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적 희망의 신학
I. 서 론
II. 몰트만의 배경
1. 성장 배경
2. 신학적 배경
1) 오토 베버의 개혁주의 전통
2) 한스 에반트의 헤겔 철학
3) 에른스트 볼프의 사회 윤리학
3. 대표저서
Ⅲ. 몰트만의 신학 사상
1. 몰트만의 “종말론적 신학”
1) 전통적 종말론
2) 종말론의 재발견
Ⅳ. 몰트만의 신학 논쟁
Ⅰ. 서 론
1960년대 전세계 신학계에 화제를 일으키며 뜨거운 논쟁이 되었던 신의 죽음의 신학은 단지 몇 년 동안 지속하다 소멸되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사고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희망의 신학, 정치 신학, 해방 신학 등의 급진 신학을 통해 사상의 맥이 존속되었다.
특히 1970년대 중반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의 잿더미로부터 불사조같이 일어난 것이 ‘희망의 신학’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죽음에 대한 서고를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오류라고도 생가가하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문제에 어떤 결론을 내리기보다 유보하는 입장을 취했다. 역사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하나님이 미래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희망의 신학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희망의 촛불을 꺼버리지 않고 살려놓은 것이다.
희망의 신학의 주제는 미래와 희망으로 요약된다. 현재를 강조하는 실존주의 신학과 달리, 희망의 신학은 미래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 지향적 관점에서 신학과 신학적 관심사를 바라본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는 단지 미래와 관련될 때만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취급한다. 이로 인해 희망의 신학은 때로 ‘미래의 신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신학자로는 몰트만(jurgen Moltmann), 판넨버그(Wolfhart Pannenberg), 메츠(Johannes Metz)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신학 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몰트만이었다. 그는 1964년 「희망의 신학」을 출판하여 신학적 사고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다. 최근의 신학 가운데 어떤 형태로든 그의 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신학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몰트만은 오늘날 생존하고 있는 신학자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칼 바르트 이후 현대 신학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는 신학자이다. 몰트만은 신학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20 세기 후반의 기수로, 그의 신학적 입장은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으나 “종말론”, “희망” 그리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으로 대표 될 수 있겠다.
특히 종말론에 있어서 몰트만 이전까지의 종말론은 기독교 신학의 마지막 부록쯤으로 역사의 종국에 가서나 있을 수 있는 미래적인 것으로 여겨졌는데 비하여 몰트만은 이 종말론이야 말로 기독교 신학의 근거로서 그 시작이며 중심이라고 주장함으로서 기독교 신학에서 종말론이 얼마나 근본적이며 성서적 기독교적 본래적 중대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일깨워 주었다.
나아가 몰트만은 이러한 신학적 입장을 철저하게 소망의 지평과 미래의 차원에서 종말의 관점으로 시종일관하고 있다. 즉, 그에 의하면 출애굽이나 이스라엘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롬 15:13)”으로서 “미래를 존재의 양태”로 가진 하나님이다.
특히 그는 이러한 일에 관여하시는 성령 하나님에 대해 역설 하였는데, “성령의 사귐”이라는 의미로 말하고 있다. 성령의 사귐에 대해 그는 “성령의 사귐의 경험은 기독교를 필연적으로 그 자신을 넘어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의 보다 더 큰 사귐 속으로 인도 한다”1)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오늘의 여러 신학 운동, 특별히 고난 받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는데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 여성 신학, 흑인 신학 등에 영향을 끼치고 한국의 민중 신학 역시 그의 이러한 역동적인 희망의 신학에 영향을 받고 있다.
여기서는 「희망의 신학」을 중심으로 몰트만의 배경과 그 핵심 내용을 제시한 후 그의 신학에 관련 된 논쟁과 전도신학적 관점에서의 결론을 내려보고자 한다.
Ⅱ.몰트만의 배경
1. 성장 배경
1) 역사적 상황
1960년대는 새로운 문학적, 사회적 상황의 시대였다. 전자두뇌학(cybernetics)과 전자공학, 의학, 우주항공 분야 전 영역에 걸친 과학기술의 발달은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제공해 주었다. 미래학과 인간의 과학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국가의 경제 발전, 인구조절, 사회 계획과 관련하여 큰 희망을 갖게 되었다. J.F.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Jr의 시대는 정치적 사회적 구조 안에서 인간화의 새로운 희망을 탄생시켰다.
