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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

고민을 이겨내는 방법

by 이덕휴-dhleepaul 2018. 10. 14.

 

제 5 부

고민을 이겨내는 방법


  19. 나의 부모는 어떻게 번민을 극복했는가


  이미 말했듯이 나는 미주리주의 농장에서 자라났다. 그 무렵의 여느 농민과 마찬가지로 부모는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시골 교사였고 아버지는 한 달에 12달러를 받고 남의 집 밭에 가서 일해 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옷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식구들의 옷을 빠는 비누도 만들었다.

 

  집에는 1년에 한 번씩 돼지를 팔 때가 아니고는 돈이 없었다. 버터나 계란을 가지고 가 식료품점에서 밀가루며 설탕이며 커피와 바꾸었다. 내가 12살 때 받은 한 해의 용돈은 50센트도 안되었다. 독립 기념일의 축제여서 아버지가 10센트를 주었을 때, 나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었다.

 

  나는 날마다 1마일씩이나 걸어서 교실이 하나밖에 없는 학교에 다녔다. 큰 눈이 내려서 한란계가 영하 28도쯤을 가리키고 있을 때에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14세가 될 때까지 고무신이나 장화를 신어 보지 못했다. 길고 추운 겨울 동안 나이 발은 늘 젖어서 차가왔다. 어린 마음에 나는 겨울에는 으례 누구나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루에 17시간이나 있는 힘을 다해 일했지만, 그래도 늘 빚에 쫓기기만 하는 불운에 시달렸다. 아주 어렸을 때, 대 홍수로 옥수수 밭과 마초 풀밭이 물에 잠겨 엉망진창이 되어서 5, 6년 동안이나 농사를 짓지 못했던 일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또 해마나 콜레라로 돼지가 죽어, 그것을 태우는 냄새로 속이 메스꺼웠던 일이 지금도 생각난다.

  수해를 입지 않았던 해가 1년이 있었다. 옥수수가 풍작이었다. 우리는 송아지와 새끼돼지를 사서 옥수수로 그놈을 살찌게 했다. 그러나 결과는 수해 때와 마찬가지였다. 시카고의 가축 시장에서 가축 시세가 폭락되어, 우리는 애써 키워 겨우 30달러를 벌었을 뿐이었다. 꼬박 1년을 일해서 겨우 30달러를!

 

  무엇을 해도 손해를 보았다. 아버지는 새끼노새를 사들여 3년 동안 사람까지 고용해서 길러 잘 길들였다. 그런 다음 배에 싣고 테네시주의 멤피이스로 보냈었다. 그런데 노새는 3년 전에 산 값의 이하로 밖에는 팔리지 않았다. 10년 동안 모질게 온 가족이 힘을 다해 일했지만 돈은 한 푼도 생기지 않고 빚은 늘어 가기만 했다. 밭은 저당으로 돌아갔고, 갚아야 할 이자도 밀리기가 일쑤였다. 저당잡은 은행은 아버지에게 욕설을 퍼부우며 밭을 빼앗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아버지는 47세였는데, 30년 동안이나 피땀 흘려 부지런히 일한 결과는 절망  과 굴욕감뿐이었다.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고민했다. 그래서 건강을 잃었다. 날마다 밭에서 육체 노동을 하는데도 식욕이 없어져 식욕을 내게 하기 위해서는 약을 먹어야만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날로 여위어 갔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이러다가는 앞으로 반 년도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몹시 고민한 나머지 더 오래 살기가 싫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암소를 젖을 짜기 위해 외양간에 갔다가 돌아오시는 시간이 늦어질 때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혹시나 외양간에서 목을 매어 자살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시며 외양간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가곤 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는 곧잘 들려 주셨다.

 

   어느 날 밭을 빼앗아 버리겠다고 위협하는 은행이 있는 메어리빌에 갔다가 돌아고는 길에, 아버지는 다리 위에서 말을 세우고 마차에서 내려 오랫동안 흐르는 냇물을 굽어 보고 있었다――차라리 단번에 뛰어들어서 모든 것을 끝장지어 버릴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면서. 뒷날 아버지는 왜 그때 뛰어들지 않았는지 그 까닭을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늘 인간은 주를 사랑하고 그 십계명을 지켜 가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 되어 간다고 성심성의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과연 어머니는 옳으셨다. 나중에는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갔다. 아버지는 그 뒤 42년 동안을 행복하게 살다가 99세에 돌아가신 것이었다. 이 고투와 가슴아프던 기간 중에 어머니는 결코 고민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마음의 괴로움을 주께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밤마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는 성경의 한 장을 낭독하셨다. 어머니와 아버지 중 어느 한 분이 저 마음을 따뜻이 위로해 주는 예수의 말씀을 읽을 때도 있었다.


  “ 내 아버지의 집에는 많은 저택이 있느니라……나 거기에 가서 너희들을 위하여

   있을 곳을 마련하리라…… 내가 있는 곳에 그대도 또한 있으리로다. ”


  그런 다음에 우리는 무릎을 꿇고 주님의 가호를 비는 것이었다.  위릴엄 제임즈가 하버드 대학의 철학 교수로 있을 때 그는 고민에 대한 최대의 양약은 종교적 신앙이다. 라고 했다.

  독자들은 그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하버드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 나의 어머니는 미주리주의 농장 안에서 그것을 발견했었다. 홍수든 빚이든 재액이든, 그녀의 행복스럽고도 찬연히 빚나는 씩씩한 영혼을 굴복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일하면서도 노래하던  찬송가를 잘 기억하고 있다.


