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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문

스올의 권세를 누가 막으리오

by 이덕휴-dhleepaul 2023. 9. 9.

2023.09.10 주일 낮 예배

말씀: 시89:47-48/롬 5:12. 

제목: 사망의 권세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만나교회 담임 이덕휴목사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셀라)』(시 89:47-48)
 

 ‘셀라’(Selah)라는 단어는 시편의 절과 편의 마지막 부분이나 시의 끝부분이나 혹은 가운데 나타나는 등 일정한 규칙 없이 여기저기에 사용되었습니다. 시편 39개의 시에 71회, 하박국에 3회가 기록되어 성경 전체에 74회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정확한 뜻은 알려져 있지 않는데 운율에 맞춰서 악기나 숨쉬는 것을 잠간 멈추고 ~~~ 쉰다. 또는  ‘멈춰서 듣는다’ 등의 의미로 사용이 된 것 같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6:23

 
- 은혜성가: 주의 길을 가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gNn5UWtPQS8

              -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 들어가는 말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죽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호흡이 있는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시150:6)고 하였습니다. 죽은 자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흡이 있을 때, 우리는 끊임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첫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그 후손들은 모두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생명이신 하나님과 분리되니 생명을 잃었다. 하나님은 에덴의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천사를 시켜 지키도록 했다. 하나님은 자신이 주는 생명을, 자신과 분리되고 거역한 이들과는 나누지 않으신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죄를 속죄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그 채무는 오늘까지 이어져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게되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다 - 오늘의 본문 요약

죄가 무엇인지 명시한 '율법'은 모세 때 만들어졌다(시내산 언약). 그러나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는 있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려할 때 하나님께서 카인에게 '죄를 다스리라'며 죄 짓지 말 것을 말씀하셨고, 노아의 홍수 때 보면 이른바 사람의 후손들이 행악하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통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사도바울은 롬5:13에서 "율법이 생기기 전에도 죄는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생기기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율법이 있으나 없으나 그들이 그 기준에 따라(자기 지은 죄과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리라는 말과 같다. 법이 없다고 죄가 죄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과 인간이 만든 실정법의 차이입니다.

따라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은 「죄인줄 깨닫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은 하나님과의 교제 아래 있는 이들에게만 유효합니다. 그 생명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전제하므로 무한하다.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교제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아담과 하와는 육신을 입은 상태로 영원히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 수도 있었다.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이 없다면 생명이 없는 것이다. 생명이요 부활의 증거로서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피흘리셨음을 영원히 가슴팍에 새기시는 우리 만나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

1. 스올(음부-무덤, 지옥, 죽음)의 권세

 
죽음은 필연적 운명이지만, 자신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주저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슬쩍 벗어납니다 성경은 죽음을 바라보고 준비하라고 가르치지만 알면서도 다른 이의 죽음은 준비하라 하면서도 자신의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스울(무덤)의 권세에서 자신을 건져 낼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죽음은 받아드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이하곤 합니다. 믿지 않던 사람도 죽음에 임박해서는 급히 정말 급한 마음에 정말 거미줄이라도 잡아 땡겨서라도 스올의 구덩이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아멘 아멘 하면서 시키는데로 소위 임종구원이라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좀 심한 표현이기도 합니다마는 흔히 죽음을 준비하지 않던 사람들이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올 때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죽음  거부합니다
 
“이런 일은 내게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라기 보다는 설마 지금, 내가 아니 아직은 아니야 라고 생명줄을 놓지 않지만, 시편기자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편 55: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시편 18:4-5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 내게                           이르렀도다

죽음은 우리에게 세상적으로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흔히 말하기를 죽음은 영면이라고 말합니다. 그냥 하루 일과를 끝내고 취침에 들어가는 수면이 아니라 영영세세토록 잠드는 것입니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지구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믿는 자들도 주님이 십자가에 달렸다가 3일만에 깨어나신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성서에서는 계속해서 주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죽음은 하여튼, 두려움의 극치입니다. 빵깐에 들어가서 몇년을 살아라고 판결을 내리는 판사나, 사형언도를 내리는 판사도 막사 자기가 잘못하여 빵에 갈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하여 자살하거나 도피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빵깐은 들어갔다가 나오기라도 하지요
 
인생을 살면서 들어가기 싫은 곳?  
 
첫째가 아퍼서 병원에 가는 것 ㅣ둘째는 죄짓고 감옥에 가는 것, 여기까지는 그래도 희망이라는 무지개를 바라보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가는 곳은 스올입니다. 누가 가고 싶어 합니까.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을 빼거나 투신하는 사람을 빼고서는 정말 가기 싫은 곳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단계는  사망의 권세를 거부합니다.
 
