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
화학반응으로 바뀐 그림의 제목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야경〉은 당시 유행하던 단체초상화인데 여느 그림들과 다르다. 대부분의 단체초상화는 등장인물들이 정렬하여 정적으로 그려지는 데 반하여 이 그림은 매우 역동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드라마틱한 여러 상징을 포함하고 있다. 이 그림의 제목 '야경'은 잘못 붙여진 것이다. 원래 이 그림은 밤 풍경이 아니라 낮 풍경을 그린 것이었다. '야경'이라는 제목은 100년이나 지나서 군대나 경찰이 야간 순찰을 하던 18세기에 전체적으로 어둡고 검은 그림을 보고 추측하여 붙인 것이다. 원래는 지금처럼 어두운 그림은 아니었다.
그림의 제목이 '야경'이 된 이유
이 그림이 이렇게 어두워진 데에는 많은 원인이 있다. 우선 렘브란트가 상용하던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라는 회화 기법 때문이다. 이 기법은 전체적으로 어둡게 하고 중심과 강조점만 밝게 처리하여 드라마틱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법을 쓴다고 모두 밤 풍경이 되지는 않는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에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썼지만 밤이 아니었던 것은 명백하다. 강조하기 위해 주위를 어둡고 불명확하게 그렸지만 상황은 정확히 전달하였다.
두 번째로 보수(reconstruction)상의 문제이다. 이 그림이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18세기에는 고전회화는 어두침침한 갈색풍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서 그림 보존을 위해 바니시(varnish)를 덧칠할 때 일부러 황토색 또는 갈색 바니시를 덧칠하였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회화 보수의 기술이 취약하여 화면에 손상이 갈까봐 정밀한 세척은 하지 못했고 그 위에 바니시 덧칠만 하였다. 그 결과 먼지층이 바니시와 함께 정착되었다.
세 번째는 재료 화학상의 문제이다. 현대에 와서 엑스레이 등에 의하여 회화층의 원재료에 대한 여러 정보가 알려졌다. 그에 의하면 렘브란트는 다른 화가보다 비교적 연화물 계통의 안료를 즐겨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토색, 흰색, 갈색 등을 많이 썼는데 모두 납을 포함한 색이었다. 흰색은 '실버 화이트'라고 불리던 연백(lead white)을 즐겨 썼다. 노랑 계통도 연화 안티몬(lead antimoniate)을 많이 사용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색은 현대 화가들 중에서도 흰색과 섞어서 차분하고 갈색과 잘 어울리는 노란색을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사랑받는 색이다. 납을 포함한 안료는 황과 만나면 검게 변색하는 특징이 있다.
렘브란트가 많이 사용한 색 중에 선홍색의 버밀리온(vermilion)은 황화수은(HgS)으로 황을 포함하는 대표적인 색이다. 그림이 검게 변하는 '흑변 현상'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57년경에 그려졌던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의 〈만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만종〉은 황혼을 표현한 그림이라 좀 어둡기는 하겠지만 그림이 막 그려졌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탁하고 칙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경〉이건 〈만종〉이건, 산업혁명으로 도시 공해가 심해지면서 대기 중의 황산화물(SOx)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그림의 색채가 검어지고 그림의 주제가 퇴색하면서 〈야경〉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둡고 칙칙한 느낌을 오래된 그림이라 중후한 매력을 풍긴다며 그냥 넘겨야 할지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명암으로 동작의 전진감을 나타내다
이 그림이 그려진 배경을 보자. 이 그림은 암스테르담의 사수협회의 주문으로 그려진 단체초상화다. '사수'(Klovenier)라는 단어는 '클로벤'(Kloven)이란 네덜란드어로 특정한 종류의 총 이름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간섭에서 벗어나던 중이었다. 특히 암스테르담은 산업과 무역의 발흥으로 북네덜란드 연맹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며 떠오른 신흥도시였다. 1585년에 3만 5천 명이던 인구는 렘브란트가 이 도시로 들어온 1631년에 11만 5천 명이 되었으며, 이 그림이 그려진 1642년에는 15만 명에 이르렀다. 자신의 재산은 자신이 지켜야 할 필요성이 생겨 몇 개의 자경단이 결성되었는데, 사수협회는 그들 중 대표적인 단체였다. 그런데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에 의해 홀랜드(Holland)가 독립함으로써 암스테르담 도시만의 사수협회는 별 의미가 없는 단체가 되었다.