모든 선진국간에 정치적 정의를 위한 세속적인 열정주의가 시민권리 운동과 억압사회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위한 조직된 실험을 통해 나타났다. 심지어 소련의 위성국가 내에서도 새로운 Marxist Mumanism이 일어나 미래에 대한 관료적인 태도에 저항했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sooialism with a human face)”를 위해 노력했다. 후진국에서도 “지상의 비참함”과 그 원인의 대부분이 선진국의 착취와 속임수에서 비롯되는 가난과 불의의 완악한 비인간적 상태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되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W.C.C 회의는 세계의 미래에 대해 개방적인 교회의 비젼에 대해 소리높여 말했다. 이러한 모든 미래 지향적인 희망과 계획과 해방과 인간화의 상황이 “희망의 신학”을 낳았다.2)
그러나 “희망의 신학”이 전적으로 이같은 낙관적인 역사적 상황 때문에 나왔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얼마가지 않아 전 세계적인 문화적, 사회적 의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제 더 이상 과학기술로 말미암는 자유스러운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다. 인류는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그래서 인간의 생활 영역을 유린하고 인류의 실존에 공포를 주는 과학기술의 결과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사회적인, 국가적인, 세계적인 계획은 유익이 없어 보인다. 집단적 관료주의, 기술주의, 전체주의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커다란 문제들에 대해 인간 스스로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로운 공공의 장소를 점점 좁게 한다. 사회정의와 시민의, 인간의 권리와 자유는 전과 비교하여 크리스찬과의 대화는 1968.8월에 돌연 중단되었다. 남아시아, 남․북 아메리카에서 빈민지역의 비참한 자들은 더욱 비참해졌다. 교회의 약속된 일치를 위한 개혁은 대체로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다.3)
동서간의 무기경쟁은 점점 가속화 되고 핵무기의 위협 하에 보장된 평화 속에서 인류는 살아가고 있으며 사회안의 빈부의 격차와 남반구, 북반구 간의 경제적인 갈등으로 인해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급속도의 일방적인 산업화는 환경오염을 초래해 생태학적 위기를 만들어내었다. 몰트만은 이러한 상황 하에서 지쳐버린 기독교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약속하신 그 산 희망으로의 새로남을 가르치려고 한다.4)
2) 신학적 상황 - 종말론의 철저화
19세기 말엽부터 성서 주석학자들은 다음의 사실을 점차로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즉 성서의 종말론적 언어는 신약 밖에 있는 한 지엽적인 요소가 아니라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론,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신학적 견해를 이해하기 위한 중심적인 요소라는 것이 밝혀졌다.5)
19세기 말에 Johannes Weib와 Albert Schweitzer를 통해서 시작한 예수의 메시지와 실존 그리고 원시 기독교에 대한 종말론의 중심적인 의미의 발견은 확실히 최근 개신교 신학에 있어서 가장 이미 있는 사건 중의 하나로서 그 충격적이 결과를 가져왔다고 몰트만도 평가한다.6) 그것은 19세기 개신교 문화의 영역에 있어서 교회와 경건과 신앙에 대해서 터전을 흔드는 지진과 같았다. 원시 기독교의 종말론적 성격의 인식으로 인해 기독교와 문화는 한 조화된 종합체라고 자동적으로 인정하던 사상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마르틴 켈러의 표현에 의하면 “홍수가 나고 제방이 무너진 사건”이였다. 1차 대전 이후 ‘변증법적 신학’의 창시자들에 의해 이와 같이 관념적으로 축출을 당하고 비현실성으로 선고된 종말론이 주석적 연구 분야만이 아니라 교의학 연구의 중심에 오게 되었다.7)
1921년 칼 바르트는 그의 “로마서 강해” 제2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종말론이 단지 교의학에 있어서 짤막하고 전적으로 해로움 없이 끝나는 마지막 장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전적으로 그리고 기탄없이 종말론이 아닌 기독교는 그리스도와 아무 관계가 없다.”8) 바르트는 인간, 이성, 문화를 신뢰하는 자유주의(kulturprotestantismus)에 거슬러 시간과, 영원, 유한과 무한, 하나님과 인간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말론을 사용했다.9) 그가 말하는 종말론은 초월적으로 진입하는 종말이 인간의 모든 역사를 그의 종국적인 위기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써 종말은 초월적인 영원, 모든 시대의 초월적 의미가 되고, 역사의 모든 시대에 똑같이 가깝고 똑같이 멀게 된다.10) 그러므로 전기 바르트의11) 종말론은 미래에 일어날 일과 상관이 없다. 오히려 종말은 현 세계의 시간적인 모든 것을 항상 위기에 처하게 하는 하나님의 피안성이요 영원성을 의미한다. 즉 그의 종말론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직면하는 순간순간마다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바르트의 종말론을 일컬어 A.A.후크마는 무시간적 종말론(timeless eschtology) 또는 수직적 종말론이라고 비판한다.12) 벌카우어도 미래의 시간적인 지평보다는 공간적인 지평에서 수직적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이 죄 많고 유한한 인간을 만나는 때(순간)가 바르트가 말하는 종말이며 여기에는 나중이라는 시간적인 범주가 없음을 말한다.13) 이러한 종말이해에서 구체적인 역사와 미래가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14)바르트도 후기에는 초기, 로마서 강해시절 때 가졌던 종말이해가 너무 극단적으로 나갔음을 인정했다. 그는 변증법 시대를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피안성을 진지하게 여기고자 했으나, 바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 자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할 염두를 내지 못한 것으로 느껴진다. 내가 사실을 이렇게 이해함으로써 로마서 13장 11절이 지닌 특수한 의미를 주석할 때 시간을 통해서만 이해가 가능한 목적론, 즉 종말로 나아가는 시간의 경과에 대해서는 교묘하게 언급을 회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15) 그러나 바르트는 이러한 종말론을 발전시킬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한편 볼트만은 초기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분석에 의지하면서 인간의 본질을 미래를 위해 개방될 수 있는 존재 가능성으로 규정했다. 즉 인간은 자기 본래의 존재에 이미 도달한 적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참 실재는 항상 그 앞에 높여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은 미래에 대해 자신을 개방시키지 못한 채 과거에 사로 잡힌 나머지 자신의 생명을 박탈당하고 있다.16) 불트만은 이러한 인간학적 기점으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해한다. 그리스도의 사건은 종말론적인 사건이다. 이 말씀이 죄에 젖은 실존의 퇴락성을 끝맺게 하고 미래에로의 새로운 개방성과 자유를 가능케 한다. 불트만은 시간적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이 발생하는 순간마다 미래가 현재로 화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인간이 신앙 안에서 ‘여기서 그리고 오늘’(hier und herte) 하나님과 그의 도래를 위해 개방되어 있는 것이다. 이때 본연의 사건, 즉 종말론적인 것이 발생한다.17) 불트만의 종말론은 말씀을 들을 때의 결단의 필요성은 역설했으나 미래 종말론적인 요소를 빼뜨렸으며18)시간적 미래를 실존론적 미래성으로 변형시켜 해석함으로써 세계와 역사에 아직 미치지 않은 구체적 미래 차원이 배제, 제거되었다.19)
몰트만은 이같은 바르트, 불트만의 종말론에 대해 “초월적 종말론”이라고 비판하고 원시 기독교적 종말론의 발견은 다시 전개되기도 전에 은폐되었다고 개탄한다.20)그는 e. 케제만고, 폰 라드의 신약신학과 구약신학에서 성서신학을 종말론적으로 보며 유대교 기독교 전통에 있어서 종말론적 전통을 성서적 사고 방식의 특성으로 보는 데 영향을 받아21) 바르트와 볼트만과 같은 종말론에는 아직 희랍 정신의 사고 형태들(로고스 안에서 존재의 영원한 현재의 나타남)이 그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지적한다.22)그리고 기독교는 다만 하나의 부록이 아니라, 전적으로 종말론이며, 희망이고 앞을 향한 전망과 성취라고 말하면서23) 기독교의 모든 선교, 실존, 아니 전 교회의 성격이 종말론적으로 지배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은 출애굽의 하나님이며 ‘희망의 하나님’(롬15:13)이며 올바른 신학은 미래의 목표로부터 고려되어야 된다고 함으로써 종말론을 철저화한다.
