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전하는 모든 말씀을 잃어버렸다해도 이 말만 기억하면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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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교회 李德休牧師의 神學과 實踐(Rev. Dhleepaul's Theology and Praxis)
La biblia Volver al resume
[구약성서 이해와 요점]
1.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신 말씀
당신은 온전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 당신이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당신이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안내가 필요하다. 그러면 당신은 어디서 이런 좋은 안내를 찾을 것인가? 나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사물의 지체 계획안에서(in the total scheme of things)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어떤 것인가? 나는 어떻게 선하고 훌륭한 삶에 대한 해답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만이 당신이 그와의 친밀한 사귐을 통해서만 당신의 참다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당신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 속에 살아 있지 않는 한 당신 자신과도 평화로운 관계랄 가질 수 없다. 당신은 진리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진리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당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맺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안에서 자기 자신을 개시하시고 있고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를 맺으신다. 당신이 당신의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지식과 안내를 찾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성서에서 그것을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찾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오래된 옛 책들을 통하여 말씀하실 수 있는가? 이렇게 오래된 옛 책들이 어떻게 당신에게 하나님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가?
먼저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하라.
구약성서 시대의 남녀들은 당신과 같은 인간이다. 구약성서 시대의 사람들도 우리의 문제와 비슷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도 당신과 꼭같이 유혹과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였다. 언제 어디서나 인간의 본성은 같다.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다. 만일 당신이 구약성서에 관한 교회의 신앙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성서 안에 등장하는 가장 주요한 인물은 하나님이시다. 성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의 기록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과 그의 뜻을 어떻게 인간에게 계시하셨는가, 그가 어떻게 인간을 그에게로 나오도록 초청하셨는가. 당신은 구약성서 어디서나 인간의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같은 하나님을 발견할 것이다. 그는 모든 삶의 중심에 계시면서 그의 목적을 신약성서에서는 하나님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 가운에 성취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가 하나로 결합되는 것을 볼 수 잇다. 하나님께서는 성서를 통하여 아직도 여전히 당신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그는 여전히 자기가 어떤 분이시며 오늘날 우리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밝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당신의 구원의 하나님(hte God your salvation)으로 당신의 삶 속에 들어오신다. 하나님의 영이 당신에게 말씀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예언자들에게 깨달음과 환상을 주셨던 하나님의 영이 당신 안에 거하면서 당신에게서 무지와 혼란을 제거시켜 주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그에게로 이끌어 그와의 사귐을 갖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계시다.” 바로 이런 것이 교회의 신앙이다. 교회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바로 이런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애썼던 사람들의 경험이었다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다.
2, 구약성서가 기록된 방법
본래 구약성서의 책들의 배열 순서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구약성서의 배열 순서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구약성서가 기록되는 데는 천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구약성서의 대부분의 책들의 저자의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책을 저술하는 데는 여러 단계의 절차가 있다는 것을 당신은 명심해야 한다.
먼저 예레미야는 결코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들음으로써 그 시대에 일어날 사건뿐만 아니라 그 사건과 관련하여 그의 민족이 결단해야 할 선택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할 굿 있게 되었다.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의 백성에게 그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그 다음 두 번째 단계의 절차로써 예언자와 그 비서 바룩(Baruch)은 조용히 앉으셔 설교의 말씀(the words of sermon)과 예언자의 삶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 다음 세번째 단계의 절차로서는 예언자의 사후에 예언자에 간한 기록들을 한데 수집하여 편집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편집된 내용을 하나의 두루마리로 만들어졌다. 물론 이때의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하기 위하여 세심한 주의력이 진지하게 기울여졌던 것은 아니다.
넷째 단계의 절차로써는 수세기 후에 예언자들의 글이 담겨 있는 두루마리를 다른 예언자들의 두루마리들과 한데 모아 이스라엘의 성서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솔로몬이 죽고 나라가 유다와 이스라엘 둘로 분열된 후에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전승들을 한데 수집되어 좀더 분명한 형체를 갖게 되었다. 주전 850년 경에 유대에서 천지창조로부터 족장들 시대를 거쳐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기록되게 되었다.
주전 750년 경에 새롭고 매우 중요한 종류의 문서가 이스라엘 안에서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전달한 그들이 메시지를 영구 보존될 수 있는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삶 속에 들어와 인간의 경험의 옷을 걸치고 나타나게 하셨다. 이 말씀의 종들은 고난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힘차게 전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이야기와 이스라엘의 인간적인 이야기가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진리는 항상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
3. 창세기
창세기는 하나님에게서 시작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서에서는 이 두 물음은 한데 결합되어 있으므로 결코 이 두 물음을 따로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그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현존의 빛(the light of God is presence)에 비추어 볼 때에만 그는 자시 자신과 자기 자신의 운명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성서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에 관한 진술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논쟁을 벌리고 있지 않다. 성서 어디에서나 하나님께 관한 진술이 참된 것이라고 입증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찾아볼 수 없다. 성서는 깊은 침묵으로 답을 하고 있다. 당신은 당신이 성서를 읽을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떻게 말씀하시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인격 대 인격으로 당신에게 말씀하신다. 성서의 기자들도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말씀의 진위성을 입증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성서 기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할 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는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서의 맨 처음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라는 것을 단언하고 있다. 세계는 하나님의 머리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세계의 창조자이시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의 창조자이시다. 처음서부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우리로부터 먼 곳에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 당신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창세기가 기록될 당시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전히 명백하게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다. 창세기는 11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12장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반항한 세계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선택하신다. 아브라함이 바로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으로 하나님과 인류와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된다. 하나님은 전 인류 가운데서 한 가족을 선택하셨다. 이 한 가족이 점점 커져서 한 민족을 이루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세계 전체를 그에게로 다시 돌아오게 할 계획을 세우셨다. 역사에 관한 한 창세기와 과학자들의 발견 사이에 갈등이 있을 필요가 없다. 창세기에서 세계 형성의 역사를 찾아볼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창세기는 역사가들이 제공하지도 않고 제공할 수도 없는 것을 제공해 주고 있다.즉 창세기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삶의 의미를 제공해 준다. 과학은 세계에 관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해 주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해 주기 위해서 성서는 존재한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나 인격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는 어떤 분이신가를 성서는 우리에게 말해 준다. 성서는 인간이 세계 안에서 차지하는 바른 위치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성서는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 자기 자신과 그의 이웃과 화목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보여 주고 있다.
4. 출애굽기
출애굽기는 수백년 후의 매우 다른 장면을 열어 보여준다. 애굽에서 한 가족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조상들이 다른 나라로부터 이주해 왔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중의 얼마는 자기들의 특별한 운명을 성취해야 할 따로 구별된 백성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애굽정부는 이스라엘 백성을 소수 집단으로 단지 노동력을 제공할 가치밖에 없으나 애굽의 적국의 침략을 받을 때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적국의 침략에 동조할 만큼 위험스러운 집단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 명백하다. 현대인들이게 있어서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Spiritual Being)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현대인들로부터 적당히 먼 거리에 있다고 오늘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현대인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 계획과 사고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 있는 인격(living person)으로서 자기들의 세계 안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늘날 인간들이 갖고 있는 가장 심각한 형태의 불신앙은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선하심과 그의 진리와 그의 사랑을 믿고 있으면서도 현재와 미래의 세계사를 형성할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자기들의 머리에서 추방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활동하고 계신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적을 성취하시는데 현대의 불신앙인들을 사용할 수가 없다. 출애굽기 5장으로부터 15장까지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침내 노예상태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기까지에 있었던 사건들은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려는 모세와 맨 처음 시도는 단지 애굽 사람들의 압제를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애급사람들에게 일련의 무서운 재앙이 내리게 되었다. 모세는 바로에게 이 재앙들을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적이라고 말하였다.
