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철학과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해골당, 예수회
※출처: http://blog.naver.com/jungagg/10189271134
※출처:http://lkj267.blog.me/70167964002
홀로코스트 [Holocaust] :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고유명사)
특히 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스에 의해 학살되었는데,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 배타성, 광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20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보스니아 내전이나 르완다의 종족분쟁, 킬링필드로 불리는 캄보디아 내전 등 세계 곳곳에서 대량 학살이 자행됨으로써 홀로코스트 문제가 여전히 국제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20세기 최대의 대학살로 꼽히는 만큼 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소설·다큐멘터리 등도 많이 등장했다.
대표작으로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임레 케르테스의《운명》이나,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쥐》등이 있으며, 자전적 수기에는 유명한《안네의 일기》를 비롯,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엘리 위젤의 《밤》등이 있다.
영화 작품 중에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등이 있으며, 특히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학살을 다룬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인생은 아름다워》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린 아들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을 유머스럽게 풀어낸 영화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포함 3개부문에서 수상하였다.
또 홀로코스트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을 찾기 위해 16년에 걸친 추적 끝에 법정에 세우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크라임 스토리》를 비롯해 홀로코스트 희생 유대인 휴면계좌 공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 행사 등 홀로코스트에 관한 뉴스는 20세기가 지난 시점에도 인종·민족·국가·종교를 초월해 인권 회복 차원에서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간략한 내용
[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
[네이버 지식백과]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00824&cid=1009&categoryId=1695
출 생 - 사망 1770 ~ 1831 대표분야 - 형이상학 대표이론 - 관념론
대표저서 - 정신현상학 관련철학자 - 마르틴 하이데거
생애 연보 1770 8월 27일 독일 쉬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남. 『사회계약설』 등을 읽음. 「민족종교와 기독교」 쓰다. 서간 번역. 「뷔템베르크의 최근의 내정에 관해서」,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도 대체로 이 무렵 쓰다.
개정판 출판. 강의 시작. 「혹성의 궤도에 관한 철학적 논문」을 쓰다. 「상식은 철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회의론과 철학과의 관계」, 「신앙과 지식」, 「자연법의 학문적인 취급 방식에 관하여」, 「독일헌법론」 완성. 「인륜의 체계」 다음 해에까지 쓰다. 최종 원고를 인쇄함. 4월에 『정신현상학』 출간. 예비학을 가르치다, 등의 강의를 함. 『논리학』 제2권 공간. 「1815, 16년에 있어서 뷔템베르크 왕국의회 토의의 비판」( 『하이델베르크 연보』에 발표). 베를린 대학 총장 사임. 『철학총설』 제3판 공간 서문. 『정신현상학』 개정 착수. 8월에 서자 루드비히가 바다비아에서 사망. 11월 14일 급성콜레라로 헤겔 급사. 피히테의 묘 곁에 매장.
생애 해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이 산 생애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있는데, 그 시기의 서양 역사 무대에는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미국의 독립, 나폴레옹의 집권과 몰락 등 역사적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양친은 다 신교를 믿었고 그는 2남 1녀 중의 장남이었다. 5세에 라틴어 학교에 입학했고, 7세에서 18세까지 김나지움에 다녔다. 그리고 그 사이 13세 때에 어머니를 잃었다. 김나지움 시절의 헤겔은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에서 내용을 발췌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습관은 일생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는 김나지움 시대에 언제나 모범생이었고
특히 그리스의 비극에 흥미를 가지고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Antigone)를 번역하기도 하였다. 그리스 정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역시 일생을 두고 지속되었고,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헤겔은 1788년부터 1793년에 이르는 약 5년 동안을 튀빙겐 대학에서 보낸다. 여기서 그는 기독교의 역사 연구에 전념한다. 이 기간 동안 동갑의 휄더린(Hölderin, 1770~1843)과 다섯 살 아래의 셸링 (Schelling, 1775~1854)과의 교제는 그의 일생을 통하여 큰 영향을 준다. 학우들은 그를 ‘할아버지’ 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그는 중후하고 침착하며 말없이 자기 할 일을 하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 였다. 대학 2학년이었을 때(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은 어떤 일을 한 사람일까요? 그는 유럽인들의 사상에 혁신을 일으킨 독일의 철학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특별히 마르크스주의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헤겔은 대립에서 어느 한쪽도 제거하거나 감소시키지 않고 통합과 연합을 이루어내는 개념을 계발한 철학자입니다. 헤겔의 변증법이라고 부르죠. 세계 정치판에서 헤겔의 변증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들이 플레이하고 있는 헤겔 심리 게임에서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체 '장기판의 졸'들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들은 '졸'들이 얼마나 죽던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정치적 '좌'와 '우'를 서로 대립하도록 만들어서 통합 즉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이루어내는 겁니다. 미국의 예를 들면, 우파가 정치판을 잡아서 '이라크전'과 '테러와의 전쟁'을 벌였는데요.
