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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고대 철학/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헤라클레이토스

by 이덕휴-dhleepaul 2019. 12. 1.

'고대 철학/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해당되는 글 6

  1. 2018.12.28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정리 <6> 헤라클레이토스
  2. 2018.12.28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정리 <5> 크세노파네스
  3. 2018.12.28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정리 <4> 피타고라스
  4. 2018.12.28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정리 <3> 아낙시메네스
  5. 2018.12.28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정리 <2> 아낙시만드로스
  6. 2018.12.28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정리 <1> 탈레스

6장 헤라클레이토스

 

1절 개괄

 

헤라클레이토스는 에페소스 출신이며 69번째 올림피아기인 기원전 504년-501년에 전성기를 누렸다고 전해진다. 그는 블로손의 아들이거나, 또는 어떤 사람들이 말하듯이 헤라콘의 아들이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오만하고 방자했다. 끝내 그는 사람들을 싫어하여 산 속에 은둔하였고 풀과 나뭇잎을 먹으며 살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수조에 걸리자 도시로 내려왔고 의사들에게 폭우로부터 가뭄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고 수수께끼처럼 물었다. 그런데 의사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헤라클레이토스는 외양간으로 가서 자신을 쇠똥에 묻고 쇠똥의 열기로 몸이 마르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무 효험도 얻을 수 없었으니 이렇게 해서 60의 나이로 생애를 마감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활약한 시기는 피타고라스와 크세노파네스 이후부터 파르메니데스의 이전까지로 여겨지며, 또 파르메니데스와 동시대에 절정기를 맞았다. 그 증거로 그의 저작에서 피타고라스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만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2절 그의 철학의 문체적 특징에 관하여

 

그의 철학은 예언자의 잠언 형식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지혜로운 것은 하나인데, 모든 것들을 통해서 모든 것들을 조종하는, 예지를 숙지하는 것이다.” 또한 “너희들은 나에게 귀 기울이지 말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 ‘만물은 하나이다.’라는 말에 동의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함으로써 예언자적으로 말한 영원한 진리인 로고스를 추구하였다.

그의 이러한 예언자적인 철학스타일은 그를 황홀경 안에서 행해지는 진리의 발설을 추구하는 고고한 철학적 인간형으로 만들었다. 그는 참된 것을 직관적으로 파악함으로서 금강석 같은 진리에 접근하는 긍지 높고 고독한 진리의 현자를 자처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오만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당대에서부터 받았으며 다른 풍자적인 저술들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또 그는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아 철학함을 자기 자신의 대한 탐구로 여겼으나, 피타고라스학파에서 널리 행해지던 정죄와 정화의 의식은 진흙에 몸을 씻는 돼지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며 그들을 비판하였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디오니소스 축제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만인 그들이 제의 행렬을 벌이고 남근을 찬양한 것이 디오니소스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것들은 가장 뻔뻔스러운 짓일 것이다. 그런데 디오니소스와 하데스는 동일하며 그를 위해 그들은 열광하며 제의를 벌인다.

 

3절 생성과 존재의 철학

 

헤라클레이토스 사유의 본질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앋.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헤라클레이토스는 판타레이(만물유전)의 철학자로 알려졌다. 니체 또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유의 핵심을 생성으로 본다는 점에서 전통적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고전적인 헤라클레이토스 이해에 대한 본격적인 반론이 20세기 중반부터 제기되었는데 그 선두에 버넷이 있었다.

그는 헤라클레이토스 사유의 핵심이 변화가 아닌 대립물의 통일로 보아야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후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유의 핵심이 변화보다는 변화 속의 통일을 꾀하는 법칙, 즉 로고스에 있다는 입장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된 것도 사실이다. 판타레이는 실제로 헤라클레이토스 자신이 말한 적이 없으며 플라톤이 헤라클레이토스를 자기 방식으로 해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변화 속의 통일이라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법칙을 헤라클레이토스 사상의 정수라고 보는 사람들은 변화에는 최소한 두 개 이상의 대립자를 전제해야하며, 대립자들 사이에는 반드시 대립자들을 연결하고 통일시키는 힘, 혹은 법칙이 존재해야한다고 본다. 이러한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변화의 영속성과 순환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만물에서 “전쟁은 공통된 것이고 투쟁이 정의이며, 모든 것은 투쟁과 필연에 따라서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대립과 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내재적인 법칙을 로고스라 칭하고 로고스는 꺼지지 않는 불로 상징된다. 불은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생명력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파괴의 상징이다. 로고스는 세계의 질서와 더불어 인간의 인식 혹은 삶과 관련된 일체의 척도를 부여한다. 로고스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현명한 자이고 깨여있는 자이다. 그렇지 못한 자는 어리석고 잠든 자이다.

니체는 젊은 시절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의 핵심을 첫째, 생성, 둘째 디케(정의), 셋째, 투쟁, 넷째, 불로 규정한다. 생성이 세계의 정의이며 그것은 투쟁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언제나 생동하는 불이 그것을 상징한다. 여기서 생성을 제외한 나머지는 로고스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니체는 생성과 존재에 관계, 생성과 로고스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존재의 개념을 극단적으로 거부하고 대신 변화를 말한다는 점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와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가장 유사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인용문을 통해 우리는 니체의 헤라클레이토스의 해석의 핵심이 변화 개념에 있음을 분명히 간파할 수 있다. 세계는 매 순간 힘들의 우연적 놀이에 의해 발생하는 힘들의 파동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세계는 목적, 인과의 법칙, 그리고 선악과 무관하며 그렇기에 지금 이곳의 세계와 삶을 절대적으로 긍정할 수 있게 된다. 니체에게 있어서는 헤라클레이토스와 달리 법칙마저도 이러한 변화의 정지한 한 순간을 지칭하는 말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법칙 역시 생성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러한 이유로 니체는 후기에 헤라클레이토스의 법칙의 필연성이 궁극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곳이 도덕적 질서를 옹호하는 것으로 보고 비판한다. 따라서 니체는 생성과 소멸의 끝없는 반복, 영원한 변화는 부정하지 않으나, 헤라클레이토스에서 볼 수 있는 변화의 주기적이고 법칙적인 성격은 거부한다.