다음으로 분노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기가 막힙니다. 성질납니다. 미치겠습니다. 환장을 하는 것이지요. 환장이란 내장 기관이 뒤짚히는 것입니다. 창자가 꼬이면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올라갑니다. 이건희회장이 말합니다 내가 돈이 없냐? 최고시설의 병원이 없냐 남 가진 것 다 가졌는데 죽음만은 피할 수가 없다고 했죠? 맞습니다.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천부인권이라는 것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핏덩어리로 탯줄을 자를 때까지만 평등합니다. 인간의 수태기간은 10개월입니다. 그리고 호흡이 시작될 떄부터 멈추는 순간까지는 급수대로 살아갑니다. 금수저, 은수저 그리고 목수저 등이지요. 그나마 수저라도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지요. 그러다가 임종의 순간은 누구나 평등합니다. 호흡이 끊기는 순간은 누구나 같습니다. 물론 고통의 순간까지는 다릅니다. 불평등합니다 쩐이 많으면 폭신한 분위기에서 호흡이 멈추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릅니다. 처첨한 처지에 놓인 사람은 죽음을 좀 더 긍정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많이 남겨둔 사람은 그게 아니죠? 아까워서 못 죽겠다는 것입니다.
 
천주교 어떤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언제 여행 갈 것인가?? 나중에 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일 좋은  때는 현금이 많이 있으면 좋다고 합니다. 현금도 좋고 순금도 좋다고 하지만 늙고 병들면 소용이 없다. 그러니 모든 금 중에서는 지금이 젤 좋으니까 지금 당장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옷도 입으라고 권합니다 글쎄요 나는 꼭 그렇다고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대개의 사람들은 재물이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장거리 외국 여행을 할 떄, 돈 많아서 1등석을 타면 좋습니다 왜냐 똑같은 속도로 똑같은 장소에 가지만 가는 동안 서비스가 다릅니다. 품질이 다릅니다 바로 내가 위에서 말한 인생살이하고 같습니다. 인간의 수명은 있는 자는 없는 자나 대개 비슷합니다  있는 자는 천국에 못간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돈 많은 부자 청년의 비유에서 말씀하셨죠. 가진 것이 없어야 주님 따라다니기가 좋습니다. 교회에 헌금내는 것도 돈 많은 사람은 아까워서 못냅니다. 그러나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내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안내도 되니까 좋죠.
 
셋째 단계는 무조건 무조건이야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다 털어서라도 살려만 주세요 아멘도 좋고,  선무당 구시레도 좋다 이겁니다.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말합니다.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다.”(전8:8a)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하나이다. 나는 석양같이 지나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가오며...”(시109:22-23)

넷째 단계는 체념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 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주소서”

하나님이 만드셔서 이 세상에 보냈는데도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립니다. 결국은 나의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닫고 돌아옵니다.
 
시38:11의 말씀을 읽다보면 세상은 결국 나를 버리고 만다는 진리를 알고 하나님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다섯째 단계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에 거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떄문입니다.

 
2. 남은 날에 감사
 
 죽음을 인정하고 영생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나의 남은 날을 감사히 여기라 - 하나님과의 교통

나의 남은 날(나의 순례 기간)이 좋은 날이 되게 하소서. 나로 당신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당신의 얼굴의 빛을 얻게 하소서. 슬픔과 어둠의 날이 되지 않게 하소서. 그러므로 은혜로운 영혼은 이 땅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과의 교통은 그의 영혼이 갈망하고 숨쉬는 유일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이 짧다는 것을 깨닫고 잘 살고 자신의 시간을 잘 활용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은 앞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누릴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을 보게 될 것입니다. . 그리고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땅에서도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합니다. 거듭나야 영생의 길을 간다고 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이 되지 않습니다. 만일 악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의 부족함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러 번 자신들의 정욕을 더욱 추구합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많은 즐거움을 얻고 탐욕스럽고 야심적이며 육욕적인 식욕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하며, 이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단맛을 빨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들은 외적인 즐거움이 주는 한 최대한 달콤하게 즐기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은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것보다 더 높고 더 나은 선을 알지 못합니다. 오 비참하고 속은 피조물들이여, 하나님에 대한 구원의 지식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영적인 즐거움도,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도 보지 못하였으니 그들의 이해력이 어찌 그리 어두워졌는가. 그들은 애굽의 흑암에 심히 빠져 있어 그 만족을 알지 못하느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기쁨과 달콤함,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짖지도 않고 여기서 그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그와 함께 행복해질 수도 있습니다.

 

3. 영생의 길

 

오늘의 본문에는 두 가지 부정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는 자가 누구뇨?

 그가 자신의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까? 셀라.

 

그 의미는 어떤 사람도 그것을 피할 수 없고, 그 사람이 무엇이든 무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종류의 질문이 많이 제시되고 그에 대한 답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관찰을 진행하기 전에 설명을 통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두 가지 용어 즉, 

 

여기서 영혼 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영혼이 무덤에 따라들어 가나요?