우파가 이룰 수 있는 모든 일을 이루고 나면 좌파가 정치판을 잡고서 변화를 가져오겠다며 등장하죠. 그러나 변화는 계속해서 이라크와 세계 곳곳에서의 전쟁으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서 추가적인 사회개혁을 일으키며 미국민들의 자유를 더욱 제한하게 되었습니다.
[ Karl Heinrich Marx ]
[네이버 지식백과] 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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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엥겔스(뒤 왼쪽)와 칼 마르크스(뒤 오른쪽) 대표분야 - 사회철학 대표이론 - 마르크스주의 대표저서 - 자본론 관련철학자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생애 연보 1818 5월 5일 프로이센의 라인란트 트리어 시에서 7남매 중 첫째로 태어남. 수고』를 씀. 엥겔스와 공동으로 『신성가족』 저술
생애 해설 1) 성장배경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는 1818년 5월 5일에 독일 라인주(州) 트리어(Trier) 시에서 유대인 기독교 가정의 7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트리어는 당시 독일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발전한 곳이었으며, 한때 프랑스 혁명군이 점령하여 진보적인 이념을 널리 퍼뜨려 놓은 곳이었다. 변호사인 아버지 하인리히 마르크스는 칸트 철학의 신봉자로서 가족들에게 휴머니즘적이고 계몽주의적인 사상을 면밀히 교육하였다. 어머니 헨리에테는 자녀들에게 지적으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대식구의 생활을 잘 꾸려나가는 주부였다. 사회에서 우리의 관계들은 우리가 그 관계들을 규정할 위치에 이르기 전에 이미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마르크스의 전기를 쓴 프란츠 메링(F.Mehring)은 이 문장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맹아를 발견했다고 말하는데, 과장일지는 몰라도 일리는 있는 말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같은 글에서 자신의 일생이 인류의 행복과 해방을 향한 것이 될 것임을 약속하며 그 마지막에 “온 힘을 다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택한다면 … 우리는 초라하고 제한된 이기적인 기쁨을 향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행복은 수백만 명의 행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장차 인간 마르크스의 실천적 삶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을지를 단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
2) 청년헤겔학파와 마르크스 1835년에 마르크스는 본 대학에 입학하여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미술사 등 인문계 수업을 받았다. 본 대학에서 1년 공부한 후 마르크스는 곧바로 베를린 대학 법학부로 전학하여 법학, 역사학, 철학을 공부하였다. 특히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의 철학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헤겔의 철학에 관심을 쏟았다. 훗날의 마르크스 자신의 표현대로 하자면 ‘상부구조’의 문제에서 ‘토대’의 문제로 관심이 이동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반정부적인 내용이 가득한 글로 인해 1843년 3월 18일 마르크스는 편집장직에서 쫓겨나야 했으며, 그 신문도 곧 이어 폐간되고 말았다. 마르크스의 파리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프로이센 정부는 프랑스에 압력을 넣어 마르크스를 파리에서 추방하게 했고, 1845년 2월에 마르크스는 벨기에 브뤼셀로 근거지를 옮겨야 했다. 그러나 프로이센 정부는 이번에도 마르크스를 가만두려 하지 않았다. 또 그곳에서 추방하려 했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로이센 당국이 자신을 고소하지 못하도록 1845년 12월에 프로이센 국적을 공식적으로 포기해야만 했다. 이때부터 마르크스는 죽을 때가지 무국적자로 살았다. 어쨌든 마르크스는 1848년 초까지 약 3년을 브뤼셀에서 보낼 수 있었다. 7) 무국적 상태에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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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 위의 발언들은 정말 끔찍한 발언들이죠. 오늘 살펴볼 내용에서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해골당, 그리고 예수회의 사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살펴볼 겁니다. (참고로 그가 취하고 있는 포즈는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는 '히든 핸드' 프리메이슨 수신호죠 ^^) 출 처
헤겔 철학 전체에 대한 최상의 입문서! -『헤겔』책 소개http://greenbee.co.kr/blog/1824프로이센[ Preußen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17198&cid=276&categoryId=1111
스당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이 노획한 프랑스 대포들 프로이센 · 프랑스 전쟁 - 독일 통일 이루다(1870년 ~ 1871년)