5. 레위기와 민수기
당신이 이 레위기서의 법과 규칙은 크리스찬들이 살고 있는 시대와는 전혀 다른 시대에 적용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에 그리고 당신이 이 레위기를 그 속에 있는 법과 규칙들이 적용되었던 시대와 시각으로 읽는다면 당신은 그것들의 의미를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레위기서의 요점은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그의 본성의 순결함이다. 그의 안에 있는 거룩함의 본성과 반대되는 것은 더러움과 악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면서 하나님께 가깝게 접근할 때에 우리의 삶은 거룩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 가깝게 접근할 때에 우리의 삶은 거룩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된 것은 하나님께 거룩한 것을 인정하시지 않으신다.옛날에 레위기의 법들 중의 많은 것들이 굉장히 중요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하게 보이는 희생을 드리는 제사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온전히 완성될 수는 죄의 용서와 속죄를 받기 위한 노력 표현의 수단이었다. 여기서 당신은 신약성서와 구약성서 약간의 부분들과의 관계를 명백히 볼 수 잇는 좋은 위치에 있다. 민수기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들의 긴 명단은 어떤 역사적 배경의 무대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어떤 실마리를 찾으려는 학자들에게는 필요한 부분이지만 평범한 독자들에게는 별로 흥미도 되지 못하고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의 선민으로 선택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그의 위대한 목적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수행케 하시는 전체 이야기의 한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6. 신명기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과 오늘날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그를 섬길 것을 선택하지 않느냐는 사느냐 죽느냐의 사활의 중대한 문제라는 것을 당신에게 말해 준다. 당신은 당신 주위에서 많은 악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신앙으로 하나님께 응답하여 순종하면 당신이 당신의 삶의 참으로 아름답게 성취될 미래의 약속을 받게 된다. 신명기는 생사가 결려 있는 중요한 문제에 관한 물음에 대하여 답해 준다. 어느 개인이나 어느 민족이거나 자동적으로 만사 형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는 없다. 모든 일들은 하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다. 예수께서 구약성서의 책들 중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신 것이 신명기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찬들은 맹목적으로 율법서에서 회개하고 전적으로 순종할 것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7.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여호수아서는 성서의 어느 책보다 더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여호수아서의 첫 열두 장들은 사십년 전에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모세에 의하여 해방되어 나와서 팔레스타인을 침략한 이스라엘 부족들의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는 자기들에게 팔레스타인을 그들이 거할 장소로 줄 계획을 갖고 계시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갖고 적을 공격하여 산지에서 삶의 근거지를 확고하게 확보하기까지 신속하게 적을 무찔렀다.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그의 백성 종교 뿐만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 있어서 가나안 사람들의 수준으로 타락할 위험성을 미리 내다보았다.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은 그의 이웃과 같이 우상 숭배자들이 되었다. 이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우 가난했다. 그들은 자주 이웃 민족들에게 침략을 당했고 또 이웃 민족들의 노예가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야빈 그리고 미디안 족속과 아멜렉 족속들의 침략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침략자들이 이스라엘이 힘들여 얻은 산지를 영원히 빼앗지는 못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족들 사이에서 서로 싸운 일일 있었다. 예를 들면 길르앗과 에브라임 사이에 싸움이 있었다(12장). 그리고 몇 부족은 베냐민 부족을 대항해서 싸웠다(19장과 20장). 이 땅의 여러 지방에서 일어난 사사라고 불려졌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자유를 되찾아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완전히 멸망당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행동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다. 이 지도자들의 영웅적인 행동들을 옛 이스라엘에서 아주 흥미 있게 반복되어 전해져 왔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야말로 그의 백성을 하나로 결속시켜 그들의 적과 싸울 힘을 줄 수 있는 근원인 동시에 소망의 원천이었다. 이들은 자기들 혼자만이 싸우고 있는 거시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가운데 계시면서 이들에게 승리를 주셨다. 한민족의 젊은이들의 강한 이야기인 사사들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해져 내려 온 것이었다. 주전 1100년으로 소급해 후대의 이야기도 주전 7세기 또는 6세기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인들 사이에 살면서 이방인의 예배와 삶의 관습을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유혹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인데 사사기서는 하나님을 굳건히 믿는 신앙을 가지고 충성스럽게 그를 섬길 것을 경고해 주는 역사의 해석이다. 사사기서의 편집자는 이 시대는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이 옳은 대로 행동했다는 것을 두 번이나 지적하면서 각기 자기가 하고 싶을 대로 멋대로 하면 혼란이 일어난다는 것을 당신에게 상기시켜 죽 것이다.
룻기는 히브리 성서에서는 성문서 안에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아름답고 이상적인 여인상의 모습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다. 룻기의 저자는 그 당신의 이스라엘 백성의 다른 민족에 대한 편협하고 잔인한 편견을 극적으로 분쇄할 타격을 주었다. 이 룻기를 읽는 유대인은 모압 여인이었던 룻과 교제를 하면서 살았던 유대인들은 새롭게 열린 마음과 생각을 갖고 이방인들을 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8. 사무엘상하와 열왕이상하
사무엘상하와 열왕이상하는 히브리 역사에 있어서 대략 500년 동안에 되어진 일들의 계속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것을 종교와 정치의 이야기이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은 정치와 국제 문제를 포함한 그들의 삶의 전 영역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예언자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분이셨던 사무엘과 그밖에 다른 예언자들은 민중을 노예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어느 계층의 사람들 예를 들면 왕들과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투쟁하면서 민중의 권리를 항상 옹호하고자 하였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왕들과 백성들이 그들 주의에 있는 다른 민족들과 같이 죄를 짓는 것을 보고 성죄하였다. 사무엘상하와 열왕기상하는 한 작은 나라의 이야기를 말해주고있다. 그러나 이 책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전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물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이야기 중심에 계신다. 이런 까닭에 이스라엘과 같이 작은 나라의 역사가 전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하다. 당신이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동안에 당신은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비교해 가면서 우리 시대의 역사까지 포함된 모든 역사를 읽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다스릴 통치자를 세우는 일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는가는 알 수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오늘날도 현대 세계의 열 나라들의 지도자들을 선출하는 일에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엘리야의 위대한 업적은 바알 숭배의 물결이 이스라엘 전체의 신앙을 크게 위협하고 있던 때에 바알 종교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었다. 구약성서 전체는 한결같이 바알 숭배를 반대하고 있다. 바알을 예배한다는 사실을 단순히 하나님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죄가 안되는 행위가 아니다. 바알 숭배는 냉혹하고 사악하고 그리고 폭력적인 종교이다. 바알 종교는 통속적인 형식의 다신론적인 믿음의 표현이다. 예언자들은 바알 신 숭배를 배격하고 오직 창조주이시며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섬길 것을 가르쳤다. 바알 종교와 타협할 수 없는 이유는 바알 종교가 악한 종교이기 때문이고 바알 종교는 타 종교인들에 대한 관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역사서를 기록하는 작업은 이미 예루살렘에 멸망하기 전 주전 600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서를 쓰는 일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가 있었던 후에 시기보다는 성전 안에 있는 고대의 기록들과 예루살렘에 있는 왕실 공문서 보관 속에 있는 기록들을 참고할 수 있는 시기에 더 용이했을 것이다.
9. 역대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할 지도자들을 일으켜 세워 주셨다. 다윗과 솔로몬은 통일된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국력이 크게 신장되어 주위에 있는 여로 나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분열을 촉진시킬 힘이 점점 커져 마침내 두 나라로 분열되고 말았다. 수세기가 흐르게 되자 끊임없이 이 민족은 힘에 의하여 분열되고 말았다. 한편에서 예언자들은 하나님께 범함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것을 촉구하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 지도자들은 물질적 번영의 삶을 살기를 욕망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앗수르 군대를 침략을 방아 먼저 멸망해버렸고 그 다음에는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했기 때문이었다. 예루살렘과 그 안에 있는 성전은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난 속에서도 자기들의 신적 운명(divine destiny)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역대상하, 에스라 그리고 느헤미야서의 편집자는 당시의 유대인들의 신앙을 격려하기를 원했다. 사무엘상하와 열왕기상하의 역사가들은 자기 들의 민족의 과거의 죄를 회개할 것을 촉구했고 그리고 그이 백성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항상 그의 백성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들의 역사서를 기록하였다. 이 역대상하와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를 기록한 후기의 사가들은 유다 민족은 하나님께서 그를 섬기도록 선택한 백성이라는 것과 그들이 온갖 재난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놀라운 방식으로 지켜 주었고 그리고 보존해 주셨다는 것을 확신시킬 목적으로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역대상하의 기자는 제사장이거나 또는 제사장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이었다. 얼마 후에 당신이 예언자들에 관하여 연구할 때에 당신은 제사장들의 종교관(view of religion)과 예언자들의 종교관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제사장들의 두드러진 한가지 종교적 특징은 외형적 형식을 매우 중하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상하의 이야기 속에는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촉구하고 있는 분명한 내용이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열정적으로 사랑한 그는 예배의 정신(the sporit of worship)을 그의 백성 중에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느헤미야는 그의 여행담과 그가 발견한 예루살렘 성의 상태와 그가 직면했던 방해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그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책의 부분에서 말하고 있다(느 1:1-7;5;12;,12:27-13;31) 우리는 느헤미야를 유능한 행정가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가 동족을 뜨겁게 사랑했던 진지한 신앙과 기도의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성취한 업적은 행정의 분야 보다는 종교적 가르침의 영역에 있었다 그는 유다에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예루살렘 방어를 위한 성벽을 쌓음으로서 그의 동족의 공동체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 참을 공헌하였다. 에스더서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는 장소는 수사에 있는 페르시아 왕국이다 이 책의 첫 장면에서 왕은 그의 제국의 귀족들과 함께 축제를 벌이고 있으며 그의 궁전의 보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에스더의 후견인이였고 그녀의 사촌이였던 모르드개는 수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였다. 그는 왕은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던 두 관리를 죄를 폭로함으로서 왕에 대한 그의 충성심을 나타내 보여 주었다.