영혼에 대해서 시편 19:7절 말씀에 보면 주님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킵니다. 하나님께로의 회심은 겉사람의 결점이나 특성을 바꾸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회심하기 전에 이런저런 질병이나 질병을 앓고 있다면, 그는 진정으로 개종하더라도 동일한 질병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절름발이, 눈 먼 사람, 귀먹은 사람, 구부러진 사람, 또는 그와 비슷한 성격의 다른 흠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을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고 목말라하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먹고 살며, 성령으로 옷 입고 꾸미고, 하나님과 연합하고 교통하는 자라고 읽을 때; 그것은 항상 사람의 영광스러운 영 , 곧 사람의 영혼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관해 한두 성경구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가 복음 1 장. 94. 19.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 당신의 위로가 내 영혼을 기쁘게 합니다. 

 

즉, 어느 누구도 무덤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는 자가 누구뇨? 죽음은 그에게 너무 힘들고 저항하기에는 너무 강력할 것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죽어야 한다. 홍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므두셀라는 구백육십구 년을 살았습니다( 창 5:27) . 그러나 마침내 그 말이 너희에게 이르고 그는 죽었느니라. 그는 거의 천년을 살았으나 마침내 무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람은 죽습니다. 누구라도 죽게 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재물이 무덤의 권세에서 구원하지 못하듯이 세상의 권세와 세상의 주권과 위대함도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강력한 군주와 군주, 성경과 고대 역사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죽음이 그들 모두를 굴복시키지 않았느냐? 그들의 모든 위대함과 화려함 이후 그들은 모두 죽음을 정복하는 죽음의 손에 의해 잘려졌고, 이제 그들의 영광은 먼지 속에 놓여 있습니다. \ 그리하여 당신은 세상의 모든 영광과 영광이 무덤의 세력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탁월한 은혜와 영적인 자질, 또는 신성한 자격은 영혼을 무덤의 권세에서 구원할 수 없습니다. 고대의 족장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읽은 바에 따르면, 당대에 궁창의 별처럼 빛났던 은혜로 선택받고 유명해진 그 모든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 인내와 순결과 절제와 거룩함과 겸손이 뛰어난 이스라엘 군대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들은 죽음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의인이 멸망할지라도 마음에 두는 사람이 없도다. 자비로운 사람들이 끌려가도 고려하는 자가 없도다,   의인은 장차 올 재앙에서 제외될 것이라.

 

이사야 57 1 의인이 죽을찌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찌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그리하여 너희 는 죽음을 보지 않고 스올의 권세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확립되고 확증된 교리를 들었느니라 . 두세 가지 이유만 말씀드리고 신청을 진행하겠습니다. 왜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면 두세 가지로 답을 얻으십시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이 함께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죽음은 에덴동산의 추락으로 찾아왔습니다. 이는 그 범법으로 인해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의 일부입니다. ROM. 5.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 23. 우리는 거룩한 사람의 말씀으로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오 죄여, 죄여, 당신의 공의로운 공로로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장례식을 치르게 하신 분이시니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반드시 죽는다고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은 자연스럽고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지정에 따라 죽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죽음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만나가족 여러분,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합니까? 아무도 자기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원할 수 없느냐?  어두운 무덤은 모든 산 자들을 위한 지정된 집인가? 가장 교만하고 가장 높은 자들이 먼지 속으로 내려가야 합니까? 지하에 있는 작고 시원한 집이 우리 모두를 붙잡아야 할까요?

 

그러면 불쌍한 죄인들은 나는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당신과 함께 승리합니까? 주변을 살펴보고 준비할 것을 권면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가 이렇게 오래 살 수 있게 하신 것이 얼마나 큰 은총과 자비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것들은 오래 전에 베어져서 무덤으로 보내졌느니라. 그 사람은 그것을 얻지 못하여 네가 가진 날의 절반을 받게 되리라. 네가 태어나기 전에 네 생명을 잃었으니 이것을 참으로 자비로 여기라.  

 

마치는 말씀

 

고린도후서 1:8-10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요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진다(요한복음 3:36, 5:24, 17:3). 다시 말해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는 자들이 영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그가 하신 말씀도 믿을 수 있고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요한복음 6:2~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시는 예수님의 근본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다(요한복음 1:1~3, 14). 영으로 계시던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인생들과 동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빌립보서 2:5~7).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은, 인류가 먹기만 하면 영원히 사는 ‘영생하는 양식’을 주시는 것이었다. 이 양식은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과연 이 양식은 무엇일까?

예수께서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요한복음 6:32, 35, 47~48,)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 만나 모든 성도님들께 주신 언약의 말씀 살전 5:16-18 함께 봉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