 

4절 헤라클레이토스와 불

 

그는 이오니아 철학의 전통 가운데 있으며, 만물의 근원이 불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세계는 모두에게 동일한데, 어떤 신이나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있어왔고 있고 있을 것이며, 영원히 살아있는 불로서 적절한 만큼 타고 적절한 만큼 꺼진다.” 그러나 플라톤에 따르면 어디에선가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나아가고 아무 것도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들은 강의 흐름에 비유하면서 “너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상반된 견해는 “차가운 것들은 뜨거워지고, 뜨거운 것은 차가워진다. 젖은 것은 마르고, 마른 것은 젖게 된다.”는 말에서 밀레토스 학파의 지수화풍의 일원론적인 운동의 상호 유전과 변화의 존재론에 가까워진다. 동일한 것...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깨어있는 것과 잠든 것, 젊은 것과 늙은 것. 왜냐하면 이것들이 변화하면 저것들이고, 저것들이 다시 변화하면 이것들이기 때문에.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이고, 모든 것의 왕이다. 그것이 어떤 이들은 신으로 또 어떤 이들은 인간으로 드러내며, 어떤 이들은 노예로 또 어떤 이들은 자유인으로 만든다,”

“전쟁은 공통된 것이고 투쟁이 정의이며, 모든 것은 투쟁과 필연에 따라서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들어가면서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있으면서 있지 않다.”

이러한 단편들은 운동의 상대성과 상호성을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 자체를 신과 전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 유전을 주장함으로써 불변하는 물질적 실체를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들 중에는 만물 유전설의 직접적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그가 의미한 불은 영혼의 역동적 운동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근원적 질료를 불에서 발견해낸 인물로 평가한다. 이러한 불은 곧바로 운동의 상대성과 모순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고, 대립하는 것은 한 곳에 모이고, 불화하는 것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은 투쟁에 의해 생겨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현대적 관점의 질료로 이해하는 것으로 헤라클레이토스의 영혼의 역독성이나 신적 작용을 상징하는 불에 대한 이해와는 다르다. 이처럼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본성이 불이라고 명명한 것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은 물론 이를 주관하는 영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의 영혼이 불로 되어 있어서 우리의 감관-지각적 경험에 주어지는 생성-소멸의 현상세계를 사변적으로 파악할 때 개념적으로 드러나는 모순과 대립을 조화와 통일의 정신적 시각에서 지혜롭게 파악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세계가 초월적인 힘에 의존하지 않고 내재적이고 자체적으로 통일을 이루고 있다고 봄으로써 만물 일체설을 주장한다. 그의 우주론에서 존재하는 것은 영원히 살아서 활동하는 불이며 우주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며 조정하는 신적인 힘이다. 그것은 조화로운 적도에 따라 켜지고 꺼지는 것으로서 죽음과 더불어 살고 재생의 상향운동과 죽음의 하향운동의 순환 속에 있는 불변하는 하나의 로고스이다. 자연은 성장하고 생성소멸하나 로고스는 하나로서 영원불멸하다. 우리의 영혼은 이러한 로고스와 맞닿아 있다. 가장 아름다운 세계질서는 아무렇게나 쌓인 쓰레기 더미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관에서 운동에 대한 인간의 언급은 항상 상대성에서 기원하는 상호성과 모순성을 함축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인간의 말이 모순율에 따라 분석을 수행한 것에 반해 현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서로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으로서 연속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러한 로고스가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의 배중률을 토대로 한 변증법과 다른 것은 그의 로고스가 일상 언어에 기초한 논리-변증법적인 것으로서 영혼의 운동과 관계하고 이 운동이 만물은 유전한다는 우주론적 운동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운동은 상호 연결되고 만물의 생성 소멸을 주관하기에 그리고 생성과 소멸이라는 모순된 것이 상호 연결된 반대의 것으로 파악되기에 그의 우주관은 순환적이다.

인식론적으로, 헤라클레이토스는 감관 –지각의 직관적 증거를 파르메니데스와 달리 신뢰한다. 그리고 그가 말한 로고스는 감관-지각이 파악한 자연의 상대적 운동과 생성 소멸을 모순율에 따르는 사유에 의해 조화나 통합에 이르게 하는 자연의 절대적 원리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즉, 헤라클레이토스는 사유와 감각을 파르메니데스처럼 날카롭게 구분하지 않고 연속된 것으로, 나아가 로고스와 파토스를 통합하는 정신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참된 앎은 대상과의 직접 접촉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그가 말하는 로고스는 자신을 숨기면서 단지 징표만을 보이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인식기관으로 여겼던 사유하는 영혼은 감관-지각처럼 개별적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비교하고 그것들의 공통성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감관-지각은 사물의 구체성으로 사유는 일반성을 지향함으로서 그 인식기능은 상방된 방향으로 발휘된다.