  평화, 평화, 마음이 뛰는 평화여,

  하늘이신 주께 흘러 떨어져

  내 영혼을 길이 채워 주소서. 나는 비오니,

  사랑의 끝없는 큰 물결 속에서.


  어머니는 내가 한평생을 종교적인 사업에 바치기를 희망했다. 나는 외국의 선교사가 되기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해가 지남에 따라 내 생각은 바뀌어져서 갔다. 나는 생물학, 과학, 철학, 비교 종교학을 배웠고 또 어떻게 해서 성경이 씌어졌는가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주장하는 바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나는 그 무렵의 시골 설교자들이 말하는 편협한 교리의 많은 부분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윌트 휘트먼처럼 자신 속에 기묘하고도 당돌한 의문이 움직이지 시작하는 것을 느끼었다.

 

  나는 무엇을 믿어야 좋을 지 몰랐다. 인생에의 목적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나는 기도하기를 그만 두었다. 나는 불가지론가가 되었다. 나는 모든 생활은 무계획하며 무목표라고 믿었다. 인간은 2억 년 전에 이 땅 위를 기어다닌 공룡이 지니고 있었던 것보다도 신성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인류도 공룡과 마찬가지고 멸망해 버릴 것임에 틀림없다. 과학은 우리에게 태양이 조금씩 식어 간다는 것과, 그 온도가 10퍼센트 내리면 땅 위에는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은혜로운 주――사랑을 상징하는 주께서 자신의 모습을 닮게 하여 인간들을 창조했다는 관념에도 냉소했다. 나는 검고 차가운, 생명없는 공간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태양은 맹목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영겁으로 존재하듯이, 겁초부터 존재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상의 의문을 지금에는 해결할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나는  아니오 라고 대답한다. 우주의 신비, 생명의 신비를 해명할 수 있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신비에 싸여 있다. 당신의 신체 작용이나 당신 집의 전기, 금이 간 벽에 핀 꽃, 창 밖의 푸른 잔디, 이 모두가 신비이다. 제너럴 모터즈 연구소의 지도자로 천재인 차알즈  F. 캐터링은 <왜 풀은 녹색인가>의 연구비로서 한 해에 3만 달러의 돈을 자기의 용돈 가운데서 안티옥 대학에 기부하고 있었다. 그는 풀이 어떻게 하여 햇빛과 물과 일산화 탄소를 당분으로 변하게 하는가를 알 수 있게 되면, 문명에 일대 혁신을 가져 오리라고 단언하고 있다. 자동차 엔진의 작용조차도 완전히 신비인 것이다. 제너럴 모터즈 연구소는 오랜 시일과 거액의 돈을 투입하여, 왜 실린더 속의 조그마한 불꽃이 차를 움직이게 하는 폭발을 시키는가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아직 그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자기의 몸이나 전기, 또는 가스 엔진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것을 사용하고 향유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다. 기도나 신앙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 때문에, 보다 풍부하고 행복한 생활을 즐길 수 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간은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만들어져 있다.


  나는 산타냐의 말이 지니는 예지를 깨달았다. 나는 다시 종교로 되돌아 갔다――아니, 종교의 새로운 의의로 전진했다. 나는 이미 교회를 분립케 해 놓고 있는 신조의 상위 따위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의 흥미는 오로지 종교가 나에게 해 주고 있는 사실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전기나 좋은 음식물, 또는 물이 내게 베풀어 주는 혜택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나에게 보다 풍부하고 보다 충실한, 행복한 생활을 보내도록 도와 주고 있다. 그러나 종교는 그 이상의 것을 베풀어 주고 있다. 종교는 나에게 정신적인 가치를 가져다 준다. 윌리엄 제임즈의 말을 빌면 그것은 나에게 인생에의 새로운 열의―보다 많은 인생―보다 크고 보다 풍부하고 보다 만족할 만한 인생을 베풀어 준다. 신념과 희망과 용기를 가져다 줌으로써, 긴장과 불안과 두려움과 고민을 해소하게 한다. 나의 인생에 목적과 방향을 가리켜 준다. 나의 행복을 증대케 하고 건강을 증진시켜 준다. 그것은 나에게 <인생의 소용돌이치는 사막 속에 평화의 오아시스를 창조>해 준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3백 50년 전에 <천박한 철학은 사람의 마음을 무신론으로 기울어지게 하고, 심원한 철학은 사람의 마음을 종교로 인도한다.>고 한 것을 옳은 말이다.