11. 시편과 잠언
시편의 작시자와 그 연대 역시 다양하다. 시편도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쓰여졌다. 시편에 수록되어 있는 시들 중 많은 것들은 작시자를 알 수 없는 것들이다.또한 여러 시대에 걸쳐 쓰여진 것들이었다. 구약성서의 시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시편은 여러 다른 유형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에 관하여 일반적인 서술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이 친히 알고 있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고 있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불확실성과 적의와 복잡함과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 지혜 있는 현인들은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잠언’이라고 불려지는 짧은 글의 형식을 자주 교훈을 하였다.이스라엘인의 격언들도 본래 일반 민중의 삶에서 비롯된 지혜이다. 솔로몬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그가 잠언 전체의 저자로 이해도 될 수 없다. 솔로몬은 잠언 전체의 후원자로 여겨지게 되었고 개개의 잠언들이 지혜 있는 현인들이 지은 것임에 틀림없다. 저자들의 이름은 잊혀졌지만 그 잠언들의 내용 오랫동안 기억되어 전해져 왔다. 잠언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이다. 하나님은 참다운 지혜를 주시는 분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잠 1:7). 지혜는 인격적인 것이다. 지혜는 항상 당신의 지성과 습관과 목적과 행위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12. 전도서와 아가
성서는 인생에 대하여 독자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전도서의 저자라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전도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잇게 될 것이다. 전도서의 저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그리고 다스리는 절대적 주권자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에 순종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전도서 저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잇는 것이 아니라 “해 아래에서” 행하여지는 인간이 모든 일들에 대하여 의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사물에 대하여 갖고 있는 가치관에 대해서도 철저한 회의심을 갖고 있다. 전도서의 저자와 같은 사람은 인간은 출생과 죽음으로 제한되어 있는 유한한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만일 인생의 의미와 질서가 있다면 현세의 삶의 테두리 안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내세에 그의 삶이 바르게 조정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첫째, 우리에게 인간이 이루어 놓은 모든 성취에 대하여 무조건 긍정할 것이 아니라 의문을 제기해 볼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지식의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거짓된 신념의 거품을 제거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두번째로, 아무리 우리가 보지에는 인생이 어둡고 모순 투성이 보일지라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우리 인생에는 의미와 질서가 있다는 것을 전도서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은 이 혼란되어 보이는 세계의 창조자이시다. 세번째로, 비록 우리가 우리의 일의 결과를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힘을 다하여 해야 한다고 전도서 저자는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네번째로, 그는 우리에게 단순성을 권하고 있다. 인생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마음껏 누리면서 즐거워하라. 마지막으로 그는 그의 충고를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을 맺고 있다.“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아가서는 봄철과 사랑에 관한 책이다. 왜 이 책을 성서안에 편입되었는가?
아가서의 주제는 사랑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남녀간의 사랑이다. 이 아가서의 주된 사상은 매우 명백하다. 그리고 이 아가서의 메시지의 오늘날 이십세기에도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사랑’의 개념에는 익숙해 있다. 그러나 아가서는 불멸하는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유대교의 랍비들은 아가서에 등장하는 남자는 하나님이고 여자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다. 또는 남자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저자는 인간의 영혼을 상징한다고 생각해 왔다. 어떤 사람들은 아가서에 나오는 남자는 그리스도이고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13. 예언자들
성서의 예언자들의 주된 임무는 장차 되어질 일들을 예고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대언자들(spokes men for God)이었다. 예언자들은 자기들이 처한 특정한 상황을 하나님의 시각과 같은 시각에서 그 상황을 보고 그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선언한 사람들이었다.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충실하게 지켜 진실된 삶을 살 것을 계속적으로 촉구하였다.
14. 이사야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위대한 예언자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소명이 그에게 임하였다.이 때부터 이사야는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되었다. 예언자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예언을 믿을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는 예언의 내용은 참된가, 하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였는가”를 물었던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설교가
이사야가 사용한 방법들 중의 한가지는 그가 선언할 멸망에 대하여 경고하는 내용을 요약한 이름을 그의 아들에게 붙였다. 이사야는 유다와 다른 나라들 사이의 관계에 관하여 많은 것을 말하였다. 가장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들 주의 하나는 외국에 대한 정책이었다. 앗수르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어 모든 것을 잃은 듯이 보였을 때에 이사야는 새로운 방법으로 그의 신앙을 나타내 보여주었다. 그는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 성으로부터 물러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여기저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소수의 신실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을 가르켜 ‘남은 자들’이라고 한다. 이사야는 이 남은 자들이야말로 미래의 소망이라고 종종 말하였다. 이사야는 다른 예언자들과 같이 그는 메시아 왕(the Messianic King) 이 올 곳을 내다 보았다.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수립할 구원자를 의미하였다. 그는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히지 않고 굶주린 사람을 먹이지 않은 종교는 참으로 순수한 종교로 여기지 않았다(58장). 인간이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를 인간의 삶의 움직일 수 없는 중심으로 삼을 만큼 하나님을 믿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빛과 구원의 새날을 그의 백성에게 결코 주시지 않을 것이다(59장).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 하나님의 백성이 언젠가는 온 땅에 질서와 빛과 축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결코 망각하지 말아야만 했다. 예언자의 임무는 만일 사람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자유와 기쁨과 새로운 생명이 바로 그들앞에 도래할 것이라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었다(61장).
15. 예레미야와 애가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를 예언자로 세워 주신 것을 원망하였다.그러나 그는 예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불같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예레미아는 “나는 아이이므로 말할 줄을 모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그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예레미야는 요시아의 개혁은 다만 표면적인 효과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외면적으로는 율법을 따르고 있었으나 내면적으로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우상은 사라졌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새 우상이 되었다 예레미야는 성전에 가서 지도자들과 백성을 통렬할 말로 비판하였다. 그는 진심으로 그의 백성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백성의 멸망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내적 갈등이 그를 일생 동안 괴롭혔다. 예레미야는 모세로부터 예수까지를 연결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슬에 있어서 주요한 고리이다. 예레미야는 옛 진리를 반복해서 언급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에 의하여 이 종교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이 종교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이 종교는 이스라엘 민족의 힘과 통일의 근원이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이 신앙을 잃어버린다면 생존할 수가 없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개인적이고 영적인 새로운 차원으로 높여 놓았다. 예레미야 자신의 기도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삶은 항상 사람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 되었다. 그의 경건한 글은 그의 후대의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할 본이 되었다.
16. 에스겔
에스겔은 마른 뼈들의 골짜기의 환상을 보았다. 그가 본 이 환상은 포로 생활을 하면서 의기소침하여 절망 가운데 있는 그의 백서의 정신상태를 잘 묘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는 성전 벽에서 흘러나온 샘물이 광야로 흘러들어가 그 광야를 풍요롭게 만드는 환상을 보았다. 이 환상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그의 메마른 백성의 삶 속에 흘러들어가 그의 백성의 메마른 삶을 풍요로운 삶으로 변화시켜 줄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에스겔이 사용하고 있는 상징적 언어를 바르게 해석할 수만 있다면 그 상징적 언어의 배후에 있는 매우 풍요로운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에스겔은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 성서는 다른 곳에서는 이런 내용을 하나님을 왕 중의 왕(the Kingof King)으로 부르고 있다 결국 믿음의 눈으로 보고 믿음의 귀로 들을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전달된 하나님께 관한 지식(knowledg of God)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에스겔 제사장직과 예언자의 직을 잘 조화있게 수행한 희귀한 본보기이다. 에스겔은 일생 동안 제사장들의 조직과 기능을 면밀하게 주시하였다고 성전에서 행하여지는 일들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였다. 에스겔은 개혁기에 성장하였으므로 이와 같이 영적으로 계몽된 제사장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것이다. 에스겔이 예언하기 오래 전에 그의 사상의 기본적인 틀이 형성되었다. 그의 배경과 교육은 그에게 중요한 원리를 제공해 주었다. 다른 것들은 예언자 예레미야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러나 에스겔이 예레미야의 원리를 알고 있었고 그리고 자기 보다 나이 많은 예레미야의 입장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확실하다.에스겔도 비슷하게 인기없는 메시지를 전하였고 그리고 그는 그의 어리석고 고집센 청중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예레미야와 마찬가지고 그도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먼 위안과 힘을 받을 수 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을 모든 위험과 해로운 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믿고 있던 성전의 은밀한 방에서 칠십명의 지도자들이 “기어다니는 것들과 가증스러운 짐승”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고 거기다가 분향하는 것을 보았다. 예스겔을 성소 안에서 이런 가증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께서 성전 때문에 예루살렘을 그대로 놔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전이 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메시지의 내용은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은 파괴될 것이고 성전은 불타버릴 것이며 백성은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라는 것이 메시지의 중심적 내용이었다. 에스겔은 포로 생활을 하는 그의 동족에게 위안과 소망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다. 그는 선민 가운데는 거룩한 남은 자들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은 의로운신가 예루살렘 성 안에 살던 사람들은 자기들 자신의 죄에 대하여 심판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파멸이 임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었다.
비록 그가 이들의 죄에 대하여 심판하실지라도 그는 그의 이름의 명예를 위하여 이들을 다시 회복시킬 것이다. 만일 이들의 자기들이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한다면 이들 앞에는 생명으로에의 길이 여전히 열려 있었다.
