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수도원 운동
초기 수도원 운동이란 3 세기말에서 처음 시작하여 4-5세기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확대된 교회 내의 운동을 말한다. 통상 안토니를 최초의 기독교 수도사로 말하나 순수히 역사적으로 말한다면 잘못된 내용이다. 수도원도 처음 기독교에서 시작한 운동이라고 할 수 없고, 안토니도 기독교 내에서 처음 수도사는 아니다.16) 안토니를 수도원의 효시로 삼은 것은 아마 알렉산드리아 감독 아타나시우스의 정치력이었을 것이다.17)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의 저서 안토니의 생애18)를 통해서 그의 신학적 정치론을 펼치고 있다. 이는 외적인 정치 수단과 권력을 통해서 교회의 내적인 신학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교회 정치 이상을 건전한 신학 이해를 통해, 즉 건전한 신학적 인간 이해를 통해 펼쳐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수도원 운동은 아타나시우스 한 개인의 열망을 훨씬 넘어 모든 문화권에 퍼져나간 범 기독교 운동이 되었다. 이집트 사막에서 시작한 수도원이 팔레스타인, 시리아, 소아시아, 멀리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영국까지 번져나갔다.
이 시기의 수도원 운동을 역사적으로 보고해 주는 문헌들이 있다. 이미 언급한 안토니의 생애와 사막교부들의 금언, 그리고 Rufinus의 History of the Monks of Egypt가 412년에 발간되었고, Palladius가 419-20년에 쓴 Lausiac History, John Cassian이 421-6년에 쓴 Institutes와 Conferences 등이 초기 수도원 운동과 신학을 기록하고 있다. 이중에서 이 글은 사막교부들의 금언19)을 중심으로 수도원 운동과 신학을 살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다른 저작들은 한 개인의 글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개인의 편중된 시각이 있기 마련인데 반해 금언20)은 저자와 편집자 모두 무명인체 전해져 내려오는 문헌이어서 어느 한 개인이나 그룹이 가질 수 있는 편견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초기 수도원 운동 연구를 위해 메살리안 운동을 연관하여 살펴보게 되는 이유는 수도원 운동이 당시 겪고 있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면 분명해진다. 당시 수도원 운동은 제도권 교회의 조심스러운 관찰과 경계를 받기 시작할 때였다. 특히 기독론 논쟁으로 인한 신학적 이단 문제로 교회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수도원 운동은 메살리안 운동과 연관된 신학적 가르침과 실천을 정리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제도권 교회의 권위 문제와 연관해서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메살리안 운동에 제도권 교회가 조직적으로 정죄를 할 즈음에 모든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수도원 운동은 사실 제도권 교구의 사제들이 메살리안 운동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아야할 대상이었다. 본래 수도원적 기본 이상이 사회로부터 지리적으로 격리하여 수도하는 것이라 교회의 가르침에 구체적으로 무엇이 위배되고 있는지 제도권 교회에서는 아직 알 수가 없었지만 점차 커져 가는 이들의 힘은 더 이상 무시 못할 형편이었다. 이미 공개적으로 수도사들이 니케아 회의 때 알렉산드리아 감독 아타나시우스를 지원하기 위해 수도원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안토니의 인도 하에 집단적인 힘을 과시한 적도 있었다.21) 이런 힘을 가진 수도원에서 메살리안적인 실천을 하는 수도사들이 있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으로 메살리안 운동에 대한 제도권 교회의 회의적인 시각은 단지 몇 사람의 관련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보다 일반적으로 수도원 운동과 수덕주의 전체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과히 틀린 일은 아니다. 특히 감독들은 자신들의 교구에서 자기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수도원과 수도사들의 존재가 부담이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목회적인 차원에서 권위의 누수현상마저 일어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물론 이런 교회적인 경계가 수도원 운동의 신학적 이단의 위험성보다는 수도사들과 수도원들이 광야와 사막에서 있지 않고 도시 안으로 들어오게 될 때 수도사들에게 보냈던 일반 교인들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도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차에 교회의 공적인 조직과 예전을 무시하는 메살리안 운동이 번지게 될 때 수도원에 대한 적극적 경계가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수도사들이 오로지 사제에 의해 집례 되는 공적인 예전을 거부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22)