  과학과 종교의 논쟁이 벌어진 일도 있었으나, 그런 논쟁은 지금에는 없다. 오늘날의 과학인 정신병학은 그리스도가 가르친 것과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신병 학자가 기도와 강한 신앙이 질병을 일으키는 가장 큰 고민이나 불안, 또는 긴장이나 공포를 몰아 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A. A. 브릴 박사가 <정말로 종교심이 깊은 사람은 신경증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


  만일 종교가 진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인생은 무의미하다. 인생은 비극적인,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연극인 것이다. 나는 헨리 포오드와 그가 죽기 몇 해 전에 회견했었다. 나는 회견에 앞서 오랫동안에 걸쳐 세계 최대 사업의 하나를 창립하여 경영하고 있는 심로가 그의 얼굴에 새겨져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막상 78세 노인의 침착하고 온화한 모습을 대했을 때는 정말 놀랐다. 내가 괴로움을 느낀 일은 없느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없어요. 무슨 일이든 주께서 지배하고 계십니다. 주께서는 나의 의견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책임을 져 주시는 한 모든 일은 결국 가장 좋게 된다고 믿고 있어요. 무엇을 고민할 게 있겠습니까? ”


  오늘날에는 정신병 학자마저도 새로운 복음의 전도자가 되어 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내세의 지옥의 업화를 모면하기 위해 종교적인 생활을 보내라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지옥이 업화――위암이라든지, 협심증이나 신경 쇠약, 또는 광기를 모면하기 위해 종교적 생활을 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나 정신병 학자의 대표적 의견을 알고 싶은 사람은 헨리

C.링크 박사의 <<종교에의 복귀>>를 읽으면 좋을 것이다.


  기독교는 확실히 인간에게 자극과 건강을 가져다 주는 가르침의 종교이다. 그리스도는   「나는 그대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왔다. 그대들의 생명을 풍족하게 하기 위하여 왔느니라.」고 강론했다.


   그리스도는 그의 시대에 종교라고 지목되어 있었던 형식적인 의식이나 무의미한 형식을 비난하고 공격했다. 그는 반역자였다. 그는 새로운 종교――세계를 뒤집어 엎을 위험성을 지닌 종교를 설파했다. 그는 그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혔던 것이다. 그는 강론하기를, 종교는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안식일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안식일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죄에 관해서보다 공포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릇된 종류의 공포는 건강에 거역하는 죄이며, 그리스도가 역설하고 있는 보다 풍족하고 보다 행복하고 보다 용기있는 인생에 거역하는 죄이다.


   에머슨은 <<환희의 과학>>의 교사라고 자칭하고 있었다. 그리스도 역시 <환희의 과학>의 교사였다. 그는 사도들에게 「기뻐하라. 그리고 용약(勇躍)하라.」고 명령했다. 그리스도는, 종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진심으로 주를 사랑할 것과, 이웃 사람을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랑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은 신앙가이다. 예를 들어 오클라호마에 사는 나의 양부 헨리 프리이스 같은 분이 그렇다. 그는 황금을 생활의 금과옥조로 삼고 비열한 짓이나 이기적인 짓, 또는 정직하지 못한 짓은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교회에 나가지 않는 불가지론자로 자처하고 있었다.  이 무슨 일인가! 도대체 크리스찬이란 무엇인가! 이 대답은 존 베일리에게 부탁하기로 하자.


   그는 에든버러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석학인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을 크리스찬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관념을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어느 교의를 신봉하는 일도 아니다. 어떤 <정신>을 소지하는 일, 어떤 <생명>에 관여하는 일이다.”


  그것이 크리스찬이라고 한다면, 헨리 프라이스는 훌륭한 크리스찬의 한 사람이다. 근대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즈는 그의 친구 토머스 데비드슨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써 보냈다. 즉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는 주 없이는 더욱 더 나날을 지내기가 어려워졌다. 라는 것을 깨달았노라고.


  이 책의 첫머리에, 성인 클라스에서 모집한 실화 가운데 두 편은 심사 위원이 그 우열을 가리느라고 한 동안 망설였다는 것을 말했는데, 그 가운데 한 편은 이미 이야기했으므로 남은 한 편을 여기에 소개하기로 한다. 이것은 주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을 기이하게도 경험한 어느 부인의 실화이다.


  나는 그 부인을 메리 커슈먼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녀의 아들이나 손자들이 발표된 그녀의 이야기를 보고 당혹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가명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인은 실재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나는 몇 달 전에 그녀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불경기 시대 내 남편의 평균 주급은 18달러였는데, 남편은 신병 때문에 자주 결근했다. 그럴 때에는 수입이 없었다. 남편은 몸이 허약해 자주 자리에 눕곤했다. 성홍렬이니 이하선염이니, 게다가 감기가 잘 들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고 보니 우리는 우리가 손수 지은 조그마한 집도 남의 손에 넘겨 주어 버렸고, 식료품 가게에는 50달러의 빚까지 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다섯이나 거느리고 있었다. 나는 이웃 사람들의 빨래도 맡아 해 주고 다림질도 맡아 해 주었다. 구세군 상점에서 헌 곳을 사다가 고쳐서 아이들에게 입히기도 했다. 나는 마침내 괴로움이 심해져서 건강을 해쳤다. 그러던 어느 날 11살 된 우리 아이가 연필 두 자루를 훔쳐서, 그 식료품 주인에게 꾸지람을 받았다고 울며 말했다. 그 아이는 정직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성질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모욕을 받고 창피를 당한 것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치명상이었다. 지금까지의 숱한 고생이 한꺼번에 덮쳐와 장래에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나는 고민 때문에 일시적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던 모양이다.

