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제 3 계명-신성모독 금지
본문 ; 출 20:7
오늘 말씀은 십계명 중 3번째 계명입니다.
1계명은 유일신론에 대한 계명이며, 2계명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계명이며, 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계명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사람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름을 붙이셨습니다. 인간이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출 3:14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소개하십니다. 이는 ‘영원 자존자’라는 의미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름마다 반드시 그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스라엘, 시몬-베드로,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도 뜻이 있습니다. 마 1:21의 말씀대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름은 그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그의 성품과 그의 생활 전부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언제나 그 자체가 하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신 모든 호칭을 통해서 자신의 신성 가운데 어떤 속성을 계시하셨습니다.
소교리문답 54문에 보면 ‘셋째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고 그 대답은 ‘제 3 계명의 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칭호와 속성과 규례와 말씀과 행사를 거룩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라고 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간략한 셋째 계명의 뜻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 그 이름의 의미와 의도에 맞는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 의미와 의도를 부인하고 그 이름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 계명을 깨드리는 행위입니다.
산상보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실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였습니다. 누구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고 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제일 먼저 할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럼 세 번째 계명을 바로 지키려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경박스럽게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른을 존경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이름은 얼마나 존경해야 하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경박스럽게 사용하는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에 관한 농담을 하는 행위입니다. 사람을 웃기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 얘기들이 사람의 이름에 많이 오르내립니다. 그런 얘기들은 성도들이 피해야 할 사항입니다. 사람들이 거룩한 것을 경솔하게 생각할 때에는 언제나 그 마음과 의식에 악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존경심과 경외 의식을 스스로 잃어버리거나 부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거룩한 의식이 없이는 진정한 예배도, 받으시기에 합당한 헌신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거룩한 이름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린 사람은 철저하게 부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떨지 않는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 바대로 예배하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습니다.
즉, 이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경외하는 자세로 대하라는 교훈입니다. 가령 예배하는 이 장소를 성전이라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합 2:20에 보면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또 전 5:1 이하에 보면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전에 들어설 때에 우리의 발을 삼가야 합니다. 예배당에 들어오면서 함부로 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배당에서는 말을 삼가 합니까? 교회 안에서 마치 거리에 시장에 앉아 있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경외하는 태도를 갖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는 깨끗이 정돈하고,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경외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우상시 하면 안됩니다.
성전은 거룩한 집입니다. 찬송도 경외의 태도로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을 존경하는 마음 없이 드리는 찬송은 3계명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교회에서 분쟁이 있을 때에도 찬송을 싸우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떤 경우인가 하면 한쪽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찬송을 불러 설교를 듣지 못하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도 없이 그저 달라고만 하는 기도, 기도는 하면서 거기에 걸맞는 행위가 따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욕을 품은 채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모독입니다.
헌금에도 경외가 따라야 합니다. ‘성물을 더립히지 말라. 그리하면 죽지 아니하리라’(민 18:32)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의미합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정성을 모아 드리는 예물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설교 값인 줄 알고 있습니다. 헌금을 집계하다 보면 꼬깃꼬깃 구겨진 헌금을 볼 수 있는데 준비가 덜 된 헌금입니다. 헌금 시간에 급히 주머니를 뒤적거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성의도 없고 감사도 없는 헌금입니다.
옛날 어른들은 이사할 때 모든 짐 위에 성경찬송을 놓았습니다. 그 위에는 어느 것도 올려놓을 수 없다는 마음에서입니다. 어찌 보면 미신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만큼 그들의 마음이 순수했음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악용해서는 안됩니다.
옛 사람들은 맹세할 때 흔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했습니다. 자기의 진실을 표현하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너무나 만연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늘로도, 땅으로도, 네 머리로도 맹세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저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조심해야 할 습관으로서 흔히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짓는 죄입니다.
즉, 약속이나 서약을 할 때에 그것을 지킬 의도를 갖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약을 하거나 약속하는 것, 또는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불편하거나 불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하거나 서약한 것을 지키지 않고 어기는 것이 다 3계명을 범하는 행동들입니다.
또 이 계명은 모든 약속이 신성하고 고결하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약속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여러 가지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종교적 서약이 적어도 3가지 있습니다.
그 첫째는 결혼 서약입니다. 현대 사회는 안타깝게도 결혼 서약을 가볍게 여깁니다. 결혼 서약의 기본적인 자세는 그 약속을 어떤 상황에서든지 지키겠다는 자세입니다. 만일 그 서약의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 서약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혼율이 자꾸 올라가고 있으니 더욱 문제입니다. 심지어는 기독인들까지 이혼율을 올리는데 상당한 역할들을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두 번째는 세례 서약입니다. 유아세례에서는 부모가 그 자식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자식으로 양육할 것을 서약하고 장년의 경우는 본인의 입으로 서약을 합니다. 이 세례 서약은 평생동안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변함없이 지키겠다는 약속입니다.
세 번째는 성만찬 서약입니다. ‘성찬’을 의미하는 ‘세크라멘툼’이라는 라틴어는 병사가 그의 장군이나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성만찬에 참여할 때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한 가지 꼭 기억할 것은 그의 구세주와 왕이신 그리스도에게 그의 충성의 맹세를 새롭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의 삶의 모습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신앙고백대로 충실히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실제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맹세하는 것 보다 더 두려운 일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의 행위는 맹세하는 자의 행위보다 훨씬 더 신앙에 유해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고백을 하면서도 생활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은 공공연히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고백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방해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보고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등에 걸머지고 다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내 자신에 대한 경외가 필요합니다. 내 자신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산(Buy)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름 받은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귀중한 자신을 죄에게로 향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더럽힐 수 없습니다. 나 자신만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주님의 이름도 더럽히게 됩니다. 혹 여러분의 삶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경우가 없는지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계명을 주시면서 경고를 하십니다.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는 반듯이 벌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 2: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신 28:58-59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레 24:16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물론 이것은 모세의 율법입니다. 또한 현대에 우리가 지금 이대로 실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면 반듯이 형벌이 따라옵니다. 이제 우리는 이 3계명의 의미를 기억하여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며, 거룩하도록 하여 더욱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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