 소리치고 웃었다. 미치광이는 그들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신은 어디에 있지?" 그는 부르짖었다; "내가 가르쳐주리라. 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는 신을 죽인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하였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가 바닷물을 전부 마셔버릴 수 있었단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쓸어내어 버릴 스펀지라도 주었는가? 우리가 이 지구를 해로부터 풀어주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이제 어디로 움직이는가? 우리는 어디로 움직이는가? 모든 항성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가? 우리는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아직도 위쪽이 있고 아래쪽이 있는가? 우리는 끝없는 허무 속에서 헤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빈 공간의 흐름을 느끼지도 못하진 않는가? 계속해서 추워지지는 않는가? 밤이 우리를 점점 궁지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아침에도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직도 사토장이들이 신을 땅에 묻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아직도 신이 부패해 가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 또한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여기서 신을 죽였다는 말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 가치가 부재하게 된 상황을 가리킨다.

신은 죽었다는 표현을 주요하게 언급하는 니체 이전의 사상가로는 헤겔이 있다. 헤겔은 시대정신이 가리키는 정명제로 '신은 죽었다'를 제시하는데, 그 까닭은 칸트의 비판철학이 신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치부함으로써, 그리고 근대에 대두된 유명론이 신을 단지 이름 뿐인 것으로 규정해 버림으로써 신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곧 신은 죽었다가 되살아난다는 말을 덧붙이는데, 그에 따르면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것이 신의 본질이며, 그리고 인간 속에서 인간이 신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신이고, 마침내 차이를 극복하고 절대적 단계에 이른 정신은 소생의 과정을 거쳐 부활한 신인 것이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과는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인간이 신과 같아질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면모는 유사하다 하겠다.

이후로도 신은 죽었다는 명제가 다른 철학자들의 저작들에서 발견되고는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니체의 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경우 이 명제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주의, 즉 절대적 관념에 대한 부정이 되며 헤겔적이라기보다는 니체적이다.

2. 의미[편집]

간단하게 말하자면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2] 허무주의적 말이다. 우선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체가 정의한 '확신자'와 '초인(Übermensch)'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니체가 정의한 '확신자'는 궁극적인 최후의 진리를 잡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궁극적 진리를 알았다고 생각함으로써 더이상 변화나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안주하려 한다. 또 자신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말미암아, 다른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귀 막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니체는 이들이 이러한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그들이 진정으로 참된 것을 알고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고, 그러기에 인간의 '확신'이 '의심'보다 위험스럽고 독단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에 비해 '초인'은 어떤 주의(ism)에 안착하지 않고 항상 움직이며 나아가는 자이고 몰락하는 자이며, 그렇게 몰락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상승하는 자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던 한 사람이 신앙이 가진 모순들과 불일치함등에 꾸준히 의심하며 질문을 던져가며 끝내 더 나은 신앙을 만들거나 또는 그 신앙을 몰락하게 하여 더 나은 사상체계를 발전시킨다면 이는 '초인' 이고, 해당 신앙에서 발견된 모순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앙무오설등을 설파하며 매일 12시간 이상 기도를 올려야 하는 교리등을 따르며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면 이들은 '확신자' 이며 '노예'인 것이다. 이러한 '초인'들은 자기가 따르던 이념이나 주의가 지닌 논리의 제한성, 혹은 그 한계을 알고 있기에 끊임없이 이행하는 자이고, 그러므로 모든 주의에서 벗어나 있다. 참언으로 초인, 위버멘슈(Übermensch, 영어로는 Over + human)는 무지막지한 능력을 가진 '슈퍼맨'이 아니라, 이 진실되고 변화하는 세계에서[3] 자신의 모든 것을 극복하여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가장 완벽한 '극복한 자'이다.[4] 힘에의 의지 또한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순수한 '힘으로서의 의지' 그 자체이지만, 과거 오역으로 인하여 권력으로 번역하는 오류를 범하였다.[5]

이에 니체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항상 의지하고 따를 수 있는 진리, 혹은 절대자가 없는 세계란 어떤 것에도 고정되거나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극복의 과정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인간은 이러한 운명을 고대 신앙이 그러했듯 두려워 하며 '신의 분노'라며 포장하거나, 혹은 '이런 끝없는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숙명이 바로 인간의 한계'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일부분이자 자기 것으로 인식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비유하자면 신의 사망 이후 '초인'으로 사는 것을 인간의 숙명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보편적인 절대 불변의 진리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선전 포고이며, '초인'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3. 해석[편집]


강신주 박사의 해설 인트로 음악이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니체의 사상은 초인(超人)에 의한 힘에의 의지의 추구이며, 초인이란 범속한 일반인이 아니라 위험을 겁내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기의 힘을 발휘, 구사하는 뛰어난 사람을 뜻한다.