3) 생애
몰트만은 1926년 함부르크의 세속적인 교육자 가정에서 태어나 종교와 신학과는 동떨어져 자라나 본래 수학과 원자 물리학을 공부하고자 했다. 그는 시나 독일 관념론에 심취해 있었다. 이때 그의 관심은 레씽, 괴테, 니체 같은 이들의 글들이었다. 그리고 막스 플랑크(Max Planck)와 알베르트 아인쉬타인(Albert Einstein)은 그의 젊은 시절의 우상이었다. 그러다가 18살에 징병된다. 히틀러 군대에서 18세기 제 2차 세계대전을 치러야 했다. 이때 그는 파우스트와 짜라투스트라를 가지고 갔다. 6개월 복무한 뒤에 벨기에의 한 숲에서 영국군에게 항복된다. 그는 포로 잡혀 3년 동안(1945-1948) 벨기에와 영국에서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다. 벨기에의 수용소에서 동료 포로들이 쉽게 병들고 죽어갔다. 그들은 희망을 포기했기에 쉽게 병들고 죽어갔다.
하지만 몰트만은 같은 운명을 종교적 회심으로 극복한다. 미국 군목이 준 신약과 시편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할 일이 없어서 그렇게 했다. 그러다가 차츰 거기 빠져든다. 거기에서 그의 상상력과 감정적이 욕구를 채우는 말씀들이 있었다. 그 말씀들을 통해 그는 마음이 상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철조망 안에도, 절망만이 지배하는 그 어둠의 골짜기에도 그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하나님은 붙잡을 수 없었다.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 “남은 것은 희망의 자극을 주는 간절한 염원뿐이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언제나 저 앞에 있었다. 무슨 수를 내서라도 그리로 달려야 했다. 현재는 지루함과 괴로움뿐이었다. 수용소는 그에게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주었다. 포로들에게는 오직 고통뿐이었지만 그에게는 거기 덧붙여 희망도 있었다. 고통은 희망을 일으켰다.
그리고 희망은 고통을 보게 했다. 둘은 서로를 강화시켜 주었다.24) 그는 전쟁의 참혹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어디 있는냐”라는 신정론의 문제에 고심하며 인간 실존의 한계상황을 경험하였다.
한편, 그는 포로생활을 통해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 생존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신정론(神正論)의 문제와 희망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몰트만은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다.25) “아우쉬비츠와 히로시마는 나를 깊이 동요시켰다.” 몰트만은 이 동요 속에서 하나님의 경험을 하게 되었고 이 경험이 그로 하여금 물리학과 수학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고 실존을 지탱해주는 지식의 추구, 바로 신학수업을 결단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몰트만의 신학적 실존이 생겨난 것이다.
몰트만은 1999년 저서『신학의 방법과 형식. 나의 신학여정』에서 다음같이 이때의 상황을 보다 상세히 피력하고 있다. “나는 삶의 확실성을 찾았다. 그것은 내가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실존을 이끌고 갈 지식을 질문하였으며, 자연을 인식하고 자연을 지배하는 지식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 그 당시 그리스도는 그의 열정 속에서 고통 가운데 있는 나의 형제가 되었으며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을 통해서 나에게도 생동적 소망을 일깨워주었다.”26) 소망 신학의 착상은 바로 포로생활에서의 고난의 실존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포로의 실존적 경험, 즉 고난과 희망은 나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27)
몰트만은 1948년 괴팅겐(gottingen)에서 신학수업을 시작하였다. 그는 여기서 에른스트 볼프(ernst wolf)와 오토 베버(otto weber)의 지도하에서 학문적 연구를 하였다. 특히 바르트의 온건한 해석자인 개혁신하자 오토 베버는 박사학위 논문의 지도교수였고 친구로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문하(門下)에서 목사직을 위한 신학공부를 하면서 몰트만은 그의 아내 벤델(elizabeth wendel)을 만나 결혼하였고 같이 박사학위 논문을 마쳤다. 그의 문하에서 몰트만은 개혁주의 전통에 대한 사고를 배웠고 그것은 그의 초기의 두 논문, 박사학위 논문과 교수자격 논문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얼마 동안 교회를 물색하다가 1953년 몰트만은 브레멘-바서호르스트(bremen-wasserhorst) 개혁교회를 맡아서 5년간 목회를 하였다. 몰트만은 바르멘 신학선언을 통해서 옳고 그름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던 고백 교회의 입장을 지지하고 따랐다. 1959년 몰트만은 그의 스승, 오토 베버의 간청으로 히틀러 정권에 대항하던 고백교회에 의해 설립된 부퍼탈(wup-pertal) 신학대에 교수로 취임한다. 그는 취임 후 첫 신학저서인『그리스도의 통치 지평 안에 있는 공동체』를 출판하였다.
