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요약
칸트의 대표적인 저서로 1781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순수이성비판』은 ‘이성'에 의한 ‘이성' 자신의 비판을 의미한다. 정당한 요구는 보호해 주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즉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월권에 대해서는 그 요구를 거절하는 ‘법정'에서 ‘이성'은 자신의 권한과 한계에 관해 스스로 묻는다. 이러한 ‘이성능력' 자체에 대한 비판은 잃어버린 형이상학의 위엄을 되찾고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일이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어떻게 선험적 종합판단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그의 관심이 ‘학(學)’으로서의 형이상학의 가능성에 있기 때문이다. 즉 형이상학에서의 선험적 종합판단의 가능성을 탐구함으로써 증명된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형이상학이 존재한다면 그 인식의 타당성은 어디까지 미치는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의 중심 과제이고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칸트는 수학과 자연과학의 방법을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식능력의 한계를 넘어서서 대상인식을 시도한 모든 이전의 이성의 월권에서 벗어나서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밝히는 일은 이제 ‘선험적 종합판단'으로 이루어진 형이상학적 진술의 가능성을 탐구하여 선험적 인식의 원천과 범위, 그리고 그 한계를 규정하는 일로 요약된다. 우리에게 가능한 경험의 대상은 시간, 공간 중에 주어지는 ‘현상'이지 결코 인식 주관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물 자체'일 수 없다는『순수이성비판』의 핵심 생각을 통해 칸트는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
원전 해설
1) 『순수이성비판』과 형이상학
1781년 출판된 칸트의 주저(主著) 『순수이성비판』(재판 1787년)을 하나의 일관된 의도 속에 쓰여진 체계적 작품이라고 본다면 그것의 중심주제는 과연 무엇일까?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의 관심은 한 마디로 말해 ‘형이상학(Metaphysik)’이다.
『순수이성비판』의 이해를 위해 쓰여진 입문서 『프로레고메나 Prolegomena』(1783년)에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이러한 과제를 ‘수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형이상학’에서의 선험적인 인식의 가능성을 밝히는 일로 요약한다. 이상의 학문들의 내용은, 다시 말해 이 학문영역에서의 대상에 관한 인식은 우리가 ‘선험적 종합판단(synthetische Urteile a priori)’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그 내용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험적 종합판단’은 무엇인가? ‘선험적 종합판단(synthetische Urteile a priori)’이란 칸트에 따르면 자신의 술어가 모순율에 따라 그 판단의 주어와 결합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어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술어 개념의 첨가를 통해 대상에 관한 지식이 늘어나게 하는 판단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선험적으로(a priori) 근거 지워질 수 있는 판단을 말한다.
칸트는 이러한 ‘선험적 종합판단’의 예를 ‘순수 수학(reine Mathematik)’과 ‘순수 자연과학(reine Naturwissenschaft)’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 수학이나 자연과학은 자신들의 ‘학(學)’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서나 자신들이 인식의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는 ‘선험적 종합판단’에 관해 더 이상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 학문은 자신들이 소유한 선험적 종합판단의 참됨을 자신들의 학문의 성격상 이미 ‘구성(Konstruktion)’이나 ‘관찰’ 혹은 ‘실험’을 통해 명백히 밝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어떻게 선험적 종합판단은 가능한가?(Wie sind synthetische Urteile a priori möglich?)’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그의 관심이 ‘학(學)’으로서의 형이상학의 가능성에 있기 때문이다. 즉 형이상학에서의 선험적 종합판단의 가능성을 탐구함으로써 증명된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형이상학이 존재한다면 그 인식의 타당성은 어디까지 미치는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의 중심 과제이고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칸트는 수학과 자연과학의 방법을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2) 『순수이성비판』과 인식론
예컨대 ‘자연에서의 모든 사건들은 하나의 원인을 가지고 있다’라는 ‘인과율의 원리(Prinzip der Kausalität)’와 ‘사물의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체는 변하지 않고 남아있다’는 ‘실체 고정성의 원칙(Prinzip der Beharrlichkeit der Substanz)’은 모두 형이상학의 인식의 대상이다. 그리고 칸트에 따르면 이러한 인식은 결코 ‘독단적으로(dogmatisch)’나 단지 ‘개념에서부터(aus Begriffen)’ 증명되어 질 수 도 없고 그렇다고 경험적 지식에 의해, 즉 ‘습관’에 근거한 ‘연상법칙’에 의해서도 결코 그 선험적 타당성이 알려질 수 없는 ‘선험적 종합판단’이다. 이러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검사하는 것은, 즉 이러한 인식의 범위와 한계를 조사하는 것은 결국 선험적 인식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들, 즉 인간의 인식능력 속에서 근거 지워지는 조건들을 조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순수이성비판』은 우리 인식능력들에 관한 연구이기도 하다.