프리메이슨의 역사, 에녹 -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조직: 1-1부 http://cafe.naver.com/sostv1004/20924(회원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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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메이슨이란 굳이 풀이하자면 '자유석공연합'정도가 되겠다. 로지(Lodge, 작은 집)라는 집회를 단위로 구성되어 있던 중세의 석공 길드에서 비롯되었다. 1717년, 영국 런던에서 몇 개의 로지가 대로지를 형성한 것이 그 시초이다. 18세기 중엽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유럽과 미국까지 널리 퍼졌다.
석공이란 뜻의메이슨의 역사는 3000년전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점차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조직을 가지게 되었고,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한다는 의미에서 프리메이슨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고급 기술자로 대우받았으며, 그들만의 신전에서 종교의식을 갖게 되었다. 점차 세력을 확대하여 석공들만의 단체가 아닌 다수의 예술인이나 지식인을 포함한 조직으로 변모했다. 그러던 중 12세기에 예루살렘이 회교도들에게 유린당하자 프리메이슨에 속해 있던 기사들이 나서서 성지회복을 외쳤고, 이에 많은 젊은이들이 호응하게 되었다
일루미나티는 프리메이슨(자유석공조합)의 하위집단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 대표적으로 Y엔터테인먼트가 있는데 이 기획사 소속 연예인들의 사진에서 손으로 삼각형 모양을 취하거나 외투 안쪽에 오른손만 넣고 찍은것들이 있는데 이자세들 모두다 일루미나티에 대한 존경의 자세 혹은 인사법이며 슈퍼xx K 의 로고가 다윗의 별임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출처:네이버 발취
마지막징조 일루미나티
출처:http://cafe.naver.com/sara3399/13908 (회원만 가능)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ie=utf8&query=%ED%95%B4%EA%B3%A8%EB%8B%B9 (회원이 아니라서 우회로, 동영상으로 가서 사이트 열람)
일루미나티의 계획들이 언론을 통해서 대중에게도 어느정도 공개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이미 신세계질서를 세울 마지막 단계에 거의 이르렀고 이제 대중이 알게되도 자신들을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전 일루미나티 조직원이었던 Svali는 일루미나티의 약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폭로했습니다.
일루미나티의 야심을 저지하기 위한 조직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아마 인간의 힘으로 이런 조직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미 일루미나티는 정치, 경제, 언론,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를 장악했고 심지어 종교 분야까지 장악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의문스럽다. 일루미나티를 대항할 수 있는 조직은 성령으로 진리가운데 인도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날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0장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사람들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
요한계시록 18장에는 이 예언을 더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1~4) '다른 천사'로 묘사되고 있는데 여기에 나온 '천사'라는 단어는 헬라어 '앙겔로스'로서 '천사'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소식을 전하는 자'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회는 가톨릭의 많은 남자수도회 중 하나입니다 창립한 수도회로 교육,선교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가톨릭으로 다시 회심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유례없이 서적을 통해 스스로 자국민이 복음을 받아들인 아주 특이한 케이스인데 그때 들어온 책이 천주실의로, 예수회신부가 쓴 책입니다 설립자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자서전은 필수로 읽으시면 좋을겁니다
프로테스탄트 [Protestant]
로마 가톨릭교회 및 동방정교회와 더불어 크리스트교의 3대 교파를 이룬다. '프로테스탄트'란 종교 개혁의 주역인 루터가 1529년 열린 독일 스파이어 회의의 판결에서 로마 가톨릭 세력에 저항(protest)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프로테스탄트는 독일, 스칸디나비아 제국 등 전 유럽으로 확산됐고, 이민자들을 통해 북아메리카까지 확산되었다. 가톨릭에 비해서 성서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의 신앙에 더 많은 중점을 두며 의례를 간소화했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로마 가톨릭과 같이 성직자와 신도의 신분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루터주의, 칼뱅주의, 성공회(聖公會) 등의 프로테스탄트 사상이 있다.
