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21년 8월 15일
제목: 빛 가운데로 걸어라
말씀: 요12:35-36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오늘은 광복 75주년을 맞이하는 말로써,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제점유로부터 해방된 날입니다. 이 날을 우리는 다시 빛을 찾은 날이라 하여 광복절(光復節)이라고 하여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날로 정하고 그것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대개의 동남아 국가나 기타 강제점유 국가가 되었던 나라들도 모두 이런 날을 축하합니다. 베트남은 이 날만은 쉽니다. 다른 날은 쉬지도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등불되시는 주님을 다시 찾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1. 등불의 비유
막4:2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4:22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1:9-10)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빛이 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빛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빛이 있어도 어둠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있다.
요12:35-36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톨스토이 단편집: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는 요한복음 12장 35절을 모티브로, 톨스토이의 영적 방황과 기독교에의 회심을 그린 자전적 소설. 세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주인공 줄리어스와 가진 것 없으나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유베날리우스를 통해 톨스토이는 참 평안, 참 행복을 말하고 있다. 빛의 아들인데 어둠의 지배를 받거나 어둠이 자리하고 있을 수 없다. 빛이 우리를 비추어 우리의 모든 죄악된 것들이 빛 가운데 드러나 정결케 될 때 명실상부한 빛의 아들이 된다.
빛이 비추고 있는 동안에 빛의 아들이 되어야 빛이 사라져도 빛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된다. 그 때는 바로 말씀이라는 등불이 우리 삶에 역사하는 때다.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뒤좌우 분간하지 못하고 실족할 수밖에 없다.
막4:21-22로 돌아가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등경 위에 두어 비추게 하기 위함이다. 등불은 어두울 때 켜는 것이다. 또한 등불은 깨어 있을 때 켜는 것이다. 어둡지 않을 때 등불을 켤 이유도 없고, 잠잘 때 등불을 켤 이유도 없다. 빛이 있는 동안에는 등불을 밝히지 않아도 살 만 했다. 이 땅에 어둠이 뒤덮이기 전에는 말씀의 등불을 켜지 않아도 살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12:35-36의 말씀은 어둠이 덮치기 전, 빛이 있는 동안에 빛의 아들이 되지 않으면 어둠에 붙잡히게 된다고 경고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제 빛이 사라져가고 있어 등불을 밝혀야 할 때가 됐다. 등불은 켜서 촛대 위에 두기 위함이라는 것은 말씀은 우리를 밝혀주기 위해 주신 것이라는 거다. 흑암의 때에 말씀이 없이는 우리가 실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말씀이 비추어주시도록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빛이 있을 때에나 등불이 있을 때에나 그 빛의 역할이 무엇인지 막4:22에서 말씀하신다.
2. 공개되는 비밀
숨겨지고 비밀이었던 모든 것이 결국에는 다 드러나고 공개될 것이기 때문에 등불을 등잔 위에 둔다는 것이다. 왜? 밝히 보게 하기 위해서다. 등불을 켜서 그릇이나 침대 아래 둔다면 어두운 다른 곳은 감춰질 수 있다. 그러나 결국에 다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말씀으로부터 숨을 필요도 없고 말씀으로 모든 곳을 다 비춰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다 비추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다. 모든 죄악은 어둠 가운데 은밀하게 행해진다. 이제는 죄가 죄인 것을 모르는 흑암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대낮에 공개적인 장소에서도 죄악이 행해지고 있지만 아직 선한 양심이 남아 있어 죄가 죄인 줄 아는 사람들은 죄악을 숨긴다.
