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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문

말씀 안에서 승리하는 사람 - 말을 잘하는 사람

by 이덕휴-dhleepaul 2019. 6. 15.

제목: 말씀 안에서 승리하는 사람 - 말을 잘하는 사람

말씀:딤후 3:16-17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고(1:1),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계시하시려고 말씀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 성령님은 말씀 가운데 임하십니다(10:44). 성경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32)고 했고,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10)고 하여, 구원도 말로 받습니다. 하나님과 교제의 채널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인 '기도'입니다.


우리는 말에 대한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말은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큰 특권 중에 하나입니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지으신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2:19)하여, 아담의 이것들을 부르는 말이 곧 이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입으로 하는 찬양도 말이요 저주도 말이고, 감사도 말이요 원망도 말입니다.

모두 말로 이뤄지기에 말은 곧 그 사람됨의 표현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내가 남에게 좋은 말을 하면 그 말을 하나님이 듣습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축복을 하십니다.그래서 말은 사람에게 하지만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믿고,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말한다고 여겨야 합니다.


둘째, 말은 씨가 되어 그대로 이뤄집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이 고달프자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하나님을 원망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14:27-29)라며, 너희가 죽고 싶다고 말했으니 죽여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은 기도적인 의미가 있어서, 사람에게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그대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말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12:36-37) '무익한 말'의 원문의 뜻은 '쓸데없이 무책임하게 하는 말'입니다. 쉽게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한 말도 심판 날에 심문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이것 역시 말로 짓는 죄입니다.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도 말로 범하는 것이기에,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J.위클리프 는 "혀는 뼈가 없지만 뼈를 부수뜨릴 수 있다"고 말했는데,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 하나님 앞에 그대로 쌓여 심판 받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위클리프는 영국의 종교개혁자이며 영어성경을 쓴 유명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18:21)라고 하였습니다.

혀를 쓰지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믿는 자는 주님의 말씀 안에서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나의 의견을 주님의 뜻에 비추어서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스스로 파악하고 모든 말을 주님이 원하시는 범위 안에서 해야 합니다.


사람은 말한 만큼의 운명을 살기에 저주하고 사는 사람은 저주스럽게 살아가고, 축복하는 사람은 복된 생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말에 축복과 감사와 찬양만 담겨야 합니다.


4:29-32 에서 말에 대한 세가지 가르침


 첫째, 거짓말을 버리고 참된 말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4:25)고 하십니다. 우리의 말에는 진실과 정직을 요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짓말 한 번 한 것으로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를 속인 것이 아니라 자기 양심을 속였고, 하나님을 속인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 '살인하지 말라'는 말이 중요하듯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의 중요함도 함께 알아야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시편 기자는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34:12-13)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더러운 말을 금하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라고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4:29). 여기 '더러운 말'이란 '부패한' 혹은 '썩은'이란 뜻으로 단순히 좋지 않은 말이 아니라, 악의가 있는 험담과 중상모략으로, 남을 해치고 분쟁을 일으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선한 말'은 도덕적으로 진실하고 옳은 말로서, 말을 잘 선별 사용하여 교회와 성도간에 덕을 세울 것을 당부하십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15:1,2,4). 부드러운 말은 격분한 사람의 분노가 감소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그 슬픔이 감해지는데, 과격한 말은 좋은 기분을 상하게 하고 찬물을 끼얹습니다.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이지만,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을 늘어놓는 그 사람과, 험담을 듣는 사람, 그리고 험담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까지 모두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너무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하지 못했고, 누군가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어려웠기에 친구도 없었고, 가족과도 친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이렇게 소심한 모습으로 평생 살 수 없다며 큰 결심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반드시 미소를 머금고 한 가지 이상 칭찬을 하자' 물론 처음에는 매우 힘들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금방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으나, 굳은 결심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칭찬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좋은 말을 하는 소년에게 사람들은 찾아왔고, 많은 대화를 통해 소년은 훗날 달변가가 되고 또 극작가가 되어, 영국에서 가장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작가로 알려진 '버나드 쇼'가 되었다고 합니다. 버나드 쇼는 영국의 극작가이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인데 그는 자기의 묘비명을 쓰기를 "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게 끝날 줄 알았다" 라고 썼습니다.


버나드 쇼가 말하고자 하는 묘비명은바로 무엇이던지 " 당장 하라, 당장 실천하고 그 목표를 향하여 걸어가라는 뜻 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행동에 옮기라는 주문인 것입니다.버나드 쇼는 자기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다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죽음에 임박하여 자기 삶을 후회하고 반성 한다는 것 입니다.


셋째, 악한 분노의 말을 금하고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31절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고 말씀합니다. 여기 '악독'이란 '과거에 당한 손해나 모욕에 대한 원한을 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품어두고 이웃과 화해하기를 거부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노함'이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분노로서 급격한 감정의 폭발'을 의미하고, '분냄'이란 '통렬하고 악독한 적의가 마음에 자리잡아서 습관적으로 표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떠드는 것'은 분노를 자제 못하고 소리지르는 것이며, '비방'은 상대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 등은 상대방에게 복수하거나, 해칠 목적으로 쏟아내는 파괴적인 언어를 의미하는 것들로, 이런 것을 악한 생각과 함께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말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거의 90%는 파악되기에, 예수 믿고 변화된 모습은 ''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며, 그가 쓰는 말과 언어가 그 사람을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소련의 장수학자 구리아닌은 '단명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대화를 석권하거나 남을 헐뜯기 좋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말이 변하면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면 마음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변하고, 습관이 변하면 인생이 변합니다. 예수 믿고도 ''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의 믿음은 헛것입니다.


그리고 29절은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은혜를 끼치는 말'은 어떤 말일까요? 본문 32절은 이렇게 부연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32). 여기 '인자''불쌍히 여기는 것'이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성품으로, '타인의 필요를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마음'입니다. 이런 행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서로'에게 나타내야 할 덕목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 안에서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의 말을 해야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4:29).



결론 엡 6:14-17

  1. 모든 것 위에 믿음의 防牌(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能(능)히 惡(악)한 者(자)의 모든 火箭(화전)을 消滅(소멸)하고
  2. 救援(구원)의 투구와 聖靈(성령)의 劍(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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