아낙시만드로스에게서 대립자는 죄와 같은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대립 자체는 전쟁으로 나타나는 반면, 헤라클레이토스는 대립자에 대해서 신적인 영혼의 역동적인 것으로 발전시켜 사유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에 숨어있는 합법적 통일성을 인식한 유일한 자이다. 하늘을 어떤 분석적 대상으로, 신화적 사유로 보는 것은 하늘에 대한 설명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하늘의 존재에 대해 보는 것은 비존재가 아닌 존재로부터 느껴지는 경이이며 철학의 근본기분-파토스이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있어 존재자는 없다. 존재자는 일자의 존재가 지속적으로 개시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그러한 일자는 모든 술어와 모든 성질들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에게 변화가 일어나는 Cosmos는 영원한 일자인 로고스가 입고 있는 옷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그는 변화하는 생성의 세계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그러한 생성과 변화를 주재하는 로고스에 따라 만물은 하나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모든 개인들은 법도에 넘치는 일을 할 수 없다. 생성과 망각과 쓰러짐은 모두 정의의 작용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의 대립지향적 순환에 대해 말한다. 투쟁은 통일적이고 합법칙적이며, 선한경쟁으로 내모는 선한 투쟁이다. 경쟁의 승부란 내재적인 합법칙성으로 개개인은 마치 자신이 활동하는 그 영역 안에서 대가를 받을만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승리가 어디로 향할지는 이성이라는 심판관들이 내리는 냉정하고 엄정한 심판에 의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인간의 의지가 좌절되는 것은 필연적이며 인간이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할 적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도 또한 자연의 섭리이며 필연적인 것이다.

세계는 부패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휘저어야 하는 항아리이다.

변회와 생성은 영원한 유희이자 디케-정의이며 세계는 모래더미를 쌓아다가 허물었다가 하는 아이와 같은 제우스에 의해 주사위 던지기 놀이처럼 이루어진다.


           
             

5장 이오니아의 철학- 크세노파네스

 

1절 개괄

 

크세노파네스는 대략 B.C. 570에 태어나 460년까지 살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스승이 없다고 전해지나 아낙시만드로스와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또한 그는 엘레아 학파의 설립자라는 추정도 있다. 또한 플라톤은 그의 책 소피스트에서 엘레아 학파와 크세노파네스를 연결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나타나며 그 이후로 고대의 저술가들의 책에 반복해서 나타난다. 따라서 크세노파네스가 엘레아 학파의 창시자라는 견해는 고대에는 정설이었다. 이후 버넷으로 인해 그 실체가 의심받기도 하였지만 시를 통해 사유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크세노파네스와 파르메니데스는 유사한 점이 있고, 크세노파네스의 사상엔 파르메니데스 사상의 단초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다소 있다. 그는 시인이자 지자요, 음악가로서 자신의 노래를부르는 재주와 멋을 지니고 있었다. 회의주의 철학자 티몬에 따르면, 그는 거만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호메로스 류의 기만을 비꼬는 풍자 작가이다.

 

2절 사상

 

그는 지적인 혁명가로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에 맞서서 전통 종교에 과감히 반기를 들었다. 그는 일체의 미신이나 기적, 전생과 윤회의 믿음을 부정하였고 신을 우주의 통일성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또한 우주는 다양한 현상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영구불멸의 존재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신이 있을 뿐이다.

플라톤은 그를 엘레아 학파의 창시자로 간주하고 있고, 이는 위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파르메니데스의 부동의 존재와 크세노파네스의 부동의 유일신 사이의 언어적 유사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크세노파네스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묘사하는 신이 비도덕적이고 인간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공격하였다. 그는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동형동성론의 견해에 관하여 “신들이 인간처럼 출생을 하며 인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가치 없는 주관적인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신에 대한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들을 신들에게 귀속시켰다. 도적질 간통, 서로 기만하는 일이 그것이다.”

“만일 소와 말 그리고 사자가 손을 가졌거나, 그들의 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인간들이 하는 일을 행할 수 있었다면, 말은 신의 모습이 자신들을 닮도록......신들의 몸을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형태에 따라서 만들었을 것이다.”

크세노파네스가 볼 때 신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노모스(nomos:법, 관습, 풍습, 관례)와 퓌시스(physis:자연, 본성, 본질)의 구분을 흐리는 일이다. 그는 따라서 이로부터 대체적인 신을 제시한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은 신이 유일하게 하나 있다. 이 신은 모든 존재자들을 그의 사고에 의해서 움직인다. 크세노파네스의 신은 부동의 존재로서 우주와 동일시될 수 있으며, 어떤 초월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주의 통합자와 같은 존재로서, 사물의 총체이며, 사유와 감각의 총체이고, 구형의 완성자이며, 생성과 소멸, 운동과 변화를 넘어서는 일자를 의미하고 있다. 이렇게 크세노파네스의 유일신은 형체와 생각에서 인간을 닮지 않았다. 그는 비물질적이지도 물질적이지도 않으며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들을 지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으로 자신은 개별적 존재자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또한 생성과 소멸이 없는 전체로서 항존 하는 것이므로 부동의 유일신이다. 이러한 신에 대한 크세노파네스의 생각에는 한편으로 신에 대한 경외감과 경건함이 자리잡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인간의 앎의 능력에 대한 회의가 자리하고 있다.

크세노파네스의 자연관은 모든 생물과 무생물은 물과 흙에서 비롯되었고, 그것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경험적 관찰에 토대를 두고 있다. 시라쿠사 채석장의 물고기들 화석에 대한 크세노파네스의 관찰이 그로 하여금 물과 건조한 땅이 각기 지배한 시기의 변화가 있었음을 알게 해주었다. 이를 통해 그는 바다가 땅이 되고 땅이 물로 덮이는 순환적 세계관을 갖게 되었으나 이것이 그의 신관과 어떤 직접적인 연관을 갖지 않으며 독창적인 발견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4장 피타고라스

 

1절 개괄

 

철학자로서의 피타고라스는 하나의 철학적 섬이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철학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일뿐더러 기원전 B. C. 5세기에 활동했던 피타고라스 학파 역시 다른 어떤 학파보다도 신비주의적이고 독특한 경향을 보여준다.