죄는 수치심을 동반하기 때문에 숨기는 것은 죄의 습성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몸을 가리는 것을 먼저 했던 것,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모른 척 한 것,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그 사실을 은닉하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불러들여 아내와 동침하게 하려 했던 것, 그것이 실패하자 우리야를 죽인 것 등등... 죄가 죄인 줄 알면 숨긴다. 그런 죄악들 뿐 아니라 불순종과 타협, 연약함 등도 빛을 피해 어둠 가운데 숨겨두면 당장은 숨겨져 있지만 결국에 다 드러날 날이 온다는 것이다. 드러날 날이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설 때라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으니 안타까운 것이다. 결국에 드러날 모든 일들을 지금 두렵고 수치스럽다고 어둠에 두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말씀이라는 등불을 등잔 위에 두어서 집안의 구석구석, 곧 우리 영혼의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부분에만 말씀을 비춰서 자기를 속이며 만족하지 말고, 삶의 모든 영역 영혼 구석구석을 말씀으로 비춰서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어느 부분도 주님께 감춰질 수 있는 것이 없다. 주님은 우리 자신이 모르는 부분까지도 알고 계시니 우리가 아는 것을 주님께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또한 사람 앞에서 숨기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사람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것이다.
3. 빛 가운데로 걸어라
빛이 있는 동안 빛의 자녀가 된 사람은 계속해서 빛을 원하기 때문에 말씀의 등불로 끊임없이 자신의 삶과 영혼을 밝혀서 빛 안에 거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잠을 잘 때가 아니라면 어둠은 굉장히 불편한 것이다. 어둠은 우리를 움직일 수 없게 한다. 하루만 소경으로 살아본다면 흑암 중에 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깨달을 것이다. 애굽땅에 임했던 흑암이 "더듬을 만한 흑암"이었다. 어둠은 우리를 활동할 수 없게 한다. 어둠은 두려움을 준다. 볼 수 없다면 어떤 움직임조차도 적극적으로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늘 어둠 속에서 산다면 그 어둠에 차차 익숙해지겠지만, 빛에 거하다가 어둠에 산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소경으로 살다가 눈을 뜨게 되면 엄청난 기쁨과 감사가 있겠지만, 잘 보다가 시력을 잃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삶에 어둠이 남아 있도록 허용하면 안 된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전에는 영적인 소경이었기 때문에 그 땐 어쩔 수 없었다. 그 땐 우리가 소경이었으나 소경인 사실조차 몰랐다. 우리가 소경이나 소경인 것조차 모르는 때에는 주님이 우리 눈을 열어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있게 된 뒤에 보려 하지 않는다면 그 눈은 더 닫혀지게 된다.
- 소경의 비유
요9:39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심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왔으니, 이는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시니라
이 말씀은 소경 된 자의 눈을 뜨게 하신 뒤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바리새인들이 "그럼 우리도 소경이란 말인가" 하니 예수님께서 "만일 너희가 소경이라면 죄가 없을 것이나 이제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본다.'고 하므로 너희 죄가 남아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소경은 소경일 뿐 아니라 주님을 모르는, 믿지 않는 자였으니 영적으로도 소경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자신이 영적으로 소경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눈이 안 보이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 자신이 소경인 줄 모르는 것은 주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경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주님이 주님을 계시해주실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주님을 그 소경에게 드러내셨다. 그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기 전에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결론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9:4-5 때가 낮일 동안에 나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들을 행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면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라.
주님이 빛이심을 계시하시면서 눈을 뜨게 하셨다. 빛의 역할은 보게 하는 것이다. 어둠 가운데 있는 더듬으며 다니는 소경들이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만날 때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둠 가운데 있었으나, 그렇게 어둠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주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셨다. 우리가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우리가 늘 어둠 가운데 살아 왔기 때문에 어둠에 익숙해져 있어서 빛 가운데 거하려 애쓰지 않는다면 여전히 어둠 가운데 머물 수 있다.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들이 본다고 하는 자들이다. 본다고 하면서 못 보기 때문에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못 보면 죄가 아니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면 죄다. 그건 그들이 안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소경은 예수님을 알 수가 없는 사람이었으나,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제대로 믿었다면 예수님을 알아봤어야 할 사람들이다. 말씀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죄다.