   나는 세탁기를 멈추고 5세 된 여자아이를 침실로 데리고 가서, 창문을 닫고 문틈마다 헝겊 조각이며 종이 따위로 틀러막았다. 딸은 『엄마, 뭘 해?』하고 말했다. 나는 『문틈으로 바람이 들어온다.』라고 대답하고는, 침실에 있는 가스 히터의 스위치를 틀었다. 그러나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딸아이를 안고 침대에 눕자 딸아이는 『엄마, 이상해. 조금 아까 일어났잖아』라고 말했다. 『괜찮단다. 낮잠을 조금만 자자.』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눈을 감고는 히터에서 새어나오는 가스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때의 가스 냄새를 나는 한평생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 뒤에 별안간 음악이 들려 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부엌에 있는 라디오 스위치를 깜빡 잊고 끄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대로 좋다. 그런데 음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누군가가 옛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자애 깊으신 우리의 벗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슬픔을 씻어주시나니,

  마음 속의 괴로움 숨김없이 말하여

  왜인가는 말하지 않는 무서운 짐을

  자애 깊으신 우리의 벗 예수님은

  우리들의 약함 알고 가엾어하시니,

  괴로움과 슬픔 속에 빠져들 때도

  기도를 들으시와 위로 주시네.


  이 찬송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슬픈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 혼자서 온갖 무서운 투쟁과 싸우려고 해왔다. 나는 기도로써 모든 것을 주의 뜻에 맡기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가스를 끄로 문과 창문을 열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눈물에 젖어 기도를 드렸다. 나는 주의 도움만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내게 주어져 있는 주의 축복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몸도 마음도 굳세고 튼튼한 아이를 다섯이나 주신 데 대해서이다. 나는 두 번 다시 이런 망령된 짓은 하지 않겠노라고 주 앞에 맹세했고, 그리고 나는 그 맹세를 지켜 왔다.

  우리는 집을 잃고 나서 조그만 시골의 교사를 월세 5달러로 세들어서 옮겨야 했지만, 나는 그때도 주께 감사했다. 비바람과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장소가 생겼으니까. 나는 일이 그 이상으로 나빠지지 않은 것을 주께 감사했다. 그리고 주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장은 아니었지만, 일은 조금씩 좋아졌고 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돈도 조금은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컨트리 클럽의 모자 예치소에 고용되어 틈틈이 양말도 팔게 되었다. 아들 하나는 고학할 각오로 대학에 들어가 농장이 일 자리를 얻어서 아침 저녁으로 13마리나 되는 젖소의 젖을 짜게 되었다. 지금 내 아들들은 모두 잘 자라 결혼도 했다. 내게는 귀여운 손자가 셋이나 있다. 그 끔찍스러운 날, 가스 스위치를 틀었던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 아슬아슬한 위기이 순간에 용케도 내 눈을 뜨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때에 만약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면 오늘날의 이 기쁨을 누릴 수도 없었을 것이고 행복스러운 많은 세월을 언제까지나 잃어버렸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러기에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죽어서는 안 돼! 안되구 말구!』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어떻게 해서든지 참아야 하는 캄캄한 어둠의 순간은 결코 길지는 않다. 그런 다음에 앞날이 태어나는 것이니까……  


  미국에서는 평균적으로 35분마다 한 사람이 자살하고 120초마다 한 사람 꼴로 미치는 사람이 생기고 있다. 이들 자살자의 대부분과 그리고 또한 미쳐 버리는 사람의 반수는, 만일 그들이 종교와 기도에서 얻는 평화와 위안을 가지고 있었다면 방지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현대의 가장 우수한 정신병 분석학자의 한 사람이 칼 융 박사는 그의 저서 <<영혼을 탐구하는 현대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과거 30년 동안 나는 세계의 온 문명국 사람들로부터 진찰해 줄 것을 요청받아 몇 백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내가 진찰한 환자 가운데서 인생의 제2기, 즉 35세 이상의 사람들 모두가 종교적 인생관에 최종의 구원을 구해야 할 상태에 있었다고 결정지을 수 있다. 그들 모두가 온갖 지나간 시대의 한 종교가 그 신자들에게 준 것을 잃었기 때문에 질병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을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 인생관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정말로 나은 것은 아니다.」


  이 의견은 실로 의의깊은 바가 있으므로, 눈에 잘 띄는 활자로 다시 한 번 게재한다.

  칼 융 박사는 말한다


   「과거 30년 동안 나는 세계의 온 문명국 사람들로부터 진찰해 줄 것을 요청받아 몇 백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내가 진찰한 환자 가운데서 인생의 제2기, 즉 35세 이상의 사람들 모두가 종교적 인생관에 최종의 구원을 구해야 할 상태에 있었다고 결정지을 수 있다. 그들 모두가 온갖 지나간 시대의 한 종교가 그 신자들에게 준 것을 잃었기 때문에 질병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을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 인생관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정말로 나은 것은 아니다.」


  윌리엄 제임즈도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신앙은 인간이 살아 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힘이다. 신앙이 전혀 없다는 것은 허탈을 의미한다.」


  석가 이후에 있어서 인도의 최대 지도자인 고 마하트마 간디도 기도라는 지지력에 의해 그가 격려받지 않았다면 의기가 소침해 버렸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기도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아득한 옛날에 미쳐 버렸을 것이다. 라고 말할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몇 천 명의 사람들이 같은 증언을 할 수 있다. 나의 친아버지도 만약에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이 없었더라면 물에 빠져 죽고 말았을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 정신병원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많은 괴로움을 받는 영혼도, 만일 그들이 자력만으로 인생의 거친 파도를 타고 넘으려 하지 않고, 보다 높은 힘에 도움을 구하기만 했다면

그들도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힘의 한계에 도달하면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대부분 절망하여 신의 힘에 매어달린다. 일인용 참호에 무신론자는 없다.