이런 의심의 눈초리에 수도원 사람들은 특히 자신들의 신학적 내용과 실천에 대해 더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무엇보다도 메살리안적 신앙의 강조는 수도원적 신학과 실천에 맞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메살리안 운동으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를 수도원이 받아야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교회 역사에서 이단을 뜻하는 haieresis는 신학적인 함축보다는 사회학적인 함축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수많은 이단들이 외견상 신학적 이유로 이단으로 정죄 되었지만 교회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이유도 상당히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교회의 공 조직과 신학에 어긋나는 내용을 가졌을 때 이단으로 몰리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 기적 같은 사실은 4세기에 일어난 수도원 운동이 이단으로 정죄 되지 않고 오히려 교회사에서 두고두고 영적 원천으로 공헌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수도원 운동이 이단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었던 이유는 주변에 여러 가지 이단의 문제들과 갈등하면서 배운 지혜이었을 것이다. 기독론 논쟁에서는 무엇보다도 아리우스 신학을 편들지 않고 아타나시우스 신학의 절대적 지지자가 되었고, 또한 펠라기우스 논쟁에서는 요한 카시안 등을 내세워 반-펠라기우스 입장을 견지했어도 어거스틴의 이중 예정론이 아직 교회 회의에서 정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들의 입장이 당시 더 받아들여졌음을23) 보게된다. 이런 지혜는 메살리안 이단 시비 때에도 여전히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되었다. 그 자신의 저서 A History of the Monks of Syria에서 시리아 지방의 수도사들의 삶과 신앙에 대해 기록하면서 수도사들에 대해 깊은 존경을 가지고 있던 데오도렛조차도 “많은 수도원들이, 다시 말하자면, 많은 강도 굴들이 이 질병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24)고 비난하며 메살리안 운동에 물들어 가는 수도원들을 “불태웠다”25)고 말한다. 이런 교회의 강경한 노선에 대부분 수도원은 행여 자신이 메살리안 운동에 물들지 않도록 극히 노력할 필요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데오도렛처럼 더 분명히 대응해야 했다.
이런 대응을 통해 수도원 운동은 기도와 노동에 대한 정통적 입장을 확립하고, 그들의 구원관에서 신화(deification)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수도원 운동이 교회사에서 이단이 되지 않았던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수도사들의 겸손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 누구와 경쟁심으로 신앙 생활을 한 적도 없다. 이들에게 겸손이란 영적 성장의 제일 위에 있는 것이었다. 영적 능력이 아무리 많다해도 겸손이 결여되면 그 것은 나무로 만든 배가 못질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았다.26) 수도원이 이단이 되지 않은 것은 이런 일반적 삶의 태도뿐만 아니라 메살리안에 반응하는 과정 때문이기도 하다. 즉 메살리안 논쟁을 통해 이미 걸러진 신학적 입장과 실천 때문에 451년 제 4차 칼케돈 에큐메니칼 회의에서 수도원 운동이 교구의 감독 통제 아래로 들어가는 결정적 제재를 보게되지만 결코 이단 운동으로 정죄되지 않도록 만드는데27) 공헌을 했을 것이다.
이제 구체적으로 수도원 운동에 메살리안 운동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연구에 한계가 있음을 밝힌다. 모든 역사 연구에 현존하지 않는 자료가 제일 큰 한계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메살리안 자신들의 손에 의해 기록된 책인 Asceticon이 남아있지 않다. 덧붙여, 설사 메살리안 운동이나 관련된 수도원 문서가 현존하더라도 방법론의 차이 때문에 현재 우리가 원하는 일차적 자료를 얻기는 어렵다. 오늘 우리는 상대방의 자료를 문헌적인 비평을 통해 분석하고 비판하여 직접적인 연관성을 만들어 내지만 현존한 자료들이 이런 문헌적인 비평을 통해서 그 영향력의 인과관계를 만들어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초기 수도원 운동에서 글을 통한 훈련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수도원 측에서 문헌적인 비평을 통해 메살리안을 분석하고 자신들의 글에 이 분석의 결과를 남겼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럼으로 현존해 있는 수도원 문헌에서 간접적으로 메살리안 영향력의 인과성을 찾아내어야만 한다. 그럼으로 역사 연구 자체를 위해 이 연구가 공헌할 수 있는 것은 직접적으로 메살리안 운동에 대한 역사를 밝혀내는 작업이 못되어도, 메살리안적인 신학의 입장을 수도원 문헌에 대입해 읽었을 때 왜 그런 말들이 수도원 문헌에 기록되었는지 글 뒤 상황적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문제가 되는 수도원적 글들을 메살리안 상황과 연관지어 읽을 때 그 의미가 너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수도원 운동을 잘 보여주는 금언에서 수도사들이 어떻게 메살리안 입에 대응하고 있는가를 살펴봄으로 그 영향력을 짐작해보려고 한다. 상기한 메살리안의 10개의 신학적 입장을 수도원 운동과 연관해 세 가지 주제로 축약해 논의한다.