몰트만은 1960년에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를 발간하게 되어 스위스에서의 휴가기간 동안 읽고 산의 경관을 감상할 틈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책에 깊이 매료된다. 그리고 몰트만은 다음의 인상을 갖기에 이른다.“왜 기독교 신학은 그 자신의 가장 본래적 주제인 이 희망을 내팽개쳤는가?” “원시 기독교의 소망의 영은 오늘의 기독교 어디에 남아 있는가?”28) 이것이 몰트만의 1964년 저서『소망의 신학』저술의 결정적인 동기부여였다. 당시 신약학의 논쟁, 역사와 종말에 관한 논쟁에서 불트만은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고, 신앙 안에서 역사의 종말이 실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서 케제만은 “역사의 종말이 아직 현재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불트만을 반박하였다. 몰트만은 그의 저서에서 불트만의 현재적 종말론의 관점과 케제만의 묵시문학적 관점을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이것이 바로 그의 종말론적 소망개념이다.
몰트만은 반 룰러의 사도직, 하나님의 나라 개념을 블로흐가 제시한 유물론적으로 정위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실현과 결합하면서 종말론적 소망의 개념을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몰트만은 신학자로서 무신론자요 신마르크스주의자인 블로흐와 사상적 차이를 분명히 하였다. 몰트만이 기획한 소망의 신학은 당시 바젤의 바르트가 의심한 것처럼 희망의 원리에 기독교적 세례를 베풀고 자 한 것이 아니었다. 블로흐가 포이에르바하와 마르크스의 무신론의 근거위에서 희망의 원리를 전개한 것에 반대하면서, 몰트만은 기독교 신학의 근거 위에서 희망의 개념을 전개하고 하였다. 책을 써 내려가면서 몰트만에게는 “희망이 점점 강하게 신학의 주제가 되었다.”
2. 신학적 배경
어느 신학자도 진공 상태에서 사유하지 않고 어떤 독특한 사상도 돌발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듯, 몰트만의 신학 역시 그의 역사 경험과 깊은 관련이 있다. 특별히 그는 전쟁 포로 기간 중29)에 신학을 하였기 때문에 그의 신학의 문제는 “인간과 세계의 고난”이었고 이 고난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느냐.”하는 신정론의 문제로 이 질문은 곧 하나님 없는 현실과 대결하는 구약의 예언자들의 질문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에게 신학적 영향을 끼친 사람은 세 사람의 괴팅엔 대학 교수들이었다.이들은 탁월한 신학자요 독일 고백교회 운동의 지도자들이었다.
1) 오토 베버의 개혁주의 전통
베버로부터는 칼빈주의의 개혁교회 전통을 영향 받는다. 칼빈주의는 어떠한 폐쇄적인, 최종적인 이데올로기도 반대하면서 교회 뿐만 아니라 피조물의 세계 전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언제나 새롭게 변화되어 보다 낳은 세계로 개혁되기를 촉구한다.30) 또 칼빈에게서 윤리는 개인의 도덕적인 윤리에 기초하여 인간과 세계의 모든 현실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이루고자 하는 “사회의 윤리”이다.
이러한 칼빈주의적 전통 외에도 베버의 종말론이 몰트만을 크게 자극시켰는데 그에 의하면 종말론이란 세계사의 마지막에 올 초자연적, 신비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적인 것으로 에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시작되었으며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지금도 실현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말론적 사고에 자극받은 몰트만은 “현재적, 현실적 의미를 갖지 않는 종말론은 무가치하다.”고 말한다.
2) 한스 에반트의 헤겔 철학
에반트로부터는 헤겔의 철학적 신학, 특별히 “하나님 죽음”31)의 개념을 배운다. 일찌기 헤겔은 그의 ■■신앙과 지식(Glauben und Wissen)■■에서 “하나님은 죽으셨다.” 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가 무신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사회의 무신성(無神性)과 그 무신성으로 인한 인간과 세계의 고통을 말하려는 것이었다. 즉, 근대 사회의 모습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외치던 “하나님 부재”의 절규와 같은 것으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그것을 그는 하나님의 죽음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몰트만은 현대사회에서의 “하나님 부재”의 문제를 극복함으로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헤겔의 이러한 철학적 신학 방법론, 곧 변증법을 통한 삼위일체론은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나아가 헤겔의 사회 철학적 관심이 몰트만의 신학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지금 처하여 있는 변혁함으로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계를 이루시기를 노력하는 한편 인간을 그의 사회적 현실로부터 분리된 추상적 존재 내지 고립된 실존으로 이해하는 신존주의 철학과 신학, 특히 불트만의 실존론적 성서 이해, 인간 이해를 거부한다.32)
3) 에른스트 블로흐의 사회 윤리학
몰트만은 E.볼프로부터는 기독교의 종말론을 사회 윤리학적 차원에서 해석하려는 신학적 입장을 영향받는다.