19세기를 비롯한 이전의 유럽은 기독교 정신이 지배하는 세계였으며, 인간이 신에 귀의하여 신의 의지(이성적 진리의 세계)에 따라서 삶을 영위하는 도덕적 세계였는데, 이것은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권력의지와는 대립된 가치 체계이다.

니체는 세기의 반항아처럼 기독교의 도덕적 세계관에 반항하면서 그와는 대립되는 새로운 윤리, 즉 천상(天上)의 이라는 타율에서 벗어나, 고독하지만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기초로, 자기가 스스로 지상적(地上的) 선악의 기준을 세우려는 초인의 윤리를 부르짖은 것이며, 새로운 윤리에 의해 기왕의 형이상학적 개념 구도를 타파, 초월하는 새로운 신(새로운 가치 창조자)이 되고자 하는 것이 니체의 목적이다.

만약 신들이 존재한다면 어찌 우리는 우리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견딜 수 있겠느냐! 그런고로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6]

그리하여 기독교적인 낡은 신은 이미 죽고 새로운 초인적 가치의 신이 강보에 싸인 채 요람에 누워있다고 외친 것이며, '신이 죽었다'란 바로 이것을 말한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이유는 기독교로 대표되는 유럽의 형이상학적 가치체계의 종말을 선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초월적 존재에게 의지하는 것은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에 불과하며, 기독교적 사고방식은 암암리에 우리의 현실과 삶을 경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미신적 사고체계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매우 극단적인 표현으로 주장한 것.


당연히 위에 나온 해석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과장 좀 보태면 니체에 대한 해석은 철학 하는 사람들 숫자만큼 존재한다는 우스개도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7] 괜히 내 해석이 맞고 상대 해석이 틀리다는 식의 뻘짓은 하지 말 것.

4. 각종 매체에서[편집]

인용되는 빈도는 카를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와 쌍벽을 이룬다. 대개 이 문장을 이용하여 종교를 일방적으로 비난할 때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유명한 철학자의 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혀 상관 없는 문맥에 저 말 하나 인용해놓고 자신의 모든 근거 없는 주장을 정당화하려 하면 곤란하다.

"신은 죽었다." -니체-
"니체 넌 죽었다." -신-
"니네 둘 다 죽었다." -청소부 아줌마-
"이제 청소할 일 없어여, 나가여." - 지배인-
(#신=니체<청소부 아줌마<지배인)

이 말에 관련된 전통적인 낙서 패턴이 하나 있으며, 벽에다 다음 세 줄을 쓰면 된다.

파일:external/www.wildbike.co.kr/%EC%8B%A0%EC%9D%80_%EC%A3%BD%EC%97%88%EB%8B%A4..jpg<img class='wiki-image' src='//cdn.namuwikiusercontent.com/s/6f253296dda6ebb728861256da370daa409cc755e0e694c15fc39314ea7a17071129e174701f9b3d376ab53e3afbb436077ceff5b1c76be111069adf5d0ce9dde7372c8c36ab9ec81ffc0c5310a56233?e=1541515711&amp;k=oeBg0yKBQfo92UMGtS6WCw' alt='파일:external/www.wildbike.co.kr/%EC%8B%A0%EC%9D%80_%EC%A3%BD%EC%97%88%EB%8B%A4..jpg'>

뒤의 두 문장은 소소하게 차이가 있는 다양한 파생형들이 있다.

이 낙서는 만화 광수생각에도 등장한 전력이 있다. 다만 여기선 변형되어서 낙서를 지우면서 '걸리면 죽는다'로 바뀌었다. 사실은 '독일에서 수입'된 농담이라고.

MD5 배틀로 '니체'와 '신'을 싸우게 하면 신이 이긴다. 이 상황 역시 '너는 죽었다 - 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God'과 'Friedrich Wilhelm Nietzsche'가 싸우면 'Friedrich Wilhelm Nietzsche'가 이긴다근데 풀네임으로 붙이려면 '신'도 독일어 'Gott'로 써야 하는 거 아닌가? '프리드리히 니체'와 '신'으로 하면 신이 진다. 아, 니체<청소 아줌마<신<니체 순서로 강하다.

신버전(아스트랄 투닥투닥)으로 넣으면 니체가 신을 이긴다. 그리고 'Gott'이 'Friedrich Wilhelm Nietzsche'를 이긴다. 응?