17,다니엘
다니엘과 그의 젊은 세 친구들은 신앙의 영웅들이다.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있는 이들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은 이들의 취한 모험들을 기술하고 있는 훙미진진한 일련의 이야기들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 다니엘서는 주전 3세기 이후에 유대인들 사이에 나타났던 한 문학 유형의 많은 본보기들 중의 하나이다. 이런 문학 형식을 묵시문학이라고 부른다. 묵시를 가리키는 헬라어 ‘아포칼립스’는 ‘베일을 벗긴다’를 의미한다. 이러한 종류의 묵시문학서는 하나님께 그를 대항하는 세력을 쳐부시고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을 나타내 주는 미래의 일들을 계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영웅들의 이야기들의 저자는 종교적 박해의 희생자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다. 그와 그의 예언의 메시지를 듣고 있었던 사람들은 주전 2세기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목격하였다. 옛 왕국들은 사라지고 새 왕국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이들은 보았으나 이스라엘이 회복될 날을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18. 호세아와 요엘
에언자 호세아는 자기 자신의 불행한 결혼 생활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그리고 꾸준한 것인가를 배우게 되었다. 그는 그가 배워 알게 된 것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쳤다. 호세아는 자기 처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과 고멜 사이에 관계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그의 선민으로 선택하여 사랑하였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들을 따르고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우상을 숭배했다.. 예언자 호세아는 그의 불행한 삶의 경험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경험의 거울에 비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호세아의 예언자로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그의 결혼 생활의 의미와 그의 백성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보여주시자 그는 그가 배운 것을 그의 백성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첫째 자녀의 이름 이스르엘은 전쟁을 암시하였다. 둘째 자녀의 이름은 로암미인데 그 뜻은 ‘내 백성이 아니다’이었다.
예언자 요엘에게 있어서는 이 재앙은 장차 임할 여호와의 크고 무서운 날의 전조이었다. 여호와의 날은 보통 날과 같지 않고 인간의 세계를 엄습해 올 영원한 사건의 날로 어느 시각에라도 인간에게 침입해 올 수 있다 한발이나 태풍이나 기근이나 온역이나 지진이나 홍수가 전쟁의 재난은 최후에 있을 대환란의 전조였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재난들은 각각 장차 임할 무서운 큰 재난에 대비하여 회개할 것을 사람들에게 촉구하는 것이었다. 예언자 요엘은 모든 사람에게 꼭같이 신판이 임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요엘의 예언은 장차 임할 무서운 일에 대한 경고 이상의 것이었다. 요엘의 예언을 소망의 메시지였다. 그의 사명은 그의 백성들에게 만일 저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하였다. 오순절날 초대 교회의 크리스찬들에게까지 이 예언의 말씀은 오늘날까지 많은 경건한 신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다.
19. 아모스와 오바댜
아모스는 그의 예언이 기록으로 보존된 예언자들 주의 맨 처음 사람이다. 그의 예언 전체는 주전 750년 경 하루 이틀 사이에 전해졌다. 고대 이스라엘 축제들에 대한 아모스가 벧엘을 지키는 절기를 축하하기 위하여 큰 무리가 성소에 모여들었던 장면을 능히 상상해 볼 수 있다. 심판의 말씀이 성전 뜰에 메아리쳤다. 사람들은 술취함에서 정신이 번쩍 들어 심판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큰 재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저들에게 미리 충분한 경고를 하시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기근과 한발과 마지막에는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을 보내 주시며 저들에게 경고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예언자 아모스는 두 번이나 하나님께 그의 백성을 위한 중재의 기도를 올렸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의 백성에게 내리려던 큰 재난을 두 번이나 철회하였다. 아모스는 예언을 중단하지 않고 여러 협박을 받으면서도 성소 자체의 완전하 파괴와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파멸을 말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은 전해졌소 무리들 가운데 몇몇 가난한 사람들은 그의 뒤를 따랐다. 오다뱌에게 있어 하나님은 유다의 원수를 갚아 주시는 분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의 보다 넓은 의미와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의 의미를 보다 넓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이스라엘의 임무였다.
20. 요나와 미가
요나는 경건한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그도 또한 대부분의 동족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심판을 내리시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회개하지 않아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의 대의를 이룰 수 없는 행동이였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비의 의미를 요나에게 가르치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들어주신 박넝쿨의 이야기는 그에게 소중한 이야기가 되었다. 모레넷 사람 미가는 호세아와 이사야의 동시대 사람이었다. 미가는 참다운 예언자는 부패한 것들을 알고 있다면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질적 이득에 조금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정직한 예언자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참다운 경고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부정과 악이 있는 곳에서 그것들을 폭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21. 나훔, 하박국, 스바냐
나훔은 그의 생생한 시에서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것을 그의 백성에게 선언한다. 나훔의 예언을 한 시대의 끝을 알려주고 있다. 앗수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겸손하게 낮추어 회개의 교훈을 배우도록 사용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러나 마침내 앗수르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권력을 탐하고 잔인함과 무책임성은 나타내자 앗수르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것을 아시야는 예언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제국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예언자 하박국은 자기 위에서 세상이 불공평을 보았다. 하박국은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스바냐는 왕족이 일반적으로 받았던 교육을 받으면서 예루살렘에서 성장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여러 계층들을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의 운명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죄에 대하여 진노하였다.
22. 학개, 스가랴, 말라기
예언자 학개는 주전 520년에 모든 유대인들이 한데 모여 그들의 하나님을 예배할 중앙 성소가 곧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마음 약해진 일꾼들을 격려하고 축복을 약속함으로서 그가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스가랴의 환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단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용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당 밖에서 행하여지는 일상 생활의 내용에 관심을 갖고 계시다. 하나님의 백성의 끊임없는 불평의 소리는 다시 이 땅에 들렸다. 그들을 하나님의 계명을 모두 지켰으나 축복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법을 어긴 사람들은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그들을 불평을 했다.
[신약성경 요약]
마태복음
1) 저자 : 레위라고도 불리는 마태는 세리였는데 사도가 되었다(9:9, 눅 5:27). 이것은 9장 10절의 `그 주인`과 10장 3절의 `세리`라는 특별한 언급에 의해 증명된다.
2) 장소 : 유대 땅일 것이다.
3) 시기 : 이 책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28:15) 주후 37년과 40년 사이, 성전이 파괴되기(24:2) 전에 유대 땅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평범한 유대인들을 위해서 기록되었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유대의 관습과 절기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4) 주제 : 왕국 복음-예수 그리스도께서 왕-구주이심을 증명함.
5) 중심 사상
예수(여호와 구원자)이시고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신 그리스도는 왕, 침례자, 빛, 선생, 치료자, 죄를 사하는 자, 신랑, 목자, 친구, 지혜, 안식, 성전보다 더 크신 분, 참 다윗, 안식일의 주인, 요나보다 더 크신 분,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 씨뿌리는 자, 씨, 먹이는 자, 떡, 상 아래 부스러기, 그리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교회의 반석, 교회의 건축자, 왕국의 설립자, 오늘날의 모세와 엘리야, 모퉁이의 머리 돌, 주, 부활하신 분, 권위를 가지신 분, 부활하셔서 그분의 백성과 항상 함께하시는 분이다.
마가복음
1) 저자 : 이 복음서의 저자는 요한이라고도 불리는(행 12:25) 마가다. 그는 여러 마리아들 중 한 마리아의 아들이자, 바나바의 조카(골 4:10)였다. 그는 바나바와 사울의 사역에 동행했는데(행 12:25) 바울의 첫 번째 이방을 위한 사역 여행에 함께했다가 버가에서 그를 떠나 돌아왔다(행 13:13). 그 때문에 바울의 두 번째 여행에는 거절당했다. 그러자 마가는 바나바와 함께 일하러 갔다. 이 시점에서 바나바는 바울과 갈라섰다(행 15:36-40). 그러나 마가는 바울의 후반기에 이르러 그와 가까웠으며(골 4:10, 몬 24절),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그에게 유용했다(딤후 4:11). 베드로가 그를 아들로 간주한 것으로 보아(벧전 5:13) 아마도 그는 베드로와도 줄곧 가까웠던 것 같다.
2) 장소 : 기록은 로마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딤후 4:11).
3) 시기 : 이 책은 주후 67년에서 70년 사이에 쓰였다. 13장 2절의 내용은 이 책이 성전의 파괴전, 아마도 사도 바울의 죽음 후에 기록되었음을 증명한다. 마가의 책은 유대의 이름과 관습과 절기들을 많이 설명한다(3:17, 5:41, 7:3, 11, 14:12, 15:42). 이것은 이 책이 이방인들, 특히 로마인들에게 쓰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4) 주제 : 하나님의 복음―예수 그리스도께서 노예-구주이심을 증명함.
5) 중심 사상
마가복음은 주 예수님을 하나님의 노예로, 그리고 죄인들의 노예-구주로 제시한다. 주님은 노예-구주로 죄인들을 섬기시고, 자기 생명을 그들의 대속물로 주셔서(10:45), 그분이 노예가 되어 섬기시던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셨다.
누가복음
1) 저자 : 초대 교회는 누가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로 간주했다. 이 두 책의 문체와 작문을 볼 때 누가가 저자임이 분명하다. 누가는 의사였으며 아마도 아시아계 헬라인이었을 것이다(골 4:14). 그는 드로아에서부터 바울의 사역에 동참했으며, 바울의 세 차례 사역 여행에 동행했다(행 16:10-17, 20:5-21:18, 27:1-28:15). 그는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그의 신실한 동반자였다(몬 24, 딤후 4:11). 그러므로 그의 복음은 마가가 베드로의 관점을 대표한 것처럼, 바울의 관점을 나타냈을 것이다.
2) 시기 : 이 책은 사도행전이 쓰이기 전인, 주후 약 60년, 사도 바울이 가이사랴의 감옥에 있을 때 썼을 것이다. 이 책은 데오빌로에게 보내졌다(1:3).
3) 주제 : 죄 사함의 복음―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구주이심을 증명함.