피타고라스는 새로운 철학적 삶의 형상을 창조했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의 나이 18세 즈음 올림피아력 제 48기 1년(B.C. 588)에 소년들과 겨루는 권투 대회에 참가를 희망했지만 거절당하고, 장정리그에 가서 우승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그의 출생년도는 B. C. 606년이 된다. 피타고라스가 기원전 606년에 태어난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보다 한 세대 이상 앞선 철학자이며 실제로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에는 피타고라스에 대한 언급과 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다른 기록에선 그가 기원전 570년에 태어나 490년에 죽었다고 나오는데, 이 경우에는 한 세대까지는 아니지만,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절정기인 기원전 504년에는 이미 60대가 넘은 고령의 영향력 있는 철학자였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대한 비교적 신빙성 있는 이야기를 간추리면 그는 폴뤼크라테스의 폭정 때문에 이탈리아 남부의 크로톤으로 이주하여 피타고라스적 삶의 방식을 따른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공동체는 종교적, 도덕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갖는다. 피타고라스 사후에도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은 이탈리아 남부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피타고라스는 일반적으로 수학자이며 합리론적 우주론자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는 혼의 전이설의 전파자이며 이른바 피타고라스적 삶의 방식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의 일화에는 신비주의적인 색채가 짙으며 이것이 그를 다른 철학자들과 차별화한다.

 

2절 사상

 

이온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며, 사후에 혼의 삶이 있다는 견해를 편 사람임을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피타고라스는 단순히 사후에 혼의 삶이 있다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의 혼이 불사적이며 다른 종류의 동물들로 옮겨간다, 따라서 모든 동물은 동족 관계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윤회 사상과 상당부분 유사한 지점을 보이고 있다.

피타고라스의삶의 방식은 피타고라스 공동체 내부에서 은밀하게 공유되었고 아무나 그 공동체에 가입할 수 없었다. 공동체의 자격요건은 까다로웠으며, 친구들의 것들은 공동의 것이다라는 규칙을 받아들여야 했다. 또한 이 공동체에는 다수의 종교의식과 생활방식, 금기 등이 편재해 있다. 그리고 금기들은 글이 아니라 금언 형태의 가르침 속에 문어로 구현되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정치적이면서도 종교 집단 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었던 종교는 영혼의 불멸성에 기초한 윤회론에 토대를 둔 오르페우스 종교였다. 이 종교의 원래 신은 디오니소스였고 종교적 제전에서 맛보는 환희는 신적인 것과의 접촉이거나 영혼의 신성화 자체였을 것이다. 피타고라스 종교집단의 카타르시스는 신체와 영혼 양면으로 수행된다. 신체를 정화하는 방법은 약제사상과 절제와 금기의 윤리적인 계율들로 나타나는데, 건강을 중시하는 약제 사상은 그 당시 지수화풍에 따른 인간의 기질 분류로 설명되었다.

한편 영혼을 정화하는 것은 음악과 수학이었다. 음악은 최고의 “philosophia” 였으며, 이 음악을 기학으로 해명하고 음악적 비례를 인식함으로서 수학적 사고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비례 사상은 다양한 것들의 통일이라는 조화 사상으로 발전한다.

피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기배려에 대한 앎을 추구했던 신비주의적인 인물로 보인다. 그가 내세우는 규칙은 철학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이지만, 재산 공유의 규칙, 자기 통제라는 도덕적 훈련을 위한 묵언의 규칙 등은 자기 배려의 계보에 있어 피타고라스가 차지하는 위치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는 신비주의 사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이는 피타고라스 학파와 신피타고라스 학파로 이어지며, 종교적 실천의 신비적인 영역과 진리로서의 앎의 영역이 분리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가 수학에 대하여 했다는 기여 역시 수를 우주와 연관시키면서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비합리적이고 신비주의적으로 사고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를테면 피타고라스는 수학에 기초하여 “우주는 수적인 비율로 표현될 수 있는 조화를 지닌 것으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했으며 수적 비율에 기초한 우주론으로서 합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영혼불멸과 신화적 우주관을 상당히 차용하는 등 비합리적인 면 역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가 수학을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수단으로 여겨 자연과학의 합리적 세계관에 관심을 쏟기 보다는 오히려 일차적으로 종교적이며 도덕적인 문제에 치중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삶의 방식에 관한 관심에서 비롯된 철학자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문제에 답을 구하고자 했던 자기 자신을 돌보는 철학자였다.

피타고라스는 플리오스 출신의 통치자 레온과의 대화에서 올림픽 경기에 가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는 것처럼, 우리들 삶의 유형도 이와 유사하게 분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으로 상품을 사고팔기 위해 가는 사람들이다. 그 다음의 분류는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영예를 얻고자 가는 선수들이다. 세 번째의 사람들은 돈이나 영예에 관심을 두지 않고 우주에 대한 탐구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예의주시하며 바라보는 관조적 인간이 있는데 그는 이러한 사람을 철학자라고 부르고 있다.

첫 번째 부류와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세속적인 욕망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로서 세계와 인간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이 영원한 윤회를 하면서 살고 있다. 철학이라는 말을 최초로 쓴 피타고라스가 철학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혼의 정화를 통하여 운명과 출생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피타고라스 사상의 주요 개념은 관조와 조화의 질서 그리고 정화 등의 개념들로 압축될 수 있다.

피타고라스는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를 만났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개별적인 영혼과 이성에 충실한 사고였기에 자연주의적인 사고보다는 인간의 주체에 대한 인식과 사유에 충실하였고 그 결과 한계와 비한계에 대한 가치론적인 사고에서는 아낙시만드로스와는 역전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우주 창조에 운동의 원인으로서 영혼을 도입함으로써 아낙시만드로스의 자연 중심적이고 맹목적인 우주를 인간 중심적인 지성과 생명으로 충만케 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피타고라스와 그 추종자들은 자신의 전생 이야기와 결부된 윤회사상을 아낙시만드로스의 진화론적 사상과 절묘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아낙시만드로스에 의하면, 인간은 보다 낮은 단계의 동물들로부터 진화되었는데, 이 이론을 피타고라스가 지신의 환생이론에서 수용하고 있다.