♤ ∽∽∽∽∽∽∽ ♤ ∽∽∽∽∽∽∽ ♤ ∽∽∽∽∽∽∽ ♤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은 프로테스트에서 기원했는데, 이 말은 1529년 2월 21일에 열린 독일 슈파이어국회에서 루터계 제후(諸侯)와 도시들이 황제 카를 5세 등 로마가톨릭 세력의 억압에 항거한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프로테스탄트란 프로테스트 즉 항거한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하는 운동이 종교 개혁운동입니다.
프로테스탄트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프로테스탄트로는 루터의 루터교, 칼뱅의 개혁파 교회, 로욜라의 예수회 등이 있습니다.
가족주의와 연관해서 본다면 "나는 나의 카티를 프랑스나 베네치아와 바꾸지 않겠다." 결혼생활 6년째에 접어든 루터의 고백이다.
순결과 독신생활의 종교적 금욕주의를 부단히 추구해야 했던 중세의 성직자들한테서는 결코 상상될 수 없는 이 고백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사회적 혁신성을압축하여 나타내고 있다. 성직자의 결혼과 가정의 의미 부각은 프로테스탄트즘이 낳은 가장 두드러진 사회적 변화이다.
종교개혁가들은 성직자의 독신생활을 의무화한 중세교회의 부당성을 일차적으로 성경에서 찾았다. 루터는 사도 바울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규정한 성직자의 독처를 강요하는 것은 비성서적 오류라고 지적하였고, 비텐베르크 개혁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결혼을 실천에 옮긴 카를슈타트는 교회를 감독하는 자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디모데전서>>3장 2절에 입각하여 성직자의 결혼을 강도 높게 주창하였다. 또 다른 근거는 바로 믿음지상주의이다.
일부 의견 수렴 ♧♧♧♧♧♧♧♧♧♧♧♧♧♧♧ (네이버) 디모데전서 3장 2절부터 9절까지 목회자(성경에는 '감독'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흔히 우리가 이해하는 가톨릭의 주교나 감리교단의 감독(둘다 영어로 Bishop)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의 요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가톨릭이나 성공회의 '사제'제도는 잘못되었을 뿐더러 목사를 교회의 지도자가 아닌 성직으로 이해하는 모든 풍습은 잘못되었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성도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직제도를 내세우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스스로가 같은 성정의 사람임을 강조했습니다
답변채택률44.6% ♧♧♧♧♧♧♧ ~~~ ♧ ~~~ ♧♧♧♧♧♧♧
순결의 유지하는 일조을 '행위'와 '준수'는 구원과 전혀 무관하며, 따라서 독신생활의 의무화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영적 자유를 허락한 신이 뜻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다.
성직자의 결혼이 인정된 데에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해와 목회생활에 대한 현실적 고려도 크게 작용하였다. 성적 욕구는 모든 인간의 자연적 본능이므로 제어되기보다는 결혼을 통해 해소되어야 하며 그렇게 될 때 성직자는 좀더 나은 목회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가들에 따르면, 독신생활이 대부분의 성직지들에게는 감내할수 없는 생리적 억압이며, 그 결과는 고결한 생활이 아니라 오히려 성적 타락과 위선이다.
카를슈타트는 성직자에게 강요된 독신생활은 인밀한 동거뿐만 아니라 간음, 동성연애, 자위행위를 조장하여 그들을 음란의 나락에 빠뜨린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억압된 성적 욕구는 나아가 성직수행의 큰 걸림돌이 된다.