1. 기도와 노동
초대교회는 기도의 공동체였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제자들에게 ‘주의 기도’를 통해 가르치셨다. 그럼에도 성서에 있는 ‘주의 기도’는 언제, 어디서, 얼마동안,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고 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구체적 역사적 상황에서 결정해야 되었다. 초기 수도원도 마찬가지 상황이어서 기도에 관해서는 이제까지의 교회 전통을 지키면서도 자신들의 상황에서 기도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몇 가지로 묶을 수 있는 기도에 대한 수도원적 전통이 생겼을 것이다. 금언에 보면 기도에 관해 여러 가지 모습을 그릴 수 있다. 몇 마디만 반복하는 단순한 기도28)로부터 삶의 전체가 기도라는 이해까지 그 폭이 넓었다. 우리의 관심인 메살리안적인 기도가 직접적으로 수도원 운동에서 가지고 있는 기도의 전통과 연관성이 있는가를 금언 본문에서 찾아본다. 아바 루키우스 이야기에서 우리는 메살리안 운동이 수도원 운동과 어떤 연관성을 가졌는지를 문자적으로 보게 된다. 이 이야기는 금언에서 유일하게 메살리안을 직접 거명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전체를 들어보자.
유키테스파의 수도사들 중 몇이 루키우스를 만나러 에나톤으로 갔다. 루키우스가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손으로 무슨 일을 합니까?” “우리는 수작업을 하지 않 고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루키우스가 그들에게 음식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음식을 먹는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루키우스는 그 들에게 물었다. “음식을 먹을 때에는 누가 당신들을 대신하여 기도합니까?” 그리고 나서 그들에게 잠을 자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잠을 잔다고 대답했다. 루키우스는 “당신들이 잠을 잘 때에는 누가 당신들 대신에 기도를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들 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루키우스는 그들에게 말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당신 들은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내가 손으로 작업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방 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 앉아서 갈대를 물에 담그고 끈을 꼬 면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크게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좇아 나를 죄에서 구해 주시옵소서’라고 말합니다.” 루키우스는 그들에게 이 것이 기도가 아니라고 생 각하느냐고 물었는데 그들은 기도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루키우스는 그들에 게 말했다. “이처럼 나는 종일 일하고 기도하면서 13전 가량의 돈을 벌어서 2전은 문 밖에 놓아두고 나머지는 음식값으로 지불합니다. 문밖에 둔 2전을 가져가는 사 람은 내가 식사를 하거나 잠자는 동안에 나를 대신하여 기도해 줍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교훈을 성취합니다.”29)
이 이야기를 통해서 수도원 내부에서 기도의 이해에 관해 메살리안 운동과 씨름을 하고 있음을 본다. 분명 수도원 전통은 메살리안 이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도원 전통에서 모두가 루키우스처럼 기도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루키우스의 이야기와 다르게 여전히 “끊임없는 기도”를 강조하는 전통도 있었다. 아바 베사리온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공관복음에 나오는 귀신들린 아이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만난다. 사제들이 아무리 기도해도 귀신들린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자 베사리온에게 부탁하고자 했다. 그러나 단지 귀신 쫓는 일을 위해서 교회에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귀신들린 사람을 교회에서 재우고 새벽에 교회에 기도하러 오는 베사리온에게 이 사람을 일어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베사리온은 그 사람을 그냥 잠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인지 알고 [아침이 되었으니] “일어나서 가시오”라고 말하자 귀신이 쫓겨나고 그 사람이 일어났다고 전한다. 아바 베사리온은 기도할 때 능력이 나타났다. 물위를 걷기도 했고 해를 멈추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14일 동안 밤낮으로 가시나무 덤불 속에서 잠자지 않고 서있었다고 한다.30) 즉 서있었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뜻이다. 이 당시 수도원 전통에서 서서하는 기도가 으뜸이었다. 베사리온이 실천하고 있던 기도 형태는 메살리안적인 요소가 다분히 있지만 일반적 수도원 전통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기도 능력이 있다고 남들에게 영적 교만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겸손이 기도에 관한 균형 감각을 주었던 것이다. 