             

3장 아낙시메네스

 

1절 개괄

 

아낙시메네스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그가 밀레토스 사람이고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이자 동료라고 전해진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로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아낙시메네스는 1) 아낙시만드로스보다 젊고 제자이거나 동료이며, 2)생몰년대는 보통 자의적이라고 판별된다. 3) 아폴로도스는 그가 올림피아력 63기(B.C 529-525)에 전성기였으며 사르데스의 정복기인 올림피아력 70기(BC.501-497)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성기를 태어남으로 본다면 필사본이 옳을 수도 있고 이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죽은 셈이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는 올림피아력 58기의 두 번째 해(B.C.547/6)에 64살이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고 나와있으므로, 이에 따르면 아낙시만드로스의 생몰년대는 B.C 610~ B.C 545 정도이고 아낙시네메스는 B.C. 529~ B.C. 497정도이므로 아낙시메네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일 수 없다. 또한 그의 희박화 및 응축에 관한 이론 역시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보다 앞선 사상으로 단정짓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연대별 철학자들의 시기 분류

올림피아력 35 탈레스 B.C 640년 출생 B.C 624년(올림피아력 39기)이라는 설도 있다.

올림피아력 40 크세노파네스 B.C 620~ B.C 616 출생. B.C. 570이라는 추정도 있다.

올림피아력 42 아낙시만드로스 B.C 610~ B.C 545

피타고라스 B.C. 570에 태어남(폴뤼크라테스의 참주정치시기로부터 40년전)

올림피아력 63 아낙시메네스 B.C. 529~ B.C. 497/ B.C. 546 절정기, B.C. 529 사망

올림피아력 69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절정기 B.C. 504~ B.C. 501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에서 피타고라스 헤카타이오스 크세노파네스를 언급하고 있으나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파르메니데스는 크세노파네스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올림피아력 70 아낙시메네스 사망 아낙사고라스 절정기 B.C. 497

올림피아력 80 데모크리토스 절정기

이를 통해 재구성한 철학사

기존: 탈레스 –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를 밀레토스 학파로 엮음

아낙시만드로스 -> 파르메니데스 -> 아낙시메네스로 이어지는 계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7가지 유형

1. 아낙시만드로스

2. 헤라클레이토스

3. 엘레아 학파

4. 피타고라스

5. 아낙사고라스

6. 엠페도클레스

7. 데모크리토스 원자론자들

아낙시메네스는 모든 것이 한 원소의 응축과 희박함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말했는데 한 원소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는 방식(wie)를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자연과학에서 특히 빼어난 인물이었다고 평가해볼 수 있다.

 

2절 아낙시메네스의 사상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근원적인 실체로 보았다. 공기는 이른바 4원소(물,불,흙,공기) 가운데 하나이다. 어떤 성질도 갖지 않는 중립적인 원리(아페이론)을 가정하여 대립자들을 설명하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과 비교해보면, 특정한 성질을 갖는 사물을 근원적인 실체로 놓는 아낙시메네스의 이론은 일견 후퇴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은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경험적이지도 않고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를 우리가 제시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더구나 우주의 산출(발생)에 대한 설명에서 대립자들의 산출과정은 기원이 모호한 어떤 것(산출자)에 의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낙시메네스의 공기가 아페이론보다 우수한 원리이다. 변화의 원리를 포함할 수 있는 단일 실체로서의 공기는 우주 내 사물들의 폭넓은 다양성을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산출해낸다. 공기는 다른 형태를 띨 수 있고 조건이 맞으면 다른 유형의 실체가 되기도 한다.

아낙시메네스에 따르면 공기가 적당히 희박해지면 불이되고 적당히 응축하면 바람이 되고 물 땅 등이 된다. 동일한 사물이 다른 형태를 띠며 바뀌는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탈레스에서 의문시 되는 문제(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면 왜 모든 것은 물의 성질을 갖지 않은가?)에 답을 준다. 모든 것은 공기의 성질을 갖는다. 공기는 조건에 따라서 불이되고, 물이되고 등등이 되므로 불, 물 등등의 성질을 가진다.

아낙시만드로스의 대립쌍이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임에 반해, 아낙시메네스의 이론에서는 희박과 응축이다. 희박과 응축은 대립 쌍이지만, 아낙시만드로스와 달리 밀도 차이라는 양적 개념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아낙시메네스는 자신의 이 대립 쌍을 사용하여 아낙시만드로스의 대립 쌍을 설명한다. 희박해진 숨은 따뜻하고, 응축된 숨은 차갑다. 온과 냉은 이렇게 희박과 응축으로 즉, 밀도의 차이에 의해서 연결되며 따라서 설명 가능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응축과 희박은 운동과 변화의 원인이 되는 원리는 아니다. 이것을 운동의 원리로 놓는다는 것은 운동의 대상이 되는 사물과는 별개의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그런 뜻의 운동 원리는 엠페도클레스에 이르러 정식화된다. 응축과 희박은 공기의 운동 양태를 묘사한 말이다.

공기가 어떤 장소에서는 응축되고 어떤 장소에서는 희박해져서 다른 물체들이 생기게 된다 공기가 희박해지면 불이되고, 응축되는 정도에 따라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며 물, 흙, 돌이 된다는 진술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아낙시메네스는 모든 종류의 자연물이 공기에서 직접 생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인 형태의 사물들이 있고 다른 종류는 그것의 복합물이라 여겼다. 여기서 공기는 불이나 물과 마찬가지로 다른 물체의 구성 성분으로 동등하게 기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이 기본적인 사물들이 엠페도클레스의 원소들과 같은 것은 아니다. 원소는 다른 것을 구성하지만 그 자신은 다른 것에서 생기지 않는다. 반면 불이나 물 등은 공기에서 생기며 밀도 차이에 따라 변화한다. 그리고 공기마저도 다른 것에서 생긴다는 언급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아낙시메네스가 굳이 공기를 arche로 택한 것에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희랍어로 aer 아에르라고 불리는 공기는 우리의 공기(대기) 개념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된다. 이 공기의 개념은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처럼 범위가 무한히 광대하다. 그것은 모든 것들을 에워싸며 그래서 무한정한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나아가 공기는 숨에 비교된다. 이런 의미에서 아낙시메네스의 우주론은 공기-혼/ 숨-세계의 도식을 따른다.