블로흐의 문제는 하나님의 계명과 사회의 구체적 현실의 문제, 그리고 여기서 교회와 신학이 가진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여기서 우리 교회와 신학의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낯선 땅으로의 여행■■이라는 논문의 제목에서 잘 나타나는데 이 세계 속의 기독교는 대중과 그 사회의 종교적 욕구를 채원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회와 대중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시킴으로 하나님의 요구에 충족시켜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리하여 교회의 선교는 그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계되어 그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이 성취되도록 노력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참여의 신학적 입장은 몰트만으로 하여금 실천신학, 사회과학과 대화하면서 기독교 신앙이 가진 사회적 차원의 문제를 논구(論究)하도록 하였다.33)
3. 대표저서
주요 저서로는 삼부작으로 꼽히는 「희망의 신학」(1964),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 및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1975)가 있다. 이중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영향력 있는 것이 「희망의 신학」이다. 이 책을 통해 몰트만의 이름과 신학이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희망의 신학」은 종말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였다. 희망이 모든 것을 추진하는 동력과 기초가 되었다. 그는 신앙을 기본적으로 희망으로 보았다. 그 희망은 노예생활에서 출애굽 시키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또한 못 박힌 예수가 부활하심으로 인간과 이세상의 새로운 미래가 약속된다. 희망은 미래를 원하는 것으로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종말론을 신학의 중심주제로 간주하고 신학전체를 종말론적 관점에서 연구했다. 특별히 종말론은 모든 신앙의 기초가 되는 기대를 보여준다. 신자의 미래는 단지 막연히 기다리는 “미래 그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 실재의 미래, 즉 미래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능력”을 선언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기독교 신학의 기준으로 간주하려는 시도였다. 몰트만은 이 기준에 의해 희망, 십자가, 하나님의 나라 등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십자가는 변증법적인 사랑과 고통과 고독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이 고통속에서 이 세상과 함께 하신다. 기독교는 종적인면과 횡적인 면이 있다. 십자가가 바로 그것이다. 이웃과 인류와 예수의 신성에 대한 사랑이다. 이 모든 면들이 십자가에서 효과적으로 선포된다. 하나님과 예수를 향한 사랑이 종적인 것이라면, 이웃과 인류를 향한 사랑이 횡적으로 표현된다. 십자가는 단지 죽음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고통 받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의 고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계신다. “하나님과 고통은 더 이상 모순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은 고통 속에 존재하시며 고통은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이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공감과 고통을 통해 역시 고통과 사랑을 향해 자신을 열수”있게 된다.34)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는 새로운 교회관, 즉 메시아적 교회론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교회의 역할을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사명과 성령의 창조적 사명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외에도 「삼위 일체와 하나님 나라」(1980),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1985),「예수 그리스도의 길」(1989),「생명의 영」(1991) 등이 있다.
Ⅲ. 몰트만의 신학 사상
1. 몰트만의 “종말론적 신학”
1) 전통적 종말론
전통적을 종말론이란 종말에 관한 이론, 즉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 곧 예수의 재림, 죽은 자의 부활, 최후의 심판등에 대한 교리를 말하였다.
이러한 기독교의 종말론은 구약이나 그 외의 묵시문학으로부터 由來한다. 그들에 의하면 마지막이 오면 불의한 자들, 하나님 없이 산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공의로우심을 증명하시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말 사상은 세게의 창조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과정을 하나의 통일된 전체로 조망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역사철학의 열쇠이기도 하다.35)
그런데 이러한 유대교적, 묵시문학적 종말론은 신약성서에 와서 수정되는데 예수께서는 묵시문학자들이 역사의 끝, 미래에 올 것이라고 기다렸던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막 1:15, 눅 11:20) 예수는 그 자신 하나님 나라의 배태자(胚胎子)로서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역사 안에서 실현되었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것은 곧 현재적 종말론이 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던 분”이 “선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말론은 다시 한 번 수정되는데 그것은 초대 교회의 임박한 재림의 기대가 지연되면서였다. 그리하여 종말론은 우리가 보는 대로 역사의, 신학의 마지막 章으로 밀려나 또다시 묵시문학적 관점으로 세계와 역사의 종말에 일어날 초자연적 초역사적 사건만을 말하는 것으로 신학의 마지막 項目, 또는 부록으로 되어 버렸다.
2) 종말론의 재발견
이에 대하여 몰트만은 종말론을 그의 신학의 중심 테마로 하는, 철저한 종말론자가 된다. 그것은 이미 예수와 함께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을 그 내용으로 한다.
종말론이 기독교 신학의 중심원리인 것은 성서의 진리이다. 즉, 종말론은 새로운 것의 약속으로서“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세계는 미래로부터 어두운 현재 속으로 도래하며 미래에 대한 참다운 희망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로 하여금 그의 현재의 상태 속에 폐쇄되지 않고 하나님의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고 도약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삶과 부활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계의 시작, 즉 하나님의 미래가 “앞당겨져 있음(선취, Antizipation)”을 의미한다. 그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미 현재화되었는데 기독교의 종말론은 “예수의 부활의 현실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미래를 선포한다.” 그리하여 그의 역사는 이 역사의 미래요, 이 따에서의 장래를 말하는 것으로 이 역사는 끊임 없이 하나님의 사명과 도전을 받고있는 것이며 우리는 이 사명에 응답함으로서 역사는 참 역사가 되며 인간은 참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희망의 신학
1) 신앙과 희망
몰트만에게서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소망하는 것이다.36)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었고 약속된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을 그 내용으로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그리스도의 역사와 부활에 근거하기 때문에 그 소망은 logos가 아니라 약속의 형식이며 그리스도는 “그가 누구냐, 그가 무엇을 말했느냐”만이 아니라 “그가 장차 무엇이 될 것이냐, 그에게서 무엇이 기대되느냐.”를 포함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으로서(골 1:27) 소망은 신앙을 유지시키고 미래를 향하여 끌고 나가는 힘이 되며 사랑의 삶 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동인으로서 신앙의 인식과 나아가 역사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된다. 즉, 그리스도인은 그가 신앙하는 것을 인식하기 위하여 소망한다.