4) 중심 사상
누가복음에 따르면 우리 구주는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적인 삶을 사셨다. 더욱이 그분은 구원하시는 사역을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성으로 수행하셨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을 읽을 때 그 주제가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추신 사람-구주와 그분의 그러한 사역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분의 이처럼 높은 수준의 도덕성은 아버지의 신성한 속성으로 충만히 강화되고 부요케 된 그분의 인성의 미덕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이 그리스도는 여전히 신성한 속성으로 강화되고 부요케 된 인성의 미덕을 가지신 분이다. 그분은 이 땅에 계시면서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적인 삶을 사셨다. 그러한 삶은 신성의 속성과 인성의 미덕의 결합이었다. 물론 주 예수님은 이러한 삶을 제자들 밖에서 사셨다. 그러나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이러한 삶을 믿는 이들 안에서 사신다. 이것은 사람-구주께서 여전히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적인 삶`―`신성의 속성과 인성의 미덕이 결합된 삶`―`을 오늘날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살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것을 본다면 우리는 바울과 같이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갈 2:20).
누가의 복음은 구주의 인성에 관한 공관(共觀)복음서들 중의 하나이므로 그 목적은 타락한 인류를 대상으로 그분의 구원하시는 은혜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여 구주를 성실하고 정상적이고 완전한 사람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첫 세대인 아담에 이르기까지 사람 예수의 온전한 계보를 서술한다. 이것은 그분께서 참사람의 후손, 즉 사람의 아들이심을 보여 준다.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이러한 기록은 그분의 인성의 온전함과 완전함으로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의 강조점은 ‘사람-구주’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원칙들에 근거하여 4:16-21, 7:41-43, 12:14-21, 13:2-5에서와 같은 복음 메시지와 10:30-37, 14:16-24, 15:3-32, 18:9-14에서와 같은 복음 비유들과 7:36-50, 13:10-17, 16:19-31, 19:1-10, 23:39-43에서와 같은 복음 사례들을 제시한다. 이들은 다른 복음서들 안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다.
요한복음
1) 저자 : 이 책은 사도 요한이 기록했다(21:20, 24). 그는 세베대의 아들이었고(마 10:2), 그의 형은 야고보, 어머니는 살로메였다. 살로메는 주님을 따르고 섬기던 자매이다(마 27:55-56, 막 15:40).
2) 장소 : 에베소이다.
3) 시기 : 이 책은 아마 주후 약 9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유대와 이방의 모든 믿는 이에게 쓴 것이다. 1장 38절과 5장 2절, 그리고 19장 13절의 설명으로 보아 이것을 알 수 있다.
4) 주제 : 생명의 복음―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확장을 가져오신 하나님-구주이심을 증명함.
5) 중심 사상
온 성경은 생명과 건축을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도 역시 생명과 건축에 초점을 두고 있다.
A. 생명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고(1:4), 그분은 사람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오셨으며(10:10), 주님 자신이 생명이심을 계시한다(11:25, 14:6). 더욱이 이 복음서는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떡이요(6:35), 생수요(4:14),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며(5:21), 심지어는 사람 안에 생명으로 살고 계심을 보여 준다(14:20).
B. 건축
요한복음은 또한 건축(생명의 건축)을 계시한다. 1장 14절에서 육신 안의 그리스도께서 땅 위의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장막이심을 본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분께서 죽으시기 전에도, 부활하신 후에도 하나님의 성전이셨다(2:19-22). 이것이 건축이다. 더욱이 이 복음서는 믿는 이들이 삼일(삼위일체) 하나님의 처소로 건축될 것임을 계시한다(14:2, 23). 이것은 14장에 충분히 나타나 있다. 14장에 따르면 모든 믿는 이들은 많은 처소들이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로 함께 지어질 것이다. 17장에 있는 주님의 마지막 기도가 가리키는 것같이 모든 믿는 이들은 하나로 건축되어야 한다(17:11, 21-23).
사도행전
1) 저자 : 이 책은 바울의 동역자였던 누가가 자신의 여행 기록을 기초로 해서 기록한 것이다.
2) 장소 : 이 책은 아마도 로마에서 기록됐을 것이다(몬 24, 딤후 4:11).
3) 시기 : 완성 시기는 아마 이 책에 쓰인 사건들이 끝난 직후인 주후 67년과 68년 사이로 추정된다(1:1). 수신자는 데오빌로였다(1:1, 눅 1:3).
4) 주제 :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승천 안에서, 그 영에 의해,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들을 산출하기 위하여 번식되심.
5) 중심 사상
승천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우주 가운데 모든 능력과 권위를 가진 분이시다. 그분은 오늘날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들을 산출하기 위해 승천 안에서 그분 자신을 번식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을 번식하시는 것은 바로 그분의 승천 안에서이다. 이 일은 천연적인 것이거나 천연적인 사람에 속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일은 부활 안의 신성한 생명에 속한 것이며, 그분의 승천의 분위기와 상태 안에서 수행된다. 또한 승천 안에서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번식은 사람의 책략이나 기술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 영에 의한 것, 특히 경륜적인 성령에 의한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번식을 수행하기 위한 경륜의 영을 볼 수 있다.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번식은 제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제자들은 단지 설교자들이 아니라 증인들이다(1:8).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번식하는 그분의 신약 경륜을 수행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비워드리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는 만유를 포함한 영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안에 들어오셔서, 삼일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서 성취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적용시킨다. 그와 같은 적용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산 증인이 된다(1:8). 만유를 포함한 영을 우리 안에 가진 자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단순히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간직하고 전달하는 산 증인이 되어, 그분을 온 땅에 번식시켜 신성한 경륜의 성취를 가져와야 한다.
로마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 : 고린도이다.
3) 시기 : 이 책은 사도 바울이 주후 60년경 제3차 전도 여행이 끝날 무렵, 고린도에서(15:25-32, 행 19:21, 20:1-3) 3개월간 머무는 동안에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1:7) 쓴 것이다.
4) 주제 : 하나님의 복음―죄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들어서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여, 각지에 있는 교회로 표현되게 함.
5) 중심 사상
첫 번째는, 구원이다(1:1-5:11, 9:1-11:36). 구원에는 화해와 구속과 칭의와 화목과 선택과 미리 정하심이 포함된다. 영원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예정하셨고 선택하셨다. 그런 다음 시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속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완전한 구원을 얻었다. 우리는 구속과 구원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구속이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편에서 이루신 것이며, 구원이란 그리스도의 구속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신 것이다. 구속은 객관적인 것이고, 구원은 주관적인 것이다. 구속이 우리의 체험이 될 때 그것이 곧 구원이다.
두 번째, 이 구원은 5장 12절부터 8장 39절에서 밝혀진 ‘생명’을 위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생명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일곱 번 사용되었으며(5:17, 6:4, 7:10, 8:2, 8:6, 10, 11, RcV 참조), 8장에서 볼 때 이 생명은 사중(四重) 생명이다. (결정성경 結晶 2071 참조)
세 번째로, 우리는 로마서의 마지막 부분(12:1-16:27)에서 건축, 즉 각지에 있는 교회들 안에 실재로 나타난 ‘몸’을 보게 된다. 구원은 생명을 위한 것이며, 생명은 건축을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로마서의 세 가지 중심 사상은 구원과 생명과 건축이다.
고린도전서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사도 바울(1:1, 9:1-2)이다.
2) 장소 : 기록장소는 에베소(행 19:21-22, 고전 16:3-8, 19)이다.
3) 시기 : 부르심받은 지 이십오 년 후(행 9:3-6, 15-16), 이방인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지는 십사 년이 지났을 때(행 13:1-4, 9) 이 서신을 썼다. 대략 주후 59년경이라고 보는데 그 시기는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렀던 삼 년간의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다(행 20:31, 고전 16:8)
4) 주제 :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는 교회 안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임.
5) 중심 사상
바울은 이 서신을 쓸 당시에 고린도의 철학적이며 오도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다시 안내하려는 부담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철학과 문화로 오도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영 안에서 자신을 승리로 이끄신 그리스도께로 그들을 인도할 부담을 받았다. 바울의 이러한 영의 부담은 특히 이 책의 첫 두 장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고린도후서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사도 바울이다(1:1).
2) 장소 : 기록 장소는 마게도니아이다(7:5-6, 8:1, 9:2, 4).
3) 시기 : 기록 시기는 대략 주후 60년경으로 로마서를 쓰기 이전이다. 고린도후서 2장 13절을 볼 때, 이 서신은 바울의 제 3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에 체류한 후 마게도니아에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4) 주제 : 새 언약의 사역과 그 사역자들.
5) 중심 사상
고린도전서는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살아 내는 문제를 계시한다. 그러나 고린도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다섯 방면에서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사는(live) 사람의 본으로 제시한다. 첫째,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뢰하여(1:9), 세상에서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1:12)과 신실하신 하나님의 변치 않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을 포함한다(1:18-20). 둘째, 그리스도께 견고히 붙여지고, 그분의 영으로 기름 부음받고 인쳐지며, 그분의 향기를 날리기 위해 그분께 사로잡히고 정복되며, 그분에 의해 인도받는 것이다(1:21-22, 2:14-16). 셋째, 그리스도를 영적인 알파벳으로 삼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생명 주는 영으로 살아 있는 편지를 쓸 정도로 충분히 자격이 갖추어졌다(3:3-6). 넷째, 새 언약의 영광으로 빛나는 것이다(3:7-11). 다섯째,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처럼 주의 영광을 보고 반사함으로써 주 영으로 말미암아 주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것이다(3:16-18).