  그러나 어째서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는 것인가? 왜 나날이 힘을 새롭게 하지는 않는가? 왜 일요일까지 미루는가? 오래 전부터 나는 평일의 오후면, 사람이 드문 교회에 들어가 보는 일이 있다. 마음이 분주하여 단 2,3 분 동안도 차분하게 사색할 겨를이 없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르곤 한다.

   잠깐만 기다려, 데일 카네기. 잠깐만 기다려. 어째서 그렇게 언제나 조급하고 초조해 하는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사물의 대소 경증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는 거다.

  나는 이럴 때, 으레  맨 처음에 눈에 띄는 교회당으로 들어간다. 나는 프로테스탄트이지만 곧잘 5번 거리의 성 패트릭 성당에 들르곤 하였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긴다. 나는 앞으로 30년 쯤 지나면 죽을 것이지만,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위대한 정신적 진리는 영구 불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린다. 그렇게 하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육체도 편안해진다. 판단력도 명확해져서 사물의 가치를 재검토하는 데 확신이 얻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도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


  이 책을 쓰던 지난 6년 동안 어떻게해서 기도에 의해 두려움이나 고민을 극복했는가에 관한 실례 또는 실화를 나는 몇 백이나 수집했다. 그 전형적인 예로서 실의와 낙망에 빠져 있던 서적 판매원 존 R. 안소니의 이야기를 하겠다. 안소니씨는 지금 텍사스의 휴스턴에서 변호사를 개업하고 있다. 그가 나에게 말해 준 이야기는 이러하다.


  22년 전에 나는 미국 법률 서적 회사의 주 대표가 되기 위해, 나의 법률 사무소를 닫아 버렸다. 나의 전문은 일련의 법률 서적을 변호사에게 판매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일에 대한 훈련을 충분히 받았다. 팔 때의 응대법을 비롯하여 온갖 반대에 대한 설득적인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사 줄 것 같은 사람을 방문하기 전에, 미리 상대편의 변호사로서의 위치라든가 그가 다루고 있는 소송 실무의 종류라든가, 그의 정견이나 취미 등도 조사해 두었다.     그리고 면담 중에 교묘하게 그러한 지식을 이용했다. 그러나 어디인지 잘못이 있었던 모양으로 나는 주문을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낙담했다. 날이 지남에 따라 나는 지금까지보다 두 곱이나 세곱을 더 노력했지만, 그동안에 든 비용을 보충할 만한 주문을 얻기에도 실패했다.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이 기슴 속에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을 방문하는 것이 무서워지기조차 했다. 사 줄 것 같은 사람들의 사무소에 들어가기 전에 두려운 감정에 압도되어 버려서, 문 밖의 복도를 왔다갔다하기도 하고 그 건물 밖으로 나가서 부근을 어물어물 돌아 다니는 일도 가끔 있었다. 그렇게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 끝에, 온 몸의 의지력으로 용기를 내어 떨리는 손으로 살그머니 문의 손잡이를 돌리곤 했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절반은 비는 심정으로.


  나의 판매 지배인은 좀 더 주문을 받아오지 못하면 선불금을 정지하겠다고 경고해 왔다. 집에서는 아내가 네 식구가 먹고 살기 위한 식료품 가게에 지불할 돈이 필요하다고 한탄하고 있었다. 나는 고민에 사로잡혔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나는 절망으로 되어 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의 고향에서의 법률 사무소는 닫아 버려서 소송 의뢰자도 없어졌다. 마침내 그것이 파산해서 호텔이 숙박비조차 지불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기차표를 살 돈도 없고, 비록 기차표를 산다고 해도 실패자로서 집으로 돌아갈 만한 용기가 없었다. 마침내 악운의 날, 마지막 실패를 마친 뒤에 나는 터덜터덜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체면하며. 나는 완전히 나가떨어지고 만

것이다. 의기소침해여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살아 있든 죽어 있든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뢰하기도 했다. 그날 밤 식사로는 우유 한 잔밖에 없었다. 그것마저도 가까스로 구한 것이다. 나는 그날 밤 절망한 사람이 호텔 창문에서 뛰어내린 심정을 알았다. 용기가 있었다면 나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이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나에게는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없었다.


  매달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나는 주께 매달렸다.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가두어 두고 있는 절망의, 어둡고 깊은 거친 파도를 인도하는 빛과 이해를 주십사하고 탄원했다.

  나는 부디 주께 책 주문을 많이 받을 수 있게 해 주시고, 또한 처자를 위해 필요한 돈을 얻게 해 주십사고 애처롭게 호소했다. 기도를 끝내고 눈을 뜨자 그 쓸쓸한 호텔 방 경대 위에 성서 기증 협회의 성경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을 펼치고 몇 세기에 걸쳐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격려와 위안을 주신 그리스도의 후세에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말씀. 그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고민을 해고하는 데 대한 교훈을 읽었다.

 

  생명을 위해 무엇을 먹고 마시며 또한 육체를 위해 무엇을 입을까 하여

  걱정하지 말라. 하늘에 나는 새를 보라. 씨 뿌리지 않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곡간에 저축도 아니하되,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저들을 기르시나니, 너희는

  저들보다 뛰어나지 아니하냐……너희들은 먼저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주시리로다.


  내가 기도를 드리고 이 말을 읽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신경질적인 긴장이 사라져 버리고 불안이며 공포며 고민은 마음을 따사롭게 해 주는 용기와 희망과 빛나는 신념으로 변했다.