이제 통상의 이해에 따르자면, 밀레토스 학파의 자연 이해에는 생성 소멸하는 현상이나 불변하는 실재에 대한 이해가 철저히 분화되어 있지 않고 융합되어 있어서, 실재로서의 퓌지스(물, 무한정자, 공기 등)은 모두 현상인 것이자 그것의 원리인 것으로 여겨진다. 즉 그것은 한편으로 생성 소멸하는 변화 자체이자 양적으로 불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모순되기 때문에 이후 철학자들에게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이를테면 현상을 변화하는 실재(운동)과 동일시하여 운동을 실재 자체로 이해한 헤라클레이토스와 실재에서 운동과 변화를 감각-지관의 착각이라고 해서 제거해버린 파르메니데스의 철학 가운데에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아낙시만드로스의 존재와 생성을 포괄하는 매개 없는 이원론으로부터 헤라클레이토스는 토 아페이론을 제거함으로써 변화/생성 속 코스모스의 세계를 자신의 세계관으로 삼았고, 파르메니데스는 반대로 생성을 부정하고 존재의 세계에 머무름으로써 모든 생성을 감각의 착각으로 부정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낙시메네스가 실제로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파르메니데스의 밑에서 수학했다고 가정한다면, 아낙시메네스를 아낙시만드로스의 계승으로 보는 것은 너무 나이브한 이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경우 아낙시메네스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중 자연과학적인 사고에 가까웠던 철학자로서 그 자신의 고유한 위상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아낙시메네스가 논리적 사유보다는 경험 과학적으로 사유했다는 이유에서 아낙시메네스 본인의 철학적 위상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2장 아낙시만드로스

 

1절 개괄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가 일식을 예언했던 해(기원전 585/4)에 25살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탈레스보다 젊었지만 아마도 많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사고라스를 오늘날에는 밀레토스 학파라고 부른다. 아폴로도로스에 따르면,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의 혈족이며 제자이며 후계자였다. 그는 처음으로 “자연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저술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지도와 해시계를 만들었다고도 여겨진다. 그 전에는 글을 쓴다는 것이 비판의 대상이었으며 이점에서 아낙시만드로스의 저술은 유럽 최초의 철학책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사물의 생성소멸의 원인에 대한 설명에서 논리적으로 반대-모순 현상으로 파악하고 이의 논리적 관계에 주의하고 철학을 하였기에 그의 철학은 자연 현상의 대립과 사람들의 사유방식의 모순에 대해 사색할 만큼 철학과 과학의 분석적 방법적 시조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만물의 상호대화는 성질들이 서로 싸우기 때문에 생성소멸하며 그 가운데 기본적인 것이 지수화풍의 성질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립되는 성질 중 하나를 만물의 근원으로 삼으면 이 우주는 이 근원이 되는 성질에 의해서 지배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만물의 근원이나 원인이 되는 것은 불멸하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생성 소멸하는 사물의 성질 중 하나를 만물의 근원으로 삼지 않고, 양적 측면에선 무한정자, 질적측면에서는 무규정자인 아페이론이라 부르고 이에 기초해 우주론과 지수화풍의 생성소멸을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지수화풍이 상호 싸우다가 죄를 짓고 정화를 위해 아페이론으로 회귀하였다가 다시 만물로 나타나는 이러한 윤회와 순회사상이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라는 존재론의 모순율인 제 1원리를 담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선행자들도 변화를 보았고 그것을 설명하려 노력했으나 그 문제의 논리적인 성격을 미처 깨닫지는 못했다. 그것은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상반된 성격의 잠언으로, 파르메니데스에게서 분명 모순으로 나타난다.

 

2절 무한정자에 대하여

 

아낙시만드로스에게 to aperion 토 아페이론은 우주 만물이 생겨나는 원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아페이론은 탈레스의 물을 대신하는 원초적 질료이다. 아페이론은 물이나 불, 그리고 다른 철학자들이 근원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질료들과는 다르다. 그것은 영원하고, 나이를 먹지 않으며, 운동 중에 있고, 다수의 하늘과 세계들이 이것으로부터 생겨나며 이것에 의해 둘러싸인다고 묘사되는 그런 것이다.

아페이론의 특징은 첫째, 공간적 한계가 없는 무한히 큰 것이며, 둘째, 시간적 한계가 없는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며, 셋째,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정한 어떤 것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무규정적인 것이다.

“모든 것은 근원이거나 근원으로부터 나온다,”