2) 미래를 변화시키는 희망
전통적으로 신학과 철학은 이 세계와 역사가 무엇인가를 해석하기만 하였으나 몰트만은 철학과 신학의 참된 임무는 이 역사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37)
그에게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역사의 의미가 성취되는 도상에 있으며 성령의 역사 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의 미래의 시작이요, 도래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신학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가 그의 현 상태에서 정지하거나 절대화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세의 천계(天界)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었고 또 약속된 하나님의 미래를 소망한다. 이것을 소망하지 않는 신앙은 미신이거나 죽은 신앙이다. 왜냐하면 예수와 함게 시작한 종말론은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연관성도 없는 신화가 아니라 주어진 상태에서의 안일과 만족, 자기 절대화의 본성으로부터 벗어나 역사를 변화시키는 추진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몰트만의 신학은 “정치 신학”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정치적 운동이 아니라 현재의 불합리한 상태에서의 해방을 부르짓기 때문이며 그 이후의 해방 신학, 흑인 신학, 여성 신학 등 제 3 세계에서의 사회 변혁 신학 운동에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3. 교회의 사명
몰트만은 하나님의 약속은 또 다른 세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새로운 창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기독교의 종말론은 세계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그 약속의 성취는 역사의 모든 가능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행위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주요한 과제는 개인을 회심시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사회 구조의 개혁이다. 사회 구조의 변혁이 교회의 새로운 사명이다.38) 신학 역시 세계가 무엇인가를 단지 해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신학의 과제는 인간답게 살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몰트만의 정치 신학은 이러한 교회관과 신학관으로부터 유래되었다. 그것은 기독교인의 희망의 실현에 목표를 두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희망의 성취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힘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인간은 미래의 도래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희망의 성취는 많은 부분이 인간의 노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희망의 신학은 이론 신학이 아니라 행동 신학이다. 그것은 왜 하나님이 세상의 악에 대하여 어떤 일을 하시지 않는가를 묻는 대신, 악을 변화시키려고 행동한다. 교회는 현 역사 안에서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어떤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여 현 사회를 개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Ⅳ. 몰트만의 신학 논쟁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은 프로테스탄트 신학뿐 아니라 로마 가톨릭 신학, 제3세계 신학계를 포함하여 전세계교회와 신학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한편, 또한 많은 비판과 논쟁을 일으켰다.
첫째, 몰트만의 신학의 일방성이 문제가 되었다. 비판자들은 초기 저서들은 다른 주제를 희생시켰다고 할 만큼 특정 주제를 일방적으로 강조해다고 평가했다. 특히「희망의 신학」에서 미래에 대한 강조가 그렇다. 몰트만은 과거와 현재를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만큼 미래를 강조했다. 따라서 「희망의 신학」이 하나님을 미래의 존재로 정의함으로써 하나님의 모든 현재적 경험을 부정한 것으로 비판되었다. 한편 변호자들은 이러한 일방성을 몰트만의 신학 방법의 결과로 이해했다. 따라서 초기 삼부작, 즉 「희망의 신학」(1964),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 및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1975)를 분리해서 보지 않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이들의 일방성이 균형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39) 둘째, 「희망의 신학」이 함축하고 있는 정치적인 의미가 비판과 논쟁 대상이 되었다. 몰트만은 신학은 세계를 해석만 할 것이 아니라 변화시켜야 하며,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여 사회구조를 변혁시키는 것이 교회의 새로운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치 신학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 신학 태동에 결정적 자극이 되었으며 그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신학자들은 몰트만의 입장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몰트만이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초월성을 주장한 것은 구체적인 정치적 운동과 목적으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전통적인 서구신학자들의 사고의 틀을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편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몰트만이 기독교의 종말론을 인간의 정치적 영역에로 축소했다고 비판했다.40) 셋째, 몰트만의 미래적 종말론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함과 동시에 그를 현대의 종말론 논쟁의 중심에 서게 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기점으로 전개된 종말론은 하나님 나라가 현재적이냐 아니면 미래적이냐 하는 것이 논쟁의 초점이었다. 리츨고 하르낙 등의 자유주의 신학, 다드의 실현된 종말론, 불트만의 실존적 종말론은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이에 반해, 몰트만의 종말론은 희망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전제로 하고 있어 미래적 종말론이 란 평을 듣는다.41) 그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적이다. 한편 그가 역사 내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강조한 점에서 그의 종말론을 역사 내재적 또는 정치, 사회적 종말론으로 분류한다. 넷째, 「희망의 신학」에서 제시된 몰트만의 계시관은 현대 계시론 논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몰트만은 미래 지향적 관점에서 계시를 약속으로 이해했다. 이것은 계시를 역사로 정의하는 판넨버그나 케리그마적인 말씀으로 정의하는 불트만과 입장을 달리한다. 몰트만은 계시가 역사냐, 아니면 말씀이냐 하는 현대의 계시 논쟁의 해결책으로 양자 택일이 아닌, 중도적인 “말씀-역사(word-history)”로서의 계시 개념을 발전시켰다.42) 한편 몰트만의 미래 지향적 계시관은 정통주의의 계시관과 충돌을 일으켰다. 정통주의자들은 몰트만의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에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이 결코 아니며, 단지 미래에만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이라고 비판했다.43)
다섯째, 몰트만이 개인 영혼의 구원보다 사회 개혁에 우위를 둔 것이 비판을 받았다. 몰트만은 인간의 현실을 외면하고 개인의 영혼 구원만을 강조해 온 전통적인 신학을 비판하는 한편,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 그리고 개인을 회심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사회 개혁을 교회의 주요한 과제로 간주했다. 따라서 몰트만의 신학에서는 개인의 영혼 문제가 약화되었다.44)
Ⅴ. 결론
1. 일반 신학계
희망의 신학은 미래 지향적 관점에서 성서와 신학의 주제들을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그것은 1960년대 후반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이 제기한 하나님의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일어났다. 그것은 희망의 신학, 정치 신학, 흑인신학, 여성 신학, 제3세계 신학등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죽음 신학에 대한 논박, 신정통주의, 특히 불트만의 급진적 실존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 종말론에 대한 강조 때문에, 정통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들로부터도 많은 호응과 환영을 받았다.