테베의 이삭(Isaac of Theban)은 성례전 시에 끊임없는 기도에 몰두하느라 때로 떡과 포도주를 못 받는 수가 종종 있었다. 성례전이 끝나자마자 다른 이들과 대화 없이 자기 독방으로 사라져버리곤 했다. 그런데 금언은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끊임없는 기도와 아울러 “모든 선한 일에 완벽하게 훈련받은”31) (pepaideume,non eivj a;kron pro.j pa/n e[rgon avgaqo,n)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기도의 깊이를 방해하려는 사탄의 계략을 경계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즉 그의 기도의 편중성은 삶의 훈련과의 조화를 깨는 것이 아니었다.
기도에 관한 메살리안 신학의 문제점은 기도와 일반적인 삶과이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지극히 편파적이라는 데에 있다. 메살리안들은 기도만 하는 것을 최고의 신앙적 덕목으로 여기고 이렇게 끊임없는 기도를 위해서 오직 “영적”인 훈련만 중요시하게 하였다. 그들의 훈련의 목표는 오직 “천사처럼 사는 것”32) 또는 “천사들의 친구가 되는 것”33)이었다. 천사가 되기 위해서 오로지 영적인 훈련만 해야한다는 그릇된 오해가 자연발생적인 오해일 수도 있고, 메살리안적인 영향 때문일 수도 있다. 18살에 수도사가 된 난쟁이 요한의 경우는 메살리안적인 영향 없이 수도 생활 초기에 천사처럼 되고 싶어 오직 영적인 것에만 훈련하려고 했다. 1주일 지난 다음 선배에게 찾아가 대화를 하고자 했지만 선배 수도사는 받아주지 않았다. 이미 요한은 천사가 되었기 때문에 인간 요한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수도사는 요한에게 “너는 인간이다. 먹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한다”34)고 깨우침을 주고 있다. 이런 가르침이 메살리안적인 생각들과 부딪힐 때 더 강조가 되는 것이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조화와 균형을 이해하지 못하면 동방교회가 말하고 있는 ‘신격화’(qe,wsij)를 잘못 이해하게 된다. 이 신격화(deification)를 myth(신화)로 이해하거나 마치 인간이 하나님이 된다는 것으로 과장되게 생각한다. 그러나 동방교회의 신화란 Vladimir Lossky가 설명하듯이 무한한 신적 선함에 참여하여 인간에게 부여된 최선의 삶- 영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향하여 추구하는 삶을 말한다.35) 헬라철학이나 이교적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 안에 있는 내재적 신적 빛(divine spark)을 실현화시키는 삶이 아니라 통전적으로 인간 존재 전체의 삶을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도 수도원 영성에서 신화(deification)가 마치 인간이 하나님이 된다는 식의 오해가 생기게 되는 것은 바로 메살리안적인 신학을 펼치는 사람들이 수도원 내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메살리안 논쟁은 수도원 내부에서 신학을 세련되게 하고 정리하는 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2. 마귀와 덕목
초기 수도원 운동을 기술해 주는 대표적인 저술 가운데 하나인 안토니의 생애는 20년간 안토니가 홀로 수도하고 있을 때 주로 마귀들과 싸웠음을 보고해주고 있다. 금언에서도 마찬가지로 사탄과의 투쟁의 주제는 지배적이다. 이런 지배적인 언급에도 불구하고 금언의 성격처럼 조직적인 논의를 했다거나 신학을 전개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마귀론(demonology)에 관해서는 독자의 신학적 지식에 의한 재구성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는 메살리안적 영향에 관해서 우선 말해 두어야할 것은 마귀론에 관해서 금언에서 직접적으로 메살리안에 관한 언급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메살리안적인 마귀 이해가 수도원 신학의 마귀 이해가 얼마나 서로 긴장감을 조성하는지는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우선 금언에서 볼 수 있는 마귀론을 정리해본다. 첫째, 마귀는 하나님과 대적하는 영으로 실제적이다. 마귀가 수도사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변신도 하고 귀신도 들리게 한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마귀의 이런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둘째, 마귀는 단지 외적인 존재로서 인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침투해 결국 인간 자신이 마귀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바 시소에스(Sisoes)에 의하면 싸움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36) 마귀는 절대 무조건적으로 인간을 침략해서 인간을 무력화시킬 수 없다. 오로지 “우리 자신의 연약함의 상황에서만 우리를 공격해 올 수 있을 뿐이다.”37) 우리 내부가 공격을 받아 지기 시작하면 결국 우리 자신의 의지가 마귀가 되게 된다.38) 물론 이 말은 물질적이거나 육체적으로 우리 마음과 의지가 마귀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말에서 마귀가 얼마나 밀접히 우리 인간의 인격을- 지성과 감정과 의지- 침해하는지를 보게된다.