아페이론은 물도 불도 아니며, 뜨겁지도 차갑지도, 무겁지도, 가볍지도, 축축하지도 건조하지도,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이렇게 무규정적인 것을 규정된 세계에 사는 우리는 부정의 용어로만 표현할 수 있다. 세계 내의 모든 사물들과 모든 성질의 궁극적인 아르케인 아페이론은 사물들 가운데 어떤 것일 수 없으며, 사물들이 갖는 성질 가운데 어떤 성질을 가질 수 없다. 아페이론은 신적이고 사멸하지 않으며, 운동중에 있으므로 탈레스의 생각처럼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페이론은 세계를 생산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아페이론을 신적인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으나 신적인 것은 탄생, 시작이 있으나 아페이론은 시작도 끝도 없다는 점에서 더 본질적인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을 운동하는 것으로 본 까닭은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우주는 결코 시작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의 형성은 아페이론에서 대립자들이 떨어져 나오는데서 시작된다. 우주 발생에서 주요 대립자들은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대립자들의 상호작용과 균형을 가정했으며, 우주의 구성과 운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이 대립자 개념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앞서 말한 탈레스의 문제점에 대한 대응책이 된다. 탈레스에게서 원초적 질료인 물로부터 그와 대립되는 성질의 불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성질도 갖지 않는 아페이론으로부터 어떻게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산출될 수 있는가? 아낙시만드로스는 온과 냉이 아페이론으로부터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과 냉을 산출하는 어떤 것이 먼저 아페이론에서 분리되어 나온다고 말한다. 온과 냉은 산출자에서 동등한 힘을 가지고 동시에 산출되기 때문에 한 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위에서 전개했던 탈레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 논의를 아낙시만드로스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다. 우리가 위에서 탈레스의 물을 Hyle로 설정했던 아리스토텔레스에 반하여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가 비록 arche를 substance로 여긴 것으로 보이나, 아낙시만드로스는 어떠면 arche와 substance를 동일한 것으로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arche는 무규정적인 것이며, 플라톤의 말을 빌리면 생성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서 aitia는 존재 차원의 것이며, arche는 존재와 비존재 차원 모두를 포괄하는 것으로 아낙시만드로스가 여겼다고 말해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후 파르메니데스가 정식화 시켰던 철학의 근본물음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낙시만드로스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후대의 입장에서 적용한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아낙시만드로스는 생성의 문제를 to apairon을 통해 드러냈다고 볼 경우엔 말이다.

 

3절 aitia와 arche의 차이점

 

사전에서 arche는 시작, 기원, 원인, 목적, 원리, 원소, 힘, 규칙 등으로 번역이 된다. 아르케는 출발점을 뜻한다. 그래서 기원이나 근거로 번역이 가능하다. 그래서 아르케는 원리로 이해한다. 아르케의 본래의미는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어떤 행위나 사태의 주체를 의미한다. 아르케가 시간에 대해서 사용되는 경우, 시간적 순서에서 볼 때 새로운 시작의 기점을 나타낸다.

aitia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철학자들로부터도 사용되었지만, 아이티아를 아르케적 용어로 사용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부터이다. 아이티아를 사전에서 찾으면, 원인 이유 목적 동기 등으로 번역된다.

플라톤은 아르케와 아이티아를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티마이오스에서, 아르케는 신으로부터 생성된 최초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에게 있어 아르케는 만물의 근원이기보다는 만물을 창조한 신, 데미우르고스에 의하여 창조된 근원들이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있어 아르케는 신의 자리가 아니다. 신에 의해 만들어진 원소들이다. 그러나 이 우주에 대한 근원들은 지성과 필연성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원리라기보다는 규칙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우리는 불 및 다른 물체들의 아르케로서 상정하고, 필연성을 동반하는 이야기를 따라야한다. 그러나 이것들 보다 한층 더 근원적인 아르케들은 신이, 그리고 사람들 중에서는 신의 사랑을 받는 이가 알 것이다.”

반면 플라톤에게 있어 아이티아는 보통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탓하다, 까닭, 이유 이며, 또 하나는 원인으로 사용된다. 첫 번째는 그런 까닭, 책임, ~의 탓 등으로 사용되며, 또한 플라톤은 만물의 궁극이 되는 원인으로서 아이티아를 말하기도 한다. 플라톤은 진짜 원인과, 그것 없이는 원인이 결코 원인일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데, “그것 없이는 원인이 결코 원인일 수 없는 것”은 티마이오스에서 언급된 보조적 원인을 뜻한다. 물리적 혹은 물질적 조건은 플라톤에게 있어 그저 보조적 원인일 뿐 진정한 의미의 원인은 아니다.

플라톤의 아르케를 의미하는 뜻으로서의 아이티아는 항상 서술이 붙는다. 즉, ~원인이라는 것이 된다. 즉, 단순히 아이티아의 단어만 가지고는 아르케적 의미를 설명하지 않는다. 원인이 있는데, 그것이 참된 원인인지, 보조적 원인인지를 밝혀내야만 하는 또다른 순서가 필요한 것이다. 오직 플라톤에게 있어 참된 원인은 이데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생각을 계승하여, edios를 substance로, 사물의 본질로 놓는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아이티아는 곧 아르케이다. 신은 모든 것의 아이티아이며 으뜸가는 아르케이다.

“그러나 아낙시메네스와 디오게네스는 공기를 물보다 먼저로 보았고, 그리고 이것을 단순한 물질들 가운데 가장 아르케인 것으로 놓았다. 반면 메타폰티온의 히파소스와 에페소의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그리고 엠페도클레스는 넷째의 것으로 흙을 더함으로 네 가지 원소를 아르케로 놓았다. 이것들은 항상 존속하며, 새로 생겨나지도 않고, 많든 적든 한가지로 결합되거나 한가지로부터 분리될 뿐이다.”

“아르케는 한 사물에서 가장 먼저 움직일 수 있는 곳이다...각 사물이 가장 잘 생겨날 수 있는 곳이며...맨 처음 어떤 것이 생겨나는 기초(중심부)이다. 동물의 경우 심장, 뇌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운동과 변화가 처음에 자연적으로 시작되는 곳이 아르케이다. 움직이는 것들을 움직이고, 변하는 것들을 변하게 하는 결정권을 가진 것...사물이 맨 처음으로 알려질 수 있는 곳이 아르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전 철학자들이, 어떻게 아르케와 사물의 참모습에 관해 언급하면서, 그들이 밑감(바탕)을 하나로 놓든, 여러 가지로 하든, 물질이 되었든 비물질적인 것이 되었든, 아르케로 여긴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전 철학자들이 본질(ousia)와 실체(substance)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는데, 그 누구보다도 플라톤주의자들이 그랬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형이상학 1권에서 이전 철학자들이 아르케의 의미를 사용했음을 밝히고 자신은 아르케의 의미에 아이티아를 복합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곳에서는 근원적인 원인들을 사용했고, 근원적인 원인들을 대신하여 아이티아로 말하기도 한다.