『순수이성비판』의 과제가 우리 인식능력들에 관한 연구이어야 함은 칸트가 자신의 새로운 철학적 태도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 비유한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칸트는 ‘형이상학’이 ‘헤메임(Herumtappen)’의 단계를 벗어나서 ‘학의 안전한 길(sicherer Gang einer Wissenschaft)’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이미 이러한 단계에 이른 ‘수학’과 ‘물리학’의 성공을 본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형이상학이 이들 학문에서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학문적 방법론이 아니라 이들이 학의 안전한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던 ‘사유방식의 혁명(Revolution der Denkart)’이다. 즉 ‘인간의 이성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만을 선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라는 깨달음이다.
다시 말해 수학에서 개념에 따라 선험적으로 그에 해당하는 직관을 산출하는 ‘구성(Konstruktion)’의 행위나 물리학이 미리 계획된 고안에 따라서 관찰과 실험을 하는 것은 모두 “이성이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 산출한 것만을 이성은 통찰한다는 것”과 “항구적 법칙에 따라 판단하는 원리들을 먼저 가지고써 이성 자신의 물음에 자연이 대답하도록 하고, 마치 걸음을 처음 배울 적의 아기가 줄에 끌려 걷듯이 이성은 자연의 인도만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 깨달음의 결과이다.
칸트가 이제 ‘모방(nachahmen)’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유방식의 전환의 본질(das wesentliche Stück der Umänderung der Denkart)’이다. 그것은 바로 인식주체의 자발적인 행위에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때문에 칸트는 이러한 사유의 전환을 코페르니쿠스가 자신에 의해 관찰되어지는 천체의 원인을 관찰자 자신에서 찾으려고 한 시도에 비유하고 있다.
철학에서의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적인 시도는 인식이 지금까지와 같이 대상에 의존해서 대상들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들이 우리 인식과 인식능력들에 준거해야 한다고 가정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정(假定)’이 “형이상학의 과제들(die Aufgaben der Metaphysik)”을 해결하는데 더 효용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에 칸트는 이제 『순수이성비판』에서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조건들을, 그리고 그 대상을 산출해내는 인식능력들을 검토하게 된다.
3) 초월적 감성학
대상들에 관한 선험적인 인식이 가능하기 위한 인간 인식능력의 조건들을 검사하는 작업으로서의 『순수이성비판』은 따라서 대상을 인식하는 우리 인식능력들에 대한 연구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우선 칸트는 ‘초월적 감성학(Transzendentale Ästhetik)’에서 우리의 수용적인 인식능력, 즉 대상들에 대한 직접적인 표상인 ‘직관(Anschauung)’이 주어지는 ‘감성(Sinnlichkeit)’과 그 두 형식인 시간과 공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칸트가 해명하려는 과제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현상(Erscheinung)’이라고 불리는 ‘감관의 대상에 관한 우리의 선험적 인식’이 어떻게 ‘우리 감성의 형식들’에 의해, 다시 말하자면 ‘우리 감관의 형식적인 소질들’에 근거해서 가능한가를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초월적 감성학’은 우리 감성의 선험적 형식들인 ‘시간’과 ‘공간’이 ‘직관의 주관적 형식’이라는 점을, 그리고 이 주관적 형식이 모든 감관의 대상에 관해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다는 것을, 따라서 모든 감관의 대상들은 바로 이 주관의 형식을 통해서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대상으로 규정되어 진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한 ‘공간과 시간에 관한 논증들’을 통해 얻게되는 ‘초월적 감성학’의 결론들은 이제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transzendentaler Idealismus)’의 핵심적인 생각을 이루게 된다.
즉, 우리 감관의 모든 대상들은, 그들이 선험적으로(a priori) 공간과 시간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한, 그것은 한갓 ‘현상(Erscheinung)’일 뿐이지 우리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은 아니다. ‘공간’과 ‘시간’이 더 이상 그 자체로 존재하거나 혹은 우리 밖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속성이 아니라 대상을 인식하는 우리 인식능력의 형식인 ‘주관적인 조건(subjektive Bedingungen)’에 해당한다면, ‘공간’과 ‘시간’ 중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유일한 대상으로서의 ‘현상’은 바로 이러한 우리 인식주관의 조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은 이제 데카르트가 찾아낸 인식주체(cogito )의 능력만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던 ‘우리 밖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을 찾게 된다. 즉, 칸트에게서는 단지 사물의 ‘제2성질(secondary qualities)’ 이라고 불리는 색과 맛과 같은 성질만이 우리 감관에 의존적인 현상이 아니다. 흔히 사물의 ‘제1성질(primary qualities)’이라고 불리는 ‘연장(延長)’과 ‘형태’마저도 그것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규정되는 한 우리 감관의 주관적 형식에 의해 조건 지워진 ‘현상’인 것이다.