  나는 호텔의 숙박비를 치르는데 충분한 돈도 없었지만 행복했다. 나는 침대에 들어가 참으로 몇 해 만에 푹 잤다. 완전히 고민으로부터 해방되어서. 다음날 아침, 나는 책을 사 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의 사무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 아름다운 비오는 추운 날, 자신에 넘치는 적극적인 걸음걸이로 첫째 사무실 문에 다가갔다.

  나는 손잡이를 꽉 잡고 돌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힘차게 적당한 위엄을 유지하면서 목표한 사람 앞으로 곧바로 걸어가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 안녕하십니까. 스미드씨! 저는 전 미국 법률 서적 회사의 존 안소니라고 합니다. ”


  그는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 오 그렇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자, 앉으십시오. ”


  이리하여 나는 그날 하루에 지난 몇 주일 동안 받은 주문 이상의 주문을 받았다. 저녁 때 나는 개선 장군처럼 의기 양양하게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 새롭고 용감한 정신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으니까. 그날 밤 식사는 한 잔의 우유가 아니었다. 어엿한 비이프스틱이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나의 판매는 대성공이었다.

  나는 22년 전 텍사스주 아마릴로의 조그마한 호텔에서의 절망적인 밤에 새로이 태어난 것이다. 그 다음날 내 겉 모양은 실패하던 때와 같았지만, 내부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주와의 관계를 매달았다. 자기에게만 의지하는 사람은 쉽게 패배를 맛보게 되지만, 마음에 신의 힘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은 패배가 없다. 나는 나 자신의 인생이 그와

같이 된 것을 알고 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 물으라. 그러면 찾아 내리라. 두드리라.

   그러면 그대에게 열리리라.


  일리노리주 하일란드의 L. G. 베어드 부인은 무서운 비극에 맞부딪쳤을 때 무릎을 꿇고


   “ 오오, 주여,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


라고 기도함으로써 평화와 침착성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밤,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그녀에게 온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14번이나 울렸을 때 나는 겨우 용기 내어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병원에서 걸려 온 것으로 짐작하여 두려웠던 것입니다. 나의 어린아이가 죽어 가고 있다고 근심했던 것이지요. 뇌막염으로 이미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체온에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의사는 병독이 뇌에까지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뇌종양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살려 낼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전화는 내가 두려워 한 대로 병원에서 곧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우리 부부가 어떤 심정이었겠는가 하는 것은 짐작하실 줄로 압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기를 안고 있었습니다. 우리만은 예외였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아기를 안게 될는지 근심이 되어 정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한참 만에 우리는 부름을 받아 의사의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만, 의사의 표정을 보고 우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의사의 말은 더욱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아기가 살아날 확률은 넷 중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며, 그러니 만약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진찰을 받아 보고 싶거든 불러오는 것이 좋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남편은 흥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핸들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베츠, 난 단념 못하겠소. 절대로!』


  선생님께서는 남자가 우는 것을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결코 즐거운 경험을 아닙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세워 놓고 여러 가지를 의논한 끝에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아기를 데려가자는 것이 주의 뜻이라면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말입니다. 나는 자석에 무릎을 꿇고 눈물에 젖어서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끝내자 나의 마음은 좀 밝아졌습니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평화로움이 솟아난 것이었습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서도 줄곧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되풀이했습니다. 그날 밤에는 오래 간만에 푹 잠을 잤습니다. 그런 며칠 뒤에 의사로부터 아기는 위기를 벗어났다는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저는 지금 4살된 건강한 어린아기가 집에 있다는 것을 늘 주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종교를 마치 부녀자나 설교자를 위한 것인 것처럼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제힘으로 싸워 나살 수 있는 사나이다운 사나이라는 것을 자랑삼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몹시 놀랄 것이다. 이를테면 잭 템프시 같은 사람이 그렇다. 그는 밤마다 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드린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우선 주께 감사드린 뒤에야 식사를 하고, 시합을 앞두고 연습하는 둥에도 날마다 기도를 하며 또한 시합 중에도 매회 시합이 시작되고 벨이 울리기 전에 기도한다고 말했다.  기도는 나에게 용기와 자신을 가지고 싸울 힘을 준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사나이다운 사나이> 코니이 맥은 매일 밤마다 기도를 드린 뒤가 아니면 잠잘 수 없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사나이다운 사나이> 에디 리켄베이커는 그의 인생이 기도에 의하여 구원되어 왔다고 믿고 있다. 그는 날마다 기도를 드리고 있다.


  <사나이다운 사나이> 에드워드 R.스테튜어스(전 제너럴 모터스의 최고 간부였고, 전국무장관)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성스러운 지혜와 지도를 베풀어 주십사고 주께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사나이다운 사나이> J. 피어폰트 모건은 그 무렵에 있어 최대 재정가였는데, 그는 토요일 오후에는 가끔 혼자서 윌가의 모퉁이에 있는 트리니티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곤 했다.


  <사나이다운 사나이> 아이젠하워는 영미 연합국 최고 사령관으로 부임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갈 때 단 한 권의 책을 휴대했다. 그것은 성경이었다.


  <사나이다운 사나이> 마크 클라크 장군도 전시 중에 날마다 성경을 읽고 또한 기도했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장개석이나 몽고메리 장군도 기도했다. 넬슨 제독도 트라팔가르 해전 때 기도했다. 와싱턴이나 로버트 리나 스톤윌 잭슨 같은 장군들을 비롯해 군대의 수많은 지도자가 그러했다.