츠빙글리를 위시한 11명의 스위스 성직자들이 1522년 7월 콘스탄스의 주교에게 제출한 성직자 결혼허가 탄원서는 이를 확연히 예시하고 있다. 그들은 "비록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는 불타오르는 정욕 때문에 그 동안 많은 흉측한 짓들을 해왔다."고 심경을 토로한 후 "마음을 상하게 할 정도로 자주 그리고 결렬하게 타오르는 욕망의 불길만으로도 결혼의 명백하고 충분한 이유가 된다"면서 제도적 개선의 촉구하였다. 일반인들로부터 "음탕하고 뻔뻔스런 개"로 여겨지는 자신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모순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성직자의 결혼이 허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신생활이 목회활동에 장애가 된다면, 결혼과 가정생활은 다양한 이익을 제공한다. 결혼은 성직자를 육체적 욕망의 굴레로부터 해방시켜 안정된 목회생활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가정을 이루고 있는 평신도들의 고통과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좀더 걸맞는 조언과 교훈을 주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성직자 역시 배우자나 자녀와의 사랑을 통하여 이웃사랑의 의미를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프로테스탄트성직자들에게 결혼과 가정생활은 더 이상 배격의 대상이 아니라 지향의 대상이자 축복이 된 셈이다. 종교개혁가들의 소망과 오랜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게 된다.
1525년 취리히에서 최초로 성직자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령이 제정된 후 신성로마제국과 영국에서도 프로테스탄트 성직자들의 결혼권이 법적으로 승인되었다.
독신과 순결이라는 기존의 미덕이 거부되고 성직자의 결혼이 인정되면서 가정의 일반적 의미와 중요성을 한층 제고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정은 신앙과 삶의 으뜸가는 배움터로 간주되었다. 종교개혁가들은 부모들에게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고 그들의 신앙교육과 일반교육에 노력을 경주하라고 독려하였다. 한편 자녀는부모의 사랑을 통하여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을 대리 경험하게 되고 부모에 대한 순종과 공경을 통해서 신을 경외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면서 가정생활의 중요성 부각시켰다.
또한 가정은 "사회적 대인관계의 원형"을 가르치는 사회교육의 현장이다. 가정은 그 구성원들에게 질서의식을 고취시키고 협력과 나눔의 덕목을 함양시키는 소중한 울타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정은 육체와 정신을 맑게 해주는 안식처이다. 루터는 "결혼생활 속에서 간음과 음란은 사라지며," 이는 나아가 "건강한 몸과 건전한 의식"을 가져다 주고, 여성은 어린이와 함께 있을 때 "더욱 청결하고 행복해진다."면서 가정의 혜택을 강조하였다.
결혼과 가정의 의미 격상은 하나의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동반하게 된다. 속세와의 연루가 배제된 금욕주의적 은둔생활에 주어진 이상적 가치는 소멸하게 된 반면 가족과의 동거동락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허락된 신의 은총으로 인식되게 된다. 점차 가정중심적으로 변모해간 근대인들의 생활양식과 의식구조의 정신적 토대는 프로테스탄티즘 속에서 발아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프로테스탄티즘이 함유한 고도의 사회적 진보성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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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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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MAUS)' -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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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족쇄가 채워진다. 자신의 의지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돈이 있어도 제대로 먹을 것을 구할 수도 없다. 얼마 후 수용소로 보내져 감금생활을 하게 되고, 부모와 형제 등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뿔뿔이 헤어지게 된다.
급기야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광경을 목격하기에 이른다. 자신도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암흑 같은 시간이 흐른 뒤, 학살의 현장에서 운이 좋게 살아남은 그는 남은 일생을 불안하고 고통스런 기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쥐의 주인공, 즉 작가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인 블라덱의 일생을 요약하면 위와 같다. 어쩌면 이처럼 단 몇 줄로 요약되어 개인적 불행으로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주인공의 경험은 작품을 통해 전 인류가 기억해야 하는 역사적 기록으로 자리매김 된다.
극한의 상황이 부여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연인이나 자식 등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볼 수 없는 슬픔은 더 이상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으로서 모든 이들이 다가간다. 그런 점에서 [쥐]는 작품을 보는 모든 독자들에게 과거에 대한 반성과 현재를 살고 있는 사실에 감사함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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