이전 철학자들을 언급하는 곳에서는 단순히 아르케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자신이 사용하는 아르케적 의미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아이티아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아이티아는 아르케가 가진 많은 의미만큼 아이티아가 말해진다.

“아이티아들은 어떤 것 안에 있는 것이 생겨나는 것이며...변화 또는 정지의 맨 처음에 비롯하는 곳이 아이티아들이다....어떤 것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변하게 하는 것의 아이티아들이다...어떤 것은 목적으로서 무엇을 위한 아이티아들이다.”





             



 

1장 탈레스 (Thales)

 

1절 개괄

 

기원전 6세기 초반에 활동한 이오니아의 철학자.

희랍의 철학과 과학적 전통의 창시자로 일컬어진다.

아낙시메네스는 “탈레스는 항상 우리 대화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전하고 있으며, 추가적으로 탈레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라에르티오스는 “탈레스는 체조 경연대회에 참가했으며, 발열, 간염, 허약증 등으로 사망했다.”, “이 묘비는 작으나 그의 지혜는 명성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찌른다.”는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탈레스는 스스로 많은 것을 발견했고 또한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일례로, 그는 삼각형의 맞꼭지각은 같음을 증명했다고 전해진다. 탈레스가 수학에 남겼다고 전해지는 업적들은 그가 이집트에 머물렀었다는 자료들을 참고해볼 때 이집트의 실용적인 측량 기하학을 접하고 그로부터 배워온 것으로 보인다.

탈레스에 대한 정보는 현대에 거의 전해지고 있지 않지만, 그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었으며, 또한 여러 가지 업적을 남겼음은 추정해볼 수 있다. 탈레스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가운데 7현인에 속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탈레스에 대한 일화는 단편적으로만 남아있기에 종합하기 어려우나 첫째, 자연철학자만이 아닌 정치지도자로서도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둘째, 강의 흐름을 바꾸었다거나, 일식을 예언하였다는 점에서 자연과학에 대한 탈레스의 식견을 엿볼 수 있다. 일식을 예측했다는 이야기 때문에, 탈레스가 바빌로니아의 문헌들을 자세히 살펴본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탈레스는 고대 그리스 최초의 천문학자이자, 기하학자라고 볼 수도 있다.

 

2절 탈레스와 물

 

탈레스의 우주론에 대한 정보는 전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의존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의 주장으로 “지구가 물 위에 떠 있다.”, “물은 만물의 근원 arche이다.”라는 두 가지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지구가 물 위에 떠있다는 주장은 신화적 우주론의 영향을 보여주며, 당시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 널리 퍼져있던 관념을 탈레스 역시 받아들였을 거라고 보는 입장 역시 존재한다.(심플리키오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탈레스를 단순히 신화적 연장에서 벗어나 최초의 “철학자”라고 정의내리는 까닭은 그가 지진의 원인을 지하에 있는 물의 운동으로 “설명”한다는 것,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발상으로 그러한 사고를 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전제와 논리가 수반되어 있으며, 이 점에서 탈레스는 철학의 특징으로 꼽히는 로고스logos 즉 합리성을 사고에 도입한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탈레스가 세계의 시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를 최초의 철학자로 평가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이 근원이라는 탈레스의 주장을 자신의 4 원인설에 적용하여 탈레스가 물을 세계의 궁극적인 원인, 질료로 여겨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탈레스가 정말로 물이 단 하나의 요소라고 말했는지의 여부는 알 수가 없을뿐더러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해볼 경우, 사정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에 따르면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명제는 모든 사물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탈레스의 문제는 “모든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질료가 무엇인가?”가 되며 탈레스와 그 이후의 자연철학자들이 계승해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과연 세상의 기원에 관한 탈레스의 물음이 질료를 파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가하는 점이다.

먼저, 탈레스의 실제 생각은 세계가 생겨난 기원으로서의 물이었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땅이 물 위에 떠있다는 착상과 잘 연결될 뿐 아니라, 탈레스가 영향을 받았을 신화들 가운데 함축되어 있으며, 오케아노스(강)를 모든 사물의 원천으로 지목하는 호메로스의 언급하고도 통한다. 여기에서 제시되는 기원으로서의 물의 관념은 세계의 원시 상태와, 그 원시상태로부터 현재로의 이행과정에 대해 주목한다.

둘째로, arche와 substance는 같은 것이 아니다. substance, 실체는 아이티아의 하나로 edios를 말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arche로 제시하는 물을 아이티아의 하나인 hyle로 보고 있지만, 탈레스의 arche로서의 물은 반드시 hyle로서 제시되어야할 필요는 없다. 또한 물을 존재자를 존재자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그것, Ousia라고 봐야하는가에 대해도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단 이 경우,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의 핵심은 그가 수용하고 있는 파르메니데스의 명제,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에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의 시원이 물이라면, 물이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은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혼(phyche)과 신, 그리고 살아 있는 세계에 대해서 탈레스의 생각을 엿보게 하는 간접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탈레스는 혼이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석이 쇠붙이를 움직이게 하기 때문에 혼을 가졌다고 믿었다. 혼이 있고 없음에 따라 살아 있음과 죽음이 나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과 식물이 혼을 갖는다고 말했으며 나아가 운동이 생명의 특성이라고 주장했다. 이 운동은 성장과 질적인 변화를 포함하며 그래서 식물도 소유하는 넓은 의미의 운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의 이 진술로부터, 그가 모든 것이 신으로 충만하다고 믿었다는 말을 하면서, 이 믿음을 우주에 혼이 스며 있다는 믿음과 결부시킨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더라도 혼과 신의 연결가능성을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으며, 비록 탈레스에게 신화적 전례들의 영향이 직간접적으로 강하게 작용했을지라도 그의 우주론에서 철학적 사고의 가능성들을 배제할 분명한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탈레스에게 있어 전체로서의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 생명령으로 충만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생명력은 광범위함과 영속성으로 말미암아, 신적이라고 불리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