  이들 <사나이다운 사나이> 들은 윌리엄 제임즈의  인간과 신관의 사이에는 서로 비즈니스가 있다. 따라서 우리들 자신을 신의 영향 밑에 피력하면 가장 심원한 운명이 성취된다.

고 한 말의 진리를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똑같이 이 진리에 눈떠 가고 있다. 미국의 교인수는 7천 2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이제까지 없던 기록인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과학자도 종교에 귀의해 가고 있다. 예를 하나 들면 <<인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의 저자로 노벨상 수상자인 알렉시스 카렐 박사가 있다. 그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의 논문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도는 인간이 발생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형식의 에네르기이다. 그것은 지구의 인력과 같은 현실적인 것이다. 의사로서의 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온갖 요법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기도라는 엄숙한 노력에 의해 질병이나 우울에서 구제를 받은 예를 목격하고 있다. 기도는 라듐처럼 빛나는 자기 발생 에네르기 원이다……인류는 기도에 의해 그들 자신을 온갖 에네르기의 무근원에 제소함으로써 그들의 유한의 에네르기를 증대시키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우주를 회전시키는 무진장한 원동력과 우리와를 결부시킨다. 우리는 이 힘의 일부가 우리의 필요에 배분되도록 기도한다. 이렇게 구함으로써만 우리의 인간적 결함은 충족되고 우리는 강화되고 치유되어 일어서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열렬한 기도로써 주께 호소할 때, 우리는 우리의 정신도 육체도 보다 좋은 것으로 변화하게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순간의 기도로도 반드시 어떤 좋은 결과를 기도한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다.


  바드 제독은 <우주를 회전시키는 무진장한 원동력에 우리를 결부시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이해하고 있다. 그것을  해낸 그의 능력에 의해, 그는 그의 생애 가운데서도 가장 곤란했던 시련을 헤쳐나갔던 것이다. 그 사실은 그의 저서인 <<혼자서>>에서 술회하고 있다.


   1943년, 그는 남극의 오지인 로스 바리어의 만년빙 밑에 갇힌 오두막집에서 다섯 달 동안이나 살았다. 그는 남위 78도선 이남에 있어서의 유일한 생물이었다. 사나운 눈보라가 오두막집 위로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추위는 영하 82도까지 내려갔다. 그는 언제까지나 변치 않은 어둠으로 완전히 포위되었다. 또한 그는 난로에서 새어 나오는 일산화탄소 때문에 차츰차츰 무서운 중독을 일으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구조도 123마일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몇 개월 뒤가 아니면 도착할 가망성이 없다.  그는 난로와 환기 장치를 수리했지만, 새어 나오는 가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가끔 그 가스 중독 때문에 의식을 잃고 마루 위에 쓰러져 있곤 했다. 그도 먹을 수도 없고 잘 수도 없었다. 그는 거의 침대를 떠날 수도 없으리만큼 몸이 쇠약해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까지 생명이 붙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두려워한 때도 자주 있었다. 나는 이 오두막집에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시체는 내리퍼붓는 눈에 파묻혀 버리고 말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무엇이 그의 목숨을 구했는가? 어느 날 그는 절망한 나머지 일기장을 꺼내어 자기의  인생관을 써 두려고 했다. 그는 썼다.  인류는 우주에서 고독하지는 않다. 고, 그는 머리 위 성신이니 성좌니 유성 등의 규칙적인 운행에 대해 생각했다. 또한 영원한 태양이 언젠가는 황량한 남극 지방의 구석구석까지도 비쳐 주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기장에  「난 고독하지 않다.」라고 썼다.

  이 고독하지 않다. 지구 끝의 얼음 구덩이 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고독하지는 않다는 자각이 리처드 바드를 구한 것이다. 그는 말했다.

   이것이 나를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말했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일생 중에서 그들 속에 있는 정력의 극한적인 한계점까지 쫓겨 가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결코 아직 사용되지 않은 깊은 힘의 우물이 있다.


  리처드 바드는 주께 호소함으로써 이 힘의 우물을 길어내는 방법을 배웠고, 그 자원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글렌 A. 아놀드는 일리노이주의 옥수수밭 한가운데서 바드 제독이 극지의 빙설 속에서 배운 것과  똑같은 것을 배웠다. 일리노이주 칠리 코스의 보험브로커인 아놀드씨는 고민의 극복에 관해 이야기했다.


   8년 전 일이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무실 정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차를 몰아 강쪽으로 갔다. 나는 실패자였던 것이다. 한 달 전에 전 세계를 내 머리 위에 무너져 떨어졌다. 내가 경영하던 전기 기구의 사업은 암초에 올라 안고 말았다. 집에는 어머니가 죽음 직전에 놓여 있었고, 아내는 두 번째 아이를 낳으려 하고 있었다. 의사에게 갚아야 할 돈은 늘어 가기만 했다. 우리는 사업을 시작하는 데에 자동차며 가구 등을 비롯하여 그것이  고스란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자동차를 몰아 강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서글픈 혼란케 결말을 짓고 말겠다는 각오로.