갈라디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 : 기록 장소는 고린도이며, 바울이 일 년 반 동안 거기에서 머무는 중에 썼을 것이다(행 18:1-11).
3) 시기 : 이 책은 대략 주후 54년경 바울이 두 번째 전도 여행을 하는 동안, 곧 갈라디아를 통과하여 여행하고 고린도에 도착한 후에 썼을 것이다
4) 주제 :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대치하시며, 종교와 전통에 상반되심.
5) 중심 사상
갈라디아서는 율법을 대치하시는 그리스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나님의 의도는 자기 백성을 율법 아래 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그들 안에 분배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이신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대치해야 한다. 유대교도들이 율법을 오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을 대치하시는 그리스도를 계시하기 위해서 갈라디아서를 썼다. 율법은 특별한 목적으로 주어졌지만 하나님은 율법이 영구한 지위를 갖도록 의도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을 그분 자신으로 대치하셨다.
에베소서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사도 바울이다(1:1).
2) 장소 : 이 책을 쓴 장소는 로마로서, 그때 바울은 투옥되어 있었다(엡 3:1, 4:1, 6:20, 행 28:30).
3) 시기 : 이 책을 쓴 시기는 대략 주후 64년경이다
4) 주제 : 교회―그리스도의 비밀이요, 그리스도의 충만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충만이 됨.
5) 중심 사상
A. 에베소서의 중심 사상은 교회이다. 에베소서는 교회를 일곱 방면에서 다루고 있다.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1:23). 둘째, 교회는 새사람이다(2:15). 셋째, 교회는 하나님의 왕국이다(2:19상). 넷째, 교회는 하나님의 권속이다(2:19하). 다섯째, 교회는 하나님의 처소다(2:22). 여섯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아내다(5장). 일곱째, 교회는 전사(戰士)이다(6:10-20) .
1. 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충만을 의미한다. 사람의 몸 안에는 그 사람 자신, 곧 그의 성품, 계획, 갈망 등이 충만하다. 이런 것들은 또한 그의 몸을 통해 밖으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자신, 곧 그분의 성품, 계획, 갈망도 그분의 몸인 교회 안에 충만하고 그분의 몸인 교회를 통해 표현된다. 충만(fullness)과 풍성(riches)은 어떻게 다른가? 예를 들면, 잔치상에 가득한 음식은 풍성하다. 이 풍성한 음식을 내가 먹고 소화시켜서 흡수할 때 그 음식은 나의 충만이 된다. 그러므로 밖으로 표현될 때 풍성이요, 안에 들어올 때 충만이다. 밖에 계신 풍성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영접하고 흡수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이 된다.
2. 새사람
교회는 새사람이다(2:15). 몸은 생명을 필요로 하고, 새사람은 인격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몸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으로서의 우리는 인격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의 몸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진 새사람이다. 만일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몸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진 새사람임을 안다면 우리의 교회 생활은 달라질 것이다.
3. 왕국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2:19). ‘동일한 시민’이라는 말은 왕국을 의미한다. 시민이 되려면 시민권을 가져야 하며 시민권은 국가나 왕국과 관계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것과, 우리가 이 왕국의 시민권을 소유한 시민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시민에게는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의무가 있다. 권리만을 주장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은 합당한 시민이 아니다. 교회는 권리와 의무가 함께 있는 하나님의 왕국이다.
4. 하나님의 권속
교회는 하나님의 권속이다(2:19하). 권속(household)은 ‘가정’이라는 뜻이다. ‘가정’은 생명과 누림에 관계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풍성을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의무도 다해야 한다.
5. 하나님의 거처
교회는 하나님의 거처이다(2:22).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일 뿐 아니라(2:21, 고전 3:16)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는 거처이다.
6. 그리스도의 아내
교회는 그리스도의 아내이다(5장). 아담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 2:18)라고 말씀하시며 아내를 지어 주셨다. 여기에서 아담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하와는 그리스도를 만족시키는 교회를 예표한다.
7. 전사
교회는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멸하는 전사다(6:10-20). 전신갑주는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체의 몸인 교회를 위한 것이다.
B. 그러므로 오늘날 중요한 것은 ‘교회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교회가 무엇이냐’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무엇이면 반드시 그런 일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빌립보서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바울과 디모데이다(1:1).
2) 장소 : 기록 장소는 로마로, 바울은 그때 투옥 되어 있었다(빌 1:13, 행 28:30).
3) 시기 : 이 책을 쓴 시기는 대략 주후 64년경으로 아마도 에베소서를 쓴 다음에 이 서신을 썼을 것이다(1:25, 2:24 참조).
4) 주제 : 그리스도를 체험함―그리스도를 우리의 생활, 본, 목표, 능력, 비결로 취함.
5) 중심 사상
1장 20절에서 바울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확대되게 하려 하나니”(원문 참조)라고 말하며, 1장 21절에서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고 선포한다. 이 두 가지 선언이 이 책 전체의 기본적인 개념을 대표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확대하고 그분을 살 것을 명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확대되게 함으로써 그분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매일 실재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살아냄으로써 그분을 확대해야 한다. 우리의 매일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사는 생활이어야 한다.
골로새서
1) 저자 : 이 책은 사도 바울과 형제 디모데가 썼다.
2) 장소 : 로마 감옥
3) 시기 :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후 64년에 빌레몬서와 거의같은 시기에 썼다(4:9-10, 몬 10-12).
4) 주제 : 그리스도―하나님의 비밀과 체현(體現), 교회의 머리와 조성, 성도들의 유업, 생명, 조성과 소망, 모든 적극적인 것들의 몸(실체)으로써 만유의 으뜸이신 만유를 포함한 분.
5) 중심 사상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를 대치하는 어떤 것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하려 했다. 교회 생활은 오직 그리스도로만 조성되어야 한다. 그분이 우리의 유일한 조성 요소, 바로 우리의 조성이셔야 한다. 이것이 이 짧은 서신에서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데 수많은 뛰어난 표현들을 사용한 이유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 ‘모든 그림자의 실체’라고 불리신다.
데살로니가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 :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동역자 실루아노와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에 머무르면서(1:1, 3:6, 행 18:1, 5) 쓴 것이다.
3) 시기 : 이 책은 주후 54년경이다.
4) 주제 : 교회 생활을 위한 거룩한 생활―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거룩한 생활을 하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림.
5) 중심 사상
교회 생활을 위한 이 거룩한 생활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구성된다. 그러한 생활을 사는 길은 전적으로 성별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서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전적으로 성별되려면 거룩함에 흠이 없는 마음을 갖고, 우리의 그릇, 즉 우리의 몸을 성별하여 존귀하게 보존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우리 존재의 모든 부분``―``영과 혼과 몸``―``을 완전하게 보존해야 한다. 이것이 합당한 교회 생활을 위해 거룩한 생활을 살도록 우리의 전 존재를 성별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에서 바울은 그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말한 것을 많이 반복한다. 자녀에 대하여 사랑의 마음을 가진 아비와 같이 바울은 거듭 말한다. 이러한 것은 부모가 특히 나이가 더 들수록 두드러진다. 그들은 똑같은 것을 거듭거듭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후서는 데살로니가전서의 반복이며 전진된 발전이다. 여기에는 반복과 아울러 경고와 교정이 담겨 있다.
데살로니가후서에서 바울은 믿는 이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경고한다. 그는 또 그들이 합당한 노선으로 돌아가도록 교정한다. 그렇지만 그 중점``―``교회 생활을 위한 거룩한 생활``―``은 두 책 모두 똑같다. 더욱이 데살로니가전·후서에 모두 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기본 구성 요소인 믿음, 사랑, 소망이 잘 나타나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와 시기 : 데살로니가후서는 전서와 같은 장소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연이어 기록되었다. 즉, 주후 54년경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동역자 실루아노와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에 머무르면서(1:1, 3:6, 행 18:1, 5) 쓴 것이다
3) 주제 : 교회 생활을 위한 거룩한 생활에 관하여 격려하고 교정함.
4) 중심 사상
데살로니가전서 서론 참조
디모데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와 시기 : 이 책은 바울이 로마의 첫 번째 투옥에서 풀려난 뒤인 주후 65년경, 즉 바울이 처음 로마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후에 마게도니아(1:3)에서 썼다.
3) 주제 :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
4) 중심 사상
디모데전서는 바로 하나님의 경륜, 즉 교회에 관한 그분의 신약 경륜을 말하는 책이다.
1장 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놀라운 용어를 사용한다. 이 경륜은 ‘하나님의 가정관리’이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다음 네 가지 표현을 계시하고 있다. ①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16절), ②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16절), ③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15절), ④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15절). 하나님의 경륜을 이들 네 가지와 결합해 볼 때, 디모데전서는 실제로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을 계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모데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와 시기 : 바울이 순교 직전인 주후 67년경, 2차 투옥시 로마 감옥에서 썼을 것이다
3) 주제 : 교회의 하락에 대한 예방 주사.