이 두 번째 관점이 보다 메살리안적인 이해와 긴장을 조성한다. 우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귀신들린다고 하는 메살리안 설명을 수도원은 거부한다. 수도원 신학에서는 인간의 육체가 악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육체는 귀중한 것이어서 영혼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한다. (“만약 영이 육체와 함께 노래하지 않으면 모든 수고는 헛된 것이 된다”39))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것은 단지 영혼만이 아니라 영과 육이 합해진 통전적인 인간이다. 따라서 출생 시에 인간 육체에 귀신이 붙는다는 메살리안의 설명을 거부한다.
귀신을 쫓아내는 방식에 있어서 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메살리안 운동은 오로지 개인적인 끊임없는 기도만이 그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도원 전통에서는 귀신을 쫓는 특별한 예식을 행하지 않고 성서의 가르침대로 예수 이름으로 쫓아내고 있다. 수도원 전통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첫째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귀신을 쫓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영적 능력이 아니라 귀신들린 사람에 대한 사랑과 동정이 더 중요하였다는 점이다.40) 금언 어디를 찾아보아도 주술적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이야기는 없다.41) 오히려 수도원 전통에서 생각하는 귀신 쫓아내는 방식은 통전적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격을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단순한 기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전 인격이 사탄의 힘과 영향에서 해방되어 온전한 인격과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럼으로 수도원에서는 격정(passions: 즉 사탄의 노예가 되어있는 마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무격정(apatheia)에 이르는 것이 모든 훈련의 목표가 되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단순한 기도뿐만 아니라, 즉 단순히 초자연적으로 사탄을 내쫓은 일만이 아니라 전인적인 삶의 훈련이 필요하였다.
3. 성령과 체험
세 번째로 문제를 삼을 수 있는 것은 성령 체험의 방법이다. 메살리안은 성령을 체험하게 되면 이를 육체적 감각(ai;sqhsij)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체험 때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을 나누게 되고, 자연히 영적 우월감에서 교만하게 되었다. 이런 우월감은 “체험”을 뜻하는 헬라어 pei/ra의 사용법에서 나타난다......... 메살리안 용법에서의 pei/ra는 영적 gnw/sij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즉 성령을 육체적 감각으로 체험하게 되면 영적 지식에 이르게 되고 모든 죄의 뿌리에서 벗어나게 되어 완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적 지식에 이르는 방법은 육체적 잠을 통해 꿈과 환상으로 오게 된다. 자연스럽게 메살리안 운동은 수덕적 덕목(ascetic virtues)을 부정하게 된다.