이로써 1772년 헤르쯔(M. Herz)에게 보낸 편지에서 칸트 스스로 제기했던 ‘초월적 관념론’의 근본 물음, 즉 ‘어떻게 우리의 표상이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가’에 대한 첫 번째 해답을 얻게 된다(헤르쯔에게 보낸 편지; AA X 130 참조). 대상을 선험적으로 직관하는 것에 관한 이론인 ‘초월적 감성학’은 어떻게 우리의 표상이 선험적으로 ‘직관의 대상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초월적 감성학’에서 다루어진 우리의 인식능력이 ‘감성(Sinnlichkeit)’이었다면 칸트는 이제 ‘초월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에서 우리의 또 다른 인식능력인 ‘지성(Verstand)’에 관해 탐구한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초월적 원리론(transzendentale Elementarlehre)’을 이처럼 ‘초월적 감성학’과 ‘초월논리학’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인식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인식의 원천에서부터 생겨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성을 대상이 어떤 식으로든 촉발하는 한에서 표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감성(Sinnlichkeit)’이라면 ‘지성(Verstand)’은 표상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발적인 능력이다. 이 두 인식의 원천은 칸트에 따르면 그 기능이 고유하기에 엄격히 구별되어야 할 서로 다른 인식능력이다. 따라서 ‘감성’과 관련된 학문인 ‘감성학(Ästhetik)’이 지성의 규칙들 일반을 다루는 학문인 ‘논리학(Logik)’과 구별되듯이 ‘초월논리학’은 ‘초월적 감성학’과 구별되어진다.
4) 초월 논리학 : 초월적 분석론과 초월적 변증론
전통적으로 논리학이 넓은 의미에서의 ‘지성(Verstand)’으로 대표되는 ‘사유능력’을 탐구한다고 할 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유능력을 의미한다. 즉, ‘개념의 능력으로서의 지성(Verstand als Vermögen der Begriffe)’, ‘판단(Urteile)’에 관계하는 ‘판단력(Urteilskraft)’, 그리고 ‘추론의 능력으로서의 이성(Vernunft als Vermögen der Schlüsse)’이 그것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초월논리학’을 이러한 사유능력에 상응해서 ‘초월적 분석론(transzendentale Analytik)’과 ‘초월적 변증론(transzendentale Dialektik)’으로 나눈다.
‘초월논리학’의 첫 번째 부문에 해당하는 ‘초월적 분석론’은 ‘순수 개념(reine Begriffe)’의 원천으로서의 ‘지성능력’을 탐구하는 ‘개념의 분석론(Analytik der Begriffe)’과 ‘규칙아래에 포섭하는 능력’인 ‘판단력(Urteilskraft)’의 ‘이론(Doktrin)’에 해당하는 ‘원칙의 분석론(Analytik der Grundsätze)’으로 구성되어 있다.
칸트는 이러한 ‘지성의 순수한 인식요소들’과 ‘그로 이루어진 원칙들’을 다루는 ‘초월적 분석론’을 ‘진리의 논리학(Logik der Wahrheit)’이라 부른다. ‘초월적 분석론’이 칸트에게서 ‘진리의 논리학’인 이유는 어떻게 개개의 인식이 대상과 일치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진리의 명목적인 설명(die Namenerklärung der Wahrheit)’을 제공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의 표상들이 그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월적 분석론’은 무엇이 우리인식의 대상인지를, 이러한 대상일반에 관해 사유하는 우리 인식능력의 형식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지를 해명해준다. 이것이 칸트가 ‘초월적 분석론’을 전통적인 ‘존재론의 오만한 이름(der stolze Name einer Ontologie)’을 대신할 대안으로 제시한 소이(所以)이기도 하다(A247/B303, 한글판 235 참조).