  나는 시내에 몇 마일 빠져 나온 지점에서 큰 길을 벗어났다. 차에서 내려 땅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 이윽고 나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민이라는 이름의 밭 속을 아무렇게나 빙빙 돌지 말고, 건설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사태는 얼마 만큼이나 나빠졌는가? 이 이상으로 더 나빠질 염려가 있는가?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인가? 사태를 조금이라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나는 그날 그때, 모든 문제를 주께 호소하여 주의 뜻에 맡길 것을 결심했다. 나는 기도했다. 열심히 기도했다. 나는 나의 인생이 그 하나에 달려 있는 것처럼 오직 한 가지만을 기도 했다. 그러자 그때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나의 모든 문제를 나보다 위대한 힘에 맡기자마자 나는 최근 몇 달 동안이나 가져 보지 못한 마음의 평화를 느낀 것이다.


  나는 반 시간쯤 그곳에서 기도도 드리고 울기도 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 어린아이처럼 깊이 푹 잤다.  다음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 나에게는 자신이 생기고 있었다. 나에게는 무서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주의 인도에 나를 맡겼기 때문이다.

  나는 침착한 태도로 시내의 백화점에 가 자신에 넘치는 말투로 전기 기구부의 판매원 일을 맡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내가 예기한 바대로 그 일 자리를 얻을 수가 있었다. 그 뒤로 일은 꽤 달 되어 나갔다. 전기 기구 관계의 사업이 전쟁 때문에 붕괴되기까지는. 


  나는 그 뒤로 이번에는 생명 보험의 권유를 시작했다. 그것은 겨우 5년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어느 계산이든 또박또박 지불하고 있다. 똑똑한 세 아이도 있고 집도 내 것이다. 새 자동차도 있고, 2만 5천 달러의 생명 보험에도 가입하고 있다. 나는 지금 곰곰이 그때의 일을 회상해 보면, 모든 것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괴로워한 나머지 강쪽으로 차를 몰아 달려간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의 비극이 주께 의지하기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과거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평화와 자신을 가지고 있다.


  왜 종교적 신념이 우리에게 그러한 평화와 침착과 불굴의 정신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윌리엄 제임즈로 하여금 대답케 하여 보기로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미친 듯 날뛰는 해면의 거친 파도도 대양의 밑바닥을 시끄럽게 하지 못한다. 보다 광대하고 보다 영구적인 현실에 발판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의 개인적인 끊임없는 부침은 비교적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진실로 종교적인 사람은 동요됨이 없이 평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닥쳐올지도 모르는 온갖 의무에 대해서도 고요한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다.

  만일 우리가 고민하고 불안을 느낀다면 어째서 우리는 주께 의지하지 않는가?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듯이, 왜 주에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우리에게는 이러한 신앙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우주를 회전시키는 무한한 원동력>에 우리 자신을 연결시키지 않는가?  만일 당신이 태어났을 때부터의, 또는 가정 교육에 의한 종교적 인간이 아니라, 완고하고 유동성이 없는 회의론자라 할지라도, 기도는 당신이 믿고 있는 이상으로 당신을 돕는 것이다―그것은 실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실용적이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신자이든 신자가 아니든 간에 온갖 사람들이 공유하는 세 가지의 지극히 근본적인 심리적 욕구를 성취케 해 준다는 의미이다.


  1. 기도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언어로 표현하도록 도와 준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실체가 애매하고 뚜렷하지 않는 한 문제에 대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도는 어느 점에서, 문제를 종이에 적어 보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고 싶다면, 상대자가 비록 신이더라도 그것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


  2. 기도는 우리에게 자기 혼자가 아니라 어느 누구와 무거운 짐을 나누어 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간은 너무 무거운 짐이나 또는 견디기 어려울 만한 고민을

     자기 힘만으로 감당할 만큼 강하지 못하다. 때로는 우리의 괴로움이 너무나도

     사적이어서 친척이나 친구에게도 털어 놓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에는

     기도가 있을 뿐이다. 정신병 의사는 모두 우리가 압박이나 긴장 또는 정신적

     고민으로 괴로워할 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털어 놓는 것은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에는―언제나 주님께 호소할

     수가 있는 것이다.


  3. 기도는 행위의 활발한 법칙을 활동케 한다. 그것은 행동에의 첫걸음인 것이다.

     날마다 무슨 일이든 그 성취를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어떠한 은혜를 입고 있거나,

     적어도 성취를 향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알렉시스 칼렐 박사는 말한다.


   기도는 인간이 발생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에네르기다. 라고. 그런데도 왜 좀더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가? 자연의 신비로운 힘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한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든 알라라고 부르든, 또는 정령이라 부르든, 그 정의를 가지고 다툴 필요는 없다.


  지금 곧 이 책을 덮고 침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무릎을 꿇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음이 좋을 것이다. 그대가 신앙을 잃고 있다면 전능한 신에게 그것을 거듭 주시게끔 기도하라. 그리고 7백전 전의 옛날, 아시아의 성 프란시스에 의해 씌어진 다음의 아름다운 기도 말씀을 되풀이하라.


   주여, 저로 하여 당신의 평화와 도구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씨를 뿌리게 하소서.

   위해가 있는 곳에는 사면을, 의혹이 있는 곳에는 신앙을

   절망이 있는 곳에는 희망을, 암흑이 있는 곳에는 광명을,

   비애가 있는 곳에는 환희를, 저는 위안하는 것처럼 위안받기를

   구하지는 않고, 이해하는 것처럼 이해받기를 구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받기를 구하지 않나이다.

   그것은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에 태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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