한편, 수도원에서는 이미 귀신들린 것이 단지 인간의 정신적/영적 삶과 관계없이 외부에서 육체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보지 않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성령 체험도 단지 이를 외부에서 오는 육체적 감각이 아니라 보다 통전적인 작용이라 생각한다. 수도원에서의 pei/ra를 강조하는 관점은 영적 지식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와 눈물이 있는 시험(trial, test)이다. 아바 푀멘은 “체험은 좋은 것이다. 그 것은 사람을 시험해서 증명해”42) 준다고 말한다. 여기서 체험은 결코 우월감이 깃든 영적 지식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적이고 수덕적인 훈련을 통해서 얻게되는 체험이다. 이 체험을 통해서 이 사람의 영적 진보를 시험한다는 뜻이다. 초기 수도원 전통에서 신비주의 대가로 지칭되는 에바그리우스(Evagrius)조차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험(peirasmo,j; pei/ra와 같은 뜻이다)을 없애라, 그리하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43) 그럼으로 메살리안측에서 영적 완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체험을 말하고 있는 반면, 수도원에서는 눈물의 실패의 반복을 의미한다. 수도원적 신학에서는 사람이 자기 의지(qe,lhma i;dion)로 사탄의 하수인이 되고 결국 사탄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도 ‘덕목을 향한 의지’(disposition, diaqh,kh)의 결과로 이해한다. 즉 성령과 함께 일하는 (synergism) 결과로 성령의 체험이 내재화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수도원 운동과 메살리안 운동의 결정적 차이는 조화와 균형을 갖느냐 못 갖느냐의 차이에 있다. 메살리안은 성령의 역사와 인간적 수고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기도론에서 기도와 일의 균형을 상실했고, 성례론에서 공적 성례전의 공동체적 가치를 상실하고 개인적 주관주의로 기울어졌고, 마귀론과 성령론에서는 인간적 훈련의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반면, 메살리안적 관점과 비교해 보면 수도원 신학은 무엇보다도 조화를 중요시한다. 아바 알센니우스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pro.j th.n e[xin tou/ avnqrw,pou)44) 훈련할 것을 권고한다. 지나치는 것은 마귀에게서 온 것으로 간주한다.45) 수도원의 극단적인 훈련에 대한 비난은 외부의 선입관이나 편견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수도원 내부에서는 균형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집트보다는 터어키 쪽의 시리아 수도원들이 극단적인 형태의 수도원적 훈련을 강조한 것도 터어키의 기후 조건을 비롯한 생활 환경이 이집트 사막보다는 훨씬 양호하기 때문에 생긴 공생적인 적응(symbiosis)에 의한 것이지 결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거나 무시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수도원 운동이 이렇게 개인적 차이와 형편에 따라 조화롭게 훈련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줄 수 있는 것은 아바들의 영적 분별력에 대한 강조에서도 볼 수 있다.
4. 맺는말
메살리안 운동은 어느 특정한 한 지도자나 신학자에 의해서 주도된 운동은 아니었다. 기독교의 신학과 영적 삶을 형성하고 규정해 가는 역사의 단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게 되는 운동이었다. 그 시작은 어떤 집단적인 의미에서의 운동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보다 영적 체험을 강조하는 사람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신앙 형태였다. 이 메살리안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를 한다면 당시에 점점 생동감을 잃어 가는 교회 예전에 자극을 주었다는 것과 이 글이 주장하듯이 수도원의 바른 신학을 형성하는데 타산지석으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이미 이 운동이 이단이 되어 교회 역사에서 잊혀졌다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평가가 타당함을 말해준다. 보다 중요한 오늘의 교훈은 이 운동이 한 독립된 운동으로는 없어졌지만, 교회사에 끊임없이 비슷한 내용으로 비슷한 교회 환경이 있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메살리안적인 신학과 신앙 운동이 나타날 때마다 성령과 하나님의 경험이 물질화 되고(materialized), 하나님 경험의 차원이 영적이고 윤리적인 깊이를 잃고 편파적이고 천박하게 낮추어 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각도에서 한국 교회의 일반적 기도 운동을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메살리안적인 운동은 교회적인 공동체의 삶보다는 개인의 신비주의적 기도의 삶을 더 선호하여 교회론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성령의 역사와 은사에 대한 편중된 강조는 마땅히 사람이 배우고 지녀야할 인간적/영적 덕목을 소홀히 한다. 이런 면에서 메살리안에 대항하는 수도원적 신학은 오늘 우리 시대에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좋은 신학이 된다. 메살리안에 대비된 초대 수도원 신학과 신앙은 단지 그 시대에 생존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야 하는 오늘 우리에게도 적합한 신학과 영성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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