반면에 ‘초월논리학’의 두 번째 부문은 우리 이성의 ‘잘못된 추론’에 관해 다룬다. 만약에 순수 이성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서 ‘형이상학적 심리학’의 인식대상, 혹은 ‘우주론’과 ‘신학’의 인식대상인 ‘무규정자(Unbedingte)’에 이르려고 할 때 순수 이성은 잘못된 추론에 빠지게 된다. 칸트는 이러한 초월논리학의 부문을 ‘초월적 변증론(transzendentale Dialektik)’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이 고대에 ‘변증론(Dialektik)’이 의미했던 ‘가상(Schein)’을 만들어내는 ‘기술(Kunst)’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초월적 변증론’은 순수이성의 잘못된 추론으로부터 생겨나는 ‘형이상학적 가상’들을 폭로하고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초월적 변증론’은 칸트에게서 ‘가상의 논리학(Logik des Scheins)’을 의미한다.
인간의 사유일반을 연구하는 학문, 구체적으로 말해 ‘개념(Begriffe)’과 ‘판단(Urteile)’ 그리고 ‘추론(Schlüsse)’에 관해 다루는 학문이 ‘논리학(Logik)’이라는 점에서 칸트는 ‘초월적 분석론’과 ‘초월적 변증론’으로 이루어진 넓은 의미의 사유능력으로서의 ‘지성(Verstand)’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초월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이라고 부른다.
‘개념’을 통해 무엇이 파악되든지, 혹은 ‘판단’과 ‘추론’을 통해 무엇이 인식되든지 그 내용은 전혀 도외시하는 ‘일반논리학(allgemeinen Logik)’과는 달리 ‘초월논리학’은 우리의 사유형식이 그 대상과 맺는 관계에 관한 이론인 ‘초월적 인식(transzendentale Erkenntnis)’에 관한 것이다. 칸트에게서 ‘초월적 인식’이라는 말은 선험적인 ‘기원(Ursprung)’을 갖는 표상이 어떻게 성립하며 이 선험적으로 성립된 표상이 경험에서 생겨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경험적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가를 인식하는 일이다(A56/B80, 한글판 99 이하 참조).
따라서 ‘초월논리학’은 결국 그 자신 선험적인 기원을 가지면서도 경험의 대상과 선험적으로 관계 맺는 ‘순수 지성개념들’에 관한 체계적 이론이다. 그리고 지성(Verstand)’을 통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초월논리학’의 이러한 ‘학의 이념’은 결국 대상과 선험적으로(a priori) 관계 맺는 ‘순수 지성개념’이 실재로 존재함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따라서 ‘초월논리학’은 ‘순수 지성개념들(reine Verstandesbegriffe)’, 즉 ‘범주(Kategorie)’를 찾아내어 그 ‘기원(Ursprung)’과 ‘범위(Umfang)’를 밝히고 또한 찾아낸 범주들의 ‘객관적 타당성(objektive Gültigkeit)’을 보여주는 ‘순수 지성개념들의 체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칸트는 ‘초월논리학’을 ‘순수 지성인식(reine Verstandeserkenntnis)’의 ‘기원’과 ‘범위’, 그 ‘객관적 타당성’을 규정하는 학문이라고 정의(定義)하고 있다.
5) 초월적 방법론
‘초월적 감성학'과 ‘초월논리학'으로 이루어진 ‘초월적 원리론(transzendentale Elementarlehre)'이 순수이성에서부터 생겨나는 철학적 이론이라는 ‘하나의 건축물(ein Gebäude)'의 재료와 요소들을 제공해주고 그로 인해 이론적 이성사용의 경계를 한정지을 수 있었다면 이제 ‘초월적 방법론(transzendentale Methodenlehre)'에서 칸트는 마지막으로 그러한 순수이성의 이론적 건축물을 건축하기 위한 설계도를 그리려고 한다.
즉 칸트가 ‘초월적 방법론'에서 원하는 바는 한마디로 “순수이성의 완전한 체계를 위한 형식적인 조건들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런 의도에서 ‘순수이성의 훈련(Disziplin der reinen Vernunft)'에서는 철학과 수학의 방법을 비교하는 것이, ‘순수 이성의 규준(Kanon der reinen Vernunft)'에서는 이성의 순수사용의 궁극적인 목적을 규정하는 것이, ‘순수 이성의 건축술(Architektonik der reinen Vernunft)'에서는 순수이성인식의 체계를 해명하는 것이, 그리고 ‘순수이성의 역사(Geschichte der reinen Vernunft)'에서는 철학의 역사에 등장한 철학적 체계와 입장들을 유형적으로 나누어 체계화시키는 것이 다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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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순수이성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nft, Critique of Pure Reason]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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