말씀의 등불로 밝히 보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육신은 이 땅에서 떠나셨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 말씀의 씨앗이 우리 삶에 뿌려져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만큼 우리 삶이 더 밝은 빛 가운데 거하게 된다. 어둠은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지만, 빛은 우리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한다. 빛은 두려움을 없앤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1:9)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덤으로 얹혀서 볼 수 있도록 하시지 않았다.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진리를 직접 계시해주시고 우리 영혼을 밝혀주신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을 의존하는 것이다. 진리를 알수록, 빛 가운데 거할수록 자유가 임한다.
(작품소개)
톨스토이의 빛이 있는 동안에 빛 가운데를 걸어라
톨스토이 단편집: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Echo Book 1) 저자톨스토이 |
책소개
『톨스토이 단편집: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는 영혼의 기쁨과 삶의 본질에 대한 신앙 고백 8편을 엮어 구성한 책이다. 저자 자신의 영적 방황과 기독교에 회심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 주를 이루며, 사랑의 결핍과 행복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의혹이 없는 가르침이 어떻게 삶에 적용되는지 전하고 있다. 더불어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결핍과 회복을 위해서는 ‘사랑’만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작품의 각 등장인물들은 내면의 혼돈 속에서 순례를 위해 길을 나아가며 기독교적 메시지를 담은 영성을 표현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은 친절과 사랑, 행복을 전해주는 따듯한 눈빛 하나 등이 전해주는 소중함을 친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작품마다 묵상 글을 담아 함께 나눌 수 있는 팁을 제안하고 있다.
사랑의 결핍, 행복에 대한 8가지 이야기
기독교로의 회심, 영적 성찰의 과정을 담은 톨스토이 단편집
오십 세를 넘긴 나이에 회심한 톨스토이, 그가 누린 영혼의 기쁨과 삶의 본질에 대한 신앙고백 같은 8편의 단편집이다. 이 책의 타이틀인『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Walk in the Light while there Is Light)』는 요한복음 12장 35절을 모티브로, 톨스토이의 영적 방황과 기독교에의 회심을 그린 자전적 소설. 세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주인공 줄리어스와 가진 것 없으나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유베날리우스를 통해 톨스토이는 참 평안, 참 행복을 말하고 있다. ‘낯선 이’가 등장하는데, 그의 논리적인 설득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도 주목하게 한다.
백여 년의 시간이 오늘에 닿은 톨스토이의 통시적 메시지
평범한 일상에 내재된 나눔, 실천하는 삶에 대하여
대문호 톨스토이를 신앙의 대선배로 다시 만나는 시간. 백여 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오늘 우리의 자리에서 그의 통찰을 목격하게 한다. 이보다 더한 복음이 어디 있을까. 톨스토이의 신앙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애써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해석하고자 하지 않으며,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 이해하기 쉽고 의혹이 없는 가르침이 어떻게 삶에 적용되는지 전하고 있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어떻게 자신의 영혼을 바꾸어 놓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사랑과 믿음, 평안과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지 전하고, 더 나아가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결핍과 회복에 대해, 사랑만이 해법임을 말한다. 매 작품마다 묵상글을 담아 함께 나눌 수 있는 팁으로 제안하고 있다.
이 책의 각기 다른 단편들을 차례차례 읽어 내려가다보면, 마치 잘 그려진 지도를 따라 순례하는 듯하다. 한 편의 대하드라마 같다. 톨스토이의 영성을 표현하는 여러 캐릭터들의 메시지가 기독교 가치에 바탕에 두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설정과 묘사가 매우 친밀하다. 고차원의 신학적 설명도 아니고 수도원의 깊은 영성에서 나오는 경건주의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 가운데 닿을 수 있는 작은 사랑, 빵 한 조각 물 한 잔을 건네는 손길 하나, 눈빛 하나의 행복, 그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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