신만이 아는 세계 86화에도 이 명언이 나온다.

블리치 단행본 48권의 부제이다.

본격 시유 튕기는 노래에서는 시유가 '신은 죽었다 살아있으면 내가 죽인다'고 노래한다.

극장판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신편] 반역의 이야기에서 클라라 돌즈들이 독일어로 이 말을 외친다.

카니발 판타즘에서는 세이버 얼터가 "손님이 신이라고? 신은 죽었다!!!!"라는 대사를 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다룬 일상 4컷 만화 니체 선생에서도, 불교를 공부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은 신"이라고 진상을 부리는 취객에게 "신은 죽었다."며 손놈의 얼굴에 바코드를 찍는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신이 자신의 종족을 완전에 이르게 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신의 화염에 최후를 맞는다. 그것이 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한다. 자신이 돌보던 종족이 마침내 기쁨에 찬 목소리로 '신은 죽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사실 눈마새에선 말 그대로 신의 살해가 아닌 숨겨진 뜻-절대적 진리의 부정- 역시 드러난다. 바우 성주의 신념에 가득 찻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말이나 계속해서 나타나는 도덕에 대한 부정 등이 그 예.

과거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 패륜 살인 사건 중에는 아들이 재수하게 되자 대졸 고학력의 어머니가 이 말을 인용해 거실에다 크게 '내 아들은 죽었다'라고 써서 붙여놓기도 했다. 친척들이 너무 심하지 않냐고 하자 '오기를 돋궈주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이 때 아들의 가슴 속에서 어머니도 죽었는데 그로부터 2개월 뒤 비극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2014년에 개봉한(한국 2015년 개봉) 미국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God's Not Dead)"에서는 "신은 죽었다"를 모티브로 하되, 내용은 정반대로 학생들에게 신의 죽음을 강요하는 교수를 상대로 학생인 주인공이 신은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이 명제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찰보다는 기독교적인 믿음을 마구잡이로 강조하는 다분히 기독교적인 영화다.[8] 그리고 후속작으로 2016년에 개봉한(한국 2017년 개봉) 신은 죽지 않았다 2도 나왔는데, 무신론 수업을 강요하는 학교 선생에 대해서 한 교사가 투쟁하는 내용을 법정 드라마로 다루고 있다. 역시 기독교적 믿음이 주제이다. 두 영화 다 작중에서 기독교가 탄압받는 듯한 유치한 연출이 있는데 현실의 미국 사회에선 상상도 못할 일로 실상은 정반대다. 사회 절대다수가 기독교인이고 광범위하게 근본주의가 횡행하고 불신자는 아예 정치출마도 못하게 법으로 정한 주도 많은 곳이 미국이기 때문에 좋은 평은 못 받는 영화들이다. 3편인 신은 죽지 않았다 3: 어둠 속의 빛까지 나왔지만 손익분기점도 못 넘기고 완전히 폭망.

인디 게임 제작 팀 hc에서 만든 비주얼 노벨five colors volunteers에서는 토끼가 미쳐버리자 갑자기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주변인물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토끼는 화를 내고 결국 주변에서 억지로 인정하게 되는데 이때 토끼가 "신은 죽었어!"라고 말한다.

배너 사가의 스토리는 신이 죽으면서 시작된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렉스루터가 감옥에서 이 말을 외친다.

살육의 천사에서도 나오는데 자세한 것은 스포일러.

[1] 차라투스트라이다. [2] 플라톤의 이데아, 종교의 신, 정의, 자본가들의 자본, 노자의 도, 과학, 이성 등등등.[3] 니체는 천국과 지옥, 이데아를 변화하지 않는 거짓 세계라고 두고 두고 말했다.[4] 원광대학교 철학과의 김정현 교수는 Ubermensch를 '초인'이 아니라 '극복인'으로 번역한다.[5] 이 '위버멘슈'는 아돌프 히틀러도 그 개념을 오해하여 오용, 악용했다. 그런데 그 근본 원인은 천하의 개쌍년인 니체의 여동생이었다. 니체를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일생동안 속였다. 위버멘쉬를 권력의지의 개념으로 자리잡게 한 것도 그녀의 만행.[6] 윌 듀런트의 《철학 이야기》, 최혁순 역에서 인용.[7] 심지어 철학자로 간주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8] 그 예로 무신론자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교수가 실은 어릴 적, 기독교 신자였다가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상처를 입은, 사실상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 이상의 반신론자라는 것이다. 물론 그가 무신론자이면서 반신론자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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