「희망의 신학」에서 몰트만이 이룩한 가장 큰 신학적 업적은, 종말론을 교의학의 일부가 아닌 신학의 전체로 간주한 것과 종말을 역사화하고 사회화한 것, 미래적 종말론 회복이다. 몰트만은 종말론의 개념을 현대 신학의 주요 주제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희망의 신학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지나친 일방성과 편향성이다.
첫째, 종말론은 기독교의 여러 교리 중 하나이지, 신학의 전체는 아니다. 그럼에도 몰트만은 모든 교리 체계를 종말론으로 전환하거나 종말론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신학을 왜곡시켰다.
둘째, 신약 성서의 종말론은 현재적인 것과 미래적인 것, 실존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 개인적인 것과 우주적인 것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종말론은 전적으로 미래에 속하는 것으로 혹은 이미 완성된 것으로도 간주 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적 종말론과 미래적 종말로 S사이의 긴장이 있어야 한다. 미래적인 종말론이 동시에 현재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현재적 종말론이 동시에 미래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45)그럼에도 몰틈나은 미래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셋째, 희망의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의 미래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과거와 현재적인 측면을 간과했다. 몰트만에 있어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에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미래에만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희망의 신학의 과거에 주어진 역사적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는 듯 한 인상을 준다.46)
2. 전도신학적 입장
몰트만의 신학의 관심은 이 시대의 관심으로서 교회 울타리를 넘어 이 세계의 아픔과 현실이다. 그것은 이 세계에 대한 해석 뿐 아니라 보다 더 인간적인 세계의 형성을 위하여 현존하는 세계의 변화를 추구한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성경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즉, 현존하는 세계의 온갖 부조화의 모습들이 해소되어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로 역사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은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 하는 동안 우리를 위로 하며 사랑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제공해 준다”47)라는 말처럼 이 세상의 희망은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몰트만에게서 개인 영혼의 문제, 실존에 대한 고려는 약화되어 있다. 이 세계의 변화는 각 개인의 본질적인 변화 없이는 가능할 수 없고 개인의 변화 없이 이루어지는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 아닌가, 칼빈의 5대 강요에 의하면, 인간은 전적타락하였고,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도, 구원을 얻을 길로 갈 수가 없다. 따라서 창3장으로 비롯된 인간의 영적인 문제는, 곧 불신자6가지 상태의 문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이 안 된다. 하나님 떠난 인간이 하나님 만나지 않고(요14:6),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가운데 있는 인간이 죄에서 해방 받지 않고서는(롬8:2), 그리고 종노릇 하게 하며 지옥으로 끌고 가는 사단의 권세를 꺽지 않고서는(요일3:8) 인간은 어떤 노력을 하여도 제자리 걸음을 하며, 더욱 실존론적인 자기 한계에 부딪히게 되며 고통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 세계가 발전되어 최상의 세계 질서가 형성된다 하여도 이 세계가 곧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없을뿐더러 개인에게 참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영적으로는 지옥 권세의 소속인 것이다. 우리 전도자는 참된 복음의 메시지를 가지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더라도 사단은 주님 재림하실때까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으니(벧전3:8), 신앙의 5가지 확신(구원의 확신, 사죄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인도의 확신, 승리의 확신)을 심어주며 신앙의 10가지 발판으로 개인 구원 부분에 관해서는 확실한 하나님의 백성(벧전2;9)으로 무장시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사회 개혁운동을 한다는 것은 진정한 복음운동이 아니다. 물론 어떠한 내용으로 어떠한 방법을 가지고 사회를 개혁하느냐가 쟁점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기로는 몰트만이 말한 교회의 사명으로 사회 개혁은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역시 한낱의 개혁운동으로 역사속에 혁명이 아니면 쿠테타로 남을 것이다. 진정한 교회를 통한 사회 개혁은 행1장의 부활메세지로 행2장의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할 때 사회와, 세계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꿈틀거림이 시작될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 다락방전도운동은 20가지 성경적 전도방법을 가지고 한 시대를 완전히 정복해 가는 것이다. 한 시대를 살리며 회복시키며 진정한 사회를 개혁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 속에서 최종적인 결론으로 21c는 공동체 시대이다. 우리 다락방전도운동이 아무리 성경적 전도방법을 가지고 날고 뛰어도 공동체라는 엄청난 힘이 결집되지 않으면 시대의 흑암문화, 적그리스도, 종교 다원주의, New Age, 각종 이단 단체를 이길 수가 없다. 지금은 이들이 흩어진 가운데 공동체를 이루었지만 정말 세상 끝에는 이모든 종교, 단체, 사상들이 하나로 뭉쳐 질 것이다. 이러한 때 우리 다락방전도운동에서는 Remnant공동체 훈련장을 통하여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자 한다. 문화를 개혁하고, 진정으로 사회, 기관, 조직, 전 세계를 살려내는 영적인 엘리트를 지금부터 양성하는 것이다. 렘넌트공동체훈련장을 통한 시대 시대를 살린 렘넌트 7인물을 세우는 것이다. 이 길만이 진정으로 이 시대를 개혁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며 회복시킬 길이다.