4) 중심 사상
A. 이 서신을 쓸 때 바울은 교회들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 안에 결코 변하지 않는 것―영원한, 피조되지 않은, 썩지 않는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었다. 환경은 변한다 하더라도 이 영원한 생명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용기를 얻었고, 그러한 상황에 실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은 젊은 동역자에게 격려와 힘을 주기 위해서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교회 하락의 예방주사로 디모데에게 두 번째 서신을 썼다.
B. 우리는 디모데후서를 단지 목회 서신으로만 간주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합당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바울 안에 있는 신성한 사상이 교회의 하락에 대한 예방주사를 믿는 이들에게 놓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하락을 예견하였다. 그러나 깊은 속에서 그가 용기를 얻은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로 그 생명이 바울 안에 거하였던 것이다. 이 서신을 쓸 때 바울의 부담은 디모데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또한 교회를 하락시키는 세균에 대한 예방 접종을 하기 위해 교회 안으로 신성한 요소를 주입하는 것이었다. 이 예방 주사가 효력이 있음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한다. 교회는 수세기를 통하여 어느 정도 파괴되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바울은 하락을 예방하는 선견(先見)을 갖고 있었다.
디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 : 1장 5절과 3장 12절을 볼 때 기록 장소는 니고볼리이다.
3) 시기 : 대략 주후 65년경 바울이 첫 번째로 로마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후 그레데를 거쳐 니고볼리에 도착했을 때(1:5, 3:12) 썼을 것이다.
4) 주제 : 교회의 질서를 유지함.
5) 중심 사상
A. 디도서의 목적은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 교회가 합당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쓴 것이다.
B. 디모데전서에서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을 열어 주고, 디모데후서에서 교회의 하락에 대한 예방 주사를 놓고, 디도서에서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한 목적의 세 방면, 즉 거룩한 계시의 총 결론 부분에 있는 금촛대들로 상징된 삼일 하나님의 합당한 표현인 교회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계 1:12, 20).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다음의 기본적이고 긴요한 문제들이 이 세 책들에서 반복하여 강조된다.
1. 신앙(The faith) :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따른 완전한 복음의 내용. 그것은 객관적이며 다음의 구절들에서 언급된다``―``딤전 1:4, 19, 2:7, 3:9, 13, 4:1, 6, 5:8, 6:10, 12, 21, 딤후 3:8, 4:7, 딛 1:1, 4, 13.
2. 진리(The truth) : 믿음의 내용의 실재``―``딤전 2:4, 7, 3:15, 4:3, 6:5, 딤후 2:15, 18, 25, 3:7, 8, 4:4, 딛 1:1, 14.
3. 건강한 가르침(Healthy teaching)``―``딤전 1:10, 딤후 4:3, 딛 1:9, 2:1, 건강한 말``―``딤전 6:3, 딤후 1:13, 건강한 구변``―``딛 2:8, 믿음 안에서 건강함``―``딛 1:13, 2:2. 이것들은 모두 생명의 상태에 관련된다.
4. 생명(Life) :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딤전 1:16, 6:12, 19, 딤후 1:1, 10, 딛 1:2, 3:7.
5. 경건(Godliness) : 하나님의 표현인 생활``―``딤전 2:2, 10(경건한, godly), 3:16, 4:7, 8, 5:4(존경하다, respect), 6:3, 5, 6, 11, 딤후 3:5, 12(경건한, godly), 딛 1:1, 2:12(경건한, godly), 반대로, 경건치 아니함``―``딤전 1:9(경건치 않은, ungodly), 딤후 2:16, 딛 2:12.
6. 믿음(Faith) : 복음,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말씀과 행동 등을 믿는 우리의 행위. 그것은 주관적이며 다음의 구절들에 언급된다``―``딤전 1:2, 5, 14, 19, 2:15, 4:12, 6:11, 딤후 1:5, 13, 2:22, 3:10, 15, 딛 2:2, 3:15.
7. 양심(The conscience) : 우리 영의 인도하는 부분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나 사람과의 관계를 옳다 하거나 정죄함``―``딤전 1:5, 19, 3:9, 4:2, 딤후 1:3, 딛 1:15.
C. 신앙은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가정 행정, 하나님의 분배 등의 내용과 동일하다. 진리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신앙의 내용, 곧 실재이다. 건강한 가르침과 건강한 말과 건강한 구변은 진리를 사역하는 것이며, 신성한 진리들의 실재를 사람들에게 사역하는 것이다.
1. 영원한 생명은 신앙의 신성한 실재들을 수행하는 수단과 능력이다.
2. 경건은 신성한 실재를 표현하는 생활이며, 그분의 모든 풍성함 안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3. 믿음(주관적인)은 신앙(객관적인)의 진리에 대한 반응이며, 신성한 실재들을 영접하고 또한 그에 참여하는 것이다.
4. 양심은 신앙 안에서 우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우리를 시험하고 확인한다.
빌레몬서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사도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이다(1절).
2) 장소 : 로마 감옥이다.
3) 시기 : 대략 주후 64년경, 바울이 처음 로마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나기 바로 전에(9, 22절) 썼을 것이다
4) 주제 : 새사람 안에서 믿는 이들의 동등한 신분에 대한 예시.
5) 중심 사상
이 짧은 서신은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이 영원한 생명과 신성한 사랑 안에서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바울의 시대에 그리스도의 생명은 믿는 이들 가운데서 강력한 노예 제도를 무효화시켰다. 그리스도인들 간의 교통(교제)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정서는 타락한 인류의 악한 사회적 질서를 저절로 무시할 만큼, 즉 제도적으로 노예 해방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압도적이었다. 그리스도의 모든 믿는 이들은 신성한 출생과 신성한 생명의 생활로 동등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즉, 새사람인 교회 안에서는 자유인이나 종이나 차별이 없었다(골 3:10-11).
이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한 새사람의 창조를 위하여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의 모든 규례들을 폐하였다(엡 2:15). 둘째,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의 안에서 어떤 차별이 없이 하나가 되었다(갈 3:27-28). 셋째, 새사람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골 3:11). 동등한 교통 안에서 그와 같은 사랑을 가진 생활은 교회가 합당한 질서를 유지하고(디도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할 수 있게 하며(디모데전서), 교회의 하락의 조류에 대항하여 설 수 있게 한다(디모데후서). 이 서신이 신약의 배열 가운데 앞의 세 서신 다음에 놓이게 된 것은 주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다.
히브리서
1) 저자 : 이 책의 풍부하고도 깊은 내용을 볼 때 바울을 저자로 추정할 수 있다. 13장 23절에서 디모데를 언급한 것과 분위기로 보아 그가 저자임을 알 수 있다.
2) 장소와 시기 : 이 책은 사도 바울이 로마 투옥에서 풀려난 후인 주후 67년경 밀레도에 머물 때(딤후 4:20 참조) 기록했을 것이다.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13:24)이라는 언급에서 이 책은 로마에서 쓰지 않았다는 것을 본다. 내용에 따르면 이것은 분명히 히브리 신자들에게 쓴 것이다.
3) 주제 : 그리스도는 유대교와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보다 뛰어나시며, 그분께서 완성하신 새 언약은 옛 언약보다 더 나음.
4) 중심 사상
히브리서에서는 첫째, 하늘에 앉으사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생명과 은혜와 권위와 능력을 주셔서 이 땅에서 하늘에 속한 삶을 살도록 붙들고 계시는 우리의 사역자(8:2)이자 대제사장(4:14-15, 7:26)이신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그분은 현재의 그리스도, 오늘의 그리스도, 우리의 매일의 구원과 순간 순간의 공급이 되시는 보좌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히브리서에서 계시된 그리스도이시다.
둘째, 이 책의 강조점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저자를 밝히지 않으며, 구약의 내용을 인용할 때에도 화자(話者)`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이 책의 관념에 따르면 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이다. 그러므로 구약을 말할 때 이 책은 항상 성령의 말씀하심이라고 말한다(3:7, 9:8, 10:15-17).
셋째, 이 책의 제목이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것은 가장 적절하면서도 의미가 깊은 것이다. 첫 번째 히브리인은 아브라함으로서(창 14:13)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접촉하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였다(롬 4:11-12). 그러므로 하나님은 ‘히브리인의 하나님’이시다(출 9:1, 13). 또한 ‘히브리’라는 말의 어원은 ‘넘어감(pass over)’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을 말한다.
넷째, 이 책에서 하나님의 말씀하심의 목적은 주님을 믿었으나 여전히 유대교 안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떠나 은혜로(7:18-19, 12:28, 13:9), 구약을 떠나 신약으로(8:6-7, 13), 의식적인 구약의 봉사를 떠나 영적인 신약의 실재 안으로(8:5, 9:9-14), 유대교를 떠나 교회로(13:13), 땅에 속한 것을 떠나 하늘에 속한 것으로(12:18-24), 제단이 있는 바깥 뜰을 떠나 하나님께서 계신 지성소 안으로(10:19-20, 13:9-10), 혼을 떠나 영으로(4:12), 진리와 생명의 초보를 떠나 진리 안에 있는 생명의 성숙함 안으로 건너가게 하려는 것이었다(5:11-6:20). 주님을 믿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접촉한 모든 자들은 이렇게 강을 건넌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야고보서
1) 저자 : 이 책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주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1:1, 마 13:55)인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쓴 것이다(1:1).
2) 장소 : 야고보가 어느 때 예루살렘을 떠났다는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이것은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쓰였을 것이다.