이 그림이 완성된 뒤 사수협회에서는 불만을 나타내며 구입하지 않았다. 사수협회에서는 점잖은 권위와 명예를 나타내고 싶어했는데, 이 그림은 당시 일반적인 단체초상화의 형태처럼 모든 등장인물이 점잖게 한 줄 또는 두세 줄로 정렬하여 위엄 있게 묘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네덜란드가 독립하게 되어 사수협회 같은 자경단이 필요 없게 된 정치적 상황의 변화도 그림을 구입하지 않은 한 이유였다.
그 무렵 그림에 대한 대중의 취향이 바뀌었다. 즉 로코코풍이라는 다소 경박하고 화려한 그림들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렘브란트풍의 그림이 팔리지 않게 되었다. 〈야경〉은 1715년이 되어서야 국방청의 좁은 홀에 사방이 30cm 이상을 잘린 채로 조촐하게 걸렸다가 1885년 세계적인 대작으로 재평가받고, 지금은 네덜란드 국립 미술관의 한 방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의 맨 앞 가운데에 늠름하게 선 사람은 단체의 대장인 프란스 바닝 코르크이며, 그 옆에 눈부신 옷을 입은 사람은 부대장인 빌렌 반 루이텐부르크이다. 인물들의 개성이 옷의 색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인 색채 기법으로는 밝은 색이 앞으로 튀어나와 보이고 어두운 색은 뒤로 물러나 보이는데, 이 그림에서 렘브란트는 새로운 시도를 성공시켰다. 대장의 옷은 검은색인데 황금색을 입은 부대장보다 앞으로 나와 돋보인다. 하얀 목레이스, 빨간 숄과 앞으로 쭉 뻗은 손의 동작으로 전진감을 나타낸 것이다.
그림의 위쪽 가운데 타원형 명패에는 등장인물의 명단을 써 놓았다. 그림의 왼쪽에 XXX표가 있는 큰 깃발이 보이는데 이것은 암스테르담의 문장기이다. 코르크 대장의 앞으로 펼쳐 뻗은 왼손의 제스처로 사수협회의 발전을 나타낸 한편, 도시의 전진을 도시 상징인 깃발의 장대한 나부낌으로 나타냈다. 부분조명 기법으로 대장과 부대장을 강조하여 시선을 한곳으로 모으는 듯하면서도 또 다른 시선을 끄는 한 부분이 있는데, 가운데 왼쪽에서 안으로 위치한 소녀이다. 인물들의 그림자를 보면 앞쪽 왼쪽에서 빛을 받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소녀가 밝은 것은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화려한 복장에 죽은 닭을 허리에 찬 소녀는 사수협회의 마스코트이다.
그런데 이 소녀는 몸은 작으나 얼굴은 어른이다. 렘브란트 아내인 사스키아의 얼굴이라는 의견이 많은데, 이 그림이 그려지던 1642년은 사스키아(Saskia van Uylenburgh)가 죽은 해이다. 이 그림을 그리던 시기는 사스키아가 죽음을 앞두고 병중에서 사경을 헤매던 때였을 것이다. 렘브란트는 사스키아가 병을 이기고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슬픔 속에서도 잊지 않은 거장의 위트
부대장 뒤의 한 노인 대원의 행동을 보자. 허리까지 구부정한 노인이 총을 입김으로 불어 가며 정성스레 닦고 있다. 그 앞의 대장과 부대장은 영예의 상징물을 하나씩 들고 자랑스레 서 있고 기수도 깃발을 흔들며 약간은 산만한데, 노인은 그들 뒤에서 조용히 기본을 다지고 있다. 사회는 본래 레이스를 단 자들과 훈장을 단 자들과 깃발을 흔드는 자들에 의해 지배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렇게 빛도 안 받는 구석에서 기본을 지키는 자들에 의해 천천히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젊은 패기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노인들의 바탕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렘브란트의 정말 위대한 예술성은 하찮은 곳에서도 확인된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렘브란트는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아내가 사경을 헤매었으며, 경제적으로는 파멸 직전에 있었다. 이 그림 이후로 렘브란트의 몰락이 시작되는데, 그는 군대 냄새 나는 이런 역사적이고 엄숙한 대작에 여유로운 한 조각의 웃음을 선사하였다. 왼쪽 아래에 원숭이 한 마리가 뭘 들고 뛰어가고 있고, 오른쪽 구석에서는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드럼 치는 사람을 향해 맹렬하게 짓고 있다.
사수협회에서 이 그림을 사지 않은 이유는, 사실은 그들의 권위주의가 렘브란트의 다소 파격적인 유머-원숭이와 강아지의 장난-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Daum백과] 〈야경〉 –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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