***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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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Douglas Meeks, origins of the theoiogy of hope(philade1phia:fortress press, 1974), pp.5-6. (이하 o.t.h)
3) fbid., pp.6-7.
4) J. 몰트만, 희망의 신학, 전경련, 박봉랑 역(서울:대한기독교 출판사, 1988), pp.9-10.(이하 희망의 신학)
5) 성서 대백과 사전, “종말론”(서울:성서교재간행사, 1981),p.764.
6) 희망의 신학, p.44.
7) fbid., p.47.
8) k. barth. the epistle to the romans, trns., e.c.hoskyns(losdon:oxford uni, press, 1933), p.500. p.314.
9) G.그레샤케, 종말신앙, 심상태 역(서울:성바오로출판사,1985), p.143
10) 희망의 신학, p.47.
11) 일반적으로 1919년 “로마서 강해”가 나온 뒤부터 1931년 안셀틈 연구 이전까지를 일컫는다.
12) A.A.후크마, 개혁주의 종말론, 유호준 역(서울:기독교 문서 선교회, 1986), p.415.
13) g.c.berkouwer, retun of christ, trns., james van oosterom(grand rapids:eerdmans, 1972) pp.27-28.
14) 그레샤케, op. oit., p.147. a.a.후크마, op cit., p.416.
15) c.d 2/1 p.635
16) g. 그레샤케, op. cit., p.148.
17) ibid., pp.148-150.
18) a.a 후크마, op. cit., p.421.
19) g. 그레샤케, op. cit., p.151.
20) 희망의 신학, p.48.
21) 박봉랑, ‘J.몰트만의 신학’, 신학연구 14집, 한신대, 1973. p.100.
22) 희망의 신학, pp.48-49.
23) ibid., p.14.
24) 김기홍 저, 「이야기 현대신학」, 베다니출판사, p.228.
25) 김균진, “몰트만”「현대신학사상」, 맹용길 편역(서울:성광 문화사,1980).p.273
26) 김규진 역, 『신학의 방법과 형식. 나의 신학 여정』, 대한기독교회, 2001, 22.
27) J.Moltmann, "wie ich mich geandert habe,"27.
28) op. cit., 29 그리고 in der geschichte des dreieinigen gottes, 334.
29).몰트만은 2차 대전 중 영국의 포로가 되어 포로 생활을 하는 중에 신학을 시작하였고 1948 년, 서독에 돌아와, 괴팅엔에 돌아와 신학을 계속한다. 그의 포로 기간 중에 겪었던 인간의 고난은 그의 신학의 장이요, 주제가 된다.
30). 개혁 교회의 대표적 신앙고백인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은 “교회의 항구적 개혁(Ecclesia Rformanda Semper)”를 말하고 있다.
31).근대 사회는 하나님을 이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세계로부터 추방하였거나(칸트) 하나님을 의식이나, 감정 등 인간의 주관적인 내면성의 세계로 제한시켜 버렸다.(슐라이에르마허) 이 러한 환원주의, 축소주의(Deductionism)은 “하나님의 죽음”의 개념으로 이어졌고 근대정신의 기초가 된다.
32).김 균진, ■■헤겔 철학과 현대 신학■■, (서울 :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2) p.219
몰트만은 또한 유신론적 신 존재 증명을 거부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하면서 기 독교의 신론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삼위일 체성이 강조된다. 이와 같은 입장은 에반트로부터 온 것이며 그것은 다시 바르트에게로 소급 된다.
33).이와 같이 기독교 윤리학을 기독교 신학의 체계에 포함 시키는 것 역시 바르트의 영향이다. 바르트에게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 에 관한 지식(신학)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윤리)를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것이다.
34) 김기홍 저, 「이야기 현대신학」, 베다니출판사, p.231.
35).이러한 종말론은 이론적인 관심 보다는 유대인들의 역사 경험과 하나님의 궁극적이고도 완 전한 의로우심에 관한 안타까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제시된 것이다.
36).몰트만에게서 소망은 신앙과 분리될 수 없는 동반자이다. 일찌기 안젤무스의 “신앙은 이해를 추구한다. 나는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Fides Quaerens intellectum, Credo ut intelliga)"는 명제를 몰트만은 그의 종말론적 소망의 사고를 따라 “소망은 이해를 추구한다. 나는 이해하기 위하여 소망한다.(Spes quaerens intellectum, Spero ut intelligam)”라고 바꾼다.
37).몰트만에게서 역사는 “새로운 것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역동적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희랍적, 데카르트적 이해, 구속사와 보편사를 구별하는 이원 론적 입장을 철페하고 하나의 일원적 체계로 이해한다.
38) Scaer, "Theology of Hope"d, p.204.
39) Richard Bauckham, "Jurgen Moltmann",(Oxford:Basil Blackwell,1989), p.307
40) Ibid., p.308.
41) 유호준 역, 「개혁주의 종말론」(서울:기독교 문서 선교회,1986),p.427.
42) Meeks, Origins of the Theology of Hope,pp.64-80.
43) David L.Smith, A Handbook of Contemporary Theoloy(Weton Bridge Point Book, 1992),p.144
44) 김균진, “몰트만”,p.144.
45) 「교의학」, 이신건 역(서울:한국 신학 연구소 1989), p.425.
46) "Theology of Hope", Tensions in Contemporary Theology, p.199.
47).노영상,■■영성과 윤리■■,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출판국,1991),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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