3) 시기 : 그 내용에 교회의 하락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은 주후 5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4) 주제 : 그리스도인의 실행적인 온전함.
5) 중심 사상
야고보는 단순히 그리스도인의 온전함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실행적인 온전함, 즉 이론적이 아닌 일상 생활의 실행적인 온전함에 관하여 썼다. 이것이 이 서신의 강조점이다. 그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미덕들은 이러한 온전함과 관련이 있다.
베드로전서
1) 저자 :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가 이방 나라들에 흩어져 있는 유대 믿는 이들에게 쓴 것이다(1:1).
2) 장소 : 기록은 유프라테스 강의 큰 도시인 바벨론에서 이루어졌다(5:13).
3) 시기 : 쓴 시기는 바울의 순교 이전임이 분명하다(5:13). 그러므로 이것은 주후 64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4) 주제 :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5) 중심 사상
베드로전·후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이다. 이 두 책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온 우주를 포함한다. 우리는 베드로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말한 사실로써 이것을 안다. 그의 말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가리킨다. 결국 영원 미래에는 모든 것이 옳게 돼 합당한 질서 가운데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의(義)가 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땅은 불의와 무질서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하늘과 땅을 다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하여 통치하신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통치를 수행하시는 수단이다. 베드로전·후서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언급이 있다. 하나님의 통치적인 심판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주를 깨끗케 하기 위해서 심판하신다. 우주는 하나님께서 적극적인 목적으로 창조하셨지만 사탄이 들어와 더럽혔다. 이제 하나님은 심판을 통하여 우주를 청소하신다. 그분은 온 우주를 소제(掃除)하는 철저한 작업을 하고 계신다. 결국 우주는 새로워질 것이다.
하나님은 불결한 곳에 계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주를 소제하시고 정화하신다. 먼저 그분은 그분의 권속인 우리를 정결케 하신다. 우리는 지금 그분의 정결케 하시는 역사의 중심부에 있다. 우리를 정결케 하는 역사를 마치신 후, 대환난과 천년왕국 동안 우주를 소제하실 것이다. 모든 것이 정결케 된 후,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이다.
베드로후서
1) 저자 :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베드로가 이방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의 믿는 이들에게 쓴 것이다(벧전 1:1).
2) 시기 : 2장의 교회의 타락한 상태와 3장 15절에서 16절의 사도 바울에 관한 천거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바울의 순교 후인, 아마도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함락 전인 주후 69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의 순교 직전에 기록되었음이 틀림없다(1:14).
3) 주제 : 신성한 공급과 신성한 통치.
4) 중심 사상
베드로전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베드로후서는 전서의 계속으로, 여기서도 역시 하나님의 통치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 서신에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의 주제는 신성한 공급과 신성한 통치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통치에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함께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통치에 동역할 수 있도록 공급을 하신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수행하려면 하나님의 신성한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베드로후서에서 저자는 먼저 신성한 공급을 제시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것임을 보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의 주된 의의(意義)다. 더 나아가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전서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통치의 그림을 계속 보여 준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는 신성한 공급과 통치를 말하고 있다.
요한일서
1) 저자 : 이 책은 장로인 요한이 택하심을 입은 자매와 그녀의 자녀에게 쓴 것이다(1절).
2) 장소와 시기 : 이것은 분명히 요한일서 이후에 쓰여졌을 것이다(요한일서의 이 부분을 참고하라). 교회 역사는 이 책이 기록된 당시, 요한이 에베소의 장로였음을 명확하게 진술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에베소에서 기록됐음이 틀림없다
3) 주제 : 신성한 생명의 교통.
4) 중심 사상
요한 서신서들, 특히 요한일서의 초점은 신성한 생명을 통한 믿는 이들과 하나님, 또 서로서로 간의 신성한 생명의 교통(교제)의 비밀이다. 이 교통은 비밀스럽다. 우리는 종족과 피부색과 국적은 비록 다르지만 신성한 생명 안에서 한 교통을 누린다. 우리 가운데는 놀라운 하나가 있다. 이것이 신성한 생명의 교통의 비밀이다. 요한일서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두드러진 사항들이 있다.
1.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교통
1장 3절의 교통(fellowship)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로서 공동 참여를 뜻한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흘러나옴으로 사실상 신성한 생명을 영접하고 소유한 모든 믿는 이들 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흐름이다(행 2:42, 고후 13:13, 계 22:1). 이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믿는 이들과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있다. 요한은 먼저 믿는 이들이 신성한 생명을 통해서 사도들과 교통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로써 우리는 교통이 믿는 이들을 사도들에게로, 또한 아버지와 아들에게로, 연결시킨다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이 교통 안에는 신성한 생명의 온전한 하나가 있다. 신성한 생명 안에서 믿는 이들은 서로 교통을 갖는다(7절, 빌 2:1).
2. 기름 부음
2장 27절은 기름 부음을 말한다. 기름 부음의 가르침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지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 속에 있는 신성한 기름 부음이 언제든지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그 기름 부음에 따라 주님 안에 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식해야 한다.
3. 신성한 출생과 신성한 씨
3장 9절에 따르면 하나님께로서 태어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분의 씨가 그 사람 속에 거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의 씨는 우리가 그분에게서 태어날 때 받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이 신성한 씨가 거듭난 모든 믿는 이들 속에 거한다. 결국 이 씨는 활짝 꽃 피고 열매 맺을 것이다. 이 씨는 신성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다.
4. 하나님께로서 태어났으므로 악한 자가 만지지 못함
요한일서 5장 4절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마다 다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RcV)라고 말한다. 5장 18절은 “하나님께로서 태어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태어난 자가 자기 자신을 지키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않느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을 함께 놓고 볼 때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것마다 세상을 이기고, 또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 못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이서
1) 저자 : 이 책은 장로인 요한이 택하심을 입은 자매와 그녀의 자녀에게 쓴 것이다(1절). ` 장소와 시기 : 이것은 분명히 요한일서 이후에 쓰여졌을 것이다(요한일서의 이 부분을 참고하라). 교회 역사는 이 책이 기록된 당시, 요한이 에베소의 장로였음을 명확하게 진술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에베소에서 기록됐음이 틀림없다
2) 주제 : 이단에 참여하는 것을 금함.
3) 중심 사상
요한이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이단적인 가르침에 참예하는 것을 금한다. 사도 요한은 10절에서 “누구든지 이 가르침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말한다. 9절에서처럼 여기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신격에 관한 가르침, 특히 그분의 신성한 잉태를 통한 성육신에 관한 가르침이다. 요한은 이 서신에서 그리스도의 신격과 성육신에 관한 진리를 부인하는 자는 누구도 받지 말라고 경고한다.
요한삼서
1) 저자 : 이 서신은 요한이 에베소의 장로였을 때, 그곳에서 가이오에게 쓴 것이다(1절)
2) 주제 : 진리 안에서 동료 일꾼들을 격려함.
3) 중심 사상
요한이서와 삼서는 모두 우리가 진리 안에서 살고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차이는 요한이서에는 이단에 참여하는 것, 즉 이 진리를 거스르는 어떤 가르침에도 참여하는 것을 금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삼일(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재를 거스르는 어떤 가르침이나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요한삼서에는 진리 안에서 동료 일꾼들을 돕는 격려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삼일 하나님의 신성한 실재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이러한 사역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요한이서에는 이단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있고, 요한 삼서에는 진리를 위하여 수고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있다. 우리의 태도가 부정적인가, 적극적인가는 그 특정한 상황이 신성한 실재를 위한 것인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
유다서
1) 저자 : 이 책은 주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였던 유다(마 13:55)가 기록하였다.
2) 장소 : 기록 장소는 예루살렘이거나 유대일 것이지만 어느 곳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3) 시기 : 이 책에 분명히 나타난 교회의 타락한 상태는 베드로후서를 기록한 당시의 상태와 유사하므로 예루살렘이 멸망한 주후 70년 이전인 주후 69년경에 베드로후서와 거의 동시에 기록했을 수 있다.
4) 주제 : 믿음을 위하여 싸움.
5) 중심 사상
유다와 베드로(그의 두 번째 서신에서)는 신약의 진리를 위하여 나팔을 불 책임을 짊어지고 똑같은 것을 정죄하였고, 배교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유다서와 베드로후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인격과 구속의 역사를 경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보호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 저자 : 사도 요한이 썼다.
2) 장소와 시기 : 이 책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당시인 주후 90년경에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1:1, 4, 9) 쓴 것이다.
3) 주제 :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따른 행정의 중심이신 그리스도.
4) 중심 사상
계시록은 결론의 책이다. 계시록을 성경에서 뺀다면 큰 손실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시작이 있지만, 계시록이 없다면 결론이나 완결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좋은 시작을 하시고 아주 많은 역사를 이루셨지만 이제는 최종 완성이 필요하시다. 계시록이 없다면 하나님의 경륜의 결론은 없다. 하나님은 위대한 분으로 목적을 갖고 계신다.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려면 그분의 경륜이 완성되어야 한다. 많은 성경 학도들은 하나님의 경륜의 문제를 무시해 왔다. 우리에게 계시록이 없다면 하나님의 경륜의 최종 완결을 보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그분의 경륜의 결과, 곧 그 산출을 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인지를 깨닫기란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하나님의 경륜의 결론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계시가 아주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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